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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각하기에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 남지 않는 장사를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다
마5: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 그렇게 해야 남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른뺨 맞거든, 왼뺨도 치라고 하라. 왼뺨도 맞으면 더 손해다.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을 주고, 오리를 가게 하는 자에게 십리까지 동행하라. 이게 다 말이 왜 안되냐면, 나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받는 의지는 유익, 나의 이익을 가장 중요시여기기에 말이 안되는 소리이다. 그 소리는 유익이 되지 않는 소리이다.
네 이웃을 미워하라고 들었으나,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말도 안된다. 내 자식을 위해서는 기도해도, 나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되는 일이다. 입에도 올리기 싫은데 기도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 이게 정말 이익이 되는 길인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다. 그 길이란 것이다. 세상에서는 이익이 남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된다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상이 없다. 세리도 그러한다. 자기 부인, 자식도 사랑한다.
여기서 주님이 계속 강조하시는 것이 이트로의 삶이다. 우리의 받는 의지를 주님은 건설하기 원하시는 것이다,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 세리와 이방인도 이같이 한다.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 세리도, 이방인도 이렇게 한다. 너희에게 상, 이트로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이트로 주간에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יִתְרֹו 이트로 from יתר 야타르
손(י) : 우리는 모든 것을 손으로 한다. 모든 이익, 유익을 남기기 위해서 손을 댄다
cf ) 그 일에 왜 손을 댓어? 손을 대서 문제가 발생한다. 터치하지 말았어야 한다. 손을 대는 것들이 그런 역할을 한다.
목적(ת) : 유익을 남기는 것의 최고, 탁월함이 뭐냐? 타브에 손을 대는 것이다. 타브는 십자가이다. 하나님의 완성에 손을 대는 것이다
-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탁월하고 최고의 완성이고 최고의 유익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안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 땅에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한 것이다. 그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길을 십자가, 죽음이라고 한다.
- 죽음도 유익함이다.
-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는게 다 나의 죽음이다. 이 죽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길이다
그 십자가(ת)를 머리(ר)를 삼는 것을 이트로라고 한다. 받는 의지가 십자가를 머리로 하는 것이 최고의 이익이라는 것이 יִתְרֹו이트로이다. 십자가가 정말 최고의 이익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실 모세에게는 맹목적적인 그런 믿음이 통한다. 모세는 이런거 따지지 않고, 그냥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받는 의지는 이런 것을 상당히 힘들어한다. 그래서 주님이 이것을 계속 설명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이익에 대해서이다.
* 토라포션 출18:24-27
출18:24 이에 모세가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
- 장인의 말 : 천, 백, 오십, 십부장을 세우는 것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경험하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고,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내리면 진다. 여호와가 직접 싸우시는 이런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그런 백성들이면, 이제 하나님을 경배하고, 서로 사랑하고 살아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모세가 하루종일 하는 일이, 서로의 싸움을 재판하고, 중재하느 일을 하루종일 하고 있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이정도, 애굽에서 나와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삶으로 나왔으면 정말 이제는 자기 자신을 버리고,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하루 종일 재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실제이다. 우리가 늘 교회다니기 시작하면, 서로 사랑할 것 같고, 아름다울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또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그 문제가 발생했을 떄,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cf ) 요즘 제일 안타까운 것이 교회를 안다니는 사람의 많은 %가 교회에서 상처받은 것 때문이라고 하고, 교회를 공격하는 많은 사람들 중, 과거에 교회 다니면서 잘 살아보려고 했다가, 교회 다니는 집사에게 사기를 다했다던가, 돈을 떼먹었다는 이야기가 참 많다. 심지어는 목사님이 돈을 떼먹었다는 이야기까지 상당히 많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것은 사실은, 우리 자신 자체가 받는 의지로 살려고 했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발생한다. 이 이트로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고 나왔지만, 이 자체가 완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완전할 수 없다
- 그래서 예수님이 아버지의 온전함 같이 온전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상이 없다는 것이다. 진짜 상을 받을 길을 걸어가라. 이것이 이트로의 핵심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평, 불만이 있다. 이것은 도대체 받는 의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함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속상하고 받고 싶다. 이럴 때 받는 의지의 리더, 머리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들은 굉장히 중요하다.
히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너희들을 인도하는 자라는 것은 리더, 머리, 로쉬이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인도하는 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하는데, 이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 watch, 지킨다고 한다
שקד 쇼케드 : 경성하다, 형상(ש)을 소망(ק)하는데 종속(ד)되게 하는 것
머리, 리더의 역할은, 끊임없이 어떤 문(ד)으로 들어가게 하는데, 잘못된 문으로 들어가게 하면 안되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형상을 소망하게 하는 문으로 들어가게 해야 한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면 하나님 아들이 안된다는 것이다. 형상을 소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 사랑할만한 사람을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세리와 이방인도 한다.
하나님의 아들로 끊임없이 인도하는 머리이다. 이 머리에 순종하라.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 이트로가 없다
이 머리를 세우는 일에 주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계신다. 사실 우리가 실제적으로도 이 세상의 모든 구조가 천부장, 백부장, 이런 구조로 되어있다. 이런 머리, 리더들을 찾아가게 되어있다.
사4:3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 시온에 남아있는 자, 남은 자 사상
이트로, 남은 자가 거룩하다고 칭함받는다. 이 마지막 때는 남은 자만 구원받는다. 너무 중요한 사상이다. 토라와 선지서에 놀라운 것이 남은 자, Remnent가 구원을 얻고 거룩하다고 칭함받는다. 거룩한 자는 성도이다. 그러면 남은 자의 정체가 무엇인가?
오늘 토라포션에서 남은 자의 정체를 뭐라고 하는가? 받는 의지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אַנְשֵׁי־חַיִל 안쉐이 하일 : 재덕이 겸전한 자
אַנְשֵׁי אֱמֶת 안쉐이 에메트 : 진실무망한 자
천, 백, 십, 오십부장은 이 두 부류에 속한 자이다.
출18:21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וְאַתָּה תֶחֱזֶה מִכָּל־הָעָם 베아타 테헼제 미콜-하암 : 모든 백성으로부터 너는 계시를 가져야한다
- 그냥 뽑는게 아니다.
- 이런 사람을 백성으로부터 빼서 삼으라고 한다
חזה 핰자 : 계시, 환상
- 핰존 :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계시
이런 사람은 계시가 있어야 본다. 아무나 못 본다. 겉으로 보기에, 이런 사람들이 아니다. 이것은 계시적으로만 봐야한다. 너는 그것을 계시적으로 보라는 것이다. 모세는 눈이 열린 자이기에, 그런 사람들을 계시적으로 볼 수 있다
cf ) 오늘날 교회 가운데 하자로 천부장을 뽑지 않기에 문제가 심각하다. 어떤 재물이 많다거나,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거나 하면, 그것을 교회의 머리로 삼는다.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다. 그것은 세상에서나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 하자로 재덕이 겸전한 자를 뽑는다.
חַיִל 하일 :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경외하는 자
cf ) 잠31장에서 에쉐트 하일이라고 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로 결론이 난다
אֱמֶת 에메트 :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
이 두 부류의 사람을 겉모습이 아니라, 속사람, 계시적으로 보고, 이런 자들을 뽑아서 천, 백, 십, 오십부장을 삼으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 사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민수기에서 보면, 이트로는 투르라고 한다
תוּר 투르 : 정탐하다
- 민수기의 정탐사건은 다 이트로 토라포션을 공부했느냐 아니냐를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트로는 겐 족속이라고 하는데, 겐 족속은 이스라엘의 운명을 좌우하는 족속이라고 불리운다.
קיני 키니(겐) from קין 카인
- 카인 족속이다. 카인 족속 중에서 특별한 족속이다. 카인은 다 받는 의지인데, 이 받는 의지 중에서 깨어진 받는 의지이다. 모세를 만남으로, 하나님의 최고의 하나님이라는 것, 복음을 들으므로, 십자가가 최고 유익하다, 죽음도 유익하다고 하는 족속을 겐 족속이라고 한다.
하나님에 속한 신성은 유익 이런거 따지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유익하기 때문에 십자가로 가셨는가? 아니다.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요라고 했다. 예수님은 유익을 바라고 일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카인 족속은 십자가도 유익해야 한다. 죽음도 유익해야 한다. 겐 족속은 이스라엘의 운명을 좌우한다.
cf ) 겐 족속이 출현하지 않으면 안된다. 겐 족속 중에 이스라엘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드보라가 일어나서 전쟁하는데, 바락을 일으켜서 전쟁한다. 그런데 시스라가 쳐들어왔는데, 드보라가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이 영광을 네가, 바락이 받지 못한다고 하고, 야엘이라는 여인이 받는다고 한다. 이 야엘이 바로 겐 족속의 여자이다. 야엘이 말뚝을 가져다가 관자놀이에 박는다. 대단하다.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관자놀이, 머리에다가 십자가를 박아버리는 것이다. 이게 겐 족속이다.
그래서 겐 족속이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겐 족속이다.
겐 족속의 특징중의 하나가 뭔가? 겐 족속 중에 레갑 자손이라고 있다.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이 정말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 말을 듣지 않더니, 예레미야가 니들은 레갑족속에게 좀 배우라는 것이다. 왜 이스라엘에게 갑자기 겐 족속으로부터 배우라는 것인가? 레갑 자손으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운명을 좌우하는게 사실 겐 족속이다.
우리가 정말 이스라엘답게 살지 못할 때, 우리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것이 겐 족속, 이트로의 원리라는 것이다.
תוּר 투르 : 정탐하다
- 이게 정말 나에게 유익이냐는 것을 따져보는 것이다
그런데 정탐하러 올라갔는데, 땅도 좋고, 포도도 막 메고 오고, 어느정도 유익이긴 한데, 내가 죽을 것 같다는 것이다. 내가 메뚜기 같고, 따져보니까 유익이 안되는 것이다. 내가 죽으면 무슨 유익이냐고, 큰일났다, 모세가 일종의 엄청나게 투자하라고 해놓고, 다 망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정말 투자처에 투자할만하고, 정말 좋은 땅이긴 한데, 이거 투자했다가 내가 죽는다는 소리이다. 그래서 10명이 다 난리를 핀다.
그런데 그 중에서 딱 2명이 난리를 안핀다. 여호수아와 갈렙이다. 이 둘이 머리가 된다.
1) חַיִל 하일 : 여호수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2) אֱמֶת 에메트 : 갈렙, 진실 무망한 자, 불의한 이익을 탐내지 않는다
בצה 바짜 : 불의한 이익, 모든 시스템(ב) 가운데서 의(צ)를 보는 것
– 어떤 일이 벌어지던 간에 그 가운데서 의를 본다. 이게 갈렙의 특징이다. 에메트, 진실무망하다는 것은, 모든 일에서 의를 보는 것이다. 이게 갈렙이다.
1) 여호수아는 하나님, 야훼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한다. 그런데 무슨 걱정이냐는 것이다.
- 하일이라는 것은 나중에 군대라는 말로 쓰인다. 여호수아의 군대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을 얻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유익이라는 것을 안다. 우리 주님 예슈아라고 하는 것은, 나의 구원이다. 예슈아가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얻는 것이 내가 삶(ח)을 훈련(ל)할 수 있는 가장 큰 유익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게 내 머리가 되야한다
2) 에메트는 진리라는 뜻인데, 진리는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것이다. 모든 상황 속에서 의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지던지간에, 누구랑 싸웠건, 다퉜던, 친하게 지내건, 행복하건, 모든 상황 속에서 의가 뭐냐는 것이다. 의를 얻는 것이 가장 큰 유익이 된다는 것이다.
빌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사실 받는 의지가 하나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받는 의지에 있어서 죽음과도 같다.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은 죽음과도 같다. 받는 의지의 가장 큰 핵심은, 죽음이 오면 안된다. 그런데 하나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죽음과도 같다. 그런데 받는 의지가 죽는 것이 유익하다는 이 고백을 하면, 받는 의지는 놀라운 점핑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받아들이게 된다
출18:9 이드로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큰 은혜를 베푸사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여
이드로가 이스라엘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וַיִּחדְּ יִתְרֹו עַל כָּל־הַטֹּובָה 바이핰드 이트로 알 콜-하토바 : 이트로가 모든 선과 함께 하나되었다
יִּחַדְּ 얔하드 : 하나되었다.
- 이트로가 선, 토브와 하나되어 버렸다.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어떤 토브냐?
אֲשֶׁר־עָשָׂה יְהוָה לְיִשְׂרָאֵל 아쉐르-아싸 야훼 레이스라엘 : 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토브이다
야훼꼐서 이스라엘에게 행한 선이 뭐냐?
אֲשֶׁר הִצִּילֹו מִיַּד מִצְרָיִם 아쉐르 히찔로 미야드 미쯔라임 : 애굽 사람의 손으로부터 구해내고, 구원한 (토브)이다.
- 그것이 바로 선이다.
이것에 동의했다는 것이고, 이것을 기뻐했다.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해내는게 왜 선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선이라는 것을 이드로가, 받는 의지가 동의한다.
