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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성 형성의 기본은 가장 인간적으로 보았을 때 첫번째로 '방문'에서 이루어진다. '만남'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만남은 방문하지 않으면 생성되지 않는 명제다.
게다가 이것이 게임에서 발전한 하나의 세상이라는 것을 가정하면, 나와 관계성을 이룰 생명은 보통 폐쇄적인 공간에 들어차 있을 공산이 높다. 따라서 나는 판매처의 영업사원처럼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여러 부류를 만나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 지금으로선 그게 옳다.
하지만 어떻게?
내가 어딜 가서 뭘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다. 게다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정보 수집을 하자니 내 처지가 너무 빈약하다. (마담에게 들은 말이지만, 사념체로서 이 정도로 여행한 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한다. 마가츠히를 뺏긴다나 뭐라나.)
언제까지 마담이 알선해주는 사람이나 만나야 된단 말인가. 인연이란 내 개인적인 판단으로 맺어야 만족스러운 법이다. 아무리 불쌍하더라도 남이 걸러준 인연 따위나 맺고 있으면 온실 속의 화초일 뿐 아닌가?
따라서 나는 이 BAR에서 일단 바깥쪽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야 될 필요성이 있다.
"그래서 어딜 가겠다고."
"으...음..."
"바깥에 나가봐야 요 앞에 있는 에리고르한테 한 창에 찔려 죽을거야."
"그...그래도 나가볼 거야."
마담은 혀를 차며 날 바라보더니 몸을 돌려 진열대 쪽으로 가 버렸다. 곧이어 빈정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꼴에 남자라고 자존심 세우는 것 좀 봐. 부터 시작해서, 어디 나돌아다니다 콱 죽어도 몰라. 같은.
다행히 그녀는, 내가 사념체라 해서 무시하는 일은 없었다. 마음을 맡길 만한 악마다. 그녀는.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BAR의 문을 열었다. 다시 강렬한 빛이 눈을 찌른다. 뒤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절대로 긴자 바깥으로 나서선 안돼! 지하도 밑에만 있어야 한다고!"
나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바깥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걱정해주는 악마라니. 이것 참 핀트가 안맞는걸.
뭐 그것보다도 맨정신으로 여길 온 건 아니니까, 깨어 있는 상태에서 보는 이 세상은 어떤 느낌일까.
나는 기대감에 부풀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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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뭐 별다른 지하상가와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사람이 없었고. 상가의 문에 왠 문양이 그려져 있다는 점 정도였다.
보아하니 이 상가는 활성화되어 있었고, 그렇다면 이 부근의 정보를 얻기 위해선 그런 상가 안의 생명들에게 묻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약에 토박이라면 이 부근의 정보야 정통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그래도 나름대로 알고 있는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뭐 그 와중에 난관 정도야 존재하겠지만.
"그러고 보니 저 에리고르는 이 곳의 파수꾼이라도 되나... 왜 저렇게 자리만 지키고 있담."
저렇게 오랜 시간동안 제자리에 있다면 이 부근에 대해 아는 것도 많을텐데. 하지만 묻자니 저 사람 분위기가 너무 호전적이고.
나는 그런 것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근처의 상점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일단 어딜 들어가 봐야 할까.
뭔가를 파는 곳에 들어가볼까 했지만, 지금 나는 무일푼. 물건도 안 사는 파렴치한 녀석에게 정보 따윌 나눌 이유야 없을 것이다. 따라서 돈 생길 때까지 상점은 패스.
그 다음은. 쥬얼리 샾. 샾(SHOP)? 그렇다는 것은 여기도 상업의 현장이라는 말 아닌가. 따라서 뭔가 건덕지가 생길 때까지 여기도 패스.
상점엘 들어가기 어렵다면 상점가로 나온 의미가 없어지는데. 나는 잠시 침울해졌다. 가진 것 없는 사념체라는 현실은 꽤나 비참하구나.
잠시 마담에서 돈을 빌릴까 생각도 해 봤지만. 그건 정말로 파렴치한 행동이 아닌가. 돈을 빌리다니. 고작 목적지 없이 흘러들어온 사념체 주제에.
기분이 침울해지자 걸음에도 힘이 없어졌다. 발소리를 내며 터벅 터벅 잠시 걸어갔다. 한동안 걸어갔을 때였다.
