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희망 돓씨(토종土種)
우리는 한바탕 총소리 없는 전쟁을 치뤘다.
그것은 바로 씨앗전쟁이었다.
국내 1위의 종묘회사인 흥농종묘가 1억 달러에, 2위인 중앙종묘가 1800만 달러에, 멕시코계 다국적 기업 ‘세미니스사’로 넘어 갔으며, 3위인 서울종묘도 스위스계 다국적 기업인 ‘노바티스사’로, 청원종묘는 일본의 ‘사카다사’에 넘어가고 말았다.
한국의 IMF를 틈타 세계시장을 무대로 흡수, 합병을 계속해온 미국, 스위스, 일본 등 다국적 거대 자본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세미니스사’는 경기도에 1만평의 부지를 150억원에 매입, 종자가공 처리시설을 해놓고 본격적으로 종자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컴퓨터 업체 “한글”이 넘어 갈 때는 다행히 범국민적 지키기 운동이 일어나 지켰으나 그에 못지않게 절박한 우리의 식량종자가 외국기업의 손에 들어가는 데는 아무도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년간 1500백억 원에 이르는 국내 종자시장의 7할이 외국기업에 넘어가버린 것이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씨앗에 유전자 조작처리를 하여 1회용 씨앗으로 개조해버리면 이듬해부터는 종자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매년 외국기업에서 종자를 구입해야만 기본 먹거리인 농산물의 재배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외국 종묘회사들이 이 방법을 전략적 무기로 들고 나온다면 매년 그 종묘회사의 종자를 구입하지 않고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먹거리를 이용한 전략화가 가능한 것이다.
1999년 기준, 우리 종자은행이 보유한 토종종자는 200여 종에 불과하다.
일본의 1,000여 종, 미국의 8,600여 종에 비하면 우선 양적인 면에서 경쟁이 안된다.
연구 인력에서도 미국의 경우 우리의 종자은행과 비슷한 유전은행에 종사한은 연구 인력이 500여 명인데 비해 우리는 10여 명 남짓한 인력이며, 예산도 일본의 40분의 1밖에 안되는 불과 5억 원으로 우리의 종자를 보존하는 작업을 해온 것이다.
농진청 산하 단체인 농업과학기술원의 조사에 따르면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1985년부터 1993년까지 8년 동안 토종작물의 74%가 집중 멸종된 것으로 밝혀졌다.
종자전쟁의 역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문익점의 목화씨 반입부터 종자전쟁이며, 100여 년 전, 1890년에 미국의 최대 육종업체인 뉴욕 피터 핸더슨사에서 배재학당 등 기독교 재단학교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면서까지 우리나라의 잔디씨를 소쿠리채 인천항을 통해 반출해갔고, 이를 개량을 거듭하여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금잔디로 만든 것을 비롯하여, 1970년대 중반 미국의 식물학자들이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허락 하에 전국의 산야를 1년여에 걸쳐 샅샅이 뒤져 261종의 종자를 반출해간 것도 제 2의 문익점과 같은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 속내를 알아채지 못하고 또 토종의 세계적 상품화란 인식자체가 무지한 정부는 무슨 영광된 일이라도 되는 양 반출에 예산과 협조를 아끼지 않았으니, 강도질에 협조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제주도의 구상나무는 1917년 미 하버드 대학 부설 아놀드 수목원의 직원이 미국으로 가져가 지금까지 15개 품종으로 개량을 거듭하여 세계적인 ‘크리스마스 트리’로 변신시켰으며, 라일락은 1947년 미 뉴햄프셔 대학 적십자협의회의 한 직원이 한국에서 근무할 때 북한산 백운대에서 털 개회나무 씨앗 12개를 채취하여 그 중 7개를 발아시켜 개량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개량품종을 ‘한국에서 온 아가씨’(미인)라는 애칭로 “미스킴 라일락” 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현재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정원수가 되어 있다.
뉴질랜드는 중국의 야생 다래를 가져다 개량시켜 ‘키위’ 란 이름으로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 패랭이꽃은 전 세계 어버이들의 가슴에 달아주는 ‘카네이션’으로 둔갑한 지 이미 오래이다. 순결의 상징인 ‘흰 백합’ 도 네덜란드에서 우리의 ‘하늘말나리’를 가져가서 개량한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권장 재배되고 있는 밀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앉은뱅이 밀이 1905년께 일본으로 유출되어 ‘달마’(다루마)로 변신하여 마침내 녹색혁명의 바람을 일으킨 신품종 ‘소노라’ 가 탄생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토종 종자 본존을 위하여 과연 얼마나 노력했는가 자문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 미국에서 우리나라의 토종 작물이 미국 상품명으로 개량되어 판매 중인 것이 163종이고, 미선나무, 노각나무, 산딸기나무, 느티나무 등 25종의 한국 토종식물을 개량하여 육성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한국의 토종 동물들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개량종이나 수입종에 밀려 거의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가 희망을 걸어도 좋을 것은 바로 우리의 토종 약초 분야이다.
나무나 꽃들은 거의 관상용으로 개량해서 육성하면 상품가치를 극대화 할 수 있지만, 그 땅의 특수한 환경과 성분으로 자라는 약초들은 외국의 토질과 환경조건으로 흉내 낼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자원으로 한 다방면이 투자와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제 2의 녹색혁명이 가능하다.
이미 알려진 대로 산삼, 인삼, 홍화씨 등 중국이나 그 외 나라들의 땅에서 자란 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대만산 홍화씨의 골절 치료 효과는 한국 토종의 10분의 1 수준이며, 미국 홍화씨는 아예 효과가 없다. 미국 산삼은 한국의 무우 수준이다.
은행잎도 마찬가지다. 독일에서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슈바베’라는 제약회사에서 국제특허를 얻기 위하여 제출한 한국은행잎을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혈액순환 개선물질인 ‘징코프라본 글리코사이드’ 라는 성분이 중국과 일본의 은행잎에 비해 부려 20배나 더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제약회사는 일약 유명해졌다.
우리의 토종이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천혜의 보고로서 토종의 중요성을 정부와 기업 및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을 때만이 우리에게 크나큰 보물 중의 보물로 보일 것이다. 그간 양적팽창에만 치중하다보니 질적 소중함을 등한시해 왔는데 이제는 인식을 달리해야 할 시점에 와있는 것이다.
모두 빼앗기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