애굽 사람이 추구하는 사람의 형상은 받으려는 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받는 의지에게는 2가지의 삶이 있다. 받는 의지가 받으려고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수 있고, 주는 것을 목적을 할 수 있다. 받는 것은 받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되고, 주기 위한 것을 목적으로 할 수 있다.
그런데 애굽 사람은 받으려고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애굽 사람에게 있어서의 선은, 결국 나에게 와야 선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이 아니다
cf ) 모든 대학에서 떨어졌다면, 선이 아니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선, 악이라고 결정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 왔냐 안왔냐를 보는 것이다
- 그것의 목적이 뭐냐는 것이다.
애굽 사람은 최종적으로 나에게 와야만 선이다. 이트로는 미디안 제사장, 애굽의 제사장이고, 받는 의지를 대표하는데, 이트로가 애굽 사람에서 구해내신 것, 그런데 이스라엘을 위해서 행하신 일, 이스라엘은 주려고 하는 것인데,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해내시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행하신 일, 주는 것이 선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나에게 안와도 나로부터 가는 것이 선이라는 것이다.
Ex )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까지도 주라. 내가 온전한즉 너희도 온전하라.
이 주는 것이 선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이트로가 완전히 동의해버린다. 에하드 되버린다.
כָּל־הַטֹּובָה 콜 토바, 이게 선(טֹּוב)의 본질(כל)이구나, 이것에 이트로가 동의한다. 이트로가 이것에 동의하도록 하는 것이 굉장히 놀라운 사건이다.
시14: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어리석은 자 : 나발
- 이트로가 모세에게, 나발되겠다고 했다. 어리석은 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모세가 그렇게하다가는 이 백성들이 어리석은 자, 나발이 되서 다 죽어버린다. 이 백성들이 받는 의지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 홍해를 나왔건, 반석에서 물이 나왔건, 받는 의지가 있기에 내가 뭘 받았느냐가 핵심이다. 그런데 그 백성 앞에서 무조건 십자가 지라고 했다간 다 나발된다. 다 반기를 들고 일어난다.
예수님이 우리 달래지 않으면, 우리는 사실 예수님을 잘 따라가지도 않는다. 여전히 십자가의 길을 가겠다고 하지만, 진짜 십자가의 길만 주면 다 반기를 들고 나온다. 다 나발 되고 어리석은 자가 된다. 그러면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 내가 받은게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하나님 없다고 그래버린다. 그리고 부패하고 행실이 가증하게 된다. 그래서 선을 행하는 자가 없게된다.
이트로는 굉장히 중요한데, 내 받는 의지가 나발이 되지 않는 길이다. 하나님의 선을 알게되는 것이다.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 금생과 내생에 정말 최고가 되는 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길이다. 아무 것도 안 받는게 아니다. 보상이 어마어마하다. 대단하다. 진정한 보상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것이다.
이 때, 얔히드가 일어난다. 기뻐함이 일어나고 난리가 난다. 그리고, 그렇게되면, 나중에 이트로가 모세와 함께 하나님께 번제와 희생을 드리고, 같이 먹고 마시게 된다.
민15:39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정탐사건 후에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는 핵심적인 것 중 하나가, 술을 달게하는 것이다. 찌찟이라고 한다. 술을 옷단에 달라고 한다. 이 술을 잡고 치유받은 여인이 하나 있었다. 12년동안 혈루증 앓는 여인이 이것을 잡거니, 주님이 내 몸에서 능력이 나갔다고 누구냐고 한다.
이 여인이 왜 이것을 잡았겠는가? 이것은 정탐사건 이후에 달라고 했던 것이다. 정탐사건이라고 했던 것이 뭐냐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트로를 받아들이지 않은 10명의 정탐꾼들을 주님이 추려낸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이익, 유익이 되는 것이다. 이 정탐꾼들은 그것을 모르는 자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진정한 유익이고, 하나님의 나의 구원이 되는게 진정한 구원이다. 만나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다. 이게 여호수아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하나님만 얻으면 다 된다고 한다.
잠31장의 여자가 왜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자인가? 이 여자는 남편만 있으면 되는 여자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남편으로 얻으려고 하는 여자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여호수아인 것이다. 하나님만 있으면 되지, 니들 도대체 뭔 이야기냐는 것이다. 니들 또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
갈렙, 불의한 이익, 하나님만 나의 이익이 되신다, 하나님만 쫓으면 된다
이것을 까먹고 죽게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일 후에 찌찟을 달라고 한다. 이것이 무엇이냐?
צִיצִת 찌찌트 : 찌찟
רְאִיתֶם 리이템 : (찌찟을) 본다
זְכַרְתֶּם 즈카르템 : 기억하게 된다
- 이트로를 기억하게 된다. 뭐가 진짜 이익인지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cf ) 이스라엘 사람들은 앞 사람이 맨날 찌찟을 덜렁덜렁 달고 다니니까 항상 기억하게 된다. 모든 사람은 비지니스와 관계를 할 수 밖에 없으니, 이것을 보면 기억해야 한다. 나에게 진짜 참된 유익이 무엇인지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לֹא־תָתֻרוּ 로-타투루 : 너는 정탐하게 않게 하기 위함이다. 이익을 탐하지 않기 위함이다.
לְבַבְכֶם אַחֲרֵי 레바베켐 앜하레이 : 너희들의 마음을 쫓아서
וְאַחֲרֵי עֵינֵיכֶם 베앜하레이 에이네이켐 : 너희들의 눈을 쫓아서
- 너희들의 눈과 마음을 쫓아서 정탐하지 말고 이익을 탐하지 말라
זֹנִים אַחֲרֵיהֶם 조님 앜하레이헴 : 너희들이 그들을 따라서 음행한다.
음행 : 너희들의 이익을 바라고 만족시키려고 하는 것
- 너희들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눈과 마음을 따라서 이익을 탐하지 말라
= 자기 만족이 이익이라고 하는 그런 정탐을 하지 말라
받는 의지가 이 체계를 세워야 하는 것은, 자기 만족은 이익이 아니다. 차라리 눈을 빼버리는 것이 낫다. 지금 너희들에게 그런 눈과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눈과 마음을 따라 정탐하지 말고, 그게 이익이 된다고 하지 말라. 지나가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을 이익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엄청난 손해이다.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진다. 그것을 정탐하는 그 눈을 빼버리라 너희에게 이익을 준다고 생각하는 그 눈을 빼버리라. 그런 정탐을 하지 말라.
이것을 볼때마다, 이트로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뭐가 진정한 이익이냐는 것이다.
- 십자가를 지는 것이 진짜 이익이냐, 이 순간에 니가 만족을 구하는 것이 진짜 이익이냐?
이스라엘 백성이 이것(=찌찟)을 차고 다니는 이유는, 나는 이 시스템을 갖췄다는 것이다. 천, 백, 오십, 십부장의 시스템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면 또 나만 갖추면 안된다. 이웃에게 너도 갖추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같이 살자는 것이다. 나만 살지 않는다. 이것을 내가 갖췄다고 하면, 내 눈앞에 달고 다녀야 하는데, 목적이 나한테만 있는게 아니라, 이웃에게 기억나게 하는 것이다. 너희들의 받는 의지는 반드시 이 시스템을 갖춰야한다고, 이웃에게 기억나게 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cf ) 우리 모두 이것을 기억하고 살자. 뭐가 진정한 이익인지를, 자녀, LTG원들에게 반드시 그것을 가르쳐줘야 한다. 무조건 모세의 지팡이로 때리면 안된다. 가끔 과격한 리더들이 있다. 그리고 사실은 자기가 받는 의지를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받는 의지의 행태에 대해서 질린 사람일수록 더 과격해진다. 모세의 지팡이가 더 커진다.
자기는 받는 의지 정말 싫고,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거야, 그럼에도 받는 의지가 살아있으면 이것을 갖춰야하기 때문에 모세의 지팡이가 점점 커진다. 다른 지체들에게 그것이 보이면 못참는다. 남의 것을 허용하면, 자기도 허용해야 하기 떄문이다. 그래서 두드려패는데, 패면 자기도 죽는다. 주님은 팰땐 패더라도, 제자들에게도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다. 제자들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냐고 한다. 베드로가 부자인가? 어촌에서 선주들이 부자인가 아닌가보라. 선주라고 하면 진짜 부자이다. 베드로가 그러면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이 그러신다. 나를 위해서 집이나 전토나, 다 버린 자들은 금생, 이 땅에서도 100배를 받는다. 지금 백부장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100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 뿐만이 아니라 내생에서도 받는다
예수님이 무조건 사탄아 물러가라만 하신 것이 아니다. 제자들의 받는 의지를 잘 달래서, 제자들이 하나님을 Receive할 수 있도록 한다. 내가 구원이다는 소리는, 니들이 나만 얻으면 다 끝난다는 것이다. 네가 죽으라는 것은, 네가 왕이 되어있으면 아무것도 안되지 않느냐?. 나를 왕으로 받아들이면 어마어마한 이익이다. 네가 왕이 되서 다스릴 수 있는게 뭐냐? 나를 받아들여라, 이게 이트로이다.
우리의 받는 의지가 정말 이트로를 받아들이게 되면 정말 놀라운 사건이다. 뭐가 정말 이익인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으면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얻으려고 하고, 불의한 이익을 탐하지 않고 진정한 이익을 볼 수 있으면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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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간에는 정말 탁월한 이익을 남기는 자가 되어보라.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내미는 이유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이익을 남기는 길이다. 대단하다. 그렇게 복수하는 것이다. 나를 무시해서 오른뺨을 쳤는데,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서 나타나면, 이정도는 되야지, 오른뺨 쳤다가 나도 치고, 머리 끄댕이 잡고, 결국 머리 다 빠지면 뭔 이익이냐는 것이다.
이게 천부장이다. 하나님을 얻는 것, 진정한 생명을 훈련하는 것이다. חַי 핰이은 생명이라는 것인데 하나님의 생명(ח)을 훈련(ל)하는 것이다. 천부장은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 되는 것, 하나님을 얻는 것을 택한다. 이 천부장이 살아있으면 놀라운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받는 의지는 비로소 안정이 된다.
우리의 받는 의지가 안정이 안되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일관되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을 위해서 십자가 지도 열심히 하다가도, 받는 의지 끓어오르면 끝이다. 홍해를 건너도 물 없으면 물달라고 끝이다. 받는 의지가 한번 무너지면 끝이다.
이 받는 의지를 셋팅하는 이트로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번 한주간에는 진정한 천부장, 백부장이 머리가 되면, 받는 의지가 안정이 된다. 모세와 받는 의지가 결합하면 시내산에 진을 치게 된다
* 기도
이번 한주간 남는장사 하시길 축복한다.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을 얻는 것, 불의한 이익을 탐하지 않는 것이다. 불의한 이익은 이 세상에서만 나만을 만족시키는, 이 세상에서만 이익이 되는 일들, 죽으면 하나도 못 가져갈 것들이다. 나만 기쁘게 하는 것을 탐하지 않는, 갈렙과 같은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를 알자.
이번 한 주간에 내가 죽는 것이 유익이고,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나의 유익인 것을, 내 속 깊이, 진짜로 알 수 있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나의 머리가 되게 하소서
이 일을 이루실 하나님, 이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이 온전한 즉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시고, 진정하게 내가 얻고 유익을 얻어야 할 것을 가르쳐주시고 예슈아 당신을 찬양합니다. 오직 예슈아, 하나님, 당신을 얻는 것,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만이 나의 유익이고, 모든 판단할 수 있는 천부장을 세워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찌찟을 달게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볼때마다 기억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눈과 마음을 쫓아서 나를 기쁘게하는 정탐을 하지 못하게 하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내가 진정한 의, 구원이 무엇인지 정탐할 수 있는 그런 받는 의지로 나를 부르셔서 감사합니다. 오직 죽는 것도 유익하다는 것을 아는 놀라운 받는 의지가 되고, 거기에 동의합니다. 그 모든 선과 하나되어집니다.
애굽 사람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신 것이 가장 큰 선임을 동의하는, 받는 의지가 될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수요일(넷째날)
출19:1-6(To), 사6:1-7:6,9:6-7(Haft), 마6:1-13(신약), 왕하18:1-37(Ke), 단9:20-27(Ne)
* 신약 마6:1-13
| 20160127.mp3 46.68MB |
마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주님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니들이 뭐가 필요한지를 다 아신다는 것이다. 굉장히 이것은 충격적인 기도에 대한 티칭이다. 사실은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다 아신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잘 아는 주기도문에 대해서 가르쳐주신다.
어떻게보면, 아버지께 필요를 구하지 말라? 그럼 뭘 기도하라는 것인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보면, 우리가 원하는 기도와 전혀 상관이 없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의 개념은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달라고 한다. 기도의 혁명적인 티칭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일용할 양식을 달라. 유대인들에 있어서는 만나였다. 헬라인들에게는 내가 매일 먹고 살 양식이지만, 유대인에겐 만나, 하늘에서 주님이 부어주시는 것, 예수 그리스도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신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다른 사람을 위한 근원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주기 위한 것들을 매일 매일 내가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일용할 양식을 달라..!
