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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무등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범현이
거위의 집
남양장에서 들리는 것은 진짜 거위 소리였다. 나는 까치발을 딛고 남양장의 시멘트 벽돌담을 너머다 보았다. 하지만 170센티미터의 내 키는 벽돌담의 높이에 미치지 못했다. 의자든 양동이든 올라서지 않고서는 남양장을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주차장에 딛고 설만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주차관리인 처지에 아침 일찍 들어온 그랜저와 아우디의 보닛에 올라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주차할 때 뒤 범퍼가 시멘트 벽돌담에 닿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갖다놓은 폐타이어는 올라서나마나 일 것 같았다. 이런 때 플라스틱 의자라도 있으면 딱 좋으련만. 담을 붙잡고 있던 팔을 내리는데 마땅한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주차장 입구에 누군가 버리고 간 철제 쓰레기통이었다. 의자 높이라서 발판으로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오래전 남양장은 이 도시에서 알아주는 여관이었다. 준 호텔 급인데다 일층에는 조선옥이라는 한정식 집까지 갖추고 있어 남양장에 간다고 하면 모두들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볼 정도였다. 오죽하면 남양장에서 들리는 한낮의 교성소리를 입맛 다시며 듣는 노인들까지 있었겠는가. 나는 지금도 길을 가다 걸음을 멈추던 노인의 표정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렇게 전성가도를 달리던 남양장은 내가 군대에 가있는 사이 첫 번째 주인이 바뀌었다고 했다. 이후 남양장은 경매에서 육억 원에 낙찰됐다는 소문만 전해왔을 뿐 개미 새끼 하나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 남양장에 노숙자와 거위가 살고 있다고 했다.
제법 쌀쌀한 기운이 느껴지던 가을날 아침, 은성이 커피를 들고 컨테이너를 두드렸다.
“움막 속에 앉아있는 거위가 얼마나 예쁜지 몰라. 정말이야, 형.”
녀석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노르웨이 숲 속의 거위를 떠올렸다. 온통 하늘을 향해 곧게 서 있는 자작나무 같은 흰 털빛. 머리를 앞으로 내밀고 한 방향을 향해 줄줄이 걷는 거위들. 세상의 빛나는 것들은 모두 거위의 등 위로만 모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은성이 말한 거위는 보이지 않았다. 기둥과 외벽만 남은 남양장의 마당 한쪽 구석에 각목 따위를 세워서 비닐 천막을 씌워놓은 움막이 보일 뿐 거위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일층엔 전선과 수도관 호스와 시멘트 뼈대들만 휑뎅그렁했다. 기둥과 기둥 사이로 한 잎 두 잎 지고 있는 거리의 은행잎이 보이고 움막 옆에는 빈 종이상자와 신문지 따위로 가득 찬 리어카가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아예 고개를 들이밀고 남양장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거위는 물론 거위를 키우는 사람도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거위가 있을 만한 곳은 움막밖에 없어보였다. 나는 당장 남양장에 달려가 거위를 찾아보고 싶었지만 조금 있으면 차들이 밀려들 시간이었다.
남들이 볼 때는 주차장 관리인이 한가롭게 보이겠지만 나름대로 일이 많고 고된 게 이 직업이었다. 하루 종일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점, 다른 사람들이 밥을 먹을 시간에 손님을 맞아야 한다는 점, 모두가 편안히 집에 있을 늦은 밤 시간이 되어서야 일이 끝난다는 점에서 식당업과 비슷하기도 했다. 주차장 사각지대 구석구석에 담배꽁초는 왜 이렇게 널려있는 건지, 날마다 쓸어도 끝이 없었다. 가득 찬 쓰레기봉투를 묶어서 수거 장소에 내놓고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면 오전 시간이 언제 가버렸는지 모르게 지나가버렸다.
바쁠 땐 눈코 뜰 새 없다가도 그 시간이 지나면 짜증날 정도로 한가한 곳이 주차장이었다. 차들이 한꺼번에 아홉, 열 대씩 밀려들다가 몇 시간 동안 주차권 한 장 뽑아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두 경우 다 나름대로 힘들지만 내겐 골목에 들어오는 차를 한 대도 보지 못할 때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되도록 빨리 넉넉하게 통장을 채운 다음 이 도시를 떠나고 싶었다. 아직 그 다음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케이블 채널은 재탕의 연속이고 휴대폰을 열지 않는 한, 말 한 마디도 나눌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하릴 없이 주차장 입구만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은성은 남양장에서 거위를 키우는 노숙자가 산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내가 남양장을 매일 같이 너머다 보게 된 것은 그날부터였다. 거위 울음소리가 아니었다면 내가 남양장을 너머다 볼 일은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거위를 보지 못했다.
"형, 오늘은 커피가 좀 늦었지?"
