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여행-11. 자연이 빚은 최고의 걸작품 Bryce Canyon
2016, 7.27 수요일
주변을 돌아볼 여유 없이 비록 신통치 않은 continental breakfast일지라도 맛있게 그리고 포만감을 느낄 정도로 즐겼다. 식사중 외모가 특이한 아미쉬 가족과 만났는데 먼저 와 자리를 잡은 그들 옆 테이블에 앉아 서로를 의식하며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의자가 부족해 옆 테이블 의자를 끌어와야 했는데 그 집 아빠가 어린 딸에게 자기 옆으로 오도록 하고 의자를 우리에게 밀어주라고 하니 기꺼이 그 소녀는 아빠 지시대로 의자를 옮겨준다. 무거운 의자를 들어 옮기는 그 소녀의 얼굴이 하도 해맑아 아미쉬의 아름다운 일상생활이 가정교육의 기본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고마움을 목례로 답했다.
8시 15분 숙소인 Caravan Inn 출발. 콜로라도주 남서부 Grand Junction와 Fruita를 지나 유타주에 진입, 유타주 여행의 1번지라는 Moab 북쪽을 거쳐 최종 목적지 Bryce Canyon까지 383마일, 636km를 달릴 예정이다. 런닝타임으로 6시간 소요예정.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브라이스케년이기 때문에 아무리 보고싶은 풍광이 있을지라도 절제하며 시간을 절약해야 하는 여정이었다. 유박은 아마 여정 내용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두고 봐야지.
이동 중 아침에 만났던 아미쉬 이야기가 화제였다. 유박이 아미쉬 중에서도 보수적인 사람들은 이동시에도 직접 운전을 하지 않고 고용해 운전하게 하며 그 흔한 셀폰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조금 개화된 아미쉬는 전화기와 운전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난 17년전 일리노이주 Champaign에 머물 때 미국인 튜터와 함께 아미쉬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에 옛 기억이 생각났다. 그들의 생활을 한편으로 많이 동경해 왔는데 유박이 그 생각을 건드려주니 잊었던 그들의 생활이 지금 더욱 바람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들은 그리도정신을 철저하게 지키되 성경이나 설교보다는 자신들의 삶을 통하여 몸과 가정을 올바르게 세워가는 종교집단. 당연히 이들은 검소함과 절제가 기본 생활철학이며 과학문명의 利器보다는 자연속에서 스스로 땀흘리고 소출을 얻는 생활을 즐긴다. 자연 속의 삶이 그들의 교회이며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여기고 있으니 그들의 소박한 생활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자전거나 자동차 등 동력에 의한 vehicles은 사용하지 않고 사진도 없이 컴퓨터도 없이 산다고 한다. 그 어린 소녀의 밝은 모습과 타인을 배려하는 행동은 바로 그런 생할속에서 나온 것들이리라. 기분이 좋다.
Rifle지역의 독특한 산의 모습이 특이하다. 붉은 흙이 층계를 이루고 단발을 한 것처럼 산등성이가 매끄럽다. 듬성듬성 땅에 얼굴을 묻은 사막 풀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하얗게 보였다. 콜로라도강을 만났다. 그 험준한 계곡사이로 Aspen에서 Rifle까지 운행되는 관광열차가 철로가 보인다. 이 철도는 과거 광산개발을 위한 철로였으나 관광과 물자이동을 위해 새롭게 변신시킨 것인데 콜로라도강을 따라 펼쳐지는 주변 경관과 더불어 잘 어울리는 관광상품이 되었다고 한다. 귀에 읶은 ‘콜로라도의 달밤’ 노래를 들으며 여행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콜로라도 강 주변 산의 모습
산 색깔이 점점 붉어진다.
콜로라도 특이한 산 모습 - 라이플 부근
Grand Mesa 터널을 지나니 콜로라도 강물이 수량도 좀 많아지고 맑다. 어느 지점에서는 보를 만들어 놓아 그 물 위에 산 그림자가 드리운다. 아름답지만 달리며 사진을 찍기에는 역부족. 곧 콜로라도 끝자락 Fruita를 지나자 곧 Utah주와의 경계가 나왔다. 빨리 달리다 보니 지나쳐 차를 돌렸다. 아무도 없다고 마음대로 돌린 위법운전이다. 시간은 오전 10시가 훨씬 지났다. Welcome!! 표지를 다시 보고자 했던 것이다.
