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가귀감(禪家龜鑑) - 휴정(休靜) 서산 대사
1
有一物於此 從本以來 昭昭靈靈 不曾生不曾滅 名不得狀不得.
유일물어차 종본이래 소소영영 부증생부증멸 명부득상부득.
여기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생겨나지도 않았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모양 또한 그릴 수 없다.
2
佛祖出世 無風起浪.
불조출세 무풍기랑.
부처님과 조사(祖師)가 세상에 나오심은 마치 바람 없는데 물결이 일으킨 것이다.
3
然 法有多義 人有多機 不妨施設.
연 법유다의 인유다기 불방시설.
그러나 법에도 여러 가지 뜻이 있고, 사람에게도 온갖 기질이 있는지라. 여러 가지 방편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4
强立種種名字 或心. 或佛 或衆生. 不可守名而生解 當體便是 動念卽乖.
강립종종명자 혹심. 혹불 혹중생. 불가수명이생해 당체편시 동념즉괴.
억지로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서 마음, 부처, 중생이라 하였으나 이름에 얽매여 분별을 낼 것이 아니다.
다 그대로 옳은 것이다. 그러나 한 생각이라도 일으키게 되면 곧 어그러진다.
5
世尊 三處傳心者 爲禪旨. 一代所說者 爲敎門. 故 曰 禪是佛心 敎是佛語.
세존 삼처전심자 위선지. 일대소설자 위교문. 고 왈 선시불심 교시불어.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禪)의 뜻이요. 한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니라.
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주해> 세 곳이란, 세 곳에서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만 보이신 뜻.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이 첫째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이 둘째요.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이 셋째이다.
이른바 가섭존자가 선(禪)의 등불을 따로 받았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6
是故 若人 失之於口 則拈花微笑皆是敎迹.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 皆是敎外別傳禪旨.
시고 약인 실지어구 즉념화미소개시교적. 득지어심칙세간추언세어 개시교외별전선지.
그러므로 만약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든 것이나 빙긋 웃는 것이 모두 교의 자취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의 뜻이 될 것이다.
7
吾有一言. 絶慮忘緣 兀然無事坐 春來草自靑.
오유일언. 절려망연 올연무사좌 춘래초자청.
내가 한 마디 말을 할까 한다. 생각을 끊고 반연(絆緣)을 쉬고 일 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으니, 봄이 오니 풀이 절로 푸르구나.
8
敎門 惟傳一心法 禪門 惟傳見性法.
교문 유전일심법 선문 유전견성법.
교문에는 오직 한 마음에 대한 법만을 전하고, 선문에는 오직 견성 하는 법만을 전하였다.
9
然 諸佛說經 先分別諸法, 後說畢竟空, 祖師示句 迹絶於意地, 理顯於心源.
연 제불설경 선분별제법, 후설필경공, 조사시구 적절어의지, 이현어심원.
그러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전에는 먼저 모든 법을 가려 보이시고, 나중에 공한 이치를 말씀하셨으며, 조사들의 가르침은 자취가 생각에서 끊어지고, 이치가 마음의 근원에서 드러났다.
10
諸佛 說弓 祖師 說絃. 佛說無碍之法 方歸一味. 拂此一味之迹 方現祖師所示一心 故 云, 庭前栢樹子話 龍藏所未有底.
제불 설궁 조사 설현. 불설무애지법 방귀일미. 불차일미지적 방현조사소시일심 고 운, 정전백수자화 용장소미유저.
부처님께서는 활같이 말씀하시고 조사들은 활줄같이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걸림 없는 법이란 바로 한 맛에 들어감이라.
11
故 學者 先以如實言敎 委辨不變隨緣二義 是自心之性相 頓悟漸修兩門 是自行之始終
고 학자 선이여실언교 위변불변수연이의 시자심지성상 돈오점수양문 시자행지시종
然後 放下敎義 但將自心現前一念 參祥禪旨則必有所得 所謂出身活路.
연후 방하교의 단장자심현전일념 참상선지즉필유소득 소위출신활로.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먼저 부처님의 참다운 가르침으로써 변하지 않는 것과 인연에 따르는 두 가지 뜻이 곧 내 마음의 성품과 형상이며, 단박 깨치고, 점점 닦는 그 두 가지 문은 공부의 시작과 끝임을 가려 안 뒤에, 교의 뜻을 버리고 오로지 그 마음이 뚜렷이 드러난 한 생각으로써 참선한다면 반드시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뛰쳐나오는 살 길이니라.
12
大抵學者 須參活句 莫參死句
대저학자 수참활구 막참사구
대저 배우는 이들은 활구를 참구할 것이요, 사구를 참구하지 말아야 한다.
13
凡本參公案上 切心做工夫 如鷄抱卵 如猫捕鼠 如飢思食 如渴思水 如兒憶母 必有透徹之期.
범본참공안상 절심주공부 여계포란 여묘포서 여기사식 여갈사수 여아억모 필유투철지기.
무릇 공안을 참구하되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기를 마치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것과 같이 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 하며, 주린 사람이 밥을 생각하듯 하며, 목마른 사람이 물을 생각하듯 하며, 어린아이가 엄마를 생각하듯이 하면 반드시 꿰뚫어 사무칠 때가 있을 것이다.
14
參禪 須有三要 一 有大信根 二 有大憤志 三 有大疑情 苟闕其 如折足之鼎 終成廢器
참선 수유삼요 일 유대신근 이 유대분지 삼 유대의정 구궐기 여절족지정 종성폐기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마치 다리 부러진 솥과 같이 소용없는 물건이 되고 말 것이다.
15
日用應緣處 只擧狗子無佛性話 擧來擧去 疑來疑去 覺得沒理路 沒義路 沒滋味 心頭熱悶時 便是當人
일용응연처 지거구자무불성화 거래거거 의래의거 각득몰이로 몰의로 몰자미 심두열민시 편시당인
放身命處 亦是成佛作祖底基本也.
방신명처 역시성불작조저기본야.
일상생활 속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도 오직 ‘어찌하여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 한 화두를 끊임없이 들어, 오나가나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여 이치의 길이 끊어지고 뜻 길이 사라져 아무 맛도 모르고 마음이 답답할 때가 바로 그 사람의 몸과 목숨을 내던질 곳이며, 또한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는 근본이다.
16
話頭 不得擧起處 承當 不得思量卜度 又不得將迷待悟 就不可思量處 思量 心無所之 如老鼠入牛角 便見倒斷也.
화두 부득거기처 승당 부득사량복탁 우부득장미대오 취불가사량처 사량 심무소지 여노서입우각 편견도단야
화두를 들어 일으키는 곳에서 알아맞히려 하지도 말고, 생각으로 헤아리지도 말며 또한 깨닫기를 기다리지도 말지니 더 생각할 수 없는 곳에까지 나아가 생각하면 마음이 더 갈 곳이 없어, 마치 늙은 쥐가 쇠뿔 속으로 들어가다가 잡히듯 할 것이다.
16
又尋常 計較安排底 是識情 隨生死遷流底 是識情 怕怖慞惶底 是識情 今人 不知是病 只管在裡許 頭出頭沒
우심상 계교안배저 시식정 수생사천류저 시식정 파포장항저 시식정 금인 부지시병 지관재리허 두출두몰
또 평소에 이런가 저런가 따지고 맞춰 보는 것이 잘못된 생각이며, 생사를 따라 굴러다니는 것이 잘못된 생각이며, 무서워하고 방황하는 것도 또한 잘못된 생각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 병통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 속에서 빠졌다 솟았다 할뿐이다.
17
此事 如蚊子 上鐵牛 更不問如何若何 下嘴不得處 棄命一攢 和身透入.
차사 여문자 상철우 갱불문여하약하 하취부득처 기명일찬 화신투입.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드는 것과 같아서, 함부로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떼어놓고 한 번 뚫어보면 몸뚱이 째 들어갈 것이다.
18
工夫 如調絃之法 緊緩 得其中 勤則近執着 忘則落無明 惺惺歷歷 密密綿綿.
공부 여조현지법 긴완 득기중 근즉근집착 망즉낙무명 성성역력 밀밀면면.
공부는 거문고 줄을 고르듯 팽팽하고 늦음이 알맞아야 한다.
너무 애쓰면 집착하기 쉽고, 잊어버리면 무명에 떨어지게 된다.
오직 성성하고 역력하게 하면서도 차근차근 끊임없이 하여야야 한다.
19
工夫 到行不知行 坐不知坐 當此之時 八萬四千魔軍 在六根門頭伺候 隨心生起 心若不起 爭如之何.
공부 도행부지행 좌부지좌 당차지시 팔만사천마군 재육근문두사후 수심생기 심약불기 쟁여지하.
공부가 걸어가면서도 걷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는 줄 모르게 되면, 이 때 8만 4천의 마군의 무리가 육근 문 앞에 지키고 있다가 마음을 따라 온갖 생각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슨 상관이 있으랴.
20
起心 是天魔 不起心 是陰魔 或起或不起 是煩惱魔 然 我正法中 本無如是事.
기심 시천마 불기심 시음마 혹기혹불기 시번뇌마 연 아정법중 본무여시사.
일어나는 마음은 천마요. 일어나지 않는 마음은 음마요. 혹 일기도 하고 일지 않기도 하는 것은 번뇌마이다.
그러나 우리 바른 법 가운데에는 본래 그런 일이 없다.
21
工夫 若打成一片則縱今生 透不得 眼光 落地之時 不爲惡業所牽.
공부 약타성일편즉종금생 투부득 안광 낙지지시 불위악업소견.
공부가 만일 한 조각을 이룬다면 비록 금생에 깨치지 못하더라도 마지막 눈 감을 적에 악업에 이끌리지는 않을 것이다.
22
大抵參禪者 還知四恩 深厚麽 還知四大醜身 念念衰朽麽 還知人命 在呼吸麽 生來値遇佛祖麽 及聞無上法 生希有心麽
대저참선자 환지사은 심후마 환지사대추신 념념쇠후마 환지인명 재호흡마 생래치우불조마 급문무상법 생희유심마
대저 참선하는 이는 이렇게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네 가지 은혜가 깊고 두터운 것을 알고 있는가?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 더러운 몸이 순간순간 썩어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람의 목숨이 숨 한번에 달린 것을 알고 있는가?
일찍이 부처님이나 조사 같은 이를 만나고서도 그대로 지나쳐 버리지 않았는가?
不離僧堂 守節麽 不與隣單 雜話麽 切忌鼓扇是非麽 話頭 十二時中 明明不昧麽 對人接話時 無間斷麽
불리승당 수절마 불여인단 잡화마 절기고선시비마 화두 십이시중 명명불매마 대인접화시 무간단마
또 거룩한 무상 법문을 듣고서도 기쁜 생각을 잠시라도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공부하는 곳을 떠나지 않고 수도인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곁에 있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고 지내지 않는가?
분주하게 시비나 일삼고 있지나 않은가?
화두가 십이시중 어느 때나 똑똑히 들리고 있는가?
見聞覺知時 打成一片麽 返觀自己 捉敗佛祖麽 今生 決定續佛慧命麽 起坐便宜時 還思地獄苦麽
견문각지시 타성일편마 반관자기 착패불조마 금생 결정속불혜명마 기좌편의시 환사지옥고마
남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도 화두가 끊임없이 되는가? 보고 듣고 알아차릴 때에도 한 조각을 이루고 있는가? 자기의 공부를 돌아볼 때 부처님과 조사를 붙잡을 만한가? 금생에 꼭 부처님의 지혜를 이을 수 있을까? 앉고 눕고 편할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此一報身 定脫輪廻麽 當八風境 心不動麽
차일보신 정탈윤회마 당팔풍경 심부동마
이 육신으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가?
여덟 가지 바람이 불어올 때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此是參禪人 日用中點檢底道理 古人云 此身不向今生度 更待何生度此身.
차시참선인 일용중점검저도리 고인운 차신불향금생도 갱대하생도차신.
이것이 참선하는 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때때로 점검해야 할 도리이다.
옛 어른이 말씀하시기를 “이 몸을 이때 못 건지면 다시 어느 세상에서 건질 것인가!”
23
學語之輩 說時似悟 對境還迷 所謂言行 相違者也.
학어지배 설시사오 대경환미 소위언행 상위자야.
말을 배우는 사람들은 말할 때에는 깨친듯 하다가도 실지 경계에 당하게 되면 그만 아득하게 된다.
이른바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24
若欲敵生死 須得這一念子 爆地一破 方了得生死.
약욕적생사 수득자일념자 폭지일파 방료득생사.
만약 생사를 막아내려면 이 한 생각을 탁 깨뜨려야만 비로소 생사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
25
然 一念子 爆地一破然後 須訪明師 決擇正眼.
연 일념자 폭지일파연후 수방명사 결택정안.
그러나 한 생각을 깨친 뒤에라도 반드시 밝은 스승을 찾아가 눈이 바른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26
古德 云 只貴子眼正 不貴汝行履處.
고덕 운 지귀자안정 불귀여행리처
옛 어른이 말씀하시기를 “다만 자네의 눈이 바른 것만 귀하게 여길 따름이지, 자네의 행실을 보려고 하지 않네.”라고 하였다.
27
願諸道者 深信自心 不自屈不自高.
원제도자 심신자심 부자굴부자고.
바라건대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을 깊이 믿어, 스스로 굽히지도 말고 높이지도 말아야 한다.
28
迷心修道 但助無明.
미심수도 단조무명.
미혹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다는 것은 오직 무명만을 도와줄 뿐이다.
29
修行之要 但盡凡情 別無聖解.
수행지요 단진범정 별무성해
수행의 알맹이는 다만 범부의 생각을 떨어지게 할 뿐이지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있을 수 없다.
30
不用捨衆生心 但莫染汚自性 求正法 是邪.
불용사중생심 단막염오자성 구정법 시사.
중생의 마음을 버릴 것 없이 다만 자성을 더럽히지 말라. 바른 법을 찾는 것이 곧 바르지 못한 일이다.
31
斷煩惱 名二乘 煩惱不生 名大涅槃.
단번뇌 명이승 번뇌불생 명대열반.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二乘)이고,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큰 열반이다.
32
須虛懷自照 信一念緣起無生.
수허회자조 신일념연기무생.
모름지기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비춰 보아, 한 생각 인연 따라 일어나는 것이 사실은 일어남이 없음을 믿어야 한다.
33
諦觀殺盜淫妄 從一心上起 當處便寂 何須更斷.
체관살도음망 종일심상기 당처변적 하수갱단.
죽이고 도둑질하고 음행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다 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자세히 살펴보라.
그 일어나는 곳이 곧 비어 없는데 무엇을 다시 끊을 것인가.
34
知幻卽離 不作方便 離幻卽覺 亦無漸次.
지환즉리 부작방편 이환즉각 역무점차.
환상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고, 환상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또한 닦아 갈 것도 없다.
35
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死涅槃 如見空花起滅.
중생 어무생중 망견생사열반 여견공화기멸.
중생이 나는 것 없는 가운데서 망령되게 생사와 열반을 보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 꽃이 서물거리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36
菩薩 度衆生入滅度 又實無衆生 得滅度.
보살 도중생입멸도 우실무중생 득멸도.
보살이 중생을 건져 열반을 들게 했다 할지라도 사실은 열반을 얻은 중생이 없는 것이다.
37
理雖頓悟 事非頓除.
이수돈오 사비돈제
이치를 단박에 깨칠 수 있다 하더라도, 버릇은 한꺼번에 가시어지지 않는다.
38
帶狀修禪 如蒸沙作飯, 帶殺修禪 如塞耳叫聲, 帶偸修禪 如漏巵求滿, 帶妄修禪 如刻糞爲香 縱有多智 皆成魔道.
대음수선 여증사작반, 대살수선 여색이규성, 대투수선 여루치구만, 대망수선 여각분위향 종유다지 개성마도
음란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 같고, 살생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제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으며, 도둑질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새는 그릇에 가득 차기를 바라는 것 같고, 거짓말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똥으로 향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 이런 것들은 비록 많은 지혜가 있더라도 다 악마의 길을 이룰 뿐이다.
39
無德之人 不依佛戒 不護三業 放逸懶怠 輕慢他人 較量是非 而爲根本.
무덕지인 불의불계 불호삼업 방일나태 경만타인 교량시비 이위근본.
