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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앙으로 존재적인 구원을 원하느냐?
상황적인 구원을 원하느냐? 이것 참 어려운
싸움이다. 어떤 사람도 물질의 구애를 받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의 상황은 자본주의
문화가 기독교를 썩게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의 존재를 평가하는 기준이 시장적 사고방식이
되었다. 쉬운 예로 BMW 타고 다니는 사람이다
하는 평가이다. 또는 어느 회사에 다니는 누구이다
하는 등이다. 그래서 나는 목회를 할 당시 교인의
직장이나 사업에 대해 일부러 아는 체하지 않았다.
오직 그가 살았느냐 죽었느냐 하는 것만 따졌다.
2. 이 시대의 풍조 속에 제대로 된 신앙을 지켜 나가는
것은 그야말로 오래된 대중가요처럼 ‘홍도야 울지
마라’와 같다. ‘너 혼자 지키려는 순정의 등불’같다.
세상은 지금 백이면 백 다 행동기준은 법이고, 힘은
돈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도 옛사람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 지금 개척교회의 목사들의 하소연이
결국 돈이다. 기도로 하나님의 영광 운운하지만
딱 세 마디다. ‘아빠 돈’이다. 땅의 법은 율법이요
땅의 보물이 돈이기 때문이다. 그 힘에 영향을 받지
않을 육체는 없다. 돈이 최고 권력이 되고 말았다.
3. 그러나 하늘에 속한 사람은 진리의 영을 따라
살고 그리스도를 보화로 여기며 산다. 비록 육체는
질그릇처럼 나약하나 주의 능력을 힘입어 산다.
그래서 위의 것을 찾고 생각하고 탐심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새 사람을 입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오직 거듭남(born again)이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3:9-10) 이것이 우리의 새로운 자화상이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자화상이 확실하게 바뀌어야
한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임을 선언하면서 사는 것이 지혜롭다(고후5:17)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이 말씀은 ‘그렇게 될 줄
믿습니다’가 아니라 그대로 선언하는 내용이다. 자신의
믿음을 선언적으로 선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4.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11절)
사람의 외모 곧 겉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그 사람 안에
있는 내용인 그리스도의 생명은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극대화하라.
우리의 생명은 만유이신 그 분 안에 감추어져 있다.
그 분과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하신다(골3:3-4)
이 말씀이 얼마나 크게 들리는가? 그것이 그리스도에게
대한 당신의 신앙의 척도이다. 언제나 예수그리스도를
생각할 때에 요1:1절의 그 말씀(호로고스)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예수그리스도는 어제의 여호와이시며,
오늘의 주와 그리스도이시고, 내일의 만유이시다(11절)
이것이 바로 바울의 그리스도에 대한 개념이었다.
계시가 없으면 이와 같은 것을 깨달을 수가 없다.
5. 그러면 그 분의 나타나심이란 뜻이 무엇인가?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4) 요1:14절과
18절이 설명한다. 만일 교회가 제2의 성육신이라는 중세
개혁주의자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개혁주의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그 영광이 우리 안에 비췬다.
그 영광이 충만해지면 드디어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듯이 우리 또한 그 분의 영광을 나타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빛이 된다. 세상의 빛이란 옳고 바른
행위만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빛에 의해 투사되는 존재의
이미지(형상)를 포함한다. 그게 바로 예수를 닮아가는 거다.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자신의 브랜드가 된다는 말이다.
6. 그 다음 그리스도가 만유라는 뜻은 무엇인가?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며 만유의 생명이시다.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이시다. 만유는 호로고스의 생명으로
존재한다. 만유의 존재 자체가 바로 그리스도이시며 그
분의 생명의 표현이다. 시33:6“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이라는 뜻이다. 기름부음 자체를
그리스도라 일컫는다. 생명의 진액을 이 기름으로 보면
생명의 진액은 곧 그리스도이시다. 이 생명의 진액은 우리
영혼의 영원한 양식이며 모든 만물의 생명이 된다. 만약
만물 가운데 그 분을 빼면 한 줌의 가스만 남게 될 것이다.
7. 이 생명은 동양적인 용어는 생기라고 하고, 서양적인
용어는 에너지라고 한다. 이 생명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요소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열려 있어 받아먹고 누리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 바로 사망과 생명의 큰 구렁이다. 그러나 사망
아래에 있는 사람도 하나님의 입의 기운으로 살고 있다.