유타주 입구에 있는 휴계소에서 여행객과 잠시 이야기 나누다.
날 사진 찍어주려는 사람이 없어 스스로 해결, 셀카로 인증 샷
곧 주계에서 멀지 않은 Rest Area에 들어갔다. 깔끔하고 상쾌한 사무실 분위기. 직원 두 분이 있었으나 나에게는 보는 시늉도 하지 않는다. 난 유타주 지도를 구하려 했는데 보이지 않아 직원에게 다가가 요구하니 자기 테이블 아래 감춰둔? 지도를 하나 무뚝뚝하게 건넨다. 아마 이것도 절약하기 위한 묘책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오면 집어가니 --- 다행이 지도 정보 내용이 좋았다. 문앞 조그만 정원에 이곳 사막에서 잘 볼 수 있는 꽃과 나무가 심어져 있고 그 앞에 명패를 꽂아 간단하게 설명을 해놓고 있었다. 유타주 웰컴 광고판 앞에서 인증샷을 하고 다시 출발이다. 11시 반. 글랜우드 스프링스에서 거의 3시간 이상을 온 것이다.
그간 차 안에서 갈증에 시달렸으나 물부족 상태, 급한 두 여대원이 물을 사가지고 왔다. 물이 이런 곳에서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 느끼고 있었다. 달리며 보는 주변은 거칠고 삭막하다. 물의 흐름을 보기 어려웠다. 유박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한무제 때의 명장 곽거병(BC140-117)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거칠고 메마른 하서주랑에서 흉노족과의 고된 전투와 피로로 부하들이 목말라 하자 작은 연못에 한 무제로부터 하사받은 귀한 술을 확 풀어 부하들과 함께 마셔 사기를 높이고 승전에 승전을 이어 갔다고. 그곳이 지금의 酒泉(감숙성)으로 불리는 곳이라는 이야기. 물론 유박은 곽거병보다 우리 대원을 더 먼저 생각하는 대장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장역할 봉사 잘해달라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었다.
유박이 재미 있는 비유를 꺼냈다. 우리 세 친구를 두고 한 말이다. 자기는 여행중 눈으로 (운전수라는 의미?), 김박은 입으로(지치지 않는 명강의 의미?), 그리고 나에게는 머리로(아마 여행기 쓸 것 계산한 것 아닌가?라는 의미?) 오늘의 밥값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유박은 손과 발(운전)로, 김박은 머리와 입(지식창고와 명강), 그리고 난 눈(사진찍느라 정신 없음)으로 재미보고 있다고 보았다. 생각이 달라 3사람 다 어느 주제에 대한 입장을 말하려면 자기가 그 중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항상 자신이 중용의 덕을 갖춘 이상적인 사람이라고 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아무도 동의가 없다. 완벽한 인간이 어렵기 때문.
운전매너가 많이 좋아졌다. 지루한 사막 한 가운데 달리기, 졸음도 올 시간이다. 다시 웃기는 이야기 하나 꺼냈다. 한국 사람들 다 아는 이야기. 유박에게 ‘국시와 국수의 차이는?’ 물으니 ‘재료의 차이가 아닐까?’ 정답이다. 그런데 그 재료가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래 국시로 만들면 국시이고 국수로 만들면 국수야! 이건 웃기는 이야기야, 재료가 똑같은 밀가루라는 말일세.’라고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뒤에 계신 미세스 유께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다가 나의 설명에서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그 내용을 크게 읽어주신다. 그리고 그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읽으시니 모두 하는 말 ‘한국 사람들, 정말 말 잘 만들어 낸다. 기가 막히게 머리가 좋다’는데 동의했지만 나는 좀 씁쓸했다. 이제 농담도 거짓말 했다간 전부 들통이 날 수 있기 때문. 이점은 우리 김박도 동의, 이제 말을 줄여야 하겠고 확실히 아는 것만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가까운 사이인데도. 무서운 아이티 세상!!.