덕이 없는 사람은 부처님의 계율에 의지하지 않고, 삼업(三業)을 지키지 않는다. 함부로 놀아 게을리 지내며, 남을 깔보아 따지고 시비하는 것을 일삼고 있다.
40
若不持戒 尙不得疥癩野干之身 況淸淨菩提果 可冀乎.
약불지계 상부득개나야간지신 항청정보리과 가기호.
만약 계행이 없으면 비루먹은 여우의 몸도 받지 못한다는데, 하물며 청정한 지혜의 열매를 바랄 수 있겠는가?
41
欲脫生死 先斷貪欲 及除愛渴.
욕탈생사 선단탐욕 급제애갈.
생사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탐욕을 끊고 애욕의 불꽃을 꺼 버려야 한다.
42
無碍淸淨慧 皆因禪定生.
무애청정혜 개인선정생.
걸림 없는 청정한 지혜는 다 선정에서 나온다.
43
心 在定則能知世間生滅諸相.
심 재정즉능지세간생멸제상.
마음이 정(定)에 들면 세간의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는 모든 일을 다 밝게 알 수 있다.
44
見境心不起 名不生 不生 名無念 無念 名解脫.
견경심불기 명불생 불생 명무념 무념 명해탈.
어떤 현실을 당해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나지 않음이라 하고, 나지 않는 것을 무념이라 하며 무념의 상태를 해탈이라 한다.
45
修道證滅 是亦非眞也 心法本寂 乃眞滅也. 故 曰, 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
수도증멸 시역비진야 심법본적 내진멸야. 고 왈 제법종본래 상자적멸상.
도를 닦아 열반을 얻는다면 이것은 또한 진리가 아니다.
마음이 본래 고요한 것임을 알아야 그것이 참 열반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본래부터 늘 그대로 열반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46
貧人 求乞 隨分施與 同體大悲 是眞布施.
빈인 구걸 수분시여 동체대비 시진보시.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수대로 나누어 주라. 한 몸처럼 가엾이 여기면 이것이 참 보시니라.
47
有人 來害 當自攝心 勿生瞋恨 一念瞋心起 百萬障門開.
유인 내해 당자섭심 물생진한 일념진심기 백만장문개.
누가 와서 해롭게 하더라도 마음을 거두어 성내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한 생각 성내는 데에 백만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린다.
48
若無忍行 萬行不成.
약무인행 만행불성.
만약 참는 일이 없다면 보살의 육도만행도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49
守本眞心 第一精進.
수본진심 제일정진.
본바탕 천진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첫째가는 정진이다.
50
持呪者 現業 易制 自行可違 宿業 難除 必借神力.
지주자 현업 이제 자행가위 숙업 난제 필차신력.
진언을 외우는 것은 금생에 지은 업은 비교적 다스리기 쉬워서 자기 힘으로도 고칠 수가 있지만, 전생에 지은 업은 지워 버리기가 어려우므로 반드시 신비한 힘을 빌리려는 것이다.
51
禮拜者 敬也 伏也 恭敬眞性 屈伏無明.
예배자 경야 복야 공경진성 굴복무명.
예배란 공경하는 것이며 굴복하는 것이다.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52
念佛者 在口曰誦 在心曰念 徒誦失念 於道無益.
염불자 재구왈송 재심왈념 도송실념 어도무익.
염불이라 하지만 입으로 하면 송불(誦佛)이고 마음으로 할 때 비로소 염불이 된다.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에 무슨 소용이 될 것인가!
53
聽經 有經耳之緣 隨喜之福 幻軀 有盡 實行 不亡.
청경 유경이지연 수희지복 환구 유진 실행 불망.
경을 들으면 귀를 거치는 인연도 있게 되고 따라서 기뻐하는 복도 짓게 된다. 물거품 같은 이 몸은 다할 날이 있지만 진실한 행동은 헛되지 않는다.
54
看經 若不向自己上做工夫 雖看盡萬藏 猶無益也.
간경 약불향자기상주공부 수간진만장 유무익야.
경을 보되 자기 마음속을 돌이켜봄이 없다면 비록 팔만대장경을 다 보았다 할지라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55
學未至於道 衒耀見聞 徒以口舌辯利 相勝者 如厠屋塗丹雘.
학미지어도 현요견문 도이구설변리 상승자 여측옥도단확.
공부가 도를 이루기 전에 남에게 자랑하려고, 한갓 말재주만 부려 서로 이기려고 한다면 마치 변소에 단청하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56
出家人 習外典 如以刀割泥 泥無所用 而刀自傷焉.
출가인 습외전 여이도할니 니무소용 이도자상언.
출가한 사람이 외전을 공부하는 것은 마치 칼로 흙을 베는 것과 같아서, 흙은 아무 소용도 없는데 칼만 망가지게 된다.
57
出家爲僧 豈細事乎 非求安逸也 非求溫飽也 非求名利也 爲生死也 爲斷煩惱也 爲續佛慧命也 爲出三界度衆生也.
출가위승 기세사호 비구안일야 비구온포야 비구이명야 위생사야 위단번뇌야 위속불혜명야 위출삼계도중생야.
출가하여 스님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몸의 편안함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며,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을 면하려는 것이며,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삼계에서 뛰어나 중생을 건지기 위해서인 것이다.
58
佛云, 無常之火 燒諸世間 又云, 衆生苦火 四面俱焚 又云, 諸煩惱賊 常伺殺人 道人 宜自警悟 如救頭燃.
불운, 무상지화 소제세간 우운, 중생고화 사면구분 우운, 제번뇌적 상사살인 도인 의자경오 여구두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덧없는 불꽃이 온 세상을 살라버린다.”고 하셨고, 또 “중생들의 고뇌의 불이 사방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고 하셨고, “모든 번뇌의 도둑이 항상 너희들을 죽이려고 엿보고 있다”고도 하셨다. 그러므로 수도인은 마땅히 스스로 깨우쳐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해야 할 것이다.
59
貪世浮名 枉功勞形 營求世利 業火加薪.
탐세부명 왕공노형 영구세리 업화가신.
세상의 뜬 이름을 탐하는 것은 쓸데없이 몸만 괴롭게 하는 것이요, 세상의 이익을 애써서 구하는 것은 업의 불에 땔나무를 더 보태는 격이다.
60
名利衲子 不如草衣野人.
명리납자 불여초의야인.
이름과 재물을 따르는 납자는 풀 속에 묻힌 시골 사람만도 못하다.
61
佛 云 云何賊人 假我衣服 稗販如來 造種種業.
불 운 운하적인 가아의복 패판여래 조종종업.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어찌하여 도둑들이 내 옷을 꾸며 입고, 부처를 팔아 온갖 나쁜 업을 짓고 있느냐!”라고 통탄하셨다.
62
於戱 佛子 一衣一食 莫非農夫之血 織女之苦 道眼 未明 如何消得.
오희 불자 일의일식 막비농부지혈 직녀지고 도안 미명 여하소득.
아! 불자여! 그대의 한 그릇 밥과 한 벌 옷이 농부들의 피요, 직녀들의 땀이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고야 어떻게 삭여 낼 것인가.
63
故 曰 要識披毛戴角底麽 卽今虛受信施者是 有人 未飢而食 未寒而衣 是誠何心哉 都不思目前之樂 便是身後之苦也.
고 왈 요식피모대각저마 즉금허수신시자시 유인 미기이식 미한이의 시성하심재 도불사목전지락 변시신후지고야.
그러므로 말하기를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그것은 오늘날 신도들이 주는 것을 공부하지 않으면서 거저먹는 그런 부류들의 미래상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더 입으니 이 무슨 심사일까? 참으로 딱한 일이다. 눈앞의 쾌락이 후생에 괴로움인 줄을 도무지 생각지 않는구나.
64
故 曰 寧以熱鐵 纏身 不受信心人衣 寧以洋銅灌口 不受信心人食 寧以鐵鑊投身 不受信心人房舍等.
고 왈 영이열철 전신 불수신심인의 영이양동관구 불수신심인식 영이철확투신 불수신심인방사등.
그러므로 이르기를 “차라리 뜨거운 철판을 몸에 두를지언정 신심있는 이가 주는 옷을 입지 말며, 쇳물을 마실지언정 신심있는 이가 주는 음식을 먹지 말고, 차라리 끊는 가마솥에 뛰어들지언정 신심있는 이가 주는 집에 거처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65
故 曰 道人 進食 如進毒 受施 如受箭 幣厚言甘 道人所畏.
고 왈 도인 진식 여진독 수시 여수전 폐후언감 도인소외.
그러므로 말하기를 “수도인은 음식을 먹을 때에 독약을 먹는 것 같이 하고, 시주의 보시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하라”고 한 것이다.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수도인으로서는 두려워해야 한다.
66
故 曰 修道之人 如一塊磨刀之石 張三也來磨 李四也來磨 磨來磨去 別人刀 快 而自家石 漸消
고 왈 수도지인 여일괴마도지석 장삼야래마 이사야래마 마래마거 별인도 쾌 이자가석 점소
然 有人 更嫌他人 不來我石上磨 實爲可惜.
연 유인 갱혐타인 불래아석상마 실위가석.
그러므로 말하기를 “도를 닦는 이는 한 개의 숫돌과 같아서, 장 서방이 와서 갈고 이 서방이 갈아 가면, 남의 칼은 잘 들겠지만 나의 돌은 점점 닳아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도리어 남들이 와서 돌에 칼을 갈지 않는다고 걱정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라고 하였다.
67
故 古語 亦有之 曰 三途苦 未是苦 袈裟下失人身 始是苦也.
고 고어 역유지 왈 삼도고 미시고 가사하실인신 시시고야.
그러므로 옛 말에 또한 이르기를 “삼악도의 고통이 고통이 아니라, 가사를 입었다가 사람 몸을 잃는 것이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이다”라고 하였다.
68
咄哉. 此身 九孔常流 百千癰疽 一片薄皮 又云, 革囊盛糞 膿血之聚 臭穢可鄙 無貪惜之 何況百年將養 一息背恩.
돌재. 차신 구공상류 백천옹저 일편박피 우운, 혁낭성분 농혈지취 취예가비 무탐석지 하황백년장양 일식배은.
우습다, 이 몸이여. 아홉 구멍에서는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나오고, 백 천 가지 부스럼 덩어리를 한 조각 엷은 가죽으로 싸 놓았구나. 또한, 가죽 주머니에는 똥이 가득 담기고 피고름 뭉치라, 냄새나고 더러워 조금도 탐나거나 아까울 것이 없다. 더구나 백년을 잘 길러준대도 숨 한 번에 은혜를 등지고 마는 것을.
69
有罪卽懺悔 發業卽慚愧 有丈夫氣象 又改過自新 罪隨心滅.
유죄즉참회 발업즉참괴 유장부기상 우개과자신 죄수심멸.
허물이 있거든 곧 참회하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데에 장부의 기상이 있다.
그리고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도 마음을 따라 없어질 것이다.
70
道人 宜應端心 以質直爲本 一瓢一衲 旅泊無累.
도인 의응단심 이질직위본 일표일납 여박무루.
수도인은 마땅히 마음을 단정히하여 검소하고 진실한 것으로써 근본을 삼아야 한다. 표주박 한 개와 누더기 한 벌이면 어디를 가나 걸릴 것이 없다.
71
凡夫 取境 道人 取心 心境 兩忘 乃是眞法.
범부 취경 도인 취심 심경 양망 내시진법.
범부들은 눈앞의 현실에만 따르고, 수도인은 마음만 붙잡으려 한다. 그러나 마음과 바깥 현실 두 가지를 다 내버리는 이것이 바로 참다운 법이다.
72
聲聞 宴坐林中 被魔王捉 菩薩 遊戱世間 外魔不覓.
성문 연좌림중 피마왕착 보살 유희세간 외마불멱.
성문은 숲 속에 가만히 앉아서도 마왕에 붙잡히고, 보살은 세간에 노닐어도 외도들과 마군이 보지 못한다.
73
凡人 臨命終時 但觀五蘊皆空 四大無我 眞心 無相 不去不來
범인 임명종시 단관오온개공 사대무아 진심 무상 불거불래
누구든지 임종할 때에는 이렇게 관찰해야 한다. 즉 오온이 다 빈 것이어서 이 몸에는 네 가지 원소라서 ‘나’라고 할 것이 없고, 참마음은 모양이 없어 오고 가는 것도 아니다.
生時 性亦不生 死時 性亦不去 湛然圓寂 心境 一如
생시 성역불생 사시 성역불거 담연원적 심경 일여
날 때에도 성품은 또한 난 바가 없고, 죽을 때에도 성품은 또한 가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맑고 고요하여 마음과 환경은 하나인 것이다.
但能如是 直下頓了 不爲三世所拘繫 便是出世自由人也
단능여시 직하돈료 불위삼세소구계 변시출세자유인야
오직 이처럼 관찰하여 단박 깨친다면 삼세와 인과에 얽매이거나 이끌리거나 않게 될 것이니, 이런 사람이야 말로 세상에서 뛰어난 자유인이다.
若見諸佛 無心隨去 若見地獄 無心怖畏
약견제불 무심수거 약견지옥 무심포외
만약 부처님을 만나더라도 따라 갈 마음이 없고, 지옥을 보더라도 무서운 생각이 없어야 한다.
但自無心 同於法界 此卽是要節也 然則平常 是因 臨終 是果 道人 須着眼看.
단자무심 동어법계 차즉시요절야 연즉평상 시인 임종 시과 도인 수착안간.
다만 스스로 무심하게 되면 법계와 같이 될 것이니 이 점이 바로 요긴한 것이다.
그러므로 평상시는 씨(因)이고 임종할 때에 그 열매(果)다. 수도인은 이곳에 주의해야 한다.
74
凡人 臨終命時 若一毫毛 凡聖情量 不盡 思慮 未忘 向驢胎馬腹裡 托質 泥犁鑊湯中 煮煠 乃至依前再爲螻蟻蚊虻.
범인 임종명시 약일호모 범성정량 부진 사려 미망 향려태마복리 탁질 니리확탕중 자잡 내지의전재위루의문맹.
사람이 임종할 때에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이다, 범부다 하는 생각이 남아 있게 되면 나귀나 말의 뱃속에 끌려들기 쉽고, 지옥의 끊는 가마 속에 처박히게 되며, 혹은 개미나 모기 같은 것이 되기도 할 것이다.
75
禪學者 本地風光 若未發明則孤峭玄關 擬從何透
선학자 본지풍광 약미발명즉고초현관 의종하투
참선하는 사람이 본래 면목을 만약 밝히지 못한다면 높고 아득한 진리의 문을 어떻게 뚫을 것인가.
往往 斷滅空 以爲禪 無記空 以爲道 一切俱無 以爲高見 此 冥然頑空 受病幽矣 今天下之言禪者 多坐在此病.
왕왕 단멸공 이위선 무기공 이위도 일체구무 이위고견 차 명연완공 수병유의 금천하지언선자 다좌재차병.
때론 어떤 이는 아주 끊어 없어진 빈 것으로써 참선을 삼기도 하고, 무엇이라 말할 수 없이 빈 것으로써 도를 삼기도 하며, 모든 것이 없는 것으로써 높은 소견을 삼기도 하니, 이것은 컴컴하게 비어 있어 병든 바가 깊다.
지금 천하에 참선을 말하는 사람치고 이와 같은 병에 안 걸린 사람이 얼마나 될까?
76
宗師 亦有多病 病在耳目者 以瞠眉努目 側耳點頭 爲禪 病在口舌者 以顚言倒語 胡唱亂喝 爲禪
종사 역유다병 병재이목자 이당미노목 측이점두 위선 병재구설자 이전언도어 호창난할 위선
종사도 또한 병이 많다. 병이 귀와 눈에 있는 자는 눈을 부릅뜨고, 귀를 기울이며, 머리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선을 삼고, 병이 입과 혀에 있는 자는 횡설수설 되지 않은 말과 함부로 ‘喝(할 ; 꾸짖음)’하는 것으로써 선을 삼는다.
病在手足者 以進前後退 指東畵西 爲禪 病在心腹者 以窮玄究妙 超情離見 爲禪 據實而論 無非是病.
병재수족자 이진전후퇴 지동화서 위선 병재심복자 이궁현구묘 초정이견 위선 거실이론 무비시병.
