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경리의 시 세계
아토피아 변주와 탈정위적 시심詩心
박경리론
김태경(시인, 문학평론가, 경기대 교수)
1.
미래지향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폭넓게 드러나는 경향으로 ‘고향 상실displacement’이 있다. 고착된 관계에서 벗어나 자기 생활을 재편하려는 주체는 ‘여기’를 떠나 ‘저기’로 이동한다. ‘저기’는 새롭게 안착하게 된 또 다른 ‘여기’가 되면서 일상을 공유하는 한정적인 활동 공간이 된다. 1926년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출생한 박경리는 한국 전쟁 이후 서울에 머물렀다. 그러다 1980년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에 세 번째 ‘여기’를 형성하고 자신의 남은 생을 이곳에서 보냈다. 박경리는 원주로 이동하게 될 때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서울에서 원주로 내려오려 했을 때 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이 반대했고 이삿짐을 실었을 때 친구들은 1년을 배기나 보자고들 했다. 그러나 어느덧 원주에서 15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고 말았다. 원주라기보다는 어느 도시의 변두리, 개나리 울타리에 둘러싸인 어느 공간이라 해야 할 것 같다. 거의 외부와의 소통이 없는 생활이고 보면 내 거처 밖은 그냥 세상일 뿐 서울, 원주 하며 지역을 말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강조표시 : 저자)
위 진술에 의하면, 박경리는 원주에 특별한 지역성의 의미를 부여했다기보다, 자신이 거주하는 ‘집’이 있는 공간, 생활세계를 지속하는 공간, 사유와 글쓰기에 몰입하는 공간, 그러면서도 자연과 어우러지며 휴식을 병행하는 공간 정도로 인식한 듯 보인다. 하지만 원주는 박경리가 노년기를 보낸 지역일 뿐만 아니라, ‘박경리 문학 공원’과 ‘박경리 뮤지엄’이 있는 ‘특수한 장소’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의 시편에 ‘회촌’이 시적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면서 원주는 박경리 시 세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따라서 박경리에게 원주는 장소성과 비장소성이 뒤섞인 ‘혼재향’의 속성을 지닌다. ‘여기’라는 새 고향에 머물면서도 정신적 본향을 상실한 것과 같은 아토피아적 면모가 박경리 시에서 다각도로 변주되기 때문이다.
“아토피아는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음, 요령부득, 정체를 알 수 없음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인데, 부정의 접두어 a와 장소 topia를 짜맞추어 원래는 ‘있어야 할 장소에 없다=정상이 아닌 상태’”를 가리킨다. 빌 맥키벤에 의하면, 아토피아atopia는 ‘사유지 경계선이 없는 사회’로 헬무트 빌케의 책 제목에서 유래한 말이기도 하다. 1988년에 첫 시집 못 떠나는 배가 발간되었으니, 박경리는 원주시에 터를 잡은 후부터 시집을 본격적으로 간행한 게 된다. 그러므로 그의 시 창작 활동은 주로 원주에서 이루어졌으며, 그곳에서 느낀 아토피아적 사유가 시 세계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박경리의 아토피아적 사유는 넓게는 운문과 산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양상으로, 시로 좁혀들어가면 자유 정신에 의탁하여 사고와 상상력의 한계를 타파하기 위한 시혼詩魂으로 드러난다.
