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성찬 주일이 되면 한국교회에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목사는 평소와 달리 검은 가운을 입고, 하얀 보에 덮인 성찬상 앞에 선다. 그리고 손에는 어김없이 흰 장갑이 끼워져 있다. 장로와 집사들로 구성된 배찬원들도 마찬가지다. 흰 장갑, 정돈된 자세, 엄숙한 표정. 이 모든 것이 성찬의 거룩함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대부분의 교인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너무 오래된 풍경이라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 장갑은 어디에서 왔는가.
성경을 펼쳐보자. 예수가 마지막 밤 제자들과 떡을 떼고 잔을 나누던 다락방 장면에 장갑은 없다. 예수의 손은 나사렛 목수의 손이었고, 먼지 묻은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기신 그 손이었다. 이후 2,000년간 로마 가톨릭, 동방 정교회, 루터교, 성공회, 개혁교회 등 기독교의 모든 전통을 통틀어 성찬을 집례할 때 장갑을 착용하는 관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주교가 의전용 장갑(chirotheca)을 착용한 사례가 있지만, 이것은 성찬 집례와는 다른 맥락이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사실상 사라졌다. 서방 교회든 동방 교회든, 사제나 목사가 떡과 포도주를 다루면서 장갑을 끼는 전통은 기독교 예전사 어디에도 없다. 한국교회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흰 장갑의 유래
그렇다면 이 흰 장갑은 어디에서 왔는가. 추적해보면 불편한 이력이 나온다. 일본에는 모든 공식 의식(式典, 시키텐)에서 흰 장갑을 착용하는 관습이 있다. 결혼식, 졸업식, 장례식, 임명식, 그리고 신사(神社)에서의 참배에 이르기까지, 흰 장갑은 일본 사회에서 '격식 있는 의례'를 표시하는 보편적 기호다. 이것은 종교적 의미라기보다 사회적 의례 문화에 가깝다.
한국에 이 관습이 들어온 경로는 두 갈래다. 하나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유학을 다녀온 목회자들이 현지의 신사참배와 각종 의식에서 장갑 낀 모습을 보고 돌아와 교회에 적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 현실적인 이유인데, 선교 초기 한국 사회가 농경사회였던 탓에 거친 노동으로 갈라지고 햇볕에 그을린 손이 성례의 자리에서 '불경스럽게' 보인다고 여겨 이를 가리려는 동기가 작용했다. 어느 쪽이든 기독교 의식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묵도의 경우와 비슷한 패턴이 여기서도 반복된다. 일본 식민 문화의 의례적 관습이 한국 사회 전반에 스며드는 과정에서 교회도 그 영향을 흡수했고, 해방 이후에도 그것이 '원래 그러는 것'으로 굳어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직접적인 신사참배의 잔재라고 단정짓기보다는, 식민지 시기 일본식 의례 문화가 한국의 공적 의식 전반에 침투한 결과의 하나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러나 기원이 무엇이든 간에 신학적 근거가 없는 의례 문화의 산물이 교회 의식에 수용되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거룩하니까" — 사후약방
문제는 이 관습에 사후적으로 신학적 의미가 덧입혀졌다는 점이다. "성찬은 거룩한 예식이니 정결한 손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설명이 지배적이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 논리에는 구멍이 있다.
성찬이 거룩하다면 말씀 선포도 거룩하다. 기도도 거룩하고, 세례도 거룩하다. 예배 중에 행해지는 모든 순서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다. 그런데 왜 성찬식에서만 유독 장갑을 끼는가. 설교할 때 성경을 넘기는 손에는 장갑을 끼지 않고, 세례를 베풀 때 물에 담그는 손에도 장갑을 끼지 않는다. (사실 일부 교회에서는 세례 때도 장갑을 끼지만, 그만큼 이 관습의 확장이 신학적 논리 없이 관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성찬에만 특별한 정결이 요구된다는 생각은 성찬을 다른 예배 행위보다 더 '성스러운 것'으로 구별 짓는 시각에서 나온다. 종교개혁이 비판했던 바로 그 미사적 사고의 잔영이다.
