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 칼럼] 이게 주식이냐, 도박이냐 - 56조 개미의 눈물
- 코스피 역대 최대 폭등·폭락의 롤러코스터, 레버리지 ETF 투기판이 된 증시를 진단하고 정상화의 길을 묻는다https://www.news1004.net/news/articleView.html?idxno=6004
[김헌태 칼럼] 이게 주식이냐, 도박이냐 - 56조 개미의 눈물
- 코스피 역대 최대 폭등·폭락의 롤러코스터, 레버리지 ETF 투기판이 된 증시를 진단하고 정상화의 길을 묻는다
코스피 17.91% 폭등의 아이러니 - 오늘의 환호가 내일의 공포가 된다
7월 31일 코스피가 사상 최대 상승률인 17.91%를 기록하며 폭등했다. SK하이닉스는 사상 처음으로 상한가(30% 상승)로 장을 마감했다. 전날까지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동반 발동되며 코스피가 5,663선까지 주저앉았던 것과 정반대의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이 폭등에 환호만 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오늘의 17.91% 폭등은 바로 어제까지의 처참한 폭락이 있었기에 나온 반등이기 때문이다. 7월 한 달간 코스피의 지수 하락률은 -33.19%로 1990년대 이후 최대 월간 낙폭을 기록했다. 7월 1~24일 코스피의 평균 일중 변동률은 6.23%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 10월 월평균 일중 변동률 6.11%를 뛰어넘어 역대 최대 수준에 달했다. 오늘 하루의 폭등이 이 처참한 한 달의 손실을 되돌리지는 못한다.
지금 대한민국 증시가 보여주는 극단적 급등락의 근원을 냉정하게 짚어야 한다. 이번 혼돈의 진앙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레버리지 ETF는 일간 수익률의 2배를 추종하기 위해 장 마감 전 보유 비중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구조를 갖는다. 주가가 오르면 추가 매수하고 하락하면 추가 매도하는 이 구조가 가격 변동을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키는 '숏 감마' 현상을 불러온다. 여기에 미국발 금리·경기 변수가 더해지면서 하루에도 수차례 사이드카가 발동되는 전대미문의 롤러코스터 장세가 연출됐다. 이것은 주식 시장의 본질적 기능인 기업 가치 평가와 자본 배분과는 전혀 무관한 구조적 폭주다.
56조 개미의 눈물 - 투자가 도박이 된 시장의 비극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는 수치로도, 현장으로도 처참하다. 시사저널이 추정한 레버리지 ETF 손실액은 56조 원에 달한다. 지난달 23일부터 7월 9일까지 12거래일 동안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14종에 개인이 쏟아부은 순매수 규모만 5조 1,919억 원이다. 삼성전자 레버리지 ETF는 37%, SK하이닉스 레버리지 ETF는 42%가량 손실을 보고 있다. KBS 보도에 따르면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21만 주 넘게 보유한 한 투자자는 50억 원에서 시작해 현재 29억 원, 즉 21억 원 이상을 잃었다. 이는 극단적 사례이지만, 그 이면에는 결혼 자금을 날린 예비 신부, 몇 달 치 월급을 잃은 MZ 직장인, 부동산 잔금까지 털어놓았다가 무너진 가정들이 있다.
투자자 예탁금은 코스피가 9,000선을 돌파했던 지난달 18일 128조 4,086억 원에서 7월 28일 기준 107조 1,994억 원으로 한 달 사이에 21조 2,092억 원이나 증발했다. 추가 매수에 나설 실탄 자체가 고갈되고 있다는 뜻이다. 개인투자자권익보호단체 회장은 공개적으로 눈물의 호소에 나섰고, 국회에서는 여야가 한목소리로 금융당국을 질타했다.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국장 탈출 선언'이 쏟아지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투자 손실이 아니다. 수많은 개인의 꿈과 생활 기반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사회적 재난이다. 무분별한 레버리지 상품이 개인 투자자를 투기판의 피해자로 전락시킨 구조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
뒤늦은 규제, 미흡한 대응 - 금융당국이 들어야 할 준엄한 비판
금융당국의 대응은 뒤늦고, 미흡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처음 출시된 것은 2023년이다. 출시 초기부터 전문가들은 개인 투자자들의 투기적 쏠림 현상과 그로 인한 시장 변동성 확대 위험을 경고해 왔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자본시장의 활성화라는 명목 아래 이를 방치했다. 뒤늦게 7월 16일 1차 보완책을 발표했지만, 이후에도 시장 혼란이 가라앉지 않자, 7월 29일 F4 긴급회의를 열고 2차 보완책을 내놨다. 7월 31일부터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매수를 위한 기본 예탁금이 기존 1,000만 원에서 현금 3,000만 원으로 상향 시행됐다. 신규 상품 상장도 중단됐다. 개인별 차입 투자 한도를 금융 투자상품 총투자액의 20% 이내로 제한하는 총량 규제도 추가로 검토 중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 조치가 너무 늦었고 여전히 부족하다는 비판이 거세다. 한 투자자는 '삼성전자 레버리지 37%, SK하이닉스 레버리지 42% 손실을 보고 있는데 정부 대책은 추가 매수를 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며 '개인은 팔거나 보유하는 것 외 대응 방법이 없다'라고 토로했다. 삼성증권 연구원은 '코스피는 기술적 과매도 구간에 진입했지만, 투자자 예탁금이 140조 원에서 106조 원 수준으로 감소하고 개인의 추가 매수 여력과 외국인·기관의 수급 복귀도 제한돼 뚜렷한 매수 주체가 부재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증권시장안정펀드 투입, 공매도 금지 요구도 시장 일각에서 확산되고 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과열만 잡겠다는 핀셋 규제가 시장 전체의 투자 심리를 회복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증시 정상화의 길 - 투자자의 자세, 정부의 책무, 시장의 본질을 되찾아야 한다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첫째, 레버리지는 수익을 2배로 키우지만, 손실도 2배로 키운다는 기본 원칙이 외면됐다. 불확실성이 높은 단일종목에 2배 레버리지를 거는 것은 투자가 아닌 투기에 가깝다. 개인 투자자들은 당장의 수익률에 눈이 멀어 리스크 관리의 기본을 잊었고, 일부는 빚까지 내어 도박판에 뛰어들었다. 주식 투자는 기업의 미래 가치에 대한 판단이어야 한다. 단기 급등락에 올라타는 '묻지마 투자'가 반복되는 한 개미 투자자의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둘째, 정부와 금융당국은 시장의 교란 상품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문제를 예견하고도 규제를 미루다가 56조 원의 손실이 발생한 뒤에야 움직인 이번 사태는 금융당국 감독의 실패이기도 하다.
셋째, 대한민국 증시의 구조적 취약성을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 코스피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의 주가 변동에 따라 지수 전체가 출렁이는 반도체 쏠림 구조는 지수의 대표성을 훼손하고 시장 전체를 특정 산업의 리스크에 노출시킨다. 오늘 코스피가 17.91%라는 역대 최대 폭등을 기록한 것도 MS의 AI 인프라 지출 급증 발표로 SK하이닉스가 상한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미국 빅테크 한 기업의 실적 발표에 대한민국 증시 전체가 출렁이는 이 구조는 정상이 아니다. 산업 다변화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중장기 자본시장 체질 개선이 절실하다. 오늘의 폭등이 또 다른 폭락의 전조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구조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56조 개미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것은 오늘의 폭등이 아니라 내일의 구조 개혁이다. 주식이 도박이 아닌 투자의 장으로 거듭날 때, 비로소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미래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