그리고 아버지께서 죄의 문제를 다루신다.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처럼,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해달라.
סלח 쌀랔흐 : 사하여주다
- 이것의 핵심은 싸멕(ס)이다. 평가이다. 평가가 굉장히 중요하다.
- 어떤 평가, 측정(ס)을 훈련(ל)하는가?
ס 싸메크라는 단어 자체는 안수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평가의 가장 큰 것은, 그야말로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의 몸에 안수하시고, 기름을 부으시면, 다 흘러온다는 것, The Man, 한 사람이다. 이게 싸멕의 가장 큰 특징이다.
사람이 의지하는 것, 하나님께서 안수하시고 기름부으시는 것은 오직 The Man이고, 모든 인간은 One Man, 딱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평가라는 것이다. 우리는 one man이다. one spirit이다. 우리는 한 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같은 한 영임을 볼 수 있다. 이 측정과 평가(ס)를 훈련(ל)하는 삶을 용서(סלח)라고 했다. 우리는 용서하지 않고는 One Man이 될 수 없다.
이번주 토라포션에서 처음 다달은 광야가 수르 광야이고, 그 다음에 סין 신 광야에 다다른다. 인류가 의지해야 할 것이 있는 광야이다. 인류가 어디로 가야할지, 삶이 무엇인지, 평가가 되지 않고, 측정이 되지 않으면 삶을 살 수가 없다. 먼저 평가, 측정이 되야지만 삶을 훈련하고 살 수 있다. 그래서 신 광야에 다다른다.
오늘 토라포션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סיני 씨나이 광야에 도착한다. 신 광야에 요드만 붙어있다. 나의(י) 신 광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나이 광야에서 오늘 주님은, 너는 내 소유가 되겠다고 하신다.
סגל 쎄굴라 : 소유, 보배, 평가(ס)를 자유의지(ג)로 훈련(ל)하는 존재
- 다 싸멕으로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상황으로 이끄시기까지 상당히 오래 걸렸다. 출애굽기는 1-18장까지 첫 파트를 이룬다. 18장에 이트로가 나오는데, 이트로까지 오면 첫 파트를 이루고, 19-45장까지 다음 파트를 이룬다. 이 출애굽기에 있어서 두번째 파트, 19장부터의 특징이 무엇인가?
1-18장까지는 하나님이 강력하게 역사했다. 그래서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역사를 보려면, 1-18장까지가 훨씬 많다. 대단하다. 전무후무하다. 그런데 실제로 중요한 것은 19장 부터인데, 1-18장까지의 하나님만 알아도 우리는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이 역사를 보고 하나님 없다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 자신이 누구신가에 대해선 볼 수 없다. 하나님의 능력과 파워는 볼 수 있지만,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실제, 어떤 분이신지, 인격적인 만남을 할 수 있는 것은 19장부터 전개가 되어진다.
우리도 한 나라의 왕, 징기스칸의 파워와 역사, 알렉산더의 파워와 역사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든지 듣고 경험할 수 있다. 그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왕과의 실제 만남과, 그 왕이 어떤 존재, 어떤 분인지 아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그래서 출19장부터는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인지를 알게되는 시점에 들어가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는데 있어서 출18장까지로 멈출 수 있다. 19장부터가 없다면, 하나님과 에하드되고, 1:1과의 관계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19장부터를 소원하셨지, 18장까지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신들을 발견할 때, 우리가 애굽에 있음을 발견한다. 토라는 절대 연대기로 차곡차곡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애굽에 있음을 발견하고, 또한 애굽에서 나와야함을 발견한다. 나오고자 한다. 그리고 애굽에서 나와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갈망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다.
그런데 애굽에서 나와서,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시내산까지의 여정을 어떻게 걸어와야 할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길까지, 출19장부터 나머지 여정에까지 우리를 인도할 인도자와, 빛을 필요로 한다. 이 인도자와 빛을 그리스도라고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굉장히 제일로 바랐던 것은, 시내 광야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하나되고, 결혼하면, 인류의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인류의 모든 창조의 목적은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해야 그것이 가능한가? 이 스토리가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나에게 가능하냐는 이야기가 인류에게는 어려운 문제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토라를 주셔서, 시내산에서 토라를 받고 하나님과 결혼하고 하나되는 길들이 주어졌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가능하냐는 부분이 의문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실제로 가능케해주시는 하늘에서 오는 참 빛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은, 우리를 시내 광야로 인도해서 하나님과 결혼하게 하는 것이다.
* 토라포션 출19:1-6
출19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살 수 없는 상태가 광야이고, 여기서 오직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평가를 받아들이는 것 뿐이다
2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וַיָּבֹאוּ 야보우 : 그들(3pl, וּ)이 왔다
מִדְבַּר סִינַי 미드바르 시나이 : 시내광야에
וַֽיַּחֲנוּ 바얔하누 : 그들(3pl, וּ)이 진을 치다. from 한
- 마하나임 : 여호와의 진
וַיִּחַן 바얔한 : 그(3fs)가 신을 쳤다
- 이게 단수라는 것에 대해서, 가장 혁명적인 출19장의 토라의 말씀이다
נֶגֶד הָהָר 네게드 하하르 : 산 앞에
וַיִּֽחַן־שָׁם יִשְׂרָאֵל 이스라엘 그가 진을 쳤다
1) יַּחֲנ֖וּ 잌하누 : 그들이 진을 치다(3인칭 복수)
2) יִּחַן 잌한 : 그가 진을 치다(3인칭 단수)
- 하나님에 대하여 섰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3인칭 단수가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서면, 모든 것은 다 복수이다. 내가 내 앞에 서게 되면, 그것은 복수가 된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서면, 하나님에게는 오직 한 사람만이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구절을 제일 중요시 여긴다. 우리는 오직 한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cf ) 오늘날 2000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전세계적으로 유대인만큼 온 이스라엘을 한 사람으로 여기는 민족이 없다. 유대인들은 물어보면, 누구냐고 하면 I'm Jews라고 한다. 누가 누구냐고 하면 I'm Korea이라고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숨기고 싶을 떄도 많다. 뭘 해도 내가 유대인이고, 우리는 하나라는 것이다. 특히 초막절 같은 때, 유대인들은 4개의 아르바님을 흔든다. 묶어서 흔든다. 잘났던 못났던, 아름다운 실과건, 축 쳐진 수양버들, 그런 유대인까지 다 하나다, 우리는 다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못난 유대인도 이 한 사람을 구성하는 한 파트를 구성한다고 한다. 실제로 발뒤꿈치, 발톱, 발가락의 때든지 전체가 한 몸을 형성하는 한 파트라는 것이다. 머리카락 한 올도 말이다. 그래서 어떤 한 사람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 여기서 온다.
그래서 חַן 한은 진을 치다라는 단어이지만, חן 헨이라고 하면, 은혜 은총이라는 뜻이 있다. 여호와께서 노아의 눈에서 이것을 발견한다. 사람이 삶에 신실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님의 은총과 은혜를 받는 길이다.
사람이 생명, 삶에 정말 신실할 수 있는, 그리고 이 삶이 영원한 생명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람이, 사람의 삶이 One Man에 진을 치는 것이다. 이것이 내 평가, Mt. סיני 시나이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평가(ס)라는 것은 니들은 One Man이다. 이것으로 살아야만 너희들은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다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되게 유명한 말이 있다. 이스라엘이 토라를 통해 깨달은 놀라운 계시의 말 중의 하나가 "One Man with One Heart"이다. 역사 이래로 가장 멋진 말인 것 같다.
- 한 사람 한 마음과 함께..
왜 번역을 안하냐면, 애굽은 One heart가 앞으로 와서, with one heart one man이 된다. 이게 무슨 소리냐? 애굽은 왜 순서가 바뀌느냐?
- 애굽은 heart, 원하는 것이 먼저 온다. 그리고 그게 내가 된다. one man이 나 자신이 되어버린다. 내가 원하는 것, heart가 먼저 와서, 내가 원하는 것이 사람이 된다.
원하는 사람끼리, one heart, 뭐가 같은 것을 원하는 사람끼리 한 사람을 형성한다. 그래서 끼리끼리 모인다고 한다. 그래서 종파, 당파, 이런 것들이 뭐냐면, 원하는게 먼저 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사람이 온다.
그런데, 시내산의 계시는 One Man with One Heart이다. One Man, The Man이 먼저오고, 그곳에 하나의 heart가 온다. 그러니 heart는 딱 1개밖에 없다. 전 세계, 전 우주에 heart는 하나밖에 없다. 우리는 one man이고 one man이 가지는 하나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사람이 이 상태에 이르르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사람이 이 상태를 깨달으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결합할 수 있다. 왜냐면, one man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heart는 이 one man에서만 찾을 수 있다. 굉장히 놀라운 상태인 것이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 모세가 하나님을 상승했다고 한다
출19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וּמֹשֶׁ֥ה עָלָ֖ה אֶל־הָאֱלֹהִים 우모쉐 알라 알 하엘로힘 : 모세가 하나님을 향해 상승했다.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 이것을 다시 기억시키신다.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וְעַתָּה 베아타 : 지금(=카이로스의 때)
אִם־שָׁמֹועַ תִּשְׁמְעוּ בְּקֹלִי 임-샤모아 티쉬메우 베콜리
בְּקֹלִ֔י 베콜리 : 내 소리
אִם 임 : if
תִּשְׁמְעוּ 티쉬메우 from 쉐마 : 듣다, 순종하다
- 만약에 내 소리를 너희가 들으면
이전까지는 주님의 소리가 안들렸다. 주님의 소리(קֹלִ֔י)에서 가장 핵심은 쿠프, 소망이다. 뭘 소망하느냐가 완전히 다르다. One Man을 소망하느냐 아니냐? 애굽은 One Man이 아니라, 내 욕망을 이루기 위한 것이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이란, 사람이 먼저이고, 그 사람에 따른 heart가 나오게 되어있다. 그래서 이 one man에 대한 소망을 너희가 듣고, 순종하면이라고 말씀하신다.
בְּקֹלִ֔י 베콜리 : 하나님의 소망 속(in בְּ)에서 듣는다
- 하나님의 소망 속에서 너희가 들으면, 듣고 순종하는 기능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네 소망이 아니라, 내 소망 속에서 들을래? 하는 소리이다. 이 선택의 기로에 놓은 것이다.
그동안 자기 소망으로 살아왔는데, 여호와의 소망 속에서 들을래? 하는 카이로스의 타임이 딱 오는 것이다
וּשְׁמַרְתֶּם אֶת־בְּרִיתִי 우샤마르템 에트-브리티 : 내 언약을 지킬래?
בְּרִיתִי 브리티 : 내 언약
- 내 언약을 네 속에 Keep 할래?
בְּרִיתִי 브리티 : 내 언약, 하나님의 아들을 완성(ת)하는 것이 언약이다.
바르 : 아들 / 브리 : 내 아들
그래서 우리를 다 하나님의 아들되게 한다. 하나님의 아들을 완성하는 것이 언약이다. 하나님이 언약할 때 독특하게 쓰신 방법이, 사체를 2개 반을 쪼갠다. 이게 언약에 쓰는 독특한 방법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는 에하드다, 한 몸이다란 소리이다. one man with one heart이다. 언약을 맺은 사이는 one heart가 된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면 one heart가 된다. 원래 한 몸이었다.
누군가 언약을 맺는다는 것은, 둘이었는데 언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였다는 것을 확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이 언약을 깬다는 것은, 마치 한 몸을 반으로 쪼개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다
cf ) 결혼식에서 제일 강조하는게, 둘이었다가 하나되는게 아니라, 원래 하나였는데 이제 붙었다는 것이다
내 마음을 너희 속에 keeping해라, 내 언약을 지키면이라는 소리는, 너와 나는 원래 하나였다는 전제로 네가 이제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출19장에서의 단계는 차원이 다르다. 그동안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나와 다른 존재 엘로힘이다. 신이다. 독수리 날개로 꺼내오긴 했지만, 철저하게 나와는 다른 존재이고 나와 경배할 대상이었다.
어떻게 보면 모세가 중매쟁이이다. 모세야, 야곱 족속에게 가서 이야기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귀에 들려주라. 이 이야기를 좀 해라. 지금 이 시점에서, 니들은 내 소망이다. 내 소망 가운데서 니들이 나랑 이야기할 수 있겠니? 내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니? 그리고 니들은 원래 나랑 하나였기 때문에, 하나로 붙자는 이야기이다. 지금 결혼하자는 소리이다. 이제 프로포즈로 들리지 않는가?
브리티, 내 언약을 니들이 가지고 있어라는 소리는, 내 언약을 니들 속에 keeping하라는 것은, 너와 나는 원래 하나였다는 것이다. 내 아들, 그 one man을 완성하자는 소리이다. 원래 하나였다.