더 날카로운 모순이 있다. 장갑을 끼는 것이 정결을 위한 것이라면, 집례자와 배찬원만 장갑을 끼고 정작 떡과 잔을 직접 받아 입에 넣는 회중은 맨손인 것은 어떻게 설명하는가. 정결의 논리가 일관되려면 회중 전원이 장갑을 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아무도 그렇게 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이 불일치는 흰 장갑의 기능이 실제로는 정결이 아니라 '시각적 엄숙함'의 연출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거룩함이 아니라 거룩해 '보이는' 것, 정결함이 아니라 정결해 '보이는' 것. 흰 장갑은 신학이 아니라 미장센이다.
다락방의 손
최후의 만찬이 베풀어지던 마가의 다락방으로 돌아가 보자. 예수는 제자들과 어떤 모습으로 식탁에 앉았는가. 특별한 의복도, 장갑도, 성찬보도 없었다. 유월절 식사의 요소들을 취하여 떡을 떼고 잔을 돌렸다. 누가복음 22장의 기록대로라면, 그 자리에는 식탁의 서열을 놓고 다투는 제자들이 있었고, 예수를 팔아넘길, 그리고 심지어 이미 넘긴 배신자의 손도 같은 식탁 위에 있었다. 성찬의 원형은 그렇게 놀라울 만큼 날것이었다. 거룩은 그 자리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 불완전함 한가운데서 선언되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이것이 분찬 때 수찬자에 주어지며, 보듬어 안는 은총의 말씀이다.
이 장면과 오늘의 성찬 풍경 사이의 거리를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역설이 드러난다. 흰 장갑과 성찬보와 엄숙한 분위기로 성찬을 '거룩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크면 클수록, 정작 성찬의 본질인 은혜의 무조건성, 즉 깨끗하지 않은 손으로도, 자격 없는 자로서도 받을 수 있다는 그 복음은 흐려진다. 흰 장갑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메시지는 "이것은 특별히 거룩한 것이니 조심하라"이다. 그러나 성찬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것은 ‘네가 거룩하기 때문에 주는 것이다’가 아니라, ‘너를 위해 주는 내 몸(주님)이다"이다. 티 한 점 없는 흰 장갑의 메시지와 성찬의 메시지는 미묘하게 어긋난다.
형식은 빌려오되, 내용은 채우지 못할 때
이 책 앞부분에서 4세기 교회가 황제의 입당 의전을 빌려오면서도 그 행렬 안에 시편의 말씀을 채워 넣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형식은 제국에서 왔지만, 내용은 복음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흰 장갑은 이 전환에 실패한 사례 아닐까. 일본 식민 문화의 의례적 형식을 가져오면서, 그 안에 아무런 신학적 내용도 채우지 못했다. 대신 "거룩하니까"라는 모호한 감정으로 빈자리를 메웠다. 그리고 그 감정이 충분히 오래 반복되자, 아무도 더는 묻지 않게 되었다.
성찬에 진정한 정결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손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고, 고린도전서 11장이 말하는 "자기를 살피는" 일이다. 바울이 경고한 것은 더러운 손이 아니라 분별 없는 마음이었다. 성찬의 거룩함은 흰 천과 흰 장갑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무균 상태가 아니라, "주의 몸을 분별하는"(고전 11:29) 공동체의 태도에 있다. 이 분별이 없으면 흰 장갑을 백 켤레 끼어도, 표백제를 쏟아부어도 성찬의 거룩함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물론 장갑을 벗자는 말이 성찬을 가볍게 대하자는 뜻은 아니다. 성찬의 무게와 엄숙함은 소도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임재에서 온다. 성찬례가 있는 주일에 집례자의 흰 장갑을 볼 때, 한 번만 물어보자. 저 장갑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보는 사람을 위한 것인가. 그리고 예수는 다락방에서 어떤 손으로 떡을 떼셨는가. 어쩌면 그 맨손이야말로 성찬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인지 모른다.
글. 최주훈 목사 (중앙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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