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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감상 - 1. 박목월의 시 “당인리 근처(唐人里 近處)”에 나타난 흙의 상징성
김옥순(金玉順) 국립국어원
唐人里(당인리) 변두리에/ 터를 마련할가보아./ 나이는 들고....../ 한 四·五百坪(사오백평)(돈이 얼만데)/ 집이야 움막인들./ 그야 그렇지. 집이 뭐 대순가./ 아쉬운 것은 흙/ 五穀(오곡)이 여름하는./ 보리·수수·감자/ 때로는 몇그루 꽃나무./ 나이는 들고....../ 아쉬운 것은 自然(자연)./ 너그러운 呼吸(호흡), 가락이 긴 삶과 生活(생활)./ 흙을 終日(종일),/ 흙하고 親(친)하고/ (아아 그 푸군한 微笑[미소])/
등어리를/ 햇볕에 끄실리고/ 말하자면/ 精神(정신)의 健康(건강)이 필요한./ 唐人里(당인리) 변두리에/ 터를 마련할가보아/ (괜한 소리. 자식들은/ 어떡하고, 내가 먹여살리는)/ 참, 그렇군./ 한쪽 날개는 죽지채 부러지고/ 가련한 꿈./ 그래도 四·五百坪(사오백평)/ 땅을 가지고(돈이 얼만데)/ 수수·보리·푸성귀/ (어림없는 꿈을)/ 지친 삶, 피로한 人生(인생)/ 頭髮(두발)은 히끗한 눈이 덮이는데./
마음이 허전해서/ 너무나 허술한 채림새로(누구나 허술하게 떠나기야 하지만)/ 길 떠날 차비를. 祈禱(기도) 한 句節(구절) 올바르게/ 못 드리고/ 아아 땅버들 한가지만 못하게/ (괜찮아, 괜찮아)/ 아냐. 진정으로 까치새끼 한 마리만 못하게/ 어이 떠날가보냐./ 나이는 들고....../ 아쉬운 것은 自然(자연)./ 그 품 안에 쉴/ 한 四·五百坪(사오백평)./ (돈이 얼만데)/ 바라보는 唐人里 近處(당인리 근처)를/ (자식들은 많고)/ 잔잔한 것은 아지랑인가(이 겨울에)/ 나이는 들고.
(“唐人里 近處(당인리 근처)”, 『난, 기타』, 1959)
박목월(1917~1978)의 시 “ 당인리 근처”는 1959년에 잡지 『사상계』에 발표한 시인데 그의 나이 44세였다. 사회생활에 지쳐서 예이츠가 ‘이니스프리의 섬’을 찾거나 서양인들이 이상향 ‘아르카디아’를 찾듯이 박목월은 아지랑이가 낀 당인리 근처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우리나라의 율곡 선생이나 퇴계 선생은 시조에서 ‘천석고황(泉石膏?: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몹시 사랑하고 즐기는 성벽)이라고 하여 자신들에게 자연에 돌아가 살려는 병이 있음을 강력히(?) 밝히곤 했고, 중국(진[晉]나라) 도연명(陶淵明)의 사부(辭賦),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이렇듯 인생살이에 지쳐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성향은 고금 동서를 막론하고 강했다.
시인이 이 시에서 말하는 것은 단순히 과중한 생활인의 의무와 스트레스 때문에 사회생활에 염증을 느껴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그런 점도 없지 않지만), 사람이 흙에서 났으니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가 지금은 산업사회를 지나 지식정보사회로 나아가고 있지만 원래는 농경사회였고 그 중심에는 흙이 있다. 흔히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으므로 흙과 땅은 한국인에게 있어서 생활의 터전이고 고향이며 안식처이고 죽어서 돌아갈 곳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생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서양도 마찬가지였다. (바다[물]에서 나서 바다[물]로 돌아간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인은 “당인리 변두리에 땅을 마련할가보아”라고 혼잣말을 한다. 그 이유로 ‘나이는 들고’가 등장한다. 40대가 뭐가 늙었냐고 반문하겠지만, 육이오 전쟁이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살기가 어려운 1950년대에는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40대였고 환갑을 넘는 것은 큰 축복이었던 시절이었던 만큼 그 당시의 ‘나이는 들고’란 말은 설득력이 높다. 지금의 시인이 살던 용산구 원효로에서 바라보는 당인리 근처는 서강대교와 강변북로를 넘어가는 한강변의 마포구 당인동으로 서울 시내에 속하지만 1950년대에는 당인리 발전소가 있고 채마밭이 펼쳐 있는 상당한 변두리였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이는 들고’가 의미하는 속성을 생각해 보면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으로 짓눌려 ‘지친 삶’,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 봐서 삶에 대한 환희가 줄어든 자의 ‘마음이 허전’한 ‘피로한 인생’, ‘두발은 히끗한 눈이 덮이는데’, ‘너무나 허술한 채림새로’ 흙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어설픈 모습이 함축되어 있다.
시인은 계속해서 ‘땅버들 한 가지만 못하게’, ‘진정으로 까치새끼 한 마리만 못하게’ 자신이 ‘(저승)길 떠날 채비’를 아직 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아득 바득거리며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으려고 정신없이 사는 이들에게 시인은 ‘당인리 근처’를 바라보라고 말한다. 그곳의 이미지는 사람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기도 한 구절이고, 가톨릭의 종부성사(사고나 중병, 고령으로 죽음에 임박한 신자가 받는 성사)이며, 정신의 건강을 생각할 시점임을 알려 주는 안식처의 이미지를 띄고 있다.
2. 박목월 시 '나무'의 멈춤의 의미
儒城(유성)에서 鳥致院(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修道僧(수도승)일까. ?重(묵중)하게 서 있었다./ 다음 날은 鳥致院(조치원)에서 公州(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於口(어구)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過客(과객)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公州(공주)에서 溫陽(온양)으로 迂廻(우회)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 門(문)을 지키는 把守兵(파수병)일까, 외로와 보였다./ 溫陽(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重(묵중)한 그들의. 沈鬱(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 다.
(‘나무’, 『청담』, 1964)
박목월(1916?1978)의 시 ‘나무’에서는 시인이 여행길에서 만난 나무들에 대한 단상이 수필처럼 그려지고 있다.
수필 같다고 보는 이유는 우리가 잘 아는 충청남도의 도시들을 시인이 돌아다니며 보았던 경험을 적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일정은 유성(대전시 유성구)에서 조치원(충남 연기군)으로, 조치원에서 공주(충남 공주시)로, 공주에서 온양(충남 아산시 온양)으로 그리고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온다. 곳곳에서 만난 대상은 나무였고 그 나무들은 수도승과 과객(지나가는 나그네)과 하늘문을 지키는 파수병으로 비유되고 있다.
여기까지 보면 평범한 경험을 간결한 수필체로 그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뒤에 가서 보니 시인의 몸(마음) 안에 여행길에 만났던 나무들이 뿌리를 펴고 있었다 한다. 그 후로 시인은 몸 안에서 나무들을 기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시적 상상력의 세계로 들어섬을 알 수 있다.