이렇게 지루한 사막 횡단시에는 먹을 것도 가지가지 가져와야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보따리도 가져와야 한다. 물은 더 말할 필요가 없고. 노래가 빠질 수 없지만 대화가 계속 이어지다보니 들을 기회가
적다. 유박이 무슨 생각인지 갑자기 세일가스 생산과 사우디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말한다. 정치가 정말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에는 모두 동의한다. 정치가는 철학이 있고 비젼이 있어야 한다는데도 동의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정치는 어떻다? 김박의 진단과 처방이 나왔다. 부국강병과 실사구시의 실천적 지도자 발굴. 1등, 최고만 대우하는 풍조 지양. 그래서 이준보다 더 큰 인물 이상설, 안중근 못지않은 우덕순, 신라가 아닌 고구려 정신, 이런 주제가 종횡무진. 좀 무겁지만 의미 있게 오갔다.
12시 30분, 쉬어 갈 타임. 동시에 갓길에 원주민 인디언들이 보였다. 땅바닥 한쪽과 낮은 돌담 위에 자신들이 만든 전통 장신구를 펼쳐놓고 팔고 있다. 전망이 특이해 읽어보니 Black Dragon Canyon을 설명해 놓고 있는데 San Rafael Reef의 정상이란다. 주위 바위들이 검붉은 다양한 색깔로 보이는데 그건 함유된 산화철의 양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살만한 물건이 없다. 하지만 마음이 여린 우리 여성 대원들은 그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물건 사주는 것으로 표현했다. 별 쓸모없는 것들이고 돈이 나가겠지만 밉지 않았다. 낙서같이 보이지만 돌담 아래 ‘All for Love and Peace’라는 글이 울림이 있는 낙서로 보였다.
하단에 'All for Love and Peace'가 적혀 있다.
Utah주 입구 Rest Area 이후 중간 중간 특이한 경치가 보이면 여지없이 대장이 차를 멈춰준다. 우리 대원에 대한 서비스가 많이 좋아졌지만 본인도 무척 즐기고 있다. 대장은 차에서 내리면 바로 미세스 유를 모델로 사진찍기에 바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마웠다. 그러나 어떤 때는 미세스 유와 함께 어느 루트로 갈 것인지를 뜨거운 땅바닥에 앉아 상의하는 눈물나는? 모습도 보였다. 두 사람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이런 상호간의 믿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막의 경치는 사막다워야 하고 사람은 사람다워야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자연과 한데 어울리는 인간이 있다면 至高의 善일 것이다. 여기에 그런 아름다움이 깃든 곳을 볼 수 있었다. 난 종교를 모른다. 하지만 종교적 핍박을 이겨내고 정직과 성실을 핵심가치로 삼아 170년전인 1847년 7월 18개월 동안 동부의 생활터전에서 록키산맥을 넘어 서부로 서부로 무려 2,000km의 행군을 감행한 몰몬교도들의 이야기는 종교를 떠나 감동적이다. 그들이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해가며 솔트레이크로 가는 길에서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이 지점을 지나갔고 그 고난의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조그만 표지를 세워놓은 것이다.
초기 몰몬교도들은 저 황량한 벌판을 가로질러 왔다. 이 땅을 하느님의 선물로 본 것이다.
이 나무 왼쪽에 기념 안내판이 서있다. 이 나무는 그들의 고난과 역경을 알고 있을 것이다.
거칠고 삭막한 유타의 사막지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땅, 하지만 이 척박한 사막을 신께서 주신 옥토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인 그들은 어찌 보면 종교적 순교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목숨 건 행군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 것이며 그들이 밟고 지나간 자리가 쉽게 잊혀질리 있겠는가? 바로 옆에 형체만 남은 나무 한그루가 외롭게 그 사실을 증언하고 있었다. 거칠고 삭막한 이 풍경이 무더운 열기로 타들어갈 때 가슴 한편이 숨막히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이건 이곳 이 자리의 신성함에 결례를 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브라이스를 향하여 달린다. 사막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번 푸른 잔디가 있고 강물이 흐르며 푸르른 초지와 마을이 열린 곳을 보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달리는 내내 사막이랄 수 있다. 山形과 암석들의 형태는 물론 크고 작고 독특하고 이상하고, 거기에 색깔까지도 다양하다. 브라이스 진입전 주유소에서 휴식 겸 주유를 하면서 父子가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어린 아들을 강인하게 기르려는 아빠의 마음이 전해졌다. 갑자기 빨간 바위 터널이 나타났다. 브라이스케년 국립공원 입구에 다 왔다는 사인이다. 이 시각이 6시 20분, 6시간 걸린다는 거리인데 10시간 이상이 걸렸다. 이는 중간 중간에 쉼이 많았다는 것을 말한다. 여정이 즐거웠다는 증거다. 얼른 국립공원 표지앞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브라이스케년으로 달린다. 이곳은 아무리 속도를 내려해도 1차선이기 때문에 주의를 해야 했다.
