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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인간 그리고 문학
생태문학이라는 주제로 월례토론회를 한다고 하니, 뭔가 그럴듯한 말들을 써야 하는데 그게 맘대로 되지 않는다. 아래의 글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편안하게 주절거린 것들을 정리한 주관적인 글이다. 그냥 토론회 터다지기를 하기 위해서 맛보기 주는 글이니 참고만 하기 바란다. 그 글을 바탕으로 보다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으면 좋겠고, 가급적이면 관념이 아닌 실제 우리들의 삶 속에서, 문학 속에서 갈망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기를 바란다.
1.
나는 고교시절부터 동물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때만 해도 뒷산에는 여우굴이 있었고, 여우를 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머리숙인 조들이 한타령으로 몸을 흔들어대는 조밭에서 늑대하고 맞닥뜨리기도 하였다. 나는 어른이 될 때까지 귀신은 물론 도깨비, 호랑이이의 존재를 믿었다. 그냥 막연하게 어른들이나 형들의 입담에 마취되어서 고개를 끄덕거린 게 아니라 실제 귀신의 존재를 두 번이나 보았다. 물론 환영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특별한 자연현상일 수도 있다. 혼불을 직접 목격하기도 하였다. 밤이면 근처 산등성이 높은 곳에서 간간히 파란 불빛이 목격되었다. 어른들은 호랑이 불빛이라고 손짓했다. 호랑이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눈 내린 산에서 어른 손바닥보다 큰 고양이과 동물의 발자국은 숱하게 보았다.
내 상상력은 땅속은 물론 물속, 하늘나라까지도 흘러넘쳤고, 우리는 그런 상상력을 즐겼다. 귀신이야기나 동물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상상력은 점점 더 넓어졌다. 상상 속에서는 불가능이 없었다. 호랑이 등을 타고 다니는 상상, 물속에서 물귀신이랑 싸우는 상상, 처녀로 변장한 여우를 혼내주는 상상, 잘 때 꿈이 두렵기는 했어도 은근히 그런 꿈이 나오기를 바라기도 했다. 우리 동네 뒷산에 있는 동굴이 태평양 바다 밑으로 통할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했다. 그러니 낚시에 잡힌 숭어가 조금만 크기만 하여도 겁이 나서 몰래 놓아주었다. 그 숭어가 용왕의 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거미줄을 잔뜩 뒤집어쓴 제비 한 마리가 우리집 보릿대 낟가리에 부딪혀서 떨어졌다. 나는 바둥거리는 그 놈을 잡아서 거미줄을 뜯어준 다음 풀어주고는, 내년에 박씨를 물고 오라고 얼마나 소원했는지 모른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고교시절 문학의 열병에 걸렸을 때, 나중에 작가가 된다면 꼭 쓰고 싶은 이야기가 동물이야기였다. 동네 어른들 중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몇날 며칠을 꼬박 지새울 만큼 무궁무진하게 흘러나오는 동물이야기, 귀신이야기가 내 문학의 소재가 될 것이라는 예감을 한 셈이다.
2.
안타깝게도 나는 대학에서 내가 그리는 문학을 하지 못했다. 198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은, 광주에서 한시절을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되게 하였다. 그리고 공장에 다니는 형과 버스안내양을 하는 누나라는 진짜 노동자의 피땀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죄,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라는 죄가 나를 짓눌렀다. 그때부터 나는 문학에 대한 꿈을 접었다. 그렇게 눌리고 눌려서 거의 포기상태에 이르렀던 문학에 대한 열망은 우연히 군대생활을 하면서 터져나왔다.
어느 날 나는 군부대 콘크리트 담장 밑에 옹기종기 모여서 살고 있는 풀을 보았다. 내 손바닥보다 큰 동그란 이파리를 펼치고 사는 그 풀은 ‘모굿대’였다. 모굿대 옆에는 냉이들이 이파리를 낮게 펼치고 햇살동냥을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돌나물, 비름, 바랭이까지...... 나생이라고 부르던 냉이, 비듬(비름)이라고 하여 밥상마다 올라오는 그 나물을 나는 잘 먹지 않았다. 왜 우리는 가난하여 만날 풀만 먹어야 하는지, 그런 가난의 대명사인 비듬나물이 싫었는데, 그리워지다니! 돼지감자도 보았다. 부대주위에 흔해서 자주 캐먹었다. 이웃집 남새밭에 많아서 군것질대용으로 캐먹던 놈. 맛이야 없지만 시원하고 씹는 맛이 좋아서 늘 먹거리 부족에 시달리던 우리들의 입을 달래주었던 그놈. 그놈들을 만나니, 그동안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감당이 안될 정도로 떠올랐다. 그때만큼 식물도감을 갈망해본 적이 없다. 그때만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 아파한 적이 없다.
나는 전차를 모는 전차병이었다. 내가 다시 글을 쓰고 풀하고 교감을 하면서 그 쇳덩어리가 달리 보였다. 파괴의 상징으로 보였던 최첨단 전쟁무기가 어느새 편안해졌다. 나는 전차호 주위에다 온갖 꽃들을 파다가 심었고, 날마다 전차한테 말을 걸었다. 애정을 쏟았다. 닦고 쓸고 아껴주었다. 그 쇳덩어리는 내 마음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서 말을 걸었다. 나는 서툰 조종사였다. 그래도 내 전차는 아프지 않았다. 오죽하면 소대 한 고참이,
“조종하는 건 서툰데, 전차가 퍼지지 않는 거 보면 용하다!”