갑자기 지나치는 문에서 따뜻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 따뜻함에서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마치 내가 알고 있던 단어-태어남-와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니, 굳이 덧붙이자면 접두사로 '새로' 정도인가?
아래로 비치는 따뜻한 에메랄드 빛. 나는 직감적으로 이곳이 게임 속에 등장하는 회복소임을 알아차렸다.
"그렇다는 것은, 이곳에선 최소한 충돌이라는 것은 없지 않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으로, 회복소에서는 별다른 이벤트가 있지 않은 다음에야 싸움이란 있기 어려운 법이다.
나는 아직도 온기가 느껴지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곧이어 빛으로 충만한 세계가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로 왔지요?"
갑자기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나는 빛 사이에서 눈을 비비며 목소리의 발원지를 찾았다. 주변은 온통 녹색의 샘으로 가득했다.
"이곳은 회복소입니다. 당신은 체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어째서 여길 찾았지요?"
목소리는 샘의 가운데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빛 때문에 번쩍이는 시야를 회복하려 애쓰면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향했다.
"아, 안녕하세요. 전..."
"사념체로군요. 드문 일인데요. 보통은 상처입은 악마가 흘러들어오는 법인데."
"뭐. 사실은 상처를 치료하려는 목적이라기보다 이 곳이 좀 더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들어온 것이긴 합니다."
이제야 그녀가 시야에 제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꽤나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뭔가를 덮어쓰고 있어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날 보며 살짝 웃고는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고정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는 사념체는 처음 보는군요. 그대의 눈을 빼앗아간 것은 모두가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거대한가요?"
하기사, 사념체의 탄생은 집착이 처음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기분 나빠할 것은 없어요. 단지 당신의 존재가 신기했을 뿐이니까. 자, 무슨 목적으로 온 것인가요?"
"전... 당신이 보시다시피 사념체입니다. 사념체로 태어났으면 그에 걸맞도록 한 가지만을 생각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운명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세상에서 여러 가지 답을 찾도록 만들어놓고 말았지요. 따라서 전 지금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그래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며 내가 할 만한 것을 선택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여기 저기 답을 찾으러 돌아다니자니 제 처지가 너무 빈약하다보니 그게 좀 어렵군요. 사실 이 건너의 BAR에서 고정으로 신세지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만. 바깥으로 나온 것도 처음이라면 처음입니다.
당신이 이곳의 주인이라면, 제게 어떤 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헤매던 시간이 너무 길어서 말입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이런 세상이라면 오히려 사념체 쪽이 행복할 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그 행복을 거부해 버렸군요.
수태 이후의 세상은, 목적을 가지지 않는 쪽이 더 즐거워요. 지금에 와서 목적이란 것은 그 무게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지요."
"..."
안다. 다들 무언가 자신의 입장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라고 들었다.
"사념으로만 존재하는 당신이 목적을 가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현재가 아니에요. 당신은 실재(實在)하지 못하니까요.
문제는, 실제할 수 없다 하더라도 무게는 그대로라는 점이지요. 당신은 어쩌면 괜한 짐을 지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실재할 방법이 전혀 없나요?"
"들어 본 적이 없군요. 나는 실재를 잃어가는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일을 하는걸요. 이미 실재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릅니다."
이렇게 좌절. 나는 망연자실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와 버린 이 세계.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몸. 그리고 탁상공론에서 끝나는 목적. 마지막으로, 현실이 아닌 꿈.
사실은 나는, 어쩌면 꿈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서 '팟' 하고 깨어나 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건, 너무 사치스러운 생각일까?
난 이미 실재를 잃어버렸다고. 그녀는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내 존재가 완전한 부정에 휘말려 버렸다는 사실이, 너무나 괴로웠다.
"다만. 완전한 실재를 지워 또 다른 실재를 만드는 곳이 존재하죠. 그 곳은 가 봤나요?"
나는 힘 빠진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것은 또 다른 희망을 위한 스무고개인가? 그러나 나는 아는 것이 없다.
"그것은 이 세계 어디에나 존재해요. 바로 이 근처에도 하나 있죠. 그것은 바로 사교의 관이라고 해요."
사교... 邪敎? 社敎? 蛇敎? 대체 무엇을 뜻하는 거지?
"이 문을 나가 오른족 문으로 나가서, 근처를 조사하면 보랏빛 분위기가 새어나오는 곳이 있을 겁니다. 그 곳을 찾아가 보도록 해요."
