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한 분이 같은 내용의 얘기를 걸어왔습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쓸 생각이 났습니다.
세상에서도 '새벽형' 인물의 입지전 같은 얘기가 심심찮게 나옵니다만, 우리의 성경도 그 무엇보다
새벽형 위인들을 많이 논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창세기의 천지창조 기록 때부터 하루를 저녁부터 세는 관례가 있는데(예: 창세기 1'5),
이것이 히브리 전통이 되어 그들은 하루를 저녁부터 셈하기 시작합니다. 바꿔 말하면,
하루 중 새벽이 가장 한가운데 있다는 뜻입니다. 놀랍지 않은가요?! 하나님의 시간 산정법에서는
새벽이 하루의 가장 핵심이라는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쉽게 생각하면, 새벽은 하나님이 (우주창조 때 맨처음 "빛이 있어라!" 하고 선포하여 내신 그)
빛이 어둠을 가르며 하늘을 비취기 시작하고, 동을 틔우기 전 준비하는 시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태양이 우주창조 때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태양 빛이 있기 전,
우주엔 하나님이 내신 빛이 존재해 있었습니다.
찬란하게 밝은 빛이 본격적으로 비취면서 노동 일의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
트여 오는 여명을 바라보며 준비하는 시각이 새벽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도 천지창조 전 캄캄한 어둠과 혼돈 속을 향해, "빛이 있어라!"는 창조의 첫 선언을 하기 전,
여명처럼 준비하신 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하나님이 창조 당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하늘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 때 아침별들이 노래했고
하나님의 모든 아들(곧 천사)들이 (기뻐) 외쳤단다." (욥서 38'7. 이하 성구들: 사역)
대언가 아모스는 말합니다:
"..캄캄한 어둠을 아침으로 바꾸시며.." (아모스 5'8)
또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온정, 그분의 참되심/신실하심은 변함 없이 밝아 오는 아침에 비유되곤 하죠(예레미야 애가 3'23).
돌아보면, 성부님과 함께 말씀으로서 창조사역에 동참하셨고, 지상에서도 이 하루의 중심을 늘 깨어 지키시던 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지상에 계실 때, 새벽 미명이면 으레 한결같이 하나님 아버지를 경배하고 간구와 탄원을 올리시는 습관을 늘 지탱하셨거든요.
그만큼 새벽이 중요하다는 뜻을 우리 주님이 몸소 삶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하루의 핵심인 새벽에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고 보람도 크다고
생각되는군요. 바쁜 삶 속에서 우리의 잠을 아끼고 잠자리를 설치면서 깨어 일어나 하나님을 경배한다...하나님도 다른 시간보다 그 시간에 더욱 우리를 귀하게 여기실 것 같지 않습니까?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주님 말고도 성경의 위인들 가운데 이런 새벽형들이 많았습니다.
아마도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들라면, 예슈아(여호수아)가 아닐까 싶네요. 예수님과 히브리 이름도 똑같은 이 고대의 히브리 지도자/영웅은 다음과 같은 새벽형 모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슈아 3'1; 6'12; 7'16; 8'10..
위 구절들을 보면, 예슈아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으레 아침 일찍 깨는 버릇을 길러 놓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틀림없는 새벽형 인간이었음을 시사해 줍니다. 아마도 그는 일찍이 그의 선배 지도자이자 그의 스승인 모쉐(모세)로부터 이 버릇을 배워 익혔을 법 합니다.
모쉐의 새벽에 관해 성경은 많은 말을 하고 있지 않지만, 미쯔라임 출국(출애굽)에 관한 다음 구절들을 보면, 그 역시 아침형 내지 새벽형 인간일 수 밖에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미쯔라임출국기(출) 7'15; 8'20; 9'13; 24'4; 34'2,4..