고개를 갸우뚱거렸을 때 나는 웃었다. 나는 그 쇳덩어리를 하나의 생명으로 예우하고 있었다. 거창한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잃어버린 기억들을 찾아가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런 흐름을 따라간 셈이다. 나는 그 쇳덩어리한테 꽃을 걸어주기도 했다. 그 쇳덩어리는 전역할 때까지 나를 지켜주었다. 전차는 내 생각의 틀을 바꿔주었다. 부대 안에서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살아가는 사병들은 물론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군대라는 직업을 택한 하사관이며 장교들까지도 긍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도 저 풀처럼 나하고 살을 비비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대한 공동체라는 생각, 쇳덩어리인 전차만큼이나 웃으면서 다가가야 할 생명으로 여겨졌다. 그러자 군대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편해졌다. 그런 과정들을 나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나는 군대에서 제대하자마자 풀이름을 찾아서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하였고, 그와 동시에 지방어 채록에 나섰다. 나는 잃어버린 기억들을 상당히 복구하였다. 그 기억들이 뇌로 들어와서 문학의 살이 되어주었다. 나는 그 살을 먹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아물러 생태와 언어가 얼마나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지도 뒤늦게 깨달았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생태계와 언어의 다양성은 일치한다. 언어의 생태와 동식물의 생태계가 일치한다는 뜻이고, 동식물이 빠르게 사라지는 지역에서는 인간의 언어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우리 고향의 사사로운 만담 하나, 풀이름 하나, 골짜기 이름 하나, 이 모든 것들도 희귀동식물이나 다름없이 우리가 지켜내야 소중한 유산이다.
1990년대 중반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심하게 앓았다. 나를 지켜낼 수 없을 만큼 버거웠을 때, 나는 다시 종교를 찾기도 하였고, 내가 편해지기 위해서 타협할 것들을 찾아 나섰다. 그 어떤 것도 나를 편하게 해주지 못했다. 나는 일상을 버리고 숲으로 들어갔는데, 숲은 어린 시절 힘들 때마다 찾았던 까까머리 소년을 기억하듯 나를 안아주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숲에 사는 나무들 목소리며 바람소리들이 제 몸 속으로 들어오는 걸 느꼈다. 그때부터 날마다 숲에 가서 명상하고, 나무한테 등을 기대기도 하면서 살아왔다. 귀가 멍해졌다가 맑아지면서, 늙어가는 내 몸에서 마치 허물을 벗듯이 빠져나오는 또 다른 나를 보았고, 달리고 달려서 유년의 신화 속으로 되돌아가는 꿈을 맛보았다. 나는 그런 변화를 받아들였다.
옛날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몸이 아플 때마다 숲으로 갔다. 머리가 아프면 가는 숲, 가슴이 아프면 가는 숲, 어른이 아프면 가는 숲, 아이가 아프면 가는 숲이 따로 있었다. 그것처럼 나는 나만의 숲을 찾았다. 산에 들어가서, ‘여기서부터는 현실세계가 아니다’하고는 현실을 잊으려고 하였고, 판타지세상으로 들어간 것처럼 행동했다. 나비를 보면 말을 붙이고, 나무한테도 말을 붙였다. 종일 숲에 가서 잠을 자기도 하였고, 나보다 나이든 나무 둥치에 기대어 내 정체성을 물어보기도 하였고, 내 문학에 대해서 더듬어보기도 하였다. 나는 숲에 있을 때 가장 편안했다. 나는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신앙생활을 하면 이렇게 편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다시금 군대시절을 떠올렸다. 부대 앞 담장 밑에서 살아가던 온갖 풀들, 한번 움직일 때면 거대한 산조차 부들부들 떨게 할 정도로 무시무시했던 전차, 어쩔 수 없이 모여서 군복을 입고 3년을 땜질하고 가야 하는 숱한 얼굴들. 그들과 교감하면서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왜 사회에 나오자마자 그런 생각을 잃어 버렸는지 자책하면서, 내가 숲이랑 흙하고 얼마나 가깝게 살아왔는지 새삼 깨달았다. 사춘기까지의 내 삶은 풀과 흙을 둘러싼 삶이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숱한 동물들도 떠오르고, 숱한 사람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수많은 상상력들이었다. 내 몸속에서 사춘기의 암울한 터널을 벗어나게 해주었던 그 상상력들, 대학에 진학하면서 놓아버렸던 그 상상력들을 그제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 첫걸음이 동물이야기를 다룬 소설이었다. 나는 숲에 있다가 집에 오기만 하면, 마치 자루를 거꾸로 들고 쏟아내듯이 술술술 글을 썼다. 숲에 가면 내가 그런 경험을 했던가, 내가 그런 장면을 보았던가 할 정도로 낯선 기억까지도 복원이 되었다. 그러면서 내 문학에 건강한 낭만성이 없음을 알았다. 아, 이거였구나! 나는 탄식하듯이 내 가슴을 쳤다.
결국 긴 세월을 돌고 돌았지만, 군대시절에 내가 전차라는 쇳덩어리를 보고 느꼈던 그런 감정들이 바로 생태적인 생각이었음을 나는 확인하였다. 아파트 화단에서 옹기종기 살아가는 작은 풀들이 얼마나 예쁜지 잠시 발걸음을 멈출 수 있는 사람들, 생태라는 말을 한 번도 씹어보지 않았지만 늘 타인들을 배려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좁고 작은 연립주택 지하방에서 살지만 생각이 긍정적이고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 큰것보다는 작은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라면 생태라는 말을 몰라도 이미 생태적인 삶을 살고 있다. 굳이 생태니 뭐니 하고 거창한 뜻을 품지 않고,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에게 생태적인 삶 운운하는 말을 귀동냥하지 않아도, 자신의 몸과 생각이 생태적으로 변해버린 경우가 많다. 그런 작은 깨달음이 내게 큰 힘을 주었다. 더불어 이제야 내가 글을 쓴다는 즐거움을 조금은 맛볼 수 있었다. 나는 거창한 생태에 대한 담론보다는 우리주위에서 쉽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소중한 것들, 우리의 삶하고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가치보다도 절대적인 것들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었다.
3
생태문학을 하는 나에게 조상들의 숨소리가 묻어있는 옛이야기는 기름진 흙이나 다름없다.
여러 갈래의 옛이야기들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에 가까운 이야기이며, 가장 자유로운 판타지 세계이다. 아동문학은 그런 옛이야기의 세계와 가장 맞닿아 있다. 옛이야기 속 생명체들은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로운 존재들이다. 옛이야기 속 생명체는 현실세계에 나오는 생명체이면서도 또 다른 2차원이나 3차원적인 생명체들이다.
