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초반 멕시코 불교 수용 상황 고찰
-호세 바스꼰셀로스와 아마도 네르보, 호세 환 따블라다를 중심으로-
강태진(대구가톨릭대학교)
I. 서론
중남미 대륙에서의 주요 종교는 가톨릭교이다. 이 종교는 스페인이 중남미를 발견하고 통치한 이후부터 이식된 종교이다. 이전에 중남미 원주민들은 태양신을 중심으로 토속신이나 자연신 등을 숭배해 왔었고 오늘날도 이 의식은 남아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는 일부 지식인을 중심으로 불교가 유행한 적도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개신교 신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있는 국가 수도 늘어나고 있는 편이다. 그 외에도 아프리카에 기원을 둔 부두교(Vudú)를 비롯한 민간신앙이나,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이슬람교도 신봉되고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와 같은 여러 종교나 신앙 가운데에서 20세기 초반에 멕시코에서 보였던 불교 수용 상황을 일견하고자 한다. 불교로 직접 들어가기 전에, 불교가 전파될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20세기 초반까지 중남미와 동양과의 관계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남미와 동양과의 관계는 4만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빙하기때 몽고인이 시베리아를 거쳐 베링해협을 건너 알래스카로 이주하여 아메리카 대륙 남단까지 이동하며 이 지역에서 거주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거의 일반화된 사실이다. 그 이후에 콜럼버스는 14세기에 중국을 방문했던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에 반하여 인도를 발견하기 위해 1492년 8월에 스페인을 출발하여 결국 그 해 10월 12일에 중남미의 한 섬에 도착한다. 또한 16세기 초반에는 마젤란이 최초로 세계일주를 하며 필리핀을 스페인 영토로 귀속시킨다. 이 일을 계기로 필리핀의 화교들은 멕시코 아카풀코를 왕래하며 중국산 도자기를 위시하여 각종 동양 물품을 전달하게 된다. 이 때 일부 중국인들이 중남미에 들어와 거주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중남미 독립 시기를 시작으로 중국인들이 노예로 팔려와 브라질과 쿠바 등의 농장에서 근무하였고 급기야는 1905년에 한국인들도 유카탄반도에 끌려오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불교 전파 가능성을 가늠해 보지만 2500여 년 전에 생겨난 불교가 극소수의 노예 신분의 동양인을 통해 중남미에 전파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남미에는 멕시코와 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 불교의 맥이 흐르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4)와 훌리오 꼬르따사르(Julio Cortázar: 1914-1984)가 대표적 인물이다. 특히 전자는 『불교란 무엇인가? ¿Qué es el budismo?』라는 책을 1976년에 발표하고 임종때 불교식 장례를 치렀다. 멕시코에서의 불교 맥은 ‘강신술사’(El Nigromante)로 알려진 이그나시오 라미레스(Ignacio Ramírez: 1818-1879)에서 시작한다. 그는 “신은 없다. 자연의 산물은 스스로 생존한다”(No hay Dios; los seres de la naturaleza se sostienen por sí mismos.)고 주장하여 멕시코로부터 추방을 당하지만 다른 종교에 대한 문을 열어 놓는다. 그 이후 호세 바스콘셀로스(José Vasconcelos: 1882-1959)가 1919년에 『인도연구 Estudios Indostánicos』를 출판하고 익년에는 『불교입문서 Manual de Budismo』 출판계획을 발표하여 멕시코 사상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역시 동일한 시대에 아마도 네르보(Amado Nervo: 1870-1919)와 호세 환 따블라다(José Juan Tablada: 1871-1945)는 자신들의 작품에 불교 요소를 많이 삽입시킨다. 이들을 이어 옥따비오 빠스(Octavo Paz: 1914-1998)가 불교에 관한 글을 발표하여 멕시코에는 불교가 면면히 그 줄기를 이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1910년 전후에 나타난 멕시코에서의 불교수용 상황을 고찰하고자 한다. 멕시코의 여러 지성인 중에서 호세 바스꼰셀로스와 환 타블라다, 아마도 네르보 등의 활약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먼저 멕시코 사회 배경을 살펴보고 작가들의 불교와의 만남 및 작품에의 흔적, 수행, 그리고 한계 등으로 구분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2. 사회적 배경- 동양에의 관심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의 멕시코의 동양사상 접근에 대한 외부적 요인을 관찰하기 위해, 우리는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사회적 상황과 문학적 상황으로 구분하여 살펴 볼 수 있다. 호세 환 따블라다의 『일기 Diario』와 관련하여 조명하면, 전자는 뽀르피리오 디아스(Porfirio Díaz: 1830-1915) 시대의 멕시코 사회, ‘청년 아테네’, 그리고 동양정신에 관심을 표방했던 인물과 연결되고, 후자는 모데르니스모(Modernismo)와 연관되어 나타난다. 먼저, 당시 대통령이었던 뽀르피리오 디아스는 오귀스뜨 꽁뜨(Auguste Conte)의 실증주의(Positivismo)의 영향으로 ‘질서와 과학’을 중요시하여 형이상학과 종교를 억압했다. 특히 다윈주의가 등장하여 인간은 유전에 의한 우연한 산물일 뿐이라는 사상이 지배하면서 신은 인간에 대한 전제적인 가치를 상실하였다. 이리하여 일부 사상가들은 현실세계를 관찰하고 대부분의 사상가들은 자아의 완전한 해방을 추구하였다. 또한 모순적이고 혼란스런 수많은 철학연구의 결과, 사람들은 퇴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급기야 지식인들은 문학이나 철학 작품에 옛날 신화의 다신론, 산스크리트어의 대서사시, 동양의 종교 이야기, 불교교리 등을 소개하며 새로운 신을 찾으려 했다(Tanabe 1981, pp. 8-9). 1910년 디아스 정권 이후에는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탄생하여 무정부주의자들이 판을 치던 시대도 있었다(Guevara 2000, pp. 223-237). 당시의 상황에 대해 따블라다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멕시코에는 자유사상가가 되는 것이 유행한 시기가 있었다. 그는 불경스런 무신론자처럼 강인하였다. 그것은 총을 가진 것처럼 힘과 우월성을 뜻하는 하나의 기호였다. 자유주의자들은 성당에 출입하는 것조차도 거부했다.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조차 수치스러울 정도로 일탈해 있었다. 인간이 동물을 앞선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리하여 정신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 모든 행위들을 지우는 것뿐이었다(Tablada 1991, p. 16).
이런 상황에서 따블라다는 자신과 친분관계를 유지했던 멕시코인들과의 관계에서 답을 구하고자 시도한다. 『일기』에서 따블라다가 언급하는 인물은 정치가를 비롯하여 외교관, 작가, 화가 등 매우 다양하다. 이들 중에서 작가가 개인적으로 알거나 만나며 서신교환을 하여 공통점을 시사하는 인물들은 호세 바스꼰셀로스와 알폰소 레이예스(Alfonso Reyes), 안또니오 까소(Antonio Caso) 등이다. 이들은 1909년 10월에 탄생한 ‘청년 아테네’의 중심인물로 뽀르피리오 디아스 대통령의 실증주의에 바탕을 둔 정책에 반대했던 지식인들이다.
