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이 되어서야 성당을 방문했는데 예전에는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던 이곳에서
아름다운 장식과 음악이 그때의 기억들을 한꺼번에 떠오르게 하는 듯했다.
베이스 노트의 강한 리듬을 들으니, 지렁이 시야의 세계에서 힘들었던 역겨이 연상되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의 구름과 천사들을 보니 아름다운 천상 같았던 관문의 광경이 보이는 듯했다.
제자들과 빵을 나눠 먹고 있는 예수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서 중심근원에서 경험한 영적 교감이
떠올랐다. 그때 맛보았던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의 은총이 다시 생각나자 온몸이 떨려 왔다.
마침내 나는 종교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적어도 그것이 표방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신을 믿게 되었다기 보다는 신을 알게 되었다. 영성체를 받기 위해 절뚝이며
제단으로 가는 동안, 내 뺨 위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일단 지식이 돌아온 이후로 나느 그7일간의 경험이 내가 40여년간 인간, 우주, 실제를 구성하는지에
대해 배웠던 모든 내용과 맞지 않는 다는 사실과 씨름해야 했다.
혼수상태 빠지기 전에 나는 의식이라는 것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는지 일반인보다 조금 더 잘 알고 있었다고 믿고 있었다. 의식은 매우 실제적일 뿐만아니라
여타의 물리적 세상보다도 더 실제적이며, 필시 그 모든 것의 근본이다. 그런데도 이런 통찰들은 아직까지
실재에 대한 과학적 이해의 틀 속으로 통합되지 못했다. 물리적 우주의 모든 물체들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원자는 양성자, 전자, 중성자로 구성되는데 이것들은 모두 입자이다. 그런데 이 입자들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는... 물리학자들도 솔직히 잘 모른다. 하지만 입자에 대해 (최소한) 알고 있는 것은 각각의입자는 다른입자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저 너머를 경험하기전에 나는 이런 현대 물리학의 개념들은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느꼈었다. 그런데 육체를 떠났을 때
나는 이 사실들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관문, 그리고 중심근원에 있었을 때 나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상태에서
사실상 ' 과학 분야의 일을 행하고' 있었다고 이 과학은 우리가 가진 가장 진실하고 정교한 도구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도구가 '의식 그 자체' 이다. 이것은 단순히 흥미롭거나 극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학적이었다.
물리적 영역에만 토대를 둔 과학적 방법론이 지난 400년간 점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사실 때문에
그 격롸 우리의 존재의 핵심을 이루는 깊은 신비, 즉 우리 의식과의 접촉을 상실해 버렸다.(우리이 진정한 양심과의
접촉이 상실되었다고 봐야 할까? 여기서의 이식은 성령님이였으면 좋겠다 왜냐면 우리의 의식 즉 본성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결코 선한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서구 문화는
현대 과학기술의 힘에 점점 현혹되면서 이것을 잃어버렸다. 그 모든 서구문명의 성공을 위해 영성을 상실했다.
'표준화된' 과학적 연구방법은 의식의 현상을 끝끝내 배재하고 있다. ( 원격투시, 초능력, 염력, 신통력, 텔레파시, 예지능력)
나는 단순한 과학적 세계관속에서 살았다. ( 즉 악령이건 성령이건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 회의론의 덫에 걸려 있는 이들에게 2007년 출간된 << 환원될 수 없는 마음 : 21세기 심리학을 향하여. >> 을 읽어
보라고 권한다. 이책은 유체이탈에 대한 증거를 적절하게 제시하고 있다.
나는 혼수상태에서 여정을 통해 낮은 수준의 물리적 세계를 떠나 전능한 창조주의 지고의 거주처를 방문함으로써 우리 인간의
지식수준과 경외로운 신의 차원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간격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상 우리가 의식을 지닌 존재라는
이 심오한 신비야말로 정신세계의 진실을 설명해주는 최고의 단서이다.
의식이야 말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토대이다. (저 너머)에서 어찌나 의식에 완전히 연결되었던지, 때로는 나와 내가 속해 있는
세상이 거의구분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물리적 우주의 전체 시간과 크기는 그것을 발생시킨 영적 영역(의식의 영역 이라고
도 적음)과 비교해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이 더 큰 우주는 결코 '저 멀리'에 있지 않다. 우주는 시작이나 끝이 없으며
우주의 모든 입자 속에는 신이 현존하고 있다. 그러나 우주가 비록 시작한 적이 없고 끝이 없을지라도 우주에는 구두점들이
있다. 이것의 목적은 존재들을 탄생시켜 신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본다는 것이 곧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언가를 경험하는 것과 내가 그것을 이해하는 것 사이에 아무런 구분이 없다.