컨테이너에서 김치찌개 냄새를 빼내려고 창문을 여는데 은성이 커피를 가져왔다. 누군가를 위해 커피를 타고 음식을 만드는 것이 행복하다는 녀석이었다. 어느덧 나는 아침마다 녀석의 커피를 기다리게 되었다. 녀석이 가져오는 커피는 언제나 설탕과 프림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맥심 커피였다.
“근데 김치찌개 냄새 나는 거 보니까 내가 커피를 제때 가지고 온 거 같네. 다음부턴 항상 이 시간에 갖다 줄까?”
오늘 아침에는 썰어야 할 게 유난히 많았다고 은성은 말했다. 짜장의 재료가 되는 양배추, 양파, 감자는 물론이고 깍두기 담글 무까지 썰어야 했다. 여느 중국음식점처럼 천안문에서도 아침마다 야채를 다듬고 써는 게 중요한 일이었다. 물론 은성이 하는 일은 배달이지만 그 많은 양을 주방장과 주방 아줌마 둘이서만 해낼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은성은 내가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다. 배달이 곧 밀려들 시간이었다.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선글라스 너머로 눈웃음을 치며 나중에 컵을 가져다 달라던 은성이 돌아가려다 말고 나를 부른 건 텔레비전을 리빙 채널로 바꾸고 났을 때였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울창한 숲이 가득 차 있었다.
“아 참, 형! 남양장에 노숙자랑 함께 사는 거위 봤어? 내 말이 맞지?”
나는 여자처럼 하얀 피부를 갖고 있는 은성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뻣뻣한 수염하나 돋은 흔적이 없는 은성의 턱을 볼 때마다 녀석의 사타구니 속이 궁금했다. 가끔씩 내 뻣뻣한 수염을 넋 놓고 바라보다 신기한 듯 수염을 만져보곤 하던 녀석이었다. 형은 나를 이해해줄 거라며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운을 뗐으면서도 지금껏 망설이고만 있는 은성의 이야기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직. 소리만 들었어.”
거위를 보지는 못했지만 은성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부터는 나한테도 거위 소리가 들렸다. 그때부터 도심 한가운데서 거위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침이 좋았다. 어렴풋한 한기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나려 할 때 들려오는 거위 소리는 내게 신선한 하루를 열어주곤 했다. 비록 거위를 볼 수는 없었지만 월세를 백만 원이나 내야하는 주차장에서 깍깍거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만큼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시골 풍경이 그려지곤 했다. 아담한 흙집. 작은 마당. 마당가에 감나무와 목련나무가 서있고 그 아래 거위가 뒤뚱뒤뚱 거니는 곳.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거위 울음소리만 듣고 이런 그림을 상상하게 된 건 노르웨이 숲 속의 거위들을 보여 준 텔레비전 덕분인지도 몰랐다.
“그럼, 노숙자 없을 때 한 번 가 봐. 멀지도 않잖아.”
나는 은성이 돌아간 뒤 컨테이너를 나와서 남양장을 바라보았다.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샵 모텔과 푸치니 모텔 사이에 초라하게 서있는 남양장. 창문이 모두 뜯겨 나간 남양장은 검은 빛으로 흉측해보였다. 실제로 내 주차장에 오는 손님들 가운데는 불이 난 건물이냐고 묻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창문이며 내부 벽을 죄다 뜯어놓은 채 오래도록 비워놓은 건물을 경매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고 사람의 손길을 잊어버리고도 오랫동안 버티고 있는 남양장이 신기하기만 했다.
한참동안 남양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까치 소리가 들려왔다. 꽤나 가깝게 들리는 소리였다. 남양장의 오층부터 차근차근 눈으로 짚어 내려오던 나는 삼층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거칠게 부서진 시멘트 벽 단면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평소와 다르게 비명 같은 거위 소리도 들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한동안 거위 울음소리만 들리던 남양장에서 이번에는 라디오 소리도 났다. 바로 옆의 푸치니 모텔 일층에서 월세를 사는 아이들이 창문을 열어놓았는가 했지만 그 창문들은 꼭꼭 닫혀 있었고, 왼쪽의 샵 모텔은 라디오 소리에 비해 거리가 멀었다. 라디오 소리는 남양장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틀림없었다. 하지만 남양장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거위 또한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빈 종이상자와 신문지 따위가 가득 쌓여있던 리어카가 텅 비어있고 주황색 비닐이 둘러진 움막 옆에 플라스틱 양동이가 새로 보일 뿐이었다. 아마도 노숙자는 고물상에 리어카를 비워주고 시장에 들려온 뒤 비닐 움막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나도 휴식을 취하듯 잠시 비닐 움막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뭔가 반짝하는 빛이 시야를 스쳐갔다. 은행잎이 떨어지면서 아침 햇빛을 반사시킨 거였다. 그제야 나는 남양장의 흉물스러운 시멘트 기둥 사이로 비치는 가을의 거리를 바라보았다. 보도블록에는 늦여름의 독기가 사라진 햇살이 얇게 깔려 있었다. 텔레비전의 아침 프로그램에서 만추(晩秋)라는 단어를 들은 기억도 났다. 얼마 안 있으면 은행잎이 다 진 저 거리에 맵찬 겨울바람이 불고 생명의 흔적 하나 찾아볼 수 없을 눈보라가 흩날릴 터였다.