시에서 말하는 이는 반복해서 자신의 몸속에(시인 박목월이 남자임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여자가 몸속에서 아기를 기르듯, 들판의 늙은 나무와 가난한 마을 어귀의 나무들과 산마루(산등성 마루-산 등성이의 가장 높은 곳)의 나무들을 기른다고 말한다. 이 비유관계를 세 개의 동질적인 문장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1. 여자가 ----아기를 ----- 기른다
2. 내가 ----수도승을 ----- 기른다
----나그네를 ----- 기른다
----하늘문을 지키는 파수병을 ----- 기른다
3. 내가 ----묵중함을 ----- 기른다
----멍청하고 어설픈 것을 ----- 기른다
----외로움을 ----- 기른다
1의 문장은 일상적인 문장이다. 2의 단락에서 말하는 이가 눈여겨 보는 대상들은 세속적인 삶의 기쁨을 추구하는 대상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어떤 세계를 바라보는 것일까? 3의 단락을 대조해 보면 알 수 있다. 나무의 묵중함은 세속적인 사람의 ‘가벼움’과 대조되고 나무의 멍청하고 어설픈 것은 세속적인 사람이 바라는 ‘똑똑하고 야무진 것’과 대조되며 나무의 외로움은 사람들이 그 외로움을 못견디어 ‘함께 있고 싶어하는 것’과 대조되는 비 현세적이고 종교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도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묵중함 / (가벼움)
멍청하고 어설픈 것 / (똑똑하고 야무진 것)
외로움 / (함께 있음)
비현세적, 종교적 / 세속적
여기서 시인은 왜 나무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것은 나무들이 ‘서 있다’는 사실을 부목할 수 있다.. 말하는 이는 바삐 길을 가는데 묵중한 나무는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고, 그는 바삐 길을 가는데 나무는 마을 어귀에 떼를 지어 멍청하게 몰려 서 있고, 그는 바삐 길을 가는데 나무는 산마루 저 멀리에 서 있었다.
즉 말하는 이는 계속 움직이며 살기 급급해 하며 종종걸음을 치는데 나무는 다소 멍청하고 어설픈 것 같지만 정지한 채 뭔가 생각하고 멈춰 서 있다. 이 시에서 나무가 서 있는 공간도 주목할 만하다. 들판에서, 마을 어귀로, 산등성이의 가장 높은 곳으로 시인은 나무가 서 있는 자리에 눈길을 돌린다. 시인의 눈길은 사람들이 사는 자리에서 점점 사람들과 멀어지는 자리로, 세속적인 자리에서 비세속적이고 종교적인 자리로 넘어간다.
시 안에서 말하는 이는 남성이지만 그가 나무를 자신 안에 기르면서부터
남성성과 여성성이 함께 뿌리내리게 된다.
이 시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함께 가진 시인의 정신적 에너지는 나무를 통해 새롭게 거듭남을 알 수 있다. 그 거듭남은 인간이 태어난 곳인 동시에 조상의 넋이 사는 곳을 나무를 통해 깨닫고 바라볼 줄 아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일상생활에 바쁜 현대인들에게 이 시의 나무는 멈춤이 무엇인지 알려 주고, 사람은 어디서 나서 어디로 가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3. 박목월의 시 "山ㆍ素描 2"에 나타난 생성력
갈기가 휘날렸다. 말 발굽 아래 가로눕는 이슬밭. 패랭이꽃빛으로 돈다. 무지개가 감기고 풀리고 하얗게 끓는 疾走(질주). 太古(태고)의 아침을, 創造(창조)의 숨가쁜 시간을. 출렁거리는 생명. 마악 눈을 뜬, 더운 피가 금시에 돈, 그것의 질주. 달리는 그것으로 달리게 되고, 달리게 하는 그것으로 달리게 되는 말굽 아래 척척 가로눕는 구름. 새로 빚은 구름 엉키고 풀리고 휘휘 도는 무지개...... / 달리는 것, 옆에서 달리는 것이 목덜미를 물고, 출렁거리는 엉덩이, 불을 뿜는 입, 生命(생명)의 鼓動(고동)을. 沸騰(비등)을. 뿜는 숨결, 끓는 拍子(박자). 발굽의 말발굽의 날개를...... / 팍 앞무릎이 고꾸라진 채 / 영영 / 山(산) 이 된. // 山(산) 위에 은은한 天蓋(천개)
(‘山·素描 2’, 『난·기타』, 1959)
박목월(朴木月,1916?1978)의 시 ‘山·素描 2’는 한 폭의 인상파 그림과 같은 생동적인 맛을 풍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 처음 산이 생길 때 맹목적인 우주의 힘 그 자체를 가지고 원시의 혼돈에서 솟아오르는 용솟음치는 우주의 기운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천마의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시에 나타난 천마도(天馬圖)는 마치 경주 천마총(경주 155호분)에서 출토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말다래에 그려져 있는 천마도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경주 천마도에는 붉은 색의 자작나무 껍질 위에서 하늘을 나르는 말이 갈기나 꼬리나 발굽 등 온 몸이 불의 형상으로 활활 타오르면서 구름 위를 달리고 있는 모습이 그려 있다. 박목월 시인이 경주 출신이라는 점에서 근접 가능성이 느껴진다.
이 하늘을 나는 말의 이미지는 제왕 출현의 징표로서 태양 신화와 맥을 같이 하는데, 말은 하늘의 상징인 태양을 나타내고 태양은 남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처음에는 한 마리의 천마가 미친 듯 빠른 속도로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천마는 그냥 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속도감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태초의 우주 생성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 발굽 아래 가로눕는 이슬밭. 패랭이꽃빛으로 돈다. 무지개가 감기고 풀리고 하얗게 끓는 疾走. 太古의 아침을, 創造의 숨가쁜 시간을. 출렁거리는 생명. 마악 눈을 뜬,”에서 나타나듯이, 생명이 출렁거리면서 막 눈을 떴음을 알리는 태고의 창조 행위가 그려진다. 천마가 남근을 상징한다는 상징성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천마의 남성성은 여성적 이미지의 이슬밭을 통해서 더운 피가 돌고 막 눈을 뜬 어린 망아지를 낳는다. 천마군은 계속 달리면서 암말과의 교접을 통해 우주의 휘몰아치는 생명 창조 현상을 연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구체적인 과정은 서술어를 통해 잘 나타난다.
1. 휘날리다→가로눕다→돈다→감기다→풀리다→하얗게 끓는다→생명이 출렁거리다→마악 눈 뜨다
2. 달리다→척척 가로눕다→새로 빚다→엉키다→풀리다→휘휘 돌다
3. 달리다→물다→출렁거리다→불을 뿜다→고동치다→비등(액체가 끓어오르다)→숨결을 뿜다→끓다
이 반복적인 세 번의 생명의 잉태 과정을 거치면서 ‘그것’이란 대명사가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 “마악 눈을 뜬, 더운 피가 금시에 돈, 그것의 질주. 달리는 그것으로 달리게 되고, 달리게 하는 그것으로 달리게 되는 말굽 아래 척척 가로눕는 구름”. 이 ‘그것’은 다소 모호한 의미를 띄고 있지만 앞의 문장과의 연관성을 볼 때 일차적으로는 ‘더운 피가 금시에 돈“ 혹은 ’더운 피가 금시에 돈 막 태어난 천마’를 지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을 ‘더운 피’로 대치하면 “더운 피의 질주, 달리는 더운 피로 달리게 되고, 달리게 하는 더운 피로 달리게 되는 말굽 아래 척척 가로눕는 구름”으로 나타나게 되어 천마들의 난장이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하늘을 달리는 말들의 생생력을 통해 새로운 망아지들이 태어나고 또 태어나면서 말발굽에 날개를 달고 맹렬히 달리는 우주 생성의 기운은 어느 순간 갑자기 정지된다. 천마의 앞무릎이 팍 고꾸라지면서 멈추는 모습으로 우주 창조의 대단원이 막을 내림을 보여준다. 태초의 무분별했던 우주의 끓어오르는 남성성과 추진력이 산의 형태로 만들어진 내력이 이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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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연의 ‘山 위에 은은한 天蓋’에서는 부처의 머리를 덮어서 비, 이슬, 먼지 따위를 막는 기능을 천개가 하듯이 산의 머리 위에는 천마의 생명력 있는 모습이 은은히 덮혀 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 민속에서 말날은 양기가 성한 날, 길일이라 하여 이 날을 택해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고 한다. 말띠에 태어난 사람은 웅변력과 활동력이 강하며 매사에 적극적이라고 한다. 박목월의 이 시는 활동성과 생성력을 지닌 말 이미지가 기기묘묘한 산의 갖가지 형태로 이어지는 산세를 형성하여 산은 하늘과 교통하는 곳, 신성한 곳이란 이미지를 다시 느끼게 한다.