이들 중의 일부는 그리스도 개념의 신을 상실하여 동양에서 신을 찾고자 했다. 이와 관련하여 따블라다와 친분을 유지했던 헤수스 발렌수엘라(Jesús Valenzuela)는 Revista Moderna에서, 인도 선지자들의 열반이나 완전한 공(空) 외에는 어떠한 무기도 이 무시무시한 공포를 떨쳐버릴 수가 없다(Tanabe 1981, p. 9)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따블라다는 『일기』와 『추억 Memorias』에서 ‘강신술사’라는 별명을 지녔던 이그나시오 라미레스와 멕시코 대통령을 역임했던 프란시스꼬 마데로(Francisco Madero: 1873-1913)를 언급하며 아마도 네르보와 호세 바스꼰셀로스와의 관계를 서술해 놓고 있다. 이들은 가톨릭 종교를 국교를 하고 있던 멕시코 분위기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동양 취향의 종교 활동을 한 사람들이다. 먼저 이그나시오 라미레스는(1994, p. xix) 삶의 법칙은 자연에 있고 인간들은 신의 본질을 모르며 물질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변한다며 신을 부정했던 사람이다. 따블라다는 단지 명성으로 ‘강신술사’를 알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라미레스는 이미 동양 신을 추구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혼자서 불교를 수행한 프란시스코 마데로에 대해 따블라다는(1993, p. 397) 그의 수양을 알고 있은 듯, 죽은 후에 그가 “선택하기 어려운 정신적 우월성의 심연에서 살아 있을 것”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시와 산문에서 불교적 요소를 많이 남긴 아마도 네르보와의 관계는 자주 언급되어 있어 함께 점심식사를 나눴다(1992, p. 53)는 내용도 서술되어 있다. 그리스와 인도에서 멕시코의 신선한 모델을 찾고자 했던 ‘멕시코 아테네’ 구성원 중에서 호세 바스꼰셀로스는 『인도연구』를 저술한 대표적인 불교 연구자였다. 그는 대중들에게 명상과 인도의 호흡법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단편소설집인 『마술적 소나타 Sonata mágica』에서는 불교의 요소들을 삽입하기도 했다. 따블라다(1992, pp. 158-159)는 호세 바스꼰셀로스와 친분을 유지하며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인도연구』를 직접 읽고 이 책에 대한 소감을 적어 보내고 그 답장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답장 내용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어 유감이다. 그 외에 따블라다는 바스꼰셀로스와 점심을 함께 하며 인도의 신비주의 등을 이야기했다고 밝히고 있다.
극동에 관심을 표방하는 이국주의를 하나의 특성으로 내세우는 모데르니스모는 멕시코에서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까지 풍미했던 뽀르피리오 디아스 정권의 프랑스 지향 예술정책에 힘입어 ‘아름다운 시대(la belle epoque)’에 나타난다. 이 사조의 연대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이론들이 있으나 멕시코에서의 모데르니스모는 1896년과 1905년 사이에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 시기에 발표된 Revista Moderna는 모데르니스모의 새롭고 당당한 대변인 역할을 한다. 이 잡지를 중심으로 모였던 멕시코 모데르니스모 시인들 중에는 아마도 네르보와 호세 환 따블라다가 있다(Tanabe 1981, p. 23). 멕시코에서의 동양 자양분을 흡수한 따블라다는 까라까스와 보고따, 아바나 등의 신문에 연재를 하며(Larousse 1984, p. 9452) 중남미의 다른 작가들의 성향도 놓치지 않는다. 당시의 중남미 시인들을 살펴보면, 모데르니스모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훌리안 델 까살(Julián del Casal)이 「가께모노 Kakemono」라는 시를 통해 중남미 문학에 일본 관련 주제를 가장 먼저 소개했다. 또한 모데르니스모의 완성자인 루벤 다리오(Rubén Darío)는 칠레에서 1886년 당시 대통령 아들이었던 뻬드로 발마세다 또로(Pedro Balmaceda Toro)라는 시인을 알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대통령궁에 일본 예술품을 전시해둔 방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극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 외에 루벤 다리오는 일본 전권대사였던 알프레도 이라라사발(Alfredo Irarrazabal)이라는 친구가 있어 그로부터 동양 예술 분위기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Tanabe 1981, pp. 24-25). 극동을 중심으로 한 시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은 ‘단지 화려함(por lujo, y nada más)’을 위한 하나의 유행이었다(Tanabe 1981, p. 24)고 지적하지만, 이러한 문학적 배경아래에서 멕시코 작가들은 자연스럽게 동양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작가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문학적 성향이라는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동양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지니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겠다.
3. 불교와의 만남
3.1 호세 바스꼰셀로스
교육부 장관을 역임했던 호세 바스꼰셀로스의 불교 수용 계기는 개인적, 정치적, 문화적 차원 등 세 가지 정도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겠다. 첫째, 개인적 차원을 보자. 어머니의 영향으로 독서를 좋아한 바스꼰셀로스는 존재의 개념을 확실히 하기 위해 각종 지식과 정보를 지나칠 정도로 섭렵하면서 자아 형성에 도움이 되는 것만 가려서 섭취했다고 밝혔다.(PL, p. 26) 경제와 사회, 물질 등을 경시하며 주로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한 그는 쇼펜하우어와 니체, 바그너, 에머슨, 베르그송, 스피노자, 톨스토이 등의 서적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스꼰셀로스는 멕시코라는 가톨릭 국가에서 가톨릭을 신봉하지 않았다(IG, p. 256)고 한다. 이와 같은 개인적 성향과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는 그 당시에 불교를 가까이 하고 있었던 대표적 인물인 정치가 및 작가로 활동하며 ‘강신술사’라는 별명을 얻었던 이그나시오 라미레스가 쓴 책들을 읽고, 정치가인 프란시스코 마데로, 그리고 평소 가깝게 지내던 베이전트(Besant)부인과의 접촉을 통해 불교를 실천하게 되고 나중에는 불교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함께 지적 활동을 하던 동료들을 무시하고 불교서적에 몰두하여 새벽 3시까지 독서를 하다가 동료들로부터 핀잔을 받기도 하였다(SLV, p. 43). 또한 그는 주변의 동료들이 위험하다고 내동댕이친 불교에 관한 이그나시오 라미레스의 책을 읽기도 하고 영어나 불어로 된 고타마 부처에 관한 책읽기에 여념이 없었다(PL, p. 35).
둘째, 정치적 차원으로 바스꼰셀로스는 중남미에서 문화를 탈식민지 기능으로 본 최초의 사람이었다.(SLV, p. 41) 그는 유럽인을 야만인, 그리고 아시아인과 중남미인, 아프리카인들을 새로운 주민으로 간주하고 문명인으로 상정하여 진정한 문명은 진정한 씨앗에 있다고 주장하며 그 문명의 근원을 피타고라스(Pitágoras)의 그리스와 우파니샤드의 인도로 보았다.(SLV, pp. 39-40) 역사적 모델로 제시된 피타고라스의 그리스와 부처의 인도를 제시하면서 바스꼰셀로스의 아메리카는 유럽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하여 독립된 성격을 획득할 가능성을 암시하였다(SLV, p. 69). 특히 불교와 관련된 인도는 바스꼰셀로스에 의해 조직된 “청년 아테네”라는 모임에서도 나름대로의 관심을 끌었다.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 시기에 물질주의적 부패가 팽배하던 유럽의 영향을 받은 우리 환경에 식상했던 우리들은, 막연한 호기심과 놀라움이 범벅이 되어 읽곤 했던 인도에 관한 책으로 때때로 희열을 만끽하곤 했다.(1959, p. 89)
즉 바스꼰셀로스는 유럽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인도문명을 도입하여 이전에 있었던 유럽의 유산을 청산하고자 했던 것이다. 문화적 차원에서, 주민들의 창조적인 결합을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교육과 문화를 내세운 바스꼰셀로스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문화에 가장 관심이 많았던 그룹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바스꼰셀로스는 다른 인물에 비해 멕시코인들에게 생소했던 부처로 대표되던 불교를 20세기 초반의 멕시코에 사회적 안정과 고도의 문화를 전달하는 문명으로 소개하며 문화적인 구원을 희구했다(SLV, pp. 70-74). 소외된 다수의 대중들을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집단으로 변환하기 위한 바스꼰셀로스 방식의 교육에 기초한 이와 같은 염원은 결국 두 가지 일로 커다란 획을 긋게 되었다. 즉 불경편찬 사업과 교육부 청사의 한 벽면에 불상을 조각하는 일이다. 1920년 1월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 총장으로 역임할 때 그는 대학 출판사의 기능을 문화 전파라고 간주하여 출판사에서 출판해야 할 32가지 책을 선정하였다. 그 책들 중에서 『불교입문서』는 호메로와 소포클레스, 플라톤 등의 그리스 고전에 이어 일곱 번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30,000부 인쇄되어 도서관을 비롯한 각종 공공기관으로 보급되게 된다(1987, pp. 119-120). 또한 그는 1922년 7월, 교육부 청사 건립 축사에서 건물의 네 면을 그리스와 스페인, 아스테카와 관련된 사항을 조각하자 하면서 마지막 한 면을 연꽃으로 둘러싸인 부처를 조각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동․서양, 남․북 등이 충돌하여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단합하여 조화로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자고 주장했다(SLV, p. 94).