또 병이 손발에 있는 자는 나아갔다 물러갔다 이쪽저쪽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선을 삼으며, 병이 마음 가운데 있는 자는 진리를 찾아내고 오묘한 것을 뚫어내며 인정에 뛰어나고 자기의 소견을 여의는 것으로써 선을 삼는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어느 것이고 병 아닌 것이 없다.
77
本分宗師 全提此句 如木人唱拍 紅爐點雪 亦如石火電光 學者實不可擬議也.
본분종사 전제차구 여목인창박 홍로점설 역여석화전광 학자실불가의의야.
본분 종사는 법을 온전히 들어 보인다.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여, 공부하는 이가 어떻다고 헤아려 보거나 더듬을 수가 전혀 없다.
故 古人 知師恩 曰 不重先師道德 只重先師不爲我說破.
고 고인 지사은 왈 부중선사도덕 지중선사불위아설파.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하기를 “스님의 도덕을 장하게 여김이 아니라 오직 스님이 내게 해설하여 주지 않는 것에 감격한다.”라고 하였다.
78
大抵學者 先須詳辨宗途 昔 馬祖一喝也 百丈 耳聾 黃檗 吐舌 這一喝 便是拈花消息 亦是達摩初來底面目.
대저학자 선수상변종도 석 마조일할야 백장 이롱 황벽 토설 자일할 변시염화소식 역시달마초래저면목.
배우는 사람들은 먼저 선종의 갈래부터 자세히 가리어 알아야 한다. 옛날에 마조스님이 한 번 ‘할’하는데, 백장스님은 귀가 먹고, 황벽스님은 혀가 빠졌다. 이 ‘할’이야말로 곧 부처님께서 꽃을 드신 소식이며, 또한 달마대사의 처음 오신 면목이다.
吁 此臨濟宗之淵源.
우 차임제종지연원.
아! 이것이 임제종의 근원이 된 것이다.
79
大凡祖師宗途 有五 曰臨濟宗 曰曺洞宗 曰雲門宗 曰潙仰宗 曰法眼宗.
대범조사종도 유오 왈임제종 왈조동종 왈운문종 왈위앙종 왈법안종.
무릇 조사의 종파에 다섯 갈래가 있다. 즉 임제종, 조동종, 운문종, 위앙종, 법안종 등이다.
臨濟宗 本師釋迦佛 至三十三世六祖慧能大師下直傳 曰南嶽懷讓 曰馬祖道一 曰百丈懷海 曰黃檗希運
임제종 본사석가불 지삼십삼세육조혜능대사하직전 왈남악회양 왈마조도일 왈백장회해 왈황벽희운
曰臨濟義玄 曰興化存奬 曰南院道顒 曰風穴延沼 曰首山省念 曰汾陽善昭 曰慈明楚圓 曰楊岐方會
왈임제의현 왈흥화존장 왈남원도옹 왈풍혈연소 왈수산성념 왈분양선소 왈자명초원 왈양기방회
曰白雲守端 曰五祖法演 曰圓悟克勤 曰俓山宗杲 禪師等.
왈백운수단 왈오조법연 왈원오극근 왈경산종고 선사등.
임제종은 본사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33대 되는 육조 혜능대사의 밑에서 곧게 전하여 내려가기를 남악 회양, 마조 도일, 백장 회해, 황벽 희운, 임제 의현, 흥화 존장, 남원 도옹, 풍혈 연소, 수산 성념, 분양 선소, 자명 초원, 양기 방회, 백운 수단, 오조 법연, 원오 극근, 경산 종고 선사 등이다.
80
曹洞宗 六祖下傍傳 曰靑原行思 曰石頭希遷 曰藥山惟儼 曰雲巖曇晟 曰洞山良价 曰曹山耽章 曰雲居道膺禪師等.
조동종 육조하방전 왈청원행사 왈석두희천 왈약산유엄 왈운암담성 왈동산양개 왈조산탐장 왈운거도응선사등.
조동종은 육조의 아래에서 곁 갈래의 청원 행사, 석두 희천, 약산 유엄, 운암 당성, 동산 양개, 조산 탐장, 운거 도웅 선사 등이다.
81
雲門宗 馬祖傍傳 曰天皇道悟 曰龍潭崇信 曰德山宣鑑 曰雪峰義存 曰雲門文偃 曰雪竇重顯 曰天衣義懷禪師等.
운문종 마조방전 왈천황도오 왈용담숭신 왈덕산선감 왈설봉의존 왈운문문언 왈설두중현 왈천의의회선사등.
운문종은 마조의 곁 갈래로 천황 도오, 용담 숭산, 덕산 선감, 설봉 의존, 운문 문언, 설두 중현, 천의 의회 선사 등이다.
82
潙仰宗 百丈傍傳 曰潙山靈祐 曰仰山慧寂 曰香嚴智閑 曰南塔光湧 曰芭蕉慧淸 曰郭山景通 曰無着文喜禪師等.
위앙종 백장방전 왈위산영우 왈앙산혜적 왈향엄지한 왈남탑광용 왈파초혜청 왈곽산경통 무왈착문희선사등.
위앙종은 백장의 곁 갈래로 위산우, 앙산적, 향엄한, 남탑용, 파초청, 곽산통, 무착희 선사 등이다.
83
法眼宗 雪峰傍傳 曰玄沙師備 曰地藏桂琛 曰法眼文益 曰天台德韶 曰永明延壽 曰龍濟紹修 曰南臺守安禪師等.
법안종 설봉방전 왈현사사비 왈지장계침 왈법안문익 왈천태덕소 왈영명연수 왈용제소수 왈남대수안선사등.
법안종은 설봉의 곁 갈래로 현사 사비, 지장 계침, 법안 문익, 천태 덕소, 영명 연수, 용제 소수, 남대 수안 선사 등이다.
84
臨濟家風 赤手單로 殺佛殺祖 辨古今於玄要 驗龍蛇於主賓 操金剛寶劍 掃除竹木精靈 奮獅子全威 震裂狐狸心膽.
임제가풍 적수단도 살불살조 변고금어현요 험용사어주빈 조금강보검 소제죽목정령 분사자전위 진열호리심담.
임제 가풍은 맨손에 한 자루의 칼을 들고 부처도 조사도 죽이고, 예와 이제를 삼현(三玄)이나 삼요(三要)로써 판단하고, 용과 뱀을 빈주구로 알아낸다. 금강의 보검으로 도깨비를 쓸어 내고 사자의 위험을 떨쳐 여우와 너구리의 넋을 찢네.
要識臨濟宗麽 靑天轟霹靂 平地起波濤.
요식임제종마 청천굉벽력 평지기파도.
임제종을 알려는가? 푸른 하늘에 벼락치고 평지에서 파도가 인다.
85
曹洞家風 權開五位 善接三根 橫抽寶劍 斬諸見稠林 妙協弘通 截萬機穿鑿. 威音那畔 滿目煙光 空劫已前 一壺風月.
조동가풍 권개오위 선접삼근 횡추보검 참제견조림 묘협홍통 절만기천착. 위음나반 만목연광 공겁이전 일호풍월.
조동가풍은 권도로 오위를 열어 세 가지 근기를 잘 다룬다. 보검을 빼어 들고 삿된 소견이 많은 숲을 말끔하게 베어 내고, 널리 통하는 길을 묘하게 맞추어서 천만 가지 모든 생각을 끊어 내어 버리누나. 위음왕불 나시기 전 까마득한 그 빛이요,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 신선세계 경치로다.
要識曹洞宗麽 佛祖未生空劫外 正偏不落有無機.
요식조동종마 불조미생공겁외 정편불락유무기.
조동종을 알려는가? 부처님과 조사도 안 나시고 아무 것도 없던 그 전, 똑바른 것, 치우친 것, 있는 것이나 없는 것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86
雲門家風 劍峰有路 鐵壁無門 掀翻露布葛藤 剪却常情見解 迅電 不及思量 烈焰 寧容湊泊.
운문가풍 검봉유로 철벽무문 흔번노포갈등 전각상정견해 신전 불급사량 열염 영용주박.
운문 가풍은 칼날에 길이 있고, 철벽에는 문이 없다. 온 천하의 말썽거리 둘러엎고, 온갖 못된 소견을 잘라 내어 버리노라. 빠른 번개와 같이 미처 생각할 수 없고 활활 타는 불꽃 속에 어찌 머무를 수 있으리오.
要識雲門宗麽 柱杖子勃跳上天 盞子裡 諸佛 說法.
요식운문종마 주장자발조상천 잔자리 제불 설법.
운문종을 알려는가? 주장자가 날뛰어서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잔 속에서 모든 부처님들이 설법하시네.
87
潙仰家風 師資唱和 父子一家 脇下書字 頭角 觴嶸 室中驗人 獅子腰折.
위앙가풍 사자창화 부자일가 협하서자 두각 쟁영 실중험인 사자요절.
離四句絶百非 一槌粉碎 有兩口無一舌 九曲珠通.
이사구절백비 일추분쇄 유양구무일설 구곡주통.
위앙가풍은 스승과 제자가 부르면 화답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한 집에 살고 있네. 옆구리에 글자 쓰고 머리 위에 뿔이 높이 솟았구나. 방안에서 사람들을 시험하니 사자 허리 부러진다.
네 가지 말 다 여의고, 백 가지 아닌 것도 모두 끊어버려 한 망치로 부수었네. 입은 둘이 있으나 혀는 하나도 없는 것이 아홉 구비 굽은 구슬 환하게도 꿰뚫었다.
要識潙仰宗麽 斷碑 橫古路 鐵牛眠少室.
요식위앙종마 단비 횡고로 철우면소실.
위앙종을 알려는가? 부러진 비석 옛 길 위에 쓰려져 있고 무쇠 소는 작은 집에 잠을 자네.
88
法眼家風 言中有響 句裡藏鋒 髑髏 常干世界 鼻孔 磨壻家風 風柯月渚 顯露眞心 翠竹黃花 宣明妙法.
법안가풍 언중유향 구리장봉 촉루 상간세계 비공 마촉가풍 풍가월저 현로진심 취죽황화 선명묘법.
법안 가풍은 말끝에 메아리가 울려오고 글 속에 칼날이 숨었구나, 해골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콧구멍은 어느 때나 그 가풍을 불어내네. 바람 부는 나뭇가지와 달 비치는 물가에는 참마음이 드러나고 푸른 대와 누른 국화 묘한 법을 환히 밝혀주네.
要識法眼宗麽 風送斷雲歸嶺去 月和流水過橋來.
요식법안종마 풍송단운귀령거 월화유수과교래.
법안종을 알려는가? 맑은 바람 구름을 산마루로 보내주고 밝은 달물에 떠서 다리 지나 흘러오네.
▶臨濟喝德山棒 皆徹證無生 透頂透底.
임제할덕산방 개철증무생 투정투저.
임제의 ‘할’과 덕산의 ‘방망이’가 다 나는 것 없는 도리를 철저하게 증득하여 꼭대기에서 밑바닥까지 꿰뚫은 것이다.
89
大機大用 自在無方 全身出沒 全身擔荷 退守文殊普賢大人境界 然 據實而論 此二師 亦不免偸心鬼子.
대기대용 자재무방 전신출몰 전신담하 퇴수문수보현대인경계 연 거실이론 차이사 역불면투심귀자.
큰 기틀과 큰 작용이 자유자재하여 어디에나 걸림 없고, 전신으로 출몰하며 온몸으로 짐을 져, 문수와 보현의 성인 경계를 지키고 있다 할지라도, 사실대로 말한다면 이 두 분(임제와 덕산)도 또한 도깨비가 됨을 면치 못할 것이다.
90
大丈夫 見佛見祖 如寃家 若着佛求 被佛縛 若着祖求 被祖縛 有求皆苦 不如無事.
대장부 견불견조 여원가 약착불구 피불박 약착조구 피조박 유구개고 불여무사.
대장부는 부처님이나 조사 보기를 원수같이 해야 한다. 만약 부처님께 매달려 구하는 것이 있다면 그는 부처에게 얽매인 것이고, 만약 조사에게 매달려 구하는 것이 있다면 또한 조사에게 얽매여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 구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고통이므로 아무 일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91
神光 不昧 萬古徽猷 入此門來 莫存知解.
신광 불매 만고휘유 입차문래 막존지해.
거룩한 빛 어둡지 않아 천만고에 환하여라. 이 문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두지 말아라!
----------
序(서)
古之學佛者는 非佛之言이면 不言하고 非佛之行이면 不行也라 故로 所寶者가 惟貝葉靈文而已러니 今之 學佛者는 傳而誦則士大夫之句요 乞而持則士大夫之詩라 至於紅綠으로 色其紙하고 美錦으로 粧其 하야 多多不足으로 以爲至寶하니라 何古今學佛者之不 同寶也여 |
예전에 불교를 배우는 이들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면 말 하지 아니하고, 부처님의 행실이 아니면 행하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보배로 여기는 것은 오직 불경의 거룩한 글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불교를 배우는 이들은 전해 가면서 외는 것이 사대부의 글이요, 빌어 지니는 것이 사대부의 시뿐이었다. 그것은 울긋불긋한 종이에 쓰고 고운 비단으로 꾸며서, 아무리 많아도 족한 줄을 알지 못하고 가장 큰 보배로 생각하니 아! 예와 오늘에 불교를 배우는 이들의 보배 삼는 것이 어찌 이다지도 같지 않을까.
余雖不肖나 有志於古之學하야 以貝葉靈文으로 爲寶也나 然이나 其文이 尙繁하고 藏海汪洋하야 後之同志者가 頗不免摘葉之勞故로 文中에 撮其要且切者 數百語하야 書于一紙하니 可謂文簡而義周也라 如以此語로 以爲嚴師하야 而硏窮得妙則句句에 活釋迦存焉이시니 勉乎哉인저 雖然이나 離文字一句와 格外奇寶는 非不用也나 且將以待別機也하노라. |
내가 비록 불초하나 옛 글에 뜻을 두어 불경의 거룩한 글로써 보배를 삼으나 그러나 그 글이 오히려 번다하고 장경의 바다가 넓어서 뒷날의 도반들이 가지를 헤쳐가면서 잎을 따는 수고로움을 면치 못할까 하여 글 가운데 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것 수백 마디를 간추려서 한 장에 쓰니 참으로 글은 간략하나 뜻은 주밀하다고 할만하다. 만일 이 말로써 스승을 삼아 연찬하고 궁구하여 묘리를 얻으면 자자구구에 산 석가여래가 나타나실 것이니 부디 힘쓸지어다. 그렇더라도 글자를 떠난 한 글귀와 격에 벗어난 기묘한 보배를 쓰지 않으려는 것도 아니지만 또한 장차 특별한 기틀을 기다리고자 한다.
嘉靖 甲子(1564) 夏 淸虛堂 白華道人 序
1. 한 물건
有一物於此하니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
2.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오심
佛祖出世가 無風起浪이로다. |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오심은 마치 바람도 없는데 물결을 일으킨 것이다.
3. 불법의 방편
然이나 法有多義하고 人有多機하니 不妨施設이로다. |
그러나 법에도 여러 가지 뜻이 있고, 사람에게도 온갖 기틀이 있으므로 여러 가지 방편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4. 굳이 이름 하건대
强立種種名字하야 惑心惑佛惑衆生이라 하니 不可守名而生解하고 當體便是니 動念卽乖니라. |
굳이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서 마음이다, 부처다, 중생이라 하였으나 이름에 얽매어 분별을 낼 것이 아니다. 다 그대로 옳다. 그러나 한 생각이라도 움직이면 곧 어그러진다.
5. 삼처전심
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說者는 爲敎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敎是佛語니라. |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6. 마음에서 얻으면
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敎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序言細語가 皆是敎外別傳禪旨니라. |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방긋 웃는 것이 모두 교의 자취만 될 것이고,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밖에 따로 전한 선지가 될 것이다.
7. 한 마디 하노니
吾有一言하니 絶慮忘緣하고 兀然無事坐하니 春來草自靑이로다. |
내가 한 마디 말을 할까 한다. 생각 끊고 반연을 쉬고 일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으니 봄이 오매 풀이 저절로 푸르구나.
8. 한마음법과 견성법
敎門은 惟傳一心法하고 禪門은 惟傳見性法하니라. |
교문에는 오직 한 마음 법만을 전하고 선문에는 오직 견성하는 법만을 전하였다.