겨울을 떠올리자 노숙자가 자리 하나는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지하철이나 기차역에서 자리다툼은 하지 않아도 되고 폐휴지와 고물을 부지런히 주워다 팔면 그런대로 겨울은 날 수 있을 것이었다. 언젠가 주차장 앞 골목을 담당하는 미화원이 말하기를 생활정보지 한 부의 무게는 500그램이고 돈으로는 120원이라고 했다. 생활정보지는 아침마다 가판대에 채워지고 거리에는 가게마다 내놓은 빈 종이상자와 신문지 따위가 널려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경쟁이 치열한 세상이었다.
그랜저 두 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주차를 하고 삼십대로 보이는 남자들이 다섯 명이나 내렸다. 모두들 감청색 양복에 넥타이 차림이었다. 그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컨테이너에서 주차권을 발급하고 있는 나를 향해 걸어왔다. 은성이 오토바이 속도를 줄이며 그들을 흘깃 쳐다보고 지나갔다.
“여기 사장님 되십니까?”
사내로서는 체구가 작은 편인 내가 보기에는 위압적인 체격들이었다. 내게 말을 건 남자는 일본의 스모선수 같은 체격이었는데 예의바르게 허리를 굽히는 인사성이며 말투는 의외로 정중했다. 나는 주차권을 내밀다 말고 허리를 마주 엉거주춤 숙이며 남자를 쳐다보았다.
“예, 그렇습니다만.”
감청색 양복의 남자와 내 눈이 컨테이너의 작은 창문 사이에서 부딪쳤다. 나는 낯선 남자들의 정체가 궁금했고 남자는 주차장을 운영하는 나를 살피는 눈치였다. 입을 굳게 다물고 쌍꺼풀 없는 눈에 힘이 들어가 있다는 게 그 증거였다. 나는 남자가 찾아온 용건을 말하기 기다리며 두툼한 그의 얼굴이 내 얼굴 크기의 두 배는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 얼굴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그 순간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드리워졌다.
“저는 지난여름에 경매에서 저 건물을 매입한 사람인데, 리모델링 공사 때문에 찾아뵈었습니다. 공사를 시작하려면 아무래도 양쪽 모텔들보다 주차장에 양해를 좀 더 구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나는 재빨리 남양장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남양장과 이웃한 담 아래 주차 공간은 네 대를 주차할 수 있었다. 이곳은 주차장에서 가장 안쪽이기 때문에 밤늦게 출차 하는 차들이 주로 주차하는 곳이었다. 천안문의 산타페와 수제화 전문점 메트로의 SM5, 퓨전 레스토랑 더 밥의 소나타와 토스트 가게 비전의 누비라가 이 자리의 오랜 주인들이었다.
이백이십여 평의 주차 공간 중에 담 아래 자리는 원래 내가 살았던 집터였다. 방 세 개와 주방이 작은 거실을 가운데 두고 기역자로 늘어서있던 집. 이 집에서 아버지의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할머니가 아버지 몰래 고리대금업자에게 집문서를 넘겼다. 집을 비울 때가 되어서야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분노를 씹으며 할머니를 큰아버지에게 버렸고 나는 그로부터 십오 년이 지난 뒤 이곳으로 돌아와 덤프트럭 다섯 대로 아버지가 지은 집을 쓸어버렸다. 지난 해 들어간 철거비용이 자그마치 삼백만 원이었다.
돈으로 환산되는 수치는 두뇌의 회전을 평소보다 배는 빠르게 한다.
“공사 기간을 얼마나 잡으실 건가요?”
아무리 위압적인 체격이라 해도 아쉬운 입장은 남자 쪽이었다. 그의 말투에서는 그런 그의 입장이 충분히 묻어났다.
“한 두어 달 걸릴 것 같습니다만.”
