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백성의 표지
이사야 56: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도다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와 같이 하는 사람, 이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로 바벨론에서 고토로 돌아온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3절 이하에서는 만약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자, 하나님과 연합한 자라면 비록 그가 이방인이라도, 고자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기꺼이 허용된다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서문이 되는 1절과 2절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백성 된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1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도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르시는 명령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정의를 행하며 의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구원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유다 백성들에게 고토로 돌아갈 것이라는 약속을 끊임없이 해오신 하나님은 이제 그들이 고토로 돌아오는 해방의 은혜, 구원의 은혜를 입었으니 이제 그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은 여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정의란 무엇입니까? 히브리 원문에 정의는 ‘미쉬파트’로서 잘, 잘못을 가리고 판단을 내려 악을 행한 자에게는 심판을 행하는 사법적 정의를 가리킵니다. 우상 숭배와 거짓과 포악과 불효와 사회적 불의함과 착취와 부도덕함을 응징하고 의로움을 바로 세우는 일을 정의를 지키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정의와 함께 소개하는 명령, “의를 행하라”는 말씀의 ‘의’란 무엇입니까? 이것은 히브리 말로 ‘쯔다카’로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언약을 지켜 행하는 것으로서 사회의 뒤떨어진 가난한 자들, 과부, 고아, 나그네를 돌보며 고난당한 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정의는 사회의 불공평을 막아내고 악이 창궐하지 못하게 하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으며, 의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선하심을 본받아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펼치는 하나님의 의중이 담겨 있습니다. 이렇듯 정의와 의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어서 개역성경에서는 보통 ‘정의’는 ‘공평’이라는 단어를 썼고, ‘의’는 ‘공의’라는 단어를 썼는데, 지금은 ‘정의’와 ‘공의’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합니다. 개역 성경의 의미가 좀 더 본래적 취지에 맞게 번역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통 성경에서는 이 두 단어가 함께 쓰이곤 합니다. 그래서 이 두 단어는 하나님이 주의 백성들 개인이나 그 공동체 전체에게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삶의 자세요 지향하는 사회의 근본 정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여 바벨론에 팔아넘기시는 이유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밝히신 이유도 그들이 정의와 의를 저버린 까닭이라고 이사야 5:7 말씀에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가꾸고 포도나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빼어내어 포도원에 심고서 거름도 주고 물도 주고 망대도 심고 술틀도 파는 등 온갖 수고를 했는데 시간이 지나 그 포도나무에서 좋은 포도 열매를 맺기를 기다렸는데 들포도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된 포도나무에서 정의의 열매를 바랐는데, 포학의 들포도 곧 압제와 고통을 안겨주는 불의와 학대의 열매를 맺었으며, 의의 열매 곧 자선과 나눔과 사랑의 열매를 바랬는데, 도리어 고통 중에 시달린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는 눈물과 하소연의 들포도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불의와 탐욕과 학대와 거짓과 술취함과 방탕 대신에 의로움과 진실함과 거룩함의 열매를 바라시며 탐욕을 부려 자기 혼자 살려고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착취하거나 무관심하거나 멸시하는 일을 하는 대신에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 함께 살아가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모스서 6:12 말씀에서도 선지자가 그 동시대 사람들에게 개탄하기를
“너희는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며”
라고 고발하였습니다. 또 아모스서 5:24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라고 호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 포로 생활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온 주의 백성들은 이제 고토에 돌아오면 바로 이러한 하나님 백성다움의 삶의 모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당연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다시 고토로 돌아온 주의 백성들은 은혜에 합당한 고귀한 책임이 주어집니다. 그들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마땅히 불의를 물리치고 정의롭고 공정하고 공평한 삶을 살아가며 약한 자들을 도우며 세우고 품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언약적 의를 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난당하신 여호와의 종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과 죽음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더 큰 은혜를 입었으니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주의 공의와 주의 의를 힘써 지켜 행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세상 사람들은 탐욕을 부리며 세상 권세를 부리며 약한 자들을 짓밟으며 자기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을 최고로 삼고 몰두하고 있지만 그것은 결국은 하나님의 미움을 받아 패망의 길, 심판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 넓은 길로 갈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백성의 지극히 복된 축복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고상하고 복된 길 곧 하나님의 정의와 의를 힘써 행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와 같이 하는 사람, 이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