9. 교와 선
然이나 諸佛說經은 先分別諸法하고 後說畢竟空하되 祖師示句는 迹絶於意地하고 理顯於心源이니라. |
그러나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에는 먼저 모든 법을 가려 보이시고, 나중에 공한 이치를 말씀하셨다. 조사들의 가르침은 자취가 생각에서 끊어지고 이치가 마음의 근원에 드러났다.
10. 활과 활줄
諸佛은 說弓하고 祖師는 說絃하시니 佛說無碍之法은 方歸一味라 拂此一味之迹하야사 方現祖師所示一心이니 故로 云庭前柏樹子話는 龍藏所未有底라 하니라. |
부처님은 활같이 말씀하시고 조사들은 활줄같이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걸림없는 법을 설하신 것은 바로 한 맛에 들아감이다. 이 한 맛의 자취마저 떨쳐버려야 바야흐로 조사가 보인 한 마음이 드러내게 된다. 그러므로 {뜰 앞에 잣나무이니라}고 한 화두는 용궁의 장경에도 없다고 말한 것이다.
11. 먼저 참다운 가르침부터
故로 學者는 先以如實言敎로 委辨不變隨緣二義가 是自心之性相이며 頓悟漸修兩門이 是自行之始終然後에 放下敎義하고 但將自心現前一念하야 參詳禪旨則必有所得하리니 所謂出身活路니라. |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부처님의 참다운 가르침으로써 변하지 않는 것과 인연 따르는 두 가지 뜻이 곧 네 마음의 본 바탕과 형상이고, 단박 깨치고 오래 닦는 두 가지 문이 공부의 시작과 끝임을 자세히 가려 알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 교의 뜻을 내버리고 오로지 그 마음이 두렷이 드러난 한 생각으로 써 참선한다면 반드시 얻은 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뛰쳐나온 살길이다.
12. 활구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요 莫參死句어다. |
대저 배우는 이들은 활구를 참구할 것이요, 사구를 참구하지 말아야 한다.
13. 고양이 쥐 잡듯
凡本參公案上에 切心做工夫하되 如鷄抱卵하며 如猫捕鼠하며 如飢思食하며 如渴思水하며 如兒憶母하면 必有透徹之期하라. |
무릇 공안을 참구하되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기를 마치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것과 같이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하고, 주린 사람이 밥 생각하듯 하며, 목마른 사람이 물을 생각하듯 하며, 어린애가 엄마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꿰뚫어 사무칠 때가 있을 것이다.
14. 참선의 세 가지 요건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라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廢器하니라. |
참선에는 반드시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큰 신심이고, 둘째는 큰 분심이며, 셋째는 큰 의심이다.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이 소용없는 물건이 되고 말 것이다.
15. 개에게 불성이 없다?
日用應緣處에 只擧狗子無佛性話하되 擧來擧去하며 疑來疑去에 覺得沒理路 沒義路 沒滋味하야 心頭熱悶時가 便是當人放身命處며 亦是成佛作祖底基本也니라. |
일상생활 속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도 오직 {어찌하여 개한 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라고 한 화두를 끊임없이 들어, 이치의 길 끊어지고 뜻 길이 사라져 아무 맛도 없어지고 마음이 답답할 때가 바로 그 사람의 몸과 목숨을 내던질 곳이며, 또한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될 대목이다.
16. 화두를 듦에 있어서의 병통
話頭를 不得擧起處에 承當하며 不得思量卜度하며 又不得將迷待悟하며 就不可思量處하야 思量하면 心無所之함이 如老鼠入牛角하야 便見倒斷也하리라 又尋常에 計較安排底도 是識情이며 隨生死遷流底도 是識情이며 怖惶底도 是識情이어늘 今人이 不知是病하고 只管在裡許하야 頭出頭沒하나니라. |
화두를 들어 일으키는 곳에서 알아맞히려 하지도 말고, 생각으로 헤아리지도 말라. 또한 깨닫기를 기다리지도 말고 더 생각할 수 없는 데까지 나아가 생각하면 마음이 더 갈 곳이 없어 마치 늙은 쥐가 쇠뿔 속으로 들어가다가 잡히듯 할 것이다. 또 평소 이런가 저런가 따지고 맞춰 보는 것이 식정이며, 생사를 따라 굴러다니는 것이 식정이며, 무서워하고 갈팡질팡하는 것도 또한 식정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 병통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 속에서 빠졌다 솟았다 할뿐이다.
17. 조사관을 뜷어라.
此事는 如蚊子가 上鐵牛하야 更不問如何若何하고 下嘴不得處에 棄命一 하면 和身透入이니라. |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드는 것과 같아서, 함부로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떼어놓고 한 번 뚫어 보면 몸뚱이 째 들어갈 것이다.
18. 공부는 거문고 줄 고르듯
工夫는 如調絃之法하야 緊緩에 得其中이니 勤則近執着하고 忘則落無明하리니 惺惺歷歷하고 密密綿綿이니라. |
공부는 거문고 줄을 고르듯 팽팽하고 늦음이 알맞아야 한다. 너무 애쓰면 집착하기 쉽고 잊어버리면 무명에 떨어지게 된다. 성성하고 역력하게 하면서도 차근차근 끊임없이 해야 한다.
19.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
工夫가 到行不知行하며 坐不知坐하면 當此之時하야八萬四千魔軍이 在六根門頭伺候라가 隨心生起하나니 心若不起하면 爭如之何리요. |
공부가 걸어가면서도 걷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는 줄 모르게 되면, 이때 팔만사천의 마군이가 육근 문 앞에 지키고 있다가 마음을 따라 온갖 생각이 들고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슨 상관이 있으랴.
20. 마의 경계란?
起心은 是天魔요 不起心은 是陰魔요 或起或不起는 작韶彿ご?然이나 我正法中엔 本無如是事니라. |
일어나는 마음은 천마요 일어나지 않는 마음은 음마요, 혹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도 않기도 하는 것은 번뇌마이다. 그러나 우리 바른 법 가운데에는 본래 그런 일이 없다.
21. 타성일편
工夫가 若打成一片則縱今生에 透不得이라도 眼光落地之時에 不爲惡業所牽이니라. |
공부가 한 고비를 넘긴다면 비록 금생에 깨치지 못하더라도 마지막 눈감을 때에 악업에 끌리지는 않을 것이다.
22. 대자 참선하는 이는
大抵參禪者는 還知四恩이 深厚?아 還知四大醜身이 念念衰朽?아 還知人命이 在呼吸?아 生來値遇佛祖?아 及聞無上法하고 生希有心?아 不離僧堂하여 守節?아 不與隣單으로 雜話?아 切忌鼓扇是非?아 話頭가 十二時中에 明明不昧?아 對人接話時에 無間斷?아 見聞覺知時에 打成一片?아 返觀自己하야 捉敗佛祖?아 今生에 決定續佛慧命?아 起坐便宜時에 還思地獄苦?아 此一報身이 定脫輪廻?아 當八風境하야 心不動?아 此是參禪人의 日用中點檢底道理니 古人云 此身不向今生度하면 更待何生度此身이리요 하니라. |
대저 참선하는 이는 이렇게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네 가지 은혜가 깊고 두터운 것을 알고 있는가?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 더러운 몸이 순간순간 썩어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람의 목숨이 숨 한 번에 달린 것을 알고 있는가? 일찍이 부처님이나 조사같은 이를 만나고서도 그대로 지나쳐 버리지 않았는가? 높고 거룩한 법을 듣고서도 기쁘고 다행한 생각을 잠시라도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공부하는 곳을 떠나지 않고 수도 인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곁에 있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며 지내지 않는가? 분주하게 시비나 일삼고 있지 않는가? 화두가 어느 때나 또렷또렷하게 매하지 않는가? 남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도 화두가 끊임없이 되는가? 보고 듣고 알아차릴 때에도 한결같은가? 제 공부를 돌아볼 때 부처와 조사를 붙잡을만한가? 금생에 꼭 부처님의 지혜를 이룰 수 있을까? 앉고 눕고 편할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이 육신으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가? 여덟 가지 바람이 불어올 때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이것이 참선하는 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때때로 점검해야 할 도리이다. 옛 어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내 몸을 이생에 못 건지면 어느 생을 기다려서 건지리오.}
23. 말을 배우는 무리들은
學語之輩는 說時似悟나 對境還迷하나니 所謂言行이 相違者也라. |
말을 배우는 무리들은 말할 때에는 깨친 듯 하다가도 실지 경계에 당하게 되면 그만 아득하게 된다. 이른바 말과 행동이 서로 틀리는 것이다.
24. 칠통을 깨뜨려야
若欲敵生死인댄 須得這一念子를 爆地一破하야사 方了得生死하리라. |
만약 생사를 막아내려면 이 한 생각을 탁 깨뜨려야 비로소 생사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
25. 눈 밝은 스승을 찾아라.
然이나 一念子를 爆地一破然後에도 須訪明師하야 決擇正眼이니라. |
그러나 한 생각을 깨친 뒤에라도 반드시 밝은 스승을 찾아가 눈알이 바른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26. 다만 그대의 눈 바른 것만을 귀하게 여기네.
古德이 云 只貴子眼正이요 不貴汝行履處라 하니라. |
옛 어른이 말씀하시기를 다만 자네의 눈 바른 것을 귀하게 여길 뿐이지 자네의 행실을 보려고 하지 않네}라고 하였다.
27. 굽히지도 높이지도 말라
願諸道者는 深信自心하야 不自屈不自高니라. |
바라건대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을 깊이 믿어, 스스로 굽히지도 말고 높이지도 말아야 한다.
28. 먼저 마음을 깨달아야
迷心修道하면 但助無明이니라. |
마음을 모르고 도를 닦는다는 것은 오직 무명만을 도와줄 뿐이다.
29. 다만 범부의 생각을 없애라
修行之要는 但盡凡情이요 別無聖解니라. |
수행의 요결은 다만 범부의 생각을 떨어지게 할뿐이지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다.
30. 버리고 구함이 모두 더럽힘이다.
不用捨衆生心이요 但莫染汚自性하라 求正法이 是邪니라. |
중생의 마음을 버릴 것 없이, 다만 자성을 더럽히지 말라. 바른 법을 찾는 것이 곧 바르지 못한 사도니라.
31. 번뇌를 끊어야 열반이다.
斷煩惱가 名二乘이요 煩惱不生이 名大涅槃이니라. |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이요,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큰 열반이다.
32. 한 생각도 생겨남이 없다.
須虛懷自照하야 信一念緣起無生이어다. |
모름지기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비춰 보아, 한 생각 인연 따라 일어나는 것이 사실은 일어남이 없음을 믿어야 한다.
33. 일어나는 그 곳이 원래 비어 있다.
諦觀殺盜淫妄이 從一心上起하면 當處便寂이니 何須更斷이리요. |
죽이고 도둑질하고 음란 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다 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자세히 살펴보라. 그 일어나는 곳이 곧 비어 없는데 무엇을 다시 끊으리요.
34. 환을 여의면 곧 깨달음이다.
知幻卽離라 不作方便이며 離幻卽覺이라 亦無漸次니라. |
환상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고, 환상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또한 닦아 갈 것도 없다.
35. 생사와 열반이 본래 없는 것
衆生이 於無生中에 妄見生死涅槃이 如見空花起滅이니라 |
중생이 나는 것 없는 가운데서 망녕되게 생사와 열반을 보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 꽃이 기멸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36. 다시 열반을 따로 얻은 바가 없다.
菩薩이 度衆生入滅度나 又實無衆生이 得滅度니라. |
보살이 중생을 건져 열반을 들게 했다 할지라도 실은 열반을 얻은 중생이 없는 것이다.
37. 버릇은 한 번에 없어지지 않는다.
理雖頓悟나 事非頓除라. |
이치를 단박에 깨칠 수 있으나, 버릇은 한꺼번에 가시어지지 않는다.
38. 이것이 마도이다.
帶婬修禪은 如蒸沙作飯이요 帶殺修禪은 如塞耳叫聲이요 帶偸修禪은 如漏瓮求滿이요帶妄修禪은 如刻糞爲香이니 縱有多智라도 皆成魔道니라. |
음란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 같고, 살생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제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으며, 도둑질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새는 그릇에 가득 차기를 바라는 것 같고, 거짓말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똥으로 향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 이런 것들은 비록 많은 지혜가 있더라도 다 악마의 길을 이룰 뿐이다.
39. 마음 계율을 깨뜨리지 말라
無德之人은 不依佛戒하며 不護三業하며 放逸懶怠하야 輕慢他人하며 較量是非로 而爲根本하니라. |
덕이 없는 사람은 부처님의 계율에 의지하지 않고, 삼업을 지키지 않는다. 함부로 놀아 게을리 지내며, 남을 깔보아 따지고 시비하는 것을 일삼고 있다.
40. 계를 지켜야
若不持戒면 尙不得疥癩野干之身이온대 況淸淨菩提果를 可冀乎아. |
만약 계행이 없으면 비루먹은 여우의 몸도 받지 못한다는 데, 하물며 청정한 지혜의 열매를 바랄 수 있겠는가?
41. 애욕을 끊어야
欲脫生死인댄 先斷貪欲과 及除愛渴이어다. |
생사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탐욕을 끊고 애욕의 불꽃을 꺼버려야 한다.
42. 걸림 없는 지혜
無碍淸淨慧가 皆因禪定生이니라. |
걸림 없는 청정한 지혜는 다 선정에서 나온다.
43. 선정에 들게 되면
心이 在定則能知世間生滅諸相하니라. |
마음이 정에 들면 세간의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는 모든 일을 다 밝게 알 수 있다.
44.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야
見境心不起가 名不生이요 不生이 名無念이요 無念이 名解脫이니라. |
어떤 경계를 당하여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나지 않음이라 하고, 나지 않는 것을 무념이라 하며 무념의 상태를 해탈이라 한다.
45. 본래 그대로 열반이다.
修道證滅이 是亦非眞也요 心法本寂이 乃眞滅也라 故로 曰 諸法從本來로 常自寂滅相이라 하니라. |
도를 닦아 열반을 얻는다면 이것은 또한 진리가 아니다. 심법이 본래 고요한 것임을 알아야 그것이 참 열반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본래부터 늘 그대로 열반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46. 보시(布施)
貧人이 求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수대로 나누어 주라. 한 몸처럼 가엾이 여기면 이것이 참 보시니라.
47. 성내지 말라
有人이 來害어든 當自攝心하야 勿生瞋恨하라 一念瞋心起하면 百萬障門開니라. |
누가 와서 나를 해롭게 하더라도 마음을 거두어 성내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한 생각 성내는 데에 백만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린다.
48. 인욕
若無忍行하면 萬行不成이니라. |
만약 참는 일이 없다면 보살의 육도만행도 이루어질 수 없다.
49. 마음을 지키는 일
守本眞心이 第一精進이니라. |
본바탕 천진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첫째가는 정진이다.
50. 진언을 외우는 것은
持呪者는 現業은 易制라 自行可違어니와 宿業은 難除라 必借神力이니라. |
진언을 외우는 것은 금생에 지은 업은 비교적 다스리기 쉬워서 자기 힘으로도 고칠 수가 있지만 전생에 지은 업은 지워 버리기가 어려우므로 반드시 신비한 힘을 빌려야 하는 것이다.
51. 예배
禮拜者는 敬也요 伏也니 恭敬眞性하고 屈伏無明이니라. |
예배란 공경이요 굴복이다.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52. 염불
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면 염불이다.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도움도 없다.
53. 경을 듣는 일
聽經은 有經耳之緣과 隨喜之福하며 幻軀는 有盡이나 實行은 不亡이니라. |
경을 들으면 귀를 거치는 인연도 있게 되고, 기쁨이 따른 복도 짓게 된다. 물거품 같은 이 몸은 다할 날이 있으나 참다운 행은 헛되지 않는다.
54. 간경
看經은 若不向自己上做工夫하면 雖看盡萬藏이라도 猶無益也니라. |
경을 보되 자기 마음속을 돌이켜봄이 없다면 비록 팔만대 장경을 다 보았다 하더라도 아무런 보탬이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55. 입만 배우지 말라
學未至於道하고 衒耀見聞하야 徒以口舌辯利로 相勝者인댄 如厠屋塗丹 ?이니라. |
배워 도를 이루기 전에 남에게 자랑하려고 한갓 말재주만 부려 서로 이기려고 한다면 마치 변소에 단청하는 것과 같다.