이 구절들을 보면, 모쉐 역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지시로 으레 아침 일찍 일어나 활동을 시작한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른 아침에 제단을 쌓고 제사로 경배하기도 했고,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격노하여 자신이 깨뜨려 버린 돌판 대신 새로 깎아 만든 두 돌판을 아침 일찍 손에 받쳐 들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시나이(시내) 산으로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소중한 수면 시간을 줄이고 하루의 중심인 여명의 중요한 시각을 바쳐 가며 일찍부터 바지런히 "설치기"를 바라시는 마음을 엿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새벽형 크리스천'이야말로 하나님께 귀히 여겨질 소질이 다분한 사람들이죠.
바꿔 말하면, 하나님은 새벽에 그분의 사람들과 함께 일 시작하기를 기뻐하시고 기분 좋아 하신다는 뜻으로도 이해가 됩니다.
곁들여서..우리가 새벽에는 꿈에서 깨어나므로, 성령께서 주신 좋은 꿈에 대해선 음미하고 기쁨으로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묵상하고 확인할 수가 있는가 하면, 나쁜 꿈에 대해서는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되는 새벽 시각에 즉시 회개할 수 있어 좋습니다(예: 창 20'8).
순서가 좀 거꾸로 됐지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역시 중요한 때 이른 아침에 행동을 한 장면들이 보입니다(창 19'27; 22'3).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리아 산에서 아들 이짜크(이삭)를 바치려고 한 날도 그랬지요.
훗날 그의 아들 이짜크는 자신을 찾아와 평화조약을 맺자는 게라르(펠레쉩) 왕 아비멜렠의 청원에,
둘 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서로 맹약한 것을 봅니다(창 26'30).
그의 아들 야콥 역시 벹엘에서 꿈 속에 하늘 사닥다리를 천사들이 오르내린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과 축복의 말씀을 들은 뒤 이튿날 아침 일찍 베갯돌을 갖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기름을 붓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서원한 모습을 봅니다(창 28'18~22). 야콥은 또 하나님을 대리한 천사(구약 때의 성자님! 28'30)와 밤새 씨름을 하다가 새벽녘에 축복과 함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부여 받기도 했습니다.
뭐랄까요. 새벽에 이런 중요한 일들이 자주 발생하네요.
하나님이 그분의 사람들의 새벽을 좋아하신다는 사실은 단적으로 다음 성구들로도 입증됩니다.
이 성구들은 모두 구약의 테힐림, 즉 찬양노래모음(=시편)의 시인/기자들의 고백입니다.
"오 예호봐(여호와)님!
아침에 나의 목소리를 들으실 테니,
내가 아침에 주님께 기도를 올리고 기다리렵니다." (찬양노래모음=시편 5'3. 이하: 약자 '찬')
"하나님은 그(성) 가운데 계시니,
그가(성이) 흔들리지 않으리.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 (찬 46'5)
"그러나 예호봐님, 나는 여태 울부짖습니다.
아침엔 나의 기도, 님 앞에 다다릅니다." (88'13)
"내가 날이 밝기 전 울부짖고 주님의 말씀을 바랐으며,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뜬눈으로 밤을 지샙니다." (119'147,148)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님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143'8a)
그밖에도 찬양노래모음의 다음과 같은 성구들이 아침/새벽과 연계돼 있습니다.
90'14; 92'1; 130'6..
그런데 우리가 예샤야후(이사야)서를 읽으면서 눈여겨 보게 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네가 하늘에서 떨어지다니, 오 헬렐(아침별), 여명(새벽)의 아들!
땅에 내던져지다니, 나라들을 꿇리던 네가!" (예샤야후서=이사야 14'12)
여기서 (한글 성경에서 '아침의 아들 계명성'으로 일부 오역된) '헬렐'은 라틴어 성경에서 '루키페르'(=루치페르. 영어:루시퍼)로 번역된 존재로, 문맥상으로 타락한 대천사(천사장) 곧 싸탄을 가리킵니다. 프리메이슨들을 비롯한 다양한 비밀집단들이 이 루키페르를 '빛나르미'로 번역하곤 합니다.