4. 박목월의 시 ‘家庭(가정)’
地上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 아니 玄關(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 아니 어느 詩人(시인)의 가정에는/ 알 전등이 켜질 무렵을 / 文數(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 十九文半(십구문반). /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 그들 옆에 벗으면 / 六文三(육문삼) 코가 납작한 / 귀염둥아 귀염둥아 / 우리 막내둥아. // 미소하는 / 내 얼굴을 보아라. / 얼음과 눈으로 壁(벽)을 짜올린 / 여기는 / 地上(지상). / 憐憫(연민)한 삶의 길이어. / 내 신발은 十九文半(십육문반). // 아랫목에 모인 /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 강아지 같은 것들아 / 屈辱(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 내가 왔다. / 아버지가 왔다. / 아니 十九文半(십구문반)의 신발이 왔다. / 아니 地上(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 存在(존재)한다. / 미소하는 / 내 얼굴을 보아라. (‘家庭(가정)’, 『晴曇(청담)』,1964)
박목월(1916-1978)의 시 ‘家庭’은 기독교적인 맥락, 즉 천상의 낙원(에덴 동산)을 떠나 지상에서 이브와 결혼하고 노동하며 땀 흘리는 아담형의 아버지의 목소리로 말하는 그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아담을 낙원에서 추방하고 가족을 위하여 지상에서 땀 흘리고 수고하라 하셨고 이브에게는 자식을 낳는 해산의 고통을 맛보라 하셨다.
그것은 지상에 사는 아담과 이브들에게 저주이자 동시에 행복이다. 이 시에서 말하는이는 지상(현실)에 발을 딛는 순간,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낮에는 밖에 나가 노동해야하는 고통과 저녁에 가정에 돌아와 자식을 보는 행복감을 동시에 느끼게 됨을 신발의 이미지를 통해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는 가정에서 노동해야 하는 이브형 아내의 목소리가 나타나지 않는다.)
신발의 상징성은 여러 가지로 볼 수 있지만 이 시에서 주목할 것은 신발이 ‘속된 것’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속된 것’의 대표적 자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현실 사회이므로 19문 반의 아버지 신발은 현실 사회에서 성공한 아버지의 사회적 지위와 아버지의 권위와 아버지의 소유를 상징한다. 구체적으로 아버지인 나의 권위가 19문반의 신발 문수로 나타나고 거기에 의지하고 복종하는 막내둥이의 신발은 6문3의 문수로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속된 사회에서의 경쟁은 눈과 얼음의 길을 걷는 이미지로 나타난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냉혹한 경쟁 사회에서 온갖 굴욕과 굶주림과 추위를 참고 걸어가는 인생 길임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볼 수 있는데 냉혹한 경쟁 사회를 뜻하면서 동시에 거기에 벽을 짜 올리면 대조적인 새로운 세계, 가정이 열린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신발을 신은 사회에서 활동해야 하는 아담형 아버지에게 신발을 벗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인 가정은 천상의 이미지에 가깝다. 속된 사회에서 신던 신발은 신성한 장소에서는 벗어야 한다. 이런 대립되는 세계를 여는 중간적인 자리로 현관과 들깐을 주목할 수 있다. 현관은 집밖과 집안을 연결하는 중간적인 자리로서 예전부터 우리 민속에서는 문지방을 신성시하여 밟지 말라는 금기와 연결된다. 집에 들어서자 나타나는 현관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이 놓여져 있다.
신발을 벗고 집안에 들어가면 맨발 상태의 자연적 세계가 등장한다. 귀염둥이 막내가 아버지의 얼어붙은 마음을 푸근하게 만든다. 말하는 아버지는 그들을 강아지처럼 혈연의 정으로 바라보므로 마음 속에서 미소가 저절로 떠오른다. 속되지만 냉혹한 경쟁의 세계와 대립되는 따뜻한 가정의 대립항을 도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신발을 신다 : 신발을 벗다
집밖 : 집안
사회적 관계 : 자연적 혈연 관계(강아지와 어미 개)
자유 이동 : 안정과 휴식
얼음과 눈의 벽 : 따뜻한 아랫목
추위와 냉혹한 현실을 의미 : 따뜻한 가족의 정을 의미
지상 : 천상
그런데 가족의 생활을 책임지는 아버지는 하늘의 아버지처럼 절대적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절대성을 띠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만 이 시에 나타난 아버지는 지상의 인간이라는 한계를 안고 태어나므로 어쩔 수 없이 어설프게 존재하는데 그 어설픔을 감추기라도 하듯이 미소하는 갈등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지상에 태어난 아담형 아버지는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책임을 하늘의 아버지처럼 여유있게 즐기지 못하고 굴욕과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면서 그 고통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미소를 띠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통 속에서도 미소하는 이상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라고 말하는 데에서 역시 다소 권위적인 아버지의 목소리가 드러나지만 5월 ‘가정의 달’에, 아버지의 날은 비록 없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가장(家長)의 고마움을 음미해 볼 때이다.
5. 이육사의 시 ‘청포도(靑葡萄)’
내 고장 七月(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닲은 몸으로/ 靑袍(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靑葡萄’, 「文章」, 1939)
이육사(李陸史, 1904?1944)는 경북 안동군 도산면 원촌리에서 퇴계 이황의 14대손(차남)으로 태어났다. 기자 생활과 독립운동으로 평생 17회나 감옥에 갇혔고 1941년 중국 북경감옥에서 옥사하였으며 그의 시비가 안동시에 세워져 있다.
육사의 시 ‘청포도’에서는 뜨겁고 햇볕이 내려쬐는 고향의 이미지인 ‘7월’의 하늘과 바다가 등장한다. 7월이 오면 시인의 고장에는 청포도가 익어가는데, 그 과정은 이 마을의 전설이 포도알 속에 주저리주저리(물건이 어지럽게 많이 매달려 있는 모양) 매달리는 과정이고, 먼 데 하늘이 알알이 들어와 박히는 과정이다. 즉 이 고장의 특산물인 청포도는 이 마을의 전설과 꿈의 집합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 고장의 전설과 꿈은 과연 어떤 것일까 궁금해진다.
