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metana Ma Vlast (My Fatherland), Moldau … Kubelik Czech 1990 | |
‘황혼의 반란’
… 젊은 세대와 어떻게 공존할 건가
···· 노재현 논설위원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
102세 할머니가 전신마취로 6시간짜리 대장암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아 ‘100세 암수술 시대’ 를 열었다. 부럽고 감탄스럽다. 많은 이들이 용기와 희망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황혼의 반란’ 속에서라면 할머니는 수술받을 꿈조차 꾸지 못했다.
초고령사회 프랑스에서 노인 배척운동이 일어난다. 학자들이 TV에 나와 “사회보장 적자는 노인들 때문” 이라고 외친다. 정치인들도 “의사들이 노인층에 약을 너무 쉽게 처방한다” 고 비난한다. 여론이 조성되자 정부가 나서서 먼저 인공심장 생산을 중단시킨다. 대통령은 신년 담화에서 “노인들을 불사(不死)의 로봇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생명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존중돼야 합니다” 라고 선언한다. 곧바로 70세 이상은 약값 · 치료비 지급을 제한하고 80세부터는 치과, 85세는 위장 치료, 90세는 진통제 처방에 대해 환급을 중지한다. 100세 이후는 모든 무료 의료서비스 금지다. 젊은이로 구성된 체포조가 전국을 돌며 노인들을 붙잡아 ‘휴식 · 평화 · 안락센터’ 에 가두고 독극물 주사를 놓아 죽인다. 그러자 노인들이 들고 일어나 생존을 위한 게릴라 투쟁을 시작한다….
‘황혼(黃昏)의 반란’ 의 대척점(對蹠點)에 영화 ‘아일랜드’ 가 있다. 인간복제가 가능해진 2019년. 부자들의 질병 · 부상에 대비해 복제품 인간들을 따로 비밀리에 사육하는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소설이든 영화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 중인 우리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한국은 두 상상의 세계 중간 어디쯤에 놓여 있다. 실제로 고령자가 쓰는 의료비는 가파른 증가세다. 의료예산 증액은 한계가 있으니 젊은 세대에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의료뿐일까. 고령자 운전 문제 하나만 봐도 그림자는 점점 짙어지고 있다. 65세 이상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지난 10년 사이 3배 넘게 늘었다. 960번째 도전에서 운전면허를 따내 ‘959전 960기’ 신화로 유명한 차사순(70) 할머니도 몇 차례 교통사고를 낸 뒤 운전대를 놓았다고 한다. 기어 조작을 착각해 벽을 들이받고 감나무에도 돌진했다는 것이다. 65세 이상 운전면허 보유자가 1275만 명이나 되는 일본에서는 고령자가 면허증을 반납하면 버스 · 택시 요금 할인, 상품권 같은 혜택을 준다. 일본도 고령자 교통사고가 지난해 10만6000건으로 사상 최고였다.
운전부터 의료 · 일자리 · 주거 · 여가생활까지 고령화가 걸리지 않는 문제는 없다. 청 · 장년층과 하나하나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야 할 판이다. ‘황혼의 반란’ 에는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 이라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나온다. 지혜와 경험이 축적된 ‘도서관’ 들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 여기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걸려 있다.
- 중앙일보 [분수대]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2011-12-28 |
‘황혼(黃昏)의 반란’
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나무’란 冊에 수록되어있는 ‘황혼의 반란’이란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고려장(高麗葬)’이 생각났다.
