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의 탑승 수속대 앞에서 여행 가방의 내용물을 전부 꺼내야 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수하물 중량 초과 사태의 곤경을 잘 알 것이다. 물론 여행 가방용 저울 같은 장비를 구입해도 되겠지만, 그런 물건은 엉뚱한 데 놓고 잃어버리기 일쑤이거니와 (아이러니하게도) 저울 자체의 무게는 계산이 안 된다. 이럴 때, 저울이 자체 내장된 TUL 여행용 가방 하나면 걱정할 게 없다.
피산 쿨카에브(Pisan Kulkaew)는 어머니가 여행 가방의 무게를 재느라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TUL을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수술을 받은 직후라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없었던 그의 어머니는 결국 100달러 정도의 초과 수하물 요금을 물었고, 호주 퀸즐랜드 대학의 박사과정에 있던 쿨카에브는 궁리를 하게 되었다. “10년 후의 여행용 가방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보았”더니, 결국 “나의 결론은 분명 스마트한 여행용 가방이 출시될 것이며, 심지어 싸구려 여행 가방도 무게를 자체 측정하는 기능 정도는 갖추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기계 항공공학과 수학 분야의 학위를 지닌 이 호주 브리즈번 출신의 학생에게는 이런 문제에 도전하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우선 쿨카에브는 어머니와의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통해 미래의 이 여행용 가방이 갖추게 될 기능성을 따져 보았다. 그리곤 자신의 아이디어를 믿어준 전기 기술자와 접촉한 후, 전화번호부를 뒤져 여행용 가방 공장 몇 곳에 전화를 돌렸다. 그렇게 그는 공장주들을 직접 만나, TUL 가방을 실제로 만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설득에 나섰다.
한정된 재원 때문에 쿨카에브는 여행용 가방을 새로 디자인하는 대신 기존 가방의 틀을 수정하고 변경하는 방식을 택했다. 첫 번째 시제품을 위해 그는 가장 먼저 자기 집 욕실의 디지털 체중계를 열어 체중계의 전자적 기술과 매커니즘을 파악했다. 쿨카에브가 보기에 체중계는 TUL을 위한 완벽한 모델이었다. 체중계 자체의 무게를 따로 계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기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단지 그동안 이런 식으로 응용되지 못했던 것뿐”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쿨카에브는 가방에 들어갈 인쇄회로기판(PCB)의 디자인 작업을 주문하였다. TUL에는 PCB와 함께 ‘로드 셀(load cell)’이라는 네 개의 센서가 가방의 바닥 부분에 놓인다. 센서의 위치를 정하는 것이 디자인 공정에서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었는데, 모든 경우에 맞는 완벽한 위치여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최종 디자인은 짐을 쌀 때 센서가 바닥에 닿을 수 있도록 가방 밑면에 센서를 두는 것이었다. 버튼을 누르면 PCB가 센서를 통해 측정값을 얻어내고, 몇 가지 계산을 거쳐 가방 바깥의 LCD 창에 최종 무게가 나타난다.
가방의 제작을 위해 플라스틱 외피 곳곳에 손잡이, 회전식 바퀴, 플라스틱 발, 센서 등 다양한 부속품을 넣을 구멍을 냈다. LCD 창과 플라스틱 버튼은 가방 겉면에 있는 TSA 잠금장치 옆에 장착하였다. 가방 내부의 안감은 접착제를 사용해 부착하였으며, 그외의 안감은 재봉으로 마감하였다. 가방 양쪽의 테두리를 따라 접착제로 봉인재를 부착한 후, 지퍼를 달았다. 이렇게 모든 부품을 장착한 가방을 전기 기술팀에 보냈고, 전기 기술팀이 전자 부품을 조립해 무게 측정 기능을 조정하였다.
TUL의 인쇄회로기판과 보호용 커버 제작에 쓰인 포론 XRD(Poron XRD) 소재
쿨카에브가 미래의 여행용 가방에 보탠 또 하나의 특징은 보호용 커버다. TUL 가방은 중요한 전자 부품들이 밖으로 노출돼 있어, “짐을 함부로 다룰지도 모르는 수하물 담당자들”로부터 가방을 보호하기 위해, 그는 포론 XRD 소재의 가방 커버를 디자인하였다. 포론 XRD는 부드럽고 신축성이 좋으며 충격에도 강한 우레탄 합성물로서, 충격을 받으면 순간적으로 얼음처럼 단단해지는 특성이 있다.
쿨카에브는 “TUL 가방으로 사람들의 생활이 보다 편리해지길 바란다”며 이렇게 덧붙인다. “모두가 TUL을 사용한다고 상상해 보라. 여행 가방의 중량이 초과하는 일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그럼 승객들이 추가 요금을 내는 일도 줄 뿐 아니라, 탑승 수속대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 또한 줄어들 거다. 그 자리에서 짐을 다시 싸야 하는 사람들이 훨씬 적어질 테니 말이다… 탑승 수속 담당자들 역시 초과 수하물에 대해 고객들과 이러쿵저러쿵 얘기할 필요가 없어 좋아할 테니, 그야말로 모두에게 이득인 셈이다.”
작년 한 해 동안 TUL을 개발한 쿨카에브는 시제품 상태의 가방을 실제로 생산하기 위해 소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9일이 경과한 그는 현재 목표액 9만 5천 호주달러의 약 15% 가량을 모금했다. 그의 바람은 올 연말까지 킥스타터의 후원자들에게 TUL 가방을 선보이는 한편, 2015년 5월 경에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는 것이다.
Originally Published by Core77 (www.core77.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