이 마을의 전설과 꿈은 아마도 시에서 ‘말하는 이’가 간절히 기다리는 어떤 손님의 출현쪽으로 이야기가 모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 손님은 바다 건너에서 흰 돛단배를 타고 나타날 것이라고 하는데, 이 마을 전설에는 이 고장을 구할 어떤 영웅이나 귀인이 7월에 바다에서 흰 돛단배를 타고 나타나리라는 예언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삼국유사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건국 신화를 보면 바다로부터 후일 왕이 될 영웅이 등장하는 예를 기록하고 있다.
그 한 예로는 신라 남해왕 때 바다 건너에서 용이 이끌어서 신라 아진포 앞바다에 배 한 척이 나타나자 상서로운 까치소리가 그 배를 에워쌌다고 한다. 이때 ‘아진의선’이란 할머니가 배를 타고 나아가 그 배를 끌어다가 그 안에 있는 궤를 발견하는데 그 궤에는 단정하게 생긴 사나이가 있고 일곱 가지 보배와 노예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 궤에서 나온 사나이는 자신이 본래 바다 건너 용성국 왕자임을 밝혔고 후일 신라의 석탈해왕이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예로는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가 된 허황옥 공주가 하늘의 뜻으로 대가야의 왕비가 되기 위하여 바다 건너 멀리 인도 야유타국에서 붉은 빛 돛을 달고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하인과 노예와 보물을 가득 싣고 별포 나루에 도착하여 수로왕의 배필이 되었다는 고사가 있다. 또 서양의 예로는 바그너 오페라의 대본이 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가 있다. 트리스탄이 독극물에 중독되어 사랑하는 이졸데의 치료만이 그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이졸데가 오기를 기다린다. 만일 이졸데가 바다 너머에서 온다면 흰 돛을 달게 하고 오지 않으면 검은 돛을 달라는 말을 했는데, 기다리던 이졸데는 왔으나 질투심을 누를 길 없는 부인의 거짓말로 트리스탄이 죽는다는 비극적이 사랑의 이야기도 있다.
‘이 시에서는 7월에 먼 바다에서 청포(靑袍, 조선 시대에, 사품·오품·육품의 벼슬아치가 공복[公服]으로 입던 푸른 도포)를 입고 찾아오는 손님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시인이 이 시를 쓰던 1930년대는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 치하이므로 조선의 관헌은 아닐 것이고, 일본으로부터 조국을 구할 영웅의 출현을 에둘러서 나타내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이 시에서 말하는 이가 맞이할 영웅적인 손님의 방문은 하늘과 땅이 함께 어울린 크나큰 사건으로 나타나는데 그 핵심어는 ‘열린다’이다.
7월에
청포도가 ----- 이 마을 전설이 ----- 하늘 밑 푸른 바다가
열린다
7월이 오면 하늘로부터는 포도송이를 영글게 할 어떤 강력한 햇볕망이 열리고 하늘 밑 푸른 바다가 열려 청포를 입은 선비(영웅)가 탄 흰 돛단배가 나타난다. 모든 것들이 하늘로부터 예정된 순서임을 알 수 있다. 이 시에서 ‘7월’은 말하는 이가 기다리는 어떤 구원의 시기를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시의 뒷부분에서는 영웅의 출현이 아주 개인적인 만남으로 연결되면서 시 속의 말하는 이가 기다리던 영웅은 긴 여행에 지친 청포 입은 손님으로 구체화된다. 나라를 구할 영웅의 변장한 모습일 수도 있는데 소박하게 보면 고대하던 귀인(貴人)으로 볼 수 있다. 청포 입은 손님이 찾아온다면 그 만남에서 말하는 이는 그와 함께 청포도를 따 먹을 것을 꿈꾸고 있다. 그때의 호사스러운 준비물은 하이얀 모시 수건과 은쟁반이다.
1930년 당시에 은쟁반에 놓인 청포도를 먹으며
모시 수건에 손을 닦는 모습은 가장 귀족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기다리던 손님이 민족의 영웅이든 개인의 이상적 존재이든 간에 간절히 기다리던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이다. 그런 존재를 만나기가 쉽지 않으므로 이 부분에서 말하는 이는 가정법으로 말하고 있나 보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삶을 바꾸어 놓을 무엇인가를 혹은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순간을 위하여 나머지 인생을 준비하고 사는 것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는 않으리라.
6. 청마(靑馬) 유치환의 시 '울릉도(鬱陵島)'
東(동)쪽 먼 深海線(심해선) 밖의 / 한 점 섬 鬱陵島(울릉도)로 갈거나. // 錦繡(금수)로 구비쳐 내리던 / 長白(장백)의 멧부리 방울 뛰어 / 애달픈 國土(국토)의 망내 /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滄茫(창망)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리 떠 있기에 / 東海(동해) 쪽빛 바람에 / 항시 思念(사념)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 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 向(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 쉴 새 없이 출렁이는 風浪(풍랑)따라 / 밀리어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 / 멀리 祖國(조국)의 社稷(사직)의 /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 올 적마다 / 어린 마음의 미칠 수 없음이 / 아아 이렇게도 간절함이여. //東(동)쪽 먼 深海線(심해선)
밖의 한 점 섬 鬱陵島(울릉도)로 갈꺼나. (‘鬱陵島’, 『鬱陵島』, 1948)
청마(靑馬) 유치환(1908?1967)의 시 ‘울릉도’는 국토에 대한 사랑을 형제간의 우애로 정감 있게 서술한 시로 그 속에는 아틀라스(Atlas)적 상상력까이 담겨 있다. 첫 연부터 살펴보면 제1연에서는 거리감을 강조하고 있다.
국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외로운 섬으로 지도로 보면 심해선 밖의 한 점이다. 제2연에서는 대륙이 생성하던 시기에 울릉도가 생긴 근거를 그려내고 있는데 금수(강산)에서 구비쳐 내려오던 장백(산맥)의 멧부리가 방울이 튀어서 생겼다는 이론이다. 장백산맥(‘창바이 산맥’을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이름)은 중국 만주 남동부, 압록강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려 우리나라와의 경계에 있는 산맥으로 백두산이 있는 산맥이다. 요즘 우리나라 등산객들이 백두대간이라는 지리적 명칭을 사용하면서 국토의 산들을 오르는데 청마는 1940년대에 벌써 울릉도를 장백산맥의 흐름에 있는 한 멧부리라고 지적하였다.
이 시에서 말하는 이는 지도의 ‘한 점’이거나 ‘장백의 멧부리 방울‘이라는 표현을 통해 울릉도가 국토의 막내임을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막내는 부모가 이미 늙어서 막내에게 돌아갈 관심과 혜택이 적어서 애달프다고들 한다. 그리고 형제가 많으면 나이 차이가 많이 져서 세대 차가 나 형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므로 호젓하다고 볼 수 있다.
또 형들처럼 어른이 되고 싶어서 형들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래서 ’애달픈 國土의 망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2연), “滄茫한(넓고 멀어서 아득하다) 물굽이에 /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리 떠 있기에”(3연), “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向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4연) 같은 표현에서 이런 막내의 심정이 잘 나타난다.