3.2. 아마도 네르보
아마도 네르보가 불교를 만나게 되는 계기는 독서와 프랑스 여행, 인물과의 만남 등에서 나타난다. 아마도 네르보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중학교 과정부터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하였다. 그러나 집안의 경제적 사정과 격렬했던 첫사랑에 도취되어 종교적 소명의식에 대한 회의감으로 신학공부를 중단하였다. 네르보는 신학공부를 중단하였지만 그의 관심은 항상 종교를 비롯한 정신세계에 닿아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유럽잡지를 펼칠 때면 종교문제를 언급한 서적들을 살펴보기 위해 참고문헌을 두 번 이상 펼쳐본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그는 “삶의 확고한 개념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추출하여 피안의 경지와 우리들 자신의 내부를 관조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바로 여기에 그의 철학이 밀집되어 있다. 이와 같이 내부성찰을 중요시한 그는 다양한 책들을 섭렵하며 정신세계를 고양시킨다. 여러 종류의 책 중에서 「영혼을 부여하는 사람 El donador de almas」에 나타난 동양서적은 다음과 같다.
“얘야, 나는 신과 인간에 대한 지식을 많이 알고 있단다. 동양의 성스러운 서적들을 빠짐없이 읽고 곰곰이 생각하기도 했지. 중국서적을 말하자면 『역경』과 찬미가에 관한 서적인 『시경』, 역사서인 『사기』, 의례에 관한 책인 『서경』, 공자가 쓴 열 두 선비에 관한 이야기인 『춘추』, 공자와 맹자가 쓴 도덕서인 『사서』, 이성을 다룬 『도덕경』, 형벌과 보상에 대한 『감응편(感應篇)』 등이지. 페르시아의 거룩한 작품들은 『젠드-아베스타』와 『보운-데헤츠스』다. 인도에 관한 책들은 베다들이다. 『리그베다』는 수 만 개의 연으로 구성된 신들에 대한 찬양이나 찬사에 관한 작품이다. 『야주르베다』는 제사의례에 관한 내용을 다룬 책으로 공물을 바칠 때의 의식에 대해 여든 여섯 장으로 구성된 산문이다. 『사마베다』는 서정적인 가사의 모음으로 모든 베다 중에서 가장 성스러운 책이다. 이 작품은 인도인들을 찬양하는 노래를 가득 담고 있다. 성직자들의 지혜를 다룬 서적인 『아타르바베다』에는 칠 백여 개의 주문이 수집되어 있다. 그리고 베다 중에서 신학을 다룬 책인 『우파니샤드』와 『마누법전』도 읽었다. 그 외에도 나는 이슬람교의 법전인 『코란』도 읽었단다.”(2000, p. 157)
가톨릭 사회에서의 종교적 위기에 대한 작가 자신의 느낌을 「육감 El sexto sentido」이라는 작품에서 “하늘과 땅에는 우리 철학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아주 많다”(p. 226)라며 자신이 동양서적을 섭렵하는 이유를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리고 네르보에게 있어서 환상적인 것과 신비로움과의 밀접한 관계는 개인적인 독특한 감수성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그의 종교적 호기심은 더 강렬해진다. 「육감」에 소개된 내용은 이러하다.
“물론이지요……. 하지만 당신은 오래 전에 엄청난 하나의 호기심인 신비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사로잡았다는 사실은 모르실 겁니다. 나는 스핑크스〔부처〕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것도 강한 질문 말입니다. 그러나 그 스핑크스는 나에게 아직 단 한 마디도 하질 않고 있습니다.”(2000, p. 168)
가톨릭교에 대한 종교적 극복의 승리는 개인적인 호기심 외에도 네르보의 공간적 위치에 기인하기도 한다. 즉 그는 1900년에 『공평함 El Imparcial』이라는 언론기관의 특파원으로 파리에 파견되기 때문이다. 거기서 그는 부처에 관한 전설에 특별한 관심을 지니고 깊이 연구한 프랑스 학자들의 글을 접하게 된다. 당시의 프랑스 신비주의자들은 신비에 대한 서양전통 대신에 불교나 인도철학에 관련되어 있었다. 이리하여 「영혼을 부여하는 사람」에서는 불교의 윤회 요소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마침내 알다(Alda)는, “제가 다른 사람으로 환생하든지 아니면 영원 속으로 결연히 떠나야겠어요”하고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당신을 누구의 몸으로 환생하게 해줄까요?”
“아무라도 괜찮아요.(……)”(2000, p. 137)
3.3. 호세 환 따블라다
호세 환 따블라다는 정신과 동양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았다. 이런 개인적 성향에 의해 그는 자연스럽게 불교를 만나게 된다. “나 자신만 믿는다.(Sólo creo en un ismo: el YOmISMO!)”라고 말장난을 하며 개인숭배를 주장하는 따블라다는 자신을 ‘영혼의 반란자(yo soy revolucionario de espíritu.)’라고 일컬을 정도로 정신과 관련된 사항을 많이 서술해 놓고 있다. 작가가 지적하는 정신의 우월성은 정신이 지식과 물질, 신체 등보다 앞선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나타난다. 작가는 정신이 최고의 카테고리에, 그리고 지식은 두 번째 카테고리에 속한다(1993, p. 23)고 지적하고 있다. 이리하여 결국 작가는 “종국에 가서는 정신이 최고다. 바보들은 기계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믿는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단하다고 떠벌린 원인들의 단순한 결과에 불과하다.”(1993, p. 235)며 정신을 강조한다. 작가는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감정의 허상을 깨닫고 잠재적인 정신력을 연마하여 초인간을 향한 높은 경지의 세계로 나아간다.”(1991, p. 14)고 역설한다. 이리하여 따블라다에게는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하나의 축복으로 다가간다. 정신세계에 대한 수양 방법을 이야기 하며 작가는 독서에 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자연사에 관한 책을 읽으며 희열과 차분함을 느낀(1992, pp. 122-123) 따블라다는 독서의 장점을 지식 배양과 정신세계 고양이라고 한정하며 독서에서 황홀감을 얻는다고 고백한다. 이리하여 작가는 책을 통해 처음에는 지식을, 두 번째에는 상상력을 얻지만 마지막 단계에 들어가면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정신력을 감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1993, p. 361). 이런 과정을 체험한 작가는 종교서적을 전문으로 한 ‘아바디아노 고서점(La Antigua Librería de Abadiano)’을 자주 왕래하였다(1991, p. 175). 따블라다는 『인생살이 La Feria de la vida』에서 베르그송, 삐에르 로띠(Pierre Loti) 등을 비롯한 프랑스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다(1993, p. 48). 정신공부에 비중을 두고 젊은 시절의 격동기보다는 사후의 정신적 진전 상황에 더 많은 관심을 지녔던(1991, p. 147) 따블라다는 『인생살이』를 서술하고 1900년에 일본을 방문한 이유를 정신활동에 두고 있었다. 따블라다는 서문에서 국가적 혼란과 파탄에 빠진 개인들이 인생 말년에 허망함을 가지지 않도록 하게 하기 위해 정신과 정신의 불멸성, 그리고 정신의 진전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확고히 밝히며, 이 바탕위에서 독자들과 소통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1991, p. 16).
서양 예술의 특성을 떠들썩하고 다혈질이라고 평가한다면 동양 예술은 순수하고 성스러운 맑은 물이라고 정의(1992, p. 23)한 따블라다는 “차를 처음 맛본 이후에 극동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어 일본에 가게 되었다.”(1991, p. 210)고 말한다. 이러한 동양에 대한 동경으로 따블라다는 동양의 많은 물건들을 수집하게 된다. ‘오리엔딸리아(Orientalia)’와 ‘브렌따노(Brentano)’라는 두 서점을 중심으로 동양서적을 구입했던 호세 환 따블라다가 수집하고 직접 체험한 동양 관련 사항은 매우 풍부하다. 작가의 동양 취향은 공간적으로 광범위하여 일본, 중국, 한국 등의 극동과, 필리핀, 인도, 심지어 러시아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취향을 지녔던 그는 예술아카데미(Academia de Bellas Artes)의 동양예술 교수로 임명된다(1992, p. 124). 이러한 상황을 밑바탕으로, 작가는 일본의 자연과 중국의 신비에 관심을 가진다. 자연주의자(민용태 1995, p. 181)인 따블라다는 일본인들은 자연을 보고서 정신적 상상력을 기른다(1992, p. 193)고 미화한다. 이와 같은 동양 정신과 관련된 작가의 예찬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은유되어 나타난다.