아버지와 아들 - 힘들어도 가야한다.
해발 2천4백 미터가 넘는 고지대다.
트레일은 Sunrise Point에서 시작했다. 오랜 시간 차에서 시달렸지만 부푼 마음으로 뛰다시피 걸었다. 표지판에 적힌 고도가 8,015피트 즉, 2443미터다. 평범하게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그저 그런 높이이겠지 했지만 꽤 지대가 높은 곳이다. 시간적으로 해가 저가는 시간임에도 눈이 부신다. Thor's
Hammer라는 우리말로 치면 부싯망치 같이 생긴 뾰쭉뾰죽한 바위들 Hoodoo의 한눈에 놀랄 정도로 밝고 화려한 이 경치가 발아래 펼쳐진다. 모두 입이 벌어지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와 — 이럴 수가 -- . 그저 사진기에 몰아 담기에 바쁘다. 함께 기념사진 찍는 것도 잊어버렸다. 각자 개인플레이. 벌써 김박과 유박은 저만큼 떨어져 있었다.
그냥 보시라. 설명이 오히려 구차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갑자기 내 사랑?하는 아내가 Queens Garden Trail을 조금 내려가다 말고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허허 큰일났네! 이 좋은 풍광을 구경 못하고 주저앉아? 이곳 해발 고도가 높기도 하지만 내려가는 초입 길이 미끄럽기도 하고 조금은 좁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서움과 고산증을 느낀 것이다. 아내를 포기하느냐 아니면 지키느냐? 절체절명의 순간, 과감하게 아내를 내버려두기로 했다. 서울가서 혼나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내가 ‘내가 알아서 돌아갈테니 당신은 같이 가세요!’라고 한다. 어려운 순간에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순간적으로 ‘그래 올라가 좀 쉬구려. Sunrise Point에서 만나!!‘ 라고 했지만 너무 쉽게 보낸 것 같아 찜찜했다.
한참 아래로 내려간 유박 내외와 김박을 쫒아가느라 조금 빨리 걸었더니 나에게도 약간의 어지러움이 왔다. 잠시 앉아 쉬니 곧 회복된다. 금방 경치에 취해 아내에 대한 걱정은 다시 생각나지 않았다. 좌우의 기기묘묘한 바위 형태며 색상이며 햇빛 방향에 따른 음양의 농도가 다르고 또 멀고 가까운 풍경이 오묘한 조화를 빚어내니 샷터만 눌러대는 형국이다. 2시간여 실컷 뾰쭉뾰쭉한 후두(hoodoo)를 비롯한 이곳의 이색적인 장관을 감상했다.
Navajo Loop Trail로 이어지는 퀸즈 가든 트레일 구간의 끝에 왔다. 난 여기서 아내를 만나러 약속한 곳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앞으로 계속 전진하려던 대장 부부와 김대감도 아쉽게 발을 돌려 날 뒤따라 왔다. 고마웠다. 친구를 혼자 떼어놓고 갈 수 없다는 의리가 앞선 결정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 지점에서 나바호루프 시작점(여기에 Sunset Point가 있다)까지 가려면 1.4마일 즉 2km 이상을 더 가야하므로 구경하며 사진찍기를 고려하면 2시간 이상 소요될 것이다. 시간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빨리
Sunset Point의 장관을 보아야 했고 남는 시간에 역으로 나바호 루프를 걷기로 했다.
