한국어로 영어 어순 이해하기
한국어와 영어의 어순은 보기에 많이 다르게 보이지만 두 언어 모두 인간이 사용하는 이상 공통적인 특성이 존재합니다.
한국어 사용자가 영어를 공부하면서 어렵게 느끼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어순인데 그 이유는 한국어와 영어의 어순이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어 어순에 익숙하지 않으면 복잡한 문장을 읽을 때나 영어로 말을 할 때에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영어 문장을 그대로 한국어의 어순으로 고쳐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I go to school
나는 - 간다 - 에 - 학교
같은 의미의 한국어 문장을 영어로 고치면 다음과 같습니다.
(2)
나는 학교에 간다
I school to go
하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영어와 한국어의 어순은 그냥 불규칙하게 다른 것이 아니고 상당히 정교한 규칙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언어학자 촘스키 (N Chomsky) 가 제시한 보편 문법 이론 (Universal Grammar) 과 관련이 있습니다. 촘스키의 UG 이론에 따르면 모든 언어는 공통적인 문법 원리 (principles) 가 있고 특정한 언어에 따라 결정되는 매개 변수 (parameters)
가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영어와 한국어의 문법은 각각의 특정한 매개 변수 때문에 달라보이지만 공통적인 문법 원리가 존재합니다. 매우 간단한 예를 들어서 영어와 한국어 둘 다 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등의 문법적인 성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서 한국어와 영어의 어순을 비교해보겠는데 그 전에 두 가지의 개념을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1. 문장 구성 요소 (constituent)
(3)
My son bought a book yesterday
나는 어제 책을 샀다
위의 문장들은 여러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들을 ()
으로 묶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4)
(my son) (bought (a book) yesterday))
my son 은 명사구 (noun phrase) 이고 bought a book yesterday 는 동사구 (verb phrase) 인데 이 동사구는 a book 이라는 명사구와 yesterday 라는 부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같은 의미의 한국어 문장도 마찬가지입니다.
(5)
((나의 아들)은) (어제 (책을) 샀다)
문장 구성 요소를 알아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문장 구성 요소를 하나의 단어로 대체해보는 것입니다.
(6)
My son bought a book yesterday
Did he buy a book yesterday?
Yes he did
여기서 my son 은 he 로 그리고 bought a book yesterday 는 did 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 문장도 마찬가지로 '나의 아들' 을 '그' 로 바꿀 수 있고 '어제 책을 샀다' 를 (한국어에는 조동사가 없으므로) '샀다' 로 바꿀 수 있습니다.
(7)
어제 책 샀어?
샀어 (= 어제 책 샀어)
2. 문장 구성 요소의 핵심어 (head)
문장 구성 요소의 핵심어는 그 구성 요소의 문법적 기능을 결정합니다.
(8)
I (popped (in her office))
문장 (8) 에서 in her office 은 전치사구 (prepositional phrase)
이며 이것의 핵심어는 전치사 in 입니다. 또한 popped in her office 은 동사구이며 핵심어는 동사 popped 입니다. 한국어 문장도 마찬가지입니다.
(9)
나는 ((그녀의 사무실에) 들렸다)
'에' 는 명사 뒤에 오므로 전치사가 아닌 후치사 (postposition)
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사무실에' 는 후치사구이고 이것의 핵심어는 '에' 입니다.
지금까지 문장 구성 요소 (constituent) 그리고 핵심어 (head) 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개념을 바탕으로 한국어와 영어의 어순을 보겠습니다.
3. 한국어 vs 영어
(ㄱ) 후치사 vs 전치사
말 그대로 한국어에는 전치사가 존재하지 않고 후치사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모든 후치사구의 핵심어는 항상 가장 마지막에 위치합니다.
학교에 = 학교 (명사) + 에 (후치사)
그 곳으로부터 = 그 (한정사) + 곳 (명사) + 으로부터 (후치사)
영어에서는 반대로 모든 전치사구의 핵심어인 전치사는 항상 가장 처음에 위치합니다.
to school = to (전치사) + school (명사)
from that place = from (전치사) + that (한정사) + place (명사)
(ㄴ) SOV vs SVO
주어 (S), 동사 (V) 목적어 (O) 로만 이루어진 간단한 문장을 예로 들겠습니다.