동양의 숄은 영혼들의 추위를 잘 막아주고, 처녀에게는 정결한 망토가 되며, 아래 눈까풀이 패인 죄인에게는 번쩍이는 성의(聖衣)가 된다(1993, p. 323).
지금까지의 전제 아래에서 작가는 동양의 다양한 사상과 종교를 전개한다. 따블라다가 산발적으로 소개하는 것들은 도교와 유교, 이슬람교, 힌두교 그리고 불교이다. 따블라다는 노자를 도(道)와 연결시키며 영화를 본 후에 느낀 감정을 도를 이용하여 설명한다. 그는 도를 사랑과 슬픔, 그리고 행복감이 넘치는 감정, 황홀경의 시작, 우주적 생명(la Vida Toda), 인류애, 자연, 절대적 아름다움과 같은 것으로 정의한다(1992, p. 318). 유교의 공자는 혼란으로부터 멕시코인들을 구하게 될 인물(1993, p. 229)로 정의되고, 이슬람교는 하나의 낙원으로 묘사되고 있다. 따블라다는 나이가 든 후에 군인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 가끔 이용했던 커피숍을 마호멧의 낙원으로(1991, p. 98) 둔갑시킨다. 또한 그는 한 친구의 청빈한 성자 같은 생활을 소개할 때, 아랍지역의 화려한 정원과 천국의 무희들에 둘러싸인 동양의 침실을 사용한다. 힌두교에 관한 내용은 자세한 언급은 없지만 요가와 베단타 철학, 라마야나, 인도 여신 등이 나열되고 있다. 인도 여신에 대해 따블라다는 창조의 브라흐마인 코끼리(1992, p. 332)를 제시하며 힌두교의 신인 비쉬누신을 연상시키고 있다.
4. 불교의 흔적
4.1. 호세 바스꼰셀로스
정치인과 교육자로 생활하면서 불교를 전파하고자 노력하였던 호세 바스꼰셀로스는 문학작품에도 불교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문학 작품은 호세 바스꼰셀로스의 대표적인 단편소설집인 『마술적 소나타』이다. 이 작품은 단편소설이 주종을 이루지만 수필식으로 서술된 편이다. ‘수필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주관적인 성격이다. 왜냐하면 수필가가 글의 중심이고 수필가의 개성이 언제나 내재되어있기 때문이다. 수필의 미적 또는 문학적 성질은 문체에 묻어난다. 바스꼰셀로스의 대부분의 작품은 근본적으로 수필이다’(LAL, p. 575)라는 가브리엘 드 비어(Gabriella de Beer)의 말처럼 이 작품 속에 그의 사상이나 문학적 특성이 그대로 노출된다. 먼저, 작품에 나타난 불교와 관한 용어가 직접적으로 언급된 부분을 살펴보면, ‘서쪽으로 태양은 자신의 거대한 불 수레바퀴를 가라앉히고 있다’(Por el poniente el sol va dejando caer su gran rueda de fuego. p. 156)와 ‘내 눈앞으로 짐승들의 조직적인 살육을 회피하기 위해 신도들이 육식을 하지 않는 신성한 인도의 모습이 지나갔다’.(Pasó por mis ojos la visión de la India sagrada, donde el creyente se exime de comer carne para evitar la matanza sistemática de las bestias. p. 52), ‘너[태양]역시도 카르마를 짓고 있다. 너의 카르마는 불타면서 빙빙 도는 것이다’.(También tú labras un Karma. Tu Karma es arder y girar. p. 152) 등으로 나타나고 간접적인 언급까지 소개하면 그 양이 상당한 편이다.
작품 속에 나타난 불교에 관한 부분들을 모아 그 의미를 찾아보면 명상과 윤회사상, 공(空)사상, 기적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명상 관련 부분을 먼저 살펴보자. 호세 바스꼰셀로스는 「고독의 찬양 Elogio de la soledad」이라는 글에서 침묵을 지킨 채 하루에 1시간 내지 2시간의 산보를 권한다. 약 5페이지 분량의 이 글은 침묵을 ‘영원에 이르는 묘약’(La droga de la eternidad)이라고 지칭하며 침묵의 미덕을 강조한다.
입술을 떼지 않는 것은 하나의 미덕입니다. 그리고 말하는 것 또한 하나의 미덕입니다. 말을 너무 남용하면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필요한 경우에 제대로 실컷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말을 절약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말은 침묵 속에서 준비되고 싹이 터서 성숙이 됩니다. 침묵 속에서 신성한 모습을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침묵으로부터 우리는 신의 관습에 흠뻑 물들게 됩니다.(1950, p. 148)
윤회사상에 대한 글도 많이 나타난다. ‘그대가 찾아 헤매는 존재인, 존재중의 존재는 모습을 바꾸어 새롭게 탄생할 수 있다’.(El ser a quien buscas, el ser de los seres ha de ser capaz de crear y transmutar. Los signos, p. 153)와 ‘우리들, 완전한 자를 꿈꾸는 우리들의 영혼은 단지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수 백 만 번 반복되는 하나이다’(Nosotros, cuyos almas ambicionan el Todo, somos nada más uno y uno que se repite por millones. Himnos breves, p. 153), ‘내 자아, 그게 무슨 상관이람! 즐거운 마음으로 보다 더 빛나고 더 고양된 것으로 바꿔치기 할건데.’(Mi personalidad, qué me importa! De buena gana la trocaría por otra que fuese reluciente y alta. Himnos breves, p. 154) 등이 좋은 예이다. 그리고 현생에서의 지은 업에 따라 내생에서 얻게 되는 모습이 달라진다는 불교이야기가 아주 상세하게 다뤄지고 있다.
처음부터 저는 진정으로 부드러운 사람들이 여기에 도달할 수 있는 열락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가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 부드러움은 우주를 통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단단한 영혼은 깡마르고 부패한 진흙처럼 무너져 내려 지상의 부식토와 뒤섞인다. 그들은 불의 검증을 받으려고 화산의 분화구를 거쳐 인간으로 화하기 위해 처음에는 가스로, 다음에는 생명의 힘으로 변신한다...... 정확하게 말해서, 바로 이 지점에서 지옥의 신화가 시작된다. 실재로, 사악한 의식이 자신의 구원을 또다시 시도할 수 있는 인간의 몸을 다시 받기 위해서는 수 천년이 걸린다...... 한편, 마음씨가 착한 사람들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상위의 힘과 연계되어 우주작용에 관여 하게 된다. 지금의 나는 내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명백한 사실은 구원의 주체는 각각의 개인이라는 점이다.(1950, pp. 21-22)
일반적으로 불교이론은 불교 신도들이 제대로 이해하도록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편이다. 특히 공사상을 불교와 관련이 없는 사람에게 설명하기는 더욱 더 난감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출신인 바스꼰셀로스는 정원을 꾸미고 있는 나무와 벤치, 오솔길 등을 소재로 하여 공사상을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처음에는 잠시 동안 당혹스러워 하였으나 그는 곧 주위를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모르지만 그는, 달은 없으나 별들이 환한 빛을 비추는 이상 한 정원에 있었다. 별들이 비춰주는 밝은 빛은 너무나 투명하여 정원에 있는 나무와 돌 로 된 벤치, 길게 뻗어난 오솔길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달콤한 평화로움이 그의 오감을 안락함으로 채워주고 있었다. 그는 주위의 물체를 만져보기 위해 다가갔으나 자 신이 그 속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그 물체들을 전혀 손상시키지도 않았고 또 그 물체들은 허물어지지도 않았다. 그는 마치 모든 사물 속에 들어가 있는 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물체는 자신의 모습과 고유한 실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모든 것들은 다양한 이미지들을 지우고 있던 너무 강하거나 약하지도 않는 빛으로 덮여 있었다. 그 빛은 사물의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으나 그것의 외부를 분해하지는 않았 다.(1950, p. 28)
이리하여 사물들은 자신들을 만지작거려도 전혀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가장 은 밀한 핵심까지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었다. 또한 무게도 감해져서 피곤함도 모른 채, 가볍 게 왔다갔다하였다.(1950, p. 29)
불교경전을 보면 부처를 읊조리기만 해도 큰 도움을 받는다는 글귀가 나온다. 『마술적 소나타』에서 백미로 손꼽히는 「비참한 사냥 Una cacería trágica」에는 작가가 ‘부처의 출현은 기적 중의 하나’(1959, p. 235)라고 미화한 그 기적이 일상생활에서 오는 빈약한 감정과 전통의 단조로움을 깨뜨리는 경향이 있는 인간 심리 과정의 예상치 않았던 변화무쌍함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예는 동일한 나무 기둥에 같은 높이로 네 명의 등장인물이 각각 묶어 놓았던 해먹에서 일어났던 예기치 않았던 일이다.
