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타/위빳사나
아나빠나 사띠(호흡 알아차림)를 수행하는 이유 (S.N. 고엔카님)
호흡을 관찰하는 것은 또한 바른 알아차림을 수행하는 방법입니다. 우리의 고통은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본성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상상 속에서 유쾌하거나 불쾌한 것을 체험하거나, 미래에 대한 열망이나 불안함을 경험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환상과 망상에 빠져 보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살 수 없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습니다. 우리는 미래에도 살 수 없습니다. 미래는 영원히 다다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현재에만 살 수 있습니다.
만약 현재 자신의 행위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과거의 실수들을 반복할 수밖에 없고, 미래의 꿈들을 결코 성취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계발할 수 있다면, 과거를 지침으로 삼아 미래에 우리의 목표를 이루도록 행동하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담마는 ‘지금, 여기’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계발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자신의 실제에 주의를 집중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아나빠나-사띠가 바로 그런 방법입니다. 지금 이 순간 숨을 들이마시고, 지금 이 순간 숨을 내쉽니다. 이 수행을 통해 현재의 자신에 대한 알아차림을 계발하게 됩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면서 우리는 현재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호흡의 알아차림을 계발하는 또 다른 이유는 궁극적 실제를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 호흡에 집중하는 것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탐구하고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던 것들을 의식하도록 도와줍니다. 이것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합니다. 호흡은 의식적으로도 무의식적으로도 다 기능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특정한 방식으로 호흡하자고 마음을 먹으면 호흡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잠시 동안 숨을 멈추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호흡을 통제하려고 하는 노력을 멈추었을 때에도 여전히 호흡은 계속해서 무의식적으로 지속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의식적으로 주의집중을 더 쉽게 하기 위해서 조금 강하게 숨을 쉬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호흡을 분명하고 꾸준히 알아차리게 되면 호흡이 강하든 약하든, 깊든 얕든, 길든 짧든, 빠르든 느리든 간에 자연스럽게 지속되도록 허락합니다. 자연스러운 호흡의 알아차림을 유지하면서 우리는 보통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반자동적인 몸의 현상을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의식적 호흡의 거친 실제를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자연스러운 호흡의 미세한 실제를 관찰하는 단계에 도달합니다. 우리는 피상적인 실제를 넘어 미세한 실제에 대한 알아차림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호흡의 알아차림을 계발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갈망, 혐오, 무지를 알아차림으로써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입니다.
이 작업을 하는 데 호흡은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호흡은 그 사람의 정신적 상태를 반영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평화롭고 고요하면, 호흡은 규칙적이고 조용합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분노, 혐오, 공포, 욕정 등 어떤 부정성이라도 일어나면, 호흡은 거칠어지고 강해지며 빨라집니다. 이런 방식으로 호흡은 우리의 정신적 상태를 알려주고 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러한 이유들 외에 호흡의 알아차림을 계발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부정성이 없는 마음을 성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목표를 향해 내딛는 모든 걸음이 순수하고 건전하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마디를 계발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주의집중의 대상을 건전한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호흡이 바로 그러한 대상입니다. 우리는 호흡에 대한 갈망이나 혐오를 가질 수 없고, 이것은 또한 환상이나 망상과는 전혀 관계없는 실제입니다. 그러므로 호흡이 집중의 대상으로 적절한 것입니다.
호흡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을 때, 마음은 갈망, 혐오, 무지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그 순수한 순간이 아무리 짧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든 과거의 조건화들에 맞설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강력합니다. 모든 축적되었던 반응들이 휘젓고 올라와 알아차림을 계발하는 노력을 방해하면서 여러 가지 정신적·신체적 어려움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수행에서 발전하고 싶어 조급하고 초조한 마음, 즉 갈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아니면
●수행의 발전이 더딘 것 같아 분노나 우울함의 형태로 혐오감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무기력함에 압도되어 명상하려고 앉자마자 졸게 됩니다.💥
● 때로는 아주 동요되어 한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거나💥 ●명상을 하지 않으려는 핑계를 찾게 될 수도 있습니다. 💥
●때로는 의심이 일어나 계속 명상하려는 의지를 약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지도하는 선생님이나 그의 가르침 혹은 우리 자신이 과연 명상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집요하고 비이성적인 의심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갑자기 이런 어려움들에 맞닥뜨리게 되면 수행이고 뭐고 모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런 순간에는 우리가 성공적으로 호흡을 알아차리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들이 일어났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계속 수행하고 있으면 그것들은 점차 사라집니다. 그렇게 되면 수행은 더욱 쉬워질 것입니다. 수행의 초기 단계에서 겹겹이 쌓여있던 조건화들이 일부나마 마음의 표면에서 제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호흡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우리는 마음을 정화하고 해탈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 中, 윌리엄 하트 지음, 담마코리아 옮김.
첫댓글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_()_
호흡의 알아차림을 계발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갈망, 혐오, 무지를 알아차림으로써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사마디를 계발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주의집중의 대상을 건전한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호흡이 바로 그러한 대상입니다.
☸️💎우리는 호흡에 대한 갈망이나 혐오를 가질 수 없고, 이것은 또한 환상이나 망상과는 전혀 관계없는 실제입니다. 그러므로 호흡이 집중의 대상으로 적절한 것입니다.
☸️💎호흡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을 때, 마음은 갈망, 혐오, 무지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그 순수한 순간이 아무리 짧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든 과거의 조건화들에 맞설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강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