“국민 여러분! 오늘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노인문제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노인들을 '불사(不死)의 로봇'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생명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대통령은 신년 담화에서 “노인들은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함으로써 국가로 하여금 민심에 반하는 세금을 부과하게 하고 있다” 고 비난했다. 평균 수명 이 길어진 이 나라에는 '노인은 일은 안 하고 밥만 축낸다' 는 인식이 번졌다. 노인들은 CDPD(휴식 · 평화 · 안락센터)라는 기관에 끌려가 주사를 맞고 생을 마감해야 했다. 70대 노인인 프레드 · 뤼세트 부부는 기관에 끌려가기 직전에 탈출해 다른 노인들과 함께 산속으로 들어가 반정부 투쟁을 벌였다. 동조하는 노인들이 늘면서, 프레드는 신화적인 인물이 됐다. 그러자 정부는 독감 바이러스를 퍼뜨렸고, 감염된 노인들은 하나 둘 죽어갔다. 결국 에 끌려간 프레드는 자신에게 주사를 놓은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도 언젠가 늙은이가 될 게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지은 단편소설 '황혼의 반란'의 줄거리다. 현대판 고려장을 연상케 하는 이 소설은 노인 문제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출산율이 낮아지고 인간 수명은 늘어나면서 고령화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27일자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는 '서서히 타들어가는 도화선(A slow-burning fuse)' 이라는 제목으로 인구 고령화에 대한 14페이지짜리 특집을 실었다.
UN은 고령화 정도에 따라 고령화사회(전체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7% 이상~14% 미만), 고령사회(노인인구가 14% 이상~20% 미만), 초고령사회(노인인구가 20% 이상)로 나누고 있다.
한국은 지난 2000년에 노인인구 339만5000명을 기록하며 고령화사회에 들어섰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장수(長壽)' 였던 까닭에 당시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빨랐다. 2008년 노인인구는 501만6000명으로 전체인구의 10.3%가 됐다. 2018년 이면 고령사회가 되고, 2026년이 되면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고령화가 야기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지금은 15~64세의 국민 7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면 되는 상황이지만, 2020년에는 4.6명이 노인 1명을 책임져야 한다. 2008년 '고령자 통계' (통계청)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의 고통은 '건강문제'(43.6%), '경제적 어려움'(38.4%) 순이었다. 노인 인구의 52.3%는 생활비를 '본인 혹은 배우자' 가 직접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구 · 사회학자들은 '에이지퀘이크(agequake · 인구 지진)' 에 대비하라고 충고한다. 고령화사회가 세계 경제에 가져올 엄청난 충격을 지진(earthquake)에 비유한 말이다. 넋 놓고 있다가는 한국 사회도 '황혼의 반란'이나 '에이지퀘이크'에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우선 국민연금의 재정건전성 강화, 개인연금제도의 활성화 등을 통해 노인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 또 일할 능력과 의욕이 있는 노인들을 위해 정년 연장이나 임금피크제 활성화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보다 적극적인 출산 장려 정책을 도입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속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당장 '젊은 백수' 문제 해결에 쩔쩔매느라 고령사회에 대한 대책 마련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노인문제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지만 '벼랑에 몰린' 노인들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노인 문제는 더 이상 '바다 건너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부모와 자식이 반란 세력과 진압군이 되어 맞서는 '소설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 조선일보 [조선데스크] 조정훈 사회부 차장대우 |
‘황혼의 반란’
···· 베르베르 베르나르 作
「그들일까요?」
초인종이 딩동댕 하고 울렸다. 할아버지 프레드와 할머니 뤼세트는 겁에 질린 동물처럼 바닥에 웅숭그리고 있었다.
「아냐,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우리 자식들은 절대로 그들이 오게 내버려두지 않을거요.」
「벌써 3주 전부터 세누와 나누에게서 아무 소식이 없어요. 사람들 얘기가 자식들이 소식을 끊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그들이 온다던데.」
두 노인은 조심스럽게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닭장처럼 철망을 쳐놓은 대형버스가 보였다. 바로 그 악명 높은 <휴식. 평화. 안락센터>의 버스였다. 그 행정기관의 약자 CDPD(Centre de Detente Paix et Douceur의 약자), 그리고 흔들의자와 리모컨과 카멜레꽃을 나타낸 로고가 차체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분홍색 제복을 입은 대원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은 반항하는 노인들을 붙잡는데 쓰는 커다란 그물을 한껏 감추고 있었다.
