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 아까울 만큼 예쁜 음식을 앞에 두면 음식도 미술 장르의 한 갈래가 아닌가 싶다. 절묘한 색채대비에서는 맛보다 먼저 멋에 빠져든다. 비례, 조화, 리듬감을 느끼게 해주는 음식을 만나면 감탄과 함께 빼어난 조형작품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할 수만 있다면 ‘작품’들을 먹지 말고 영원히 두고 봤으면 좋겠지만 음식으로 태어난 운명을 피해갈 순 없다. 짧은 순간 아름답게 태어났다가 사람의 입 속으로 사라지는 음식에는 대체로 일식과 양식이 많다. <비스트로 이안스>는 20년 동안 일식과 양식을 조리했던 오너 셰프 김이안(41) 씨가 손님들과 만나는 곳이다.
곰삭은 한국형 양식, 술을 부르는 메뉴들
김씨가 초년병 시절에 일했던 곳은 일식 주방이었다. 그러나 생선 자를 때 눈 마주치는 게 힘들었다. 게다가 긴장해 경직된 생선살에 칼날을 밀어 넣을 때 손에 와 닿는 느낌도 싫었다. 얼마 뒤 일식에서 양식으로 조리실을 옮겼다.
오랫동안 양식당에서 일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양식을 만드는 자신은 한국인이고, 자신이 만든 양식을 먹는 사람도 한국인이며, 양식에 들어간 식재료 역시 한국 땅에서 나온 것들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만든 양식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양식의 조리기법이나 식재료를 금과옥조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오히려 홀가분해졌고 요리도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었다. 전 세계에 없는 자신만의 독창성을 발휘한 음식을 맘껏 창작했다. 그렇게 김씨의 동도서기(東道西器) 양식이 탄생했다. 그의 양식은 한국 음식문화가 깃든 ‘곰삭은 양식’이다.
처음엔 코스요리 위주로 메뉴를 짰는데 손님들이 부담스러워했다. 손님 입장에서 먹고 싶지 않은 음식도 코스에 포함되었는데 가격은 비싸니 주문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음식을 통한 손님과의 소통을 원했던 김씨는 일품 요리 위주로 메뉴를 바꿨다. 주인이 팔고자 하는 메뉴보다 손님이 먹고자 하는 메뉴 위주로 정비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메뉴판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장볼 때 좋은 식재료를 구입했거나 손님의 추천 메뉴를 즉석에서 조리해내곤 한다.
메뉴판 안팎 각 메뉴의 개성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딱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먹다 보면 술 생각이 난다는 점. 이른바 마리아주를 부르는 메뉴들이다. 음식이 맛있으면 저절로 술 생각이 나게 마련이라는 게 주인장 설명이다. 그래서 이 집은 저녁 6시 이후에만 영업을 한다.
주체적으로 해석한 한국형 파스타와 갈비튀김
김씨는 유미주의 조리사다. 바게트 위에 하몽 조각을 조심스레 얹고, 세필로 집중해서 붓질을 해가며 치즈가루를 털어내는 모습은 예술가 그 자체다.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창작해 낸 것은 IAN’S 무 파스타와 갈비튀김, 그리고 ‘말린 토마토 쳐트니 이베리코 하몽 브루스케타(이하 브루스케타)’라는 긴 이름의 메뉴였다.
IAN'S 무 파스타(2만원, 회원가 1만6000원)는 대표적인 한국형 양식이다. 무, 호박, 바지락 등 재료만 봐도 한국 냄새가 물씬 풍긴다. 재료들을 넣고 한참을 팬에서 볶듯이 치대고서야 접시에 옮겨 담았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눌어붙기 때문에 조리사의 팔 힘으로 완성하는 요리라고 한다. 파와 적고추, 김 가루를 고명으로 얹었다.
맛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파스타 특유의 맛과 식감을 내면서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 영락없는 한식이다. 게다가 바다의 향기가 감돈다. 치즈를 넣지 않아 느끼하지 않으면서 바지락의 감칠맛도 입을 즐겁게 해준다.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면 금상첨화! 하우스와인은 9000원이다.
갈비튀김(500g 2만7000원, 회원가 2만1600원)은 국내산 흑돼지의 갈비를 쓴다. 짝갈비를 들여와 일일이 발골한다. 손님이 뼈를 잡고 먹을 수 있도록 수작업으로 뼈의 한 쪽 끝을 갈빗살 밖으로 빼낸다. 갈비를 하나씩 잘라내는 작업이 끝나면 고기에 작은 구멍을 낸다. 천공작업 후 과일즙에 담가 장시간 재둔다.
갈비튀김을 찍어먹는 소스는 제주산 멜젓에 부재료를 넣어 만들었다. 소스 역시 갈비처럼 오래 발효시켜야 제 맛이 난다. 튀김옷은 바삭한 식감을 내기 위해 두 번 반죽한다. 초벌 반죽 후 숙성시킨 뒤 두 번째 반죽으로 갈비에 발라 튀겨낸다.
튀겨낸 갈비튀김은 마치 중식 같은 느낌이 든다. 갈빗살을 뜯으면 고소한 튀김의 육질 맛과 함께 달콤하면서 매콤하다. 육질은 씹을수록 부드럽다. 함께 내온 양배추, 비트, 당근 등 신선 채소를 곁들인다. 이들 채소는 경기도 광주에서 김씨 부모님이 직접 농사지은 것들이다. 갈비를 잡고 뜯으면 시원한 맥주 생각이 절로 난다.
시간과 공력 많이 들어간 초밥 스타일의 바게트
외모(?)에 비해 손이 많이 가고 공을 들인 메뉴가 브루스케타(1만9000원, 회원가 1만5200원)다. 얼핏 보면 바게트 위에 고형 치즈를 갈아 얹은 단순한 음식이다. 그러나 핵심 식재료인 토마토 쳐트니를 만드는 일부터 예사롭지 않다. 일단 방울토마토를 잘게 잘라 1주일 정도 말려 페이스트로 만든다. 섬유질과 당 성분만 남으면 아주 적은 양으로 줄어든다. 이걸로 쳐트니를 만든다.
완성된 토마토 쳐트니를 바게트에 바르고 그 위에 얇게 저민 이베리코 하몽을 올린다. 마지막으로 파마산 치즈 가루를 올린 뒤 실파를 잘게 잘라 고명으로 얹는다. 나무판 바닥에 떨어진 치즈 가루는 가는 붓으로 조심스럽게 쓸어내면 비로소 완성! 마치 눈이 내린 듯하다. 일종의 바게트 초밥이다.
한 입 베어 물면 치즈와 하몽, 그리고 토마토의 풍미가 한꺼번에 밀려온다. 역시 와인과 잘 어울리는 요리. 이 집은 레드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비롯, 스파클링, 위스키, 보드카, 소주(증류주), 맥주 등 웬만한 주류는 다 갖췄다. 와인 콜키지는 병당 2만5000원(회원은 무료)이다. 서울 서초구 언남1길 3, 02-6449-6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