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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여러분! 참 사람이 되는 믿음입니까?”
+ 본 문 : 창세기 2장 7절 - 9절 (구약성경 2 쪽)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아멘!
서로 축복 / “잘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잘 될 줄로 믿습니다.”
“평안하십시오. 앞으로는 더 평안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축복합니다. 앞으로는 더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예배시간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 사람이 되는 믿음입니까?” 하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은 사랑하며 사는 믿음입니까?
다함께 따라서 선포하며 고백하겠습니다. “나의 믿음은 참 사람이 되는 믿음입니다.” 아멘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무엇을 믿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믿으며,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믿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그와 같은 믿음을 갖게 됩니까? 성령 충만함으로 그와 같은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먼저 참 사람, 참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우리 사람을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고,
그렇게 사람이 창조되던 날에 복을 주시고, 그 이름을 ‘사람 - 곧 아담’ 이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을 먼저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사나 장로나 집사나 권사를 먼저 창조하시지 않고, 분명히 사람을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이 먼저 되어야 합니까? 사람 -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참 사람이 되면, 좋은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좋은 남편, 좋은 아내가 됩니다.
우리 사람은 에덴동산의 타락 이후, 외형으로는 사람됨을 갖추고 있지만 인간성은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욕을 할 때, 흔히 ‘사람 같지 않다거나, 짐승 같다. 짐승만도 못하다.’ 고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인간성을 상실한 우리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고 참 사람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장 먼저 되어야 하는 것, 그것은 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참 사람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창조하셨던 그 사람입니다.
우리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으셨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 참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단하고, 변하지 않고, 값 비싼 보석으로 만드시지 않고, 흙으로 빚어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흙의 특성을 알면, 하나님이 왜 우리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는지를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이,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지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흙으로 만드신 것은,
흙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 사람은 영원한 생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생명은 흙에서 시작이 되며, 초식동물도, 육식동물도 모두 다 흙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삽니다.
심지어 물속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들도 흙이 물을 담아 주지 않으면, 절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흙은 생명이기에 이 생명인 흙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중대한 불순종의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인생은 헛되다." 하는 표현이 자주 자주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제가 "후" 하고,
숨을 내쉬었다가 다시 들이쉬는 호흡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곧 살아 있다는 가장 좋은 증거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제가 내뿜었던 숨을 다시금 들이마시지를 못한다면, 그 순간 저는 죽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죽고 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납니다. 그래서 ‘인생은 헛되다.'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곳이 골고다 언덕인데, 그곳을 ‘해골’ 이라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그 언덕의 모양이 사람의 해골처럼 생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본래 그 언덕이 죄수들의 사형 집행 장소라, 해골이 많이 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셋째는, 유대인들이 믿기는 하나님께서 최초로 창조하셨던 아담의 무덤이 바로 그 곳에 있었고,
아담과 하와의 유골이 거기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에, 그곳 이름을 ‘골고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는 '해골' 이라고 불리는 곳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이, 골고다 언덕위에 굴러다니는 해골에 떨어지는 순간,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했던 대로 마른 뼈에 살과 힘줄이 생기고, 생기가 들어가 산 생명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도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영원한 생명이 있는 참 사람으로, 회복되어지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흙으로 만드신 것은 흙은 모든 것을 수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 사람은 무엇이든지 다 수용해 주는 사랑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번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봅시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심으로 내 아내에게, 내 남편에게 사랑으로 종노릇하고 있습니까?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심으로 내 부모에게, 내 자식에게 사랑으로 종노릇하고 있습니까?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심으로 내 이웃에게, 성도들에게 사랑으로 종노릇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내가 죽어 제물 되는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서만이 사랑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우리가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 정도로 가난한 사람에게 구제를 하고,
모든 것을 내어 주어서 남을 도운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 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된 참 사람은 무엇이든지 다 수용해 주는 사랑이 있는 사람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만드신 것은, 흙은 사람을 위해 의식주를 제공해 줍니다.
그러므로 참 사람은 흙처럼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구제와 봉사가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 넓은 천지에서 왜 하필이면, 짐승의 구유가 있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을까요?
외양간은 더러운 곳입니다. 더러운 오물투성이인 외양간 구유는 무엇입니까? 짐승의 밥통입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소나 말의 여물통에 자기 자식을 눕히려는 부모는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더러운 곳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그 곳을 선택하셨습니까?