그러나 말하는 이는 막내가 애달프기만 한 존재는 아님을 함께 말하고 있다. 형은 대륙에 사는 형의 자리에서 근심스럽게 동생인 섬을 걱정하고 있지만 동생은 지워질 듯 작고 가볍기 때문에 물에서 떠 있을 수 있고 또 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思念(근심하고 염려하는 따위의 여러 가지 생각)의 머리를 간직할 수 있다.
또한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작고 애달픈 동생은 “멀리 祖國(조국)의 社稷(사직)의 /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 올 적마다 / 어린 마음의 미칠 수 없음이 / 아아 이렇게도 간절함이여.”라고 간절하게 조국의 안위를 걱정하기도 한다. 여기서 일종의 역전 현상이 일어나는데 형과 부모로서의 대륙은 막내인 섬 울릉도를 안쓰럽게 생각했지만 오히려 국토의 막내인 섬 울릉도는 늘 사념의 머리를 바람에 씻기우며 조국을 생각하는 깨어있는 정신임을 보여준다. 도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형, 부모인 대륙 ↘ ↙ 사념의 머리
조국의 사직의 어지러움 ↙ ↘ 막내
이런 역전 현상은 넓은 동해 바다 가운데 가라앉지 않고 떠 있을 수 있는, 그것도 생각하며 높이 조국의 국토를 조망할 수 있는 아틀라스적 상상력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아틀라스는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 신이자 프로메테우스의 형제로, 천계를 어지럽혀 그 죄로 제우스에게 하늘을 두 어깨로 메는 벌을 받았다. 이에 따라 아틀라스 상상력이란 무거운 것을 가볍게 들어올리는 상상을 하는 것을 말하는데 도표로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국토 / 울릉도
대륙 / 섬
무겁다 / 가볍다
안 뜬다 / 뜬다, 하늘로 떠오른다,
대륙을 바라보다
울릉도가 조국의 사직을 걱정하듯 호국 보훈의 달인 유월에 우리도 조국의 안위를 걱정하는 국민이 되어야겠다. 또 울릉도 옆 독도가 일본과의 영토 분쟁으로 떠오르는 이때에 이 시 속의 형처럼 늘 울릉도와 독도를 걱정하는 모습을 가져야겠다.
7. 조지훈의 시 ‘매화송(梅花頌)’
매화꽃 다 진 밤에 / 호젓이 달이 밝다. // 구부러진 가지 하나 / 영창에 비취나니 // 아리따운 사람을 / 멀리 보내고 // 빈 방에 내 홀로 / 눈을 감아라. // 비단옷 감기듯이 / 사늘한 바람결에 // 떠도는 맑은 향기 / 암암한 옛 양자라 // 아리따운 사람이 / 다시 오는 듯 // 보내고 그리는 정도 / 싫지 않다 하더라.
(‘梅花頌’)
조지훈(趙芝薰: 1920~1968)의 본명은 조동탁(趙東卓)이다. 그의 고향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에 가면 생가 ‘호은종택(壺隱宗宅)이 남아 있다. ’호은(壺隱)‘은 주실 조씨들의 시조이자 1629년(인조 7년) 주실에 처음 들어와 이 동네를 일군 사람의 호로서 이 ’호은종택‘에는 370여 년 동안 내려온 가훈이 있다고 한다. 바로 ‘삼불차(三不借)’라는 것이다. 즉 세 가지를 빌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첫째는 ‘재불차(財不借)’로 재물을 다른 사람에게서 빌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인불차(人不借)’로 사람을 빌리지 않는 것이고, 셋째는 ‘문불차(文不借)’인데, 문장을 빌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삼불차’는 호은 할아버지 대부터 현재까지 계속 지켜 왔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매화에 대한 시조에서는 매화가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운다 하여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 정신의 표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지훈의 시 ‘매화송’에서는 매화가 ‘아리따운 사람’으로 표현되면서 사랑의 욕망과 절제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매화는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 주는 눈 속에 피는 꽃으로 유명하다. 사군자의 으뜸인 매화의 그림을 보면 작고 하얀 (혹은 붉은) 매화꽃과 달리 매화 등걸은 두껍고 묵직한 껍질로 싸여진 나무의 형상으로 굽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영화 ‘취화선’에서 장승업이 진홍이에게 그려 준 매화 그림을 생각하면 잘 알 수 있다. 이런 두꺼운 매화 가지와 조그맣고 하얀 매화꽃의 불균형은 매화가 회춘(回春)을 상징한다는 말에서 약간 이해가 된다. 즉 겨울의 매화는 죽은 용의 형상인데, 여기에서 꽃이 피어남은 늙은 몸에서 정력이 되살아나는 회춘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매화를 집 안에서 가꾸는 것만으로도 춘정(春情)을 북돋운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시는 춘정과 양기를 북돋우는 매화꽃이 다 진 달밤에 시작한다. 매화꽃이 핀 때로 시를 시작하지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도 잠깐 들지만, 시 속에서 말하는 이가 달빛에 홀로 빈방에 앉아 있자니 영창에 비치는 매화 가지가 꽃을 잃고 홀로 구부리고 있는 모습이 비쳐 보인다. 시 속에서 말하는 이도 아리따운 사람을 멀리 보내고 빈방에 호젓이 남아 있던 차이다. 영창을 사이에 두고 마당의 매화 나무와 방안의 말하는 이는 같은 공간에서 이미지를 통해 같은 처지를 나누고 있다.
눈을 감자 ‘사늘한’ 바람이 불면서 매화 가지와 말하는 이를 동시에 스친다. 이미 떠난 아리따운 사람이 말하는 이의 몸에 감기듯 사늘한 바람이 스친다. 촉감적 표현이다. 사늘한 바람결은 비단옷에 감긴 여인의 살갗이 닿듯 스치는 짜릿한 상상을 하게 한다. 바람이 매화 가지에 스치자 매화 향기가 떠돈다. 그것은 말하는 이에게 눈 앞에 아른거리는 여인의 향기로 느껴진다. ‘암암한(기억에 남은 것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옛 양자(樣子: 얼굴의 생긴 모양, 樣姿: 겉으로 나타나는 모양이나 모습)’란 표현에서 촉각과 후각을 통해서 떠나간 사람을 가깝게 느끼게 된다. 눈을 감고 기억 속의 아리따운 사람을 촉각과 후각으로 느끼며 아리따운 사람이 다시 오는 듯 황홀감에 잠긴다.
그러나 말하는 이는 이미지를 통해 만나는 환상의 한계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보내고 그리는 정도/ 싫지 않다 하더라’라는 황진이류의 시조 종장과 유사한 구절이 나타난다. 유명한 황진이의 시조에서는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였지만 조지훈의 시에서는 ‘보내고 그리는 정도 싫지 않다 하더라’ 로서 앞부분은 같은데, 뒷부분이 약간 다르다. 황진이의 시조에서는 스스로의 결단으로 아리따운 사람을 떠나보낸 뒤 후회하고 그리워하는 정이 흘러넘치는 반면 조지훈의 시에서는 중심을 잡고 절제하는 선비의 기품이 느껴진다. 어떤 쪽이 솔직한 자기 표현인지는 판단하기 어려우나 조지훈은 ‘매화송’을 통해서 매화가 다음 해 봄에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듯이 아리따운 이에 대한 자기 절제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연인과의 관계를 한 순간의 열정에 충실하느냐, 아니면 내년 봄을 기약하듯이 절제하고 감정을 추스르느냐 하는 욕망에 대한 충실성과 절제에 대한 고민과 선택을 보여주면서 ‘절제의 미학’이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시에서 보여주는 사랑에 대한 절제의 미학은 사군자 중의 으뜸인 매화에 대한 심미감에서 그리고 동양적이고도 한국적인 미적 거리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8. 김춘수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샤갈의 마을에는 三月에 눈이 온다. /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 새로 돋는 靜脈이 / 바르르 떤다. /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 새로 돋는 靜脈을 어루만지며 / 눈은 數千數萬의 날개를 달고 /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 三月에 눈이 오면 /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 다시 올리브빛의 물이 들고 / 밤에 아낙들은 /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 아궁이에 지핀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打令調·其他』, 1969.)
