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9일 추수 감사절
제목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본문 시편 100:1-5
세상은 전쟁으로 요란합니다. 기후 위기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봉급은 그대로이고 쌀값은 하락하는데 물가는 하늘 높이 치솟고 있습니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세울 학교에서는 상처받은 교사들의 절규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엄청난 분량의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쏟아내고 있습니다. 한 시도 탄식을 멈출 수 없는 세상, 불평거리가 충만 세상입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감사를 멈출 수 없습니다. 시편 100편을 통해서 추수감사절에 주시는 감사의 가르침을 함께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라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이는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올 때 감사하며 나오라는 뜻입니다. 예배하는 자의 기본은 감사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에게는 감사가 필수조건입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차를 타고 오는 과정에서 불편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예배당 가까운 골목에서 불편한 일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걸어오신 분들 역시 예배당 언덕을 올라오며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퍽퍽하여 감사할 여유를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예배를 앞두고 기분 나쁜 일, 불평을 쏟아내고 싶은 일도 생깁니다.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고 천국에 못 가는 것은 아니지만, 불평과 예배는 어울릴 수 없습니다. 예배자는 오직 감사의 마음만 가져야 합니다.
도서관 설립 초기 순천시 도서관 지원과 계장님께서 우리 교회에 오셔서 이런 말씀 했습니다. “골목이 운치가 있어 좋습니다. 요즘 보기 드문 돌담길이 있으니, 순천만에 오는 탐방객들에게 소개하여 거닐게 해보면 너무 좋겠습니다.” 한마디 더 하셨습니다. “골목이 좁은 만큼 교회 정원이 넓게 펼쳐져 있어서 상대적으로 시원한 느낌이 듭니다.” 계장님은 당시 봉고차를 타는 분이어서 “길을 넓혀야겠습니다. 골목이 좁아서 답답합니다.”라고 한 마디 할 법 한데 운치 있는 골목으로 여겨주셨습니다. 관점만 바뀌어도 불편한 일이 사랑스럽게 보인다면, 믿음으로 예배당에 나오신다면 불편했던 것들이 감사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교회 오실 때마다 운치 있는 돌담길을 걷게 된 것을 감사하고, 골목이 좁아 차가 천천히 다녀서 안전함을 감사하게 여깁시다.
예배하러 올 땐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교회에 오셨습니까? 예배당에 도착할 때까지 감사를 백번 하고 오시면 어떨까요? 그러면 얼굴이 환해지고, 마음은 기뻐지고, 영혼은 맑아질 것이고, 예배는 은혜로워질 것입니다. 예배에 감사의 마음으로 오시려면 조금 여유 있게 출발하십시오. 마음이 급해지면 감사할 여유를 잃게 되고 은혜도 줄어듭니다. 예배하러 올 때 성경책과 함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오시기를 바랍니다.
그 문에 들어가서 머물 때도 감사하라
예배당에 들어와서도 감사는 이어져야 합니다.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성전으로 향할 때나 성전 안에 들어가서나 감사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 내내 감사의 마음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감사의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십니다. 예배는 감사가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마지막 축도까지 감사로 충만한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감사와 예배는 단짝입니다. 예배에는 반드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감사가 결핍되면 예배의 결정적인 흠이 됩니다. 감사가 빠지면 아무리 화려한 예배가 이루어졌다 해도 실패한 예배입니다. 감사 없이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받지 않는 예배가 되고 맙니다. 영혼 없는 예배, 메마르고 차가운 예배, 형식만 갖춘 예배일뿐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아무런 능력도 은혜도 없는 예배로 전락하고 맙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가요? 감사가 결핍되어 있다고 여겨집니까? 부족함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래도 소망이 있습니다. 감사가 부족하다면 시인의 노래처럼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고 싶은 갈망을 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의 예배드리고 싶습니다. 식어진 감사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그런 소원을 아뢰시기를 바랍니다.
시인은 감사와 그 이름을 송축함을 연결하여 노래합니다. 감사와 찬양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찬양이 예배이듯이 감사도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찬양도 받으심처럼 감사도 소중한 제물로 받으십니다. 우리도 감사와 송축이 어우러진 예배를 드려야겠습니다. 예배하는 시간 감사의 마음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교우들을 만날 때, 찬양할 때, 기도할 때, 설교를 들을 때, 식사할 때에도 감사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모임과 회의할 때도 감사가 연속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곳이며, 감사하는 곳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문에서 나올 때도 감사하라
감사는 예배당에서 머물 때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성전에서만 감사하고 성전 밖으로 나가면 다른 사람처럼 불평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일상에서 감사하며 살다가 예배당에 나오고, 예배당에서 했던 감사가 가정과 사회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삶이 성전의 삶이어야 합니다. 주일 예배당에서만 아니라 월요일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집의 대문과 성전 문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웃집은 초록색을 칠한 대문이라면 우리 집은 감사로 색칠한 대문이어야 합니다. 일을 마치고 대문으로 들어갈 때 감사하고, 집에 머물 때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집은 헌 집이고 불편한데 그래도 감사해야 할까요? 우리 집은 작은 셋집인데 그래도 감사해야 하나요? 당연합니다. 작고 헌 집에 살아도 감사해야 합니다. 가족들과 함께 밥 먹을 수 있음도 감사해야 합니다. 가정은 감사 훈련소이며 감사 발전소입니다. 가정에서 충분히 감사가 연습되어야 교회로, 회사로, 사회로 전염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감사가 있다면 그 가정은 이미 축소판 교회가 된 것이고, 작은 천국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감사하는 곳에 하나님이 거주하시며 감사가 있는 곳에 축복이 머뭅니다.
회사나 직장 정문에 들어갈 때도 감사해야 합니다. 근무 시간 내내 감사해야 합니다. 나를 받아준 회사에 감사하고 일할 수 있는 힘주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직장이 맘에 들지 않아도 감사해야 합니다. 봉급이 적고 복지가 별로인데, 감사해야 할까요? 그래도 감사하는 것이 내 신앙과 내 건강에 훨씬 좋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잠잘 때, 일어날 때, 밥을 먹을 때, 걸을 때, 숨을 쉴 때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루에도 수백 번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다다익선입니다. 감사하며 사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불평하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나 짧습니다. 감사하며 살아도 부족한데, 짜증으로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감사함으로 우리의 인생을 채워감이 지혜입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몇 번이나 감사하는지요? 가까운 사람, 내가 만나는 모든 자에게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누구에게든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감사하십시오. 입술에 감사를 달고 사십시오. 언제 어디에서든지 일상에서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교회로 향하여 나올 때, 예배당 문에 들어올 때, 예배할 때, 예배를 마치고 문을 나설 때 감사가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집 대문에 들어설 때, 가족들과 대화할 때, 음식을 먹을 때에도 감사가 계속되길 바랍니다. 회사 정문에 들어올 때나 나올 때에도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무덤에 갈 때까지 감사로 인생을 채워 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가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제물이며 송축이며 예배입니다. 사랑하는 교우님들 모두가 감사하는 예배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