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스님의 생활법문] <4> 스님, 사랑하는 자식을 먼저 보냈습니다
“영원하지 않기에 지금 이 순간 소중히 여겨야”
언젠가 헤어지고 흩어지고
사라짐 알기에 사라졌을 때
있는 그대로 보고 놓아야
고인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는 임종염불을 시연하는 학인 스님들. 불교신문 자료사진
“사랑하는 자식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너무나 괴롭고 아직도 가슴이 아픕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그 얼마나 괴로울까요. 차마 무어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먹먹합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죠. “사랑하는 사람 못 만나서 괴롭고, 미운 사람 자꾸 봐서 괴롭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펼쳐지는 모든 인연의 흐름은 절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사는 이 세상을 ‘사바세계, 참으면서 살아야 하는 세계’라고 표현하셨죠.
옛날 옛적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도시에 ‘고따미’라는 이름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어린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름시름 앓던 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따미는 크나큰 슬픔에 빠져 울부짖으며 외쳤습니다.
“내 아들을 살려주시오. 내 아들을 돌려주시오. 내 아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싸늘하게 식은 아들을 부둥켜안고 그녀는 울었습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보다 못해서 고따미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저곳에는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고 계시오. 부처님께 찾아가서 아이를 살려달라고 간청하시오. 부처님께서 반드시 좋은 약을 주실 것이오.”
부처님이란 단어에 정신이 번쩍 든 고따미는 주저 없이 부처님이 계신 곳을 찾아갔습니다.
부처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애절하고 애타게 간청하였습니다.
“부처님. 부디 저의 아이를 살려주세요.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잠시 침묵으로 고따미를 자비롭게 쳐다보신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여, 내가 하라는 대로 하겠는가.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겠는가.”
여인은 말했습니다.
“부처님,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시키시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여.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에 가서 겨자씨 한줌을 가져오너라.”
부처님 말씀에 순간 아들을 살릴 수 있겠다는 부푼 희망을 얻은 그녀는 곧장 도시로 향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집 앞에서 문을 두드리며 사람을 불렀습니다.
“제발 부탁이 있습니다. 겨자씨 한줌만 주십시오. 제 아들이 죽었는데 부처님께서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에서 겨자씨 한줌을 얻어오라고 하셨습니다. 이 집에 사람이 죽은 적이 있습니까?”
집주인이 고따미의 사정을 듣고 안타깝게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저희 집은 작년에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희 집에 있는 겨자씨는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고따미는 실망하지 않고 다른 집을 향했습니다. 도시에는 아직도 많은 집과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많은 집과 많은 사람들 중에서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의 겨자씨를 반드시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녀는 집집마다 돌며 사정을 설명하고 겨자씨 한줌을 얻을 수 있기를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똑같았습니다.
“우리 집에도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집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 집은 아버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 집도 가족 중에 누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인이여, 나도 그대와 똑같소. 나도 얼마 전에 사랑하는 자식을 잃었소. 그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나도 그 겨자씨 한 줌을 얻고 싶을 뿐이라오.”
온종일 집집을 돌며 죽었던 사람이 없는 집의 겨자씨 한 줌을 구하던 고따미는 완전히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몸도 마음도 더 이상 힘이 남지 않은 고따미는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내 아이는 살릴 수 없는 것인가. 내 아이는 돌아올 수 없는 것인가.”
그녀는 외쳤습니다.
“그 어디에도 결코 죽은 사람이 없었던 집은 없다. 그런데 왜 부처님은 나에게 그런 집에서 겨자씨를 가져오라고 하신 걸까?”
순간 고따미의 마음속 깊은 곳에 홀연히 어둠을 뚫고 비쳐 오르는 새벽의 여명처럼, 그녀 마음은 지혜의 빛으로 물들어 갔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죽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오래 살았던 사람도 있고, 빨리 죽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모든 태어난 존재는 반드시 죽는구나. 내 아이도 그와 같구나.”
슬픔과 괴로움에 빠진 자기를 이끌어주기 위한 부처님의 자비심과 지혜였음을 사무치게 깨달으며 그녀는 고요한 마음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애착과 죽음에 대한 슬픔이 산산이 부서지고 사라졌습니다.
안고 있던 차가워진 어린 아들을 숲에 고이 묻어주고 발걸음을 옮겨 부처님을 향했습니다.
고요한 걸음으로 사원에 들어와서 부처님 발아래 엎드려 절을 올리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부처님께서 고따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난 것은 사라지고, 태어난 존재는 결국 죽는다. 고따미여, 그대는 자신만이 아이를 잃은 것처럼 집착하고 괴로워했다. 그러나 지금 그대가 깨달은 것처럼 모든 존재는 반드시 사라짐이 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고따미는 그 자리에서 환한 마음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비구니 스님이 된 고따미는 훗날 모든 번뇌와 욕망이 사라진 거룩한 성자,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한다면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더구나 사랑하는 자식이 부모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차라리 바다는 말라버려도 부모의 눈물만큼은 쉽게 마르지 않을 겁니다. 너무나 아프고 괴로운 일입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마음을 닦아야 합니다.
부처님께 수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만나면 헤어짐이 있다.
태어나면 죽음이 있다.
만들어지면 부서짐이 있다.
일어난 것은 사라진다.
모든 현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하지 않기에 지금 이 순간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언젠가 헤어지고, 흩어지고, 사라짐을 알기에, 헤어지고 흩어지고 사라졌을 때,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놓아야 합니다.
슬프면 그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아프면 그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보고 싶으면 그리운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세요.
그리고 생각마다 늘 자식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염불하고 염불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떠난 자식이 편안하기를, 좋은 곳에 가기를, 축원 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극락왕생.
[불교신문 3756호/2023년2월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