「단군신화」에는 곰하고 호랑이가 나온다. 둘 다 야생의 세계에서는 제왕노릇을 하면서 살아가는 동물이고, 둘 다 인간이 위협을 느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호랑이는 육식성이고 곰은 잡식성이다. 어느 정도 생태를 아는 사람이라면, 두 동물이 마늘과 쑥을 먹으며 100일을 버틴다는 이야기만 듣고도, 일찌감치 곰의 승리를 예측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요즘 사람들 눈으로 바라다본 것이다. 인간에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고 숭배의 대상이기도 한 곰이 우리의 조상이라는 이야기는, 우리 조상들의 동물을 바라다보는 세계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옛이야기를 보면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인간이 동굴에서 살던 시절에는, 동물이 인간보다 힘이 강했다. 인간은 자신보다 강한 호랑이나 곰을 두려워하고 숭배하기도 했다. 당시 인간들은 비록 자신들보다 힘이 약한 동물이라고 할지라도 지배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생각이 있고, 인간하고 비슷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인간이 무기를 만들면서 점차 힘의 균형의 팽팽해졌고, 결국은 인간들이 승리를 하자 동물들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단정해버린다.
거듭 이야기하자만, 옛날에는 인간들이 지금처럼 야생동물을 힘으로 압도하지 못했다. 창이나 칼 혹은 화살을 들었으나 그래도 야생동물은 여전히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적어도 총이라는 서양무기가 나오기 전까지 이런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서양의 무기로 무장한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하면서부터 동물과 인간의 힘겨루기는 완전히 인간 쪽으로 기울어버린다. 그 전까지만 해도, 호랑이가 조선의 수도인 한양까지 내려와서 사람을 물어 죽이는 일은 허다했다. 물론 인간도 호랑이를 잡았지만,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호랑이를 비롯한 야생동물들이 당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호랑이를 비롯하여 표범, 곰, 늑대, 여우, 멧돼지 같은 동물들을 두려워했다. 호랑이는 서울 근교의 남산을 비롯하여 북한산 도봉산 인왕산 관악산에만 가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당연히 야생동물과 인간의 갈등은 일상화될 수밖에 없었지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큰 사회문제가 되지 않았다. 요즘은 그걸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서울에 야생 멧돼지 한 마리만 나타나면 그야말로 난리가 난 것처럼 떠들어대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당시에도 전문적인 사냥꾼들이 있었다. 그들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작았다. 일반 사람들도 이유없이 야생동물을 잡지는 않았다. 동물과 인간이 생태계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살았기 때문에 때로는 서로 충돌해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는 뜻이지요. 그만큼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쨌든 수많은 신화와 옛이야기 속에는 크고 작은 동물들이 나온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요즘 멸종되어 가는 곰을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그 자체가 한없이 우리 인간을 낮추면서, 다른 생명을 존중한다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만큼 다른 생명체들을 존중하면서 살았다는 뜻이다. 우리 인간 외에도 다른 생명체가 살아있음을, 서로 떨어져서 사는 생명체가 아님을 암시한 게 바로 단군신화이다.
『까치와 호랑이와 토끼』라는 옛이야기가 있다. 힘없는 까치새끼를 잡아먹는 호랑이. 그런 호랑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토끼가 혼내준다는 이야기다. 적당히 동물들의 생태를 드러내면서, 동물들을 의인화하여 인간세상을 풍자한다. 너무도 통쾌하고 시원하다. 때로는 웃음이 나오고, 때로는 분노하기도 한다. 못사는 생명체들, 약한 생명체들 이야기를 대변하기도 하고, 때로는 생명존중 사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생태계에서 호랑이와 토끼의 싸움은 지금 이스라엘하고 팔레스타인하고 싸우는 거나 똑같다. 이스라엘은 최첨단 무기로 중무장하고 있고, 팔레스타인들은 돌이나 화염병으로 탱크를 향해 돌진한다. 토끼가 호랑이한테 무모하게 덤벼드는 것이나 똑같다. 그런데 옛이야기 속에서는 약자가 강자를 멋지게 혼내준다. 생태계의 객관적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잘못되어 있는 생태적인 진실을 상상의 세계에서나마 바로 잡으려고 하는 열망의 반영이다.
구전문학인 『토끼전』을 보면 힘있는 용왕이 자신의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서 힘이 없는 토끼의 생명을 앗아가려고 한다. 그 중간에서 절대 권력을 쥔 용왕에게 아첨하는 문어나 자라 같은 생명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것이 판타지 세상에서 벌어진 생태적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옛이야기를 비롯하여 구전문학을 ‘생태문학이다’하고 말뚝 박을 수는 없으나, 다루는 주제에 따라서는 훌륭한 생태문학의 교과서가 될 수도 있다. 동식물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런 게 아니다. 옛이야기나 구전문학에 등장하는 동물이야기는 거의 다 인간세상을 풍자한 우화형식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의 내면에는 ‘욕심없이 버리고 살자’,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말자’,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말아라’, ‘최대한 겸손하고 낮게 살자’ 등 우리 조상들의 생태관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과거보러 가는 선비는 자신하고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데도, 구렁이와 까치의 생태에 개입하게 된다. 『은혜갚은 까치』혹은 『은혜갚은 까투리』라는 이야기기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데,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것은 그만큼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했다는 뜻이다. 그때 선비한테 구원받은 까치는 자기 목숨을 던져서 선비의 목숨을 구해준다는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와 비슷한 이야기는 많다.
오갈 데 없고 배고파서 사람이 사는 부엌까지 찾아든 두꺼비. 그 두꺼비한테 누룽지를 주고 편안하게 살아한 마음 고운 처녀는 나중에 마을 뒷산 동굴에 사는 무서운 괴물한테 재물로 바쳐지는데, 그때 두꺼비가 자기 생명을 걸고 처녀를 지켜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이야기에 나타나는 생명사랑, 생명존중 사상이야말로 생태문학이 지향하는 소중한 씨앗이다. 옛이야기나 고전문학 작품 속에 담겨있는 생명사상은 지금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생태문학하고 다르지 않다.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고, 함부로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을 혼내주고, 이웃을 미워하지 않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자기들보다 못한 생명체들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생태적인 삶이다. 나는 옛이야기나 구전문학이 생태문학의 작은 교과서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동서양의 옛이야기를 보면 생태계를 바라다보는 관점은 약간의 차이를 드러낸다. 서양의 신화나 옛이야기에 나오는 동물이야기는 지나치게 의인화가 되어있어서, 등장하는 동물들의 생태가 대부분 무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옛이야기나 구전문학에 나오는 동물들 이야기는, 등장하는 동물의 생태적인 특징이 전혀 무시되지 않고 적당하게 표현이 되어 있다. 가령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인간을 다시 구원하기 위해 종을 치는 까치 이야기를 보면, 까치는 자기 머리로 종을 들이받는다. 만약 서양 이야기라면 머리가 아니라 어떤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하여 종을 칠 것이다. 호랑이를 혼내주는 토끼이야기도 잘 들여다보면, 너무도 생태적이다. 연못에다 꼬리를 넣고 있으면 물고기가 문다는 발상을 보라. 겨울이니까 얼음이 언다. 얼면 얼수록 꼬리가 무거워져서 물고기가 많이 달라붙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현상은 동물을 바라다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휴머니즘사상으로 무장한 서양인들은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다보니 대자연을 대하는 눈이 동양하고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단정적으로 잘라서 말할 수야 없겠지만, 서양에 비해서 동양이 생명주의 사상이 깊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4.