프레드와 뤼세트는 서로 바싹 몸을 기대었다. 프레드는 분노로 몸을 떨고 있었다. 결국 그들의 자식들도 부모를 버린 셈이었다. 그들의 사랑하는 아들 · 딸마저도 부모를 CDPD에 넘기고 말았다는 얘기였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프레드는 설마 그런 일이 있으랴 하고 생각했다. 다른 집 자식들은 다 그래도 자기네 자식들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르는 맹문이라서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그는 그런 행동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노인들을 배척하는 운동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었다. 정부는 처음에 노인들을 지지했다. 입에 발린 소리일지언정 노인 공경의 미덕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더니 얼마 안 가서 노인들을 여론의 심판에 넘겨 버렸다. 한 사회학자가 텔레비전 저녁 뉴스에 나와서 사회보장의 적자는 대부분 70세 이상의 노인들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그러자 노인 배척 운동의 전선에 생긴 그 돌파구를 이용하여 정치인들이 공격에 가세하였다. 그들은 의사들이 너무 쉽게 약을 처방한다고 비난했다. 의사들이 공익은 뒷전으로 돌리고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해 마구잡이로 노인들의 생명을 연장 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태는 갈수록 나빠지기만 했다. 학자들의 분석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폭적인 예산 삭감이 이어졌다. 먼저 정부는 인공심장의 생산을 중단시켰다. 그 다음에는 피부와 신장과 간의 대용물을 개발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동결시켰다.
대통령은 신년담화를 통해 <노인들을 불사(不死)의 로봇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생명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노년기와 극노년기의 국민들은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함으로써 국가가 민심에 반하는 세금을 부과하게 하고, 프랑스 사회가 퇴보하는 듯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나라의 모든 경제 문제가 노인의 증가와 연결되어 있음이 명백해 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상한 것은, 그 담화가 75세 노인의 입에서 나온 것이고 그의 <뛰어난 임무 수행 능력> 자체가 상당 부분 첨단의학의 보살핌 덕분에 발휘되고 있는 것임에도 아무도 그 사실을 지적치 않았다는 점이다.
그 담화가 있은 뒤에 70세 이상의 노인들에 대해서 약값과 치료비의 지급을 제한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75세부터는 소염제에 대해 환급을 받을 수 없게 되었고, 80세부터는 치과 치료에 대해, 85세부터는 위장 치료에 대해, 90세부터는 진통제에 대해 환급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또 100세 이상의 노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무료 의료 서비스를 일체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광고 제작자들은 그런 흐름에 편승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반노(反老)> 캠페인으로 정치인들의 뒤를 따랐다. 노인을 비하하고 배척하는 광고 문구가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어떤 개먹이 광고에서 였다. 이 광고에는 한 노인과 개가 등장한다. 노인이 개밥 사발에 담긴 먹이를 훔치려고 하자, 개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댄다. 그러면서 <플리키, 바로 당신의 할아버지가 꿈꾸는 먹이입니다> 라는 문구가 나타난다. 그 즈음에 보건복지부에는 이런 말이 들어간 포스터가 나붙었다. <65세는 괜찮아요. 70세요? 손해의 시작이죠!>
노년의 이미지는 점차 사회의 모든 부정적인 요소와 결합되었다. 인구과밀, 실업, 세금 등이 모두 <자기들 몫의 회전이 끝났음에도 회전목마를 떠나지 않고 있는 노인들>탓이 되어 버렸다.
레스토랑 문에서 <70세 이상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발견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행여 반동분자로 몰리게 될까봐 이제 아무도 노인들을 옹호하려 들지 않았다.
현관의 초인종이 다시 울렸다. 프레드와 뤼세트는 몸을 움찔하였다.
「열어주지 맙시다. 저들은 우리가 없다고 생각할 거요.」
프레드가 그렇게 속삭였다. 그는 여전히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들은 2층에 있었기 때문에 창문 너머로 철망 버스의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뤼세트는 이웃에 사는 풀트랑 씨 부부가 버스 안에 있는 것을 보았다. 토요일 오후면 으레 함께 어울려 카드놀이를 하는 부부였다. 보아하니 그들 역시 자식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모양이었다.
