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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행할 바를 아이에게 가르치라.
성경본문 : 잠언 22: 6
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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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목사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잠언 22장 6절에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어린아이를 기르는 부모는 농부의 마음으로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은 농부의 정성을 먹는 것이지 알곡 그 자체를 먹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가 농사짓는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농부의 지극한 관심과 사랑과 헌신적인 돌봄이 없이 충실한 결실을 가져 올 수가 없습니다.
자식을 낳아서 기르는 정성이 농부의 마음과 같지 않고는 훌륭한 자녀를 성장시킬 수가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옷과 살 곳만 제공하면 부모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오늘날 비행청소년들을 양산하게 된 것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했는데 무엇이 마땅히 행할 것입니까?
1. 자녀의 영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이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자녀의 영혼문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죄중에서 잉태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그 자손들은 이미 뱃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으로 잉태되고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면 어린아이라도 영원히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8장 21절에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배울 때부터 예수님의 구원과 하나님에 대한 경배를 마땅히 가르쳐야 합니다.
누가복음 18장 16절에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예수님께 오도록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하늘나라가 예비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계란과 같습니다. 수정되지 않는 계란은 겉모양은 같아도 결코 병아리가 되지 못합니다.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어린아이 때부터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지 아니하면 그 영혼은 죽은 영혼입니다. 버림받은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지능은 네 살 때 이미 90% 이상이 형성이 되고, 한살부터 세살 이내에 어린아이의 정신 발달은 이미 결정이 되고, 여섯 살 이전에 인격적인 토대가 형성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예전에는 세 살이면 천자문을 가르쳤습니다. 어린 아이는 이미 세 살이면 거의 모든 것이 완성되어 가는 단계입니다.
정신적 발달이 세 살이면 이미 결정되고 여섯 살이면 일생의 인격이 결정되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어릴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멸망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슬람교는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나온 종교입니다. 이슬람교도들의 코란은 아담과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과 모세와 아론과 세례요한과 예수님도 선지자로 다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고 하나님이 그대로 하늘로 데려 올라가시고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가룟 유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부인합니다. 보혈을 부인해 버리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이번에 요르단의 암만대학에서 성회 첫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보혈이 아니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하니까 음향조정실에서 마이크의 스위치를 꺼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에 대한 말씀은 못하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의 역사인 것입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도 없습니다. 보혈의 역사 없이 누가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까? 이슬람교는 너무나 기독교에 가깝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부인하고 하나의 선지자로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부인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2. 삶의 순서를 분명히 가르쳐라.
다음으로 어린아이에게 삶의 순서를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인간의 생활에는 반드시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혼돈하면 크게 낭패하게 됩니다. 잠언 1장 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온갖 과외를 다 시키지만 지식이 근본이요,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가르치지 아니하면 그 자녀의 인생은 결국 부패하고 낭패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은 살리는 진리와 지식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노벨상 수상자의 3분의 1이 넘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인류에 공헌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성경을 배웠으며, 구원은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에서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받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또 뉴욕 중·고등학교의 교사 중 절반이 유대인이고, 하버드, 스텐퍼드, 예일대학의 의과대학, 법대 교수의 절반이 유대인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을 받아 들이면 그것이 지혜의 근본이 되고 지식의 근본이 됩니다. 말씀보다 위대한 지혜와 지식의 교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관해서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인 주일에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문명의 흥망성쇠는 도전과 응전에 의한 것인데 유대민족의 생존은 도저히 역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고 온 세계에 뿔뿔이 흩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성을 유지하고 1948년 5월 15일에 나라로서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세계 어디에 흩어져 있어도 구약 성경을 통해 민족성을 유지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곳에 가든지 토요일 안식일을 준수했는데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들은 나라 없이 2천년동안 유랑하는 민족이었지만 구약 성경을 공부하고 토요일 안식일을 지켰기에 온 세계에 흩어져 수없이 짓밟히고 핍박을 받아도 국가와 민족을 형성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귀중히 여기고 성수 주일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복 받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 예배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가정은 또 하나의 작은 천국이요. 가정 예배는 하나님과 만남의 시간입니다. 가족이 모두 모일 수 있는 시간에 가능한 아버지를 중심으로 예배를 인도하고 가족끼리 교제를 나누는 기회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나눠줄 가장 큰 유산은 제물도 아니고 이 세상 학력도 아닙니다. 제물과 세상 학력은 시간이 지나가면 다 사라집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아들 예수를 믿는 이 신앙을 유산으로 남겨 주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물질과 하나님 섬기는 일을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십일조를 가르쳐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가르치면 늙어도 거기를 떠나지 않습니다. 물질이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자 록펠러는 여섯 살 때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아 십일조를 드린 이후로 아흔 두 살이 되어 죽을 때까지 십일조를 도적질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국 최대의 부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자인 콜게이트는 어린시절 비누 공장 직공으로 일하면서도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 결과 콜게이트라는 위대한 기업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예물을 드릴 때 부모의 손을 빌리지 말고 고사리 손이라도 직접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50장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감사 제물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임하게 한다는 것을 분명히 체험하게 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섬기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를 먼저 생각하고 택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가 있을 때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생각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 초기 건국 이념은 청교도 사상에 기초한 사상이었습니다. 교회를 먼저 짓고 후세 교육을 위해서 성경 학교를 먼저 세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 예일대학, 프린스턴 대학 등이 모두 성경 학교로 세운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복을 주어서 세계적인 교육 기간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지폐에는 “인 갓 위 트러스트(In God we trust)”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많이 타락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갔지만 그래도 근본 사상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흐르고 있습니다. 어린아이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르쳤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이라는 문화가 존속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택하고 세상 나라를 먼저 택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먼저 택하고 세상의 정의를 먼저 택하지 말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2장 6절에서 9절에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마땅히 행할 바를 가르치면 거기에서 지혜와 지식과 총명을 얻습니다. 미국 교육을 보면 1960년대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때 공립학교에서 기도와 성경 공부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한 뒤부터 신앙 교육을 소홀히하고 세상 학문에 치중했습니다. 그 결과 청소년들이 타락하고 대도시마다 범죄율이 급증하게 된 사실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미국의 도덕적인 타락은 공립학교에서 기도하는 것과 성경 공부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한 다음부터입니다. 교내에서 총기 사건이 일어나고, 젊은이들이 마약 중독과 도덕적인 부패와 타락이 일어난 것입니다. 때문에 자녀들에게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도록 가르치고 반드시 그들에게 십계명부터 외우고 인생을 살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3.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쳐라.