조상들의 생명존중 사상은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감을 딸 때, 까치랑 청설모들의 먹이를 남겨둔다. 감나무는 비록 사람이 심었지만 열매를 맺고 달디달게 익히는 건 바람과 해와 물과 땅이다. 그것은 인간이 소유할 수 없으며, 대자연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의 공유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까치랑 청설모들이 먹을 수 있도록 남겨둔다. 얼마나 아름다운 여백인가. 까치밥이라는 말은 서양에는 없다. 까치밥이라는 그 단어 하나에 우리 조상들의 작지만 따뜻한 생명관이 들어있다.
『흥보전』에 나오는 제비는 우리나라 사람들하고 아주 친숙한 동이다. 나는 제비하고 청개구리는 절대 괴롭히지 않았다. 어른들도 제비하고 청개구리를 괴롭히면 죄받는다고 했다. 청개구리는 부모를 물가에다 묻어서 불쌍한 동물이라고 하였고, 제비는 상서로운 새로서 인간이랑 같이 살기 때문에 함부로 괴롭히거나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나는 살아오면서 제비를 잡아먹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제비가 오지 않으면 복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믿었다.
우리집은 새마을운동 때 반쯤 헐고 지었는데, 기둥을 세우자마자 제비가 집을 짓기 시작했다. 식구들은 제비집을 보호하려고 공사를 늦추기도 하고, 비 맞지 않도록 제비집을 가려주기도 하였다. 지금은 고향에 가도 제비집을 볼 수가 없다. 사람들이 제비를 귀찮아한다. 제비가 들어오면 시끄럽고, 마루에다 온갖 똥을 떨어트린다. 이제 제비가 들어오면 복이 온다는 신화도 사라져버렸다. 제비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셈이다. 옛날보다 훨씬 잘 살게 되었지만 정신은 더 여유가 없고 가난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예전보다 수백 배 더 풍요로워졌는데도 마음 속 여백은 더 없어졌다. 그 작은 새 하나도 여유롭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스님들의 거처인 암자에서도 제비들은 마음놓고 살아가지 못한다. 스님들은 제비가 절에 오지 못하도록 작은 망을 치거나 서까래 틈을 막아버린다. 이 나라 어디에도 제비라는 작은 생명체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곳이 없다.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다.
비둘기도 마찬가지다. 원래 비둘기는 사람들이 애완용으로 기르던 새다. 도시에서 사는 비둘기를 ‘집비둘기’라고 하는데, 야생 비둘기를 애완용으로 키우기 위해서 길들여서 번식시킨 새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생명력이 강해서 인간이 만들어놓은 도시에서 잘 적응했다. 사람들이 먹이를 주지 않아도 훌륭하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들을 자세히 보면 발이 성한 녀석이 없다. 녀석들은 아파트 베란다나 단독주택 처마 틈이나 다리의 난간 사이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비둘기가 베란다에 오는 걸 싫어한다. 오늘도 비둘기들은 사람들이 쫓으면 날아갔다가 다시 날아오고, 또 쫓으면 다시 날아가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우리마을은 강변이라 여름이면 큰물이 쪄서 들이 누런 흙빛바다로 변해버린다. 강물이 논에서 빠져나갈 때 수많은 물고기를 잡았는데, 가끔씩 팔뚝보다 큰 잉어도 잡혔다. 너무 큰 잉어가 잡히면, 잡은 사람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동네 어르신들이 보고 풀어주라고 하였다. 잉어를 잡은 사람도 그 뜻에 따라 풀어주었다.
구렁이도 마찬가지였다. 구렁이는 돈이 되기 때문에 대부분 잡으려고 했지만 집 근처에 살거나 너무 큰 구렁이는 잡지 않았다. 구렁이가 집을 지킨다는 이야기야말로 어느 마을에 가건 공통적으로 전해온다. 집구렁이를 함부로 잡았다가 큰 재앙을 당했다는 이야기 역시 어느 마을에 가건 쉽게 들을 수 있다. 집구렁이가 사람을 해쳤다는 이야기는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다 뒤져도 들을 수 없다. 그 무시무시한 뱀이 인간의 집이라는 곳에서 인간하고 적절하게 거리를 두면서 살아갔다는 뜻이다.
우리 마을에는 각 성씨마다 숭배하는 동물이 있었다. 경주 이씨였던 우리는 자라, 문씨 성을 가진 분들은 살쾡이, 박씨 성을 가진 분들은 제비를 자기네 조상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이씨 성을 가진 아이와 문씨 성을 가진 아이가 싸우면, 자라와 살쾡이를 마구 욕했고, 그러면 자기네들 조상을 모독한다고 발끈했다. 한번은 내가 강가에 냇자갈처럼 널린 자라 새끼를 보고는, 키우고 싶은 욕망을 참지 못하고 잡아왔다. 그러자 할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놈아, 자래는 느그 하나씨(할아버지)여. 너는 하나씨를 잡아오냐!”
나는 얼른 가서 풀어주고야 말았다.
거듭 말하지만 나 어렸을 때만 해도 호랑이, 표범, 늑대, 여우를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때는 산이 아이들에게 놀이의 공간이자 나무나 꼴을 베는 노동의 공간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산에 갈 때마다 늘 긴장하였고, 실제로 호랑이의 존재를 믿었다. 학교가면 친구들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 중 절반은 야생동물 이야기였다.
