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문 열린 하늘에서 한 생각 쉬어 가리라. 150여분의 비구니스님들께 강의하는 일진 교무스님을 뵙고자 지난해에도 연락을 드렸는데 겸허히 사양하시던 스님. 비구니스님들의 최고의 교육처로 자리매김 해오신 명성 스님께서 회주로 계시는 곳이며 사리암이란 기도도량 뿐만 아니라 절 입구의 소나무 숲은 안개 자욱한 날이면 천상인가 착각에 빠지게 하여 세상의 번거로움을 한 순간에 사라지게 하는, 그야말로 치유의 절에서 미국에서 공부하시고 활동하셨던 일진스님을 뵙는 일에 이번에는 김형근 사장님의 힘을 얻어 드디어 성사가 되었다.
장소: 청도 운문사
일시: 2014년 5월 30일
기자 스님 이렇게 뵙게 되어 고맙습니다. 미국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셨는지요?
일진 스님 뉴저지 몬크레어 스테이트 대학에서 종교학을 했고 웨스트 대학에서 종교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기자 미국에서 포교를 비롯하여 활동한 것은 무엇인지요?
스님 하와이, 로스앤젤러스에서 지내면서 활동했다. 필라델피아 원각사에서는 어린이 한글 학교를 운영하였고 뉴욕 불광사에서 청소년 법회를 하면서 유엔 방문을 통하여 현장학습의 기회를 가졌고 다른 나라 사찰 방문도 하고 달라이라마 성하 친견등 폭 넓은 경험을 하도록 이끌었다.
기자 유엔에는 어떻게 가셨는지요?
스님 미주현대 불교가 1999년에 UN NGO에 가입하여 2009년 까지 활동했는데 그 활동의 일환으로 불교인 국제 활동가 양성 프로그램을 만들어 1인당 매년 일만 달러를 지원 했는데 저는 2번째로 지원 받게 되었고 내가 활동한 것은 2001년 부터 2003년 까지 3년간 이었다.
UN에서는 주로 NGO 그룹 회의를 1주일에2번 했는데, 회의내용은 주로 빈민, 병, 인권, 여성인권, 아동 노예 등 지구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드러내고 논의하고 해결점을 찾고 실행하는 것이었다. 정치적인 입장이나 견해를 벗어나 환경문제 특히 지구 온난화 등 여러 가지를 논의하였다. 특히 내가 활동한 기간 내에 2001년 9.11이 발생해 이라크 쪽에서는 살상무기가 없다고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던 것이 기억에 남는 일중에 하나다. UN에서 논의된 사항들을 미국교포사회나 한국에 소개하기도 하였다. 미국에 UN센터가 있지만 여러 민족들의 문제들이 UN에 알려지고 NGO그룹에는 우수한 단체들이 매우 많고 의사 교사보내기 가난한 아이들에게 필수품 보내기 등 참으로 의미 있고 꼭 해야만 하는 많은 일들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UN활동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인간 전체를 한 식구로 보는 관점이다. 즉 지구라는 집에 태어났으니 모두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교포들의 참여가 약하다는 것과 유태인 여성들의 참여가 대단하였고, 그에 따라 힘이 부여 된 것이 아쉽기도 하였고 부럽기도 하였다. 이 자리를 통하여 후원해준 미주현대불교에 감사의 말도 전하고 싶다.
기자 운문승가 대학을 졸업하였는데 전통승가교육과 미국의 일반 대학에서의 차이점은 무엇인지요?
스님 매우 많다. 승가교육은 승려가 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일반대학에서는 학문적 탐구에 맞추어져 있다. 승가교육과는 완전히 다른 목표와 과정이 있다.
기자 스님으로써 일반적인 공부를 하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스님 수행하는 스님이라도 먼저 수행을 하는데 이론이 필요하고 현대적 안목과 다양한 견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자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로 시작하여 수행자로 살다 수행자들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열반하셨는데, 부처님의 제자로 교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스님 부처님께서도 탄탄한 학문적 바탕이 있었다고 믿고 있다. 비록 바라문적이었다 해도 분명 여러 가지를 학습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승속을 막론하고 수행뿐만이 아니라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신 점을 미루어 보면 사회, 정신적 문제들을 인지하고 파악 하셨기에 가능 했다고 생각된다.
기자 운문사의 교무를 맡으시면서 스님들을 지도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시다면?
스님 미국에서 10년 넘게 살다보니 세월속의 무상함에서 환지본처랄까?
기자 구체적 지도 내용 무엇인지요?
스님 경전을 잘 읽고 숙지하는 것과 150명에 가까운 스님들이 함께 사는데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생활적인 것이나 심리적인 것 나아가 구도 수행이라는 것까지 서로 마음 닦는 좋은 생활공간이다. 함께 산다는 것이 가르치는 것이고 배우는 것이다.
기자 운문사에서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않는다는 백장청규를 따라 스님들께서 농사일등 많은 일들을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스님 이곳 스님들은 교리공부만이 아닌 많은 일을 하고 포교를 위한 준비 과정으로의 포교실습은 물론 여러 가지 나눔도 실천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일로는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분들을 위해 학인스님들의 여러 차례 방문을 통하여 기도와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극복 할 수 있는 일을 정성을 다해 노력 하였다.
기자 꼭 필요한, 감동적인 일을 하는 것에 경의를 표합니다. 하루 수행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고 해석 할 수도 있는지요?
스님 그런 해석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기자 마음 밭을 가꾸는 가르침도 하시겠지요?
스님 나도 물론 가르치려 노력하지만 학인 스님들 스스로도 잘 해야 할 것이다.
기자 한국의 대통령도 여성인데 비구니 스님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지도 하시는지?
스님 젊은 비구니 스님들 중에는 아주 똑똑하고 능력 있는 분들이 많아서 앞으로는 주도적으로 역할을 해내는 비구니 스님들이 많을 것이다. 24교구 본사 중에 비구니 스님이 맡아서 하는 곳이 하나도 없는 현실적인 차별 문제도 성찰하면서 해결해 나가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도 그중에 하나이다.
기자 미국의 불자님들께 한 말씀 하신다면?
스님 먼저 저와 인연 있으셨던 불자님과 인연이 닿지 않았던 불자님들께도 마음 깊이 감사드리며 불교는 부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며 부처님처럼 깨달아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기 위해서임으로 권위나 힘의 논리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일임으로 늘 마음에 새기면서 행복하시길 바란다.
기자 스님은 누구십니까?
스님 내가 나지 누구야?
미국에 살았을 때 몇 분들로부터 ‘우리 일진스님’ 하시면서 스님에 대한 좋은 추억과 믿음을 나타내셨던 이유를 운문사 계곡의 바람처럼 맑고 정답게 대해주신 스님을 뵙고 그분들의 마음을 확인하면서 구름문 열린 땅에서 수행 정진하시는 스님들의 모습을 나또한 좋은 추억으로 남기며 떠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