וִהְיִ֨יתֶם לִי סְגֻלָּה מִכָּל־הָ֣עַמִּ֔ים 베헤이템 리 쎄굴라 미콜-하아밈 : 모든 백성들로부터 너는 쎄굴라가 된다
לִי סְגֻלָּה 리 쎼굴라 : 나를 위한 소유, 보배
- 하나님의 보배란, 내 소망을 훈련하려고 하고, 나랑 한 몸, 한 존재라는 것들을 인정하고, 그 평가(ס)를 자유의지로 선택해서 훈련하는 존재를 하나님의 소유, 보배라고 한다.
בקלי 베콜리, 내 소망 안(ב)에서 들을 것이냐?
cf ) 제자훈련 하다보면, 제일로 느껴지는 것 중 하나가, 정말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는 것이다. 이게 정말 놀라운 사건중의 하나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정말 듣고싶은대로 듣는다. 어떤 사람은 나한테 한 소리죠? 라고 하고, 짜고 치는 고스톱이냐고 한다. 다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이다.
이게 내 소리 안에서 듣는 것, 지금이 그 때라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과 communication이 되기 위해서는 소망이 같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음성을 절대 못 듣는다.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cf ) 부부싸움을 10년동안 하면서 깨달은 것이, 소망이 다르면 절대 못 듣는다는 것이다. 우리 아내는 저녁식사를 같이 먹는 소망이다. 정말 저녁에 노란 불빛 아래에서 남편과 저녁식사를 먹는 것이 사랑이고 삶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소망이 전혀 없다. 우리 아내가 충격이었다. 나의 소망은 빨리 죽는 것, 순교하는 것이라고 집회 가운데서 이야기했더니 충격이었다. 저 인간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그러면 결혼은 왜 했고, 어떻게 저렇게 무책임하게, 자기와 애들을 놓고 죽을 생각을 하는가? 사랑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굉장히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런 남편이고, 아빠라는 것이 제일 자랑스러웠다. 소망이 다른 상태에서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이 사람 눈에는 무책임한 인간으로 들리고, 반대편에서는 뭐 밥먹는게 그렇게 중요하다고 한다. 주님을 위해서 죽어야지..
애초에 one heart one man이다. 서로 원하는 갈망이 먼저이다. 사람이 다르다. 그러니까 도저히 하나될 수 없다. 그러니까 이것이 끝장나는 것이다.
나중에 주님에게 엄청나게 혼났다. 정말 니 아내 말이 맞다고 하셨다. 네가 하려고 했던 모든 것은 사실 네 욕망이지, 나를 위한 순교도 아니고, 너 하나 잘되려고 하는 것이었다.
토라를 알고나면 충격이다. 나보고 다 틀렸다고 한다. 네가 에하드가 되지 않고는, 가정을 모르고는 아무것도 너는 모르는 것이다. 충격이다. 그런데 그런 소리가 들릴 수 있는 것은, 베콜리이다. 주님의 소망이 무엇이냐, 이 One Man을 꺠달았을 때, 드디어 주님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주님의 소리 안에서 듣고, 브리티, 주님과 내가 원래 하나였구나라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종교생활은 주님과 하나되기 위해 산다. 그런데 원래 하나였다는 것을 깨달는 것은 완전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적 전환이다. 이것을 깨달으면 주님의 쎄굴라, 보배, 전 우주에서 가장 보배로운 존재가 된다
모든 치유집회에서 하는 것이, 그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려고,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치유 집회를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그런데 온 열방에서 내가 주님의 보배, 소유라는 것은, 주님의 모든 평가를 내가 선택하고 훈련할 수 있는 유일한 주님의 소유라는 것이다.
출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것도 정말 놀라운 소리이다.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된다
* 베콜리 -> 브리티 -> 쎄굴라 -> 제사장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애굽에서 나왔다. 애굽이라는 나라 자체는 자기들을 핍박하는 나라였다. 그런데 나를 위한 제사장 나라가 된다. 그러면 애굽을 비롯한 모든 세상 나라들을 제사장 나라라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לי 리, 나를 위한, 여호와를 위한 제사장 나라이다. 나, 여호와는 one man이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는 613개의 욕구들이 있다고 했다. 이게 다 다른 나라들이다. 그런데 이 중에 딱 하나의 나라를 주님의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게 이스라엘이다. 모든 나라들은 내 마음 속에 있는 받는 의지들이다. 이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나를 위한 제사장 나라가 되겠다고 하는 것은, 이 모든 받는 의지들을 다 연결하는 나라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 이스라엘이 모든 나라들을 다 연결시킨다. 주는 사랑으로 연결시킨다. 이게 제사장 나라이다.
왜 나를 위한 제사장 나라가 되라고 하느냐? 원래 너희들은 One Man이었다. 지금까지는 다른 나라들이 너희들이랑 상관없었다. 그런데 나를 위한 제사장 나라가 되라는 것은, 너희들은 원래 하나였다. 이제부터 이것을 다 연결하라. 우리의 삶이 목적이 이것을 다 연결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제사장 나라는 삶의 Stage가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거룩한 나라, גֹוי קָדֹושׁ 고이 카도쉬가 된다. 구별되어진 자유의지가 된다.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은 거룩한 나라, 거룩한 Nation이라고 한다.
גֹוי 고이 : 자유의지
- 구별되어진 자유의지가 등장한다
* 스토리텔링
- 시내광야
- 산 앞에 장막을 쳤다. (단수)
- 5,6절 히브리어로 스토리텔링.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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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토라포션을 잘 외우고 있다면, 여러분들의 삶 속에 의외로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원래 주님과 우리가 한 존재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한 존재라는 것은 놀라운 사상인데, 하나니 앞에 서면, 하나님에 대하면 한 존재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반쪽이 하나가 되야지, 반쪽과 연합할 수 있다. 하나님은 에하드이시다. 이미 아버지와 아들이 에하드이시다. 그런데 우리쪽이 에하드인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한쪽은 반, 결합할 준비가 되었는데, 다른 한쪽이 자꾸 쪼개져 있으면 결합이 안되는 것이다.
시내산 광야에 이르렀다는 것은, 그가 진을 쳤다는 것이 단수로 표현된다는 것은, 인류에게 있는 가장 큰 은총(=진 쳤다)은 우리가 One Man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Heart가 나올때만이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욕구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내가 내 자신을 하나라고 여기는 한, 우리는 그 욕구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 욕구가 먼저 지배하기 떄문이다. with one heart가 앞으로 나오면 욕구가 사람을 지배한다. 그런데 사람이 먼저다라고 하면, 그 사람 안에 있는 heart가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원래 하나임을 발견하는 존재이다. 진정한 삶의 해방은 바로 여기서 오는 것이다
* 기도
하나님, 원래 하나였음을 발견하는 것이 그것이 진정한 구원이고 해방입니다. 하나됨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됨을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였습니다. 어떤 고아가 아버지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그 삶은 너무나도 안타까울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 원래 아버지였습니다. 원래 아버지였던 분을 만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원래 하나였고, 원래 아버지셨고, 이 놀라운 평가에 다다른 것입니다. 내가 원래 하나님과 하나였다.
주님, 나는 이것을 받아들입니다. 나는 시내 광야에 다다릅니다. 내가 지금까지 측정하고 평가하고 살아왔던 모든 것들을 다 뒤로하고, 주님 앞에 이제 나아갑니다. 주님의 쎄굴라, 신부로 나아갑니다.
주님 내가 이제 주님과 같은 소망안에 있을 것입니다. 같은 소망 안에서 들을 것입니다. 내가 이제 주님의 언약을 keeping할 것입니다. 주님과 나는 원래 하나, 한 몸입니다. one man with one heart입니다. 내가 이제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내 노력이 아니라, 원래 주님과 하나였기에, 원래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음을 알 것입니다.
내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겠습니다. 이 놀라운 주님의 보배로 살아갈 것입니다.
하나님, 인류에게 오셔서 이 놀라운 것들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시내 광야까지 인도하시는 예슈아, 당신을 찬양합니다. 당신이 우리를 업어서 여기까지 나르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것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로 시내 광야에 진을 치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알지 몰랐을 것입니다. 우리를 애굽에서 꺼내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하나였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고, one man with one heart, 이 새사람 만이 새 마음을 줄 수 있는 것도 몰랐을 것입니다. 우리를 보배, 신부로 삼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일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슈아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목요일(다섯째날)
출19:7-19(To), 마6:14-34(신약), 왕하19:1-34(Ke), 단10:1-11:1(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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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 우리 마음이 보물 있는 곳에 있다. 보물을 어떻게 하늘에 쌓아둘까?
סגל 쎄굴라,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것은, 네 삶에 대한 평가가, 네 삶이 무엇인가가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하늘에 있다는 것이다. 삶이 무엇이냐가 하늘에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삶이 어디로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다 깨닫는다. 우리는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어디론가 사닥다리를 가고 있는데, 어디로 가느냐에 대해서는 알듯 모를듯한다
cf ) 어떤 사람은 천축국, 어떤 사람은 무릉도원, 옥황상제에게 간다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한다
이 시내산 사건이 굉장히 중요한 이유는, 이 모든 인류의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이 직접 내려오셔서 알려주신 것이다.
우리는 토라라고 하면, 모세 오경을 토라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세오경의 문자적인 것을 토라라고 하지 않는다. 토라라는 뜻은 주님이 가르쳐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하나님만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뭐냐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도 사람의 가르침과 착각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배우게 되는 또 하나의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가르칠 수가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 어디로 가느냐이다. 사닥다리의 끝, 최종 목적지가 어딘지는 하나님만이 가르칠 수 있다. 토라는 다 인간이 어디로 가는지를 가르칠 수 있는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어떤 인간도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가르쳐준다. 이것이 토라이다.
주님은 이 가르침을 먹으라고 한다. 주님은 말씀을 먹고 소화시키라고 한다
אכל 아칼 : 먹다
이것 때문에 주님이 날 먹으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토라를 주면, 이 토라를 어떻게 해야 하냐면, 이 가르침을 먹고 소화시켜야 한다. 이 가르침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었다. 우리는 이 토라를 받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산에 온 이유는, 도대체 인간의 삶이 어디로 가느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의 가르침이 내려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을 먹고 마셔야 한다. 소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가르침 안에 실제가 들어있다.
먹는다 : 먹으면 거기서 진짜가 나온다. 그래서 영양가 없는 것은 먹지 않는다. 안에 들어있어야지만 내 몸에서 나온다.
인간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가르침 안에 실제가 들었다 그 실제가 인간 삶의 목적지이다. 인간은 하늘로간다. 그것은 인간이 추상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cf ) 나는 하늘로 간다. 예수를 믿던 안믿던, 죽으면 하늘나라에 갔다고 한다.
그 날은 정말 영광스럽고, 부활의 날이다.
cf ) 디스커버리하고 났더니, 영원한 심판이라는 말이 잘못 번역된 것 같다고, 심판보다는 심사라고 하더라. 주님이 우리를 심사하는 날이다. 그동안 진리를 선으로 행했는지, 심사에 따라서 등급을 나누는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맞는 말인 것 같다. 심사의 날은 굉장히 영광스러운 날이다
우리 모두가 그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 삶에 대한 평가를 받고 싶어한다.
cf ) 정말 제자들은 몇째날이냐고 심사받고 싶어한다
사실 이 하늘에 가는데, 우리가 가려고 하는 이곳 자체가 곧 신성이고, 이 하늘을 The Man,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은 공간적인 곳이 아니다. 이게 영의 토라가 중요한 이유이다.
예수님이 왜 육은 무익하다라고 했을까? 육은 진짜 이익을 남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이 유익하다라는 것이다. 물질적이고, 공간적인 사고는 우리에게 결국은 진정한 유익을 남기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 배우는 이유는, 물질적이고 공간적이고 육적인 개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유치하다는 것은 다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것이다
-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cf ) 그거 염려 안하고 어떻게 사는가? 정말 염려가 안되는가? 염려된다.
그런데 주님은 왜 염려하지 말라고 하냐면, 그냥 에이 모르겠다고 무책임하게 살라는게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으라는 것이다. 그것을 초월해서 더 높은 단계로 나가라는 것이다. 육은 무익하다라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인가? 우리는 다 내가 어디론가 가려고 하는 것은 공간적인데가 아니다. 지금은 물질적이라, 어디로 가고싶다하지만, 내 인생이 되는 것은 어떤 존재가 되고싶다이다. 물론 지금 세상이 집 옮기는데 인생의 목표가 되었기 떄문에 왜곡된 것이 있다. 10년동안 돈벌어서 집 옮기는게 목표이다. 봉급 오르는 것이 목표이다. 그래서 물질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데 그게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다. 그래서 천국도 공간적으로 좋은 곳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영이다. 내 인생이 가는 곳은, 내 형상, 어떠함이 될 것인가이다. 내가 신의 성품이 되어가는 과정이지, 물질적, 공간적인 것을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내 존재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가기 위한 것은, 인간의 존재가 어떤 존재,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 그것이 인간이 걸어가는 길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서 주님이 테스트하는 것이, 물질을 주님이 많이 줘도 불의한 일을 탐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사람이 되고, 이것을 위해서 다 준다면,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떤 공간을 얻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다다라야 할 최고의 목적지는 그래서 그리스도이다.
