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천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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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치다
“그는 그녀의 애절한 호소를 매몰차게 뿌리치고 떠나갔다.”
“그녀는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직서를 꺼내 책상 위에 냅다 던지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사무실을 잽싸게 빠져나갔다.”
이 두 예문에 나온 단어 ‘뿌리치다’의 뜻을 다들 알겠지만 사전에서 되짚어 보자.
『뿌리치다 :
「1」 붙잡힌 것을 홱 빼내어, 놓치게 하거나 붙잡지 못하게 하다.
「2」 권하거나 청하는 것을 힘차게 거절하다.』 [표준국어대사전]
나는 이런 뜻과 쓰임을 지닌 ‘뿌리치다’의 어원을 산스크리트에서 찾아보았다.
pṝ : to resist, withstand, be a match for. [Sanskrit English Dictionary]
쁘리∼ : 저항하다/반대하다, 견뎌내다, ∼의 상대가 되다.
chid : to cut off, amputate, cut through, hew, chop, split, pierce; to divide, separate from. [Sanskrit English Dictionary]
칟 : 자르다, 절단하다, 사이로 길을 내다, 자르다, 썰다, 가르다, 찌르다; 나누다, ∼에서 떼어놓다.
이러한 의미가 있는 산스크리트 ‘쁘리∼’와 ‘치드’가 결합하여 우리말 ‘뿌리치다’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왜냐하면 이 두 산스크리트 단어를 결합하여 생각하면, ‘상대방이 싫어서 저항하면서 상대방과 나를 확 갈라놓는다.’는 의미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대략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우리말로 정착했을 것이다.
쁘리_칟_다 < 쁘리_치_다 < 뿌리치_다
물론 문헌상의 근거가 없으니 확실히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말이 그토록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었을까를 생각하면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추론은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다. 특히 그동안 학자들이 우리말을 우랄알타이 언어권에만 묶어 놓았었는데, 인도유럽피언 언어의 산실인 산스크리트와의 유사성이 하나씩 드러날 때는 더욱 그렇다.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에는 각 단어의 어원과 예문이 아주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 우리말 대사전에서는 어찌 어원에 관한 기록이 이토록 빈약할까 하는 생각이 일었다. 조선 500년 동안 중국의 주자학과 한문서적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면서도 정작 우리말의 뿌리에 대해 깊이 연구한 서적이나 자료를 유산으로 남겨주지 않은 우리네 선조들을 두고 지금 뭐라 말해야 옳을지 모르겠다. 내가 국어 전공자는 아니지만 우리말을 평생 쓰고 살면서 이따금 어원을 알고 싶은 단어들을 찾아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한국인으로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라틴어, 희랍어, 산스크리트어 등에서 유래한 영어 단어들은 어원을 영어사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데 말이다.
“나는 부축한 손들을 뿌리치고 혼자서 똑바로 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윤흥길, 비늘≫” [표준국어대사전]
“김판봉이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어이 출어를 했다.≪한승원, 새끼 무당≫” [국립국어원표준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