공포로 반쯤 정신이 나간 우리는 생물의 도태과정에서 암묵적인 범죄를 저지른 인간들 을 대신하여 희생당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상상하였다. 그때 갑자기, 악에 물들기 쉬운 우 리들을 막 구제해 줄 것 같은, 피비린내 나고 부정한 전쟁에 대한 당혹스러운 전통으로 부터 인간을 정화하고, 짐승의 조직적인 도살을 막기 위해 신자들이 고기를 먹지 않는 성스러운 인도의 모습이 내 눈앞을 스쳐갔다. 다수의 멧돼지들이 나에게 비난의 목소리 를 높이는 느낌이 들었다. 사냥꾼의 망신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악마 같은 눈을 가진 축생들에게 잡혀 동료들과 함께 손도 써보지 못하고 물어 뜯겨 죽 으면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바로 그때, 두려움에 사로 잡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해먹의 높은 쪽 끝자락을 잡고서 공중에서 흔들거리다가 예기치 않았던 도약으로 멧돼지들이 파고 있던 나무 바로 맞은 편의 나뭇가지를 가까스로 잡게 되었다. 어디서 넘쳐흘렀는지 모르지만 신체 조직에 숨 어 있던 재능이 되살아나, 나는 그곳에서 다른 가지로 옮겨 다녔다. 잠시 후, 질겁할 정 도로 놀라게 하는 시끄러운 소리와 잊혀지지 않는 비명소리가 들려 그 나무가 넘어졌다 는 사실과 그와 동시에 내 동료들의 슬픈 종말을 알게 되었다.(1950, pp. 52-53)
4.2. 아마도 네르보
아마도 네르보의 불교 흔적은 시와 산문 등에 고르게 나타난다. 이들 작품에 반영된 불교 요인들은 현생관과 윤회, 열반 등으로 살펴볼 수 있다.
석존의 근본 관심은 세계의 발생이나 인간의 전생 또는 후세의 문제들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현실의 인생을 여실히 관찰함으로써 어두운 인생으로부터 해탈의 길을 발견함에 있었던 것이다. 석존은 인생의 현실적 실상을 교설하기 위해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 등의 삼법인(三法印)을 이용하였다. 법인이란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은 진리란 말이다. 삼법인은 불교의 기치로서 불교의 특색을 가장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불교와 외도(外道)를 구별하기 위한 표준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네르보의 작품을 분석해 보면 각각의 요소가 용해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일체의 사물은 자연, 물질, 인간의 구분 없이 이 지상이거나 천상의 그 어느 일물(一物)도 일순일각(一瞬一刻)이라도 변이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관찰한 것이라는 제행무상에 관한 예문은 다음과 같다.
「난 늙었어」는 다음을 뜻하지, 「넝마는 돌아가고 나들이옷이/ 때맞추어 떨어지지. 바라던 빛나는 아름다움이 이제 오는구나./ 내 날개를 붙잡아매는 쓸모없는 누에고치야 부서져라/ 관이여, 나는 부드러운 요람을 알고 있네… 죽기 때문에 난 태어날 걸세!」(p. 183, 「난 늙었어! Soy viejo!」)
즉 늙어서 죽고 나면 또 다른 생명을 얻어 탄생한다는 것으로 만물은 늘 유전하여 잠시동안도 한 모양으로 머물지 않는다고 하는 일의 제행무상이다.
둘째로, 무상이 아닌 상주 불변하는 현상은 있을 수 없고, 더욱이 불로(不老) 불사(不死)이며, 세상에 유일한 그리고 절대적인 지배력을 가진 실체아(實體我)의 존재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제법무아의 판단이라고 한다. 제법무아는 인간이 오온의 취합에 의한 것이므로 자아라는 것은 절대적․독립적․항존적인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이산하고야 마는 것임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다음 예문에서 약간 나타난다.
나는 누굴까? 삶이 슬그머니 들어오는/ 안개, 애간장을 녹이는 목소리/ 노를 젓는 영혼/그리고 지나가는 생각//(……)/ 너는 단지 살아갈 것이다/ 수 십 년을, 그리고 너의 열망을/ 너는 아마도 실현시킬 것이다/ 나는 떠다니는 잎사귀/ 아! 아무 것도 아니지, 아무 것도 아냐!(p. 204, 「아일랜드산 삼베를 보고서 Frente a Irlanda」, 『낮은 목소리로』)
불교에서는 인생고를 구체적으로 생․노․병․사․애별이고(愛別離苦)․원증회고(怨憎會苦)․구부득고(求不得苦)․오음성고(五陰盛苦)의 팔고(八苦)라고 한다. 이런 의미를 담은 일체개고는 시작품의 이름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애별이고를 벗어나지 못했던 아마도 네르보는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여 『낮은 목소리로 En voz baja』(1909)를,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아내의 요절을 슬퍼하여 『움직이지 않는 연인 La amada inmóvil』(1920)을 각각 출판했던 것이다. 특히 1909년에 선보인 『낮은 목소리로』부터 피안의 세계와 관련된 주제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문체가 단순해졌다는 엔리케 디에스 카네다의 지적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우파니샤드와 불교에 따르면, 불안정하여 부침(浮沈)을 거듭하며 슬픔을 겪는 것은 인생의 숙명이다. 그러나 이 고통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우파니샤드는 변덕과 비극으로 가득한 이 세계의 역설이 오히려 영적인 삶에 대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인생의 고통은 인간의 영성을 일깨우기 위하여, 그리고 마침내는 그에게 최후의 승리를 부여하기 위하여 거기에 있다고 한다.
윤회와 관련하여 멕시코 작가는 작품에서 보다 향상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태어날 영혼을 기대한다. 이것은 네르보가 자신의 정신과 다른 현실세계와의 신비로운 결합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는 것을 증빙해주는 셈이다. 「육감」에 나타난 그 예는 다음과 같다.
내가 정성을 쏟자 상대적으로 가까운 미래에 있는 한 생명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미래의 어떤 모퉁이에서 나와 함께 섞일 지는 모르지만 부드럽게 운행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여자이기도 하고 하나의 얼굴이거나 하나의 환영(幻影)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다 정확한 윤곽과 권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p. 173)
끝으로, 부처의 세계는 열락의 세계로 쇄함도 끝남도 없고 고통 받지 않는 깨달음의 상태인 열반의 시작인 것이다. 열반을 표현한 부분은 여러 군데(pp.161, 167, 182, 233) 있지만 「건망증」의 다음 내용은 열반 상태를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영혼이 일단 오감을 떠나가면(일반적으로 영혼은 열반을 통해서 날아가지요) 시간은 그 도면에서는 정지됩니다. 영혼의 본질은 계승이나 영속과는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들은 우리 시계에 맞추어 영혼의 극락 열반을 헤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혼은 해방된 실체로 어느 누구의 감독도 받지 않게 됩니다.
우주는 수 십 세기를 걸쳐 진화할 겁니다. 그러나 언제나 자유로움 속에 존재하는 영혼은 정해둔 기간이 없이 분할되지 않은 채로 순간 자체에 존재합니다. 여기에서도 영원히 머물 수 있습니다.(p. 55)
4.3. 호세 환 따블라다
일본을 상상할 때 “소나무와 절로 가득한 산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1992, p. 23)고 말하는 따블라다는 자기 집 벽난로 주변을 장식할 때 중심에 성장한 부처를 모셨다(1993, p. 168). 그리고 Revista Moderna에서 그는 중으로 묘사되었고, 따블라다 자신도 스스로 중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1992, p. 6). 불교에 경도된 그의 마음은 1925년 3월 9일자 편지에 매우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모든 것은 버려야 한다. 예술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며, 이성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단지 직감과 리듬, 사랑의 전지전능한 기적, 선행의 기적, 부처의 기적, 미륵부처의 기적만 있을 뿐이다(1992, p. 6).