56. 외전
出家人이 習外典하면 如以刀割泥하야 泥無所用이요 而刀自傷焉이니라. |
출가한 사람이 외전을 공부하는 것은 마치 칼로 흙을 베는 것과 같아서 흙은 아무 소용도 없는데 칼만 망가지게 된다.
57. 출가하는 뜻
出家爲僧이 豈細事乎아 非求安逸也며 非求溫飽也며 非求名利也라 爲生死也며 爲斷煩惱也며 爲續佛慧命也며 爲出三界度衆生也니라. |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몸의 편안함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며,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을 면하려는 것이며,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삼계에 뛰어나서 중생을 건지려는 것이다.
58. 덧없는 불꽃
佛云, 無常之火가 燒諸世間이라 하고 又云, 衆生苦火가 四面俱焚이라 하며 又云 諸煩惱賊이 常伺殺人이라 하니라 道人은 宜自警悟하야 如救頭燃하라. |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덧없는 불꽃이 온 세상을 태운다 하셨고, 또 중생들의 고뇌의 불이 사방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하셨으며, 또 모든 번뇌의 적이 항상 너희들을 죽이려고 엿보고 있다 하셨다. 그러므로 수도인은 마땅히 스스로 깨우쳐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해야 한다.
59. 명리를 버리라
貪世浮名은 枉功勞形이요 營求世利는 業火加薪이니라 |
세상의 뜬 이름을 탐하는 것은 쓸데없이 몸만 괴롭게 하는 것이요, 세상의 잇속을 따라 허덕이는 것은 업의 불에 섶을 더 보태는 것이다.
60. 명리승
名利衲子는 不如草衣野人이니라. |
이름과 재물을 따르는 납자는 초의를 걸친 야인만도 못하다.
61. 가사 입은 도둑
佛云하사대 云何賊人이 假我衣服하고 稗販如來하야 造種種業고 하시니라. |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도둑들이 나의 옷을 빌려 입고, 부처를 팔아 온갖 나쁜 업을 짓고 있느냐고 하셨다.
62. 한 덩이의 밥
於戱라 佛子여 一衣一食이 莫非農夫之血이요 織女之苦어늘 道眼이 未明하면 如何消得이리요. |
아! 불자여. 그대의 한 벌 옷과 한 그릇 밥이 농부들의 피요, 직녀들의 땀이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떻게 삭여 낼 것인가.
63. 시주받은 과보
故로 曰 要識披毛戴角底?아 卽今虛受信施者是니라 有人은 未飢而食하고 未寒而衣하니 是誠何心哉아 都不思目前之樂이 便是身後之苦也로다. |
그러므로 말하기를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주는 것을 공부하지 않으면서 거저 받아먹는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라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또 먹고, 춥지 않아도 더 입으니 이 무슨 심사일까? 도대체 눈앞의 쾌락의 바로 후생이 괴로움인 줄을 생각지 않는구나.
64. 차라리 쇳물을 마시라
故로 曰 寧以熱鐵로 纏身이언정 不受信心人衣하며 寧以洋銅灌口언정 不受信心人食하며 寧以鐵? 投身이언정 不受信心人房舍等이라 하니라. |
그러므로 이르기를 차라리 뜨거운 철판을 몸에 두를지언 정 신심 있는 이가 주는 옷을 입지 말며, 차라리 쇳물을 마실지언정 신심 있는 이가 주는 음식을 먹지 말고, 차라리 끊는 가마솥에 뛰어들지언정 신심 있는 이가 주는 집에 거처하지 말라}한 것이다.
65. 시주를 받을 때 화살 받듯 하라
故로 曰 道人은 進食을 如進毒하고 受施를 如受箭이니 幣厚言甘은 道人所畏니라. |
그러므로 말하기를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에 독약을 먹는 것 같이 하고, 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하라고 한 것이다.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으로서는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66. 칼 가는 숫돌
故로 曰 修道之人은 如一塊磨刀之石하야 張三也來磨하고 李四也來磨하야 磨來磨去에 別人刀는 快하되 而自家石은 漸消라 然이나 有人은 更嫌他人이 不來我石上磨하나니 實爲可惜이로다. |
그러므로 말하기를 도를 닦는 사람은 한 개의 숫돌과 같아서 장서방이 와서 갈고, 이 서방이 와서 갈아 가면 남의 칼은 잘 들겠지만 나의 돌은 점점 닳아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도리어 남이 와서 돌에 칼을 갈지 않는 것을 걱정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67. 가사 아래 사람의 몸을 잃음
故로 古語에 亦有之하니 曰 三途苦가 未是苦라 袈裟下失人身이 始是苦也라 하니라. |
그러므로 옛 말에 또한 이르기를 삼악도의 고통이 고통이 아니라, 가사를 입었다가 사람의 몸을 잃는 것이 참말 고통이다}라고 하였다.
68. 더러운 가죽 주머니
哉라 此身이여 九孔常流하고 百千癰疽에 一片薄皮로다 又云 革囊盛糞하야 膿血之聚가 臭穢可鄙라. 無貪惜之는 何況百年將養이나 一息背恩이니라. |
우습다, 이 몸이여. 아홉 구멍에서는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나오고, 백 천 가지 부스럼 덩어리를 한 조각 엷은 가죽으로 싸 놓았구나. 또 가죽 주머니에는 똥이 가득 담기고, 피고름 뭉치라. 냄새나고 더러워 조금도 탐나거나 아까울 것이 없다. 더구나 백년을 잘 기른다 해도 숨 한 번에 은혜를 저버리고 마는 것이랴.
69. 참회(懺悔)
有罪卽懺悔하고 發業卽? 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
허물이 있거든 곧 참회하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곧 부끄러워 할 줄 알면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다.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질 것이다.
70. 하나의 바리때와 한 벌 옷
道人은 宜應端心하야 以質直爲本하야 一瓢一衲으로 旅泊無累니라. |
도인은 마땅히 마음을 단정히 하여 검박하고 곧은 마음으로써 근본을 삼아야 한다. 한 개의 표주박과 한 벌의 누더기 옷이면 어디를 가나 걸릴 것이 없다.
71. 무심도인
凡夫는 取境하고 道人은 取心이니 心境을 兩忘하야사 乃是眞法이니라. |
범부들은 눈앞의 현실에만 따르고, 수도인은 마음만 붙잡으려 한다. 그러나 마음과 바깥 현실 두 가지를 다 잊는다면 이것이 바로 참다운 법이다.
72. 보살과 마군
聲聞은 宴坐林中이나 被魔王捉하고 菩薩은 遊戱世間이나 外魔不覓이니라. |
성문은 숲 속에 편히 앉아서도 마왕에 붙잡히고, 보살은 세간에 노닐어도 외도와 마군이 보지 못한다.
73. 임종 시에
凡人이 臨命終時에 但觀五蘊皆空하야 四大無我요 眞心無相하여 不去不來니 生時에도 性亦不生하고 死時에 性亦不去라 湛然圓寂하고 心境이 一如라 但能如是直下頓了하면 不爲三世所拘繫니 便是出世自由人也라 若見諸佛이 無心隨去하며 若見地獄이라도 無心怖畏니 但自無心하면 同於法界니 此卽是要節也라 然則平常은 是因이요 臨終은 是果니 道人은 須着眼看하라. |
누구든지 임종할 때에는 다만 오온이 다 빈 것이어서 네 가지 원소가 나라고 할 것이 없고, 참마음은 모양이 없어 가는 것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다. 날 때에도 성품은 또한 난 바가 없고, 죽을 때에도 성품은 또한 가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맑고 고요하여 마음과 경계가 둘이 아닌 하나인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이 단박 깨친다면 삼세 인과에 이끌리거나 얽매이지 않게 될 것이니 이것이 곧 세상을 뛰어난 자유인이다. 만약 부처님을 만나더라도 따라 갈 마음이 없고, 지옥에 가더라도 두려운 마음이 없어야 한다. 다만 스스로 무심하게 되면 법계와 같이 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요긴한 것이다. 그러므로 평상시에 좋은 씨를 심고 임종할 때에 좋은 열매를 거둘 것이다. 도를 닦는 사람은 모름지기 이곳에 주의하여야 한다.
74. 마지막 순간에 분별을 두지 말라
凡人이 臨終命時에 若一毫毛라도 凡聖情量이 不盡하고 思慮를 未忘하면 向驢胎馬腹裡하야 托質하며 泥犁? 湯中에 煮?하며 乃至依前再爲 蟻蚊 이니라. |
사람이 임종할 때에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이다 범부다 하는 생각이 끊어지지 않게 되면 나귀나 말의 뱃속에 끌려들거나 지옥의 끊는 가마 속에 처박히게 되며, 혹은 개미나 모기 같은 것이 되기도 할 것이다.
75. 학인의 병통
禪學者가 本地風光을 若未發明則孤? 玄關을 擬從何透리요 往往斷滅空으로 以爲禪하며 無記空으로 以爲道하며 一切俱無로 以爲高見하나니 此는 冥然頑空이니 受病幽矣니라. 今天下之言禪者가 多坐在此病이니라. |
참선하는 사람이 본래 면목을 만약 밝히지 못한다면 높고 아득한 진리의 문을 어떻게 뚫을 것인가. 왕왕 어떤 이는 아주 끊어 없어진 빈 것으로써 참선을 삼기도 하고, 무엇이라 말할 수 없이 빈 것으로써 도를 삼기도 하며 일체 모두 없는 것으로써 높은 소견을 삼기도 하나니 이것은 컴컴하게 비기만한 것이라 병든 바가 깊다. 지금 천하에 참선을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이런 병에 걸려 있다.
76. 종사의 병통
宗師도 亦有多病하니 病在耳目者는 以? 眉努目과 側耳點頭로 爲禪하며 病在口舌者는 以顚言倒語와 胡喝亂喝로 爲禪하며 病在手足者는 以進前後退와 指東畵西로 爲禪하며 病在心腹者는 以窮玄究妙와 超情離見으로 爲禪하나니 據實而論컨대 無非是病이니라. |
종사도 또한 병이 많다. 병이 귀와 눈에 있는 자는 눈을 부릅뜨고, 귀를 기울이며, 머리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선을 삼고, 병이 입과 혀에 있는 자는 횡설수설 되지 않은 말과 함부로 {할}하는 것으로써 선을 삼는다. 병이 손발에 있는 자는 나아갔다 물러갔다 이쪽저쪽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선을 삼으며, 병이 마음 가운데 있는 자는 진리를 찾아내고 오묘한 것으로써 선을 삼는다. 사실대로 말하면 어느 것이고 병 아닌 것이 없다.
77. 장승의 노래
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이요 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故로 古人이 知師恩曰 不重先師道德이 只重先師不爲我說破라 하니라. |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임은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 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여, 배우는 자가 참으로 생각하고 의논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하기를 스님의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는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78. 마조의 일간
大抵學者는 先須詳辨宗途니 昔에 馬祖一喝也에 百丈은 耳聾하고 黃檗은 吐舌하고 這一喝은 便是拈花消息이며 亦是達摩初來底面目이라 ?라 此臨濟宗之淵源이니라. |
대저 배우는 사람은 먼저 종파의 갈래부터 자세히 가리어 알아야 한다. 옛날에 마조스님이 한 번 {할}하는데, 백장스님은 귀가 먹고, 황벽스님은 혀가 빠졌다.
이 한 {할}이야말로 곧 부처님께서 꽃을 드신 소식이며, 또한 달마대사의 처음 오신 면목이다. 아! 이것이 임제종의 근원이 된 것이다.
79. 선종의 다섯 갈래
大凡祖師宗途가 有五하니 曰臨濟宗 曰曺洞宗 曰雲 門宗 曰? 仰宗 曰法眼宗이니라.臨濟宗은 本師釋迦佛로 至三十三世六祖慧能大師下直傳하니 曰南嶽懷讓 曰馬祖道一 曰百丈懷海 曰黃檗希運 曰臨濟義玄 曰興化存奬 曰南院道? 曰風穴延沼 曰首山省念 曰汾陽善昭 曰慈明楚圓曰楊岐方會 曰白雲守端 曰五祖法演 曰圓悟克勤 曰俓山宗? 禪師等이니라. |
무릇 조사의 종파에 다섯 갈래가 있다. 즉 임제종, 조동종, 운문종, 위앙종, 법앙종 등이다. 임제종은 본사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33대 되는 육조 혜능대사의 밑에서 곧게 전하여 내려가기를 남악회양, 마조도일, 백장회해, 황벽희운, 임제의현, 흥화존장, 남원도옹, 풍혈연소, 수산성념, 분양선소, 자명초원, 양기방회, 백운수단, 오조법연, 원오극근, 경산종고 선사 등이다.
80. 조동종
曹洞宗은 六祖下傍傳이니 曰靑原行思 曰石頭希遷 曰藥山惟儼 曰雲巖曇晟 曰洞山良价 曰曹山耽章 曰雲居道膺禪師等이니라. |
조동종은 육조의 아래에서 곁갈래의 청원행사, 석두희천, 약산유엄, 운암당성, 동산양개, 조산탐장, 운거도웅 선사 등이다.
81. 운문종
雲門宗은 馬祖傍傳이니 曰天皇道悟 曰龍潭崇信 曰德山宣鑑 曰雪峰義存 曰雲門文偃 曰雪竇重顯 曰天衣義懷禪師等이니라. |
운문종은 마조의 곁갈래로 천황도오, 용담숭산, 덕산선감, 설봉의존, 운문문언, 설두중현, 천의의회 선사 등이다.
82. 위앙종
위仰宗은 百丈傍傳이니 曰 위山靈祐 曰仰山慧寂 曰香嚴智閑 曰南塔光湧 曰芭蕉慧淸 曰곽山景通 曰無着文喜禪師等이니라. |
위앙종은 백장의 곁갈래로 위산영우, 앙산혜적, 향엄지한, 남탑광용, 파초혜청, 곽산경통, 무착문희 선사 등이다.
83. 법안종
法眼宗은 雪峰傍傳이니 曰玄沙師備 曰地藏桂琛 曰法眼文益 曰天台德韶 曰永明延壽 曰龍濟紹修 曰南臺守安禪師等이니라. |
법안종은 설봉의 곁갈래로 현사사비, 지장계침, 법안문익, 천태덕소, 영명연수, 용제소수, 남대수안 선사 등이다.
84. 임제종의 가풍
臨濟家風은 赤手單刀로 殺佛殺祖하며 辨古今於玄要하고 驗龍蛇於主賓이라. 操金剛寶劍하여 掃除竹木精靈하며 奮獅子全威하여 震裂狐狸心膽이로다. 要識臨濟宗?아 靑天轟霹靂이요 平地起波濤로다. |
임제 가풍은 맨손에 한 자루의 칼을 들고 부처도 조사도 죽이고, 예와 이제를 삼현 삼요로써 판단하며, 용과 뱀을 주인과 손으로 징험한다. 금강이 보검으로 도깨비를 쓸어내고 사자의 위엄을 떨쳐 여우와 삵쾡이의 넋을 찢는다. 임제의 종지를 알겠는가? 푸른 하늘에 벼락치고 평지에 물결 인다.
85. 조동종의 가풍
曹洞家風은 權開五位하여 善接三根하며 橫抽寶劍하며斬諸見稠林하며 妙協弘通하여 截萬機穿鑿이다. 威音那畔에 滿目煙光이요 空劫已前에 一壺風月이로다. 要識曹洞宗?아 佛祖未生空劫外에 正偏不落有無機로다. |
조동 가풍은 권도로 오위를 열어 세 가지 근기를 잘 다루며, 보검을 빼어 들고 모든 사건이 자라는 빽빽한 숲을 베어내며 널리 통하는 길을 묘하게 맞추어서 천만 가지 모든 생각을 끊고 천착하여 가도다. 위음왕불 나시기 전 눈에 가득찬 풍광이요,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 신선세계 경치로다. 조동종을 알겠는가? 부처님과 조사도 안 나시고 아무 것도 없는 그대로, 바른 것, 치우친 것, 있는 것이나 없는 것에 떨어지지 않는다.
