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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하늘 원문보기 글쓴이: 북두 4번 별/ 신순말
김영철 시인의 『비 온 뒤 숲속 약국』을 읽고
1
시인께서 반갑고 감사하게도 멀리 있는 온라인 글벗도 지인이라 여겨주셔서 새로 내신 시조집을 보내주셨습니다.
사진을 곁들인 시집을 읽으며 시조 못지않게 사진도 내용에 걸맞게 짝 지워놓으심을 깨닫습니다.
'시인의 말'에서 밝히셨듯이 단시조, 연시조, 홑시조, 양장시조, 사설시조, 그리고 그런 형식을 두루 엮은 혼합시조 등의 여러 시도로 엮은 '동시조집'이라는 말씀을 읽고서도 늘 익숙해져 있는 형식의 틀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스스로를 느꼈습니다.
생소하게도 느껴지고 시조인가, 아닌가, 읽으면서도 갈등하는 마음이 생겨 읽는 동안 시 읽기가 조심스러워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습관처럼 시조의 형식을 떠올리며 읽다가, 두 번째 읽을 때는 동시를 읽는다는 마음으로 내용에 치중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읽으면서는 또 어쩌지 못하는 병처럼 분석(?)하는 스스로를 봅니다.
제가 극단적으로 음수에 따른 음보만을 우선하여 '정격이다', '아니다'를 판단하지는 않으나, 생각했던 시조의 형식과는 다른 파격을 많이 느꼈습니다.
종장만 읊는 듯한 '홑시조(절장시조)'와 단시조에서 한 '장'인 '중장'이 빠지고 두 '장'(초장,종장)으로 읊는 '양장시조',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보편적인 3장6구12음보의 '단시조(평시조)', 단시조가 여러 수인 '연시조'는 수이 읽었으나, 파격이라 느껴지는 혼합시조를 읽을 땐 '홑시조+단시조'의 구성인지, '양장시조+양장시조'의 구성인지 솔직히 구분이 쉽지 않았습니다.
'동시조'가 아닌 그냥 '동시'로 읽으면 안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과 여러 형식을 시도하셨다는 말씀을 읽으며 지금 이 시대에서 시조를 쓰는 우리들이 ‘시조를 지키고 발전시켜나가는 방법을 어떻게 찾아야 옳은가?’에 대해 새로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2
위에서 세어도 그 별,
거꾸로 세어도 그 별,
작아서 더 아름다운
안아주고 싶은 저 별,
- 북두칠성 4번 별 <부분>
'시하늘'에서 저는 '북두 4번 별'이라는 별칭을 썼습니다. '북두칠성 4번 별'을 줄여 붙인 이름이지요. 그러니 이 시조를 보고 제가 얼마나 즐거웠을지 상상이 되시겠지요?
저 별은 '문곡성'으로도 불린다고 들었습니다. 복과 문장을 관장하는 별이라고도 하지요. 그냥 끌려서 붙인 이름이었는데, 무언가 별이 저를 끌어당긴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나중에 들었습니다.
국자를 닮았다고 치면 네 번째 저 별은 자루와 바가지를 잇는 자리에 있는 것이지요. 자루 긴 바가지 혹은 자루가 긴 국자라면 북두칠성의 4번 별은 국자가 국자의 역할을 하고 자루가 자루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중간에서 힘을 버텨주는 것이 아닌가 싶고, 가장 작게 보여도 엄연히 존재하는 별로 보였기 때문에 한때 저 별로 인해 힘을 얻던 때가 있었습니다.
초장과 중장은 제가 별을 보며 생각했던 부분과 일치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불만 싸는 해님은
똥구멍 다 헐겠다.
매미 소린 따갑고
축 늘어진 사람들.
오줌은
언제 누실까?
너무 오래 참으신다.
움직이지 않아도 땀이 송송 돋는데
여름휴가 상의하는지 안방이 시끄럽다.
아차차!
불똥 이리 튈라
얼른 책이나 읽어야지!
- 불똥 <전문>
평시조 2수를 엮은 연시조 '불똥'은 종장의 연갈음을 달리 했지만 누가 보아도 시조형식을 알 수 있습니다.
예뻐도
예쁘지 않아도
공평하게
젖을 준다.
- 비와 엄마 <전문>
이 시는 종장 하나만이 보이는 홑시조(절장시조) 이지요.
단호박,
돼지호박,
애호박,
청둥호박,
먹는 건 적게 먹고 일은 참 많이도 하지!