"거기에 사교의 관이라는 것이 있나요?"
"당신이 찾는 해답은 아니지만, 내가 줄 수 있는 해답은 그것 뿐이예요. 꼭 거기에 당신의 해답이 있길 빌겠어요."
"..."
그녀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수그렸다. 모든 볼일이 끝났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는 모든 대화를 교환했고,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어...언제라도 상처를 입으면 찾아오겠습니다. 그 때에도 도움을 주시길 빕니다."
나는 몸을 돌렸다. 그 때였다.
"뒤를 돌아보지 말아요. 그리고, 사교의 관에서 힘을 뺏기지 않도록 조심해요."
그녀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묘한 중압감에 시달려 나는 그대로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걸어나와야 했다. 아마도 그것은 돌아서서 보이는 또 다른 단면을 보이기 싫은 그녀의 의지의 무게 같은 것이 아닐까.
어쨋든 나는 간신히 붙든 다음 목적지를 향해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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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을 종교로 가진 놈들이건, 모여서 친분을 다지는 놈들이건, 간사한 놈들이건 뭐 어쨌든 사교라는 것은 꽤나 어감이 그로테스크한 것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교의 관 문 앞에서 나는 꽤 싸늘한 분위기에 약간 몸서림을 쳐야 했다. 자세히 들어보면 왠지 바람을 타고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오컬트한 그런 느낌이 자꾸 든다.
그래서 나는 들어가기에 앞서 한참을 망설여야 했다. 안그래도 힘이 없는 처지 아니던가.
무엇보다 실재를 지워 실재를 만든다고 하는데, 나는 원래 실재하지 않는 몸이 아닌가? 그럼 원래부터 최적의 만들기 재료일지도 모른...
"틀려. 없기 때문에 넌 애초부터 재료가 될 수 없다네."
흠칫!
나는 잽싸게 몸을 돌려 목소리로부터 최대로 멀어지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뭐 이런 곳에서 갈 데가 어디 있다고 그렇게 과격하게 움직이지? 이 사교의 관에 볼일이 있는 것 아닌가? 사념체가 올 만한 곳은 아니지만."
말하는 자는 다행히도 굳이 날 쫒아와서 해치려는 빛이 없었다. 겁을 먹고 몸을 날린 행동이 무색해지는 상황이었다.
나는 뒷통수를 긁으며 지금 말하고 있는 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창을 들고 있는 무사 같은 자였는데, 무언가 들어있는 큰 자루를 들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이 곳에 볼 일이 있는 악마지."
"악마라구요?"
"음. 난 이 곳에서 새로 태어날 운명을 가지고 있다네. 아마 뒤돌아 나갈 때는 새로운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기대중이지."
"그...그렇군요."
"볼 일이 있다면 들어가봐야지. 들어가세나."
"...먼저 들어가시죠."
"음? 뭐... 그러지."
악마는 사교의 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안쪽으로 보이는 실내는 어두컴컴하고 음침했다. 마치 그래... 이건 죽음의 빛깔이다. 안그래도 주변에 은은한 보랏빛이 감도는 것이 죽음을 상징하는 듯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얼마간 걸어들어가자, 신기하게도 실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넓이로 이루어진 공간이 보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달이 떠 있었다.
"..."
달? 실내에서 달이라고? 천장에 구멍이라도 나 있지 않은 다음에야... 저건 인테리어의 일환인가?
생각해보면 달은 음기. 역시 죽음을 상징하는 음기로 가득한 것이다. 아까부터 주변은 대부분 음기의 분위기로 가득했다. 회복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겁먹은 채로 주변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에, 갑자기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악마인가? 대체 무슨 일로 왔는가."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기 위하여 왔소."
"그래? 흠. 악마합체를 바라고 있는 건가? 헌데, 네놈의 오너는 어디 있지? 그리고 합신의 매개체가 사념체인가? 사념체가 합신의 제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일텐데."
그러면서 날 쳐다보는 저 남자. 나는 급격히 내려가는 내 주변의 온도에 잔뜩 겁을 먹었다.
그건 그렇고, 합신? 저 악마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태하기 위해선 제물이 필요하단 말인가? 뭔가 으스스한 말이었다.
"물론 알고 있소. 오너 따윈 없고, 내 재료는 저 사념체가 아니고 이거요."