86. 운문종의 가풍
雲門家風은 劍峰有路하고 鐵壁無門이라 蒜露布포葛藤하고 剪却常情見解니라. 迅電은 不及思量하고 烈焰에 寧容湊泊이리요. 要識雲門宗?아 주杖子勃跳上天하고 盞子裡에 諸佛이 說法이로다. |
운문 가풍은 칼날에 길이 있고, 철벽에는 문이 없다. 온 천하의 갈등을 흔들어 엎고 못된 소견을 잘라 내버리다. 빠른 번개와 같이 미처 생각할 수 없고 활활 타는 불꽃 속에 어찌 뛰어들어 갈 수 있을까. 운문종을 알겠는가? 주장자가 날아 하늘 높이 오르고 잔속에서 모든 부처님이 설법을 한다.
87. 위앙종의 가풍
위仰家風은 師資唱和하고 父子一家로다 脇下書字하니 頭角이 觴嶸이요 室中驗人에 獅子腰折이로다. 離四句絶百非를 一槌粉碎하니 有兩口無一舌이여 九曲珠通이로다. 要識 仰宗?아 斷碑는 橫古路하고 鐵牛는 眠少室이로다. |
위앙 가풍은 스승과 제자가 부르면 화답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한 집에 살고 있네. 옆구리에 글자 쓰고 머리 위에 뿔이 높이 솟았구나. 방안에서 사람들을 시험하니 사자 허리 부러지다 네 가지 말 다 여의고, 백가지 아닌 것도 모두 끊어 버려 한 망치로 부수었네. 입은 둘이 있으나 혀는 하나도 없는 것이 구곡주를 꿰뚫었다. 위앙종을 알겠는가? 부러진 비석 옛 길에 쓰려져 있고 무쇠 소 작은 집에 자네.
88. 법안종의 가풍
法眼家風은 言中有響하고 句裡藏鋒이라 壻?는 常干世界하고 鼻孔은 磨壻家風이라. 風柯月渚는 顯露眞心하고 翠竹黃花가 宣明妙法이로다. 要識法眼宗?아 風送斷雲歸嶺去하고 月和流水過橋來로다. |
법안 가풍은 말끝에 메아리가 울려오고 글 속에 칼날이 숨었구나, 해골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콧구멍은 어느 때나 그 가풍을 불어 내네. 바람 부는 나뭇가지와 달 비치는 물가에는 참마음이 드러나고 푸른 대와 누른 국화 묘한 법을 환히 밝혀 주네. 법안종을 알겠는가? 맑은 바람 구름을 산마루로 보내 주고 밝은 달물에 떠서 다리 지나 흘러오네.
89. 임제할 덕산방
臨濟喝德山棒이 皆徹證無生하여 透頂透底라 大機大用이 自在無方하여 全身出沒하며 全身擔荷하여 退守文殊普賢大人境界니 然이나 據實而論컨대 此二師도 亦不免偸心鬼子니라. |
임제의 할과 덕산의 방망이가 다 나는 것 없는 도리를 철저하게 증득하여 꼭대기에서 밑바닥까지 꿰뚫었다. 큰 기틀과 큰 작용이 자유자재하여 어디나 전신으로 출몰하며 전신으로 짐을 져, 물러나 문수와 보현의 대인 경계를 지킨다 하더라도 실상대로 말한다면 이 두 분도 또한 도깨비가 됨을 면치 못할 것이다.
90.부처와 조사 보기를 원수 보 듯 하라
大丈夫는 見佛見祖를 如寃家하나니 若着佛求하면 被佛縛이요. 若着祖求하면 被祖縛이라 有求皆苦니 不如無事니라. |
대장부는 부처님이나 조사 보기를 마치 원수와 같이하여야 한다. 만약 부처에게 매달려 구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부처에게 얽매인 것이요, 만약 조사에게 매달려 구하는 것이 있다면 또한 조사에게 얽매이는 것이 된다. 무엇이든 구하는 것이 있다면 다 고통이 되므로 아무 일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91. 거룩한 빛
神光이 不昧하여 萬古徽猷로다 入此門來에 莫存知解? |
거룩한 빛 어둡지 않아 만고에 환하여라. 이 문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
선가귀감(禪家龜鑑)
저자 - 서산 대사, 휴정(休靜)스님
발췌 / 한국불교대학 교재편찬회
감수(監修) - 무일(無一) 우학스님 / 출판사 - 도서출판 좋은인연
有一物於此 從本以來 昭昭靈靈 不曾生不曾滅 名不得狀不得.
유일물어차 종본이래 소소영영 부증생부증멸 명부득상부득.
여기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생겨나지도 않았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모양 또한 그릴 수 없다.
佛祖出世 無風起浪.
불조출세 무풍기랑.
부처님과 조사(祖師)가 세상에 나오심은 마치 바람 없는데 물결이 일으킨 것이다.
然 法有多義 人有多機 不妨施設.
연 법유다의 인유다기 불방시설.
그러나 법에도 여러 가지 뜻이 있고, 사람에게도 온갖 기질이 있는지라. 여러 가지 방편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强立種種名字 或心. 或佛 或衆生. 不可守名而生解 當體便是 動念卽乖.
강립종종명자 혹심. 혹불 혹중생. 불가수명이생해 당체편시 동념즉괴.
억지로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서 마음이다. 부처다. 중생이다 하였으나 이름에 얽매여 분별을 낼 것이 아니다. 다 그대로 옳은 것이다. 그러나 한 생각이라도 일으키게 되면 곧 어그러진다.
世尊 三處傳心者 爲禪旨. 一代所說者 爲敎門. 故 曰 禪是佛心 敎是佛語.
세존 삼처전심자 위선지. 일대소설자 위교문. 고 왈 선시불심 교시불어.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禪)의 뜻이요. 한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니라.
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주해> 세 곳이란, 세 곳에서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만 보이신 뜻.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이 첫째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이 둘째요.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이 셋째이다. 이른바 가섭존자가 선(禪)의 등불을 따로 받았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是故 若人 失之於口 則拈花微笑皆是敎迹.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 皆是敎外別傳禪旨.
시고 약인 실지어구 즉념화미소개시교적. 득지어심칙세간추언세어 개시교외별전선지.
그러므로 만약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든 것이나 빙긋 웃는 것이 모두 교의 자취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의 뜻이 될 것이다.
吾有一言. 絶慮忘緣 兀然無事坐 春來草自靑.
오유일언. 절려망연 올연무사좌 춘래초자청.
내가 한 마디 말을 할까 한다. 생각을 끊고 반연(絆緣)을 쉬고 일 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으니, 봄이 오니 풀이 절로 푸르구나.
敎門 惟傳一心法 禪門 惟傳見性法.
교문 유전일심법 선문 유전견성법.
교문에는 오직 한 마음에 대한 법만을 전하고, 선문에는 오직 견성 하는 법만을 전하였다.
然 諸佛說經 先分別諸法, 後說畢竟空, 祖師示句 迹絶於意地, 理顯於心源.
연 제불설경 선분별제법, 후설필경공, 조사시구 적절어의지, 이현어심원.
그러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전에는 먼저 모든 법을 가려 보이시고, 나중에 공한 이치를 말씀하셨으며, 조사들의 가르침은 자취가 생각에서 끊어지고, 이치가 마음의 근원에서 드러났다.
諸佛 說弓 祖師 說絃. 佛說無碍之法 方歸一味. 拂此一味之迹 方現祖師所示一心 故 云, 庭前栢樹子話 龍藏所未有底.
제불 설궁 조사 설현. 불설무애지법 방귀일미. 불차일미지적 방현조사소시일심 고 운, 정전백수자화 용장소미유저.
부처님께서는 활같이 말씀하시고 조사들은 활줄같이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걸림 없는 법이란 바로 한 맛에 들어감이라. 이 한 맛의 자취마저 떨쳐버려야 바야흐로 조사가 보인 한 마음이 드러내게 된다. 그러므로 ‘뜰 앞의 잣나무’라는 화두는 용궁의 장경에도 없다고 말한 것이다.
故 學者 先以如實言敎 委辨不變隨緣二義 是自心之性相 頓悟漸修兩門 是自行之始終
고 학자 선이여실언교 위변불변수연이의 시자심지성상 돈오점수양문 시자행지시종
然後 放下敎義 但將自心現前一念 參祥禪旨則必有所得 所謂出身活路.
연후 방하교의 단장자심현전일념 참상선지즉필유소득 소위출신활로.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먼저 부처님의 참다운 가르침으로써 변하지 않는 것과 인연에 따르는 두 가지 뜻이 곧 내 마음의 성품과 형상이며, 단박 깨치고, 점점 닦는 그 두 가지 문은 공부의 시작과 끝임을 자세시 가려 안 뒤에, 교의 뜻을 버리고 오로지 그 마음이 뚜렷이 드러난 한 생각으로써 참선한다면 반드시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뛰쳐나오는 살 길이니라.
大抵學者 須參活句 莫參死句
대저학자 수참활구 막참사구
대저 배우는 이들은 활구를 참구할 것이요, 사구를 참구하지 말아야 한다.
凡本參公案上 切心做工夫 如鷄抱卵 如猫捕鼠 如飢思食 如渴思水 如兒憶母 必有透徹之期.
범본참공안상 절심주공부 여계포란 여묘포서 여기사식 여갈사수 여아억모 필유투철지기.
무릇 공안을 참구하되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기를 마치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것과 같이 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 하며, 주린 사람이 밥을 생각하듯 하며, 목마른 사람이 물을 생각하듯 하며, 어린아이가 엄마를 생각하듯이 하면 반드시 꿰뚫어 사무칠 때가 있을 것이다.
參禪 須有三要 一 有大信根 二 有大憤志 三 有大疑情 苟闕其 如折足之鼎 終成廢器
참선 수유삼요 일 유대신근 이 유대분지 삼 유대의정 구궐기 여절족지정 종성폐기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마치 다리 부러진 솥과 같이 소용없는 물건이 되고 말 것이다.
日用應緣處 只擧狗子無佛性話 擧來擧去 疑來疑去 覺得沒理路 沒義路 沒滋味 心頭熱悶時 便是當人
일용응연처 지거구자무불성화 거래거거 의래의거 각득몰이로 몰의로 몰자미 심두열민시 편시당인
放身命處 亦是成佛作祖底基本也.
방신명처 역시성불작조저기본야.
일상생활 속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도 오직 ‘어찌하여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 한 화두를 끊임없이 들어, 오나가나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여 이치의 길이 끊어지고 뜻 길이 사라져 아무 맛도 모르고 마음이 답답할 때가 바로 그 사람의 몸과 목숨을 내던질 곳이며, 또한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는 근본이다.
話頭 不得擧起處 承當 不得思量卜度 又不得將迷待悟 就不可思量處 思量 心無所之 如老鼠入牛角 便見倒斷也.
화두 부득거기처 승당 부득사량복탁 우부득장미대오 취불가사량처 사량 심무소지 여노서입우각 편견도단야
화두를 들어 일으키는 곳에서 알아맞히려 하지도 말고, 생각으로 헤아리지도 말며 또한 깨닫기를 기다리지도 말지니 더 생각할 수 없는 곳에까지 나아가 생각하면 마음이 더 갈 곳이 없어, 마치 늙은 쥐가 쇠뿔 속으로 들어가다가 잡히듯 할 것이다.
又尋常 計較安排底 是識情 隨生死遷流底 是識情 怕怖慞惶底 是識情 今人 不知是病 只管在裡許 頭出頭沒
우심상 계교안배저 시식정 수생사천류저 시식정 파포장항저 시식정 금인 부지시병 지관재리허 두출두몰
또 평소에 이런가 저런가 따지고 맞춰 보는 것이 잘못된 생각이며, 생사를 따라 굴러다니는 것이 잘못된 생각이며, 무서워하고 방황하는 것도 또한 잘못된 생각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 병통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 속에서 빠졌다 솟았다 할뿐이다.
此事 如蚊子 上鐵牛 更不問如何若何 下嘴不得處 棄命一攢 和身透入.
차사 여문자 상철우 갱불문여하약하 하취부득처 기명일찬 화신투입.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드는 것과 같아서, 함부로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떼어놓고 한 번 뚫어보면 몸뚱이 째 들어갈 것이다.
工夫 如調絃之法 緊緩 得其中 勤則近執着 忘則落無明 惺惺歷歷 密密綿綿.
공부 여조현지법 긴완 득기중 근즉근집착 망즉낙무명 성성역력 밀밀면면.
공부는 거문고 줄을 고르듯 팽팽하고 늦음이 알맞아야 한다. 너무 애쓰면 집착하기 쉽고, 잊어버리면 무명에 떨어지게 된다. 오직 성성하고 역력하게 하면서도 차근차근 끊임없이 하여야야 한다.
工夫 到行不知行 坐不知坐 當此之時 八萬四千魔軍 在六根門頭伺候 隨心生起 心若不起 爭如之何.
공부 도행부지행 좌부지좌 당차지시 팔만사천마군 재육근문두사후 수심생기 심약불기 쟁여지하.
공부가 걸어가면서도 걷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는 줄 모르게 되면, 이 때 8만 4천의 마군의 무리가 육근 문 앞에 지키고 있다가 마음을 따라 온갖 생각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슨 상관이 있으랴.
起心 是天魔 不起心 是陰魔 或起或不起 是煩惱魔 然 我正法中 本無如是事.
기심 시천마 불기심 시음마 혹기혹불기 시번뇌마 연 아정법중 본무여시사.
일어나는 마음은 천마요. 일어나지 않는 마음은 음마요. 혹 일기도 하고 일지 않기도 하는 것은 번뇌마이다. 그러나 우리 바른 법 가운데에는 본래 그런 일이 없다.
工夫 若打成一片則縱今生 透不得 眼光 落地之時 不爲惡業所牽.
공부 약타성일편즉종금생 투부득 안광 낙지지시 불위악업소견.
공부가 만일 한 조각을 이룬다면 비록 금생에 깨치지 못하더라도 마지막 눈 감을 적에 악업에 이끌리지는 않을 것이다.
大抵參禪者 還知四恩 深厚麽 還知四大醜身 念念衰朽麽 還知人命 在呼吸麽 生來値遇佛祖麽 及聞無上法 生希有心麽
대저참선자 환지사은 심후마 환지사대추신 념념쇠후마 환지인명 재호흡마 생래치우불조마 급문무상법 생희유심마
대저 참선하는 이는 이렇게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네 가지 은혜가 깊고 두터운 것을 알고 있는가? 네 가지 요소로 구성 된 더러운 몸이 순간순간 썩어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람의 목숨이 숨 한 번에 달린 것을 알고 있는가? 일찍이 부처님이나 조사 같은 이를 만나고서도 그대로 지나쳐 버리지 않았는가?
不離僧堂 守節麽 不與隣單 雜話麽 切忌鼓扇是非麽 話頭 十二時中 明明不昧麽 對人接話時 無間斷麽
불리승당 수절마 불여인단 잡화마 절기고선시비마 화두 십이시중 명명불매마 대인접화시 무간단마
또 거룩한 무상 법문을 듣고서도 기쁜 생각을 잠시라도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공부하는 곳을 떠나지 않고 수도인 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곁에 있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고 지내지 않는가? 분주하게 시비나 일삼고 있지나 않은가? 화두가 십이시중 어느 때나 똑똑히 들리고 있는가?
見聞覺知時 打成一片麽 返觀自己 捉敗佛祖麽 今生 決定續佛慧命麽 起坐便宜時 還思地獄苦麽
견문각지시 타성일편마 반관자기 착패불조마 금생 결정속불혜명마 기좌편의시 환사지옥고마
남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도 화두가 끊임없이 되는가? 보고 듣고 알아차릴 때에도 한 조각을 이루고 있는가? 자기의 공부를 돌아볼 때 부처님과 조사를 붙잡을 만한가? 금생에 꼭 부처님의 지혜를 이을 수 있을까? 앉고 눕고 편할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此一報身 定脫輪廻麽 當八風境 心不動麽
차일보신 정탈윤회마 당팔풍경 심부동마
이 육신으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가? 여덟 가지 바람이 불어올 때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此是參禪人 日用中點檢底道理 古人云 此身不向今生度 更待何生度此身.
차시참선인 일용중점검저도리 고인운 차신불향금생도 갱대하생도차신.
이것이 참선하는 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때때로 점검해야 할 도리이다. 옛 어른이 말씀하시기를 “이 몸을 이때 못 건지면 다시 어느 세상에서 건질 것인가!”