김춘수(金春洙, 1922?2004)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에서는 샤갈의 그림을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연상하기 쉬운 고향의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네 개의 문장과 15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에서 나타난 샤갈 (Chagall, Marc: 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화가[1887~1985])은 어떤 화가인가? 간단히 소개하면 그의 초기 작풍은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슬라브의 환상감과 유대인 특유의 신비성을 융합시킨 독자적인 개성을 강하게 풍기는 화가다. 소박한 동화의 세계나 고향의 생활, 하늘을 나는 연인들이란 주제를 즐겨 다루었고, 자유로운 공상과 풍부한 색채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풀어주는 매력이 있는 화가란 평을 듣는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샤갈의 마을이란 샤갈이 살았던 러시아 비테프스크의 농촌 마을이거나 샤갈의 그림을 보고 쓴 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샤갈의 그림에 이와 똑같은 제목의 그림은 없고 샤갈의 ‘나의 마을’에서 비슷한 이미지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시의 첫 문장을 보면 3월에 눈이 내린다는 것은 샤갈의 마을 사람들에게는 시련을 의미한다. 봄 농사를 시작하려고 들판에 선 이 마을 사나이의 관자놀이가 파르르 떠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정맥이 사람의 관자놀이에 새로 툭 불거져 나오는 것은 힘들어서 기운이 부칠 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마을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정맥이 돋아 파르르 떠는 그런 신경질적인 반응을 일으키게 만든 원흉이 바로 3월에 눈이 내리는 사건이다. 사나이가 들판을 바라보며 앞으로 닥칠 힘든 시련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걱정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자 예상했던 대로 2, 3 문장에서 눈이 이 마을의 모든 지붕과 굴뚝을 덮을 만큼 많이 내렸다.
네 번째 문장에서는 사나이의 걱정을 덜어주듯이 눈은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을 물들이고, 아낙들은 서둘러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하얀 눈이 덮인 지붕과 굴뚝, 그리고 올리브빛의 열매와 집 아궁이의 불길은 흰색과 붉은 색의 대비를 보여주며 샤갈 그림에 나옴직한 아름다운 동화 속 풍경을 띤다. 그런데 이 풍경에 나타나는 사물들은 단순히 외형적으로만 동화 속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사나이의 살림살이 고민을 덜어주는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눈이 생명을 덮어버리는 부정적인 기능만을 보여줄 뿐 아니라 눈이 오면 풍년이 든다는 속담처럼 농사의 풍년에 대한 긍정적인 예감을 보여준다. 그리고 눈이 옴으로써 겨울 열매는 올리브빛으로 익어 아름다운 풍경적 가치와 식량으로서의 가치도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핌으로써 부드럽게 눈에 대항하는 일을 한다.
전체 시의 이미지를 그려 본다면 사나이의 모습은 하늘까지 가득하고 그 안에서 눈송이와 올리브빛 열매와 아궁이에 불붙이는 아낙의 모습이 떠오른다. 왜 그럴까? 일반적으로 샤갈의 그림이 강조하는 대상을 화면 가득히 그리고 나머지는 작게 그려서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시에서 사나이는 하늘과 직접 맞닥뜨리는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아낙은 집안에서 간접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에서도 그렇다. 사나이는 한편으로 아낙과도 대응되는데 도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사나이 ---- 밖 ----- 하늘 ----- 작고 흰 눈송이 ---- 물(눈) ---- 내려옴
ㅣ ㅣ ㅣ ㅣ ㅣ ㅣ
아낙 ---- 안 ----- 땅 ----- 쥐똥만한 붉은 열매 ---- 불 ---- 올라감
사나이가 눈을 맞으며 서 있는 수직적 이미지인데 반하여 아낙은 부엌 아궁이에 앉아 불을 피우고, 사나이가 하늘을 바라보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하는 반면에 아낙은 땅의 열매를 거두고 조용히 집 안에서 불을 피운다. 사나이와 아낙의 호응이 느껴지는 영상이다. 아낙은 그 해의 마지막이 될 3월에 내리는 눈에 대응하여 전혀 신경질적이지 않게 그해의 가장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사나이가 눈을 맞고 아낙이 불을 지피는 상호 호응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이 시는 자연에 정면 대결로 또는 아름다운지혜로 대항하는 부부의 모습이라는 한 폭의 아름다운 영상을 그리고 있다.
9. 서정주의 “추천사(?韆詞) -- 춘향(春香)의 말 일(壹)”
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 배를 내어 밀 듯이, / 香丹아// 이 다수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 나무와/ 벼갯모에 뇌이듯한 풀꽃뎀이로부터, / 자잘한 나비새끼 꾀꼬리들로부터 / 아조 내어밀듯이, 香丹아 // 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눌로 / 나를 밀어 올려다오/ 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다오! // 西으로 가는 달 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 바람이 波濤를 밀어 올리듯이 /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다오 / 香丹아.
(“?韆詞 --春香의 말 壹”, 『서정주시선』, 1955)
서정주(徐廷柱, 1915?2000)의 시 “추천사(?韆詞)--春香의 말 壹”은 춘향과 이 도령의 연애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5월 단옷날 춘향이가 푸른 나무 사이로 그네 뛰던 모습을 처음 본 이 도령이 사랑을 느꼈던 그 장면을 모티프로 쓴 시이다. 그네뛰기는 아슬아슬한 어지러움과 아찔한 상쾌감을 노리는 놀이이자 운동이다. 1연에서 춘향은 그들의 만남이 시작되었던 그네에서 향단이에게 그넷줄을 밀라고 한다. 춘향이 그네를 타고 하늘을 향해 나아가도록 미는 행위는 1연에서 선원이나 어부가 바다를 향해 배를 미는 행위에, 4연에서는 바람이 파도를 미는 행위에 비유된다. 즉 춘향은 그네뛰기를 통해 지상을 벗어나 하늘로 날아가기를 꾀하고 있는데 뭔가 사연이 있음을 느끼게 한다.