「문 열어요. 안에 있다는 거 알고 있어요.」
그물을 지니고 있는 직원이 현관문을 주먹으로 쾅쾅 두드렸다.
노부부는 서로 기대어 다시 몸을 웅크렸다. 성난 주먹질이 멎는가했더니 발길질이 그 뒤를 따랐다.
철망 버스 안에 갇힌 풀랑트 씨 부부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들은 이런 일이 생기리라는 것을 진작에 예감하고도 다른 노인들에게 미리 알려주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프레드와 뤼세트는 지난 토요일에도 그들 집에 놀러 갔었다. 네 사람은 노인 배척 법률들을 화제에 올렸다. 프레드와 뤼세트는 CDPD가 아주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풀트랑 부부는 대단히 비관적이었다.
「말세예요, 말세. 어떤 집 자식들은 늙은 부모를 나무에 묶어놓고 바캉스를 떠나기까지 한대요. 부모가 따라나서지 못하게 하려고 말이에요. 그래서 늙은이들이 며칠 동안 먹지도 못하고 악천후에 방치된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결국 센터로 가게 되는 거지요.」
「센터에서는 어떻게 지낸대요?」
뤼세트가 별 생각 없이 그렇게 묻자, 풀트랑 씨 부인은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아무도 모르죠.」
「광고에서 주장하기로는 노인들에게 여행을 시켜준다고 하던데요. 타이며 아프리카며 브라질 등지로 놀러 가게 해준다면서요.」
그 말에 풀트랑 씨가 코웃음을 쳤다.
「그건 공식적인 선전일 뿐이에요. 정부가 그러잖아도 우리 때문에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불평하는 판에 우리에게 외국 여행까지 시켜줄 리가 있겠어요? 센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에 관해서는 뭔가 짚이는 게 있어요. 내 생각은 정부가 선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관적이에요. 뻔한 거 아니에요? 그저 우리 늙은이들에게…… 주사나 놓겠지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그들은 우리를 없애버리기 위해 독극물 주사를 놓고 있어요.」
「설마요! 그건 너무…….」
「그들이 우리를 곧바로 제거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얼마 동안은 우리를 데리고 있죠. 우리 자식들이 생각을 바꿀 경우에 대비해서 말이에요.」
「하지만 노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자기들에게 주사를 놓은데 그냥 가만히 있겠어요?」
「그들이 독감 예방주사를 놓는다며 노인들을 속이는 거죠?」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런데 풀트랑 씨는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죠?」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러자 프레드가 잘라 말했다.
「그건 풍문입니다. 나는 그게 한낱 풍문일 것이라고 확신해요.」
세상에 아무리 인정이 메말랐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몰인정할 수는 없어요. 지레 겁을 먹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한 겁니다.
「인생을 그렇게 장밋빛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부럽네요. 하지만 내 아버지가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낙관론자들이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라고 말이에요.」
그러면서 풀트랑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래층에서 CDPD의 하수인들이 현관문을 노루발장도리로 따고 있었다. 그들의 동작은 자신만만하고 거의 기계적이었다. 매일같이 그런 일을 숱하게 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소리쳤다.
「뭐가 무서워서 그래요? 모든 게 잘될 겁니다. 겁내지 말아요.」
프레드는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라는 심정으로 뤼세트의 허리를 잡았다. 뤼세트는 남편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차렸다. 마음이 통한 두 사람은 함께 창턱으로 올라가 훌쩍 뛰어내렸다. 그들이 떨어진 자리에 쌓여 있던 쓰레기 더미가 추락의 충격을 완화시켜 주었다. 프레드는 결연하게 벌떡 일어나 뤼세트의 팔을 잡아끌며 CDPD의 버스 쪽으로 내달았다. 보도에 남아 있던 대원들이 깜짝 놀라서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에 그는 잽싸게 운전석에 앉아 질풍처럼 버스를 출발시켰다.
그는 한참동안 버스를 산 쪽으로 몰고 갔다. 버스에 타고 있던 스무 명의 다른 노인들은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차를 세웠다. 아무도 말문을 열지 않았다. 긴 침묵을 깨고, 마침내 프레드가 말했다.