기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교통입니다. 사람과 사람만 이야기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그 다음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골로새서 4장 2절에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기름 부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 나중에는 데릴라와 부정한 관계 때문에 파멸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았습니다. 엘리 대제사장 때 한나라는 여인이 아들을 주시면 평생 주님께 바치겠다고 기도했는데 그 응답으로 사무엘이 태어났습니다. 사무엘이 젖을 떼자 한나는 그를 엘리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하여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성소를 지키며 밤에도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이스라엘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신앙으로 이기는 지도자로 쓰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5절로 18절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게 되면 평생토록 성령의 도우심으로 크면서 세상과 걸음을 걷더라도 주님 안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소원의 응답을 받고 도움을 받는 길이 기도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고 하나님의 도움을 청하는 길을 가르쳐야만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변화를 가져다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와 세상의 길을 이기는 길도 기도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어린 아이에게 가르쳐야 됩니다.
요한일서 5장 4절로 5절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무엇으로 정욕을 제거하고 세상을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초립동 다윗에게 곰과 사자는 가공할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알고 믿었기 때문에 용기 충천하여 곰과 사자를 이겼고 훗날 골리앗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는 거대한 유혹과 죄악의 곰과 사자들이 덤벼들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에 더구나 젊은이들을 짓누르는 교육 제도, 입시제도는 마치 골리앗과 같습니다. 이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고통을 젊은이들이 어떻게 이기고 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기도함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영화와 만화, 음악, 오락물 등 얼마나 많은 부패와 폭력이 홍수처럼 젊은 이들을 휘몰아쳐 가고 있습니까? 이 무시무시한 세상을 이기고 나갈 수 있는 길은 부모님들이 기도해 주고 그들에게 기도의 길을 가르쳐 주는 길 밖에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매일 이기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과 환경의 변화를 가져오는 유일한 길이 기도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폭력과 인간의 힘이 아니라 기도의 힘으로 이웃과 환경이 변화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기록했는데 이 변화는 마음에 예수를 믿고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함으로 성령이 새롭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4. 사랑의 중요성을 가르쳐라.
어린 자녀에게 사랑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과 돈을 사랑하면 파멸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몸에 체득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사실이 영혼에 깊이 박혀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 16대 대통령인 링컨은 가정이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 밖에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성경을 열심히 교육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아홉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링컨에게 ‘사랑하는 아들아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고 그 계명을 지키기 바란다’라고 유언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유언을 따라서 일생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켜서 정직한 사람이라는 소문이 났습니다. 결국 미국의 16대 대통령이 되고 노예를 해방시키는 위대한 역사를 이룩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또 부모를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서 3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는 것이 윤리와 도덕의 근본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아니하면 선생도 존경하지 아니하고, 선생을 존경하지 아니하면 사회 지도층도 존경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확실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들이 잘 되고 하나님께 복 받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 사랑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9절에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로마서 12장 10절에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은 이웃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이 우리 자신을 사랑하도록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지만 자기를 어떻게 사랑합니까? 이웃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이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 사랑은 자기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 사랑, 나라 사랑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자연을 보존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자연이 죽으면 우리도 죽습니다. 한강이 죽으면 우리는 물도 못 마시고 다 죽습니다. 한강에 물고기가 놀아야 우리도 살지요. 산천에 새들이 놀아야 우리가 살지요. 나무가 다 없어지면 온난 현상이 생기고 탄산가스가 많아져서 숨을 쉴 수 없게 되고 결국 죽습니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꽃 한 포기, 풀 한 포기 그리고 생물들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의 생명을 부요케 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해서 나를 강하게 하는 것이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기가 대우받고 살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어린 아이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나라를 비방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터넷에 보니까 부산의 한 고등학교 학생이 일본을 찬양하고 ‘대한민국은 일본이 속국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망한 나라다’라고 썼는데 큰 충격을 느꼈습니다. 어떻게 대한민국 고등학교 학생이 인터넷에 일본을 찬양하고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한 민족을 비애하고 욕하는 이런 젊은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치욕스럽기 짝이 없으며 이것은 부모가 교육을 잘못 시켜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영혼의 문제와 신앙 생활의 문제만큼 일생과 영생에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마음에 확실하면 일생동안 어떤 일을 당해도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일생동안 누릴 수 있고 영생토록 누릴 수 있는 제일의 재산이 신앙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 3절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허락하신 기업인 자녀, 잘 키워 놓으면 여러분 상급 중에 제일의 상급이 될 수 있는 자녀들을 마땅히 행할 길로 가르치는 부모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