그러면 저 그리스도까지 가기 위해서, 어느날 갑자기 그리스도까지 가면, 이것은 감당을 못한다
cf ) 오늘부터 내가 대통령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준비가 안되어있다. 국정연설해야한다.
내가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양이 되는 이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주님은 단계 단계마다 그리스도를 주셔야 한다. 이 단계를 올라간다는 것은 사실은 그리스도를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주면, 그 그리스도를 살아내는 것에 따라서, 그리스도에까지 도달한다.
이 단계마다 어떻게 그리스도를 주는가? 이것을 토라라고 한다. 토라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다. 물론 진정한 삶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양이 되기 위해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살아야 할 유일한 방법이다.
cf ) 이 세상에서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그것을 걱정한다는 것은, 무엇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자기가 먹을 것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입을 것, 자기가 옷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옷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자기가 옷이 되버리고, 자기는 없어지고 옷만 남는다. 죽으면 옷만 남는다.
요즘 한국 교회가 재정에 대해서 생 난리를 핀다. 교회 재정이 어떻다느니라고 한다. 옛날에 재정 이야기 교회에서 나오는 것 봤는가? 안나온다. 맨날 그 눈에 재정 이야기만 보이는 사람은, 사실 맨날 관심이 재정만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다 재정 이야기만 보인다. 어딜가나 맨날 그 고민이다. 그런데 주님이 이런게 아니라는 것이다.
유다가 돈궤를 맡고 있었다. 재정 담당이다. 유다 눈에는 맨날 그 돈만 보인다. 이게 너희의 삶을 결정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육으로 살기 시작하면, 육신의 속한 것이 삶을 결정하고, 이게 정말 중요한 문제인 줄 안다. 이것은 사실 하나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Ex ) 내가 한달 연봉이 100억원이다. 정말 행복할 것 같은가?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제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시간을 들라면, 냉장고가 겸손했을 때이다. 냉장고를 열었는데 아무것도 없었을 땐 행복했다. 오늘날 전 대한민국의 냉장고가 다 채워졌다. 그런데 행복지수는 가장 낮다. 왜 그런가? 오늘날 정말 반만년 역사 이래로 최고로 잘 산다. 그래도 반만년 역사 이래로 최고로 많이 싸운다. 어딜 가서 흉기들고, 저기가서 죽이고, 싸우고, 목 조르고, 죽고, 뛰어내린다.
왜 그런가? 사람들이 미쳐가는 것이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이다. 육이 무익한 줄 모르는 것이다.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영적으로, 속사람이 무엇이 되는가이지, 겉사람이 목적이 아니다. 속사람이 그리스도가 되는 것을 위해서 말씀을 주신 것이다. 이것을 토라라고 한다.
그래서 토라 안에는 영이 들어있다. 네가 무엇이 되야할 것인가가 들어있다. 네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에 대한 지혜가 들어있다. 그래서 토라는 먹어야 한다. 먹어서 그것을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토라 안에는 사실 그리스도가 들어있다. 이게 정말 놀라운 사실이다. 토라 안에는 그리스도가 들어있어서, 그 그리스도를 먹어서 내 것으로 소화시켜야한다. 그래서 주님은 오셔서 제발 좀 날 먹으라고 하신다.
그 이야기는, 니들이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하는가? 너희는 매일 먹고 있는게, 그 먹는게 너희들의 삶을 결정하지 않고, 토라 안에 내가 있으니까 날 먹으라. 이 토라를 통해서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잘 살까 생각하지 말고, 이 토라 안에는 내가 들어있다. 날 먹어라
אכל 아칼 : 먹다, 신을 적용하는 훈련
토라 안에 그리스도가 들어있다. 그래서 주님이 그렇게 토라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 위에 대한 가르침을 토라라고 한다. 이 가르침을 니들이 먹으라는 것이다.
* 토라포션 출19:7-19
어제 주님이 모세를 통해서 프로포즈를 하셨다.
출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וְעַתָּה אִם־שָׁמֹועַ תִּשְׁמְעוּ בְּקֹלִי וּשְׁמַרְתֶּם אֶת־בְּרִיתִי
샤모아 티쉬메우 : 듣고 들으면
וְעַתָּה 베아타 : 지금, 카이로스의 때가 이르렀다.
עַתָּה 아타 (= אתה 아타 : 당신과 비슷하다)
cf ) 아인은 목구멍을 완전히 열어서 내는 발음이다
= 눈이 십자가를 보는 것
눈이 십자가를 본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더 이상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삶의 목적이 이 세상에 있지 않다. 열심히 이 세상에서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가 목적인 사람이 99%이다. 그것이 아니라, 내가 뭘 하던지 간에 그리스도, 위의 것이 목적인 사람이 딱 되면, 내가 그리스도의 형상이 되려는 사람이 되면 아타가 된다. 카이로스의 시간에 다다른 것이다.
삶의 목적이라는 것, 이 세상은 십자가에 못박혔고, 육은 무익하고,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이라고 했을 떄, 그 사람은 카이로스, 주님의 시간 속으로 들어와버린다. 그러면 주님의 프로포즈가 들린다. 그러면 내 소리를 들으라고 하신다.
그리고 내 언약을 지키라고 하신다.
내 소리를 들으라는 것은 뭔가?
cf ) 부부가 정말 진짜 사랑 안하면, 제일 많이 하는 소리가 시끄러워이다. 시끄럽다고, 그만하라고 한다, 셔터 마우스라고 한다. 그래서 집에도 늦게 들어가고, 뭐하면 나간다. 시끄러워 죽겠다. 떠들기만 하면 시끄럽다
그런데 주님이 내 소리 안에서 들으라는 것이다. 주님의 소리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בקלי 베콜 : 나의 소리 안에
- 소리 안으로 들어가버리니, 24시간, 365일동안 그 소리 안에 들어가버리는 것이다.
이미 소리 안에 들어갔는데, 뭘 또 듣는가? 나의 소리 안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거의 시끄러워 죽을 지경이다. 소리가 없는 때가 없다. 이게 무슨 소리냐?
- 주님의 소리가 온 땅에 가득하다.
קל 콜 : 소리, 소망
- 내 소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게 육신의 음성 뿐만 아니라, 남편과 결혼한다는 것은, 남편의 소망 안에 확 들어가버리는 것이다. 듣는다는 것은 그 소망에 순종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소망이 뭘까? 주님의 쿠프 때문에 우리를 성도되게 하셨다. 성도라는 것은 주님의 소망과 소망이 같은 자를 말한다.
쿠프라는 말은 원숭이라는 말이다.
cf ) 이게 아마 다윈이 알파벳 공부를 잘못해서, 주님의 소망이 사람이 원숭이가 되는 거다라고 해서 진화론을 만들지 않았을까한다.
- 원숭이가 제일 잘하는 것이 따라하는 것이다. 닮아가는 것이다. 주님의 소망은 날 닮으라는 것이다. 주님을 닮아서, 원래 하나다라는 것이다.
절대로 고양이 보고 쥐를 닮게 할 수 없다. 원래 같은 생명이어야지 닮게 하는 것이다. 날 닮아라. 우리의 소망은 다 주님 같이 되는 것이다. 이게 소망이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필요없다. 다 주님 같이 되는 것이다.
왜 우리 삶에 많은 이벤트가 벌어지는가? 이벤트가 있어야지 주님 같이 되는 것을 훈련할 것 아닌가? 우리 모든 목적은 뭔가? 내 삶에 똑같은 이벤트가 계속 벌어진다는 것은 경고이다. 내 삶에 이상하게 나를 괴롭히는 인간의 유형이 늘 비슷하다면, 회사를 옮겨도 그런 인간이 나타나고, 교회와도 그런 인간이 나타난다면, 내 상태가 늘 똑같다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 상태에서 주님과 같이 되야한다. 그러면 하나님꼐서 절대로 똑같은 상황을 주지 않고, 더 강적을 보내신다. 그래야지 더 주님 같은 것을 훈련할 것 아닌가? 주님은 더 훌륭하시다.
내가 한번 온유했다. 그런데 주님의 온유는 보통 온유가 아니다. 십자가에 못박아도 다 용서하십시요해야지 주님의 온유다. 그러나 처음부터 십자가에 못박으면 주님을 다 떠난다. 그래서 처음엔 조금 바늘로 엄지손가락만 따다가, 나중엔 다 따는 것이다. 점점 강해진다. 모든 강해지는 상황 속에서 주님을 닮아간다.
결혼하면 처음엔 남편이 좋아보이다가, 원수가 되고, 웬수가 되고, 도저히 이해 못할 인간이 된다. 그 때 내가 주님 같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게 그분의 소망 안에 있는 것이다. 훈련하는 것이다. 이게 성도들이다.
인류가 재앙 가운데 있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온 나라의 삶의 스타일이 문제를 들춰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우리가 잘 산다고 한다. 하나님이 2000년 동안 이 세상에서 문제를 안 없앤 이유가 뭔가?
사단의 유혹은, 니들은 문제를 찾아내서 해결하면 복지국가, 잘 사는 나라가 된다고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문제를 찾아내는 자는 그 문제 떄문에 죽는다. 어딜 가나 문제부터 찾아보려고 한다
cf ) 예슈아비전교회와서 목사님의 문제만 찾으려고 해봐라. 문제 덩어리이다. 그런데 그것을 찾아내면 여러분들은 죽는다. 제가 만약에 여러분들의 문제를 찾아낸다고 하면 전 그날로 죽는다. 여러분들은 문제 없는가? 저는 절대 문제를 안 찾는다. 그랬다간 스트레스 받아서 벌써 죽는다.
문제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런 모든 상황 속에서 내가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소망은 에하드, 나와 하나되자는 것이다. 주님이 나를 닮아야 할까? 아니다. 주님이 내 쪽으로 오면 안된다. 우리는 주님을 끌어당겨서, 와서 나랑 하나되자고 한다. 그러면 재앙이다. 주님은 가만히 계셔야 한다. 그리고 주님과 에하드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 소리를 들을 것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소리를 시끄러워한다. 그런거 말고 뭘 먹을까, 입을까를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이 때가 이르렀다. 이 십자가를 보는 자들, 주님이 되는 것을 보는 자들의 때가 이르면, 주님의 소리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매번 어떻게하면 주님과 하나되고, 주님을 닮아갈지가 가득하다.
cf ) 훈련받으면 코치의 소리가 가득하다. 딴짓하면 코치 나타날까봐, 이놈아 뭐해라고 하는 것 같고, 그것은 아니지라고 하는 것 같다. 경기할때도 코치님이 이렇게 하라고 했지. 라는 코치의 소리가 가득하다. 주님의 소리가 가득하길 축복한다.
주님의 프로포즈이다. 너희는 내 소리 안에서 듣고 순종할래? 이 소리이다.
בְּרִיתִי 브리티 : 내 언약
- 내 언약을 네 마음 속에 keeping할래?
언약은 제물을 반으로 쪼개놓는다, 그것은 원래 우리는 하나이다라는 것이다. 결혼을 위한 놀라운 프로포즈이다.
cf ) 다음 결혼하는 사람들은, 이 주님의 프로포즈를 결혼식때 사용할까 생각중이다. 실제로 반으로 쪼개놓고 ㅎㅎ 니들이..
원래 하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것이다. 모든 지혜는 원래 여기서 나온다. 원래 하나였던 데서 나온다. 아버지와 아들의 삶과 사이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런 모든 지혜는 배워서 되는게 아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뭘 했던, 잘 했던 상관없이, 먼저 아빠와 아들이었다. 먼저 하나였다. 관계가 먼저 온다. 먼저 하나였고, 하나라는 전제 하에서 모든 것, 삶이 나온다.
얘가 나한테 잘했기 때문에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얘가 내 딸이다. 내 속에서 나왔다. 원래 하나였다 이 전제에서 얘한테 어떻게 할까가 나온다. 삶이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무슨 일이 발생했는데, 거기서 주님을 닮는다는 것은 원래 하나였다는 것이다. 이 관계가 없이는 어떤 삶도 없다.
주님이 이 세상에 살아갈 때, 네가 누구랑 하나였냐? 다 관계에 의해 설정된다. 관계는 네가 잘했느냐에 따라 설정되는게 아니라, 원래 하나인 것이다
cf ) 세상 사람들도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한다. 그 이야기는 원래 하나였다는 것이다. 거기서 나오는 것이다.
토라가 계속 가르쳐주는 것이 이 원래 하나였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cf ) 왜 이스라엘은 서로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는가? 원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나에게 잘하던, 못하던, 원래 하나에게 대하듯이 대해야 한다. 이 사람이 계속 나한테서 도망가려고 하면, 잡아야 한다. 원래 하나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거기에서 나온다. 그래서 주님이 내 언약을, 너와 나는 원래 하나다, 사실 우리는 주님과 하나되기 위해서 사는게 아니다. 원래 하나인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주님과 결혼 관계에 들어간다.