박경리는 1955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데뷔하게 된다. 김동리에게 작품을 보여줄 때만 해도 그는 문학을 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럴 처지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박경리의 생활은 사방이 벽으로 꽉 막혀, 절망의 밑바닥에 놓여 있었으므로 시를 쓴다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배 언니와 친구의 조력으로 김동리 선생을 만나게 되었는데, 마루에 앉은 김동리는 박경리의 시 두세 편을 읽고 상은 좋은데 형체가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경리는 창피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간 선배 언니와 친구가 작품이 되면 ‘문예싸롱’으로 가지고 오라는 김동리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 당시 박경리는 전란을 겪으면서 남편을 잃었고, 그의 가족에게 좌익 내지는 부역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상황이라 그런 제안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박경리는 문예싸롱에서 김동리를 만나고 시보다 소설을 쓰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래서 「불안지대」라는 단편을 김동리에게 보여주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문학 공부를 하게 되었다.방점을 찍자면, 박경리가 김동리에게 처음 가지고 갔던 원고는 소설이 아니라 ‘시’였다.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에 박경리는 시를 창작하고 있었다. 1954년 6월 그가 한국상업은행(현 우리은행)에 근무할 때, 당시 행우회에서 간행한 천일天一 9호에 박금이라는 본명으로 발표한 작품은 16연 159행으로 구성된 「바다와 하늘」이라는 장시長詩였다. 대문호인 그에게 시는 어떤 의미였을까. 박경리의 첫 시집의 자서自序에는 “견디기 어려울 때 詩는 慰安이었다. 8‧15 해방과 6‧25 동란을 겪으면서 文學에 뜻을 둔 것도 아닌 평범한 여자가 어려운 시기를 通過하여 살아 남았고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남몰래 詩를 썼기 때문인지 모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긴 시간 「土地」를 집필하면서 받은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렸고, 기다림을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데 한계가 왔을 무렵, 박경리는 강경히 자신에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너는 너 자신에게서라도 위로받아야 한다”고. 그렇게 시를 통해 자유를 갈망하며 자신을 추스르고자 했다. 그에게 시는 위로이며 살아가는 데 희망을 주는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박경리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시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간행한 연도를 기준으로 박경리 시집을 나열하면, 1집 못 떠나는 배(지식산업사, 1988), 2집 도시의 고양이들(동광출판사, 1990), 3집 자유(솔출판사, 1994), 4집 우리들의 시간(나남, 2000), 5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마로니에북스, 2008), 6집 우리들의 시간(마로니에북스, 2012), 7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다산책방, 2024), 8집 산다는 슬픔(다산책방, 2026)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시집들 중에서 3집은 1집과 2집의 선집이고, 4집에는 1집과 2집의 시를 재수록함과 동시에 10편의 신작시가 포함되어 있다. 5집, 7집, 8집은 유고 시집이며, 6집은 4집을 개정‧보완한 시집이다. 이 시집들 중에서 박경리의 시의 아토피아적 특성이 드러나는 몇 편의 시를 살펴보려고 한다. 박경리가 추구한 세상과 이상, 생활세계의 일면을 엿보게 되는 기회가 될 것이다.
2.
산문 「물질의 위험한 힘」에서, 박경리는 시가 자신의 “직접적이고 날것 그대로의 순수한 목소리를 지닌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소설의 본질도 진실에 근간을 두고 있지만 소설 쓰기는 “목수가 집을 짓듯이 인위적으로 설계를 해야만 하는 일”이다. 하지만 “같은 돌멩이라 해도 큰 것과 작은 것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모든 존재는 질적으로 동등”하므로, 박경리는 소설과 시가 같은 위상으로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다만 요즘의 내가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운 양식에 더 이끌리고, 물질적이고 인위적인 것의 위험한 힘을 더욱 경계하게 되는 것은 나이를 많이 먹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고백하였다. 그가 노년기에 시 창작에 집중하게 된 배경 중 하나에 시 장르가 지닌 자유로운 형식적 특성이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응하게 그의 시편은 꾸밈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고 있으며, 자연물을 통해 의식과 사유를 표현하는 양상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대추를 줍다가
머리
대추에 처박고 죽은
꿀벌 한 마리 보았다
단맛에 끌려
파고들다
질식을 했을까
삶과 죽음의
如實한 자리
손바닥에 올려놓은
대추 한 알
꿀벌 半 대추 半
눈이 시리도록 푸른 가을 하늘
-「대추와 꿀벌」 전문 (못 떠나는 배, 1988)
‘대추 한 알’을 작은 규모의 공간이라고 한다면, 그 공간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무경계의 아토피아적 세계를 함축한다고 볼 수 있다. 꿀벌 한 마리는 대추의 단맛에 이끌려 파고들며 먹었을 것이다. 그렇게 대추 안으로 파고들다 머리를 빼지 못하고 질식하여 죽었다. 주체는 그런 대추 한 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손바닥에 올려놓고 본다. 손바닥에 삶과 죽음이 여실하게 가시화된다. 이런 주체의 태도에는 생명의 귀함을 인식하는 정동적 행위성이 녹아 있다. 그가 푸른 가을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이 시리다고 시상을 마무리한 데는, 단순히 가을 하늘이 눈이 부시도록 푸르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머리를 뺄 수 없을 정도로 단맛에 대한 이끌림을 멈추지 못한 꿀벌의 욕망과 생에 대한 본능, 그로 인해 죽음에 가닿은 차가운 장면 앞에서, 주체는 마음 시림을 느꼈고 그 통증이 눈 시림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박경리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자연의 형태를 자연스럽게 응시하며 가식 없는 언어로 생명의 양면성에 대한 아토피아적 사유를 표출한다.