그 곳이 죄와 더러워진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깨끗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겉으로만 깨끗해 보일 뿐, 실상은 짐승의 외양간보다 더 더러운 존재들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2학기 반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반장 선거에 다시 출마했는데, 부반장까지도 떨어지고 나서 엉엉 울고 들어오더랍니다.
그런 동생을 그의 형이 위로하며 교육시킵니다. ‘출마만 한다고 뽑아주는 게 아니야. 너 말이야,
반장이 되려면 이제부터 친구들에게 열심히 봉사해라. 좋은 일도 많이 해라. 그러면 꼭 될 것이다.’
이 아이가 2학년 2학기 때 부반장이 되었습니다. 몇일 뽐내고 다니더니, 그 다음부터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저녁, 저녁밥을 먹으면서 그 아버지가 ‘너 부반장 할 만하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부반장은 할 게 하나도 없어요. 꼭 반장 한 번 해먹고 말 거야.’ 하며 말하더랍니다.
그리고 이 아이가 3학년 1학기 때. 반장 선거에 무려 16명이 출마를 했는데, 당당히 당선 됐답니다.
그래서 어떻게 당선됐느냐고 물었더니, 연설을 잘 해서 당선 됐다면서 아이의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저를 반장으로 뽑아 주시기만 하면, 저는 여러분을 위한 걸레가 되겠습니다!’
그랬더니 몰표가 쏟아졌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표 좀 얻을까 궁리하던 끝에 나온 지혜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목사님은 아이를 무릎 위에 앉혀놓고, 그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아이가 반장을 하는 1학기 동안 친구들을 위해서 참된 걸레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 아이가 장성한 어른이 되어서도, 일평생 이 사회를 위한 걸레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으로 사셨습니까?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이 말씀처럼 섬기는 자로 사셨습니다.(마 20:28)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걸레로 섬기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닦아주시지 아니하셨다면,
예수님이 우리의 온갖 추한 허물을 닦아주시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처럼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닦아 깨끗하게 하여 주심으로, 우리가 깨끗하게 되었음을,
믿는다면, 그렇게 깨끗함을 받은 우리도 다른 사람을, 세상을 섬김으로 깨끗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2001년 고인이 되셨습니다만, 운보 김기창 화백의 팔순 기념전이 예술의 전당에서 열릴 때입니다.
그 전시회장의 마지막 홀에 전시된 열 폭 병풍에는 '한일자 一- ' 한 자만 크게 쓰여 있었습니다.
그 그림의 의미를 전시회 작가이신 운보 선생이 직접 설명하기를 ‘미술가는 자기의 마음을 붓으로,
그림으로 보여 주는 사람입니다. 나는 내 마음을 보여 줄 수 있는 붓이 없었던 것이 늘 아쉬웠습니다.
내가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은 이만큼 큰데 붓은 다 작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봉걸레로 마루를 닦은 후,
뒤 돌아보았는데 물 묻은 봉걸레 자국이 마루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봉걸레야말로 세상을 향해서,
보여 주고 싶은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붓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봉걸레로 한 일자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내 마음이 높을수록, 깊을수록, 그리고 크면 클수록,
사도 바울의 말처럼 헬라인에게나 야만인에게나 빚진 마음이 클수록, 우리의 걸레도 커지지 않겠습니까?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이겠습니까? 예수님처럼 섬기는 걸레와 같은 참 사람이 많은 교회입니다.
어떤 나라와 사회가 좋은 나라와 사회이겠습니까? 걸레와 같이 섬기는 참 사람이 많은 세상입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흙으로 만드신 것은 흙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 사람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한 마디로 정직한 사람입니다.
흙은 팥을 심으면 팥이 나고, 콩을 심으면 콩이 납니다. 이처럼 흙은 정직합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그 흙으로 우리 사람을 지으시면서, 사람이 정직한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인간들이 정직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정직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떻든 그리스도인들은 정직해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우리 한국 사람들은, 너무나 부끄럽게도 부정직하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미 국세청이 미국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민족 가운데 가장 믿을 수 없는 민족이 바로 한국인이랍니다.
호주에서도 가장 부정직한 민족으로 한국인을 꼽고 있습니다. 호주 국세청이 그렇게 발표했습니다.
