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응화비진분
수보리야, 어떤 사람이 한량없는 아승지 세계에 7보를 가득히 쌓아두고 보시하더라도, 다른 선남자 선여인으로서
보살마음을 낸 이가 이 경전에서 4구게 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남을 위하여 해설하여 준다면
그 복이 저 보시한 복덕보다 더 나으리라. 어떻게 남을 위하여 해설하여 주는가? 모양다리에 국집하지 않고
항상 여여하여 움직이지 않아야 하느니라.
[강설]
이제 마지막으로 응신과 화신은 진실이 아니다라는 전제 아래에서, 먼저 26. 화신의 설법은 복이 없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말합니다.
위의 경문은 모양에 집착하지 말고 진여의 모습대로 동요함이 없어야 하리라!는 결론을 말씀한 부분입니다.
야보선사: “설하려면 무슨 어려움이 있으리오, 지금 다시 청하노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라.”
“행주좌와하고 시비하고 <나>다 <남>이다 하는 것이 이것을 떠나 있지 않거니와, 또한 이것이라 하면 당장
얼굴에 침을 뱉으리라. 평생의 가슴에 품은 생각을 일시에 쏟아 놓으니 4구게 묘한문을 모두 설파했도다.”
“어떻게 남을 위하여 해설하여 주는가? 모양다리에 국집하지 않고 항상 여여하여 움직이지 않아야 하느니라.”
야보선사: “강물이 철저히 얼었으니 물이 흐를래야 통하지 못하도다.”
야보선사 운,
“마지막 한 구절이 비로소 뇌간에 이르렀으니 바로 3세의 모든 부처님이 네 개의 눈으로 서로 보는 것이며,
육대조사가 물러설 분이 있도다, 가히 이르되 강물이 철저히 얼었으니 물이 흐를래야 통하지 못하고, 눈에 가시가
가득하매 발 들여 놓기도 어렵구나! 이 속에 이르러서는 한 터럭을 더하더라도 마치 눈 속에 가시를 둔 것 같고
한 터럭을 빼더라도 살 위의 부스럼과 같으니, 앉아서 요긴한 길을 끊으려는 것이 아니라. 대저 법을 아는 자에게
두려움이 되기 때문이니라.
비록 그렇지만 불법이 다만 이와 같을진대 문득 육지가 꺼짐을 볼 것이니 어찌 등과 등이 불꽃을 이음이 있으리오
천 상좌는 오늘 사나운 호랑이 입 속에서 음식을 빼앗으며, 사나운 용의 턱 속에 있는 구슬꿰는 것을 면치
못함이니 선성의 묘문을 활짝 열어 후학들이 몸이 나아가는데 길이 있게 하리니 한 길을 터놓는 것이 또 어찌
방해되리오, 말하즉 온전히 법체를 나타냄이여, 묵묵한 즉 홀로 진상을 드러냄이며, 움직인즉 한 마리 학이
조각구름으로 날아감이요 고요한 즉 앞산이 펼쳐짐이로다. 한 걸음을 들면 마치 코끼리가 돌아보는 듯하고,
한 걸음을 물러서면 사자가 기지개를 켜며 포효하는 것 같으니 법왕의 법령을 마땅히 행함이라. 곧 능히
법에 있어서 자재함이로다 다만 저 마지막 한 구저를 또 어떻게 말할 것인가? 또한 자세히 알겠는가!
구름은 고갯마루에 걸려 한가히 걷히지 않고
물은 시내로 흐름이 너무 빠르도다.
왜냐하면, [온갖 유위의 법은 꿈 같고 그림자 같고 꼭두각시 같고 거품 같으며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
이러한 도리를 바로 관찰하여라.
[강설]
다음으로 27. 적멸에 들면 어떻게 설법하나? 라는 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항상 적멸에 들어 계신
다는데 어떻게 설법하실 수가 있을까?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적멸은 양변에 치우친 견해를 지양한 ‘중도의
지견’을 말하는데 그것을 알아 채지 못하면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야보선사:“배를 움직이는 것은 다만 키 잡은 사람에게 있느니라.”
“물 가운데서 달을 건지고 거울 속에서 얼굴을 찾는구나, 배에 새겨놓아 칼을 찾으며 소를 타고 소를 찾음이로다
허공 꽃과 아지랑이이고 꿈과 환화와 뜬 물거품이로다. 모두가 붓 끝에 있음이요 쉬고 싶으면 곧 쉬나니
천한 노래와 막걸리와 시골의즐거움들이 풍류가 없는 곳에서 퓽유롭도다
이 게송은 지난 여름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남북대화와 금강산관광사업에 힘을 쏟다가 지난 8월 초에 갑작스레
타계한 정몽헌 故 현대아산 회장님의 영전에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이 보낸
금강경 게송이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세상은 맺혔다가 사라지는 아침이슬과도 같습니다.
정치나 경제적인 관점을 떠나 진리의 관점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번 일은 이해할 수 없을텐데요.
주위 사람들에게 가혹한 말일지 모르지만 이럴 때 홀연히 발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유통분]
“부처님께서 이 경전 말씀하기를 마치니 장로 수보리와 여러 비구, 비구니와 우바새, 우바이와 여려 세계의
하늘 사람과 세상 사람과 아수라들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모두들 즐거워하면서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
야보선사:“30년 후에 노승을 망각하지 말지니, 알 수 없어라 누가 은혜를 아는 자인가? 하하 장차 사람이
없다 하리라.”
“주림에 밥을 먹고 목마름에 장을 얻으며 병든 이는 쾌차하고 더우면 시원함을 얻은 것이다. 가난한 이 보물을
만나고 어린이는 어머니를 만나도다, 표류하던 배가 언덕에 이르고 외로운 길손 고향에 돌아오니 가뭄에 단 비만
만남이요 나라엔 충신과 선량이 있도다 사방의 오랑케 예배하고 팔방에서 항복하여 오도다.
두두가 다 옳고 물물이 온전히 드러난다. 고, 금, 범, 성과 지옥, 천당과 동서남북을 사랑하지 말지니
찰진세계의 모든 중생들이 모두 함께 금강 대도량에 들어가도다,
섢화이야기 37. 대장부가 가는 곳마다 고향 아니 데가 없는데
남아도처시고향
기인장재객수중
일성할파삼천계
설리도화편편홍
대장부 가는 곳마다 고향 아닌 데가 없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오래도록 나그네 시름 속에 있는가
한 마디 큰 소리로 온 우주의 감춰진 진리를 드러내니
눈 속에도 복사꽃이 활짝 펴서 송이송이 붉구나.
마해 한용운 스님이 1917년 12월 3일 밤 설악산 오세암에서 좌선 중에 어떤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문득 깨달음을 얻은 후 읊었다는 게송입니다. 마음의 고향을 떠나 길 찾던 나그네가 고향집에 돌아와
읊었던 깨달음의 노래입니다.
그 후 만해스님은 만공 선사에게 찾아가 자신이 지은 오도송이라며 읊었습니다. 만공선사도 오도송의 마지막
글자인 飛자를 ‘紅’자로 바꾸는 게 좋겠다고 말했고, 만해는 그말에 수긍하고 紅자로 바꿨다는 겁니다.
이처럼 오랫동안 길떠났다가 고향 찾은 나그네가 남기는 게송을 우리는 오도송이라 말합니다.
금강경 사경을 마침니다. 성불하십시오()
첫댓글 증지소지비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