공사기간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남양장이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간 건 아버지와 친분이 두터웠던 남양장 주인이 노름에 빠지면서였다고 했다. 마침 최신식 편의시설을 갖추고 등장한 모텔에 밀린 남양장이 빛을 바래기 시작할 때여서 그야말로 똥값이었다. 새 주인은 남양장을 사무실 겸 오피스텔로 개조하고 싶어 했다. 가능한 한 비용을 적게 들이고 싶었던 그는 일억만 주면 리모델링을 완벽하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오랫동안 창문 하나 새로 끼워 넣지 못했다. 외벽과 기둥만 남겨둔 채로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건물을 버리고 업자가 달아나버렸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두 달 동안 네 대분의 주차공간이 줄어든다는 데 있었다. 또 그만큼 다른 차도 더 받을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로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다른 곳은 주차요금을 올렸지만 저는 아직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더라도 자동차 한 대당 하루 주차요금은 이만 원입니다. 거기에 곱하기 삼십 일, 곱하기 사를 하시면 답이 나올 겁니다. 소음이나 먼지 등의 피해는 제가 이해하더라도 말이죠.”
그 답은 나도 구해보지 않았다. 다만 예상했던 시간보다 빨리 이 도시를 떠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문득 리빙 채널에서 즐겨보았던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의 숲들이 스쳐갔다. 그제야 내가 이 도시를 떠난 뒤 무얼 하고 싶어 하는지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남자는 잠시 시선을 떨어뜨린 채 말이 없었다. 탐색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눈치였다. 굳게 다문 입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동시에 커다란 머리도 끄떡였다.
“공사를 지금 당장 시작한다는 건 아닙니다. 일단 구청에서 허가가 떨어져야 하고 공사 준비도 해야 하고······. 그동안 조정을 다시 해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저희가 그렇게 돈이 넉넉한 게 아니라서 말입니다.”
그 말을 듣자 남자가 하려는 사업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남자는 웨딩 컨설팅 전문점을 만들 거라고 했다. 사실 남양장 앞의 거리는 웨딩의 거리였다. 녹십자 병원 옆에서부터 분수가 있는 도시의 광장 옆까지 온통 웨딩숍이 즐비했다. 그 가운데 토털 전문점이 들어선다면 몇 개의 가게가 또 죽어나갈 것이었다.
거구의 남자가 일행과 함께 돌아가고 난 뒤 나는 남양장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까치 소리가 들려왔다. 해가 잘 비치지 않는 건물 내부는 어두컴컴해서 까치를 쉽사리 알아보기 어려웠다. 오층부터 찬찬히 살핀 뒤에야 가까스로 창문을 뜯어낸 자리에 앉아 우는 까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도 검푸르게 빛나는 까치를 발견하고 나서야 노숙자와 거위를 떠올렸다.
며칠 만에 너머다 본 남양장에는 움막의 비닐이 걷혀 있었다. 기둥 역할을 했던 각목은 아직 그대로였다. 종이상자 위에 누워있는 노숙자가 어렴풋이 눈에 띄었다. 그 사이 세간도 불어났다. 전에 보이지 않던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알루미늄 냄비가 파란색 플라스틱 양동이 옆에 놓여 있었다. 거위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라디오 소리와 함께 깍깍 울음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지난 며칠간은 남양장을 너머다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형이 아버지의 산소를 없애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산소가 주택공사의 아파트 단지로 수용이 된 건 이년 전이었다. 도시의 변두리에 있는 산에는 교회 공동묘지도 있었다. 도시가 점점 넓어지면서 야트막한 산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되자 아버지도 다른 사람들처럼 어딘가로 옮겨드려야 했다. 형은 나와 의논 한마디 없이 아버지를 납골당의 공동묘지에 보내는 걸로 일을 매듭지어버렸다. 납골당의 공동묘지란 여러 사람의 뼛가루를 한데 모아 보관하는 곳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아버지를 버린 형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흉측한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남양장처럼 비닐 움막을 걷고 누워있으면서도 노숙자는 태평스러운 얼굴이었다. 평범한 외모에 대한민국 남자의 보통 체격이나 될까, 이쑤시개 같은 걸로 손톱 밑을 후비는 노숙자의 손이 새까맸다. 머리도 얼굴도 물 구경을 해본 지 몇 달쯤 된 몰골이었다. 게다가 시멘트벽이 시커먼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남양장에서 겨우 종이상자나 깔고 누워서 해바라기가 대문짝만하게 그려진 그림을 등 뒤에 걸어두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는 노숙자를 보자 나는 기가 막혔다. 노숙자 옆에 세워진 리어카에는 종이상자와 신문지가 가득 차있었다. 누가 봐도 당장 고물상에다 리어카를 비워주고 하이에나처럼 다시 거리의 먼지라도 뒤지고 다녀야 정상인 상황이었다. 비록 고물 값이 바닥을 기고 있긴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라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부지런을 떨어야 마땅했다.
주차장에 오는 손님 가운데는 아이엠에프는 게임도 아니라는 손님이 많았다. 순 개털들뿐이야. 주머니가 가벼워서 쓸모없이 거리를 날아다니기만 하는 개털들. 이 말은 수제화 전문점을 운영하는 메트로 사장이 막걸리를 마시며 한 말이었다.