이처럼 불교 분위기에 싸여 지낸 듯한 따블라다는 불교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따블라다의 불교를 알아보기 위해 우선 불교 관련 표현을 살펴보고, 불교의 가르침을 분석하기로 한다. 불교 관련 표현은 금붕어와 바다의 출렁이는 파도 모양, 그리고 연꽃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금빛의 햇빛 아래에서 “금붕어는 부처 같은 영원한 평화 속에서 천천히 조용하게 노닐고 나무들의 신성함과 동물들의 순진함은 인간의 비천한 야만스러움과 대비가 된다.”(1992, p. 83)라는 문장에서 부처의 경지를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리고 있다. 또한 그는 출렁이는 파도가 부서지면서 나는 거품을 卍 자로 표현하여 불교를 자연 속의 종교처럼 묘사한다. 화려한 꽃잎에서 신성한 부처가 솟아오르는 지복(至福)의 꽃인 동양 종교의 신비로운 장미인 연꽃(2005, p. 61)은 장식에 사용된다(1992, p. 217)고 따블라다는 서술해 놓고 있다.
산문에 나타난 불교의 가르침은 윤회를 비롯하여 범아일체, 살생금지, 카르마, 열반 등으로 나타난다. 우선 작가는 윤회를 다루기 전에 영혼불멸성을 먼저 경험한다. 1924년 11월 25일 일기에 작가는 꿈속에서 죽음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는 죽는 것이 아니라 천체의 다른 세상에서 영혼이 생존하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불멸성의 행복한 인식을 하게 된다(1992, p. 253). 이 인식에 대한 확신으로 따블라다는 덴마크 철학자인 비고 카블링(Viggo Cavling)이 「집단 영혼 Espíritu Colectivo」에서 연구한 내용인, “우리 모두는 내부에 있는 불멸성의 원리를 감지한다.”(1992, p. 263)는 글을 1926년 1월 3일 일기에 옮겨 적어 놓고 있다. 영혼 불멸을 정리한 이후, 작가는 신지학에서 여러 세상들의 연속적 고리(1992, p. 253)라고 규정한 윤회를 라프카디오 헌의 글을 이용해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한 순례자가 자갈로 된 높다란 산을 밤새도록 기어 올라간다. 그러나 실제로 그 자갈들은 수천 번의 연속적인 윤회를 겪으며 살아왔던 자신의 두개골이었다(1993, p. 336).
그리고 따블라다는 이 윤회가 신적인 계획에 따라 이기주의로부터 정화되어 자비심이 가득한 상태로 효율적이고 조화롭게 합치될 때까지 계속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이 수양과정을 용광로에 비유하여 “잘못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쓸모없는 집기의 쇠붙이처럼 주형에서 제대로 응고하기까지 새롭게 용해되기 위해 용광로에 반복해서 들어가야 한다.”(1993, p. 37)고 역설한다. 윤회의 한 예로 작가는 넷사우알꼬요뜰(Netzahualcóyotl)이 베니또 후아레스(Benito Juárez)와 이그나시오 라미레스, 알따미라노(Altamirano) 등으로 환생한 것(1993, p. 144)이라고 주장한다.
범아일체에 관한 구체적인 예들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먼저 따블라다는 “내 안에 존재하는 신”(1992, p. 238)이라는 불교식 표현을 사용한다. 그 외에 작가는 범아일체의 의미를 인지하고 있는 듯한 글을 다른 문장으로 제시한다. 하나의 예는 “외형을 지닌 내 존재가 아무도 감지할 수 없는 원자처럼 사라지는 곳에서 ‘우주적 생명’이 꿈틀거리는 것을 직관적으로 감지했다.”(1991, p. 282)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나’를 신적인 것과 연결한다. 그것은 최상의 에고 또는 우주적인 에고는 우리들의 ‘나’ 중에서 최상의 것(1992, p. 310)이라는 글이다.
살생금지는 불교에서 강조하는 다섯 가지 계율중의 하나이다. 살생금지는 그리스도교에서도 가르치는 하나의 계율이지만 작가는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살생금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가 어느 절을 방문했을 때 한 스님이 뱀을 던지는 것을 보고 놀란다. 이때 그 스님은 뱀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방문객을 놀라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렇게 했노라고 밝힌다. 이 예로 작가는 살생금지의 의미를 전달한다. 그것은 인간이 생명을 주지 않았는데 하물며 어떻게 생명을 멸할 수 있느냐(1991, pp. 273-274)의 내용이다.
“전세(前世)에 지은 선악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현세(現世)에서 받는 응보”(신기철․신용철 1987, p. 2309)라는 의미의 카르마에 대해서 따블라다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그는 사후에 업이 사람들 위에 쏟아져 내려 고통스런 미래가 그들을 준비하고 있다(1993, p. 172)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누나가 사망했을 때 업이 다했다(1992, p. 290)는 표현을 하여 카르마에 대한 작가의 인식을 뒷받침해 준다. 또한 따블라다는 인연을 무서우리만큼 논리적으로 적용되는 카르마가 단순하게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멕시코인들의 협조와 단결을 요구하고 있다(1993, pp. 428-429).
“모든 번뇌를 해탈하여 불생불멸의 법을 체득한 경지”(신기철․신용철 1987, p. 2372)를 열반이라고 한다. 따블라다는 황홀경(éxtasis)이란 단어를 빈번하게 사용하면서 열반과 관련된 신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묘사한다.
이 터널을 통해 아무런 조건도 없고, 시간이나 공간도 없는 최고의 영혼인 신의 황홀경에 복귀하는 것이다(1992, p. 240).
그 외에 작가는 불교와 관련된 어휘인 ‘프라나’와 ‘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작가는 스님과 유사한 차림으로 지내면서 불교 관련 표현으로 불교의 상징인 卍 과 연꽃을 자신의 일기에 사용하였다. 또한 그는 불교의 교리와 관련하여 윤회와 범아일체, 살생금지, 카르마, 열반 등을 소개하고 있어 불교의 가르침을 상당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간주된다.
5. 불교 수행
5.1. 호세 바스꼰셀로스
멕시코 사상가는 불교의 이론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불교의 실천 사항도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동양인에게도 보편화된 것으로 호흡법과 명상이다. 호세 바스꼰셀로스는 자신이 직접 발간한 『교사 El Maestro』라는 잡지에서 인도의 호흡법을 소개하였고, 또한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개인 청결과 위생 교본’(Instrucciones sobre aseo personal e higiene)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는 그 호흡법을 직접 설명한 바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러 측면에서 우리보다 우수한 인도학문은 매일, 일을 하거나 공부하기 전에 우리 몸 의 구석구석을 맑은 공기로 새롭게 하는 호흡법을 실행하라고 가르친다. 선생님들께서 학생들에게, 코로 맑은 공기를 길게 들어 마시게 하여 한참동안 숨을 멈추었다가 천천히 내뱉도록 하는 이 운동을 실행하도록 하면 좋다. 동시에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옷을 많이 껴입으면 해롭다는 사실에 대하여 주의를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피부를 통한 호흡이 지 속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후에서도 신체의 대부분 을 공기에 노출시킴으로써 얻게 되는 장점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이다. (1987. p. 105)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선(禪)은 좌선이지만 선은 걷거나 앉아서 아니면 누워서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선을 행할 때는 시끄러운 도심지보다는 한적한 산이나 시골이 훨씬 좋다고 한다. 유명한 선사들 중에는 선에 있다가 갑자기 해탈하는 경우도 있다. 호세 바스꼰셀로스의 경우를 보면, 일요일 오후에 공원이나 숲에서 산보를 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아무 악기의 도움이 없이 합창[염불]을 하면 개별적으로 기적이 나타나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일요일 오전에는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들판으로 산보를 나가야 한다. 산보를 하는 동안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합창[염불]을 해야만 한다. 공원이나 숲 속에서 그렇게 하면 참석자들은 기분이 좋아지고 기를 얻게 되어 정신이 고양된다. 단 한번의 기적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숨기지 못한다. 우리들의 사회적 신분은 무시무시하다. 그러나 신통력은 사람들이 극진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언제나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해 나타난다. 구원은 우리 각자의 개인 노력에 달려 있다. 현생에서 기적을 행할 필요가 있다!(1987, p. 107)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스승은 명상 중에 사람들은 위대한 선각자를 만나거나 숭고한 힘을 느끼고 신을 직접 알현할 수 있다고 자세히 알려준다.