2연에 오면 그네뛰기의 감각적 느낌이 잘 드러난다. 초여름 5월의 푸른 풀꽃 더미 속에서 나비가 날고 꾀꼬리가 우짖는데, 물오른 수양버드나무에서는 그네가 매어져 흔들리는 아름다운 계절감이 감각적으로 선명히 드러난다. 여기서 2연을 자세히 읽어 보면 단순히 5월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 묘사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묘사된 자연물은 실제의 자연물이라기보다 ‘벼갯모’에 수놓인 조형적인 자연물이다. 춘향이 자유를 느꼈던 그네뛰기의 현실적인 5월의 풍경은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던 베겟모의 조형물로 그대로 축소, 이동된다. 단순히 풍경만이 옮겨지는 게 아니라 여기에 더하여 그네뛰기의 어지러움, 현기증, 엑스타시, 심미적 쾌감 등이 함께 옮아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3연에 보면 춘향은 침실 베겟모에 수놓인 5월의 아름다운 풍광 속의 그네뛰기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산호도 섬도 없는 하늘로, 지상을 아주 벗어나려 하고 있고, 4연에서는 서쪽으로 가는 달처럼 구도자의 길을 걸어가려 한다. 달의 속성을 살펴보면 첫째로, 어둠 속에서 빛을 내며 어둠 속에서 고통받는 자를 빛으로 이끄는 존재로 상징된다. 둘째로는 달이 바다의 조수(파도)에 영향을 준다든가 차서 기울고 완전히 기울다가 사흘 동안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추어 버린다든가 하는 과정에서 그 사흘 간의 사라짐은 흔히 죽음으로 비유한다. 이렇게 다시 나타난 달은 재탄생으로 죽음과 재생을 끝없이 이루어가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그런 점을 생각할 때 춘향은 달처럼 죽음을 통해서 부활의 세계로 가고자 하거나 지상을 떠나 서방정토로 가는 구도자의 해탈문에 들어서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데 왜 그럴까? 그것은 춘향과 이 도령의 연애담을 생각하면 잘 알 수 있다. 춘향이 5월 단오에 이 도령을 만나 사랑의 흔들림을 맛보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신분상의 격차를 넘어설 수 없어 이 도령과 이별해야 했고, 한편으로 변 사또의 수청 강요에 대해 살아서 수청을 듣느냐, 죽어서 정절을 지키느냐의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자유 의지를 시험당하게 됐다. 이때 춘향은 삶보다는 오히려 죽음을 택한다. 서정주를 비롯한 많은 시인들이(김영랑, 박재삼 등) 춘향의 이런 결단의 순간을 시로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서정주는 단순히 고통을 못 이겨 죽음을 동경한 것이 아니라 춘향도 사랑과 욕망을 떠나 멀리 목숨과 시간에서 벗어나, 달이 서방정토로 가듯이 해탈의 길을 가고 싶다는 불교적 염원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5월 단옷날 그네뛰기 하던 현실의 어지러움은 베겟모의 수(繡) 조형물과 관련된 어지러움으로 바뀌고 다시 지상과 현실을 벗어나려는 우주적인 이동의 어지러움으로 바뀌고 있다. 이 과정을 도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현실 (5월 단오에 광한루에서 그네뛰기할 때의 어지러움)
↓
축소 (베겟모의 어지러움)
↓
확대 (목숨을 초월하는 도 닦음의 어지러움)
이와 같이 시 ‘추천사’는 그네뛰기에서 생기는 현기증의 장면을 중심으로 하여, 그 장면의 축소인 베겟모의 장면은 남녀가 만나 운우(雲雨)의 정을 나누면서 느끼는 엑스타시를 보여주고, 다시 달이 지상을 떠나 구름처럼 파도처럼 산호도 섬도 없는 하늘로의 확산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어린 춘향이 사랑에 눈 뜨게 되면서 죽음 같은 고통을 통하여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성숙을 지향함을 보여준다.
10. 서정주 시 ‘無等을 보며’
가난이야 한낱 襤褸에 지내지 않는다. /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 여름 山같은 /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 靑山이 그 무릎 아래 芝蘭을 기르듯 /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여드는 / 午後의 때가 오거든 / 內外들이여 그대들도 / 더러는 앉고 /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럼히 우러러보고 /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 어느 가시덤풀 쑥굴헝에 뇌일지라도 / 우리는 늘 玉돌같이 호젓이 무쳤다고 생각할 일이요 / 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서정주, ‘無等을 보며’, 『서정주시선』, 1955)
미당 서정주의 시 ‘無等을 보며’는 전라남도 빛고을 광주(光州)에 있는 무등산(無等山)을 보며 쓴 시이다. 무등(無等)은 산 이름이기도 하면서 불교 용어로 부처님의 존호를 말한다. 부처님은 최상의 어른이시라 견줄 이가 없고, 세간 중에서는 이 무등한 부처님과 같을 이가 없으므로 무등등(無等等)이라 한다.
이 시는 ‘가난’으로부터 시작한다. 왜 가난을 남루(낡아 해진 옷)로 비유할까? 1연을 보면 가난은 해진 옷과 같아서 우리 몸을 다 가릴 수 없으며, 해진 옷 사이로 원래 타고난 여름산 같은 살결과 마음씨가 삐져 나온다고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 그래, 건강한 아이가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있어도 보기 좋고 귀티가 나듯이 타고난 건강한 살결이나 건강한 마음이 있으면 가난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구나 하고 이해하게 된다. 해어져 떨어진 옷도 ‘벗고’ 가난도 ‘벗는다’. 그래서 흔히 ‘가난을 벗는다’라는 말을 한다.
1연 1행에서 무등산의 자태는 갈맷빛(짙은 초록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가난도 어쩌지 못하는 건강한 장년(壯年)의 여름산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가난은 부정적인 말투로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2연 1행에서도 “靑山이 그 무릎 아래 芝蘭을 기르듯 /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라는 부정적인 말투를 통해 더 이상 물러설 길 없는 부모의 굳은 결심을, 즉 가난에 따른 자녀 교육의 어려움과 각오를 말한다. 시인은 무등산이 그 푸른 무릎 아래 지란(芝草와 蘭草)을 기르듯 자녀를 그렇게 길러야 함을 유교적 상징으로 암시하고 있다. 『공자가어』에서 “지초와 난초는 숲속에서 자라나,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향기를 풍기지 않는 일이 없고, 군자는 덕을 닦고 도를 세우는 데 있어서 곤궁함을 이유로 절개나 지조를 바꾸는 일이 없다”, “착한 사람과 함께 살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에 들어간 것처럼 오랫동안 그 향기를 알지 못한다.”라고 하여 지초와 난초를 ‘군자’와 ‘착한 사람’에 대응시키는데 바로 시인도 군자가 곤궁함을 이유로 지조를 바꾸지 않듯이 그렇게 자녀를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즉 부모가 가난하더라도 자존심을 가지고 품위 있게 살면서 자녀를 가르쳐야 함을 말하는 듯하다.
다시 2연에서는 곤궁하고 힘든 시기를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여드는 / 午後의 때가 오거든”이라고 말하면서 흐르는 물길로 인생을 비유하고 있다. 목숨이 농울쳐 (물결쳐 돌아흐르는) 휘여드는 위험한 순간을 당하더라도 내외간에는 앉고 눕거나 3연에서처럼 ‘물끄럼히 우러러보고 이마라도 짚어 주는’ 끈끈한 부부애를 가지라고 말하고 있다. 4연에서는 어려운 고난의 시절이 ‘어느 가시덤풀 쑥굴헝에 뇌일지라도’로 비유되는데 그 비유는 저 멀리 향가의 ‘모죽지랑가’에 닿고 있다. 즉 ‘모죽지랑가’에서 작자는 죽은 죽지랑을 회상하면서 그가 가 있을 피안의 하늘을 그리워하는데, ‘다북쑥 우거진 굴헝’은 이러한 상상적 세계와 대비되는 속세에서의 고통과 시련을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이 시에서도 시인은 속세의 고통과 시련이 닥칠지라도 늘 “玉돌같이 호젓이 무쳤다고 생각할 일이요 / 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라는 표현을 통해 힘든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무등산과 사람의 모습이 서 있는 자세에서 점점 앉고, 눕는 자세로 바뀌는 비유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무등산 사람
갈맷빛(짙은 초록빛)여름 산 등성이 ----- 남루한 옷 속에 건강한 살결과 마음씨를 드러내고 서 있는 장년
청산이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른다 ----- 가난 속에서도 엄격하게 자녀를 길러야 한다.