그러면서 악마는 아까부터 짊어지고 있던 자루를 내려놓고 그 안에서 뭔가를 안아들었다. 그것은...
악마(?) 였다. 아니. 악마인가? 여성형인데? 하긴, 마담도 여성형 악마였지. 어쨌든 그렇다는 것은 저건 악마인 것이다.
멍청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옆의 남자가 묘한 표정으로 웃기 시작했다.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
"호오. 오너도 없는 주제에 힘을 위해서 스스로 악마를 사냥해 가져오다니. 너도 참 묘한 악마로군."
악마를 안아들고 있는 악마도 따라서 웃었다. 자기와 같은 악마를 사냥한 그 악마가.
"이 세상은 힘이니까. 동료라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오."
"뭐. 그렇지. 그렇다곤 해도... 미안하지만, 그 합신의 결과로 네 정신이 살아남을지 아니면 거기 그 악마의 정신이 살아남을지 장담할 수는 없어."
"흐. 설마, 힘이 강하다는 것은 또한 정신력도 강하다는 뜻이 아니겠소? 내게 사냥당한 이 악마가 나보다 정신력이 강하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운데."
남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다만 예의 그 음산한 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제단 같은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여성형 악마를 안아들고 있던 악마는 고개를 끄덕이곤 그 제단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거기 사념체."
나는 흠칫하곤 고개를 돌렸다. 그 남자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이 처음인가 본데, 이제 재미있는 광경을 보게 될거야. 저 건방진 악마가 어떻게 되는지 잘 보라고."
제단은 커다란 기둥 두 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창을 든 악마는 그 기둥의 한쪽 끝에 기절한 악마를 내려놓고, 다른 쪽 끝에 올라섰다.
"다 되었소!"
"좋아. 네놈의 결과물에 행운이 있길 빌지."
말이 끝나고 남자는 무언가 레버 같은 것을 확 내렸다. 그리고 내 눈앞에 나타난 놀라운 장면은, 그래. 그건 확실히 놀라운 것이었다.
양 제단에 있던 악마가 입자 같은 것으로 분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입자들은 공중에서 서로 엉겨붙고 있었다.
"저...저건..."
"그래! 최강의 악마로 태어나기 위한 필수조건! 이것이 바로 악마합체인 것...?"
갑자기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경고음이 마구 들려오면서 천둥이 치고, 주변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이건 마치 그래, 긴급상황 같은 것이다.
"으악! 안돼! 이런 일이?"
그리고 갑자기 눈 앞이 새하얗게 되었다. 거대한 힘이 이 공간을 후려친 것이다. 나는 그 거대한 힘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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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눈을 떴을 때는, 아까의 그 경천동지할 분위기는 모두 사라진 뒤였다. 거대한 힘 앞에서 미물은 분위기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던데, 난 확실히 미물인 모양이다.
"정신이 들었나."
"?"
나는 몸을 일으켜 목소리를 향해 몸을 돌렸다. 거기에는 아까의 그 음산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특이한 것은, 그 옆에 아까는 볼 수 없었던 젤리 덩어리가 놓여 있는 것이다.
"...이건?"
"실패의 결과물이라고 해야 되나... 젠장. 어쩌다 한번 나타난다는 합체 실패가 하필이면 지금 일어날 줄이야. 이건 슬라임이다."
"으어어어."
슬라임? RPG에서 보통 초반 레벨업의 제물에 희생되는 그 젤라틴 생명체를 말하는 것 아닌가.
확실히 그 녀석에게는 아까의 창 든 무사 같은 위압감은 없었다. 그렇다곤 해도 나 같은 사념체로서는 상대할 수 없는 괴물이겠지만.
잠깐, 그러고보니 아까의 그 상황은 어떻게 정리된 거지?
"아까의 그 악마들은 어떻게 된 거죠?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는데."
남자는 그 말을 듯더니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옆의 슬라임을 가리켰다.
"그 결과물이 이거야. 둘이 합쳐서 이게 된 거라니까?"
에엑? 나는 그 슬라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무사 같은 악마와 아름다운 여성형 악마가 합쳐져서 고작 이런 괴물로 다시 태어났단 말인가?
"뭐 사실은 결과물이 이게 아니지만, 재수없게 합체가 실패해버렸어. 그래서 이렇게 된 거야."
