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회사가 있다. 매년 600여명을 외국에 보내 자기가 하고싶은일을 마음껏 하게 한다. 회사에 관련된 업무를 하지 않아도 되고 학교나 연구소에 등록해야할 필요도 없으며 회사의 현지지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부인과 여행을 가도 되고 수시로 이웃주민을 불러 파티를 열어도 된다. 자기가 즐기는 취미를 통해 그 나라사람들과 어울리면 더욱 좋다. 그런데도 직원들은 자신의 연봉을 고스란히 챙기면서 1인당 연간 1억5천만원까지 체재비를 받는다.
삼성전자 '지역전문가' 얘기다. 삼성전자는 1990년에 도입된 지역전문가 제도를 통해 총 5000여 명의 글로벌 인재를 양성했다. 지역전문가로 선발되면 1년 이상 아무 조건 없이 해당지역에 파견돼 현지 문화와 언어를 익히는 데 전념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GDP비중의 16%를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기업이다. 2013년 연결기준 매출액이 228.7조원에 달하는 세계최대의 IT기업이다. 미국 '하버대 비즈니스 리뷰'는 2011년 삼성의 글로벌 성공요인을 분석하면서 지역 전문가 제도를 성공의 핵심제도로 언급했다. 삼성전자가 매년 천억원씩 들여서 이 제도를 운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제도다.
충북도 공무원 국외연수를 국내연수로 전환키로 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삼성전자가 떠올랐다. 충북도는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의 공무원 국외연수가 관광성 외유로 변질됐다는 분석자료에 따라 20년 장기근속자 국외연수를 국내연수로 돌리기로 했다. 참여자치시민연대의 자료를 유심히 살펴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도내 13개 지자체에서 해외연수를 다녀온 공무원은 지난 3년간 6183명에 달했다. 이 인원은 도내 지자체 공무원 전체의 49.7%에 해당된다. 3년간 해외연수에 지원된 예산은 총 126억 6000여만원이다.
이 단체는 해외연수의 타당성을 심사하기 위한 심사위원회 운영이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충북도의 경우 717차례 해외연수를 실시하면서 심사위원회는 85차례만 열었고 대부분 서면심사만 했다면 문제가 있다. 또 심사위원회에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지자체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사전심사가 엉터리다 보니 해외연수의 48%가 관광성 연수나 배낭여행으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철밥통' 공무원에 대한 곱지않은 시선이 있는데 공무원들이 외유성 연수를 간다면 좋아할 도민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국외연수를 제한하는 것은 올바른 방안은 아니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가. 이시종 지사가 공약한 충북 4%경제를 실현하려면 국내투자유치보다는 외자유치에 주력해야 한다. 충북도는 올해 중국, 일본, 베트남, 미국 등 세계 22개 자매, 우호지역과 국제교류 협력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중국인 유학생 페스티벌'과 '오송 국제바이오산업엑스포' 같은 국제적인 컨벤션행사는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삼성전자처럼 글로벌 마인드가 있는 공무원들이 더 많이 필요한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물론 삼성전자와 충북도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기업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투자하는 삼성전자와 자치단체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인적자원의 역할이다. 공무원도 외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시야를 넓힌다면 업무의 질이 달라질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공무원 국외연수의 45%를 차지했다는 배낭여행도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다만 예산낭비가 되지 않으려면 장기근속자보다는 보다 많은 젊은 공무원들을 엄격히 선발해서 지역별로 국외연수를 시켜야 한다. 여행이 아닌 연수가 되려면 기간도 늘리고 국제적인 감각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철저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20년전 영국에서 지역 전문가를 했던 김기선 삼성전자 상무는 "영국에서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개에게 이야기를 먼저 걸어 개 주인과 말문을 텄다"며 "이런 현장형 경험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필자도 1990년대 중반, 국제로타리 해외연수프로그램 대상자로 선발돼 한달간 외국의 기업체와 유적지, 관광지를 돌아보면서 학교와 직장에서 배운것 이상으로 많은 체험을 했다. 국외연수를 제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충북도가 글로벌시대 역주행 하지 않으려면 공무원 국외연수도 반드시 필요하다.
/JBNEWS 칼럼^네이버 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