산의 물길이 물결쳐 돌아흐르는 모습 ----- 목숨이 위태로운 위험한 순간
산의 옥돌(귀한 돌)로 묻혔음 ----- 가시덤풀 쑥구렁(시련과 고통)
옥돌에 청태(푸른 이끼)가 끼다 ----- 속세의 고통으로부터 거리를 두다
위의 비유를 통해서 사람이 시련을 견디어 가는 비법을 조곤조곤 알려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연에서는 가난을, 2연에서는 자식 기르기의 어려움과 목숨의 위태로움을, 4연에서는 시련과 고통을 말하면서 삶을 견디기가 점점 더 어려워짐을 보여준다. 산은 그 모든 시련을 편한 자세로 맞이하라고 충고한다. 서 있지 말고 앉거나 바라보거나 이마를 짚거나 나중에는 시련이 밖에서 못 알아 보게끔 푸른 이끼까지 낀 옥돌이 되어 있으라고 충고한다. 지금은 가시덤불 쑥구렁에 묻혀 있더라도 자신의 모습을 푸른 이끼 낀 옥돌로 산에 묻혀 있다고 생각하라고 말한다. 요즈음같이 경제적으로 힘든 때 부처님의 화신인 무등산의 옥돌이 되어 시련을 견디라는 시인의 멋진 충고가 더욱 새롭게 느껴진다.
Ⅰ. '井邑詞‘에 나타난 아내의 마음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원
前腔 ?하 노피곰 도?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小葉 아으 다롱디리/ 後腔全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드?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過篇 어느이다 노코시라 /金善線 어긔야 내 가논? 졈그?셰라/ 어긔야 어강됴리/小葉 아으 다롱디리
<‘井邑詞’,「악학궤범」 권5>
‘정읍사’는 작자 연대 미상의 가요로 백제 시대부터 구전되어 오다가,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훈민정음 창제 뒤 문자로 정착되었기 때문에, 백제 때 불린 그대로가 아니라고 보기도 하고, 후렴구와 여음을 빼면 3장 6구의 시가 형식이어서 시조의 근원으로 보기도 한다. 이 노래의 가사는 “악학궤범, 권5”에 실려 전하고 이 노래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 ‘악지(樂志) 2’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정읍은 전주에 속한 현으로 그 고을 사람이 행상을 나간 뒤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그 처가 산의 바위에 올라 멀리 남편 있는 곳을 바라보며, 그 지아비가 밤길에 해를 입을까 두려워하며 진흙물에 빠짐에 비유하여 노래했다. 세간에 전하길 등첨산에 망부석이 있다고 한다.”
이 노래의 주요 내용을 문장으로 간추리면 “① 달아, 높이 돋아서/② 멀리 비취오시라./ ③(임은) 지금 저자(시장)에 가 계신가요? /④ (임께서) 즌 데를 디딜세라./⑤ (임이여) 어느 곳에 (짐을) 놓고 계신지요? /⑥ 내 (임이) 가는 데 저물세라(잠길세라, 빠질세라)”이다. 1, 2구는 달에게 하늘 높이 돋아서 밤에 남편이 계신 곳을 비추어 달라는 뜻이(‘-시라’는 직접 청자에게 명령하지 않는 간접 명령이나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손한 명령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 담겨 있다. 현대로 보면 달이 인공위성처럼 하늘 높이 떠서 집 떠난 지 오래 된 임이 이 밤중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비추어 달라는 간절한 기도가 담겨 있다. 3구는 남편의 직업이 행상인이므로 저자에 가 계신지를 묻는 위치 확인 작업을 하고 있다. 4구에서는 임이 ‘즌 데’를 ‘디딜세라’(‘을세라’는 일의 이유나 근거로서 혹시 그러할까 염려하는 뜻을 나타내는 연결어미)는 염려와 불안, 의심, 더 나아가 질투의 마음까지 품고 있다. ‘즌 데를 디디다’라는 표현은 고려사에서도 나타났듯이 밤길에 진흙탕에 빠질까 염려하는 비유로서 객지에서 밤길에 돌아다니다가 실족(失足)하여 몸을 다쳐 고생할까 걱정하는 마음, 진흙물에 빠지는 것처럼 나쁜 사람들에게 당하거나 휩쓸릴까 염려하는 마음, 새로운 여자에게 빠져서 아내를 잊고 지낼까 두려워하는 마음 등이 복합되어 있다. 자연 재해, 사람의 나쁜 영향, 그리고 연적(戀敵)의 등장을 두려워하는 마음 등 어느 한쪽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복합적인 뜻이 함축되어 이 시를 고전으로서 오래도록 읽게 하고 있다.
달은 밤 하늘에 높이 떠서 세상의 어둠을 쫓는 역할을 한다. 이 달과 반대되는 기능을 하는 단어가 바로 ‘즌데를 디디다’인데 미처 달이 비추지 못한 어두운 땅을 임이 밟을까 염려하는 마음을 말한다. 하늘의 달과 대비되는 땅의 젖은 곳이라고 해서 다 어두운 곳은 아니므로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말하는 여성의 남편이 발을 디디기로 선택한 어떤 행위가 윤리적이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일 수 있다. 아내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 홀로 있는 남편의 마음이 어떤 본능에 따라 잘못 움직여서 가정의 파탄이 일어날까 염려하는 것이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역사적 예로는 이 노래가 삼국속악의 하나로 전승되어 궁중 음악으로 불리어 왔는데, 조선 중종 때 조신들에 의해 음사(淫辭)라 하여 폐지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5구에서는 다시 임에게 밤길에 돌아다니지 말고 어느 곳에다 짐을 놓고 쉬는지 묻거나 혹은 짐을 놓고 어서 돌아오시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6구에서는 내 임이 가는 길에 저물까 두렵다고 해석해 왔지만 달이 비치는데 저물까 두렵다는 것은 앞뒤가 잘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어 내 임이 (딴 여자에게) 잠길까 두렵다, 빠질까 두렵다는 해석이 힘을 갖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행상을 나간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달에게 비는 평범한 내용인데도 ‘즌 데를 디디다’, ‘내 남편이 가는 데에 잠기다. 빠지다‘란 서술어를 비유적으로 봄으로써 남편의 무사 귀환을 기원한다는 의미가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물론 이 시에서 말하는 여성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의심하지도 않고,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다만 몸이나 편히 다니시기를 바라는 순결한 마음으로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망부석의 이미지를 지녔다고 전통적으로 해석해 왔고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살과 피를 가진 아내가 돌이 될 때까지 남편을 기다렸다는 망부석의 역사적 이야기 뒷편에는 기다림을 단순한 여자의 부덕(婦德)으로 찬양할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여성의 피 말리는 갈등과 질투 등의 심리적 고뇌를 요구하는 내용이 있었음을 헤아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