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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12월 9일 월요일
[(백)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성모 마리아께서 잉태되신 순간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다는 믿음은 초대 교회 때부터 있었다. 이러한 믿음은 여러 차례의 성모님 발현으로 더욱 깊어졌다. 1854년 비오 9세 교황께서는 ‘성모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셨다. 한국 교회는 이미 1838년 교황청에 서한을 보내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를 조선교구의 수호자로 정해 줄 것을 청하였고, 그레고리오 16세 교황께서 이 요청을 허락하셨다.
오늘은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동정 마리아를 성자의 맞갖은 어머니가 되게 하신 하느님을 찬미합시다. 또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한국 교회가 이 땅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주님의 종이 되도록 전구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어 축복을 내려 주셨지만, 사람은 하느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죄를 짓는다(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다(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게 하신다. 마리아께서는 하와와 달리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셨기 때문이다(복음).
제1독서
<나는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라.>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3,9-15.20
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 주 하느님께서 그를 9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1,3-6.11-12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6-38
그때에 26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가브리엘 천사는 처음부터 성모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루카 1,28)라고 부릅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라는 표현에는 완료형 시제가 쓰였습니다. 성모님께서 이미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아 그 은총을 충만히 누리고 계심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1,28)라는 표현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1,30)라는 표현은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특별한 보호 아래 계시다는 뜻입니다. 루카 복음서는 성모님께서 이미 예전부터 하느님의 은총 안에 계셨던 것으로 묘사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1,31-32).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시고자 먼저 성모님을 준비시키셨습니다. 성모님을 원죄에서 보호하시고 당신의 특별한 은총 안에 머무르시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까닭은 예수님의 강생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어질 ‘구원’ 때문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신비의 중심에는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과, 우리를 모두 구원하시기 바라시는 하느님의 열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기념하는 오늘, 성모님을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죄와 악의 유혹에서 벗어나 하느님 사랑에 응답하는 자녀가 되도록,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특별한 전구를 청합시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모든 악에서 보호해 주소서! 아멘.(김재덕 베드로 신부)
우리 모두 또 다른 나자렛의 마리아가 되어야 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지난가을, 청소년들 여름 신앙학교를 끝내고, 형제들과 섬으로 휴식 겸 친교를 위한 소풍을 갔을 때의 일이 떠오릅니다.
젊은 형제들은 멋진 풍광 속을 걸어 다니고 사진도 찍고, 뷰가 좋은 카페에 앉아 담소도 나누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저희 영감팀은 오로지 눈만 뜨면 낚시를 갔습니다.
첫날 처음 보는 물고기가 몇 마리 잡혀서 신기했습니다. 비늘도 없는데다, 자태가 멋졌습니다. 온몸이 짙은 고동색에, 싸이즈가 그리 크지 않은데도 엄청 힘이 세더군요. 회를 떴는데, 살이 얼마나 찰지고 탄탄한지 다들 감탄을 했습니다.
형제들이 너무 맛있다 맛있다 하니 그 다음 날 또 그 자리를 갔습니다. 그 자리가 제대로 된 포인트였던지, 어제 잡힌 정체불명의 물고기들이 또 다시 몇 마리 잡혔습니다.
플라스틱 통에 바닷물을 담아 잡힌 고기들을 던져놓았는데, 지나가던 마을 주민들이 그 고기들을 보고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이 귀한 고기를 어떻게 잡았데요?”
알고 봤더니 제가 잡은 그 고기들은 횟감으로 가장 비싸다는 다금바리였습니다. 검색해봤더니 킬로당 30만원이랍니다. 우럭은 킬로당 3만원인데, 열 배나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뒤로 즉시 고동색 물고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킬로당 30만원이라는데 하는 생각에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 다루듯이 소중히 다루었습니다.
비싼 고기니만큼 제일 깨끗한 쿨러를 씻고 또 씻어 옮겨 담았습니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얼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숙소로 가져와서 회를 뜨는데, 어제와는 달리 손실율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극정성으로 조심조심 회를 떴습니다. 먹을 때도 산삼 먹듯이 음미하면서 그렇게 회를 먹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횟감 중의 횟감으로 귀한 취급을 받는 다금바리를 제가 극진히 모셨습니다. 가지고 있던 고기 보관통 중에서 가장 깨끗한 통에 모셨습니다. 고기가 상하지 않도록 얼음도 담고 그야말로 지극정성을 다해 애지중지한 것입니다.