아무튼 이유없이 야생동물을 잡지는 않았다. 심지어 겨울에 인가로 내려온 노루나 꿩 산토끼는 잡지 않았다. 우리집 부엌으로도 몇 번이나 노루가 내려왔지만, 한 번도 잡지 않았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이웃집 할아버지는 1년에 한 번씩 오소리 사냥을 갔다. 멀리 불갑산으로 가서 오소리 굴을 찾은 다음, 연기를 피워서 잡는다. 한 번에 한 마리씩 잡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할머니가 앓고 있는 병에 오소리가 좋다고 해서 잡는다고 하였다. 그것도 새끼를 번식하지 않는 겨울에 잡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어린나이였지만 어른들이 야생동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꼭 필요할 때만 잡았다는 뜻이다. 일찌감치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사람들은, 우리나라 호랑이와 늑대를 멸종시키기 위해서 잡았다. 이 지구상에서 멸종당한 수많은 야생동물 중 상당수는 서양 사람들의 무차별한 살육으로 비극이 일어났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들의 모습도 많이 변해버렸다. 우리는 어느새 우리만 잘 살라고 하는 게 몸에 베어버렸는지 모른다. 자기 동네 아파트 값이 떨어 질까봐 치매노인복지관이나 장애인복지관이 들어서려고 하면 그야말로 사생결단을 하고 나선다. 정말 무시무시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우리 동네에 치매노인복지관이 들어설 때도 수많은 젊은 여자들이 반대서명운동을 하였다. 그런 세상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라는 곳이다. 도시라는 곳은 인간의 편리함이 집약된 곳이다. 생태적으로 도시를 보면, 도시는 인간이 ‘우리는 동물들하고 같이 살지 않겠다!’하고 선언한 거나 다름없는 세상이다. 아파트 주위에 있는 풀밭에도 꼬박꼬박 살충제를 뿌리고, 흙이란 흙은 콘크리트로 덮어버리고, 가로수마저 자유롭게 자라면 싹둑싹둑 잘라버린다. 그런 도시에서 살아남은 야생 고양이랑 바퀴벌레들은 참 대단한 친구들이다. 도시야말로 가장 반 생태적인 곳이다. 우리는 그런 곳에 살고 있다.
‘데즈먼드 모리스(1)’라는 과학자가 말한 ‘인간들이 사는 동물원’이 바로 문명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도시’다. 오직 인간들만이 사는 동물원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극단적으로 이기주의가 되어가고, 인간도 생태계 속에 있는 작은 생명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 조상들 숨결에 베어있던 따뜻한 생명사상은 어느새 단절이 되어버렸고, 인간 외에 생명체들은 지배의 대상이나 눈요기하는 대상이 되었다. 한때 우리의 이웃으로 인정했고, 그들만의 삶과 영역을 존중하면서 살았던 우리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자연생태계에 대해서도 많이 밝혀졌다. 그런 만큼 대자연 속에 숨어있던 신비감도 사라져 버렸다. 얻은 것도 많지만, 그런 과학은 인간을 오만하게 만들었다. 상상의 여백은 점점 줄어들고 모든 걸 과학이라는 잣대로만 들이대고 있는 요즈음, 나는 산토끼를 잡아도 산신령이 잡아준 거니까 동서남북으로 큰절을 올리라고 하던 할머니의 눈빛이 통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산신령님, 고맙습니다!”하고 동서남북으로 절하던 내 모습, 그 자체가 신화였다. 그 자체가 자연의 일부였다. 이웃집 형은 여름에 산토끼 한 마리를 잡았는데 호랑이신령님이 잡아주었다고 믿었다. 누군가 산토끼를 잡아서 이녁이 가는 길 앞에다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그 형은 몸이 좋지 않은 동생을 떠올렸고, 호랑이 신령님이 동생을 위해서 잡아준 거라고 확신했다. 그때부터 그 형은 호랑이로 추정되는 발자국을 보면, 우리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호랑이 신령님, 고맙습니다!”하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 형의 믿음은 기록되지 않는 신화였다.
수많은 옛이야기나 고전문학 작품에 녹아들어 있던 생명존중 사상이 왜 요즘은 사라져 버렸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일제침략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서양식 무기로 중무장을 한 일본은 생태적으로 우리나라를 완전히 점령해버렸다. 인간의 생태에서 가장 중요한 우리 고유의 언어마저 없애려고 하였으니, 얼마나 힘든 시기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수많은 야생동물을 멸종시켰다. 특히 호랑이는 조선의 혼이 담겨있다고 하여 닥치는 대로 잡아죽였다. 일본이 패망한 뒤에는 곧바로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은 짧은 시간 안에 생태계를 엄청나게 파괴해버린다.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지만, 인간들이 싸우는 싸움터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공존하는 삶의 근거지이다. 엄청난 양의 포탄에 맞은 땅이 죽어가고, 수많은 화약무기를 맞은 식물, 동물들이 죽어갔다. 전쟁이 끝나자 암울한 독재시대와 잘 살아보자는 산업화의 물결이 일어난다. 오직 돈 버는 거 외에는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설령 우리의 아들 딸들이 공장에서 본드냄새를 맡고 죽어간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던 시대였다. 공장에서 쏟아져 나온 오폐수들이 강을 썩게 하고, 들에다 쏟아 부은 농약이 모든 생명체를 멸종시켜도 누구 하나 지적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조상 대대로 내림되어온 아름다운 생명사상도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우리나라는 눈부신 경제발전으로 어느 정도의 가난에서는 벗어났지만, 그만큼 잃어버린 것도 많다. 어떻게 돈을 버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많이 버는 게 중요한 세상이 되었고, 돈 많은 사람들을 우러러보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나는 ‘사장님’이라는 말을 무지무지 싫어하는데, 우리집에 오는 우체부부터 택배기사, 수도검침원 등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환장할 일이다. 그만큼 사장님의 대변되는 돈의 세상이 온 것이다. 사기를 쳐서 돈을 벌었든, 멀쩡한 산을 다 밀어버리고 택지를 만들어서 떼돈을 벌었든, 무조건 돈만 많으면 대접받는 세상, 강아지가 고양이나 다 사장님인 세상.
5.