회촌 골짜기 넘치게 안개가 들어차서
하늘도 산도 나무, 계곡도 보이지 않는다
죽어서 삼도천 가는 길이 이러할까
거위 우는 소리
안개를 뚫고 간간이 들려온다
살아 있는 기척이 반갑고 정답다
봄을 기다리는
회촌 골짜기의 생명 그 안쓰러운 생명들
몸 굽히고 숨소리 가다듬고 있을까
땅속에서도
뿌리와 뿌리 서로 더듬으며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있을까
봄은 멀지 않았다
아니 봄은 이미 당도하여
안개 저켠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올해는 도시 무엇을 기약할 것인가
글쎄 아마도……
쟁기 챙기는 농부 희망에
동참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지 않을는지
-「안개」 전문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2008)
비인간인 자연물과 공명하며 생태적 감수성을 발현하게 된 근저根底에는 ‘회촌’이라는 장소성도 크게 기여한다. 박경리가 거주하게 된 원주의 마을 회촌은 서울보다 자연이 살아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미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인용시에서는 회촌의 골짜기에 ‘안개’가 가득 들어찼다. 그런 날은 “하늘도 산도 나무, 계곡도 보이지 않”아 마치 “죽어서 삼도천 가는 길이 이러”하진 않을지 상상하게 만들었다. 그저 거위가 우는 소리 정도만이 “안개를 뚫고 간간이 들려”올 뿐이다. 안개에 가린 세상에서 거위 우는 소리는 “살아 있는 기척” 같아 반갑고 정답게까지 느껴졌다.
회촌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주체만이 아니다. “몸 굽히고 숨소리 가다듬고 있”는 모든 생명이 다 그러하다. 소리 없이 고요하게 “뿌리와 뿌리 서로 더듬으며/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봄은 곧 올 것이다. 어쩌면 “안개 저켠에서 서성거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 주체는 봄을 맞이하며 올해 기약할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은 “쟁기 챙기는 농부 희망에/ 동참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는 판단으로 나아간다. 이 지점에서 시상이 자연의 변화와 비인간 생명체들, 인간의 일이 조화를 이루며 이상적인 뒤얽힘으로 진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화’는 생명과 공존을 추구하는 박경리 시에서 시적 의의로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무릇 어떤 꽃이든 빛깔이든 혹은 계절이든 인간이든 간에 어느 조화를 이룬 속에서만이 참된 아름다움이 있지 않을까. 그러한 조화는 명확하게 구체화시켜 볼 수 없는 일종의 꿈이기도 하다. 느낌 속에 안개처럼 몰려오는 환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때로 정신과 현상이 일치되는 순간 우리는 미의 가치를 인식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결코 고정된 관념은 아닌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조화’는 자연의 변화와 흐름 속에서 인간이 인간과 혹은 비인간과 어우러지는 것을 의미하며, 여기에 ‘참된 아름다움’이 있다고 보았다. 그것이 마치 “안개처럼 몰려오는 환상”처럼 “구체화시켜 볼 수 없는 일종의 꿈”이라고 해도 우리가 이를 추구해야 하는 필요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정신과 현상이 일치되는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에 우리는 ‘미의 가치’를 인식하게 된다. 이는 주체의 꿈과 세계가 일치되는 이상적인 환상-꿈과 유사성을 지닌다. 세계의 조화를 방해하는 요소가 제거되어 주체의 욕망과 이상적 성취 사이에 긴장과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도래하길 기대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물론 그러한 현상은 그 어디에도 없는 완벽한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일시적으로 가시화된 듯 보이는 경우도 있다. 박경리 시는 이러한 일치성을 기다리며 ‘조화’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유토피아적 기대 사이의 불일치성은 그의 시에서 자연이 선보이는 조화를 부각하는 것으로 봉합된다.