싸탄도 타락하기 전, 원래 창조주님에 의하여 새벽형으로 지어진 존재였습니다. 그의 본래 이름이 헬렐 곧 여명의 아들이었으니까요. 그는 하나님이 모든 하늘들 가운데 가장 먼저 창조된 천상의 우주 즉 셋째 하늘을 창조하실 때,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가장 아름답고 빛난 케루브(복수: 케루빔, 보좌 앞 찬양을 담당한 최고 천사. 한글 성경: '그룹') 겸 음악인으로 만들어졌음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자만하여 하나님의 보좌를 넘보며 천사들을 이간질하여 자기 편으로 만들다가 들켜 함께 전체 천사들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 타락한 천사들과 함께 셋째 하늘에서 쫓겨납니다. 그들의 운명은 죽음 및 지옥과 함께 끝내 영멸(永滅)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싸탄은 사실상 이젠 더 참된 의미의 '루키페르'도, 여명의 아들도, '빛나르미'도 아닙니다.
참된 밝은 아침별은 주 예수님이십니다(요한계시록 22'16)! 그분은 피조물이 아닌 성자님으로서 영원 전 태초에 유일하게 아버지 하나님의 품에 독생(only-begotten)하셨고(요한복음서 1'18), 성부님과 함께 말씀으로써 우주와 천지 창조사역에 개입하셨지요(요복 1'1~3. 비교: 창 1'3, 26).
그분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수난하여 죽었다 되살아나실 때,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오, 너는 내 아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찬 2'7b. 참고: 행전 13'29~37 특히 33b절. 히브리서 1'5)
주님은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그 새벽에 되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처음 익은 열매가 되시어, 주님을 그토록 안타까이 찾으며 흐느끼던 여제자 막달라 마리아를 맨 먼저 만나셔서 큰 기쁨을 안겨 주시면서 "내 형제(제자)들"에게 전하라고 부탁하신 뒤, 하늘의 아버님을 만나뵈러 일차 승천하셨지요(요복 20'11~18 특히 17절. 참조: '예수 승천은 딱 한 번?' > )
이 모두가 새벽에 벌어진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부활에 감격하여, 찬양노래의 시인과 같은 노래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의 마음, 확고합니다, 오 하나님! 내 마음 확고하니
내가 노래하고 찬양할 터입니다.
깨어라 나의 영광! 깨어라 한네발(비파)과 킨노르(수금)!
내가 새벽을 깨우리! (찬 57'7,8. 참고: 108'1,2)
'새벽'의 뜻
새벽이라는 우리말은 본래 새밝 곧 '새로운 밝음'이란 뜻으로, 고서에는 '새배'로 적혔다고 한다.
학자들에 따르면, 새배에서의 '배'는 배달(겨레)에 쓰인 "밝음"이라고 한다. 즉 "배달 겨레"는 밝은 땅의 민족이란 뜻이다. '벽'이 벽두(劈頭: 일의 맨처음, 글의 시작)에 쓰인 벽(劈: 쪼개고 남)이란 한자와 관련이 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새벽이 빛과 직결됐다는 점이다.
사실 해 아래 땅에는 진정한 새 것이 없다(전도서 1;9b,10). 다 낡았고 낡아가고 있다. 다만 아침마다 새로운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참되심/신실성이며, 그분을 통하여 거듭난 영들이 새로울 뿐이다!
한편 새벽/여명을 뜻하는 영어의 dawn은..1150년 이전의 중세 영어에서 'dawen'으로 쓰였고, 고대 영어에서는 dagian이며, 이것은 날/하루를 뜻하는 day의 원어 'dæg'에서 왔다. 북구의 daga, 중세 네덜란드어/독일어의 dagen, 고대 독일어 tagēn 등과 관련 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이라는 뜻에서, 전날/저녁을 가리키는 even(ing)과 day의 개념이 합쳐져 dawn이 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