생태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놀랄 정도로 주관적이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만이 절대적이라고 믿는다. 생태문학을 하려는 사람은, 생태를 절대적으로 확신해서는 안 된다. 알아갈수록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갇힌 생태문학을 하게 된다. 생태하고 관련된 분야에서 일을 하는 분들도 놀라울 정도로 생각이 닫혀있다. 숲해설자, 생태해설자 등등, 뭔가 남들보다 생태라는 분야에서 앞서간다는 사람들은 아는만큼 닫혀있다. 나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 얼마 전 한 후배가 이런 말을 하였다.
“선배님, 얼마 전 한 잡지에 글을 실었다고 화가 나서 안 싣겠다고 해버렸어요. 왜 그러냐고요? 너무 많이 간섭해요. 작가가 경험했다고 해도 믿지 않고 고치라고 하는 둥. 제가 비가 오는 날 낮에 산에 가다가 소쩍새 우는 장면을 묘사했거든요. 기분도 적적했는데, 밤에 우는 줄 알았던 소쩍새가 울어서....뭐 그런 식으로 묘사했는데, 한사코 소쩍새 부분을 고치라는 겁니다. 선배님, 그게 옳은가요? 물론 전문가의 감수를 받았다고 하지만.....”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잡지사 기자들은 그 후배에게 도감은 물론 새전문가의 말까지 들이밀면서, 낮에 어떻게 소쩍새가 우냐고 압박을 했을 거다. 거기서 물러나면 생태문학을 할 수가 없다. 자신이 옳다는 걸 믿고 과감하게 써야 한다. 나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산에 가는 편인데, 소쩍새들이 한창 울 때는 아침에도 듣고, 낮에도 듣는다. 특히 흐린 날은 낮에 흔하게 들을 수 있다. 현장에서 살아가는 작가의 구체적인 고민에 동의를 해주어야지,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오류가 있을 터인데 그것만 믿고 고칠 것을 강요한다면, 그것도 문제다. 이럴 때는 괄호를 쳐서 ‘주로 밤에 울지만 간혹 낮에도 운다’라고 설명해주면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귀뚜라미라는 원래 초식성이었는데, 살아가는 환경이 변하자 육식성으로 변했다. 지금은 잡식성으로 변해서 무엇이든 다 먹는다. 자연이란 이런 것이다. 자연을 단정적으로 보면 안 된다고 하시던 고 최기철 박사님의 말씀이 자꾸 떠오른다.
"자연이란 몰라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들이 다 밝혀낸 것도 허점이 있거든요. 누가 알았겠어요? 진딧물을 길러서 그 우유를 먹는다고 알려진 개미들이, 때로는 그 진딧물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누가 알았겠어요? 내가 아는 미국의 세계적인 과학자들에게 이 말을 했더니 깜짝 놀라더군요. 사람도 그렇잖아요? 젖소를 키우다가 나중에는 잡아먹잖아요? 한 마디로 대자연 속에서는 정답이란 없지요. 변해 가는 겁니다, 뭐든지.."
새울음 소리만 해도 그렇다. 나는 참새소리를 묘사한 문학작품 중에서 “짹짹”이라는 말 외에 다른 의성어를 본 적이 없다. 안타깝다. 나는 날마다 참새를 관찰한다. 참새가 얼마나 다양한 음성으로 이야기하는지 우리는 왜 몰랐을까. 참새는 열 가지도 넘는 언어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듣는 사람에 따라서 그 소리는 천차만별이고, 그것을 문장으로 지어내는 것이 문학하는 사람의 몫이다. 그걸 부정하고 ‘짹짹’하는 소리만 쓰라고 한다면, 그건 작가들이 밤새워 고민하고 자연을 보면서 자기 문장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째재재재’, ‘찌이찌이’,‘쪼이쪼이’ 등 수많은 소리가 참새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
뻐꾸기도 수십 가지 언어로 감정을 표현한다. 어떤 사람들은 '뻐꾹뻐꾹' 운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쑥국쑥국', 어떤 사람들은 '떡국떡국', 어떤 사람들은 '꾹국꾹국' 그래서 뻐꾸기 이름은 지역에 따라서 '쑥국새', '떡국새', '꾹꾹새'라고 불려진다. 그렇게 듣는 사람에 따라서 다 다르다. 그런 다양함이 생태문학을 하는 사람들 글에서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옭아매서는 안 된다. 대자연 속에서는 절대적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변해간다. 그게 대자연의 속성이다. 그것을 인간의 눈으로 규정짓고, 자신이 아는 것을 절대적이라고 해서는 곤란하다.
“삼동내-- 얼었다 나온 나를/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왜 저리 놀려대누/어머니 없이 자란 나를/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왜 저리 놀려대누/해바른 봄날 한종일 두고/모래틈에서 나 홀로 놀자”
정지용의 시인 <종달새>라는 시다. 나도 종달새 울음소리를 많이 들어보았지만 '지리 지리 지리리...'하고 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지용은 자신의 느낌을 그렇게 표현했고, 누구도 그 부분이 틀렸다고 비판하지 않았다.
“큰물져/야단인데도/종다리처럼 명랑하다/지저구/지저구/소리마저 닮았구나/그 웃음/흐르러 피면/나비 절로 날은다”
박명순의 시조 <종다리처럼>다. 이 시조에 나오는 종다리는 '지리 지리...'가 아니라 '지저구 지저구'하고 운다. 노양근의 『열세동무』라는 책에도 종다리의 울음소리가 나오는데 "쪼롱 쪼롱 쪼로롱--"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대체 종다리의 울음소리는 어떻게 표현해야 옳을까. 과학자들이 정확하게 녹취한 다음, 수백 명이 검증해서 이런 소리만 쓰라고 해야 할까. 그러면 얼마나 문학이 존재해야할 필요가 없어지겠지.
종다리 울음소리를 각자 다르게 표현한 작가들을 틀렸다고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자연의 소리가 어떻게 똑같이 들릴 수가 있겠는가.