늙어도 봄은 못 견디게 하는 계절이다
생각은 모두 다 달아나고
육신이 밖으로 향해 줄달음치는 계절이다
두릅은 엄지손가락만큼 자랐고
골짜기에 달래는 무더기로 솟아나
가늘고 보드라운 잎이 바람 따라 드러눕고
미역취 곰치는 퉁겁게 땅 헤치며
아아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이름 모를 꽃들
산과 들에는 생명으로 가득 차니
어떻게 엉덩이 붙이고 가만히 있겠는가
다만 서글픈 것은 날듯이 달리고
온종일 일하여도 꿈은 달콤하기만 했는데
한 걸음 한 걸음 나가기가 힘들게 된 늙은 몸
아아 생명의 찬란한 빛이여
씨 뿌리는 봄의 정령들이여
온통 세상은 축복이며 축제이다
-「봄」 전문 (산다는 슬픔, 2026)
위 시는 ‘봄’의 이미지를 ‘배치’하면서 아토피아적 세계를 유토피아적인 것으로 치환하는 ‘일시적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자연 속이라는 공간성과 봄이라는 시간성의 배치, 그 속에 심신이 어우러진 주체의 배치, 다양한 자연물의 배치를 통해 실현된 가시적 세계이다. “배치는 여러 종류의 생동하는 물질들 그리고 다양한 요소들을 일시적으로 묶은 것이다. 배치는 그것들 내부에서 배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지속적인 에너지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기능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연합이자 진동하는 연합이다.”두릅과 달래, 미역취 곰치,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등 자연물의 살아 있는 연합이자 진동하는 연합은 주체를 “못 견디게” 만들고 “육신이 밖으로 향해 줄달음치”게 한다. ‘미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봄의 토피아에서 주체는 온종일 일하여도 ‘꿈’이 달콤한 것을 느낀다. 그것은 그를 둘러싼 주변 세계가 “생명의 찬란한 빛”으로 채워져 있고 “봄의 정령들”이 씨를 뿌리고 있기에 가능한 ‘꿈’이었다. 그러므로 주체는 온통 세상이 ‘축복’이고 ‘축제’라고 명명하는 것이다.
이같이 박경리 시에서 가장 쉽게 마주하게 되는 자연은 생동하는 다양한 요소들의 조화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미의 가치’로 형상화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토피아의 세계에서 유토피아적 이상을 추구함으로써 자유로운 형태인 시 양식을 통해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발화로 ‘꿈’을 실현하고자 한 박경리의 탈정위적 시심을 가늠할 수 있다.
3.
박경리의 아토피아적 사유는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그가 놓인 상황과 내적 갈등을 시의 언어로 추출하였다. 서울 정릉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원주로 이동한 시기에 대해 박경리는 이와 같이 진술한다. “파도를 타듯 굽이굽이 넘어와야 했던 삶의 역정에서 심정적으로는 어쩌면 가장 힘들었고 처참했던 시기였다. 철저하게 혼자서야 했던 그 당시 내 존재는 원시림에 내동댕이쳐진 한 마리 작은 짐승 같았고 원주는 낯설고 황막한 벌판이었다. 뜰에 서면 시야를 가득 메우는 치악산의 능선과 남쪽으로는 백운산이 시계를 가로막았다. 나는 자연에 귀의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그는 심정적으로 가장 힘들었고 처참했던 시기에 자연으로 둘러싸인 원주로 이동하여 고독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그의 내면세계에 ‘천형天刑 의식과 유배의식’ 혹은 ‘유폐 의식’이 잠재한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내 祖上은 逆臣이던가
끝이 없는 流配
새끼 낳은 고양이
밥 챙겨 주고
손 씻고 문 열고
靜寂의 덩어리 속으로
파닥이는 나비같이 들어간다
동산에서
나비 잡는 꿈을 꾸었던가
꽃술에서
꿀을 빠는 나비를 보았던가
黃砂 속을 맴돌고 헤집고
이 자리
나는 책상 하나 안고 살아왔다
-「유배」 전문 (못 떠나는 배, 1988)