모든 자연이 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산다. 동물 식물 광물
다 포함이 된다. 물도 살아있어서 우리에게 생명이 되고
있다. 그 속에 미네랄이 있다. 여기에는 전부 하나님의
영(기름부음)이 들어있다. 바로 만유이신 그리스도이시다.
다만 육신의 양식이냐? 영의 양식이냐?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는 만유이며 우주요 또한 자연이다. 그러므로
자연이 사람을 보호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것은 하나님과 자연 밖에 없다. 자연이 좋은 이유이다.
8. 거듭난 하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먹고 마신다.
그 분의 살과 피를 기념하게 하는 떡과 잔은 바로
그 분의 생명을 먹고 마시는 시청각 보조 재료이다.
보이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 안에서 생명으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설명하신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는 생명을
주시는 영이시다(고전15:45) 그래서 주께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6:63) 하신다. 이를 깨닫고
영의 양식인 그리스도를 먹는 자들이 소금과 빛이 된다.
자연과 화합을 이루면 사람의 욕심이 사라진다. 그런데
이 욕심이 사람의 무서운 적이다. 그래서 탐심은 우상
숭배가 되는 것이다(골3:5) 자연은 자연스럽기 때문에
사람이 자연 앞에 욕심을 가지고 서면 부끄러움을
느낀다. 사람이 아무리 욕심을 내도 공기를 한꺼번에
두 배를 마실 수는 없다. 물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인간의 생각을 계발하는 서양철학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동양철학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9. 그리스도는 만유, 또한 만유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같이 호흡하고 먹고 옷
입고 피난처로 사는 원리를 터득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 15장의 상태이다. 그 분과 관계를 맺어
그 분의 진액 곧 생명으로 열매를 맺으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얀 후스라는 분이 ‘진리를 찾으라, 들으라, 배우라,
사랑하라, 말하라, 지키라’고 말을 했다. 인간은 모든
만물의 진액을 먹는다. 바위 속에서 석유가 나오고
무에서 나오는 무즙을 먹고 산다. 또 흙의 진액을
먹고 공기 속의 생기를 들여 마신다. 입은 흙에서 나는
것을 먹고 코는 위의 공기를 마신다. 네페쉬하야의 생명
이다. 그런데 이것도 말씀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바로 만유이시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저절로 자연을 사랑하게 된다. 모든
생명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렘17:9)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개나 호랑이나 고양이를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게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시러 보내셨다.
모든 짐승들은 자연을 거부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역리를 행하지 않는다. 인간보다 훨씬 지연스럽다.
10. 그런데 문제는 죄 지은 인간들에게 평등이 오면
허무가 오는데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에는
식욕이나 성욕 그리고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심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취하고 남에게 이기려는 욕구가 있다.
만약 전부 다 대학을 나오면 그 동안 노력한 보람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오히려 경쟁이 보람이 된다. 그래서
공산주의가 길게 가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식민지 정책이
놀려 먹고 살도록 하는 것이었다. 지금 미국의 원주민
정책이 그렇다. 자본주의의 영향 아래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 때문에 문명이 발전하는 것 같지만
온 인류는 그만 문제투성이가 되었다. 그래서 역사는 통제
경제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 그 전초가 전체주의일 수 있다.
11. 아! 자연과 인간의 삶이 얼마나 다른가? 짐승은 온도
조절을 위해 털을 갈아 입는다. 그러나 인간은 사치를 위해
옷을 껴입는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일수록 자연스럽게 산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새로 지음을 받은 자로 살아야 한다.
만유와 조화를 이루며 자유하며 살아야 한다. 공기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기에 흔하다. 그래서 귀한 줄을 모른다.
그렇듯이 예수그리스도 또한 귀한 줄을 모를 수도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그리스도이시며 그 분은 만유이시며
만유 안에 계신다. 새로운 피조물은 그 분의 생명으로 산다.
그 분의 진액으로 산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항상 우리 안에
계셔야 한다. 이 관계성이 분명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분을 좇아야 한다.
그러면 그 분이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 마귀는 끊임없이
이 관계성과 진리를 가로막아 생명을 차단한다. 방해한다.
중세교회는 성경을 못 보게 하므로 그 속에 있는 길을
가로 막았고, 현재는 성령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래서 그 생명의 길을 보지 못한다. 물질을 중요시하는
것이 유물론이다. 사람을 중요시하는 것은 유신론이다.
사람을 중요시하는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 바로 천국이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으로 말미암아 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 안에 계신 만유이신 그리스도는 다른 형제 안에도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것 같이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법(원리)이다. 아멘!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지음을
받은 피조물로 그 형상을 따라 지식이 날로 새로워져 감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