나는 노숙자와 리어카와 햇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겐 노숙자를 일으켜 세울 방법이 없었다. 무엇을 해도 남양장에서와 다를 것 없는 삶. 어디를 가도 남양장과 다를 것 없는 잠. 원래 체념에 절여진 몸뚱이는 돌보다 더 무거운 법이었다. 담 너머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시야에 잡힐 텐데도 노숙자는 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있었다.
나는 한참동안 그런 노숙자를 바라보다 담에서 내려왔다. 손에 시멘트 벽돌담의 부슬거리는 모래가 묻어났다. 내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 세워진 담이 다 늙었다는 증거였다. 담이 세워지고 난 뒤 아버지는 내가 집을 치워버린 자리에 외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살 집을 지었다. 그리고 시멘트 벽돌을 쌓아 지은 숭숭 바람구멍뿐인 집에서 십일 년이나 살았다.
그 조악한 집을 쫓겨나듯이 떠나던 날의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이끼 낀 바위처럼 얼굴이 굳은 아버지가 그날 한 말은 “가자.”라는 한 마디뿐이었다. 할머니는 쇼핑 중독자였다. 돈을 물 쓰듯 마음껏 쓰기 위해 집을 몰래 저당 잡혔는데 아버지는 할머니를 큰아버지에게 보내고 나서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뒤 아버지는 곧잘 어울리던 친구들에게 술 한 잔 사지 않고 담배까지 끊었을 정도로 지독하게 살았지만 평생 집을 마련하지 못했다.
라디오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거기에 거위 울음소리도 섞였다. 도대체 어디서 들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거위. 나는 고개를 숙여 모래가 부슬부슬 일어나는 시멘트 바닥을 내려다보며 감청색의 남자가 겨울이 지나고 나서 돌아오길 바랐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내 바람을 여지없이 무너트려버렸다.
은성이 깍두기 무를 써는 날보다 빨리 커피를 가져다 준 아침이었다. 예의 검정색 그랜저가 불쑥 주차장을 들어오고 거구의 남자가 운전석 문을 열고 내렸다. 다섯 명의 일행이 번거로웠는지 혼자였다.
“공사는 이십 일 후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남자는 나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한 마디에 질문이 포함되었다는 것과 남자가 내 대답을 기다린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글쎄요. 주차장은 시간을 파는 장사인데 나더러 손해를 보라는 건 좀 그렇지 않겠습니까?”
어느 새 나는 또 거위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도 나에게 지지 않았다.
“알지요. 그럼, 지금 배상 금액을 조정해주시고 나중에 저희 직원들 차를 여기에 월 주차시키면 어떻겠습니까? 직원들 차는 모두 다섯 댑니다.”
어차피 이 동네에서 다섯 대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곳은 내가 관리하는 주차장뿐이었다. 긴 개천을 끼고 있는 동네에는 모두 여섯 개의 주차장이 있지만 월 주차를 받지 않거나 스무 대 이상을 받지 못하는 넓이들뿐이었다.
“월 주차는 월 주차고, 당장 수입에 차질이 생기는데 손해를 보란 말입니까?”
“사장님, 그러지 마시고.”
당장 무릎이라도 꿇을 듯 남자의 허리가 굽혀졌다.
“어려운 시기에 경매를 받고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기에 저의 모든 것을 올인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생략한 채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남자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남양장을 바라보았다. 창문을 뜯어낸 컴컴한 자리에서 까치가 또 울고 있었다. 그제야 노숙자는 리어카를 끌고 고물상에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남자에게 다음 봄에 공사를 시작하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미 거액을 투자한 남자는 하루가 바쁜 눈치지만 나는 거위가 다가오는 겨울만이라도 남양장에서 났으면 싶었다.
옛날 남양장 일층은 아버지가 점심으로 갈비를 가끔 사주던 곳이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언제나 나를 자전거에 태워주었다. 그때의 따사로웠던 햇볕을 나는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형의 집을 나온 뒤, 일거리를 찾아 도시를 무작정 헤매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던 한낮의 햇볕이었다. 그 햇볕은 내가 삶에서 무릎이 꺾이는 고배를 마실 때마다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었다. 하지만 내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가 살았던 집은 허물어져가고 마당은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나는 살았던 집을 허물고 넓히는 조건으로 주차장을 임대했다. 내가 서 있는 주차장은 다시 말하면 아버지의 흔적과 기억의 품 안이었다. 집은 비록 폐허가 되었지만 그 뜰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집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하지만 남자가 내 부탁을 들어줄 리 없었다. 잠시 동안 남양장을 바라보던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정확히 앞으로 20일 후부터 공사를 시작한다는 말이지요?”
그제야 활짝 펴지는 남자의 얼굴이 곁눈으로도 환하게 보였다.