「압니다. 우리는 어쩌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 직감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버릇이 있습니다. 내가 느끼기에 CDPD는 정말이지 전혀 갈 만한 곳이 못됩니다.」
다른 노인들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다들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쭈뼛거리고 있는데, 풀트랑 씨가 갑자기 <만세>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약간의 시간을 두고 모든 승객이 그를 따라 만세를 외쳤다. 다만 80대의 한 남자 노인은 예외였다. 랑글루아라는 이름의 그 쪼글쪼글한 노인이 말했다.
「우리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래도 CDPD에서 죽을 순 없지요.」
프레드가 되받았다. 문득 그는 이제 자기가 전혀 떨고 있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풀트랑 씨 부부와 다른 노인들은 앞을 다투어 프레드와 뤼세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그들의 영웅적인 행동을 칭찬하였다. 하지만 프레드는 그들을 말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경찰이 곧 쫓아올 겁니다. 서둘러 산 속으로 피신하도록 합시다.」
숲에 당도하자 도망자들은 불안에 휩싸였다.
「날씨가 추운데.」
「여기엔 산짐승들이 많을 텐데.」
「배고파요.」
「거미와 뱀이 있을 게 틀림없어.」
「내 맥박 조절기의 건전지가 다 되어 가고 있어.」
「나는 항생제 투여 요법을 받고 있어요.」
프레드가 그들을 지켜보다가 말문을 열었다.
「다들 조용히 하십시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어느새 그는 그들의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하긴, 그가 그들을 속박에서 풀어냈으니 이제 그들을 책임져야 하는 것도 그였다.
「경찰이 열심히 우리를 찾고 있을 테니, 불을 피울 수는 없습니다. 그 대신 몸을 피할 수 있는 동굴을 찾아내는 것이 급합니다.」
프레드의 침착한 모습에 다른 노인들도 냉정함을 되찾았다. 한 시간쯤 지나자, 현장을 탐사하러 갔던 사람들이 돌아와 제법 큰 동굴 하나를 발견했다고 알렸다. 그들은 모두 동굴로 갔다.
「여기에서는 안심하고 불을 피워도 되겠어요.」
폐암에 걸려서도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살베르 여사가 지포 라이터를 꺼냈다. 다른 노인들은 잔가지들을 주어다가 쌓아올렸다. 하지만 로빈슨 크루소 식의 모험을 이제 갓 시작한 프레드는 새로운 형태의 그런 스카우트 활동에는 별로 재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기가 동굴에 가득 차서 그들은 숨을 쉬기 위해 서둘러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고도 비만에 걸린 노인 한 사람만 제 때에 탈출하지 못했다. 그는 심하게 기침을 하다가 그만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동료들은 그를 땅에 묻기 전에 임시변통으로 간단한 장례 의식을 치렀다. 프레드는 <노인 하나가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입니다....... 잘 가시게 공트랑>하는 식으로 조사를 하였다.
매장이 끝난 뒤에, 전직 과학 저널리스트인 랑글루아는 동굴의 연기를 배출하는 시스템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동굴 천장의 흙으로 된 부분에 구멍을 뚫어보자는 것이었다. 그 일은 그들의 생존과 관련된 최초의 교훈이었다.
이튿날, 그들은 사냥을 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그들에겐 활도 없고 총도 없었다. 하지만 풀트랑 씨는 커다란 돌멩이를 던져 운수 나쁜 다람쥐 한 마리를 잡는 데에 성공했다. 그 다람쥐가 그들의 첫 식사였다. 간에 기별도 안 가게 양이 적은 식사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 다음날, 숲이 앙갚음을 하였다. 전날 다람쥐를 죽인 풀트랑씨의 부인이 산토끼를 잡으려다가 오히려 반항하는 산토끼에 떠밀리는 바람에 넉장거리를 하며 벼랑에서 떨어진 것이다. 그들은 저승객이 된 그녀를 땅에 묻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스무 명이었다.