또 아르헨티나에서도 이민 온 사람들 중에 가장 부정직하고, 교만한 민족으로 한국인이 뽑혔습니다.
독일에서 불시에 버스나 전차표를 검표원이 검사하면, 제일 많이 발각되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랍니다.
우리나라가 IMF 사태를 맞았을 때, IMF가 어떤 나라와 합의문을 만들면서 우리나라 대통령을 믿지 못해,
그때 마침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대통령 후보들의 서명을 요구했는데, 그런 전례가 없었답니다.
한마디로 한 나라의 대통령도 믿을 수가 없었다는 부끄러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합의문에,
'투명성 있게 해야 한다.' 는 용어가 10여 차례 등장합니다. 한국인의 서류는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우리 자신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하지 못했으면,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직하게 돈을 모아, 내 돈 내 마음대로 쓴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을 보면,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재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며, 그도 비참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부정직하게 모은 재산은 반드시 화근으로 남게 되며, 특히 그 자식들끼리 불화하게 만들고 맙니다.
우리 주변에도 잘 지내다가 아버지의 유산 때문에 서로 등 돌리고 재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돈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그리스도인,
비록 가난하게 살지라도 정직하고 깨끗하게 사는 참 사람 - 참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가지고 삽시다.
언젠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가 과연 이 땅 위에서 참사람으로 정직하게 잘 살았는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손과 발과 머리로, 얼마나 바르게 정직하게 살았는지를 보여 드려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목적은 결코 잘사는 데 있지 않습니다. 정직하게, 바르게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참 사람의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정직성이 있어야 합니다.
다섯째로,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흙으로 만드신 것은 흙은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흙으로 지음 받은 참 사람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흙의 특징은 누가 올라가든 언제나 사람의 발밑에, 짐승의 발밑에 존재합니다.
이처럼 흙의 특성은 겸손입니다. 그래서 겸손이라는 원어의 뜻을 보면 '흙' 이라는 뜻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겸손이라는 특성을 가진 흙으로 우리 인간을 지으셨기에 참 사람은 겸손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있으면서도, 할 수 없다고 사양하는 것이 겸손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육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는 생명을 걸고, 가족끼리 친척끼리 놀러 다니는 일에는 기꺼이 나서면서도,
하나님의 일에는 그 남은 시간으로 하려고 하니, 그런 사람들은 항상 바쁘다. 항상 피곤하다는 핑계를,
입에 달고 다닙니다. 더 고상한 핑계는 ‘나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재능이 없다.’ 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겸손은 무엇입니까? 흙이 가장 낮은 곳에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수용하듯이,
가장 낮은 곳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고 참으로 기뻐하시는 겸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더 크게 역사하실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더 큰 그릇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참 사람의 믿음을 가진 성도는 바로 이런 주님을 향한 헌신적인 겸손함이 있는 성도입니다.
* 여섯째로, 참 사람은 하나님의 생기, 곧 영성이 풍성한 사람입니다.
흙은 그 자체로서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뒤에,
하나님의 생기 - 곧 영성을 우리 사람들에게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생령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사람이 된다는 것은 흙으로 지음 받은 육체속에 하나님의 생기, 곧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람 속에 영성을 갖지 않았을 때, 우리는 짐승 같은 사람,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창세기 2장 19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새와 짐승도 사람과 똑같이 흙으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짐승에게는 하나님의 생기, 곧 영성을 불어넣어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영성을 상실하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 속에 참된 사람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참된 사람됨이 없을 때, 그 사람은 모든 것이 자기 중심적이 되며,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하는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며, 그러다가 결국 자기도 망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영성을 회복해야 하나님의 기준 속에서 참사람으로 살며, 그 때 비로소 사람에게 유익을 주며 삽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죄를 짓고, 사람됨을 상실해버린 아담을 향해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찾으셨습니다. ‘아담 - Adam’ 이라는 히브리어의 뜻은 '사람'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참 사람됨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을 향해 "사람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애타게 찾으시면서,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을 닮아 살라고 간절히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 예수님 앞에 나아오면, 사람답게 살지 못했던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예수님을 닮아 참사람의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간절히 부탁하면서, 여러분을 축복하며 축복합니다.
성령님의 도와주심으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사람!
그리고 참 사람이 되게 하는,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