우리 모두가 육체와 뇌를 뒤로한 채 그것의 제한된 특성과 결별하게 될 때 우리가 얼마나 놀라운 수준의 교감과 이해를
경험하게 될지를 알게 된다. 웃음과 아이러니가 힘들고 부당한 세상에 살아가기 위해 개발해낸 인간적 특징일 수도 있지만
내심으로는 우리가 세상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자라는 사실을 기억하는데서 비롯된다.
우리가 베일 뒷편을 얼핏 보기 위해 반드시 죽다시피 하지 않아도 된다. 진리에 접근하기 위해 우리는 각자 기도나 명상으로
자신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헤밍싱트를 통해 나는 혼수상태에서 방문했던 영역과 유사한 영역을 치명적인 질환에 걸리지 않고서도 다시 가 볼 수 있었다.
내 의식이 (우주의)영원하 모든 것과 동일해졌을 때에도 나는 존재 하는 모든것을 발생시킨 그창조적인 동인과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없다고 느꼈다. 최고의 무한한 하나된 속에서도 이원성은 여전히 있었다.
나는 옴의 목소리를 직접 듣거나 옴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마치 옴은 생각들을 통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는데,
그 생각들은 거대한 파도물결처럼 나에게 밀려오고 내 주변의 모든 것을 뒤흔들면서 존재의 보다 깊숙한 구조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신과 대화한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로 굉장한 경험인 동시에
가장 자연스러운 경험일 뿐이다. 왜냐하면 신은 언제나 전지하고, 전능하며, 인격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조건없는
사랑의 모습으로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신과 신성하게 연결된 우리는 모두 하나이다.
소감: 보통의 천국을 다녀온 사람들은 자신이 본것을 최대한 정확하게 묘사하려 애쓰는 글들을 많이 보았다.
제한된 인간의 언어로 애기하다보니 천국의 이야기는 거의 비슷하다.
천국을 사람의 제한된 생각으로 설명을 들으면 어디가 진짜인지 어떻게 믿어야
할지 난감할 때도 있었다. 저자는 천국에 대한 설명도 있지만 우선 학자적인 태도로 의식의 한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흔히 믿는 우리가 말하는 영혼은 육신을 떠난 다는 것을 불신자들을 향해 의식이 떠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을 옴이라고 하기도 하고, 해밍싱트라는 명상까지 해본다. 사실 하나님에 반대해서라기 보다는
의식이 몸밖으로 빠져나가서 활동영역을 무제한적으로 늘릴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븐 알렉산더라는 의사가 십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변해 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혹시 탑건의 주인공인 톰크루즈가 믿는 '사이언 톨로지교' 를 믿고 있는 건 아닌지...걱정이 된다.
분명 이 의사는 줄곧 뇌가 죽으면 의식은 몸을 빠져나간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어했다.
나의 의식속에 들어오신 하나님 그런데 그것이 내생각이
아니라 온전한 그분의 목소리나 뜻일 수가 있기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하나님보다 나의 의식이 몸밖으로 나가서 팽창되는 현상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 저칫 이상하게 흐르기 쉽다.
사실 성령 하나님에 대해 안다면 모든 것은 해결이 되는데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설명하려니 복잡해지고
논리적이어야 하고 무슨 실험을 통해서 접근해야 하고 그 모든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궁금한 점은 지옥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초신자에게 지옥은 보여주지 않았을까?
만난분이 하나님 맞을까...
주님 제가 이책을 읽으며 주님의 눈으로 보게 하소서
하나님 없는 임사체험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그것은 영매나 주술과 가깝기도 합니다.
혹시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둔갑할 수 도 있습니다.
예수의 보혈의 공로가 알려지지 않은 천국은 있을 수 없으며
심판없는 사랑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 책은 읽지마 하기에는 우리들은
너무나 많은 홍수의 정보에 있사오니
분별의 눈을 키우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만이 유일한 천국의 안내자이고 우주의 주인임을
늘 인식하며 분별하며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