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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침의 길에서 명상과 깨침 - 박성배 교수
‘맨하탄에 없으면 아무 데도 없다.’ 맨하탄이 세계 제일의 도시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장점이 많다한들 단점 없는 도시가 어디에 있을까. 그런데 맨하탄의 장점은 다 이용할 수 있는 거리에 있으면서도 맨하탄의 단점은 하나도 없는 도시가 있다고 한다. 그런 도시가 “스토니부룩”이란다.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부룩 캠퍼스(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Stony Brook)는 그러한 도시에 자리 잡고 있다.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위치한 스토니부룩 대학교로 가는 길, 베이사이드(Bayside)를 따라 시원하게 트인 수평선 너머로 여름 풍경이 펼쳐진다. 맨하탄에서 동쪽으로 1시간쯤 달려 스토니부룩에 도착하면 웨스트 캠퍼스(West Campus), 이스트 캠퍼스(East Campus) 등 동서남북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대학 캠퍼스를 만난다. 1970년대부터 “동부의 버클리”라고 명성을 떨치던 대학답게 스토니부룩 대학은 스토니부룩이라는 도시 전체를 대학 캠퍼스라고 착각할 만큼 광활했다. 박성배 교수는 1977년 뉴욕주립대 스토니 부룩 캠퍼스 종교학부의 불교학 교수로 부임했다. 그후 박교수는 여기서 줄곧 33년간 미국학생들에게 불교를 가르치고 있다. 지금은 아시아, 아시아-미국학부(Department of Asian and Asian-American Studies)에서 서양 학생들에게 동양사상과 불교사상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이른 아침 시간, 공과대학 2층에 있는 강의실에는 7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여 진지한 표정으로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이 날의 강의 제목은 명상과 깨침(Meditation and Enlightenment). 한 시간 20분 동안의 박성배 교수 강의는 크게 둘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참선 실습이고, 다른 하나는 강의와 토론이었다. 처음 20분간은 마치 한국 선방에 들어온 듯 죽비를 치고 참선을 시작했다. 수업이 강의와 토론뿐만 아니라 실습까지 병행하면서 다양한 방향으로 동양철학과 불교사상에 접근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참선은 한국학과의 방문교수로 와계시는 영남대학교 국어교육학과의 이강옥 교수가 담당했다. 이 교수의 태도는 한국의 전통적인 선방의 선사처럼 의연하고 엄숙했다. 장군죽비를 들고 돌면서 학생들의 자세를 바로 잡아주기도 하고 간간이 화두참선의 중요한 대목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학생들은 비교적 편한 자세로 화두를 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죽비 소리가 나고 참선 시간이 끝나자 학생들은 눈을 뜨고 오늘도 뭔가 해냈다는 표정을 지으며 짧은 수행 경험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평화롭게 보였다. 동양계 학생들이 많을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서양 학생들이 수강 인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학생들의 질문은 다양했다. 강의 내용과는 다른 자신의 생각도 거침없이 쏟아내는 분위기였다. 오늘의 강의는 아시아 지역의 선불교(Zen Buddhism) 전반에 대한 개론적인 내용이다. “동아시아의 선불교는 나라마다 성격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중국, 한국, 일본의 선불교 모두가 각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선불교가 정치적으로 정부의 영향을 받아 교조화된 특징이 있는가 하면 일본에서는 승려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세속화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선불교는 정치적 영향이나 세속화에서 탈피한 순수한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박성배 교수는 간명하면서도 핵심을 파고드는 설명으로 한국 선불교의 우수성을 설명해 나갔다. 부귀영화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세속을 떠나 산속에 숨어들어 수행한 고승들의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 한국 선불교의 특징을 강조했다. 오랜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차분하면서도 힘찬 목소리로 강의를 하는 박성배 교수. 강단 위에서 열정적인 모습으로 학생들에게 다가서면서 질문하고 토론한다. 복잡한 철학 개념을 쉽게 풀어 설명하고 요점을 잘 짚어주는 강의 스타일은 학생들을 어느덧 동양철학의 세계로 끌어 들이고 있었다. 서양 철학 사상에 물든 학생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박성배 교수의 강의를 경청했다. “5-6세기경 동아시아의 불교계에는 크게 두 가지 학파가 생겨났습니다. 하나는 불교의 경전공부를 중요시하는 ‘교종 불교’이었고, 다른 하나는 참선을 중요시 하는 ‘선종 불교’이었지요. 이들 두 종파가 대립하여 서로 비판하고 공격하며 상호보완적 발전을 해나갔지요. 12세기에 들어서 한국에 지눌(1158-1210)이라는 위대한 스님이 등장합니다. 지눌 스님은 경전과 참선, 두 가지를 모두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들 둘을 서로 조화시키려고 애썼습니다. 두 종파의 장점을 잘 들여다 보면서 ‘돈오점수설(頓悟漸修說)’을 주장했지요.” 불교수행론의 핵심 개념인 ‘돈오점수’와 활구참선의 핵심인 ‘돈오돈수’를 함께 가르치는 박 교수의 강의는 철학적인 깊이를 더해갔다. 이와 동시에 서양인들이 명료하게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도록 쉬운 이야기로 설명을 이어갔다. “12세기에 들어서면서 일본에는 두 분의 중요한 선사가 등장합니다. 한 분은 도겐(Dogen) 선사이고, 다른 한 분은 에이사이(Eisai) 선사입니다. 도겐 선사는 소토(Soto) 학파의 창시자로 좌선을 강조했습니다. <그저 앉아라. 10분 앉으면 10분 부처요, 한 시간 앉으면 한 시간 부처다>라고 말하는 일본 조동종의 구호가 이런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이에 반해 에이사이(Eisai) 선사는 린자이(Rinzai) 학파의 창시자로 중국의 참선수행 이론을 바탕으로 참선을 가르쳤어요. 