學語之輩 說時似悟 對境還迷 所謂言行 相違者也.
학어지배 설시사오 대경환미 소위언행 상위자야.
말을 배우는 사람들은 말할 때에는 깨친듯 하다가도 실지 경계에 당하게 되면 그만 아득하게 된다. 이른바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若欲敵生死 須得這一念子 爆地一破 方了得生死.
약욕적생사 수득자일념자 폭지일파 방료득생사.
만약 생사를 막아내려면 이 한 생각을 탁 깨뜨려야만 비로소 생사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
然 一念子 爆地一破然後 須訪明師 決擇正眼.
연 일념자 폭지일파연후 수방명사 결택정안.
그러나 한 생각을 깨친 뒤에라도 반드시 밝은 스승을 찾아가 눈이 바른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古德 云 只貴子眼正 不貴汝行履處.
고덕 운 지귀자안정 불귀여행리처
옛 어른이 말씀하시기를 “다만 자네의 눈이 바른 것만 귀하게 여길 따름이지, 자네의 행실을 보려고 하지 않네.”라고 하였다.
願諸道者 深信自心 不自屈不自高.
원제도자 심신자심 부자굴부자고.
바라건대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을 깊이 믿어, 스스로 굽히지도 말고 높이지도 말아야 한다.
迷心修道 但助無明.
미심수도 단조무명.
미혹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다는 것은 오직 무명만을 도와줄 뿐이다.
修行之要 但盡凡情 別無聖解.
수행지요 단진범정 별무성해
수행의 알맹이는 다만 범부의 생각을 떨어지게 할 뿐이지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있을 수 없다.
不用捨衆生心 但莫染汚自性 求正法 是邪.
불용사중생심 단막염오자성 구정법 시사.
중생의 마음을 버릴 것 없이 다만 자성을 더럽히지 말라. 바른 법을 찾는 것이 곧 바르지 못한 일이다.
斷煩惱 名二乘 煩惱不生 名大涅槃.
단번뇌 명이승 번뇌불생 명대열반.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二乘)이고,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큰 열반이다.
須虛懷自照 信一念緣起無生.
수허회자조 신일념연기무생.
모름지기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비춰 보아, 한 생각 인연 따라 일어나는 것이 사실은 일어남이 없음을 믿어야 한다.
諦觀殺盜淫妄 從一心上起 當處便寂 何須更斷.
체관살도음망 종일심상기 당처변적 하수갱단.
죽이고 도둑질하고 음행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다 한 마음 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자세히 살펴보라. 그 일어나는 곳이 곧 비어 없는데 무엇을 다시 끊을 것인가.
知幻卽離 不作方便 離幻卽覺 亦無漸次.
지환즉리 부작방편 이환즉각 역무점차.
환상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고, 환상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또한 닦아 갈 것도 없다.
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死涅槃 如見空花起滅.
중생 어무생중 망견생사열반 여견공화기멸.
중생이 나는 것 없는 가운데서 망령되게 생사와 열반을 보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 꽃이 서물거리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菩薩 度衆生入滅度 又實無衆生 得滅度.
보살 도중생입멸도 우실무중생 득멸도.
보살이 중생을 건져 열반을 들게 했다 할지라도 사실은 열반을 얻은 중생이 없는 것이다.
理雖頓悟 事非頓除.
이수돈오 사비돈제
이치를 단박에 깨칠 수 있다 하더라도, 버릇은 한꺼번에 가시어지지 않는다.
帶狀修禪 如蒸沙作飯, 帶殺修禪 如塞耳叫聲, 帶偸修禪 如漏巵求滿, 帶妄修禪 如刻糞爲香 縱有多智 皆成魔道.
대음수선 여증사작반, 대살수선 여색이규성, 대투수선 여루치구만, 대망수선 여각분위향 종유다지 개성마도
음란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 같고, 살생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제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으며, 도둑질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새는 그릇에 가득 차기를 바라는 것 같고, 거짓말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똥으로 향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 이런 것들은 비록 많은 지혜가 있더라도 다 악마의 길을 이룰 뿐이다.
無德之人 不依佛戒 不護三業 放逸懶怠 輕慢他人 較量是非 而爲根本.
무덕지인 불의불계 불호삼업 방일나태 경만타인 교량시비 이위근본.
덕이 없는 사람은 부처님의 계율에 의지하지 않고, 삼업(三業)을 지키지 않는다. 함부로 놀아 게을리 지내며, 남을 깔보아 따지고 시비하는 것을 일삼고 있다.
若不持戒 尙不得疥癩野干之身 況淸淨菩提果 可冀乎.
약불지계 상부득개나야간지신 항청정보리과 가기호.
만약 계행이 없으면 비루먹은 여우의 몸도 받지 못한다는데, 하물며 청정한 지혜의 열매를 바랄 수 있겠는가?
欲脫生死 先斷貪欲 及除愛渴.
욕탈생사 선단탐욕 급제애갈.
생사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탐욕을 끊고 애욕의 불꽃을 꺼 버려야 한다.
無碍淸淨慧 皆因禪定生.
무애청정혜 개인선정생.
걸림 없는 청정한 지혜는 다 선정에서 나온다.
心 在定則能知世間生滅諸相.
심 재정즉능지세간생멸제상.
마음이 정(定)에 들면 세간의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는 모든 일을 다 밝게 알 수 있다.
見境心不起 名不生 不生 名無念 無念 名解脫.
견경심불기 명불생 불생 명무념 무념 명해탈.
어떤 현실을 당해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나지 않음이라 하고, 나지 않는 것을 무념이라 하며 무념의 상태를 해탈이라 한다.
修道證滅 是亦非眞也 心法本寂 乃眞滅也. 故 曰, 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
수도증멸 시역비진야 심법본적 내진멸야. 고 왈 제법종본래 상자적멸상.
도를 닦아 열반을 얻는다면 이것은 또한 진리가 아니다. 마음이 본래 고요한 것임을 알아야 그것이 참 열반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본래부터 늘 그대로 열반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貧人 求乞 隨分施與 同體大悲 是眞布施.
빈인 구걸 수분시여 동체대비 시진보시.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수대로 나누어 주라. 한 몸처럼 가엾이 여기면 이것이 참 보시니라.
有人 來害 當自攝心 勿生瞋恨 一念瞋心起 百萬障門開.
유인 내해 당자섭심 물생진한 일념진심기 백만장문개.
누가 와서 해롭게 하더라도 마음을 거두어 성내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한 생각 성내는 데에 백만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린다.
若無忍行 萬行不成.
약무인행 만행불성.
만약 참는 일이 없다면 보살의 육도만행도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守本眞心 第一精進.
수본진심 제일정진.
본바탕 천진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첫째가는 정진이다.
持呪者 現業 易制 自行可違 宿業 難除 必借神力.
지주자 현업 이제 자행가위 숙업 난제 필차신력.
진언을 외우는 것은 금생에 지은 업은 비교적 다스리기 쉬워서 자기 힘으로도 고칠 수가 있지만, 전생에 지은 업은 지워 버리기가 어려우므로 반드시 신비한 힘을 빌리려는 것이다.
禮拜者 敬也 伏也 恭敬眞性 屈伏無明.
예배자 경야 복야 공경진성 굴복무명.
예배란 공경하는 것이며 굴복하는 것이다.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念佛者 在口曰誦 在心曰念 徒誦失念 於道無益.
염불자 재구왈송 재심왈념 도송실념 어도무익.
염불이라 하지만 입으로 하면 송불(誦佛)이고 마음으로 할 때 비로소 염불이 된다.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에 무슨 소용이 될 것인가!
聽經 有經耳之緣 隨喜之福 幻軀 有盡 實行 不亡.
청경 유경이지연 수희지복 환구 유진 실행 불망.
경을 들으면 귀를 거치는 인연도 있게 되고 따라서 기뻐하는 복도 짓게 된다. 물거품 같은 이 몸은 다할 날이 있지만 진실한 행동은 헛되지 않는다.
看經 若不向自己上做工夫 雖看盡萬藏 猶無益也.
간경 약불향자기상주공부 수간진만장 유무익야.
경을 보되 자기 마음속을 돌이켜봄이 없다면 비록 팔만대장경을 다 보았다 할지라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學未至於道 衒耀見聞 徒以口舌辯利 相勝者 如厠屋塗丹雘.
학미지어도 현요견문 도이구설변리 상승자 여측옥도단확.
공부가 도를 이루기 전에 남에게 자랑하려고, 한갓 말재주만 부려 서로 이기려고 한다면 마치 변소에 단청하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出家人 習外典 如以刀割泥 泥無所用 而刀自傷焉.
출가인 습외전 여이도할니 니무소용 이도자상언.
출가한 사람이 외전을 공부하는 것은 마치 칼로 흙을 베는 것과 같아서, 흙은 아무 소용도 없는데 칼만 망가지게 된다.
出家爲僧 豈細事乎 非求安逸也 非求溫飽也 非求名利也 爲生死也 爲斷煩惱也 爲續佛慧命也 爲出三界度衆生也.
출가위승 기세사호 비구안일야 비구온포야 비구이명야 위생사야 위단번뇌야 위속불혜명야 위출삼계도중생야.
출가하여 스님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몸의 편안함 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며,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 을 면하려는 것이며,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삼계에서 뛰어나 중생을 건지기 위해서인 것이다.
佛云, 無常之火 燒諸世間 又云, 衆生苦火 四面俱焚 又云, 諸煩惱賊 常伺殺人 道人 宜自警悟 如救頭燃.
불운, 무상지화 소제세간 우운, 중생고화 사면구분 우운, 제번뇌적 상사살인 도인 의자경오 여구두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덧없는 불꽃이 온 세상을 살라버린다.”고 하셨고, 또 “중생들의 고뇌의 불이 사방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고 하셨고, “모든 번뇌의 도둑이 항상 너희들을 죽이려고 엿보고 있다”고도 하셨다. 그러므로 수도인은 마땅히 스스로 깨우쳐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해야 할 것이다.
貪世浮名 枉功勞形 營求世利 業火加薪.
탐세부명 왕공노형 영구세리 업화가신.
세상의 뜬 이름을 탐하는 것은 쓸데없이 몸만 괴롭게 하는 것이요, 세상의 이익을 애써서 구하는 것은 업의 불에 땔나무를 더 보태는 격이다.
名利衲子 不如草衣野人.
명리납자 불여초의야인.
이름과 재물을 따르는 납자는 풀 속에 묻힌 시골 사람만도 못하다.
佛 云 云何賊人 假我衣服 稗販如來 造種種業.
불 운 운하적인 가아의복 패판여래 조종종업.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어찌하여 도둑들이 내 옷을 꾸며 입고, 부처를 팔아 온갖 나쁜 업을 짓고 있느냐!”라고 통탄하셨다.
於戱 佛子 一衣一食 莫非農夫之血 織女之苦 道眼 未明 如何消得.
오희 불자 일의일식 막비농부지혈 직녀지고 도안 미명 여하소득.
아! 불자여! 그대의 한 그릇 밥과 한 벌 옷이 농부들의 피요, 직녀들의 땀이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고야 어떻게 삭여 낼 것인가.
故 曰 要識披毛戴角底麽 卽今虛受信施者是 有人 未飢而食 未寒而衣 是誠何心哉 都不思目前之樂 便是身後之苦也.
고 왈 요식피모대각저마 즉금허수신시자시 유인 미기이식 미한이의 시성하심재 도불사목전지락 변시신후지고야.
그러므로 말하기를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그것은 오늘날 신도들이 주는 것을 공부하지 않으면서 거저먹는 그런 부류들의 미래상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더 입으니 이 무슨 심사일까? 참으로 딱한 일이다. 눈앞의 쾌락이 후생에 괴로움인 줄을 도무지 생각지 않는구나.
故 曰 寧以熱鐵 纏身 不受信心人衣 寧以洋銅灌口 不受信心人食 寧以鐵鑊投身 不受信心人房舍等.
고 왈 영이열철 전신 불수신심인의 영이양동관구 불수신심인식 영이철확투신 불수신심인방사등.
그러므로 이르기를 “차라리 뜨거운 철판을 몸에 두를지언정 신심 있는 이가 주는 옷을 입지 말며, 쇳물을 마실지언정 신심 있는 이가 주는 음식을 먹지 말고, 차라리 끊는 가마솥에 뛰어들지언정 신심 있는 이가 주는 집에 거처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故 曰 道人 進食 如進毒 受施 如受箭 幣厚言甘 道人所畏.
고 왈 도인 진식 여진독 수시 여수전 폐후언감 도인소외.
그러므로 말하기를 “수도인은 음식을 먹을 때에 독약을 먹는 것 같이 하고, 시주의 보시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하라”고 한 것이다.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수도인으로서는 두려워해야 한다.
故 曰 修道之人 如一塊磨刀之石 張三也來磨 李四也來磨 磨來磨去 別人刀 快 而自家石 漸消
고 왈 수도지인 여일괴마도지석 장삼야래마 이사야래마 마래마거 별인도 쾌 이자가석 점소
然 有人 更嫌他人 不來我石上磨 實爲可惜.
연 유인 갱혐타인 불래아석상마 실위가석.
그러므로 말하기를 “도를 닦는 이는 한 개의 숫돌과 같아서, 장 서방이 와서 갈고 이 서방이 갈아 가면, 남의 칼은 잘 들겠지만 나의 돌은 점점 닳아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도리어 남들이 와서 돌에 칼을 갈지 않는다고 걱정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라고 하였다.
故 古語 亦有之 曰 三途苦 未是苦 袈裟下失人身 始是苦也.
고 고어 역유지 왈 삼도고 미시고 가사하실인신 시시고야.
그러므로 옛 말에 또한 이르기를 “삼악도의 고통이 고통이 아니라, 가사를 입었다가 사람 몸을 잃는 것이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이다”라고 하였다.
咄哉. 此身 九孔常流 百千癰疽 一片薄皮 又云, 革囊盛糞 膿血之聚 臭穢可鄙 無貪惜之 何況百年將養 一息背恩.
돌재. 차신 구공상류 백천옹저 일편박피 우운, 혁낭성분 농혈지취 취예가비 무탐석지 하황백년장양 일식배은.
우습다, 이 몸이여. 아홉 구멍에서는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나오고, 백 천 가지 부스럼 덩어리를 한 조각 엷은 가죽으로 싸 놓았구나. 또한, 가죽 주머니에는 똥이 가득 담기고 피고름 뭉치라, 냄새나고 더러워 조금도 탐나거나 아까울 것이 없다. 더구나 백년을 잘 길러준대도 숨 한 번에 은혜를 등지고 마는 것을.
有罪卽懺悔 發業卽慚愧 有丈夫氣象 又改過自新 罪隨心滅.
유죄즉참회 발업즉참괴 유장부기상 우개과자신 죄수심멸.
허물이 있거든 곧 참회하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데에 장부의 기상이 있다. 그리고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도 마음을 따라 없어질 것이다.
道人 宜應端心 以質直爲本 一瓢一衲 旅泊無累.
도인 의응단심 이질직위본 일표일납 여박무루.
수도인은 마땅히 마음을 단정히 하여 검소하고 진실한 것으로써 근본을 삼아야 한다. 표주박 한 개와 누더기 한 벌이면 어디를 가나 걸릴 것이 없다.
凡夫 取境 道人 取心 心境 兩忘 乃是眞法.
범부 취경 도인 취심 심경 양망 내시진법.
범부들은 눈앞의 현실에만 따르고, 수도인은 마음만 붙잡으려 한다. 그러나 마음과 바깥 현실 두 가지를 다 내버리는 이것이 바로 참다운 법이다.
聲聞 宴坐林中 被魔王捉 菩薩 遊戱世間 外魔不覓.
성문 연좌림중 피마왕착 보살 유희세간 외마불멱.
성문은 숲 속에 가만히 앉아서도 마왕에 붙잡히고, 보살은 세간에 노닐어도 외도들과 마군이 보지 못한다.
凡人 臨命終時 但觀五蘊皆空 四大無我 眞心 無相 不去不來
범인 임명종시 단관오온개공 사대무아 진심 무상 불거불래
누구든지 임종할 때에는 이렇게 관찰해야 한다. 즉 오온이 다 빈 것이어서 이 몸에는 네 가지 원소라서 ‘나’라고 할 것이 없고, 참마음은 모양이 없어 오고 가는 것도 아니다.