정갈하게 손을 씻고 문 열어 “靜寂의 덩어리 속으로/ 파닥이는 나비같이 들어간다”. 끝이 없는 유배는 “黃砂 속을 맴돌고 헤집고” 주체를 책상 앞에 앉게 한다. 스스로의 의지로 행하게 된 ‘자기 가둠’은 숙명적인 것-조상의 業(逆臣)-으로 치부하며 첫 연이 시작되지만 결국 ‘책상’이라는 시적 소재와 병치되면서 ‘문학적 숙명’이라는 전언을 부각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유배는 도피가 아니라 참여였다. 자발적으로 고독에 놓이는 행위였다. 박경리는 연세대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좀 자주 고독해 보라고 권한 적이 있다. 고독하지 않고서는 사물을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고독은 곧 사고라고 정의한다. 사고가 “창조의 틀이며 본本”이며 작가는 은둔하는 게 아니라 작업하는 것이고 “예술가는 도피하는 것이 아닌 작품으로 참여하는 것”이라고 귀결했다. 그의 언급처럼, 위 시의 주체는 문학 작업을 위해 또 작품으로 참여하기 위해 스스로 ‘유배’의 상황에 놓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박경리가 시도한 ‘자기 가둠’은 역설적으로 ‘자유’의 실천적 행위가 된다. 그것은 글쓰기와 사유라는 자신만의 토피아에서 ‘동일성의 고향Heimat der Identität’으로 전진하는 정신적 정의 실현이기도 하다.
죽으라고 도망쳐 다녔다
한곳에 십 년 이십 년 살아도
뿌리내리지 못한 도망의 연속
내 은신처 대문에는 이끼가 끼고
밤이면 왔다갔다
커피 끓이는 집 안에도 이끼가 끼고
나는 이끼로 숨 쉬었다
때때로
이끼 낀 대문 흔들며
박 아무개 나와라!
목쉰 귀신들 소리를 듣는다
번들거리는 눈빛
거짓되고 화려한 잡신들이
소리를 질러댄다
현실을 알라!
나는 살아 있고 싶은 것이다
거짓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거짓은 자유가 아니다
인간은 도시
몇 시간이나 살아 있는 걸까
-「도망」 전문 (도시의 고양이들, 1990)
에른스트 블로흐에 따르면, 인간은 완성이 아니라 ‘결핍된 존재’ 즉 ‘아직 아닌 존재Noch-Nicht-Seins’이다. 위 시에서 주체가 “한곳에 십 년 이십 년 살아도/ 뿌리내리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도망쳐 다니는 것도 메워지지 않는 결핍에서 도망치는 일이면서도 결핍을 메우기 위한 고군분투가 되기도 한다. 블로흐가 제시한 결핍도 결핍 그 자체를 강조한 게 아니라 결핍에 대한 극복 의지와 충족 행위를 설명하고자 함이었다. 이는 스스로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기 위한 활동이 된다. 인용시에서 주체가 그렇게 도망쳐 다니는 것은 육체라기보다 정신에 해당한다. 정작 ‘은신처 대문’이나 ‘집안’에는 ‘이끼’가 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기 가둠’이 행해지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주체가 사유 속에서 도망치며 정신적 유랑을 하는 후경에는 “살아 있고 싶은” 의지가 놓여 있다. 거짓으로 살아 있으려는 것이 아니다. 거짓은 자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실을 추구함으로써 자유를 획득하려는 것이다. 이는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미래를 기다리는 일이기도 하다. 도달하지 않는 ‘고향Heimat’은 가닿고자 하는 희망인 것이다.
자유란 오히려 고뇌에 가득 찬 영도자의 길이란 생각이 듭니다. 자유에의 갈망은 인간과의 유대를 필요로 하는 소유의 욕망과는 등져 있다는 이율배반, 자유를 희생시킴으로써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결코 같은 자리에 공존할 수 없는 근본적인 두 가지 욕망은 그 길에서 오히려 자유의 편이 더 처참할 것이며, 위대하다면 또한 그편이 더 위대하지 않겠느냐 그 말입니다. 나의 좁은 소견으론, 외람된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성자의 길은 온갖 유대를 끊는 자유에의 출발로부터 자유를 극기하는 속에서 트여 나가는 것이 아닌가고 생각해보았습니다.