우리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성모님을 원죄없이 잉태되신 분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성모님은 다금바리와는 비교도 안 될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분, 만왕의 왕인 예수님을 열 달 동안 자신의 몸에 모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무시는 거처로 가장 깨끗하고 무죄하신 나자렛의 소녀 마리아의 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성모님은 자신의 몸으로 들어오신 하느님을 온몸과 마음을 다해 환영했습니다. 하느님의 거처가 된 자신의 몸을 매일 깨끗하게 청소하고 단 한점의 흠이나 티도 없이 유지했습니다.
이번 대림 시기를 지내는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노력입니다. 이번 성탄 아기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내면 안에, 영혼 안에 탄생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머무시기에 합당한 거처가 되도록, 몸과 마음을 잘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우선 판공성사를 잘 봐야겠습니다. 내면을 잘 정리정돈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또 다른 나자렛의 마리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각자도 성모님처럼 아기 예수님을 탄생시켜야 합니다! 이번 성탄,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에게서 탄생하셨듯이 우리 각자 안에서도 탄생하시기 위해 우리 각자의 문을 두드릴 것입니다.
우리가 고백성사를 통해 영혼을 말끔히 정화시키고, 매일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도 계속 정화시킨다면, 우리 역시 성모님처럼 거룩하고 흠 없는 지성소, 구세주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적당한 장소가 될 것입니다.
원죄 없음: 사흘만 있으면 가죽옷이 준비될 것이란 믿음.
전삼용 요셉 신부님
길가에 살면서 핫도그를 파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가게에 라디오가 있을 리 없었습니다. 눈도 좋지 않아 신문도 읽지 않았습니다. 다만 좋은 핫도그를 팔면 많은 사람이 사 먹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핫도그에 들어가는 고기와 빵도 남들보다 크게 했습니다. 고속도로변에 광고판도 세웠고 길가에 나와 “핫도그 사세요.”라고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사업은 나날이 번창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집에 와서 아버지를 돕게 되었습니다. 경제를 공부하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라디오 듣지 못하셨어요? 신문도 읽지 못하셨죠? 지금 경기가 곤두박질치고 있어요. 유럽의 상황은 처참해요. 외국은 유럽보다 훨씬 나쁘고요.”
이 말에 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우리 아들은 대학생이고 신문도 읽고 라디오도 들으니까 아는 게 많은 게 당연하지.’
그리고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고기도 줄이고 핫도그 크기도 줄였습니다. 더 이상 길가에 서서 핫도그를 팔지도 않았습니다. 아들의 말대로 장사가 점점 안되었습니다. 급기야 고속도로변의 간판도 내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 말이 옳았다. 경기가 곤두박질치는 게 분명하구나.”
사람은 왜 부정적으로 될까요? 긍정을 잃고 부정에 귀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무엇일까요? 믿음이 없음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지 않았기에 죄에 물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죄가 빼앗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고 우리를 사랑하시니 모든 것을 해 주실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부르기 위해 베드로의 배에 올라타시고,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하며 정말로 그물을 내리니 그물이 찢어질 듯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
이것이 겸손일까요? 겸손의 탈을 쓴 교만입니다. 베드로의 이 부족한 면은 예수님께서 그의 발을 씻어주려 하실 때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발을 씻으려고 하시자, “주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이심을 믿지 못하는 게 죄입니다. 믿지 못하면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이시고 능력자이심을 믿을 때 나는 어떤 감정이 듭니까? 바로 ‘긍정’입니다. 다시, 사랑하는 부모와 함께 있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겉모습만 보면 성모님은 시골의 한 처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은총이 가득하신 분’은 온 세상에 성모님밖에 없으셨습니다. 천사가, “은총이 가득하신 분, 기뻐하십시오. 주님께서 함께 계십니다”라고 인사하였습니다. 죄인에게는 주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십니다. 스스로 그분을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고 우리를 사랑하심을 알라고 가브리엘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하느님이 자신들을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힘으로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면 자기 능력을 믿게 됩니다. 이것이 원죄이고 이 아담과 하와의 원죄가 모든 인류에게 미친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만은 자기 능력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브리엘 천사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한 꽃집 할머니는 항상 행복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았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매일 행복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맨날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노부인도 그렇게 대답합니다. 비밀을 이렇게 말해주곤 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안 좋은 일도 일어나지.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흘만이 부활했잖아요? 