모든 사람들이 내면에 고뇌와 각자의 업을 가지고 있기에 이러한 업의 감옥을 때려 부셔야한다는 일본 임제종의 특징이 여기서 뚜렷이 드러납니다.” 선불교에 대해 심층적인 내용으로 들어가자 내용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질문을 하며 박 교수의 강의를 따라가기 위해 애를 썼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에는 성철스님이란 분이 13세기에 조계종을 일으킨 지눌스님의 돈오점수설을 비판하고 돈오돈수(頓悟頓修) 사상을 들고 나왔습니다. 단박에 깨치고 단박에 닦는다는 돈오돈수는 시간개념이나 인과율에 얽매인 수행이론이 아니고 일체중생이 지금 당장 바로 이 자리에서 번뇌와 망상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불보살의 보리와 지혜를 하나도 보태지 않아도 누구나 다 있는 그대로 완전한 부처라는 사상입니다. 이것은 구체적인 참선을 철두철미하게 종교적인 차원으로 승화시킨 작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박성배 교수는 동북아시아 불교의 두 가지 서로 다른 흐름을 비교, 분석하며 선불교의 정수를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나갔다. 복잡하고 심층적인 불교사상을 서양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박성배 교수의 모습에서 지난날의 경험과 연륜이 묻어난다. “사실, 동양 철학을 영어로 설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함축적인 한자의 내용을 영어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예를 들어 도겐선사가 즐겨 썼던 ‘지관타좌(只管打坐)’ 같은 용어는 영어로 번역하기가 어렵습니다. 학자들은 이를 ‘Sitting Only’라고 번역하는데 그 안에 담긴 깊은 뜻을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죠.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한자어에 비해 영어는 단순 명료한 언어체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양 사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서양 학생들이 따라오기 힘든 과목이라 강의 내용의 난이도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저의 강의 방식이 사실 세월과 더불어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미국 학생들에게 맞는 방식, 미국 스타일로 강의를 했는데 그 옷이 저에게 맞지 않더라고요.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한국적인 것, 내 안에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강의 스타일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니 새로운 경지에 이르더군요. 물론 제가 강의하는 곳이 대학교이지만 그것마저 벗어나 대학이라는 경계(boundary)를 잊고 삶에서 깨달은 것, 체험한 것을 주로 해서 강의를 해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의 학문적 테두리를 지켜나가되 다른 학생들과 학자들로부터 배워간다는 마음가짐으로 항상 강의에 임하고 있어요.” 박성배 교수의 열린 마음은 이미 캠퍼스의 한계와 자신의 한계를 넘어 더 높은 깨침의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에게 수강 소감을 물었다. 생물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Seema Sawh는 “명상을 직접 해보고 실생활에서 깨침을 위해 작게나마 실천할 수 있는 것을 배우는 수업이라 마음에 들어요. 이론적인 내용도 많이 배우지만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실용적인 내용도 같이 곁들여 주셔서 좋은 수업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아요. 내가 어디에 서있고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지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에 크게 만족하고 있습니다.” TA를 담당하며 박성배 교수를 돕고 있는 Jonh Montani라는 학생은 “매번 수업 시간마다 잠깐씩 참선을 하는 것이 저의 정신세계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학교 다니면서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은 편인데 이 수업을 듣고 있으면 저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배우게 되요. 동양과 서양 사상의 간극을 메우고 균형을 이루게 하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하는 수업이라 생각해요. 두 가지 서로 다른 세계의 철학과 정신세계를 통해 저의 철학관과 사상을 굳건히 하는 토대로 삼고 있습니다.” 박성배 교수의 동양사상과 한국불교 강의는 학생들의 마음속에 파문을 일으키며 변화의 흐름을 이끌어 내고 있다. 지난 30년간 묵묵히 교단에 서서 제자들에게 뿌린 동양철학사상, 불교사상의 씨앗은 어느 곳에서든 싹을 틔워 또 다른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 갈 것이라 확신하는 박성배 교수. “요즘은 제가 사색하고 고민하는 것이 강의에서 드러납니다. 강의와 제 인생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 인생 이야기가 강의로 펼쳐지는 것이지요. 그런 깨침이 은연중에 강의로 드러나요. 학생들도 그것에 공감을 하게 되죠.” 어느덧 노교수의 인생은 강의가 되어있고 강의는 다시 그의 인생의 소중한 한 부분이 되어있다. “‘도(道)’라는 것이 사실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기도 하거든요. ‘도’라는 것이 어려운 개념이라 생각하면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어요. 하지만 ‘도’라는 것도 결국 사람이 다녀야 생기는 것이죠. 사람이 직접 다니고 실천하고 부딪히고 해야 ‘도’가 비로소 드러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실천을 해야 드러나는 길이 ‘도’라고 생각을 해요.” 강의를 통해 자신의 철학과 깨침, 불교사상을 제자들에게 전하며 그들의 내면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는 박성배 교수, 그의 ‘도(道)’를 향한 배움의 길, 나눔의 길은 제자들과 더불어 캠퍼스 강단에서 계속될 것이다.
▶ 1969년, Southern Methodist University, Perkins School of Theology에서 기독교 신학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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