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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마태복음 15:10-20
10. 예수께서 군중을 가까이 불러모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말을 잘 들어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
12. 그 때에 제자들이 와서 예수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지금 하신 말씀을 듣고 비위가 상한 것을 아십니까?" 하고 물었다.
13.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나무는 모두 뽑힐 것이다.
14. 그대로 버려두어라. 그들은 눈먼 길잡이들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렁에 빠진다."
15. 베드로가 나서서 "그 비유의 뜻을 풀이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자
16. 예수께서 이렇게 설명하셨다. "너희도 아직 알아듣지 못하였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나 뱃속에 들어갔다가 뒤로 나가지 않느냐?
18. 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바로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모독과 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이다.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지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7월 30일 주한미국대사로 미셸 스틸이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그녀는 인천공항에서 짧은 입국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전 대사들과는 다른 발언으로 우려를 자아냈습니다. 보통 대사들은 입국하면서 통상적으로 한국전쟁을 언급하며 한미동맹강화를 다짐하여왔습니다. 하지만 스틸은 "미국과 대한민국은 140년 넘게 굳건히 함께해 왔다"고 말하면서 1882년 조선-미국 수교를 양국 우호 관계의 시발점으로 강조한 것이죠.
조미수호통상조약(1882년)은 한미상호방위조약(1953년)보다 71년이나 앞서 체결됐으니, 양국 관계의 오랜 역사를 강조하려는 의도일 수 있겠지만 미국인의 치외법권, 미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 등 우리에게는 매우 불평등한 조약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더군다나 미국은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조선에 대한 일본의 보호권을 인정하는 등 일방적으로 일본을 지지해 왔고, 해방 이후에도 친일파를 등용하여 식민지배의 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스틸이 자신의 위치를 그 연장 선상에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발언일 수도 있겠습니다.
스틸은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5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지난 2021년부터 4년간 공화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인물입니다.
그동안 극렬한 반중 강경파에다가 대북 강경론자로 평가되어왔습니다. 중국공산당을 미국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지목했고,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종전선언에도 격렬하게 반대했었죠. 대만 해협 유사시 주한미군이 출동하면 한국군도 함께 진격해야 한다고도 말해 왔습니다.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를 주장하며, 한국을 미국의 전쟁 전초기지로 삼아야 한다는 구상과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이미 알려진 대로 과거 이승만의 학살을 미화하고 독재를 찬양한 영화 '건국전쟁'의 미국 상영을 지원한 극우 인사이기도 합니다. 범죄 기업 쿠팡을 두둔하며 우리나라의 주권과 사법체계를 모독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스틸의 대사 지명에 한미관계를 걱정하는 상원 의원들은 대사 파견에 반대하는 유래 없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상원 인준 과정에서 최초로 표결에까지 돌입하였고 찬성 55표, 반대 39표로 겨우 통과되었습니다.
스틸의 부임은 미국의 노골적인 내정간섭 의도로 읽히고 있습니다. 미국은 스틸을 앞세워 이재명 정부를 흔들고, 내란 청산에 제동을 걸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한미동맹 현대화라는 명목으로 우리를 태평양 전쟁에 전초기지, 병참기지로 삼으려 할 것입니다.
스틸 대사의 첫 공식 행보는 31일 광화문 일대와 스타벅스 매장 방문입니다. 그리고 8월 2일에는 영락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했죠. 외교관이 종교계를 방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가 가진 역사적 의미를 고려하면 이번 선택은 결코 가볍게 볼수 없는 것이죠.
미국을 대리하는 사람이 첫 방문지로 한국 보수 개신교의 상징적 공간이며, 해방 직후 월남 기독교인 중심의 강력한 반공주의 정치 문화를 형성해 온 장소룰 택했다는 것은 그의 역사 인식에 대한 메시지라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영락교회 청년세력이 서북청년단 조직과 연관됐다는 역사적 논란이 있기에 그의 행보가 우려를 낳게 하는 것입니다. 영락교회 설립자인 한경직 목사의 회고록에는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을 했시오.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 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시오”라는 대목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서북청년단은 제주 말고도 해방 이후 여러 사건에서 폭력적 활동을 벌였죠. 대구 10월 사건 이후 좌익 색출 과정에서 우익 단체들과 함께 탄압에 참여했고 ‘여순 10.19사건(여순항쟁)’ 진압 과정에서도 주민 색출과 보복 활동에 관여했습니다.