그날 저녁에 노인들은 불가에 모여 토론을 벌였다.
「우리는 끝내 이 궁지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예요.」
바르니에 여사가 그렇게 비관적인 진단을 내렸다. CDPD 사람들에게 붙잡힐 때 가져온 약들이 다 바닥난 모양이었다.
「늑대들이 우리를 잡아먹을 겁니다.」
「경찰이 우리를 찾아낼 거예요.」
프레드는 그들을 안심시켰다. 그의 목소리에는 갈수록 자신감이 배어 가고 있었다.
「우리가 너무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는 한, 여기에 있으면 안전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사라진 며칠이 지났기 때문에 우리가 얼어 죽었거나 산짐승 들에게 잡혀 먹혔을 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노인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약점이죠.」
모네스티에 씨가 투덜거렸다.
「우리가 이런 처지에 놓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그러자 한 노파가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우리는 우리 부모들에게 그런 식으로 행동한 적이 없는데...」
프레드가 노파의 말을 잘랐다.
「추억을 자꾸 되새기는 일은 그만두기로 합시다. 한탄과 하소연도 부질 없습니다. 이제 현재 속에서 살기로 합시다. 젊음을 숭배하는 시대 조류에 우리 자식들이 세뇌되었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우리 자녀들은 육체의 아름다움에 너무 집착합니다. 몸무게를 줄이고, 주름살을 없애는 것을 하나의 신앙 행위처럼 여기고 체조나 조깅을 신성한 의무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몸을 가꾸고 젊음을 유지하는 데에만 몰두한 나머지 그들은 바보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를 제거함으로써 자신들의 젊음이 영원히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건 참으로 큰 착각이죠.」
그 작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때 갑자기 동굴 입구에 실루엣 하나가 나타났다. 노인들은 일제히 벌떡 일어나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투창 쪽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다들 너무 심하게 떨고 있었기 때문에 설령 창을 던진다 해도 표적을 제대로 맞추기가 어려울 듯했다.
첫 번째 실루엣에 이어 다른 세 사람의 실루엣이 잇달아 나타났다. 노인들은 모두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다.
프레드는 두려움을 억누르면서 횃불 하나를 잡고 입구로 나아갔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막으려고 애쓰며 그가 물었다.
「CDPD에서 나왔소?」
한 발 더 다가가 보니, 그들은 CDPD 체포 대원들도 아니었고, 경찰관이나 간호사들도 아니었다. 거기에는 동굴 속의 도망자들과 똑같은 늙은이들이 서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어떤 센터에서 탈출했습니다. 여러분이 도주했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전부터 여러분들을 찾아다녔어요.」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그렇게 사정을 설명한 다음 자기를 소개했다.
「나는 발랑베르그라고 합니다. 전직 의사죠.」
옆자리에 서 있던 이 빠진 노부인은 자기가 발랑베르그 박사의 아내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프레드가 다시 차분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아마도 잘 모르시겠지만 이 나라 모든 노인에게 여러분은 영웅입니다. 소식이 금방 퍼졌습니다. 여러분이 도주해서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정부 당국에서는 여러분의 시신을 찾아냈다고 발표했습니다. 우리가 그 말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한 사진은 가짜였습니다. 그걸 알아차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요. 그 시체들이 너무 젊어 보였으니까 말이에요.」
그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그토록 즐겁게 웃어 보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에 있는 일이었다. 한번 터지기 시작한 웃음은 좀처럼 멎지를 않았다. 그들은 기침이 나고 얼굴이 붉어지고 땀이 맺히도록 웃었다.
그들은 이제 스물네 명이었다. 새로 온 노인들은 자기들이 챙겨 온 물건들을 꺼내 놓았다. 종이, 볼펜, 칼, 보청기, 안경, 지팡이, 의약품, 가는 끈 등 모두가 요긴하게 쓰일 물건들이었다. 발랑베르그 박사는 연발식 소총까지 한 자루 가져왔다. 뤼세트가 소리쳤다.
