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8(금)_사37.1-20_네가 신뢰하는 하나님
시작기도.
사랑의 주님, 나는 무엇입니까? 죽어있는 자 입니까? 나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말은 입술에서 나오는 말 뿐인 것 같습니다. 주님, 나의 노력 나의 힘으로 아무리 거룩해 지려해도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주님, 오직 주님만을 의지합니다. 이시간 주의 보혈로 나의 죄를 씻어 주옵소서. 주의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해묵상.
랍사게가 히스기야에게 항복을 요구하며 이스라엘을 능멸하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을 내뱉습니다. 이 말을 들은 히스기야는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찢습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옷을 그냥 벗어 놓은 것이 아니라 '찢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상징적으로 세상의 옷을 다시는 입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단을 의미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역시 날마다 자신의 옷을 찢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 옷은 죄를 지은 후 우리의 수치를 가리려 만들었던 무화과나무 잎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 잎을 화려하게 꾸미고, 어떤 이들은 금으로 치장하며, 또 어떤 이들은 그 잎을 입이 닳도록 자랑하곤 합니다.
오늘 아침, 히스기야는 세상에서 가져온 그 옷, 자신의 옷을 완전히 찢어 버립니다. 다시는 입지 않겠다는 애통함이자 결단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상징하는 굵은 베옷을 입습니다. 티끌에서 온 이 육체가 세상의 옷을 벗고 온전히 죽었음을 고백하며, 히스기야는 주님이 계신 성전으로 나아갑니다.
그는 자신과 함께 베옷을 입은 신하들을 선지자 이사야에게 보내며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환난’은 영적으로 짓눌린 상태를 뜻합니다. 또한 ‘책벌(ἐλεγμός, 책망)’은 성경의 주요 역할 중 하나로, 우리를 낙심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하고 회복시켜 의롭게 성장하도록 돕는 디딤돌입니다(딤후 3:16). 책망을 통해 우리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집니다. 비록 ‘환난’과 ‘책벌’이 앗수르를 통해 찾아왔지만, 본질적으로는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징계였습니다. 그리고 ‘능욕’은 앗수르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훼방하는 신성모독을 의미합니다. (J. Watts).
당시 유다의 현실은 아이를 낳으려 하나 환난과 책벌과 능욕으로 인해 해산할 힘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애굽을 의지하고 그들과 동맹을 맺은 죄로 고난이 찾아왔고, 그 고난 때문에 해산할 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다가 해산해야 할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교회’입니다. 죄 중에 태어난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온 세계에 생명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태동시킬 수 없습니다(사 66:7).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교회를 태동시키는 그 일은 누구를 통해, 언제 시작될 수 있을까요? 오직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실 때 시작됩니다. 성령으로 아기가 잉태되듯 교회가 태동하고, 각 사람 위에 성령이 임할 때 교회는 온 세계로 확장되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행 2장).
땅에 속한 우리는 산고를 겪을지라도 그저 바람을 낳을 뿐 생명을 낳지 못합니다(사 26:16-18).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한 시온에서는 진통도 고통도 없이 아기를 순산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시온의 태는 이제 닫히지 않습니다(사 66:7-9).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나셨기에, 영생의 생명이 이어지며 교회는 계속해서 태어날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남은 자들을 위해 이사야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이사야는 주저함 없이 지금까지 선포해 온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며, 앗수르 왕 산헤립의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럼에도 산헤립은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말라고 조롱하며, 지금까지 앗수르를 이긴 신은 없었다고 하나님께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애굽의 출격으로 물러가는 듯했던 산헤립이 다시 협박 편지를 보내오자, 히스기야는 참담한 마음으로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 기도합니다. 그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랍사게의 모든 모욕과 훼방을 들으셨음을 고백하며,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만군의 여호와 앞에 나아갑니다. 이처럼 위기와 환난의 순간일수록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명확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만군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임은 시온의 생명이 이어지는 유일한 곳, 곧 교회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주시고 우리를 교회로 삼으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여기서 신뢰로 번역된 히브리어 바타(בָּטַח)는 ‘바싹 달라붙어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으로, 오늘 히스기야 역시 바싹 달라붙어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NIDOTTE, Pictograph)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아침 주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그분께 바싹 달라붙어 전적으로 주님만 의지하시길 축복합니다. 내 힘과 인간적인 계산이 다 끝난 바로 그 자리에서, 오직 주님만을 굳게 붙드십시오. 그리하여 오늘 하루, 우리의 문제보다 크시고 두려움보다 크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늘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샬롬.
나의묵상.
이 육체에 있는 날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다. 그러므로 이로인한 고난 때문에 나로부터 혹은 우리 사람들로부터 교회가 나지 못했다. 오직 아버지의 뜻으로 오직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오직 예수의 보혈로 교회가 시작되었다. 영이 보이지 않듯이 교회 또한 영이어서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이는 벽돌을 보고 교회라고 하기도 하나, 그것은 오해다. 그 벽돌은 아담이 에덴에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가져온 벽돌이다. 그 벽돌은 애굽의 성을 쌓던 벽돌이고, 그 벽돌은 시날평지에 끝도없이 쌓아올리던 바벨탑의 핵심 부품이다. 교회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보이는 것으로는 단 평도 교회를 늘릴수 없다. 교회는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께서 전 세계로 확장하신다.
묵상기도.
사랑의 주님,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허락하시고 이제 그의 몸된 교회로 우리를 모으시니 감사합니다. 나와 우리 더함교회 가족의 영혼들이 간절히 주님을 사모하기 원합니다. 간절히 주님만 바라보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