죽 되고
부침개 되고
볶음 되고
약이 되어
애부터 할머니까지 모두 돈을 벌어 오지!
- 알뜰 가족 <전문>
이 시는 양장시조가 2수 모인 연시조로 보입니다.
개미 나라 여왕님이/ 일꾼들을 모아놓고 //
방심하면 코 다친다고/힘을 주는 말끝에//
"사람들 발소리 들리면 개똥 옆으로 피하라!"
- 안전 교육 <전문>
이 시는 행 갈음, 연 갈음 그리고 따옴표까지 있지만 단시조 형식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형식에 관계없이 시인의 시들을 보면 동심의 맑음을 느끼게 됩니다.
시조 '불똥'에서는 뜨거운 햇볕과 눈부신 햇살에서 시인이 상상하는 똥 누는 해님, 또 오줌 누는 해님은 아이 마음으로만 보이는 시상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온 세상을 고루 적시듯이 그런 비를 바라보며 자식들에게 고루 사랑을 주시는 엄마의 모습을 봄은 또 어른의 눈이지만, 그런 엄마의 사랑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시인의 고운 마음이 읽힙니다.
시조 ‘알뜰 가족’은 호박의 이름을 죽 불러주며 생김새와 크기와 색깔, 쓰임새는 달라도 모두가 귀한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동시입니다. 그리고 호박에서 연상되는 아이(애호박), 어른(청둥호박)도 그러하고, 못생김의 대명사인 '호박'을 알뜰한 존재로 격상시킨 감성이 읽는 이를 즐겁게 합니다.
시조 ‘안전 교육’에서 급하면 개똥 옆으로 피하라는 여왕개미의 안전교육지도도 익살스럽긴 마찬가지고요.
겨울이 채 가기 전에 오는 봄의 전령, 노란 복수초에 대한 시가 두 편입니다. 복수초란 이름은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있는 이름인데 이 꽃은 '얼음새꽃'이라는 아주 예쁜 우리말 이름이 있습니다.
눈이 얼음처럼 얼어있는 틈에서 노란 꽃을 피우는 반가운 꽃이라는 뜻이겠지요.
꽃가루를 이리저리 옮겨 세상의 꽃을 피게 하는 나비와 벌.
'꽃술을/엄청 좋아하는' 그 도둑은 '예쁜 도둑'임에 틀림없습니다. 시조 '예쁜 도둑'을 읽을 땐 '꽃들에게 희망을' 이란 동화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자연은 세상이고 세상은 자연이라는 시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자식을 예뻐하시며 '내 새끼, 내 강아지'라고 이름 대신 부르시는데, 진짜 개의 이름은 '사랑이'군요. 시조 '이름'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3
비 그치면 건강 위해 약국으로 오세요.
발레리나 잎새들이 춤을 추며 반기고요.
산새 물새 음악회로 손을 잡아 이끌지요.
공연은 늘 열리니까 아무 때나 오세요.
체한 것처럼 답답할 땐 숲속으로 오세요.
바람 소리 물소리로 아픈 데 문지르고요.
더 푸르고 맑아진 산소가 가슴을 뚫어주지요.
비 온 뒤 숲속 약국은 좋은 약이 공짜예요.
- <비 온 뒤 숲속 약국> 전문
비 그치면/ 건강 위해 //약국으로/ 오세요.///
발레리나/ 잎새들이// 춤을 추며 /반기고요.///
산새 물새 /음악회로 //손을 잡아 /이끌지요.///
공연은/ 늘 열리니까// 아무 때나/ 오세요.///
체한 것처럼 /답답할 땐 //숲속으로 /오세요.///
바람 소리 /물소리로 //아픈 데 /문지르고요.///
더 푸르고/ 맑아진 산소가// 가슴을/ 뚫어주지요.///
비 온 뒤 /숲속 약국은 //좋은 약이 /공짜예요.///
- <비 온 뒤 숲속 약국> 전문
비 그치면/ 건강 위해 //약국으로/ 오세요.///
(홑시조)
발레리나/ 잎새들이// 춤을 추며 /반기고요.///
산새 물새 /음악회로 //손을 잡아 /이끌지요.///
공연은/ 늘 열리니까// 아무 때나/ 오세요.///
(단시조)
체한 것처럼 /답답할 땐 //숲속으로 /오세요.///
(홑시조)
바람 소리 /물소리로 //아픈 데 /문지르고요.///
더 푸르고/ 맑아진 산소가// 가슴을/ 뚫어주지요.///
비 온 뒤 /숲속 약국은 //좋은 약이 /공짜예요.///
(단시조)
행(장)의 구성으로 볼 때, 시조로 구분하기가 어려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합시조인지 엇시조인지를 구분하려고 하니, 혼합시조라면 ‘홑시조+단시조’이거나 ‘양장시조+양장시조’로 볼 수 있어야하므로 즉, ‘홑시조+단시조+홑시조+ 단시조’의 구성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연 가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한 장이 다른 장에 비해 길어지는 ‘엇시조’로 보기엔 각 장의 맺음으로 볼 때 무리가 있기 때문에 엇시조는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또한 홑시조로 보기엔 시조 종장의 첫구 3자불변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아 보여 난감했습니다.