Sunset Point에 돌아오니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반가운지--- 기운이 살아난 것이 고맙기까지 했다. 이미 혼자서 이곳과 나바호 루프를 다녀왔다고 했다. Sunset Point에서 바라본 브라이스는 2시간전 Sunrise Point에서 보았던 풍경과는 또다른 느낌이 왔다. 해가 사선으로 비추니 그 음양이 더 강하고 짙었다. 색상도 훨씬 붉어지고 후두 정상부분과 기둥 아래쪽은 전혀 다른 질감을 나타내고 있다. 자연의 조화치고는 경이롭다 할 것이다. 1초1초 시각에 따라 그 휘황찬란한 불빛이 후두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음영이 점점 크게 드리워지기 때문이다. 다시 나바호 루프로 내려간 세 친구, 가까이서 보면 또 새로운 경관에 이끌려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각인데 자꾸 브라이스 심장부에 빠져들다 결단을 내리고 되돌아 나왔다. 아직도 시야가 좋았다. 아마 이 지대가 2,438m의 고지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곧바로 남쪽의 Inspiration Point로 달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난간에 매달려 자연의 신비를 만끽하고 있다. 편하게 사진을 찍을만한 공간이 생기지 않는다. 이때 꾀를 내 포즈를 잡고 하나 둘 세고 있는 카메라맨에게 내가 찍어줄터이니 함께 찍으라고 하면 그도 매우 좋아한다. 찍어준 다음 그 자리를 차지하는 수법이다. 아무리 우스개 소리로 ‘방 빼!! 방 뻬주라니까!!!’ 해도 알아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하나마나 한 소리. 우리끼리만 아는 말. 이곳의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몇 억년 지질변화, 기후변화, 몇 천년 바닷물 융기 같은 과학적 숫자로 설명하면 신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받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입 다물고 침묵하는 것이 낫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자연이 억겁에 걸쳐 이뤄낸 업적을 감히 몇 가지 숫자로, 검증된 과학으로 다 설명할 수 있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침묵이 오히려 더 올바른 해석일 것이다. 여기서 나는 칼릴 지브란이 ‘지혜’와의 대화에서 “지혜여, 나는 누구입니까?”라고 물으니 그 ‘지혜’가 “인간아, 너는 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도 인간의 생각으로 내세의 비밀을 알려 했구나. 무지한 탓이로다”라고 답하더라는 글(<지혜여, 나는 누구입니까?>)이 생각났다. 동시에 ‘자연 속에서 삶의 교훈을 배워라. 자연은 아직 보여 줄 단계에 있지 않은 사물을 결코 빛 속에 드러내지 않는다’.는 예수회 신부이자 작가이며 철학자인 Baltasar Gracian(1601–1658)의 가르침(<세상을 사는 소중한 지혜>도 들렸습니다. 한마디로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Chuk Rofer의 시 'I Listen'에서 하늘이 하는 말, '마음을 열어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쳐놓은 경계와 담장을 허물어라. ----' 그리고 구름이 하는 말, '----.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되라.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 되라. --- 울고싶을 때 실컨 울어라.'라는 가르침이 저절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이다.
이곳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는 Bryce Point는 어두워지고 또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그곳에 간다면 아마 여기서 보다 더 큰 영감어린 감회에 젖을 것이 뻔하다. 여기서 본 것만 해도 과분한 감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너무 늦어 길 잃으면 ‘너, 그럴줄 알았다!’는 소릴 들을지도 모른다. 대원 모두 사기가 높아졌다. 워낙 큰 자연의 경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녁은 정말 잘 먹자고 다짐했다. 시간이 급했다. 9시에 모든 가게가 문을 닫기 때문. 가까스로 9시1분전 도착한 음식점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이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욕심 많은 여행객이니 그럴 수밖에.
그러나 어찌하랴. 식당에서 9시 40분 출발해 오늘의 숙소 Bryce & Zion Inn에 도착한 시각은 한밤중인 10시 20분. 미등 하나 켜진 사무실 출입구가 잠겼다. 아무리 문을 두들겨도 인기척이 없다. 주변은 조용하고 불빛도 모텔 광고판뿐이다. 다들 놀랐다. 유박이 전화를 부산하게 걸어본다. 하지만 신호만 가지 받지 않는다. ‘세상에 이런 호텔도 있나?’라고 불평 겸 원망을 해보지만 속수무책이다. 오늘 저녁을 어디서 잔다? 참 막막했던 순간. 그 순간, 내 집사람이 ‘여기 보세요. 여기 메모와 열쇄가 있는 것 같아요!!‘한다. 정말 그 조그만 봉투 속에 열쇄가 있었다. 이 발견을 계기로 내 안사람이 우리 대원의 중요한 한 사람이라는 것이 입증되어 기뻤다. 사실 책크인 시간을 무시하고 저녁 10시가 넘어서도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을 했던 우리의 안이한 자세가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대원 모두가 잘못이었다.