나도 ‘사흘만 있으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해요. 정말 사흘만 지나면 다 좋아져요. 그래서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이분이라면 거의 원죄를 벗어났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전능하신 분이 당신과 함께 머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원죄에서 벗어난 이들은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오늘 우리는 성모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신비를 기념하며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 축일은 하느님께서 구세사의 시작부터 구원의 계획 안에서 성모 마리아를 특별한 방식으로 선택하시고 준비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성모님의 축일을 지내면서 23년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당시 제가 있던 본당은 서울 대교구에서 가장 작은 본당이었습니다. 23년 전 봄에 저는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대림 특강을 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쭈어보는 거였고, 가능하시면 특강을 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여름이 지나도 추기경님께서는 답장이 없었습니다. 가을이 깊어 가면서 추기경님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추기경님께서 로마에 회의 갔었고, 며칠 전에야 편지를 보았다고 합니다. 추기경님께서는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축일에 대림 특강도 하고, 미사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저와 본당 식구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림 특강을 준비했습니다. 마을 입구에 현수막을 걸었고, 문산과 법원리 성당에도 알렸습니다. 군부대에도 협조공문을 보냈습니다. 추기경님께서 오시는 날에는 성당이 잔칫날이 되었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강의와 미사를 하셨고, 저녁까지 잘 드시고 가셨습니다. 서울 대교구에서 가장 작은 본당이었기에 추기경님께서는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오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다.
루카 복음서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라고 말한 구절은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특별히 선택하셨음을 드러냅니다. 이 표현은 마리아가 단순히 선택받은 정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온전히 보호되고 인도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셨다는 것은 마리아께서 죄의 흔적이 전혀 없는 상태로 태어나셨음을 뜻합니다. 이는 마리아의 공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 주도적으로 역사하셨다는 점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계획의 위대함을 증언합니다. 마리아는 원죄 없이 잉태되심으로써 구원 계획의 중심에 서게 되셨지만, 그분의 위대함은 단순히 선택받은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께서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응답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를 하느님께 봉헌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마리아의 응답은 오늘 우리에게도 큰 도전이 됩니다. 우리들 또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충실하게 응답해야 합니다.
마리아의 순수함은 단지 죄가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상징합니다. 우리도 성모님을 본받아 하느님 앞에서 정결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성사와 기도를 통해 우리 안에 자리한 죄와 잘못을 씻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신비는 단순히 그분 한 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하느님의 초대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가 거룩한 삶으로 부르심 받았음을 이 신비를 통해 드러내십니다. 마리아의 모범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끌어 줍니다. 오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며, 우리 각자도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과 계획 안에 있음을 깨닫길 바랍니다. 성모님을 본받아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신뢰하며, 우리의 일상에서도 거룩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오늘의 성인
성 후안 디에고(Juan Diego)
신분 : 농부
활동지역: 쿠아우티틀란(Cuautlitlan)
활동연도 : 1474-1548년
같은이름 : 디다꼬, 디다꾸스, 디다코, 디다쿠스, 얀, 요안네스, 요한,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콰우틀라토아친, 쿠아우틀라토아친, 한스
성 요한 디다쿠스(Joannes Didacus, 또는 요한 디다코, 후안 디에고)는 1474년 오늘날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Mexico City)의 일부인 쿠아우티틀란에서 태어나 ‘독수리 같이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쿠아우틀라토아친(Cuauhtlatoatzin)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아나후악(Anahuac) 계곡에서 비교적 문화적으로 성숙한 치치메카족(Chichimeca)의 일원이었다. 평범한 농부였던 그는 50세경에 초기 멕시코 선교를 나온 작은 형제회 베드로 다 간드(Petrus da Gand) 신부로부터 요한 디다쿠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은 후 날이 갈수록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던 그는 에스파냐가 마야, 아즈텍 문명이 융성하던 멕시코를 정복한 지 꼭 10년 후인 1531년 12월 9일 멕시코시티 근방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원 성당의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테페약(Tepeyac) 산을 넘고 있었다. 그날따라 이른 새벽 가시덤불밖에 없던 산 정상에 신비한 기운이 감돌았는데 갑자기 찬란한 빛을 내는 구름 속에서 한 귀부인이 나타나 성 요한 디다쿠스를 불렀다.