스틸 대사가 영락교회의 역사적 배경을 몰랐다면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역사적 상징성을 알고도 첫 방문지로 선택했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이는 일본대사가 전쟁범죄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찾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행위입니다.
스타벅스 매장을 방문한 날, 그녀는 <한미동맹: 강력하고, 현대적이며, 성과중심적인 동맹>이라는 연합뉴스 기고문에서 “정부는 국민을 괴롭히거나 위협해서는 안 되며,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며 이재명 정부를 우회적으로 공격하였습니다. 이는 미국 마가와 한국의 극우를 대변하는 행보 같았죠,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병든 사람은 고침을 받고, 굶주린 사람은 위로를 받았으며, 가난한 농부와 어부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였죠.
그런데 멀리 예루살렘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의 흠을 잡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적대적 표정으로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선생님의 제자들은 왜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습니까?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지 않으니 말이죠."
제자들이 정결 예법을 어기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다 예수께서 되묻습니다. "그러면 당신들은 왜 사람의 전통을 핑계 삼아 하느님의 계명을 어깁니까?" 이 물음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가르칠 때 “누구든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해드릴 것을 '하느님께 바쳤다' 하고 말만 하면 아버지나 어머니를 봉양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한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소위 하느님께 바친 헌물이라고 퉁치는 ‘고르반’이라는 당시 전통을 빌미로 부모 부양 의무를 회피하는 행태를 비판한 것입니다(마가복음 7장).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느님의 계명보다, 자신들이 만든 종교 규칙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지적한 것이죠.
그리고 예수님은 큰 소리로 군중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 말을 잘 들어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
군중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말씀이지?' '우리는 지금까지 부정한 음식을 먹으면 하느님께 버림받는다고 배웠는데….'
제자들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잠시 후 베드로가 조용히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그 말씀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예수님은 차분하게 설명해 줍니다. "음식은 배로 들어갔다가 몸 밖으로 나간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다르다. 마음속에서 악한 생각이 나오고, 살인과 간음과 도둑질과 거짓말과 남을 헐뜯는 말이 나온다.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제자들은 그제야 예수님의 뜻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손을 씻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겉모습만 깨끗하게 꾸미면서 마음속의 욕심과 미움, 거짓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거짓된 신념을 꾸짖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날 군중 속에는 그물을 던지다 온 어부도 있었습니다. 흙 묻은 손으로 온 농부도 있었고, 시장에서 생선을 팔던 여인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늘 "부정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손이 더러워서 하느님께 버림받은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너희의 손보다 마음을 보신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평생 부정한 사람 취급을 받던 이들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날 예수님은 정결규정을 가지고 깨끗한 사람과 더러운 사람으로 나누던 오래된 벽을 허무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손이 깨끗한 사람만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사랑과 진실, 정의와 자비를 품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나라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의 흠을 잡으러 온 바리사이와 서기관들에게는 눈먼 길잡이라는 평가가 내려졌고,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렁에 빠진다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정결'은 단순한 위생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 자격과 사회적 신분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어 왔습니다.
레위기 11~15장에는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부정한 음식, 시체, 질병, 출산 등에 관한 정결예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래 이 규정은 성전 제사와 거룩한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시대에는 성전 제사장에게 적용되던 정결규정이 일반 백성의 일상생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바리사이 운동의 영향이었죠.
