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 신부님 강론
좋은 곳에 항상 유혹이 있듯이 늘 우리는 유혹과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그걸 잊어버리는 순간 교만해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교만해지면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교만해지는 가장 큰 원인은 내 입장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한테 왜 이래?”, “내가 이러는 거 몰라?” 모든 것의 초점이 나에게 맞춰져 있다. 맞추고 함께 갈 생각의 중심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어야 사랑이다. 나만을 생각하는 유혹에 우리는 늘 노출되어 있음을 깨달으면서 살아가지 않으면 하느님을 잊게 된다. 그래서 하느님께 기도하고 하느님과 함께하려고 노력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혼자서 하기는 힘들다. 가정이라는 가장 소중한 공동체에서 해주지 못하는 것을 이웃이라는 공동체, 우리 신앙 안에서의 공동체가 보살펴 주고 함께할 때가 더 많이 있다. 내가 한 만큼 잘 사는 것 같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미사를 하다 보면 가끔 “본당의 모든 교우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하면서 기도 한다. 성당에 나오지 않고 신앙생활도 안 하고 있는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내가 기도하고 노력한 만큼 나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나 아닌 다른 이들이 기도 하고 걱정해주는 것에 의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매 순간 겸손하게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은 복된 삶이고 하느님의 은총 안에 머무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걸 모르는 삶은 맨날 싸우는 삶이 되는 것이다. “나 힘든데 왜 나를”, “내가 이만큼 하고 있는데 왜 내 말을” 이런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런 유혹은 우리가 뭔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오는 유혹일 것이다.
오늘 제1 독서에서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라고 말씀하신다. 나의 생각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제일 중요한 하느님을 잊어버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혹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예”, “아니요”라고 그냥 내 입장만 간단하게 표현하면 더 이상 내 생각과 감정을 끌고 오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냥 보려고 할 것이다.
우리 뜨란채 구역 모두가 구역 안에서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먼저 생각하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하느님이라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내가 사는 매일의 삶이 천국이 된다. 그건 거저 얻는 게 아니라 기도라는 가장 소중한 도구를 통해서 얻는 것이다. 기도에 충실하면서 그렇게 하느님을 살아가고 하느님을 보여주는 은총의 삶에 나아가도록 노력하면 좋겠다. 그러한 은총의 삶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 청하며 잠시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