그러나 전화도 안받고 카톡도 안되고 --- 이건 고급호텔이라면 아니겠지? 사실 미국이라지만 도시를 벗어나면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고 사람들도 근무시간 외에는 직장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진다. 위기를 넘긴 하루. 다음부터는 일찍 좀 집에 들어가자고 --- 오늘 마지막이 조금 어수선 했지만 기쁨은 두 배, 세 배였다. 오늘 저녁은 바로 잡시다.
길고 긴 꿈나라로 ---
어느쪽 길로 가야 할 지를 놓고 고심하는 유대장 부부
한 가운데 물이 보입니다. 사막 한 가운데 --- 바로 생명수입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비친 브라이스 국립공원 진입 전 자연 도로터널
선라이스 포인트에서
카메라도 브라이스의 휘황찬란한 아름다움에 놀라 정신을 잃었습니다.
카메라가 시원찮아 귀중한 사진이 이렇게 --- 망신입니다.
좋습니다. 지금처럼 항상 -----
첫댓글 큰복 받으신 분들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이번 유타주는 대학 과동기 한명이 졸업 후 미국 유학가서
유타주에서 공부하고 직장을 가졌고 퇴직후 부인과 함께 3년전 고국 방문 했었는데
몰몬교 봉사차 왔었습니다.
신촌에 있는 자기들 센테에서 2년여 봉사활동만 하다가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그곳 얘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밤 늦도록 사진이며 수정해야 할 부분 지적해 주심 고맙고 감사할 뿐이오. 종교를 떠나 몰몬의 브리검 영을 필두로 한 대이동이 없었다면 미국의 서부개척과 문화다양성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타주 - 사람 살만한 곳.
다시 가고 싶은 브라이스 캐년, 인간으로서는 빚을 수없는 아름다움, 우리가 그 경치를 구경하며 대화를 나눈 적있지? 경치가 어때 물어보면 한번 가봐. 그 말 밖에 할 수없다고...나바호 트레일 에서 본 저 먼곳은 꼭 로마 궁전으로 성벽을 친 것처럼 보이고...돌아올때 정말 발걸음이 안 떨아지더군.언제 한 번 더 가보세나. 이번에는 Salt Lake City까지 비행기로 가서 렌탈 카로 구경하면 될것같아. I-70 Highway 에서 US 89로 들어 올때 길 위에서 다람쥐를 치어 죽인 것이 마음에 짠 하더라고...지금까지 생명을 살리기만 했는데 그게 내가 죽인 첫 생물이었던 것 같아. 길을 건너다가 무슨 생각기 들었던지 중간에서 다시 돌아 가다가
치어 죽었지...
정말 다시 가봐도 좋을 것이야. 트레일 돌아보면 더욱 좋을 것 같아. 말이 나올 수 없는 아름다움.
다람쥐 이야기는 왜 꺼냈어? 우리 함께 마음 아파했잖아? 혹시라도 안좋은 일이라도 --- 하면서.
그 다람쥐 운명이라지만 그 녀석이 끝까지 우리 안전을 지켜준 것 아니겠어? 명복을 빌자고 -- 다시 --
Bryce Canyon 에서 우리가 보았던 모든 것을 Hoodoo (한국어로 굳이 번역 하자면 바위 기둥) 라고 부르는데 사실 브라이스 캐년은 캐년이 아니지. 캐년이란 폭우가 지나가고 큰 강물이 생기면서 암벽이 거대한 물의 힘에 의하여 깎여져 생긴건데 이런 후두 (Hoodoo)는 위에서 부터 바위가 갈라지고 거기에 물이 스며 들고 하면서 세월이 지나 반복되어 이런 바위 기둥이 형성된거지...그래서 다른 곳보다 더 특별하다고 하더군. 아무리 사진 기술이 좋아도 그걸 다 못 담을 것같아. 그래도 전교수의 솜씨가 좋아 많이 근접했네.
사진 이야기 꺼내지 마소. 그것 때문에 망신살이 뻗혔어. 잘 안나온 사진의 책임을 모두 사진기에 돌렸지만 내 실력 뻔하지않아. 폼만 잡고 -- 달리는 차 안에서 찍는 민첩함은 그래도 있잖아??
11회차 읽었습니다.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회장님!
브라이스 케년의 아름다움이 저녁 노을과 함께함을 잊을 수 없다.
창조주께서 빚어낸 놀라운 솜씨에 경탄할 뿐 ~^^
자연이 빚어낸 위대한 예술작품, 저절로 ---- --- 공감해줘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