「굉장하네요. 이제 적들이 포위 공격을 한다 해도 버틸 수 있겠어요.」
「그래요.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에요. 다른 노인들이 곧 우리와 합류할 게 틀림없어요. 이전까지는 센터에서 도망을 쳐도 살아갈 희망이나 도피처를 구할 가능성이 없었어요. 그래서 도망쳤던 사람들이 다시 붙잡히고 말았지요. 이제 그들은 알고 있어요. 여기 이 산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에요. 지금쯤이면 수백 명의 노인들이 우리를 찾아 이 지역을 샅샅이 뒤지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해요.」
아닌 게 아니라, 나날이 많은 노인들이 찾아와 반란자들이 진영에 가세하였다. 적지 않은 노인들이 오던 길로 혹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력이 다하여 죽었다. 병에 맞는 약이 없어서 죽는 노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점점 강인해져 갔다.
재주가 아주 많은 발랑베르그 박사는 동료들에게 토끼 올가미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한편 뛰어난 식물학자인 그의 아내는 식용 버섯을 식별하는 방법 (그들은 독버섯 때문에 애석하게 몇 명의 동료를 잃은 적이 있었다.) 곡물과 채소 심는 방법 등을 가르쳤다.
왕년에 전기 기술자였던 풀트랑 씨는 풍력 발전기를 세우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회전 날개가 바깥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나무갓 위로 겨우 올라가게 설치하였다. 그들은 오래지 않아 그 풍력 발전기 덕분에 동굴 안에 전등을 달게 되었다.
프레드는 근처의 샘에서 동굴 속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일을 맡았다. 그 모든 노력의 결과로 숲에서 사는 일이 한결 쉬워졌다. 그들은 자기들이 살아남은 것을 스스로 대견하게 여겼다. 프레드가 힘주어 말했듯이 그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기적이었다>.
처음이 동굴과 근처의 다른 동굴들에 결집한 노인들이 곧 백여 명에 달했다. 프레드와 뤼세트는 CDPD가 두려워하고 70세 이상의 노인들 모두가 찬양하는 신화적인 인물이 되었다. 프레드는 한 노인이 가져온 카메라로 은신처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의 사진은 곧 알음알음으로 퍼져 나가 노인들의 집에 걸리게 되었다. 반란자들은 자기네들 지칭하는 이름과 스스로를 결집시키기 위한 슬로건을 찾아냈다. 그들 집단의 이름은 <흰여우들>이었고, 그들의 슬로건은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였다. 이어서 그들은 국민들을 상대로 직접 선전활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단을 작성하였다.
노부부인 프레드와 뤼세트는 정부가 노인을 체포하여 주사를 놓아 사라지게 하는 정책에 저항하여 <흰여우들>이라는 결사대를 조직합니다. 경찰과 싸우면서도 자기 자식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들을 데려가 주기를 바라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급기야 이런 호소문을 만들어 배포합니다.
<우리를 존중해 주십시오. 우리를 사랑해 주십시오. 노인들은 아기들을 돌 볼 수 있고 뜨개질을 할 수 있습니다. 다리미질이나 요리도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젊은이들이 싫어하는 모든 일을 우리는 아직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인간은 늙은이들을 죽임으로써 마치 쥐들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가장 약한 구성원들을 가차 없이 제거해 버리는 쥐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쥐가 아닙니다. 인간은 서로 연대할 줄 알고 함께 어울려 살 줄 압니다. 만일 인간이 가장 약한 자들을 죽인다면, 인간의 모듬살이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노인을 배척하는 법률들을 철폐합시다. 우리를 제거하기보다 활용할 생각을 하십시오.
그들은 이 호소문이 전국에 걸쳐 배포되도록 손을 썼다.