인터넷 옥션에는 다양한 종류의 침낭이 있었다. 트라팩 동계형 침낭, 초경량 침낭, 고급 솜 침낭, Cross 천연오리털 침낭 등 종류만큼 가격도 다양했다. 나는 그 가운데서 Cross 천연오리털 침낭을 주문했다.
컨테이너에서 살아본 사람은 안다. 철판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여름에는 얼마나 덥고 겨울에는 또 얼마나 추운지를. 더위와 추위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네 평 공간에서의 삶은 극기 훈련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취업 재수생활을 접고 형 부부와의 쉽지 않은 동거를 끝낸 후 첫 겨울을 보내고 나서야 침낭을 생각해냈다. 텔레비전의 야생 로드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남양장 옥상에 올라간 노숙자를 본 건 침낭을 주문한 날 오후였다. 시내에 잠깐 볼 일 보러 간다는 소나타를 주차하고 습관적으로 남양장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층의 창문을 뜯어낸 구멍을 통해 옥상을 서성이는 그림자가 살짝 비쳤다. 처음엔 검은 그림자가 공사에 관련된 사람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몇 발짝 다가가서 본 검은 그림자는 뜻밖에도 노숙자였다.
노숙자는 옥상에 심어진 몇 그루의 향나무 앞에 서 있었다. 향나무는 남양장 주인이 건물 준공기념으로 만들어놓은 옥상 정원의 일부였다. 남양장 주인은 나무를 심어놓은 뒤 한 번도 물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나무는 모두 죽어버리고 향나무만 남았다. 그 뒤로 주인이 두 번 바뀌고 건물을 비워놓은 시간이 얼마인데 여태까지 나무는 머리 위로 하늘을 드리우고 푸르게 살아있었다. 청명한 하늘 때문인지 그 푸른빛이 내게는 마치 노르웨이 숲처럼 보였다. 길고 넓게 풀어헤친 검푸른 머리를 가진 숲. 풀 한 포기 구경할 수 없는 주차장에 햇빛이 하얗게 쏟아질 적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더위를 견디며 리빙 채널로 바꾸면 화면을 가득 채우던 숲.
나는 그 향나무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서있는 노숙자를 한참동안 지켜보았다. 무엇 때문에 옥상에 올라간 것인지 그곳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옥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안 되었다. 그건 상상력이 빈약한 사람이라도 충분히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는 것이었다. 향나무와 자동차들이 달리는 거리와 멀리 산까지 경치를 감상하는 일과 향나무를 뒤로 하고 가지가 꺾어지듯 지상을 향해 뛰어내리는 것.
노숙자의 변함없는 리어카를 아침에도 보았던 나였다. 리어카뿐만 아니라 모든 게 그대로였다. 휴대용 가스레인지, 알루미늄 냄비, 플라스틱 양동이, 거위 울음소리와 라디오 소리 등. 그 가운데서도 한심한 존재는 노숙자였다. 나는 노숙자가 왜 여태 리어카를 끌고 나가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며칠 전 다시 주차장을 찾아온 거구의 남자는 공사를 맡아줄 업자와 함께 건물을 보러 왔다며 창문 뜯어낸 자리가 휑한 남양장을 잠시 바라본 적이 있었다. 그날은 내가 육 개월 분 주차장 월세를 땅주인에게 폰뱅킹 시킨 날이었다.
“저기에 노숙자가 살고 있던데요. 지난번에 정리해서 나가주라고 했는데 나갔는지 나가지 않았는지 그것도 가서 봐야겠습니다.”
이 말은 거구의 남자가 남양장을 보러 가기 전에 한 말이었다.
원래 기차역에서 살던 노숙자가 남양장에서 살기 시작한 건 내가 주차장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라고 했다. 이것도 은성이 알려준 사실이었다. 천안문에서 열다섯 살 때부터 배달을 시작한 은성은 일이 끝난 뒤 애인과 함께 쏘다니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에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은 거의 모르는 게 없었다. 노숙자가 왜 거리의 삶을 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거구의 남자가 노숙자에게 빨리 나가지 않으면 쫓아내겠다고 말했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 은성이었다.
목이 뻣뻣하게 아파오기 시작할 때까지 남양장 옥상정원을 바라보고 있어도 내가 상상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노숙자가 그 옥상에서 뛰어내리길 기다렸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노숙자는 늦가을 햇볕을 등지고 서서 하염없이 향나무를 바라보기만 할 뿐, 고개 한 번 들지도 않았다. 그의 얇은 등에 힘없는 햇살이 떨어지고 오후의 바람이 쌀쌀하게 불고 있었다. 화석처럼 서있는 노숙자에게서는 체념이 느껴졌다. 그 모습에서 나는 외할아버지가 물려준 집을 앞장서서 떠나던 날 아버지의 등을 보았다.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당신은 내 어머니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 건 아버지를 끔찍하게 아껴주었던 외할아버지 때문이었다.