실패? 무슨 말이지?
"뭐 그러보고니 내 소개를 하지 않았군. 나는 사교의 관을 운영하고 있다네. 두 개체를 하나의 개체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는 탄생의 관이라고도 하지."
"그 탄생의 결과물이 슬라임이라고요?"
"아니야 이놈아. 그건 실패작이라니까."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슬라임만 바라보았다. 실재를 지워 실재를 만든다더니, 이런 걸 말하던 거였군. 이 회복소의 여자가 날 합체 제물로 바쳐버리려던 속셈인가?
"근데 사념체가 여길 무슨 일로 왔는가. 넌 합체 재료로도 쓸 수 없는 몸인데."
"음? 쓸 수 없다고요?"
"그래. 넌 실체가 없이 관념만으로 존재하는 덩어리다. 거기에서 추출해 낼 건덕지가 있을 리가 없잖나.
관념이란 건 추출해 낼 필요조차 없는 것이고. 그리고 네가 가지고 있는 마가츠히래 봐야 병아리 눈물만큼도 없는데 말이지.
솔직히 그런 건 안타까워서라도 뺏을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지."
"그렇군요..."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잡아먹힐 위험은 없다는 의미 아닌가.
"그러고보니 넌 좀 특이한 사념체로군. 사념체 주제에 돌아다니고 있다니."
저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본 말이 아닌가. 나는 한숨을 쉬었다.
"뭐. 사념체로서 살도록 내려진 운명이 좀 비켜간 모양입니다. 뭐 그래서 불행하게도 괴롭게 생활하고 있습니다만."
내 말을 들은 남자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악마도 생각없이 사는 녀석이 대부분인데 사념체가 생각이라. 그게 왜 불행인가, 축복일 수도 있는데."
"내가 뭔가를 이룰 수 있는 몸이 있다면 그게 축복이겠지요.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념체에게 그것이 왜 축복인가요."
"아. 그렇기도 하겠구먼. 자네는 그러니까 생각하는 것은 많은데 사념체라 이룰 수 없는데에 대해서 자괴감을 가지고 있군."
"짧게 하자면 그렇죠. 어쨌든 그래서 답을 찾아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다 회복소에 이르렀는데, 거기서 여기에 가 보라고 하더군요."
"그랬군. 하지만 뭐 여기라고 답을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 회복소의 여자가 뭐라던가?"
"자신은 실재를 잃어가는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지만, 당신은 완전한 실재를 새로운 실재로 다시 태어나게 해 준다고 하더군요."
"쳇. 웃기고 있군. 실재에서 실재를 만든다는 점에선 그 여자나 나나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래서, 그 여자는 널 책임져 줄 수 없다고 했나 보군."
"네."
"여기라고 뭐 다른 줄 알아? 뭐 그 여자의 말이 맞다고 쳐.
안그래도 내가 내세우고 있는 모토가 탄생의 관이지. 하지만, 난 없는 실재를 만들어주는 것 따윈 할 줄 몰라.
사념체란 원래부터 실재가 없는 형태란 말이다. 넌 어쩌다가 거기에 정신이라는 물건이 깃든 모양이지만.
탄생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블럭놀이라고도 할 수 있어. 무언가 소스라는 것들이 잔뜩 모여 이루어지는 거란 말이다.
하지만, 사념체라는 건 애초부터 재료가 없어. 말했듯이 관념으로 이루어진 거라고."
"관념. 관념이라는 건, 결국 나는 뜬구름 같은 존재라는 건가요?"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렇지. 관념이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거야.
왜냐하면 그 자체가 허공에 뜬 꿈 같은 것이거든. 觀念. 생각을 본다. 넌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냐?
생각이라는 건 눈에 보이지 않아. 그런데 관념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이상한 것 같지 않나?
결국, 존재하면서도 설명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관념이야. 그리고 바로 너. 사념체가 이 관념에 가장 근접하고 있는 것이지."
"결국 나는 깊게 파고들어가면 존재할 수 없는 껍데기일 수밖에 없군요."
"해답은 그거지."
나는 주저앉았다. 갑자기 어깨에 매달린 의지라는 실들이 전부다 끊어진 꼭두각시가 된 것 같았다.
나는 무너지듯. 그래,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사실 껍데기라는 타이틀조차 나에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재가 없다는 것.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도 다르지 않다.