의식의 깊숙한 곳에서 명상을 행할 때는 높은 곳에 위치하는 존재들과 함께 한다는 인 식을 하십시오. 그리고 숭고한 힘이 현재한다고 느끼십시오.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신비 주의자들은 무아경에서 이와 같은 진리를 이미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인도의 신 비주의자들뿐만 아니라, 깨달음의 경지에서 신을 여러 번 알현한 스승인 플로티노의 포 르피리오도 단언한 바 있습니다.(1959, p. 324)
5.2 아마도 네르보
이론과 실천을 겸비하도록 하는 불교는 수양의 방법으로 참선(參禪)을 권한다. 스스로 좌선(坐禪)하거나, 자기가 우러러 존경하는 고승에게 선을 배워 닦는 것으로 바로 명상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수양을 강조해 온 아마도 네르보는 「神性」에서 그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가능하면, 미소지으며 참아라/ 인생은 예술가가 강하게 밀어붙이는 끌로 조각하는 것이다.// 너에게 나쁜 시간이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시시각각 새록새록 돋아나는 날개가/ 더 아름다운 깃털을 주니까 말이다./ 이제 넌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콘도르를 볼 것이다./ 이제는 완성된 조각품을 볼 것이다./ 이제는 영혼을 볼 것이다, 이제 넌 볼 것이다…(2001, p. 171)
또한 시인은 「내면의 신 El Dios interior」에서 수양의 필요성으로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의 습득을 주장한다. 명상과 기도를 구분하며 불교의 좌선을 암시하는 아마도 네르보의 다음 글은 우리의 관심을 고조시킨다.
영혼의 심연에서 조용히 사는 것은 나였다,/ 그에게 말했다. 「들어봐, 비밀을 말해 줄 터이니./ 혹시 너의 영웅적인 행위가 엘레나를 극복할 수/ 있을 지 알고 싶지 않니? 그럼 너 자신부터 극복해 봐/ 우선, 정신력으로 이 사랑을 이겨내면,/ 그녀에 대한 통제로 넌 커다란 힘을 얻을 거야./ 의지가 외적인 것을 복종시키고 길들이지./ 만약 앞질러 자신의 주인이 되면 말이야./ 자신의 욕구를 저항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것도 저항하지 못하지. 극복하고 죽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힘이지, 이 세상은 그 다음 차례야./ 잘 해봐, 자넨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걸세!」(2001, p. 146)
5.3. 호세 환 따블라다
따블라다는 불교 수행과 관련하여 명상이나 좌선과 채식의 실천을 제시하고 있다. 따블라다는 명상 또는 좌선과 관련된 사항을 생활 속에 나타난 일반인의 얼굴 표정, 일반인의 무지, 좌선의 실천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발견되는 명상의 표정은 시선을 한 곳에 집중한 모습에서 묘사된다. 이 풍경은 한 병원 건물이 붕괴될 때 작가가 바라본 노인들의 얼굴에서 나타난다.
그 노인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광경에 몰입되어, 마치 황홀경 속에서 정지된 듯, 붕괴되는 그 건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었다(1993, 136).
그러나 따블라다는 일반인들이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점을 아쉬워한다. 그 예는 “명상하고 있는 사람을 자는 줄 알고 뒤꿈치를 들고 살짝 다가와 얼굴에 수염을 그린다.”(1993, p. 192)는 것이다. 그렇지만 따블라다는 당시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좌선을 직접 실천하여 그 모습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미겔 꼬바루비아스(Miguel Covarrubias)가 그린 그림으로 따블라다가 부처의 모습으로 좌선을 실행하고 있다(1992, pp. 224-225). 이를 뒷받침하는 다른 증거로 로돌포 마따는 따블라다가 요가를 실천했다고 지적한다(2007, p. 34).
『일기』에서 따블라다는 자신이 신지학을 접하고 나서 육식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채식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신지학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불교의 실천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일기』에서 작가는 채소로만 차려진 저녁 식사를 해도 만족스럽다고 서술해 놓고 있다(1992, p. 257). 그 외에 발견되는 불교식 수행은 산스크리트어 ‘옴(OM)’ 및 화장과 연결된 것이다. ‘옴’은 스님들이 소리로 수행할 때 내는 음으로 우주의 생성 및 파괴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작가는 ‘옴’의 의미를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고 이 음의 적절하고 추상적인 의미를 살핀다(1992, p. 197)는 말만 적고 있다.
시체를 불에 사르는 불교의 화장과 관련된 사실은 아드리아나 산도발(Adriana Sandoval)이 밝힌 바와 같이, 『일기』 중에서 일부가 삭제되어 있는 것과 관계가 있다. 따블라다의 부인인 니나(Nina Cabrera Douval)가 원고를 출판사측에 넘겼을 때 『일기』의 일부가 훼손된 이유는 말년에 따블라다가 공책의 일부를 찢었다는 것이다. 그는 감정에 좌우되는 세속적인 일에서 벗어나 조용한 생활을 위해 공책을 낱장으로 찢어 그것을 불태웠던 것(1992, p. 6)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두고 판단해 본다면, 따블라다는 불교 교리 공부보다 선 수행에 더 힘을 쏟았음에 틀림없다.
6. 불교 수용의 한계
6.1. 호세 바스꼰셀로스
철학자로 반(反)서구적인 성향을 보이며 동양에 관심이 많았던 바스꼰셀로스는 용기있는 자의 표본이자 큰 일꾼이며 지식의 신사라는 찬사를 받으며 가톨릭 사회에 돌발적인 사건으로 불교를 소개하였다. 그러나 불교에 대한 그의 방대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은 약간의 한계를 안고 있다. 그는 자신의 종교에 대하여 의심하는 한 여자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신자임을 밝힌다.
순간적으로 그녀는 확신을 하지 못했다. 자유성향으로 평가된 정부의 한 회원이기 때문 에 나 역시도 반(反)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 그리하여 나는 그녀를 곧장 의심으로부터 구출하였다.
“당신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실은 저는 그리스도교 신자입니다.”(1983, pp. 226-227)
그렇지만 그는 불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임종하기 몇 달 전에 에마누엘 카르바요(Emmanuel Carballo)와 가진 인터뷰에서 영겁과 죽음 너머의 세계에 관한 관심을 표명한다.
영겁에 관한 이론을 꾸준히 연구하면서 그것에 관한 책을 하나 준비하고 있어요. 그 책 은 아마 죽음 너머에 있는 여러 세계와 현생에서의 내 역정을 조금이나마 밝혀줄 것 같군 요.(PLM, p. 28)
6.2. 아마도 네르보
그의 글은 불교와 관련된 어휘를 간간이 섞고 있으나 대부분이 가톨릭교와 관련된 것들이다. 「목자 Pastor」라는 제목으로 작가가 언급하고 있는 글은 다음과 같다.
목자여, 저에게 주신 만큼 하느님의 영광이 있으리라./ 저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더라도 하느님의 영광이 있으리라./ 그대가 장미사이로 가시더라도 웃으면서 따르겠습니다./ 엉겅퀴와 가시나무사이로 가시더라도 하느님의 영광이 있으리라./ 좋은 일이나 궂은 일이나 당신과 함께!/ 항상 당신과 함께!(2001, p. 186)
그 외에 작가는 개인적인 환경에 의한 요소를 빠뜨리지 않는다. 즉,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의 죽음을 경험한 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을 계속 지니고 있다. 『신비설』에서 「숙명 Predestinación」이라는 제목 아래 토로된 작가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다음과 같다.