나는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에게 생태적인 상상력을 더 충전시켜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생태적인 감각을 잃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작품 속의 생태와 현실 속의 생태에 대해서 때로는 혼란스러워질 때도 있다. 얼핏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문학작품 속의 생태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생태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걸 한 묶음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동화 속에서는 나무들까지도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에게 소리친다. 동화 속에서는 언어를 건네받게 될 것이 별이니 꽃인지 나무인지 혹은 인간인지 아직 확실치가 않다. 동화 속에서는 모든 것이 취소가능하며 모든 것이 잠정적인 것이다. 마치 깊은 곳에서 침묵이 언어를 누구에게 영원히 줄 것인가, 별에게인가, 나무에게인가 아니면 인간에게인가 곰곰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인간이 말을 받기는 했지만, 그러나 얼마 동안 나무와 별과 짐승도 계속 더 말을 하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동화를 쓸 때마다 ‘막스 피카르트(2)라는 철학자가 쓴 동화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진정한 동화 속에서는 모든 것이 불가사의하고 신비롭고 엉뚱해야만 하고... 전 자연이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뒤엉켜 있어야만 한다. 그것은 무법적이며 자유로운, 전반부의 무정부 상태의 시대이며, 자연의 자연 상태이며, 국가 이전의 시대이다...자연의 자연 상태가 영원한 왕국을 나타내는 기묘한 표상이듯이...” 그렇다, 막스 피카르트의 말처럼 문학은 자유스러워야 한다.
생태문학일수록 그렇다. 생태 그 자체가 판타지이며, 대자연 그 자체가 끊임없이 요동치면서 변화하는 서사시다. 동화는 신화와 가장 닮아서 자유로운 예술장르 중 하나다. 규정된 게 없다. 대자연은 더욱 그렇다. 그 속에서는 모두 소통한다. 나무랑 풀이랑 자유롭게 소통하고 동등한 인격체로 만난다. 인간들이 저주하는 바퀴벌레는 물론 작은 바이러스하고도 말을 한다. 오직 인간들만이 대자연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자기들 나름대로 이름붙이고 규정하고 있다.
문학작품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은 아니다. 작가가 꾸며낸 상상의 공간이요. 나는 그 속에 나오는 모든 생명체들의 움직임 역시 작가가 의도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 움직여야 한다. 그렇다고 생태를 왜곡하거나 함부로 묘사한다는 뜻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문학 속에서는 모든 것이 자유로운 존재임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특정 동식물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경우라고 해도, 그것이 생태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 아닌 이상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가 있다. 닭을 날게 할 수도 있고, 오리를 말하게 할 수도 있다. 때로는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없는 귀한 꽃들도 등장시킬 수 있고, 심지어 멸종된 동물도 등장시킬 수 있다. 다만 그렇게 등장시킨 동식물들이 작품 속에서 얼마나 필요한 존재이냐, 작품 속에서 얼마나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느냐를 따져보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지금 현실의 공간을 비교하면서, 그런 풀이 어디 있느냐, 그런 동물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설령 이미 멸종해버린 동물이라고 해도 그 작품하고 연관성이 있으면 묘사를 하고 등장시킬 수 있다.
생태문학과 판타지문학을 동화라는 틀에다 묶어버리면 안 된다. 생태와 판타지, 그 본성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로운 장르인데, 동화라는 틀 속에다 가둬버리면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야생동물을 새장 안에다 가둬주는 거랑 똑같다. 지금 우리나라 생태문학과 판타지문학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도, 동화라는 혹은 문학이라는 틀 속에다 담아두고서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고전이라고 공부하는 생태문학이나 판타지문학을 쓴 서양 작가들은 동화라는 틀 속에 갇혀서 그런 글을 쓴 게 아니다. 나는 이런 생각까지도 해본다. 좋은 생태문학이나 판타지문학을 하려면, 아동문학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야 한다고. 그래야만 자유로운 본성을 살려서 좋은 작품이 나올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생태니 판타지니 하는 것을 자꾸만 문학에다 꿰맞추려다 보면, 생태니 판타지니 하는 본성하고 멀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럴 바에는 아예 공부를 하지 않는 편이 낫다.
6.
우리 동네는 참으로 근사한 전원주택마을이다. 앞으로 이 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숲이 좋다. 눈만 뜨면 햇살이 푸지게 쏟아진다. 온갖 새들의 언어를 들을 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잠자리에서도 물의 흐름이 느껴지고, 할머니 닮은 달하고 오래된 신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따뜻할 줄 알았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런 자연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웃과 이웃들이 따뜻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지도 않았고, 이웃과 이웃이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주고 받지 않는다. 혹자들은 우리 마을을 보고 유령이 사는 곳 같다는 표현했다. 애완동물 한 마리도 맘대로 키울 수 없다. 한 번은 우리집 개가 이웃집 정원에 들어갔다. 아내가 부랴부랴 개를 불러내고는 그 집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 집 주인은 아내에게 살벌한 눈빛을 쏘았다.
“고발할 거예요! 개를 묶어서 다니지 않으면 고발할 거예요!”
아, 절망했다. 그들을 인간으로 보아야 하는가, 그 근원적인 문제부터 고민을 하다가, 그래 인간이니까 저렇지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때부터 그 사람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남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나도 생태적인 삶을 꿈꾸지만, 그 사람들도 생태적인 삶을 꿈꾸고 산속으로 들어와서 살고 있다. 이렇게 생태적인 삶을 꿈꾼다는 것도 다르다. 이명박 대통령도 생태적인 삶을 말하고, 골프장을 짓는 이들도, 저수지에다 수상골프장을 짓는 이들도 그런 말을 한다. 그만큼 똑같은 말이라도 해도 살아가는 방법은 다르다. 내가 더욱 분노했던 건 그 사람이 ‘전원주택에서 산다’는 사실 때문이다. 만약 아파트단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그렇게 분노하지 않았으리라.
며칠 뒤에서야 나는 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였다. 이웃집 개가 자기네 정원에 들어왔다고 고발하겠다고 한 그 사람의 생각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런 사람하고 어떤 식으로 살아야할지 그건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그 사람의 생각 자체를 인정해야만 했다.
그것이 생태적인 삶의 첫걸음이다.
내가 나무나 모기 혹은 똥파리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나 똑같다.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만큼 인내를 요구하는지, 얼마만큼 고통을 요구하는지도 알았다.