나는 ((점심을) 먹었다)
I (had lunch)
여기서 각각의 동사구 '점심을 먹었다' 와 had lunch 를 살펴보겠습니다. '점심을 먹었다' 의 핵심어는 '먹었다' 이고 had lunch 의 핵심어는 had 입니다.
그렇다면 영어 동사구의 핵심어는 앞에 있고 한국어 동사구의 핵심어는 뒤에 있습니다. 이 사실은 위에서 이야기한 전치사/후치사의 핵심어의 위치와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한국어의 문장 구성 요소의 핵심어는 뒤에 위치하고 영어 문장 구성 요소의 핵심어는 앞에 위치한다.
그렇다면 더 많은 예를 통해서 이 결론의 타당성을 조사해보겠습니다.
(ㄷ)
저것은 (살구이다)
That (is an apricot)
is an apricot 은 is 로 대체 가능하므로 동사구입니다. 앞의 (ㄱ), (ㄴ) 과 마찬가지로 동사구 '살구이다' 의 핵심어 '이다' 는 뒤에 위치하고 'is an apricot' 은 앞에 위치합니다.
(ㄹ)
나는 (지금 (텔레비젼을) 본다)
I (am watching TV now)
역시 각각의 동사구의 핵심어 '본다' 그리고 'am' 의 위치는 각각 뒤와 앞입니다.
또한 부사의 위치를 살펴보겠습니다. 문법적으로 가능한 부사의 위치는 한국어와 영어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나는 지금 텔레비젼을 본다 지금 (x)
I now am watching TV (x)
나는 텔레비젼을 지금 본다 (o)
I am now watching TV (o)
첫 두 문장이 틀린 이유는 (예외는 있지만) 동사구에서 부사가 동사보다 먼저 위치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문장 구성 요소의 핵심어가 가장 앞서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ㅁ)
He (said (that it was tasty))
그는 ((그것이 맛있었다고) 말했다)
that it was tasty 는 it 으로 대체할 수 있고 '그것이 맛있었다고' 는 '그렇게' 로 대체할 수 있으므로 각각 문법적으로 독립된 문장 구성 요소입니다.
that it was tasty 의 핵심어는 that 이고 '그것이 맛있었다고' 의 핵심어는 '(라)고' 입니다.
좀 더 확실한 결과를 얻기 위해 한국어 문장을 어순을 바꾸지 않고 영어 단어로 바꾸어보겠습니다.
그는 - 그것이 - 맛있 - 었다 - 고 - 말했다
he - it - tasty - was - that - said
한국어와 영어 둘 다 (일반적으로) 문장의 주어는 동사의 앞에 위치합니다. 그러면 위의 뒤죽박죽이 된 영어 문장에서 주어를 동사 뒤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요?
tasty was it that said he
이 문장을 뒤에서부터 읽으면 영어의 어순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ㅂ)
관계 대명사도 마찬가지입니다.
the picture (which you (were trying to buy yesterday))
(너가 (어제 사려고 시도하였)던) 사진
한국어에 관계대명사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어순은 여전히 위의 사실들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핵심어 which 와 '던' 은 역시 앞과 뒤에 위치합니다.
또한 '어제 사려고 하였' 도 '그랬' 으로 대체할 수 있으므로 문법적으로 개별적인 문장 구성 요소인데 이것을 어순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영어로 바꾸어보겠습니다.
어제 - 사려 - 고 - 시도 - 하였
yesterday - buy - to - trying - was
역시 뒤에서부터 읽으면 영어의 어순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 *
지금까지 한국어와 영어의 어순상의 공통점을 간단하게 알아보았습니다. 각각의 언어의 고유한 특성 때문에 위의 원리가 어떤 경우에도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공통성을 인식하는 것은 영어뿐만 아니라 어떤 언어라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