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디언(Native American)<1>
유럽 남서부(南西部) 이베리아(Iberia)반도에 있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Andalucia)의 주도인 세비야(Sevilla)는 오랜 역사의 도시로, 과달키비르(Guadalquivir) 강가에 세워진 항구도시인데 신석기 때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하는 고대도시이다.
이곳 이베리아반도 안달루시아 지방은 AD 8세기, 이슬람이 통치하던 시기의 수도(首都)였고 훗날 신세계(新世界/New World) 탐험의 중심인물들이었던 콜럼버스(Columbus), 마젤란(Magellan) 등 탐험가들이 첫 항해(航海)를 시작한 출발점이기도 했던 역사의 도시이다.
당시 코페르니쿠스(Copernicus)와 갈릴레오(Galileo Galilei) 등, 과학자들에 의해 지동설(地動說)이 처음으로 제기되고 지구는 둥글다는 이론이 나오자 모두 반신반의(半信半疑)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지구는 평평하고, 땅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멀리 나가면 폭포처럼 공중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서 근해(近海)에서만 고기를 잡거나 항해를 하고 먼바다는 두려워서 나가지 못했다.
중국에서는 커다란 지각판(地殼板)을 네 마리의 거북이 받치고 있는데 이따금 거북이들이 꿈틀거리면 지진이 일어난다는 허무맹랑한 설(說)까지... ㅎㅎ
당시 모험가들은 동쪽으로 동쪽으로... 사막을 지나고 산맥을 넘어 무작정 갔더니 인도(India)라는 나라가 나타났는데 밀림 속에 황금으로 된 도시가 있고 코가 긴 코끼리라는 짐승이 있으며, 사막 근처 바위 밑에 샘물이 있어 목이 메말라 마시려고 했더니 냄새가 나서 마실 수 없었다.
그 물은 낙타도 못 마셨는데 불을 붙이니 불이 붙었다(원유).
이런 모험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 거짓말쟁이, 허풍쟁이라고 하던 시절이었다.
코를 손처럼 사용하는 동물이라구? 샘물에 불이 붙다니.... 말 같지도 않은 말을... ㅎㅎ
이사벨과 콜럼버스의 만남 / 산타페 협약 동상(스페인 그라나다) / 이사벨 여왕 / 콜럼버스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이탈리아)는 지구가 둥글다니까 동쪽으로 가지 말고 서쪽 바다(대서양)로 배로 가면 훨씬 더 빨리 갈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콜럼버스는 돈이 많은 귀족을 찾아다니며 ‘나에게 배를 대어 주시오. 나는 서쪽 바다로 인도를 가겠소.’
인도는 황금도시도 있고 진주와 향료가 무진장이라고 하니 한 번만 다녀오면 그 몇 배로 갚아 주겠다고 설득했지만, 누구도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고 모두 콜럼버스를 정신 이상자로 취급했다고 한다. 콜럼버스는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스페인 여왕 이사벨(Isabel)을 찾아가서 배를 대어 달라고 요청하는데 이사벨 여왕은 자신이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패물까지 처분하여 콜럼버스에게 배를 세척 대어주고 계약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산타페 협약(Santa Fe Capitulations)이며, 이른바 벤처(Venture) 투자였던 셈이다.
이사벨 여왕과 콜럼버스의 산타페 협약은 무슬림(이슬람) 국가인 그라나다(Granada)가 함락된 몇 개월 후인 1492년 4월에 체결하는데 그 협약의 내용은,
①콜럼버스에게 스페인 여왕이 작위(爵位)를 부여하고,
②앞으로 발견되는 지역의 대 제독(提督)과 식민지 총독(總督)으로 임명할 것이며,
③이러한 작위(爵位)는 그의 자손들에게 영구히 상속되고,
④그곳에서 생산되는 모든 귀금속의 10분의 1을 콜럼버스가 소유하는 것 등이었다고 한다.
희망이 가득 찬 이탈리아의 항해가(航海家) 콜럼버스는 1492년, 첫 항해를 시작으로 4회에 걸쳐 아메리카대륙을 찾아가지만 죽을 때까지 그곳이 인도(印度)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메리카대륙 원주민을 인도인이라는 의미로 인디언(Indian), 스페인어로 인디오(Indio)라고 불렀다.
10년 후, 1502년에는 또 다른 스페인의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풋치(Amerigo Vespucci)도 아메리카대륙을 탐험하는데 이곳은 인도가 아닌 새로운 대륙(New World)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America)라고 명칭을 붙인다.
당시 아메리카대륙은 60여 개의 원주민(Native American) 부족들이 흩어져 살고 있었는데 이후 유럽 각지에서 이민자들이 몰려들게 되면서 원주민과 이민자(移民者)들 간의 알력(軋轢/다툼)이 시작된다.
이민자들은 중에는 탐험가들이 있는가 하면,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오는 사람, 범죄를 짓고 도망을 오는 사람 등 온갖 부류(部類)의 사람들이 몰려오게 된다.
콜럼버스의 첫 도착지 서인도제도 / 산타마리아 호 / 오월의 꽃(복원) / 체로키 인디언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이태리), 바스쿠다가마(Vasco da Gama:포르투갈), 마젤란(Fernão de Magalhães:포르투갈) 등 당시 탐험가들은 먼 옛날 유럽에서 망망대해를 건너 신대륙인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세계로 통하는 항로를 개척해서 본격적인 국제화 시대를 연 사람들이다.
하지만 위인전이나 역사책에서 묘사한 것처럼 이들은 모험심과 의지가 강하며 인류애가 넘치던 위인들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메리카대륙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협박해서 금을 빼앗아 쉽게 한몫 챙기려던, 위인(偉人)보다는 불량배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훗날 북아메리카로 건너와 미국을 세운 사람들은 매우 착한 사람들도 있었다. 1600년대, 영국에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고, 담배도 안 피우고, 아이 낳을 목적 외에는 부부간에도 성행위를 금지하며, 항상 검은 옷만 입고 다니고,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절대로 하지 않는 엄격한 규칙을 지키는 별난 기독교 종파(宗派)가 있었다.
이들은 종교 박해를 피해 오월의 꽃(Mayflower)이라는 배를 타고 영국으로부터 종교의 자유를 찾아 몰려오게 되는데 이들을 필그림(Protestant /Pilgrim Fathers)이라고 했다.
이들은 스스로 순결(Pure)하게 지킨다고 해서 Puritan(퓨리탄), 즉 청교도(淸敎徒)라고도 했다.
미국 개척사(開拓史)를 보면 1607년, 영국에서 104명의 청교도(Pilgrim)들이 탄 배 ‘5월의 꽃(May Flower)’호는 당시 신대륙(New World)으로 불리던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러나 당시 십여 년간 미대륙을 휩쓴 극심한 가뭄과 흉년으로 1년 뒤 살아남은 청교도는 38명밖에 되지 않았다는데 그때 이주자들이 그나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