결혼 관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원래 하나였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러네? 우리는 원래 하나라는 것이다
cf ) 연애하다가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그 동안엔 둘인 줄 알았는데, 원래 하나였다. 내 짝을 찾았다고 한다. 언제 잃어버린 적 있는가? 그런데 왜 찾았다고 하는가? 내 짝을 찾았다는 소리는, 원래 하나였는데 떨어져있다가 비로소 찾은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 사랑하게 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게 주님의 마음이다. 이 시간대가 오면, 우리가 거기에 동의를 한다.
우리가 제일 마음이 아픈 경우가, 내 짝을 찾았는데, 내 짝이 나 너 싫어라고 하면, 정말 미칠 것 같다. 이런거 경험해 본 적 있는가?
cf ) 우리 아내가 내 짝인 줄 알고 사랑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전날, 만나서 이제 나랑 사귀자고 했는데, 나 아저씨 싫다고 하더라. 그 고통이란.. 정말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도대체 이런 일이 왜 벌어지는가? 마음이 왜 아픈가? 원래 하나인데, 안 붙으면 인간의 고통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는게 그것이다. 다 예표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아타, 이 시간 속으로 들어오자는 것이다. 아타, 나랑 하나되자, 그런데 우리가 거기에 동의하는 것이다. 예스..! 우리가 당신과 하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온 땅이 내게 속하였으니, 너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성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프로포즈를 하시는 것이다.
그랬더니, 오늘 토라포션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프로포즈를 다 백성들 앞에서 진술한다.
출19:8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하매
백성이 일제히 응답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게 프로포즈에 딱 대답을 한 것이다. 프로포즈 했을 때 대답을 안하면 어떡하는가? 이게 지금 거꾸로 되었다. 지금 주님이 프로포즈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실 여자들이 제일 착각하는 것이, 남자들이 프로포즈하면 자기가 최고인 것 같은가? 사실 거꾸로 되었다. 여자가 해야한다. 그런데 주님이 겸손하셔서 당신이 하신다. 남자들은 다 겸손해야 한다. 그래서 프로포즈는 남자가 해야한다. 여자가 결혼하자고 쫓아다니면 안된다. 새침떼기처럼 하고 있어야 한다.
וַיַּעֲנוּ 야아누 : 대답했다
כָל־הָעָם 콜-하암 : 모든 백성, 백성들이 내면의 본질적으로 대답했다
יַחְדָּו 얔하다브 : 일제히, 그의 독생자
- 이것이 대답이다
- 완전히 한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프로포즈에 대한 놀라운 대답이다. The Man, One Man이라는 것이다.
이 백성이 이것을 대답했다. 우리가 독생자를 영접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모든 백성이 한 남자를 바란다. 모든 백성이 우리는 한 남자다 라고 하는 것이다. 당신과 나는 다 한 남자이다..! 이게 최고의 프로포즈에 대한 대답이다.
이것을 일제히 대답했다고 번역했다. 약하드는 독생자이다. 이 결혼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것은 우리 모두는, 남편과 아내는 딱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원래 딱 한 사람이었다.
이것을 모세가 여호와께 가서 다 아뢰는 것이다. 그들이 드디어 이 비전을 보았고, 이것에 동의하고, 대답해내고 말았습니다. 정말 이것을 대답하라.
cf ) 저는 종종 제자들을 만나면 물어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던져보면, 어떤 것에 대한 대답을 한다. 그 대답을 들어보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알게된다. 정말 이 대답(얔하다브)을 할 수 있는 것은 인류에게 있어 가장 핵심적인 점핑이 일어나는 그런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 속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인생을 살아간다.
출19: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들이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아뢰었으므로
- 중매가 정말 놀랍다. 이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뺵한 구름 가운데서 임한다고 하신다. 이것의 중요한 이유가,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다.
주님과의 결혼식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 모세를 영원히 믿어야 한다. 모세를 Trust해야한다. 그러지 않으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는 이제 모세를 믿으라고 하면, 이상한 증상이 나타난다.
- 내가 예수님 믿지, 왜 모세를 믿어??등..
물론 예수님 믿지만, 모든 믿음은 이렇다. 사도들 믿는가? 못믿을 사람인가? 서신서들은 누가 썼는가? 사도들을 믿어야 한다. 여러분들의 리더를 믿어야 한다. 심지어 전철에 한 줄로 서 있을 때, 뒤의 사람 믿는가 안믿는가? 밀지 안밀지 어떻게 아는가? 믿어야 산다. 택시 탔는데, 택시 운전사를 못 믿으면 불안해서 어떻게 사는가? 길거리를 갈 때 이 건물 지은 사람을 믿어야 안 무너질 것을 안다.
믿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종교적으로 생각한다. 왜냐면, 나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믿으면 나 구원된다니까, 그것만 바란다. 그 이야기가 아니다. 모세 믿으면 모세가 구원자다라는 것이 아니라, 모세를 믿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토라의 저자가 모세이다. 모세를 믿어야 한다는 것은, 토라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모세를 못 믿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온 토라가 무엇인지 모른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토라는 토라 안에 그리스도가 들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토라가 중요한 이유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토라 안에만 그리스도가 들어있다.
그러니까 모세를 영원히 믿어야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만약에 모세를 못 믿으면, 그리스도를 만날 길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토라공부를 하면, 왜 예수님에 대해서 공부를 안하냐고 한다. 미칠 노릇이다.
요5
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모세를 믿지 않으면, 내 말을 믿지를 못한다. 예수님을 믿지 못한다. 모세를 믿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의 굉장히 중요한 것이, 너를 영원히 믿게 한다는 것이다. 이 사닥다리에 대해서 이야기해논 사람은 모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사닥다리를 올라가려고 할 때, 그 토라 안에 있는 예수님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
모세의 토라를 들고다니기만 하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세의 토라를 먹는게 중요하다. 이게 영의 토라이다. 모세의 토라를 부숴뜨려서 그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계속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모세의 토라를 버려버리거나 믿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근대 사회는, 토라는 모세가 쓴게 아니라고, 모세를 죽여버리는게 근대 사회이다. 진화론이라는 것은 다 모세를 죽이는 것이다. 창세기의 저자가 모세이다. 그런데 모세라는 것은 없다고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이것을 받아서, 하나님의 토라 같은건 없고, 이것은 인간들이 쓴, 짜집기한 책이라는 것이다.
- 이게 근대 사상이다.
그래서 인간의 사고가 중요해진다. 그리스, 헬라 고전이 중요해진다. 인간의 지혜가 중요해진다. 토라 마저도 인간의 지혜라고 해버리면, 그 안에 하나님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없어진다.
그래서 모든 신학교도 다 모세에 대한 공격 속에서, 다 성문서설, 무슨 문서 하는 것은, 모세의 토라는 다 구대에 짜집기한거라고 한다. 이런 것을 신학교에서 배운다.
그렇게되면 하나님과의 결혼, 이런거 다 날아간다. 그게 아니라, 인간은 그냥 밑에서 살기 위해서 살아간다. 그래서 이 결혼에서 모세를 믿게 하는 것이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그게 모세가 하나님이라는 소리가 아니다. 모세를 Trust, 신뢰하는 것,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왔다. 이게 깨어지면, 하나님과의 결혼이 날아간다. 그리스도를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길이 날아간다. 그러면 종교 다원주의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불경 안에서, 저기 안에도 진리가 있고, 다 좋은 이야기라고 한다.
* 스토리텔링
- 5-6절, 어제 프로포즈를 주님 입장에서 해보라
- 모세가 중매를 완성하는 장면들..
- 얔하다브, 일제히 대답하다
- 모세를 믿게 하려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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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간에 조금 더 주님의 소망 가운데서 있으시게 되길 축복한다. 내 소망이 도대체 뭔가? 나는 뭘 그렇게 바라고 있는가? 주님 같이 되는 것이다. 정말 내가 바라는 것이 뭔가? 매 상황 속에서 주님의 형상을 훈련하는 것이다.
상황이 바뀌는게 내 소망이 되면 안된다. 내가 좋아하는 상황이 되는게 내 소망이 되면 안된다. 내 주위가 바뀌는 것이 내 소망이 되면 안된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먹고 입을 것이 바뀌는 것이 내 소망이 되면 안되고,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과 같이 되는 것이 내 소망이 될 때, 카이로스의 시간이라는 전혀 다른 시간대로 들어간다.
주님과의 결혼이다. 결혼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싱글로 살다가 결혼을 하면 굉장히 놀라운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cf ) 아내가 이런 삶을 사는 것은, 내 삶으로 들어왔기 떄문이다.
전혀 다른 시간들을 들어가는 것이다. 이게 정말 놀라운 것이다. 우리가 주님과의 결혼을 알게된다면, 정말 기절초풍할 것이다. 그런데 결혼하고도 주님 상관없이 계속해서 돈 벌러 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게 아니다 주님과 결혼해서 주님의 소망, 주님과 하나되는 것 안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 기도
주님의 프로포즈가 들리는 그런 주간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주님의 프로포즈가 정말 이해가 되는, 얔하다브, 나 역시도, 이게 내 삶의 대답이다라고, 내 삶의 대답이 내 상황 어떻게 해달라는 것이 내 대답이 아니다. 나에게 뭘 해줄거냐가 대답이 아니라, 얔하다브, 이 주님과의 프로포즈가 내 삶에 있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의 프로포즈가 내게 오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님, 이 주님의 프로포즈가 내 삶에 오게하소서. 이 땅에서의 삶 속에서, 정말 이 소리를 듣기 위하여, 이 날까지 살아왔습니다. 내가, 삶에 대한 대답이,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을 가지지 못해서, 방황하고 고통하고,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헤메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의 프로포즈를 듣는 시간에 이르렀습니다. 주님과 하나되기를, 얔하다브, 당신의 독생자만이 나의 모든 소망이고 내가 가야할 곳입니다. 나 역시도 주님 앞에 대답합니다. 주님과 하나될 것입니다.
주님, 내가 가야할 곳, 이것을 알려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이 땅에 살아가는 이유는 주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얔하다브, 내가 이 대답을 하기 위해서 오늘까지 얼마나 많은 삶 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헷갈려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러한 나를 이끄셔서 오늘 이 대답을 할 수 있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물질을 추구했던 것, 그 공허함을 깨닫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과의 결혼으로 들어갑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오시옵소서.
금요일(여섯째날)
출19:20-20:14(To), 마5:8-20(Brit), 마7:1-12(신약), 왕하19:20-37(Ke), 단11:2-45(Ne)
* 토라포션 출19:20-20:14
| 20160129.mp3 57.69MB |
그래서 우리의 모든 물질적인 것은 영이신 하나님을 알도록 되어있다. 예수님이 주신 신약의 모든 가르침은 놀라운 가르침이고,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복음이다. 신약의 모든 가르침은, 모든 문자에는 보물, 영이 숨겨져 있다고 가르친다.
Ex ) 만나 : 나다. 내가 만나다. 만나는 예슈아이다.
이 신약의 가르침, 예수님의 가르침이 없다면, 우리는 도저히 성경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은 다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말씀은 다 예슈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영의 토라라고 하는 것은, 신약 성경의 핵심 가르침이다. 그 안에 들어있는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얻어야 한다.
우리가 사실 토라를 공부하면서, 많은 경우에 너무나도 물질적 사고,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어떤 나의 환경이나 문제를 해결하려고 주님께 나온다. 성경을 왜 읽냐면, 영생을 얻기 위함이다. 나에게 있어 영생은, 내 생명을 유지시켜줄 무엇을 얻으려고 한다. 그게 내 생명인줄 안다. 그래서 주님께 오지만, 주님이 나에게로 와라, 내가 영생이라고 이야기하면, 근심하면서 떠난다.
- 모든 것을 팔고 나에게 오라고 하면 굉장히 근심하면서 떠난다.
왜냐면 우리는 다 부자이기 때문이다. 부자라고 하는 것은, 우리는 내가 살아야 하는 방법에 대해서, 누구나 다 엄청나게 가지고 있다. My way, 내 방법이다. 이 세상의 누구라도 말이다
Ex ) 하나가 조그만해도, 이건 아니라고 자기 방법을 다 자기도 있다. 청년도 자기 방법을 다 가지고있고, 그 방법에 더하기 위해서 주님께 나온 것이다
주님이 그런 방법 다 필요없다고, 버리라고 하니 근심하면서 돌아간다. 토라는 항상, 네 방법은 다 버리고, 오직 단 하나의 방법이 예슈아라고 가르친다. 나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이것을 어떻게 터득하고 배웠는데, 당신만 있으면 되냐고 한다. 그냥 당신은, 내 방법에 더 좋은 방법 하나를 더하면, 내가 당신을 그리스도로 섬긴다고 하는 것이 종교 생활이다.
모든 것을 다 버리실 용의가 있는가? 다 버리기 시작하면, 이제 죽을 것 같다. 나는 살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속에서 주님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우리에게 제일 영적으로 힘든 시기는, 주님이 당신만을 드러낼 때이다. 주님이 니들의 생명은 나이고, 니들은 나만 있으면 된다. 이게 요6장이다. 내가 생명의 떡, 생명이다. 니들은 나만 있으면 된다
5병 2어의 기적을 일으키면서, 주님이 생명의 source인 하나님 여호와임을 드러냈다. 그러니 백성들이 막 주님을 쫓아온다. 그랬더니, 이들이 나를 쫓아오는 이유는, 떡 먹고 배불러서지, 내가 여호와, 생명의 source라고 쫓아오는게 아니라, 또 떡 먹으려고 쫓아오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님이 이야기하시는게, 니들은 무엇을 위해서 일하느냐?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라. 니들이 부유하다고 하는 모든 방법은 썩어 없어질 것이다. 영원한 양식을 위해서 일해라. 영원한 양식이 뭐냐?