박경리의 아토피아적 사유 속에서 자유에 대한 지향은 영도자領導者가 걸어야 할 길이었다. 이것은 인간과의 유대와는 거리를 둔 극기에 해당한다. 그가 생각한 ‘성자의 길’은 온갖 유대를 끊고 “자유에의 출발로부터 자유를 극기하는 속”에서 펼쳐지는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 자기를 책상 앞에 앉히고 가둠으로써 역설적 자유 실현에 인접하고자 한 것이다. 박경리가 “이 쓰라림은 어디서 오는 걸까/ 꽃잎 시드는 그늘 밑/ 살아 있는 벌레 끌고 가는/ 개미 떼 때문일까?/ 죽은 어미 부르는 새끼 고양이 때문일까/ 아니, 아니/ 벌판 같은 거리에서/ 어울려 가면서도/ 서로 부딪치는 차가운 심장 때문일 거야/ 아아 산다는 슬픔 때문에”(「산다는 슬픔」 전문)라고 노래하면서 ‘산다는 슬픔’을 감각적으로 재현한 데도 서로가 부딪치며 상처를 내는 차가운 심장에서 벗어나 자유를 성취하는 성자의 길을 걸으려는 희망이 내재되어 있다. 이런 면모에서도 자유 추구와 자기 가둠의 경계 사이에서 길항하는 아토피아적 의식을 엿보게 된다.
4.
자신의 고유한 경험을 시의 언어로 가공하는 역동성에 시인의 일상과 생에 대한 인식이 복합적으로 응고되어 발현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박경리 시에 담긴 일상은 자연과 문학, 지적 사유에 귀착시킬 수 있었다. 순수한 언어 결정체라 할 만큼 가식 없는 시어와 진술, 표현에서 그가 추구하는 시적 지향과 이상을 외견상으로도 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본질과 진실에 접근하려는 박경리의 시 쓰기 방식이며 세계를 이해하는 선택지이기도 하다. 그가 놓인 현실과 희망 사이의 모순적인 연합은 오히려 박경리의 탈정위적 시심을 불러일으키는 매재媒材가 되었다. 근본적으로 완벽한 본질과 대면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조망하고자 그의 사유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단호하면서도 완곡하게 귀 기울이며 세계 속에 유영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뻐꾸기는
東西南北 遠近도
모를 소리였다
가도 가도 따라오던 뻐꾸기 울음
가도 가도 도망치던 뻐꾸기 울음
어느 나무 어느 둥지인지
저승에서 우는가 이승에서 우는가
알 수 없었다
分明
산속에 있기는 있을 터인데
나는 아직 그 새를 본 적이 없다
내 人生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그 많은 것들과 같이
뻐꾸기를 본 적이 없다
-「뻐꾸기」 전문 (못 떠나는 배, 1988)
그대는 사랑의 記憶도 없을 것이다
긴 낮과 긴 밤을
멀미같이 時間을 앓았을 것이다
天刑 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
肉體를 去勢당하고
人生을 去勢당하고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
그대는 眞實을 紀錄하러 했는가
― 「司馬 遷」 전문 (못 떠나는 배, 1988)
인용시 「뻐꾸기」에서 주체는 어딜 가든지 새 울음을 듣게 되지만 “어느 나무 어느 둥지인지” 심지어는 저승에서 울려오는 건지 이승에서 우는 건지 알 수 없었다고 말한다. 분명히 산속에 있을 터인데 주체는 “그 새를 본 적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소리만 존재하는 뻐꾸기는 마치 “내 人生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그 많은 것”들과 같은 선상에 놓인다. 마주할 수 없는 소리의 실체와 본질을 인식하려는 욕망은 박경리의 시에서 자주 출몰하며, 이러한 경향은 글쓰기라는 자신의 운명으로 표출된다. 「司馬 遷」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肉體를 去勢당하고/ 人生을 去勢당하”면서도 “眞實을 記錄”한다는 표상을 의미심장하게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가 “시퍼런 칼날로/ 끊으려 끊으려 했지만/ 이 업을 왜 못 버리나/ 생과 사/ 선과 악/ 사랑과 미움/ 그 한가운데 서 있는/ 내 실체 때문인가/ 혼돈과 고통과 살벌한 광야/ 붓대 하나가 자유의 무기인가”(「業」 전문)라고 토로하는 밑바닥에도 본질 추구와 글쓰기에 대한 인식이 흐르고 있다.