장마가 돌아간 뒤 여름방학 시작되고
해님도 산마루에 거친 숨을 내쉬는 오후.
강아지랑 발맞추어 운동 나간 강가에
목말라 지친 풀잎에 물 한 모금 건넵니다.
강아지는 한 발 들고 뱅그르르 돌다 싸고
아이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멀리 쏘는데
키 작은 코스모스 얼굴이 달아오르고
머쓱한 고추잠자리, 날개를 털며 갑니다.
- 오줌 (전문)
장마가/ 돌아간 뒤 //여름방학 /시작되고///
해님도 /산마루에 //거친 숨을/ 내쉬는 오후.///
강아지랑/ 발맞추어 //운동 나간/ 강가에///
목말라 /지친 풀잎에// 물 한 모금 /건넵니다.///
강아지는 /한 발 들고 //뱅그르르/ 돌다 싸고///
아이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멀리 쏘는데///
키 작은 /코스모스 //얼굴이/ 달아오르고///
머쓱한 /고추잠자리, //날개를 털며/ 갑니다.///
- 오줌 (전문)
혼합시조(옴니버스 시조)로 보이는데, ‘홑시조+단시조’의 구성인지, ‘양장시조+양장시조’의 구성인지, 저는 혼란스러워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굳이 분석한다면 양장시조 4수의 혼합시조로 봅니다.
종장의 첫구 3자로 보나, 둘째구의 자수(4~5)로 보나, 또한 내용의 전개로 보아도 그리 보입니다.
하여 저는 아래처럼 이렇게 읽었습니다.
장마가 돌아간 뒤 여름방학 시작되고
해님도 산마루에 거친 숨을 내쉬는 오후.
강아지랑 발맞추어 운동 나간 강가에
목말라 지친 풀잎에 물 한 모금 건넵니다.
강아지는 한 발 들고 뱅그르르 돌다 싸고
아이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멀리 쏘는데
키 작은 코스모스 얼굴이 달아오르고
머쓱한 고추잠자리, 날개를 털며 갑니다.
- 오줌 (전문)
4
어쩌면 정격만을 고집하고 있는 저의 시조쓰기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로 출발된 시조가 파격을 시도한 ‘양장시조’나 ‘절장시조’, 그리고 파격에 파격을 더한 ‘혼합시조’가 시조의 정체성과 발전에 대한 시조시인들의 끊임없는 고민이며 노력임을 유념하고 있지만, 또한 무엇보다 신중해져야 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공부가 적어 적확한 표현을 할 수 없어 갑갑하지만, 어느 유형의 시조를 쓰더라도 시조만의 특징인 형식을 무너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평시조는 3장6구12음보의 격을 누구나 알 수 있게 쓸 것이며, 엇시조나 사설시조 또한 그러합니다.
양장시조도 양장시조의 특징을 홑시조 또한 홑시조의 격을 누구라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지요.
특히 혼합시조에서는 얼핏 독자들에게 자유시와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쉬우므로 시조의 격을 보이기가 더욱 어려운 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각 장을 뚜렷하게 독립시키는 구성에 많은 장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시조의 가장 기본 격인 단시조는 각 장이 독립적이며 또한 각 구도 각 장에서 대구를 이루고, 그러면서도 각 수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성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행 가름이나 연 가름은 시조의 ‘장’과 무관하다고 생각지 않아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시조의 형식을 잃지 아니하면서도 시조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 이는 시조를 쓰는 시인들의 영원한 숙제가 되겠지요.
김영철 님의 동시조집을 읽으며 저는 시조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의 시조를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시인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