- 나다, 나를 믿는 것이다. 나만 있으면 된다. 날 먹어라. 내가 니들의 양식이고 생명이다.
그랬더니, 다 떠나간 것이다.
- 내가 언제 너 달라고 했냐? 나를 부유하게 해달라고 했지.. 그러면서 다 떠나간다. 이 말씀이 어렵도다라고 한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라고 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이, 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사온대..라고 하신다. 주님은 말씀이시다.
כל הדברים 콜 하 드바림
כל 콜 : 모든, Everything, 본질
- 모든 것을 포용하려면, 그 안에 들은 모든 본질만이 그것을 포용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말씀이다.
모든 말씀을 다 포용하고, 하나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예슈아이다. 그래서 모든 말씀은 다 예슈아, 우리 주님에 대한 말씀이다.
그러나 모든 말씀이신 주님이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는 주님을 거부하게 되어있다. 우리가 거듭남의 과정을 계속 걸어가면서, 굉장히 육신에 속한 것들을 주님은 계속 벗게 하시고, 자아로부터 해방되게 하신다. 내 자아가 제일 힘들어하는게 뭐냐면, 주님만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주님만 드러내시면, 우리는 제일 힘들어한다. 우리가 제일 힘들어하는게, 존재적인 만남이다. 뭔가가 나한테 오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지 우리는 좋다. 존재적인 만남만 있으면 굉장히 힘들다.
이번 토라포션은 주님이 주님만 이야기한다. 그래서,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지만, 굉장히 재미없다. 차라리 애굽에서의 이야기가 더 재밌다. 그때는 나에 대한 이야기라 신났다. 사실 주님에 대한 이야기보다 나에 대한 이야기가 더 좋다. 주님의 기적과 이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게 나타나면 내가 신나기 때문이다. 주님이 기적을 통해서 내 문제를 결국 해결해 준 것이고, 애굽 사람을 기적을 통해 치시는 것이다. 주님 최고라고 하지만, 사실 나에게 역사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애굽에서의 삶이 우리는 훨씬 더 재미있고, 좋다. 그래서 주님만 이야기하면 재미없다. 불평하고 원망한다. 그런거 말고, 물이나 달라. 왜 밥도 안주고 자꾸 예배드리냐고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별로 재미가 없다. 주님이 오셨단다. 더더군다나, 애굽보다 훨씬 재미없다. 기적이라도 일으키지 않고, 올라와라, 올라오면 어떻게 한다고 한다. 20장에 오면 오셔서 겨우 하신 일이 십계명 주신 일이다. 별로 재미 없다. 십계명도 별로 재미없다. 왜냐면 반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온 세상이 이 십계명 때문에 죽을 맛이다. 자꾸 맘에 걸린다. 이 십계명만 없으면 인간은 정말 자유할 수 있다. 나의 부유함을 계속 가로막는게 십계명이다.
출20: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וַיְדַבֵּר אֱלֹהִים אֵת כָּל־הַדְּבָרִים הָאֵלֶּה לֵאמֹר 바예다베르 엘로힘 에트 콜-하드바림 하엘레 레모르
כָּל־הַדְּבָרִים 콜-하드바림 : 모든 말씀, 십계명
- 말씀의 모든 것이고, 본질이다. 말씀의 모든 것은 예슈아이다.
십계명은 사실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게 아니다. 이거 하면 천국가고, 이쁨받고, 잘 지키면 복이 보장되어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다. 오늘날 십계명을 관심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 그냥 당연하고 쉽다고 한다. 10개밖에 안되지만, 이것을 제대로 외우는 크리스천들은 많이 없다.
마치 이것을 하면 주님에게서 복을 받는 것 같지만, 십계명은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누군지, 하나님의 형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까지 오면서 하나님이 계속 주신 것이 여호와 נס 니씨이다. 나에 대한 평가(ס)는 내가 한다는 것이다.
내 형상에 대해서, 주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안계신가? 이거 여호와 니씨이다. 맛사에서도 주님을 시험한 것이 뭔가? נס 네쓰라는 것은 기적인데, 가장 큰 기적은 주님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 니씨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손만 들면 이겼다. 주님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말렉은 in order to receive, 내가 부유하게 되기 위해서, 무엇인가 얻기 위해서가 여호와의 영원한 적이다. 물질주의 적인 세계관이 여호와의 영원한 적이다. 뭔가를 얻어야만 내가 살 수 있다고 한다.
아말렉, 받기 위한 목적과 영원히 싸우겠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것을 경험하고나서야 시내산에 다다른다. 그제서야 내가 가겠다. 여호와 니씨. 이 기적을 아는 사람은 여호와만을 원한다. 내가 가겠다. 너희들은 나의 쎄굴라, 신부가 될래? 나만 있으면 되겠느냐? 너희들은 내 소리 속에서 살래? 그리고 니들은 나랑 원래 하나였다. 나의 반쪽이라는 것을 정말 받아들일래? 나랑 결혼할래?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아멘..! 한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좋아서 결혼식 준비하라고 하면서, 결혼식을 하며 출20장에서 놀라운 말씀을 하신다. 콜-하드바림, 여호와 당신을 나타내는 십계명을 말씀하신다.
물질주의적 세계관에서는 주님이 당신을 나타내면, 주님이 어떤 형상,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 것 같다. 영의 토라, 신약의 모든 가르침, 본질, 영은 형상이 없다. 그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 어떠함, 성품, 이것을 우리나라 말로는 性(성품 성)이라고 한다. 이게 진짜 생명이다. 마음(心)에 있는 생명(生)이다. 마음 안에 있는 그 성품이 진짜 형상이다.
그래서 여호와를 가르치는 이 십계명은 여호와의 형상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여호와 자체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출20: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 אָנֹכִי יְהוָה אֱלֹהֶיךָ 아노키 야훼 엘로헤이카 : 이것을 1계명이라고 한다.
물론 이것을 10계명이라고 번역하는데, 우리에게서 계명이라는 말은, 정말, 이것을 지키면 복이 오고, 안지키면 벌이 오는 개념으로 가지고 있다. 지키면 천국, 안지키면 지옥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당신을 설명하는데도, 우리는 모든 관점이 아예 그분을 원하지 않는다. 얘를 만나면, 나에게 무슨 이익이 있느냐? 다 이것이다. 아말렉이다. 나에게 뭐가 오느냐인 것이다
cf ) 저 목사님을 만나면, 예슈아 비전 교회 오면 뭔 이익이냐는 것이다.
이거 지키면 천대까지 복을 받는다? 그 이야기가 아니다. 계명이란 말 자체가 없다. 이것은 그냥 모든 말씀, 예슈아이신 것이다. 하나님이 누구시냐는 것이다.
오늘날은 다른 신을 네게 있지 말지니라, 이것을 첫 계명으로 해버리고, 여호와가 누군지는 중요하지도 않다. 그러나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이다. 이게 제 1계명이다.
1) 하나님의 뜻 in 머리 : אָנֹכִי יְהוָה אֱלֹהֶיךָ 아노키 야훼 엘로헤이카
이것은 13개의 글자로 구성되어있다,
- 13 : 아하바(사랑), 에하드
- 나와 너와의 관계를 가르치는 것은 사랑이다. 너와 나는 에하드이다. 하나다.
우리 삶의 모든 source는 이것이다.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의 모든 뜻은 다 에하드의 사랑이다. 너의 하나님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너의 하나님 야훼다
אֱלֹהֶיךָ 엘로헤이카 : 너를 적용(ך)하기 위해서는, 너가 되기 위해서는 신성(א)을 훈련(ל)해야 하는데, 그 신성이 뭐냐? 하나님(אל) 야훼이다.
- 야훼가 있어야지 된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이 있어야 한다
Ex ) 아들이 나왔으면, 하늘이는 내가 되어야 한다. 하늘이가 살쾡이나 고양이 쥐새끼가 되면 안된다. 하늘이는 반드시 내가, 아버지랑 똑같은 형상이 되야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살아야 하는 source는 하나님이다. 너의 하나님이란 소리가 그것이다. 너가 나로부터 나왔으니까, 너의 삶의 모든 source는 나로부터 나오고, 나에게로 와야한다는 것이다. 그게 나다라는 것이다.
이게 우리 하나님의, 내가 야훼다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source는 여기서 나온다. 이게 하나님의 머리, 뜻을 형성한다. 에하드는 하나님의 모든 뜻을 형성한다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해내었다
- 너를 데리고 나왔다. 왜 데리고 나왔는가? 데리고 나온 가장 큰 이유가 뭔가? 결혼하기 위함이다.
1계명의 가장 큰 핵심은 너를 자아, 너 자신을 위해 사는 것, 지옥의 세력으로부터 너를 해방했다는 것이다. 너가 너를 위해서 사는 것으로부터, 데리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면 뭐하려고? 나랑 결혼, 하나되게 하려고 데리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너의 모든 것의 source, 남편이다.
이게 첫번째, 하나님의 형상의 머리를 형성하고, 하나님의 뜻이다. 가장 핵심이다. 이 뜻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뜻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결코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냐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최고 머리 위의 뜻에 뭐가 있느냐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모든 뜻은 다 어디 있는가? 하나님의 형상의 가장 핵심은, 우리를 지옥, 아말렉, 애굽으로부터 끄집어내서, 내가 받으려는 목적, 나를 위해 사는 것에서 끄집어내서, 다시는 나를 위해서 살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려는 것, 이게 모든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과 결혼하게끔 하고, 내가 너의 남편이다라는 것이다.
2) 핰함(지혜) :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 하나님의 형상에는 머리 다음에, 지혜가 있다. 지혜라는 것은 그 뜻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본질이다.
하나님의 지혜가 뭔가?
출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לֹא יִהְיֶה־לְךָ אֱלֹהִים אֲחֵרִים עַל־פָּנָי 로 이예-레카 엘로힘 앜헤림 알-파나이
로 이예-레카 : 너를 위해서 있게 하기 말라
엘로힘 앜헤림 : 다른 신들을
알-파나이 : 내 얼굴 앞에
- 이게 하나님의 지혜이다. 그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출20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왜 다른 신을 있게하지 말고, 특별히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는가?
cf ) 오늘날 예수님의 모습을 새긴 것이라던지, 사진이라던지, 이런 것이 많다. 그런데 왜 주님은 이것을 만들지 말라고 하시는가?
지혜라는 것은 아주 본질이다. 지혜라고 하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 본질에 속한 것은, 드러나면 안된다.
Ex ) 내 내적인 것들이 다 드러난다고 생각해봐라. 심장을 누군가가 꺼낸다고 생각해봐라. 그러면 그 사람은 죽어버린다.
지혜라는 것은 원래 그 안의 본질적인 것이라 너무 다르다. 본질적인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너무 다르다.
cf ) 우리의 내부를 보면, 실제적으로도 양자역학에서도 보면, 내 안에는 다 전자가 있다. 전자가 막 있는데, 얘들은 불규칙적으로 운동한다. 내가 지금 굉장히 규칙적인 것 같다. 내 피부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의 내부는 겁나게 불규칙적이다. 그래서 얘는 뭐가 되도 아무거나 다 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내 모습이 안 변할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지금 나의 본질은, 지금 내가 토끼 모양이 될 수 있다(웃음). 마음이 깨끗한 자의 눈에는 토끼로 보일 것이다(웃음)
본질은 모든지 다 될 수 있다. 그래서 만약 본질이 형태를 가지고 있으면, 뭘 만들 수 없다. 왜 본질, 순수과학을 공부하냐면, 순수과학을 알면 그것으로 여러 형태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순수과학 자체가 형태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은 순수과학이 아니다.
cf ) 한국이 약한 것이 순수과학이다. 오직 돈 되는 것에만 관심있다. 그러나 진짜 돈 되는 것은 본질적인 것, 저작권, 특허이다. 우리는 맨날 본질적인 것에 돈 가져다주기 바쁘다.
지혜는 하나님이 너의 source이고 본질인데, 이것을 형태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니들이 하나님을 그런 형태로 아는 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무언가, 물질적 세계관으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주로 잘 하는 것이, 십자가 하나님 형상 만들어서, 이게 source이고 something인 줄 안다.
- 그래서 누가 나타나면 십자가부터 들이민다. 다 그렇다. 에봇이라고 하면, 에봇을 갖다가 섬긴다. 장대에 매달렸다가 하면 그것을 또 섬긴다.
그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들의 모든 것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림을 그리지 말라는 것은, 자칫 그것을 그렸다가는 내가 본질이 아니게 된다. 모든 것의 본질, source는 하나님이다. 그게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이다.