生時 性亦不生 死時 性亦不去 湛然圓寂 心境 一如
생시 성역불생 사시 성역불거 담연원적 심경 일여
날 때에도 성품은 또한 난 바가 없고, 죽을 때에도 성품은 또한 가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맑고 고요하여 마음과 환경은 하나인 것이다.
但能如是 直下頓了 不爲三世所拘繫 便是出世自由人也
단능여시 직하돈료 불위삼세소구계 변시출세자유인야
오직 이처럼 관찰하여 단박 깨친다면 삼세와 인과에 얽매이거나 이끌리거나 않게 될 것이니, 이런 사람이야 말로 세상에서 뛰어난 자유인이다.
若見諸佛 無心隨去 若見地獄 無心怖畏
약견제불 무심수거 약견지옥 무심포외
만약 부처님을 만나더라도 따라 갈 마음이 없고, 지옥을 보더라도 무서운 생각이 없어야 한다.
但自無心 同於法界 此卽是要節也 然則平常 是因 臨終 是果 道人 須着眼看.
단자무심 동어법계 차즉시요절야 연즉평상 시인 임종 시과 도인 수착안간.
다만 스스로 무심하게 되면 법계와 같이 될 것이니 이 점이 바로 요긴한 것이다. 그러므로 평상시는 씨(因)이고 임종할 때에 그 열매(果)다. 수도인은 이곳에 주의해야 한다.
凡人 臨終命時 若一毫毛 凡聖情量 不盡 思慮 未忘 向驢胎馬腹裡 托質 泥犁鑊湯中 煮煠 乃至依前再爲螻蟻蚊虻.
범인 임종명시 약일호모 범성정량 부진 사려 미망 향려태마복리 탁질 니리확탕중 자잡 내지의전재위루의문맹.
사람이 임종할 때에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이다 범부다 하는 생각이 남아 있게 되면 나귀나 말의 뱃속에 끌려들기 쉽고, 지옥의 끊는 가마 속에 처박히게 되며, 혹은 개미나 모기 같은 것이 되기도 할 것이다.
禪學者 本地風光 若未發明則孤峭玄關 擬從何透
선학자 본지풍광 약미발명즉고초현관 의종하투
참선하는 사람이 본래 면목을 만약 밝히지 못한다면 높고 아득한 진리의 문을 어떻게 뚫을 것인가.
往往 斷滅空 以爲禪 無記空 以爲道 一切俱無 以爲高見 此 冥然頑空 受病幽矣 今天下之言禪者 多坐在此病.
왕왕 단멸공 이위선 무기공 이위도 일체구무 이위고견 차 명연완공 수병유의 금천하지언선자 다좌재차병.
왕왕 어떤 이는 아주 끊어 없어진 빈 것으로써 참선을 삼기도 하고, 무엇이라 말할 수 없이 빈 것으로써 도를 삼기도 하며, 모든 것이 없는 것으로써 높은 소견을 삼기도 하니, 이것은 컴컴하게 비어 있어 병든 바가 깊다. 지금 천하에 참선을 말하는 사람치고 이와 같은 병에 안 걸린 사람이 얼마나 될까?
宗師 亦有多病 病在耳目者 以瞠眉努目 側耳點頭 爲禪 病在口舌者 以顚言倒語 胡唱亂喝 爲禪
종사 역유다병 병재이목자 이당미노목 측이점두 위선 병재구설자 이전언도어 호창난할 위선
종사도 또한 병이 많다. 병이 귀와 눈에 있는 자는 눈을 부릅뜨고, 귀를 기울이며, 머리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선을 삼고, 병이 입과 혀에 있는 자는 횡설수설 되지 않은 말과 함부로 ‘喝(할 ; 꾸짖음)’하는 것으로써 선을 삼는다.
病在手足者 以進前後退 指東畵西 爲禪 病在心腹者 以窮玄究妙 超情離見 爲禪 據實而論 無非是病.
병재수족자 이진전후퇴 지동화서 위선 병재심복자 이궁현구묘 초정이견 위선 거실이론 무비시병.
또 병이 손발에 있는 자는 나아갔다 물러갔다 이쪽저쪽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선을 삼으며, 병이 마음 가운데 있는 자는 진리를 찾아내고 오묘한 것을 뚫어내며 인정에 뛰어나고 자기의 소견을 여의는 것으로써 선을 삼는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어느 것이고 병 아닌 것이 없다.
本分宗師 全提此句 如木人唱拍 紅爐點雪 亦如石火電光 學者實不可擬議也.
본분종사 전제차구 여목인창박 홍로점설 역여석화전광 학자실불가의의야.
본분 종사는 법을 온전히 들어 보인다.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여, 공부하는 이가 어떻다고 헤아려 보거나 더듬을 수가 전혀 없다.
故 古人 知師恩 曰 不重先師道德 只重先師不爲我說破.
고 고인 지사은 왈 부중선사도덕 지중선사불위아설파.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하기를 “스님의 도덕을 장하게 여김이 아니라 오직 스님이 내게 해설하여 주지 않는 것에 감격한다.”라고 하였다.
大抵學者 先須詳辨宗途 昔 馬祖一喝也 百丈 耳聾 黃檗 吐舌 這一喝 便是拈花消息 亦是達摩初來底面目.
대저학자 선수상변종도 석 마조일할야 백장 이롱 황벽 토설 자일할 변시염화소식 역시달마초래저면목.
대저 배우는 사람들은 먼저 선종의 갈래부터 자세히 가리어 알아야 한다. 옛날에 마조스님이 한 번 ‘할’하는데, 백장스님은 귀가 먹고, 황벽스님은 혀가 빠졌다. 이 한 ‘할’이야말로 곧 부처님께서 꽃을 드신 소식이며, 또한 달마대사의 처음 오신 면목이다.
吁 此臨濟宗之淵源.
우 차임제종지연원.
아! 이것이 임제종의 근원이 된 것이다.
大凡祖師宗途 有五 曰臨濟宗 曰曺洞宗 曰雲門宗 曰潙仰宗 曰法眼宗.
대범조사종도 유오 왈임제종 왈조동종 왈운문종 왈위앙종 왈법안종.
무릇 조사의 종파에 다섯 갈래가 있다. 즉 임제종, 조동종, 운문종, 위앙종, 법안종 등이다.
臨濟宗 本師釋迦佛 至三十三世六祖慧能大師下直傳 曰南嶽懷讓 曰馬祖道一 曰百丈懷海 曰黃檗希運
임제종 본사석가불 지삼십삼세육조혜능대사하직전 왈남악회양 왈마조도일 왈백장회해 왈황벽희운
曰臨濟義玄 曰興化存奬 曰南院道顒 曰風穴延沼 曰首山省念 曰汾陽善昭 曰慈明楚圓 曰楊岐方會
왈임제의현 왈흥화존장 왈남원도옹 왈풍혈연소 왈수산성념 왈분양선소 왈자명초원 왈양기방회
曰白雲守端 曰五祖法演 曰圓悟克勤 曰俓山宗杲 禪師等.
왈백운수단 왈오조법연 왈원오극근 왈경산종고 선사등.
임제종은 본사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33대 되는 육조 혜능대사의 밑에서 곧게 전하여 내려가기를 남악 회양, 마조 도일, 백장 회해, 황벽 희운, 임제 의현, 흥화 존장, 남원 도옹, 풍혈 연소, 수산 성념, 분양 선소, 자명 초원, 양기 방회, 백운 수단, 오조 법연, 원오 극근, 경산 종고 선사 등이다.
曹洞宗 六祖下傍傳 曰靑原行思 曰石頭希遷 曰藥山惟儼 曰雲巖曇晟 曰洞山良价 曰曹山耽章 曰雲居道膺禪師等.
조동종 육조하방전 왈청원행사 왈석두희천 왈약산유엄 왈운암담성 왈동산양개 왈조산탐장 왈운거도응선사등.
조동종은 육조의 아래에서 곁 갈래의 청원 행사, 석두 희천, 약산 유엄, 운암 당성, 동산 양개, 조산 탐장, 운거 도웅 선사 등이다.
雲門宗 馬祖傍傳 曰天皇道悟 曰龍潭崇信 曰德山宣鑑 曰雪峰義存 曰雲門文偃 曰雪竇重顯 曰天衣義懷禪師等.
운문종 마조방전 왈천황도오 왈용담숭신 왈덕산선감 왈설봉의존 왈운문문언 왈설두중현 왈천의의회선사등.
운문종은 마조의 곁 갈래로 천황 도오, 용담 숭산, 덕산 선감, 설봉 의존, 운문 문언, 설두 중현, 천의 의회 선사 등이다.
潙仰宗 百丈傍傳 曰潙山靈祐 曰仰山慧寂 曰香嚴智閑 曰南塔光湧 曰芭蕉慧淸 曰郭山景通 曰無着文喜禪師等.
위앙종 백장방전 왈위산영우 왈앙산혜적 왈향엄지한 왈남탑광용 왈파초혜청 왈곽산경통 무왈착문희선사등.
위앙종은 백장의 곁 갈래로 위산우, 앙산적, 향엄한, 남탑용, 파초청, 곽산통, 무착희 선사 등이다.
法眼宗 雪峰傍傳 曰玄沙師備 曰地藏桂琛 曰法眼文益 曰天台德韶 曰永明延壽 曰龍濟紹修 曰南臺守安禪師等.
법안종 설봉방전 왈현사사비 왈지장계침 왈법안문익 왈천태덕소 왈영명연수 왈용제소수 왈남대수안선사등.
법안종은 설봉의 곁 갈래로 현사 사비, 지장 계침, 법안 문익, 천태 덕소, 영명 연수, 용제 소수, 남대 수안 선사 등이다.
臨濟家風 赤手單로 殺佛殺祖 辨古今於玄要 驗龍蛇於主賓 操金剛寶劍 掃除竹木精靈 奮獅子全威 震裂狐狸心膽.
임제가풍 적수단도 살불살조 변고금어현요 험용사어주빈 조금강보검 소제죽목정령 분사자전위 진열호리심담.
임제 가풍은 맨손에 한 자루의 칼을 들고 부처도 조사도 죽이고, 예와 이제를 삼현(三玄)이나 삼요(三要)로써 판단하고, 용과 뱀을 빈주구로 알아낸다. 금강의 보검으로 도깨비를 쓸어 내고 사자의 위험을 떨쳐 여우와 너구리의 넋을 찢네.
要識臨濟宗麽 靑天轟霹靂 平地起波濤.
요식임제종마 청천굉벽력 평지기파도.
임제종을 알려는가? 푸른 하늘에 벼락치고 평지에서 파도가 인다.
曹洞家風 權開五位 善接三根 橫抽寶劍 斬諸見稠林 妙協弘通 截萬機穿鑿. 威音那畔 滿目煙光 空劫已前 一壺風月.
조동가풍 권개오위 선접삼근 횡추보검 참제견조림 묘협홍통 절만기천착. 위음나반 만목연광 공겁이전 일호풍월.
조동가풍은 권도로 오위를 열어 세 가지 근기를 잘 다룬다. 보검을 빼어 들고 삿된 소견이 많은 숲을 말끔하게 베어 내고, 널리 통하는 길을 묘하게 맞추어서 천만 가지 모든 생각을 끊어 내어 버리누나. 위음왕불 나시기 전 까마득한 그 빛이요,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 신선세계 경치로다.
要識曹洞宗麽 佛祖未生空劫外 正偏不落有無機.
요식조동종마 불조미생공겁외 정편불락유무기.
조동종을 알려는가? 부처님과 조사도 안 나시고 아무 것도 없던 그 전, 똑바른 것, 치우친 것, 있는 것이나 없는 것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雲門家風 劍峰有路 鐵壁無門 掀翻露布葛藤 剪却常情見解 迅電 不及思量 烈焰 寧容湊泊.
운문가풍 검봉유로 철벽무문 흔번노포갈등 전각상정견해 신전 불급사량 열염 영용주박.
운문 가풍은 칼날에 길이 있고, 철벽에는 문이 없다. 온 천하의 말썽거리 둘러엎고, 온갖 못된 소견을 잘라 내어 버리노라. 빠른 번개와 같이 미처 생각할 수 없고 활활 타는 불꽃 속에 어찌 머무를 수 있으리오.
要識雲門宗麽 柱杖子勃跳上天 盞子裡 諸佛 說法.
요식운문종마 주장자발조상천 잔자리 제불 설법.
운문종을 알려는가? 주장자가 날뛰어서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잔 속에서 모든 부처님들이 설법하시네.
潙仰家風 師資唱和 父子一家 脇下書字 頭角 觴嶸 室中驗人 獅子腰折.
위앙가풍 사자창화 부자일가 협하서자 두각 쟁영 실중험인 사자요절.
離四句絶百非 一槌粉碎 有兩口無一舌 九曲珠通.
이사구절백비 일추분쇄 유양구무일설 구곡주통.
위앙가풍은 스승과 제자가 부르면 화답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한 집에 살고 있네. 옆구리에 글자 쓰고 머리 위에 뿔이 높이 솟았구나. 방안에서 사람들을 시험하니 사자 허리 부러진다.
네 가지 말 다 여의고, 백 가지 아닌 것도 모두 끊어버려 한 망치로 부수었네. 입은 둘이 있으나 혀는 하나도 없는 것이 아홉 구비 굽은 구슬 환하게도 꿰뚫었다.
要識潙仰宗麽 斷碑 橫古路 鐵牛眠少室.
요식위앙종마 단비 횡고로 철우면소실.
위앙종을 알려는가? 부러진 비석 옛 길 위에 쓰려져 있고 무쇠 소는 작은 집에 잠을 자네.
法眼家風 言中有響 句裡藏鋒 髑髏 常干世界 鼻孔 磨壻家風 風柯月渚 顯露眞心 翠竹黃花 宣明妙法.
법안가풍 언중유향 구리장봉 촉루 상간세계 비공 마촉가풍 풍가월저 현로진심 취죽황화 선명묘법.
법안 가풍은 말끝에 메아리가 울려오고 글 속에 칼날이 숨었구나, 해골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콧구멍은 어느 때나 그 가풍을 불어내네. 바람 부는 나뭇가지와 달 비치는 물가에는 참마음이 드러나고 푸른 대와 누른 국화 묘한 법을 환히 밝혀주네.
要識法眼宗麽 風送斷雲歸嶺去 月和流水過橋來.
요식법안종마 풍송단운귀령거 월화유수과교래.
법안종을 알려는가? 맑은 바람 구름을 산마루로 보내주고 밝은 달물에 떠서 다리 지나 흘러오네.
臨濟喝德山棒 皆徹證無生 透頂透底.
임제할덕산방 개철증무생 투정투저.
임제의 ‘할’과 덕산의 ‘방망이’가 다 나는 것 없는 도리를 철저하게 증득하여 꼭대기에서 밑바닥까지 꿰뚫은 것이다.
大機大用 自在無方 全身出沒 全身擔荷 退守文殊普賢大人境界 然 據實而論 此二師 亦不免偸心鬼子.
대기대용 자재무방 전신출몰 전신담하 퇴수문수보현대인경계 연 거실이론 차이사 역불면투심귀자.
큰 기틀과 큰 작용이 자유자재하여 어디에나 걸림 없고, 전신으로 출몰하며 온몸으로 짐을 져, 문수와 보현의 성인 경계를 지키고 있다 할지라도, 사실대로 말한다면 이 두 분(임제와 덕산)도 또한 도깨비가 됨을 면치 못할 것이다.
大丈夫 見佛見祖 如寃家 若着佛求 被佛縛 若着祖求 被祖縛 有求皆苦 不如無事.
대장부 견불견조 여원가 약착불구 피불박 약착조구 피조박 유구개고 불여무사.
대장부는 부처님이나 조사 보기를 원수같이 해야 한다. 만약 부처님께 매달려 구하는 것이 있다면 그는 부처에게 얽매인 것이고, 만약 조사에게 매달려 구하는 것이 있다면 또한 조사에게 얽매여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 구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고통이므로 아무 일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神光 不昧 萬古徽猷 入此門來 莫存知解.
신광 불매 만고휘유 입차문래 막존지해.
거룩한 빛 어둡지 않아 천만고에 환하여라. 이 문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두지 말아라!
[출처] 선가귀감 우학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