하지만 식사 전 손 씻기 의식은 율법의 규정이 아니라 장로들의 전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바리사이들은 이 전통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부정한 사람'으로 낙인찍었죠.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정결규정이 종교적 문제를 넘어 사회경제적 차별의 도구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당시의 민중 계급은 이 정결규정를 지키기 어려웠습니다. 그들이 처한 생활환경과 조건이 그랬습니다. 가난한 농민들, 어부와 목수, 일용노동자는 늘 피와 흙을 만지는 직업이어서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리, 창녀, 나병환자, 혈루증 환자 등은 아예 공동체에서 배제되었죠.
성전은 정결한 사람만 가까이 갈 수 있었고, 부정한 사람은 하느님의 은혜에서도 멀어진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정결규정이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았을 뿐 아니라 권력자들이 사람을 구분하고 배제하는 사회적 장치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 사회적 질서에 대항하여 예수께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입으로 나오는 것, 즉 마음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마음에 품고 있는 악한 생각들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말이죠.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나 뱃속에 들어갔다가 뒤로 나가지 않느냐? 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바로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모독과 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이다.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지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니다(17-20).“
노자 도덕경 12장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오색(五色)이 영인목맹(令人目盲)이요, 오음(五音)이 영인이농(令人耳聾)이며, 오미(五味)가 영인구상(令人口爽)이라. 치빙전렵(馳騁田獵)이 영인심발광(令人心發狂)이요, 난득지화(難得之貨)가 영인행방(令人行妨)이라. 시이(是以)로 성인(聖人)은 위복불위목(爲腹不爲目)하니, 고(故)로 거피취차(去彼取此)하느니라.”
번역해보면 이렇습니다. “온갖 가지 색깔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온갖 소리가 사람의 귀를 먹게 하며, 온갖 가지 맛이 사람의 입을 상하게 한다. 사냥질에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하며, 얻기 힘든 보화가 사람으로 하여금 덕행을 못하게 훼방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배를 위하되 그 눈을 위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오색(五色), 오음(五音), 오미(五味)는 오행(五行) 사상에서 비롯된 표현입니다. 오행은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근본이 되는 물질들의 상호관계를 밝혀 놓은 이론이죠. 즉, 만물(萬物)을 생성하고 만상(萬象)을 변화시키는 수(水)·목(木))·화(火)·토(土)·금(金)의 관계성을 규명한 것입니다. 동양 철학에서 음양(陰陽) 이론과 상호 보완을 이루는 사상입니다.
오행에는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이 있습니다. 상생은 ‘물(水)에서 나무(木)가 나오고, 나무(木)에서 불(火)이 생기고, 불(火)에서 흙(土:타고남은 재)이 나오고, 흙(土)에서 쇳덩이(金)가 나오고, 쇳덩이(金)에 이슬(水)이 고인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오행의 상극은 ‘물(水)은 불(火)를 끄고, 불(火)은 쇳덩이(金)를 녹여버리고, 쇳덩이(金)는 나무(木)를 쪼개버리고, 나무(木)는 흙(土)을 뚫고 나오고, 흙(土)은 물(水)을 흡수해 버린다”는 것이죠. 오행 사상은 관계성을 상극에서 상생으로 바꾸는 지혜, 그런 삶을 추구하는 사상입니다.
이 오행은 자연을 잘 관찰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로 뭐 굉장히 신비한, 또 특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런 관계성의 변화가 바로 오행의 이치인 것이죠.
그런데 이것들이 함께 뒤섞여 우리를 헤어나질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온갖 색깔에 홀려 버린 사람들은 그 근본이 되는 단순하고도 깨끗한 색깔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화려함에 길들여졌거나 끄달려 가기 때문입니다. 일체의 소리, 감각의 대상에 빠지게 되면 제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죠. 온갖 가지 산해진미 또한 사람의 입맛을 상하게 합니다. 요즘 현대인들은 조미료에 길들여 있습니다. ‘미원’으로 또는 ‘다시다’로 대표되는 감미료에 빠져 음식물의 제맛을 느끼지 못하죠. 무공해 농작물에 감미료를 치지 않고 만들어 준 음식을 사람들은 맛이 없다고 합니다. 이미 우리의 입맛이 어긋나(爽) 있기 때문입니다.