나는 노숙자를 계속 바라보며 남양장에 가까이 다가갔다. 자동차 소리가 들리면 곧장 컨테이너로 달려가야 했지만 마침 주차장 앞 골목과 도로를 지나다니는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는 시간이었다. 남양장에서는 거위 울음소리와 라디오 소리가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남양장을 너머다 보았다. 역시 거위와 라디오는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노숙자의 보금자리 어디에 거위가 숨어있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담을 붙잡은 채 옥상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위해 바닥을 뚫어놓아 생겼다는 구멍으로 계단 끝에 서있는 노숙자의 다리와 발이 보였다. 때에 전 검정 바지와 운동화는 그때까지도 향나무 앞에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형, 자요?"
밤늦게 찾아온 은성의 손에는 캔 맥주가 담긴 봉지가 들려 있었다. 배달을 마치고 오토바이로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오는 길이라는 은성의 얼굴은 어딘지 침울해보였다.
“그 자식이 끝내자고 하네요. 나는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나는 의아한 눈으로 은성을 바라보았다. 은성은 언제나 짧은 스포츠머리였고 오랫동안 오토바이에 단련된 팔과 다리는 나보다 더 단단해보였다. 다만 지분을 바른 것 같은 얼굴과 수염 하나 돋아난 적 없는 턱이 나를 가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은성이 제 애인을 가리켜 그 자식이라고 했다.
“그 자식?”
“그 자식도 나를 그 자식이라고 하는데요.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어요. 내 안에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는 것 같으니까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난 은성이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어느 날보다 술이 잘 받는지 은성은 단숨에 한 캔을 비우고 담배를 빼물었다. 그리고 한 모금 깊게 빨더니 연기를 내뿜느라 남양장 쪽으로 향해있는 창문을 열었다. 매캐한 연기가 은성의 여릿한 목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 잠겨있는 남양장 쪽을 향해 날아갔다.
“형! 나는 진짜 집을 갖고 싶었어요. 베고니아 화분을 창문 밖에 내걸고 그 자식이랑 커피를 함께 마시고 싶었어요.”
나도 은성을 따라 맥주를 비우고 담배를 빼물었다. 방충망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에서 가까이 다가온 겨울의 냄새가 났다. 찬바람이 이마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남양장의 노숙자는 자신의 체온으로 바닥을 데우며 겨우겨우 잠을 잘 것이었다. 그나마 곁에 있는 거위가 노숙자에게는 위로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 남양장 담 아래 공간에 어둠이 그윽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자정 무렵 주차장 안쪽의 등을 끄는 것으로 또 하루의 일과가 모두 끝났다. 남양장 옥상 높이의 샵 모텔과 푸치니 모텔의 간판 불빛 덕분에 주차장은 마치 달이 구름 속에 숨은 밤 같았다. 나는 그 어스름 빛을 밟으며 남양장으로 갔다.
완벽하지 않은 도시의 어둠 덕분에 구석에 있는 노숙자의 자리가 희미하게 보였다. 움막은 엉거주춤하게 펼쳐져 있었고 라디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거위도 조용했다. 꽤 쌀쌀한 밤인데도 노숙자는 깊이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노숙자에게 다가갔다. 음습하고 차가운 남양장의 어둠에서는 가까이 임박한 노숙자의 체크아웃 시간이 느껴졌다. 그 전에 거위를 보아야만 했다. 어쩌면 나는 노르웨이 숲을 뛰어다니는 거위를 보기 위해 아버지가 살았던 집에 다시 돌아온 건지도 몰랐다.