앞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삶의 태도를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러한 삶의 모습을 두 가지의 특별한 일을 여기서 재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식법적 행위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주 되심과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해내신 것과 자기 백성들을 돌보와주신다는 것을 믿는 신앙을 고백하는 가장 중요한 표지입니다. 육 일 동안 일하며 하루는 쉬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돌보아주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성일이기 때문에 안식일 동안 세상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묵상하면서 지내는 일이며, 육신적으로도 하루를 온전히 쉬고 자기 주변의 종들과 가축들과 종들과 나그네들도 함께 쉬도록 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중요한 신앙적 믿음을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표지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함으로 안식 후 첫날을 구별하여 함께 모여 주님의 죽음과 부활과 우리의 구원하심을 인하여 찬양하며 경배를 드리면서 하루를 온전히 쉬면서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온전한 주일 성수를 힘쓰기 바랍니다.
또 한 가지는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떨면서 사랑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모든 종류의 악을 싫어하여 일체 스스로 금합니다. 그래서 잠언 3:7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여호아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고 하였습니다. 욥기 28:28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하나님 백성들이라면 하나님께서 심히 싫어하시는 모든 종류의 악에 대하여 일체 싫어하며 멀리하는 자가 됨이 마땅합니다.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전서 5:22 말씀에서 가르치기를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고 하였으니, 어떤 영어 성경에서는 이것을 두고서 “악은 그 힌트(hint)마저도 피하라”로 번역한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악을 암시해주는 것까지도 조심하여 물리치고 가까이 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자가 됩시다.
그렇게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의식법규의 대표격인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고 내적인 모든 종류의 악과 모든 악의 암시적인 것까지도 싫어하여 피하려고 애쓰는 사람, 그것을 견고하게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에 대하여 하나님은 2절 후반부에 ‘복이 있느니라’고 선언하십니다. 원문은 ‘복이 있도다’라는 이 말씀이 경탄조의 첫 번째 말로 나옵니다. 그래서 원문의 어조를 살려 말한다면,
“복되도다 이와 같이 행하며 이런 일을 굳건한 마음으로 행하는 사람이여! 곧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는 사람이여!”
그렇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정의를 지키고 의를 행하고자 하며 안식일을 몸부림치며 지키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려고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자가 되었기 때문에, 여호와의 종 우리 구주 예수님의 희생적 사랑으로 말미암아 다시는 빼앗길 수 없는 지극히 크고 영광스러운 구원을 얻은 자 되었기에 이제 불의와 타협할 수 없고 남을 해치는 일을 할 수 없고 남을 속이는 일을 할 수 없고 양심과 신앙 앞에서 합당한 진실함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늘 지켜 행하고자 애를 쓰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만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다른 이들을 돌아보고 약하고 뒤처지고 실패하고 상처 입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한 역량을 다해서 돕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기도해주는 삶을 살아가고자 힘을 쓰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기쁨으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일체의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고자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벨론의 칠십 년의 노예 생활을 은혜로 청산하게 하시고자 고레스를 세워 그 포악한 나라 바벨론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기쁨으로 안전하게 춤추며 돌아가도록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보답하는 삶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종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가 범한 지난날의 온갖 죄악들과 우리 위에 드리웠던 그 무서운 저주들과 사망과 영벌의 무서운 형벌로부터 건져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은혜에 응답하는 성도의 마땅한 삶의 자세인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 백성의 표지입니다. 이러한 성도의 변화된 행실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온전히 드러냄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거저 받은 은혜를 빛나게 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