“치빙전렵이 영인심발광”이란 대목에 오면 이건 섬뜩하기조차 합니다. 치빙(馳騁)은 뭘 쫓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입니다. 전렵(田獵)은 사냥하려고 밭을 뒤지는 것이죠. 그러니 치빙전렵이라 함은 사냥하기 위해 산과 들을 샅샅이 뒤지며 미친 듯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의 모양을 형상화하고 있는 말이고,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 발광(發狂)하게 만든다는 것이죠. 노루나 토끼, 멧돼지나 호랑이를 잡겠다고 이리저리 쫓다 보면 사람의 마음이 들뜨고 흥분되기 마련입니다. 결국은 이성을 잃고 감각의 유혹에 푹 빠져 버리게 되어, 살생을 하면서도 죄책감은커녕 더할 수 없는 쾌감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왜 사냥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심신단련에 최고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하지만 그들의 진짜 속마음은 ‘자신이 쏜 총알이 목표에 명중했을 때의 쾌감을 만끽하려는 것’입니다. 사냥뿐 아니라 낚시도 마찬가지죠. 흔히 조사(釣士)들은 ‘손맛’ 때문에 낚시를 한다고 말합니다. 물고기를 잡아먹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고, ‘손맛’을 보는 것이 목적이란 것이죠. 손맛을 위해 생명을 해치고 있는 것입니다.
“얻기 힘든 보화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답게 살지 못하도록 훼방한다”는 구절을 특히 명심해야 합니다. 난득지화(難得之貨)는 자신만 사람답게 살지 못하도록 하는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도 사람답게 살지 못하도록 훼방 놓습니다. 난득지화의 총화는 자본주의입니다. 얻기 어려운 재화를 존중하고, 또 그 재화를 손에 많이 넣은 자를 부러워하는 세상에서 재화는 사람을 살리기보다는 죽이는 도구가 되기 십상입니다.
세상의 지배자들은 사람들에게 돈을 숭상하게 만들죠.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가르칩니다. 돈이 신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은 서로가 신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합니다. 문명의 대전환기인 지금, AI로 세상을 움켜쥐려는 자들이 그렇습니다.
어제는 광복절 81주년이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축사를 통해 "내일이 더 빛나는 대체불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광복의 정신을 계승하여 AI와 첨단산업을 기반으로 한 '대체불가 대한민국'을 만들고, 국민통합과 한반도 평화, 책임 있는 한일협력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자’는 것이죠. 대통령은 친일재산 환수로 독립 유공자를 예우하고 지원하겠다는 것과 미래 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동시에 천명했습니다.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말하면서 미국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죠. 북한과의 평화 공존 당사자 논의를 시작하자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북한을 향한 한미연합 군사훈련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말이죠.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는 진정성 있는 평화 공존 노력이 필요합니다.
참고로 7.13~16일, 한미 연합합동 ‘지속지원훈련’(CJST: Combined Joint Sustainment Training)/ 포항, 홍천. 포항에서는 6.15~8.22, 연합합동 ‘해안양륙군수지원훈련’(CJLOTS: Combined Joint Logistics Over-the-Shore)/ 포항. 8.11~14일, 위기관리연습(CMX), 8.17~27일 ‘을지 자유의 방패’(UFS)훈련이 진행되거나 진행될 예정입니다.
노자는 성인(聖人)은 배를 위하되 눈을 위하지 않는다(爲腹不爲目)고 말합니다. 배를 위한다는 것은 눈을 위한다는 것과 댓구가 되니, 겉으로 드러난 것들에 빠져들지 말고 내면의 세계, 내면의 도에 충실하란 얘기가 되겠습니다. 잠깐 떴다가 사라지는 안개처럼 있다가 없어질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진리를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죠.
예수와 노자의 가르침을 쫓아 이 혼란한 문명 대전환의 시대에 보이는 것보다는 근본을 따르는 축복이 이 민족과 사회를 이끄는 동력이 되기를 해방자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