그때 그 귀부인은 자신이 은총을 가득히 입은 하느님의 영원한 동정녀 마리아임을 밝히면서 그 장소에 성당을 세우라는 메시지를 주교에게 알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말을 전해들은 멕시코의 초대주교인 후안 데 수마라가(Juan de Zumarraga)는 그를 믿지 않았다.
성모님께서는 실망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성 요한 디다쿠스에게 다시 발현하시어 내일 주교에게 다시 가서 성당을 반드시 세울 것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주교는 성모님께서 표적을 보여 주신다면 기꺼이 성모님을 위한 성당을 세우겠다고 말하였다. 성 요한 디다쿠스가 이 말을 다시 성모님께 전하자 성모님께서는 징표로써 테페약 산 정상에 올라가서 장미를 주워 주교에게 보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때는 12월이라 추웠고 또 돌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가 산 정상에 가니 과연 장미꽃들이 있었고 이를 틸마(Tilma, 외투 또는 보자기로 쓰이는 겉옷, 망토)에 담아 주교에게 내보였다. 그 순간 주교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말았다. 겨울이라 장미꽃이 필 계절도 아니었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성 요한 디다쿠스의 틸마에 새겨진 그림 때문이었다.
바로 그 귀부인의 모습과 그 옷자락을 한 천사가 받들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 귀부인은 스스로 ‘과달루페(Guadalupe)의 영원하신 동정 마리아’로 불리기를 원하셨고, 그 성화는 테페약 산 정상에 세워진 성당에 모셔졌다. '과달루페'는 '뱀을 부순 여인'이라는 뜻이다.
그 후 성 요한 디다쿠스는 주교의 허락을 받고 성당 옆 작은 오두막집에 살면서 과달루페의 성모를 찾아오는 순례자들에게 성화를 보여주면서 성모님의 발현 과정과 의미를 설명하였다. 매일 수천 명씩 개종하더니 마침내 발현 후 8년 만에 우상 숭배와 매년 2만 명 이상의 여자와 어린이들을 피의 제물로 '뱀신'에게 바치는 인신 제사에 빠져 있던 멕시코인 900만 명이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선교사의 활동만으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1709년 4월 27일 테페약 언덕에 과달루페 성모님을 위한 두 번째 큰 성당을 다시 설립하여 축성식을 갖고 과달루페 성모님을 멕시코의 수호자로 선포하자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이 자취를 감추는 기적도 일어났다. 그 후 과달루페의 성모는 멕시코인들의 신앙 속에 깊이 자리하였고, 국가의 중요한 시기마다 당신 백성들을 돌보아 주었다고 신자들은 깊이 믿고 있다.
성 요한 디다쿠스는 성모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자로 인정받기보다는 내적인 정화를 통해 하느님을 위한 기도와 가치가 충만한 삶을 살았다. 그는 1548년 5월 30일 생을 마감하면서 과달루페 성모님을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는 1990년 4월 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그해 5월 6일 멕시코시티에서 시복 승인 기념식이 열렸다. 이어서 그는 2002년 7월 31일 멕시코 과달루페의 동정 마리아 대성당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성인품을 받았다.
성 베드로 푸리에
지역: 프랑스 로렌
프랑스 로렌(Lorraine)의 미르쿠르(Mirecourt)에서 태어난 성 베드로 푸리에(Petrus Fourier)는 15세 때에 퐁타무송(Pont-a-Mousson)에 있는 예수회 대학에 입회하여 공부하였고, 그 후 20세경에 쇼무지에 있는 성 아우구스티누스회에 입회하였다. 1589년에 사제로 서품된 후에도 학업을 계속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함과 동시에 그곳의 수도원 본당 일을 맡았다. 1597년 그는 거의 폐허가 된 마탱쿠르(Mattaincourt) 본당의 주임신부로 파견되었는데, 교우들과 동고동락하며 30년을 살았다. 이때 그는 칼뱅파와 수없이 싸워야 했다. 그는 단순하고 엄격한 생활을 하여 존경을 받았고, 여러 개의 신심단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어린이 교육을 지원하여, 그야말로 그 지역의 목자로서 추앙을 받았다.