나하고 다른 남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렇게 힘들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갈등이 줄어든다. 나하고 생각이 다른 이들, 우리하고 생각이 다른 이들, 남과 북, 기독교와 회교, 기독교와 불교, 전라도와 경상도, 백인과 흑인......서로를 인정해야 함이, 그것이 생태적인 삶을 실타래를 푸는 첫 단추다. 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동족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렵거늘, 하물며 인간이 한수 아래로 내려다보는 동식물은 어떠하겠는가.
아무리 인간이 개를 안다고 해도, 그것은 피상적일 뿐 개를 모른다. 개의 마음속에 들어가도 모를 것이다. 풀과 나무 소, 닭들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들의 삶을, 우리하고 다른 그들의 방식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랬을 때 인간의 삶은 여백이 생긴다.
그 소통을 위해서 문학이 존재한다. 문학은 인간과 생태계 사이에서 소통의 역할을 한다. 나는 인간이 바퀴벌레 같은 동물이나 바랭이같은 식물보다 우월한 생명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이해할 뿐이다.
그 어떤 종교적인 해석도 거부한다. 내게는 그 어떤 성인군자라고 해도 자연의 일부로 보인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 그런 흐름 속에서 우리는 살아왔다. 다만 인간이 위대해보일 뿐이다. 다른 동물들을 지배하고, 더 무서운 무기를 만들어내고, 더 편리한 기계들을 만들어내고, 우주에 가고, 동식물들 복제해내고, 더 오래 살고, 더 풍요롭게 살고......그래서 위대해 보일 뿐이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우월하다고 들이대는 잣대는 인간위주의 관점일 뿐이다.
사실 생태적인 삶이란 대단한 구호가 아니다. 단순하고 명확하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책은 한국에서 상당한 파급력을 주는 책이지만 그 책의 뜻대로 사는 이들은 많지 않다. 결국 생태적인 삶이라는 것도 상당히 관념 속에서 회자되고 있다. 나 자신도 그렇다. 작게 살자고 하면서도 그렇지 못하다. 왜 못 버리나? 버려야 하는데. 작다는 것은 불편하다는 뜻이고, 느리다는 뜻이고, 힘겹다는 뜻이다. 그런 과정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우리의 삶이 생태적인 흐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내 문학의 과제도 그런 흐름들을 어떻게 끌고 오느냐 하는 점이다. 동식물의 삶도 중요하지만, 역시 내가 인간이다 보니 이런 문제들은 인간들 속에서 풀어야 한다. 결국 인간들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엮어서 생태적인 화두를 던지느냐 하는 것이다. 비단 아동문학에만 국한되는 말은 아니다. 나는 이미 몇 편의 단편소설을 통해 그런 화두를 키워가고 있다. 생태니 생명이니 하는 단어의 혼란에 더 이상 고민할 필요없다. 동식물은 물론 흙이나 물 혹은 인간이 만들어낸 물건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다 포함하는 말이라면 생태니 생명이니 하는 말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 말장난이다. 그런 것 필요없다.
언젠가 가야산에서 흙 한 봉지를 동냥해온 적이 있었다. 약간 붉은 빛을 띠면서도 찰흙처럼 몽글몽글한 부드러움이 공깃돌만한 돌멩이 하나 허락하지 않았다. 손으로 만지면 한없이 부드럽고, 물과 버무려진다면 인절미만큼이나 쫄깃거리고, 냄비에다 듬뿍 퍼다가 온갖 푸성귀 추렴해다가 배터지도록 비벼먹고 싶은 흙. 그런 흙을 화분에다 담아 놓고는 뭘 심을까 궁리만 돋구다가 며칠이 지나버렸다. 어느 날 베란다에 나가보니 화분에는 신기한 풀들이 나와 있었다. 개똥참외도 보였다. 누군가 참외를 먹고 가야산을 오르다가 숲속에다가 대변을 누웠고, 그 대변에 섞여서 나온 참외씨앗이 빗물에 여기저기 유랑하다가 우리집 화분까지 왔던 모양이다. 그뿐이 아니다. 여뀌, 바랭이, 달맞이꽃이 고물고물 놀고 있는데, 어찌나 신기하던지 입이 딱 벌어졌다. 그때부터 물당번 노릇을 충실히 하였고 햇살바심을 시켰더니, 쑥을 비롯하여 싸리, 댕댕이덩굴까지 야단이었다. 마법의 화분이었다. 그 다음해에서는 또 다른 생명들이 어슬렁거렸다. 물봉선, 강아지풀, 며느리밥풀꽃, 산부추, 며느리밑씻개. 화분을 엎었다가 다시 흙을 담아놓고 물을 주니까, 또 다른 생명들이 탄생했다. 달맞이꽃, 산마, 고마리, 으아리. 아무리 화분을 뒤덮어서 흙을 뒤져도 눈에 보이는 건 없었다. 그러나 물만 주고 햇살이 어루만지기만 하면 신기하게도 생명이 고개를 내밀었다. 물을 계속 주자, 달팽이랑 지렁이까지 생겼다. 이 신비한 마법 앞에서 나는, 인간이 안다는 게 얼마나 우스운지 새삼 깨달았다. 나도 그 화분이라는 거대한 우주 속으로 들어가서 살고 싶었다. 그 화분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바로 생태문학이 아닐까.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는 수많은 생명들의 이야기들이 바글거리는 세상. 그게 생태문학이 아닐까.
<주석>
(1)영국의 동물학자로서 『털없는 원숭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대표작으로『털없는 원숭이』『인간동물원』『친밀행동』등이 있다.
(2)막스 피카르트는(8188~1965)의 직업은 의사였으나 말년에는 조국인 독일을 떠나 스위스에서 활발하게 글을 썼다. 문학뿐만 아니라 철학 등 다양한 글을 썼는데, 오늘날에는 철학자로 많이 알려져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신으로부터의 도주>,<우리 속의 히틀러>,<인간과 그의 얼굴>등이 있다. 내 글에 인용된 막스 피카르트의 글은 <침묵의 세계(까치)> 151쪽에서 발췌한 독일의 작가 노발리스의 글이다. 막스 피카르트가 인용한 노발리스(1772~1801)의 글을 내가 재인용한 셈이다. 소설 <푸른꽃>으로 많이 알려진 노발리스는 이상화된 중세를 배경으로 신비적이고 낭만적인 글을 썼으며, 문학뿐만 아니라 철학, 역사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학문에 심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