고물이 가득 실린 리어카 옆에 서자 넓게 펼쳐놓은 종이상자 위에 길게 잠든 노숙자와 푸치니 모텔과 이웃한 벽 쪽에 비스듬하게 펼쳐진 움막이 어렴풋이 보였다. 아무래도 거위는 비닐 움막 속에 숨겨져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노숙자의 세간 사이에 잠긴 어둠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나갔다. 냄비가 내 발에 채인 건 세 번째 걸음을 내딛을 때였다. 와당탕! 그 순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거위가 화드득 날개 짓을 하며 나를 향해 머리를 들었다. 움막에서 노숙자가 벌떡 일어선 것과 동시에 짧은 스포츠머리가 불쑥 나타났다. 거위는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달빛처럼 날아올랐다. 난 거위를 붙잡으러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2016무등문예(신춘문예) 당선작 소설 당선소감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을 외가에서 보내던 어느 날. 앞 뒷장이 모두 뜯겨나가 제목도 알 수 없는 한 권의 소설을 읽었다. 그 책이 소설가 박완서 님의 ‘나목(裸木)’이었고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의 등단작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아름다웠다. 그 무렵의 난, 활자 중독처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읽었다. 집 밖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자치기 소리, 고무줄놀이, 땅 따먹기 환호성 따위는 나를 자극하지 못했다. 오직 모든 관심과 호기심은 무엇인가를 ‘읽는’ 것이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삶은 녹록치 않았다. 가파른 능선을 올랐다 생각했을 땐 분명 대가를 요구했고, 지금이 바닥이야 생각했을 땐 천 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 쳐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멀리서서 타자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프고 있던 어린 이마를 짚어주던 아버지의 손길을 느꼈다. 삶의 갈피마다 절망이 나를 감쌀 때 유일한 위로는 ‘쓰는’ 것, 그리고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몇 년 전 문득, 내 어린 날의 꿈이 생각났다. 어디에서나 당당하게 ‘소설가’가 꿈이라 말하던 어린 나를 떠올렸다. 대학시절, 오리아나 팔라치의 ‘한 남자’라는 소설에 빠져 빼곡하게 필사하던 대학노트도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해 늦가을부터 소장하고 있던 모든 책들을 다시읽기를 시작하며 쓰고 지우며 또 썼다. 매번 본선에 오르며 탈락하는 시간은 내게 ‘겸손’과 ‘깊이’를 알게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은 많아졌고 전화기를 꺼두는 일도 잦아졌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것. 숙성되어 녹아들어야 비로소 자신만의 향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것.
먼 길을 돌아왔다. 여기까지 오는데 혼자의 힘은 아니었다. 삼십년이 넘은 시간동안 그림자처럼 나를 지켜봐주던 화가 이준석 선배, 피붙이 같은 차정연 박사. 마음의 안식을 준 김경주 교수님, 그리고 살아오는 동안 내 삶 속의 부처였던 나의 가족, 홀로 계신 어머니와 네 명의 자매들, 글 감옥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 존경하는 친구이자 소설가인 송은일, 이은유의 자극과 격려, 보살핌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이루어지 못했을 것이다. 지면을 빌어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 무엇보다 어린 ‘나’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치명적인 도움을 주신 박혜강, 조진태 심사위원님. 선정에 누(累)가 되지 않도록 첫 마음을 잊지 않을게요. 감사합니다.
수상의 기쁨을 아버지께 엎드려 바친다. 내 모든 ‘지금’은 당신으로부터 비롯되었어요.
2016무등문예(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심사평 / 완벽함보다 장래성에 주목을 둔 선택
신춘문예 심사는 신인을 뽑는다는 점에서 참신성을 중요시한다. 또 당선자의 장래성에도 무게를 두게 된다. 한 가지를 더 거론하자면, 소설(단편소설)의 특징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또 형상화하느냐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번 응모작들을 받아보기 전에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이다. ‘혼용무도(昏庸無道)’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혔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고 나서, 시대상을 반영하는 소설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물론 메르스 사태, 세월호 사건 등이 거론된 작품이 있긴 했지만, 상당수의 작품들이 어디선가 들음직한 평범한 일상이나 생각들을 반복해서 중얼거리거나 고백하는 투였다. 이런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환상적이기 십상이며 서사(이야기)가 실종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설은 ‘옛날의 설화나 서사시를 바탕으로 근대에 발달한 문학 양식’이라는 점에 주목해주었으면 좋겠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샷>, <복어>, <거위의 집>이었다.
<샷>은 구성이나 이야기의 소재가 신선했다. 그런데 특정지역의 방언을 남발하여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었다. 방언은 향토성을 드러내야할 경우 등을 제외하고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이야기가 잘 전달되지 않으면 감동을 주지 못한다거나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는 법이다.
<복어>는 응모자가 좋은 이야기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작품 속에는 복어와 요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집중적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황복은 ‘맛’ 외에도 ‘독’을 상징하고 있었으며 결국 ‘복수’로 발전된다. 그런데 복어에 관한 설명들이 백과사전을 인용한 듯하여 참신성이 떨어진다는 게 결점이었다. 또 하나의 지적은, ‘문학(소설)은 언어로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거위의 집>은 몰락한 가족사와 폐건물에서 지내는 노숙자를 소설의 소재로 삼고 있었다. 약간 식상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으나, ‘뒤뚱거리며 걷는 거위’를 통해서 주인공의 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호감을 갖도록 만들었다.
단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 가지만 들자면, 주제를 끌어가는 힘이 부족했다. 우리는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가슴 속에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에 소설이라는 그릇을 빌어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저런 고심 끝에, 범현이 응모자의 <거위의 집>을 당선작으로 골랐다. 완벽함보다 장래성에 주목을 둔 선택이었다. 더욱 정진하면 좋은 이야기를 낳게 될 것이다. 당선인의 건필을 빈다. 축하드린다.
박혜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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