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대학을 입학하는 청소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학뿐 아니라 중 고등학교도 진학 보다는 시골에서 농사일을 돕거나 도시로 나가 공장엘 갔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는 과정에 입시가 있던 시기엔 치열한 경쟁이 있었고 시골의 경우 대도시나 도청소재지의 인문고 그리고 전국을 모집단위로 하는 실업계 고교를 가려면 공부 좀 하고 동네에서 머리 좋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특히 촌락의 경우엔 근처 고등학교나 대도시 또는 도청 소재지 중소도시로 가는 경우 대부분 자취와 하숙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일찍 지역을 떠나 아예 초등학교 때 부터 전학을 갔다.
나의 사촌들은 가장 큰 집을 빼고는 대부분 부산이나 대구에 나가 직장을 다니고 학교를 갔는데 셋째 큰 아버지의 경우는 초등학교 교사였고 전근을 여러 군데 다니 셨는데 도시학교에는 한번도 근무하신 적이 없으셨고 시골에만 계시다 퇴직할 땐 거제도에서 교장으로 퇴임 하셨다.
사촌들은 졸업한 중고등학교가 제각각이었으나 어느 정도 시기가 되자 큰 집 어른들은 시골에 살고 결혼을 하고 진학을 하면서 사촌형제자매들(5남매)은 대구에 모여 살았다.
시골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 정착을 하여 가정은 안정이 되었지만 교육문제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대학진학이 많지 않던 시절 이왕 가는 것 법대나 행정학 아니면 교사 집안이니 교대를 보내거나 아니면 농업기술과 관련 학교를 가는 경우가 많았으나 당시에는 시골에서 생소한 '사회복지학과'를 진학한다.
아마 큰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조언이 있거나 매형들이 의견을 제시하고 본인은 점수에 맞춰 갔겠지만 시골의 어른들 사이엔 말들이 많았다.
직계나 방계혈족의 어른들 보다는 이웃에서 특히 뒷말이 많았던 것 같다.
"이왕 가는거 법대나 아니면 행정학과 아니믄 공대나 농대를 가지 사회복지가 뭐꼬!"
"그거 나오믄 뭐 하는기가?"
"모르지... 듣자니 외국인들 한테 돈 지원 받아가 못사는 사람들 돕는다카데..."
" 그기 좋은 일은 맞는 거 같은데 ... 지 앞 가림은 하나? 아부지 따라 선생이나 되지 ..."
어렵게 간 대학 돈도 되고 고향에서 떵떵거리는 걸 좋아하던 시절 사촌형은 학교를 졸업하고 복지재단에 취업을 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직장을 다니고 있다.
보통 정년이 넘어 공직이나 사기업에서 또래가 오래전 퇴직을 하고 노후를 고향에서 보내고 있음에도 아직 현직에 있다.
거창한 봉사정신이니 희생이니 이런 것 보다는 자신의 성격에 맞았던 것 같다.
유쾌한 성격에 어디를 가면 싱겁다는 소리를 하지만 즐겁게 분위기를 만드는 형은 지금도 자신의 일터에서 행복해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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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사회복지학과를 지망했던 사촌형
f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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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5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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