그는 4명의 여성 봉사자와 함께 무료학교를 개설하였는데, 이것이 발단이 되어 1598년에는 하나의 수녀회가 설립되고, 1616년에는 '성모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녀회'라는 이름으로 교황청의 인가를 받았다. 1622년 투르(Tours)의 주교가 그의 수도회를 개혁하고 하나의 단체로 통합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므로, 다음 해에 그는 뤼네빌 수도원의 원장직을 맡아야만 하였다. 1629년 로렌의 수도회는 구세주회와 통합되었고, 베드로가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 후 그는 루이 13세에게 충성서약을 거부하고 프랑슈콩테(Franche-Comte)의 그레이로 피신하여 만년을 지내야만 하였다. 그는 1730년 1월 20일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97년 5월 27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복녀 델피나 (Delphina)
활동년도 : 1285?-1360년
신분 : 3회원
지역 :
같은 이름 : 델삐나
사브랑(Sabran)의 성 엘제아리우스(Elzearius, 9월 27일)는 프로방스(Provence) 지방 앙주이(Ansouis)에서 그리 멀지 않은 로비앙(Robians)의 부친 성에서 태어났고, 모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는 마르세유(Marseilles)의 성 빅토르(Victor) 수도원의 원장인 사브랑의 빌리암(William)으로부터 교육받고 성장하였다. 수도원장은 그의 아저씨였는데 매우 엄격한 교육을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는 영적 지도자의 영향을 받아 작은 형제회 제3회 회원이 되었고, 1299년에 소유권 및 정치적인 입지를 고려해서 같은 프로방스의 귀족 가문의 딸인 델피나와 결혼하였다. 알프스맥 저지대에 위치한 퓌미셸(Puimichel) 성에서 태어난 델피나는 당시 15세였다. 이들 부부는 처음에는 앙주이에서 살다가, 곧 퓌미셸 성으로 옮겨 와 살았다. 그들은 서로에 대하여 지극한 신뢰와 사랑을 지녔으며, 델피나는 남편을 따라 작은 형제회 제3회 회원이 되었다. 또한 신심이 두터웠던 그들은 서로 합의하에 동정을 지키기로 서약하였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 이 거룩한 부부는 관상과 기도를 중심으로 사회활동을 하였으며, 선행과 애덕 실천에서 남다른 모범을 보이며 삶으로써 주위의 귀감이 되었다. 성 엘제아리우스는 매일같이 성무일도를 바쳤다. 그의 나이 23세 때에 부친의 명예와 유산을 받게 되었을 때 그는 이에 따르는 온갖 위험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열렬한 신심과 지혜로써 세속적인 재물을 다스렸다. 또한 그는 국왕의 부름을 받고 궁중의 일을 돌보기도 하였는데, 왕의 부탁으로 파리(Paris)에 대사로 갔다가 중병을 얻어 1323년 9월 27일 사망하였다. 사망하기 전에 그는 즉시 총고백을 하고 그리스도의 수난사를 매일 묵상함으로써 온갖 고통을 이겨냈다. 노자성체를 영하면서는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이것이 나의 희망 전부였다.” 그는 자신의 고해신부인 어느 작은 형제회 회원의 팔에 안겨 영광된 삶을 마쳤다.
1309년경에 그는 자신의 조카인 그리모아드의 빌리암의 대부를 섰는데, 빌리암은 나중에 우르바누스 5세(Urbanus V) 교황이 되었고, 1369년 4월 15일 자신의 대부인 엘제아리우스를 시성하였다. 한편 델피나는 남편과 사별한 뒤 37년을 더 살았는데, 그녀는 그 동안에 나폴리(Napoli)의 '성녀 클라라의 가난한 자매 수도회'의 수녀가 된 나폴리 여왕 산치아(Sanchia)와 함께 죽을 때까지 수녀원에서 살았다. 그녀와 여왕은 절친한 사이였다. 델피나는 대부분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많은 자선을 베푸는 등 은수자처럼 생활하다가 1360년에 사망하였다. 델피나는 1363년부터 시성 절차가 진행되었으나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1791년 델피나의 유해는 앱트(Apt)에 있는 작은 형제회 성당에 남편의 유해와 나란히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