박경리가 이토록 글쓰기와 본질‧진실 추구에 몰두하는 데는 그가 살아온 고유한 경험과 생애와도 무관하지 않다. 무남독녀로 태어났으나 새살림을 차린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부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의 역사적 질곡을 체험한 일, 어렸을 적부터 외할머니에게 동학혁명 등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성장한 점, 한국전쟁 후에 남편과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고 어머니와 어린 딸과 함께 힘겨운 생을 견뎌낸 일, 유방암 수술을 받은 후 육체적 고통을 감내한 사건 등을 거쳐오며 남성의 상징을 거세당한 사마천의 고통, 그러면서도 역사를 기록하려는 사명감을 지닌 자세 등이 박경리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또는 버릴 수 없는 ‘業’으로 수용하게 된 것이다. 확실히, 글쓰기에 대한 천명天命 만큼은 대문호인 박경리에게 주어진 본질‧진실에 가깝다고 하겠다. 이에 더하여 그가 추구하려는 본질‧진실이 종래는 자유와 평화, 생명 사상을 횡단한다는 점은 기억해야 할 특징이다.
대개
소쩍새는 밤에 울고
뻐꾸기는 낮에 우는 것 같다
풀 뽑는 언덕에
노오란 고들빼기꽃
파고드는 벌 한 마리
애끓게 우는 소쩍새야
한가롭게 우는 뻐꾸기
모두 한목숨인 것을
미친 듯 꿀 찾는 벌아
간지럼 타는 고들빼기꽃
모두 한목숨인 것을
달 지고 해 뜨고
비 오고 바람 불고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곳
허허롭지만 따뜻하구나
슬픔도 기쁨도 왜 이리 찬란한가
-「삶」 전문 (도시의 고양이들, 1990)
경계가 불분명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아토피아에서 박경리가 접속한 본질‧진실은 「삶」에 집약적으로 함축되어 있다. 소쩍새는 밤에 울고 뻐꾸기는 낮에 운다. 서로 다른 시간에 울어도 소쩍새와 뻐꾸기는 “모두 한목숨”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모두가 함께 사는 곳”이고 “허허롭지만 따뜻하”다. 연대적 사고와 공감적 태도가 전면에 드러난 위 시는 박경리가 살아온 생애와 삶의 자세가 조화를 이루며 진정한 주체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슬픔과 기쁨이라는 양가적 감정이 공존하는 아토피아에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어우러지는 이상향을 그린 것이다.
박경리의 시집 우리들의 시간의 자서에서도“시는 창조적 작업이기보다 그냥 태어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언급했다. 그에게 시 쓰기는 자기 정화와 재생이라는 순결한 영역에 속해 있었다. 마치 “바람을 질러서 풀숲을 헤치고 생명의 입김과 향기와 서러운 사연이 내게로 와서 뭔가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렇게 박경리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위안이었”고 “자정적(自淨的) 과정이기도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바라건대 눈감는 그날까지 내게서 떠나지 않고 시심(詩心)은 내 생의 버팀목이 되어주기를 원하는 것이며 오늘 황폐해진 이 땅에서도 진실하게 살 수 있는 시심의 싹이 돋아나 주기를 간곡”하게 소망하였다. 박경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시점에, 그의 이러한 바람이 불분명한 요소들로 점철된 이 땅 위에 퍼져 가길 같은 마음으로 기원해 본다. 다시 한번, 진실하게 살 수 있는 시심의 싹이 돋아날 것이다.
-------------------------
김태경|2014년 ≪열린시학≫ 평론 등단,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평론집 『숲과 기억』, 시집 『액체 괴물의 탄생』이 있음, 경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