3) 데아(지식) : 형상에 대한 진리를 헛되게하지 말라
출20: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지식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는 것이다.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שׁם 쉠 : 이름, 형상(שׁ)에 대한 진리(ם)
שו 샤브 : 망령되이 일컫다, 헛되이 하지 말라(in vain)
- 가치가 없는 것으로 만들지 말라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은, 어떤 사람은 Oh my God.. 이런 표현도 하지 말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어떤 형상이 될 것이냐에 있어서 형상에 대한 진리를 헛되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기가 형상을 결정해놓고, 내가 그 형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유일하게 우리가 되어야 할 형상은 하나님이다. 이게 인간이 가져야 할 지식이다.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의 형상이 되시고, 당신을 드러내신다. 당신을 드러내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 지혜, 지식을 드러내지 다른 것을 드러내지 않으신다. 주님이 당신이 얼마나 잘생기신지, 키가 큰지, 이런 것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얼마나 능력을 드러냈는지 드러내지 않는다. 당신을 소개하고 나타내는 것은, 인간은 다 하나님의 형상이 되야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것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4) 헤세드, 무조건적인 사랑 : 안식일
출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안식이라는 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하나님에게는 안식일,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다. 샤밧을 기억하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깨달으면 안식, 샤밧이 온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조건적인 사랑이라면 안식이 안 온다
Ex ) 가정(Home)에 들어갔을 때 안식이 오는 이유는, 가정엔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서, 더운 여름날이면 난닝구만 입고 있곤 한다. 교회 와서 난닝구만 입고 오면 어떻게 될까?
안식은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온다. 안식일을 기억하고 지키라. 나와 너와의 관계의 핵심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5) 게부라(진리) : 부모공경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게부라는 진리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현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무조건적인 실현하고 실천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질서이다. 질서 가운데서 무조건적인 사랑이 실현되어진다.
그래서 언뜻 보면, 이 게부라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닌 것 같다.
Ex ) 사탕을 달라고 해도 안준다. 이빨 썩는다고 한다. 이게 무조건적인 사랑인가? 또 나를 두드려 패기도 한다.
- 그러나 무조건적인 사랑은 그런 질서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질서 안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핵심 질서가 부모라는 것이다. 어떤 문명이던간에, 부모를 거역해선 이 질서를 얻을 수가 없다. 왜냐면 모든 source는 다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부모를 인정하는 것은, 내가 이 부모로 부터 나왔고, 그 부모는 또 위의 부모에서부터 나오고, 맨 위에는 하나님이 있다. 내가 하나님에게서 나왔다는 정체성을 인정하는 사람은, 부모를 인정하는 것 뿐이다. 부모를 어기는 자식은 천륜을 어기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원숭이, 동물로 만들어버리고, 욕망의 화신으로 만들어버린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안에 놓일 수 있는 길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6) 티프에레트(영광, 아름다움) : 살인하지 말라
- 이 2개를 합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뭔가? 나와 너는 하나, 에하드이고, 우리는 에하드가 될 것이다. 내가 너의 하나님이다. 네가 신성을 훈련하고, 연습해야 할 그 모든 것은 나이다. 그 이야기는, 너는 내가 될 것이다. 너와 나는 하나가 될 것이다.
살인하지 말라,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physical하게 죽이는 것도 얘기가 된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가장 큰 계시가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놀랍게 주신 계시이다
- 사자에게 너 이제부터 사슴 죽이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죽이냐고 하지 않는다
- 그런데 너 저 사람 가서 죽이라고 하면 놀라 자빠진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깊게 알고있는 계시가 죽이면 안된다는 것이다.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절대 죽일 수 없다. 우리가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게 이것이다. 절대 죽일 수 없다. 이것을 어떻게 배웠을까?
cf ) 우리는 죄 안 짓기 어려운데, 이것만큼은, 여기서 갈등해 보신 분 있는가? 오늘 정말 토막살인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려웠다는 사람 있는가? 이것은 정말 우리가 너무 잘 지킨다. 모든 죄에 대해서 이정도 계시만 가지고 있으면, 정말 신날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우리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계시가 우리에겐 이렇게 분명한 것이다. 이게 영광이다. 우리의 영광, 아름다움은 살인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최고의 영광이 살인하지 않는 것이다.
살인하지 않는 것 : 그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연결되어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 내가 여호와다.
내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할 수 있는 길은, 여호와가 되려는 목적을 가지지 않고,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이게 아말렉이다. 나를 위해서 저 사람을 이용하려고 할 떄, 이것을 살인이라고 한다. 엘로힘, 신성을 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나를 목적으로 하였을 때 저 사람을 죽이게 된다. 저 사람을 나의 source로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생명의 근원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놓지 않고, 1계명을 목표로 놓지 않고, 나를 엘로힘으로 생각하면, 생명의 source를 어디론가 가져와야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생명의 source를 취하려고 한다. 사랑 받으려고 하고, 지식을 얻으려고 한다. 사람들을 생명의 source로 이용하면, 빨아먹는 것이기에 살인하는 것이다
cf ) 제자들이 나의 그림을 그려줄 때마다, 항상 빨때를 꽂아서 쪽쪽 빨아먹는 그림을 그린다.
사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만이 우리의 생명의 source이란 것이다. 우리가 아말렉을 버리지 않는다면, 사람의 형상을 계속 파괴한다. 그것이 살인이다. 그래서 인간들이 상처받고, 다 이 세계에서 악인이 되는 이유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절대로 그런 살인을 하지 않는다.
주님은 우리를 이용해서, 니들이 십일조 가져오면, 내가 복준다고, 앵벌이시킬 마음이 전혀 없다. 주님은 전혀 요구가 없다. 주님은 살인하지 않는 분이시다.
7) 네짴흐(승리) : 간음
출20:14 간음하지 말라
승리와 가장 관련있는 것이 간음이다. 간음하는 것은 모든 승리를 빼앗아간다. 우리에게 승리는 십자가에서 내가 죽는 것이다. 그러나 간음은 내가 기쁨을 얻는 것이다. 나의 기쁨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자신의 기쁨을 위해 살지 않으셨다. 이게 주님의 형상이다. 주님은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살질 않는다.
암세포는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 산다. 그런데, 모든 일반 세포는 다른 세포를 위해 산다. 이게 승리이다. 간음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편이 어떤지 상관을 안한다. 자기를 기쁘게 하느냐, 마느냐만이다. 이게 주님의 승리이다.
8) 호드(순복) : 도둑질
출20:15 도둑질하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죽기까지 순종하신다. 사람이 도둑질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왜 하나님은 도둑질하지 말라고 할까?
גנב 가나브 : 도둑질, 자유의지(ג)의 생명(נ)의 시스템(ב)
만나를 주님이 주시면서, 한 오멜만 가지고 오라고 한다. 더 이상 가져오면 안된다. 도둑질은 여기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더 이상 가지고 오면 안된다. 그러면 왜 내가 더 가져오면 안되냐는 것이다. 그 이유가 뭐냐?
모든 지체들은 자기 지체만 유지할 것만 있으면 된다. 나머지는 다른 지체를 위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가려면, 나 혼자만 생각하면 많이 가져와야 한다. 어쨌든 많을수록 좋다. 그래야만 내 생명을 오래 유지시킬 것 아닌가?
순종이라고 하는 것은, 네가 너가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 다 합쳐져야 너다라는 것이다. 이게 순종이다. 순종의 핵심은, 너가 네가 아니다. 너 혼자가 네가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 하나되고, 서로 사랑해야지만, 이 말에 순종 할래 말래?이다.
One Man, One Heart, 이것이 순종할 것이냐? 모든 사람은 한 사람이기에 서로 돌봐주고 사랑해야 한다. 여기에 순종할 것이냐? 우리는 여기에 순종을 안하는 것이다. 너한테 필요한 것만 얻고, 나머지는 여기에 줄 것이냐는 것이다. 내가 주는 이유는, 여기 주라고 주는 것이다. 일종의 유통 시스템이다. 모든 순종은 다 거기에 관련되어있다.
우리는 그것을 사실 죽음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을 주라고 하면, 죽을 것 같은 것이다. 그러면 죽어라..! 그래야 네가 산다. 이게 순종이다. 주님이 도둑질하지 않는 분이라는 것은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순종이 우리에게 있게 되길 축복한다. 주님은 도둑질 하지 않는 분이시다
9) 쏘드(비밀) : 거짓증거
- 이것은 하나님의 뜻, 살인과 연결된다. 모든 비밀은 거짓증거와 연결되어있다.
이웃에 대해서 거짓증거하지 말라고 한다. 거짓증거하는 것의 가장 핵심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당신을 증거할 때,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 이것 때문에 주님은 죽으신다. 주님은 계속 당신을 증거하신다. 내가 하늘에서 왔다. 그 이야기만 안했어도 주님은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자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 당신을 자꾸 증거하신다. 그것 때문에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온 인류가 살아났다. 주님이 당신을 증거했으니까 온 인류가 살아났다. 주님은 절대 거짓증거하지 않으신다.
이 도표를 쭉 올라가보자, 살인하지 말라는 것(=티프에레트)은, 나의 영광과 아름다움은 야훼 속에서 나온 야훼의 아들이고, 반쪽이고, 야훼가 될 존재이다. 더 올라가보면,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하나님의 뜻). 야훼와 나는 에하드, 하나다. 야훼는 나를 애굽에서 꺼내신 분이고, 결혼하기 위해 존재하고, 야훼와 나는 에하드이다.
- 쏘드 -> 티프에레트 -> 하나님의 뜻
이 세상에서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을 뭐라고 하시는가? 너를 증거할 때, 어떤 사람이라고 하는가? 착한가? 거룩한가? 뭘 증거하는 것인가? 잘 들어야 한다. 우리에게 있는 가장 큰 비밀, 생명을 유지시키는 가장 큰 비밀이 뭐냐?
- 나는 야훼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나는 신성을 가졌다라는 것이다. 나는 영원한 사랑 자체라는 것이다.
이게 참 증거이다. 그러지 않고, 이 세상에서 경험한 여러분들을 증거하는 것을 거짓 증거라고 한다. 사탄, 거짓 아비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증거하는 것을 거짓 증거라고 한다. 우리가 나를 증거할 수 있는 것,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할 수 있는 것, 예수님은 항상 그것만을 증거하신다.
10) 말쿠트(Kingdom) :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 모든 것을 탐내지 말라는 것은, 이 형상을 담는 Kingdom과 같은 것이다. 네 이웃의 집, 이 시스템을 탐내지 말라.
우리 모두는 각자가 자기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Ex ) 손, 발, 눈, 이 지체들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탐내지 말라는 것이다. 이게 가장 핵심이다.
자기의 부르심대로이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부르심대로 사셨다. 그것을 Kingdom이라고 한다. 너희들을 나라가 되게 한다. 자기의 부르심대로 다 살게 되어있다.
오늘 십계명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드러내신다. 십계명은 예수님 자체이시다. 그 자체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이 예수님과 결혼하시게 되길 축복한다
* 기도
이 시대 가운데서 하나님이 말씀이시고, 하나님이 영이시고, 하나님은 이 십계명 속에 당신의 어떠함을 다 담아 놓으셨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 당신의 형상을 쫓아가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 된다는 것은 겉 모양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뜻, 지혜, 지식, 사랑, 영광, 진리, 승리, 순복, 우리의 나라가 하나님과 똑같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그것을 보여줄 수 밖에 없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형상이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얻는 것으로 감격하게 하소서.
이 십계명을 예수 그리스도, 이 모든 말씀을 우리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형상을 봅니다. 나는 당신의 형상을 훈련할 것입니다. 당신의 형상을 보고, 나의 삶을 모든 뜻들이 주님의 뜻과 같을 것입니다. 에하드의 놀라운 형상을 봅니다. 주님의 지혜를 봅니다. 당신의 지식을 봅니다. 주님의 사랑을 봅니다. 영광을 봅니다. 주님의 질서를 봅니다. 주님의 승리를 보고, 비밀을 보고, 주님의 순복을 보고, 주님의 나라를 봅니다.
주님, 온 세상이 주님의 십계명을 싫어하고, 또는 care하지 않고, 주님의 형상보다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어떠한 물질적이고, 기적과, 이사를 바라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모두가 주님을 버릴지라도, 우리는 주님을 쫓겠습니다.
설사 나의 이 고백이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주님, 주님이 나를 보호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줄 내가 압니다... 주님이 아십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오직 주님만을 원하는 것을 아십니다..
내가 이 부분에 헷갈려할지라도, 주님께서 나를 인도해주소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놀라운, 모든 말씀이신 주님, 주님의 뜻과 지혜와, 지식과, 사랑, 진리와, 영광과, 승리와, 순복과, 비밀과, 주님의 나라.. 내가 사랑합니다. 주님 내가 탐을 내며, 주님의 나라를 잃어버리는 것을 알게하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내가 나에 대해서 참된 증거를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것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주님, 이 비밀을, 당신이 형상으로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이번 샤밧에, 이 이트로의 주간에, 내 받는 의지가 오직 주님만을 영접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다비드리 목사
작성자 Jos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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