하지만 프레드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네 공동체를 수호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CDPD에 아직 갇혀 있는 노인들까지 모두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의 제안에 따라 <흰여우들> 중에서 가장 활동적인 사람들이 나섰다. 그들은 CDPD에 수용된 노인의 자식들로 행세하기로 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자식들이 숙고의 기간을 거친 뒤에 부모를 다시 찾으러 온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그들은 젊은이들처럼 옷을 입고 머리를 염색했으며 가짜 신분증을 소지하였다. 그들의 활동은 점차 관계 당국의 의심을 사기 시작했다. 당국은 잘못을 뉘우쳤다고 주장하는 자녀들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을 석연치 않게 생각했다. 그래서 부모를 다시 데리러 오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 먼저 자기들의 손을 보여 주도록 요구하였다. 얼굴이나 복장으로는 나이를 속일 수 있어도 손으로는 나이를 속일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러자 프레드는 도시 게릴라 활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흰여우들>의 행동대원들은 CDPD 중의 한곳을 일제히 공격하여 노인 50여 명을 해방시켰다. 그리하여 반란자들의 수는 더욱 증가했다. 그들은 이제 진짜 군대가 되어 가고 있었다.
경찰과 CDPD는 반란자들이 숨어 있는 동굴의 위치를 알아내고 여러 차례 공격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전직 장성들이 다량의 무기를 가지고 반란자들과 합류한 뒤로 그들은 만만찮은 전력을 갖추게 되었다. 보잘 것 없는 활이 무기의 전부였던 시절은 가고, 그들은 이제 자동소총과 60밀리 박격포로 자기들의 진지를 방어하고 있었다.
젊은 장교들로 구성된 새 정부는 양보하기를 거부했다. CDPD의 체포 대원들은 노인들을 자택에서 끌어내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장비를 동원하고 있었다. 반란이 온 나라로 확산되기 전에 일을 끝내려고 그렇게 포악을 떠는 듯했다. CDPD는 이제 버스를 사용하지 않고 은행들로부터 징발한 현금 수송용 방탄 유개 차량을 사용하고 있었다. 정부는 물러서기는커녕 점점 더 강경한 정책으로 빠져 들어갔다. 60세 이상의 노인에게는 노동이 금지되었고, 자녀들에게는 부모를 지원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것에 대한 반발로 <흰여우들>은 더욱 가열찬 게릴라 공격을 벌였다. 양 진영의 입장은 갈수록 강경해졌다.
반란군의 첫 거점이 된 동굴과 그 뒤에 새로 찾아낸 여러 동굴은 완전히 요새로 변해 있었다. 안전이 보장되고 편의시설이 늘어나자 산 속에 숨어 사는 삶도 그런대로 쾌적해졌다. 노인들은 그런 삶이야말로 참다운 청춘을 되찾게 해주는 기적 같은 삶이라고 여기며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게릴라 활동에 정부가 불안을 느껴 결국에는 노인 배척 법률을 개정하게 되리라고 기대하였다. 자기들이 완강하게 저항을 계속하면 대통령이 자기들과 타협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되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노인들의 반란을 완전히 종식시키기 위한 대책을 강구해 냈다. 어떤 영웅적인 계략으로 반란자들이 어쩔 수 없이 투항하게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독감 바이러스를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헬리콥터들이 숲 위로 날아올라 바이러스 샘플들을 다량으로 살포했다. 뤼세트가 가장 먼저 죽었다. 하지만 프레드는 투항을 거부했다.
반란자들에게는 긴급히 백신이 필요했다. 하지만 정부는 그들이 백신을 구할 가능성에 대비하여 사전에 모든 재고를 폐기하도록 명령한 바 있었다. 따라서 전염은 피할 수가 없었다. 사망자가 갈수록 늘어났다.
3주일 후, 경찰병력이 <흰여우들> 중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출동했다. 그들은 어떤 저항에도 맞닥뜨리지 않았다. 프레드는 CDPD 대원들에게 체포되었다. 그 대원들은 20세 미만의 젊은이들로만 구성된 새로운 소대에 속해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결국 나중에 체포된 프레드는 주사를 맞고 죽기전에 자신에게 주사를 놓은 자의 눈을 차갑게 쏘아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될 게다.」
- (끝) -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독특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책 '나무' 中 '황혼의 반란' 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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