해결할 수 없는 두 가지 고통이 나를 괴롭혀 왔구나./ 삶의 끝없는 불쾌감과,/ 죽음의 끝없는 두려움.(2001, p. 83)
그러나 멕시코 시인은 불교에 대한 미련을 감히 던져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왜냐하면 그는 가톨릭교와 불교를 지칭하는 듯한 다른 종교를 다음과 같이 비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꽃의 연못』에서 「내 자매인 수녀에게 A mi hermana la monja」라는 제목으로 등장한 시에서 우리는 불교를 하나의 종교로 인정하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구원의 영광을 얻어라, 수녀여, 단순함으로/ 나는 관조로 열반하리라…/ 다른 것은 길이고 또 다른 것은 시간이다./ 진리는 다른 것이지만 동일하다.// 인간과 유사한 천상의 신의/ 광채를 찾아 구름을 쫓아라,/ 그 동안에 나는 영원함과 수수께끼에 굶주린 채로 나의 내면을 살펴볼 걸세./ 우리들에게는 사랑이라는 동일한 것이 있다/ 우리는 마침내 합일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수녀여, 순진함으로 구원을 얻게나/ 나는 복잡함으로 열반하리라!(2001, p. 183)
6.3. 호세 환 따블라다
종교 및 사상과 관련된 사항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작가의 태도와 동양 사상에 대한 지식에서 주로 발견할 수가 있다. 작가는 동양의 정신에 많은 호기심과 관심을 지니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멕시코인으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관심도 아주 많은 듯하다. 왜냐하면 작가는 예수에 대한 관심으로 세세(Seché)의 『예수의 기적 이야기 Merveileuse Historie de Jesús』를 구입했으며(1992, p. 283) 그리스도의 왕림에 대한 연대기를 썼고(1992, p. 257), 친구들과 그리스도의 수의에 관해 토론하기(1992, p. 317)도 하며, 하느님에게 자신을 맡기기(1992, p. 254) 때문이다. 그 외에도 따블라다는 문장 중에서 ‘아멘’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1992, p. 257, p. 295; 1991, p. 290). 또한 작가는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동일하게 간주하기도 한다. 한 예는 동물에 대한 불교의 자비를 아시스(Asís) 성인이 그리스도교에 행한 최상의 선물과 동격으로 보는 것이다(1993, p. 85). 그 외에 따블라다는 1945년 8월 2일 미국의 산따 끌라라(Santa Clara) 병원에서 프란시스코회 사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했다(2007, p. 34).
7.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20세기 초반에 멕시코 지성인들의 관심을 끌었던 불교의 수용 상황을 호세 바스꼰셀로스와 아마도 네르보, 호세 환 따블라다 등 세 사람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세 사람은 20세기 초, 뽀르피리오 디아스의 과학 중심 정책에 의한 정신 말살이라는 사회적 상황과 모데르니스모라는 문학적 사조에 의해 동양, 그 중에서도 불교에 심취하게 된다. 불교를 만나는 계기를 보면 물질보다는 정신적 요소를 중요시한 이 세 사람들은 주로 독서를 통해 불교를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자기 작품에 불교 사상이나 용어 등을 직접 원용하여 독자들에게 매우 생소한 불교를 전달하기도 하고 직접 수행생활을 하며 또한 독자들에게도 수행을 권하기도 한다. 특히 호세 바스꼰셀로스의 경우에는 『인도연구』라는 불교서적을 직접 서술하여 멕시코인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은 각기 자신들을 둘러싼 가톨릭교의 분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말았다. 외국어와 외국어문화를 공부하는 우리들 입장에서 판단하더라도 이들이 완전한 불교인이 되기에는 너무나 많은 울타리가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 바스꼰셀로스와 아마도 네르보, 호세 환 따블라다 세 사람은 서로 친분을 나누며 불교를 상당한 수준까지 이해하고 있었고 또한 그 지식을 작품에 직접 적용하고 저술까지 했으니 불교가 꽃피고 있다는 오늘날의 우리 입장에서도 놀랄만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 전통은 옥따비오 빠스에게까지 전수되어 오늘날의 멕시코 문화를 풍부하게 하고 있으니 아주 건설적인 소식이다.
참고문헌
1.
A. Solé, Carlos(ed)(1989), Latin American Writers, vol. II, New York: Macmillan Publishing Company
Carballo, Emmanuel(1986), Protagonistas de la literatura mexicana, México: Sep.
Henríquez Ureña, Pedro(2001), Historia de la cultura en la América hispánica, 강태진 역, <라틴아메리카문화사>, 대구가톨릭대학교 출판부
Joaquín Blanco, José(1983), Se llamaba Vasconcelos, una evocación crítica, México: Fondo de Cultura Económica
Matute, Alvaro(1987), José Vasconcelos y la universidad, México:m UNAM
Robles, Martha(1988), Círculo del tiempo, México: UNAM
Rodríguez Valdés, Gladys(1990), Invitación a Gabriel Mistral(1889-1989), México: Fondo de Cultura Económica
Skirius, John(Com)(1989), El ensayo hispanoamericano del siglo xx, México: Fondo de Cultura Económica
Vasconcelos, José(1959), Estudios Indostánicos, en Obras Completas, tomo III, México: Libreros Mexicanos Unidos, S. A.
________(1950), La sonata mágica, México: Espasa-Calpe Argentina, S. A.
________(1983), Memorias II, México: Fondo de Cultura Económica
2.
Mata, Óscar(1999), El Amado Nervo Narrador, en Amado Nervo, Algunas narraciones, México: Factoría Ediciones.
Mejía Sánchez, Ernesto(2001), 'Estudio Preliminar', en Amado Nervo, Plenitud et al., México: Editorial Porrúa.
Mejías Alonso, Almudena(1987), 'Amado Nervo', en Luis Iñigo Madrigal(Co.), Histortia de la Literatura hispanoamericana, Tomo II, Madrid: Cátedra.
Nervo, Amado(2000), El Castillo de lo inconsciente, México: Dirección General de Publicaciones.
Radhakrishnan, Sarvepalli, Indian Philosophy II, 이거룡역(1996), 『인도철학사II』, 서울: 한길사
Ramírez, Ignacio,
http://www.congresosinaloa.gob.mx/murodehonor2/igancio_ramirez.htm
Ricardo Chaves, José(2000), 'Nervo Fantás(má)tico', en Amado Nervo, El Castillo de lo inconsciente, México: Dirección General de Publicaciones.
3.
Ramírez Gómez, Hector(2004), “Influencia de Oriente en la poesía de José Juan Tablada”, Poligramas, No. 21, pp. 145-153
Ramírez, Ignacio(1994), Ensayos, México: UNAM
Sandoval, Adriana(2009), “José Juan Tablada y el arte”, 2009년 6월 5일 검색, http://cvc.cervantes.es/obref/aih/pdf/ll/aih_11_4_020.pdf
Tablada, José Juan(1991), La Feria de la vida, México: Consejo Nacional para la cultura y las artes
__________(1992), Obras- IV Diario(1900-1944), México: UNAM
__________(1993), Las sombras largas, México: Consejo Nacional para la cultura y las artes
__________(2005), En el país del sol: crónicas japonesas de José Juan Tablada, Prólogo, edición, y notas de Rodolfo Mata, México: UNAM
__________(2007), De Coyoacán a la Quinta Avenida, Selección, edición y estudio preliminar de Rodolfo Mata, México: FCE
__________(2008), Los Imprescindibles, José Juan Tablada, Selección y prólogo de Antonio Saborit, México: Ediciones Cal y Arena
Tanabe, Atsuko(1981), El japonismo de José Juan Tablada, México: UNAM
< 다음 주 강의 예고 >
통청아카데미 通 靑 Academy |
247회 |
주제: |
노자 도덕경 47장 |
이태호(통청아카데미 원장 / 철학박사) | |||||
일시: |
2014. 11. 26. (수) pm 7:00 ~ 9:00 |
장소: 대구시립수성도서관 제1 강좌실 |
문의 |
010-3928-2866 | |||||
h.p. |
cafe.daum.net/tongchungdg |
247회, 2014.11.26, 이태호(통청아카데미 원장/철학박사), 노자 도덕경 47장 248회, 2014.12.3, 이태호(통청아카데미 원장/철학박사), 노자 도덕경 48장 249회, 2014.12.10, 이태호(통청아카데미 원장/철학박사), 노자 도덕경 49장 250회, 2014.12.17, 이태호(통청아카데미 원장/철학박사), 노자 도덕경 50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