사념. 죽은 생각. 생각이 모여서 만들어진 덩어리. 생각이란 것이 남들의 눈에 보일 리가 없는 것이고.
결국 나는 원래부터 없어야 하는 것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울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넌 지금 남들에게 보이고. 네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고 있지."
"?"
"잘 생각해 보게나. 원래 없는 것이 모여봤자 남는 것은 없지. 하지만 넌 지금 자리하고 있지 않나?
무언가 널 구성하고 있는 것 중에 실재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증거다. 다만 그게 무엇인지 지금은 모른다는 사실이야."
아마. 너의 해답은 바로 그 무엇에 존재할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것이 너에게 길을 알려주지 않을까."
"그걸 어디 가야 찾을 수 있죠? 대체 어디에?"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군.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것들은 사념체를 그 하나의 존재로 생각하고 있을 뿐 연구하려고 들지는 않아. 그 어디에서도.
따라서, 네 길은 너 스스로 찾아야 한다네. 누구도 알려줄 수가 없어. 왜냐하면 아무도 모르거든. 결국 네가 납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게 여기서의 해답이 되겠군."
나는 고개를 다시 숙였다. 내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난 결국 사념체야. 누구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왜. 답답한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누구도 눈을 맞추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우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난 한 자리를 떠나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결국 삶이라는 건 다 그런 게 아닐까. 말이야 해 줄 수 있지만 누구도 자신과 동일한 길을 걸어갈 수는 없다네. 결국 다른 것이란 말이지.
나는 실재를 합쳐 실재를 만들지만, 그 결과물은 언제나 '또다른' 것이야. 절대로 이전의 것에 대한 연장선이 아니야. 같을 수가 없다는 말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나? 결국 해답이라는 것은 그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단 말이지. 만약 사념체를 깊이 연구한 악마가 있어서 너에게 이렇다고 말해준다고 치자. 그렇다고 그게 해답이 될 것 같나? 아니야. 왜냐하면 그 악마는 사념체가 아니니까.
사념체가 사념체를 연구했다면 거기에 근접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사념체는 그럴 수가 없지. 그럴 수 없게 한 가지 생각만 하도록 존재하고 있거든. 그런 면에서 넌 특별한 것이다. 내가 볼 때는 그것은 축복이라네. 네 스스로 해답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까."
"...!"
"그러니 그렇게 우울해하지 않는 것이 좋을거야. 네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이 남아있으니까.
딱 한 가지의 어드바이스를 해 주자면.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악마와 사념체를 만나 그들에게도 해답을 물어봐라.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왜 존재하는 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는거다.
그리고 네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려. 그러면 네 길도 보이겠지. 내가 줄 수 있는 해답은 그것이로군."
결심은 굳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여행이 필요하겠군요. 한 자리에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 뭐 떠나기 전에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찾아와도 좋다네. 잘 가라고."
내가 지금 마담의 바에서 계속 있다고 해서, 어떠한 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명제는 세상 여기저기에 산재하고 있고, 결국 그 모든 답들을 전부 거쳐야 내가 원하는 답 하나를 건져낼 수 있는 것이다. 안전만이 길은 아닌 것이다.
마담과 헤어지는 것은 섭섭한 일이지만, 나는 그 답을 찾아야 할 의무가 있다. 내가 사념체이면서도 그런 의지를 가지게 된 것도, 어쩌면 그런 책임을 지우기 위한 것이 아닐까.
떠나야 한다. 세상의 수많은 명제와 부딪혀 봐야 하는 것이다. 마음을 정한 나의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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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의 컴백이군요.
너무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뭐 기다리시는 분도 없지만...-_ㅜ
대학교라면 일단 놀아야 되는데 늘어나는 건 과제와 술자리 뿐이니...-_ㅜ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써야죠 뭐...;;
다음엔 전투신이라도 한번 넣어 봐야겠네요.
그리고 제 글에는 왜 항상 리플이 별로 없을까요. 흑흑.
첫댓글 오오. 사념체 만세. 모두들 리플 팍팍 달아 주세요!
사념체는.......윌오위스프였다!!!(퍽)
재밌습니다! 사념체가 주인공이라니 독특하네요 ~_~. 그건 그렇고 그 무사 악마 상당히 불쌍하군요. 더 강해지려고 고생해서 합체 했더니 슬라임으로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