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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신자와 초보 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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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장코뱅 추천 5 조회 479 24.05.11 08:46 댓글 2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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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5.11 09:16

    첫댓글 눅22:39-53 예수님의 기도와 체포(마 26:36-56; 막 14:32-50; 요 18:1-11을 보라)

    겟세마네 동산은 감람산 자락에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 모두를 둘러싼 유혹을 의식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강권하신다. 그런 다음 홀로 물러나셔서, 가능하다면 자신 앞에 놓인 고난과 진노의 잔(참고. 사 51:22; 막 10:38)을 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하는 아들로서 예수님은 자신을 아버지의 처분에 맡기셨다. 격심한 긴장 뒤에, 예수님은 일어나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다시 그들에게 기도할 것을 권하신다. 기도했던 그분만이 다음 몇 시간 동안 강하게 버티실 수 있었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동안, 배신자는-경멸조로 '유다라 하는 자'로 지칭된다-성전을 지키도록 임명된 경찰들과 함께 당도하여, 표리부동한 배신의 인사를 한다. 제자들은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지 깨닫는다. 그리하여 두 개의 칼(38절) 가운데 한 개를 꺼내어 휘두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저지하시고, 무리에게 향하신다. 이것이 평화로운 선생을 체포하는 방식인가? 참으로 악이 뒤흔들 시간이 온 것이다!

  • 작성자 24.05.11 09:17

    주. 40절. 그 장소는 예수님이 '습관을 따라'(39절) 찾아가신 곳이므로, 유다는 어디에 가면 예수님을 찾을 수 있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43-44절. 이 구절은 가장 좋은 일부 사본들에는 생략되어 있다. 그것은 이 구절이 본문에 부가된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구절의 언어는 누가의 방식이다. 그래서 진짜 누가의 것일 수도 있다. 예수님의 땀은 색깔이 그렇다기보다는 방울방울 떨어지는 크기가 피와 같았다.

    『IVP 성경주석:복음서』, :누가복음22장“

  • 24.05.11 10:38

    @장코뱅 가룟 유다가 사악하면서도 불쌍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도하는 습관의 고귀한 장소를 밀고하는 모습이 참 찌질합니다ㅠㅠ

  • 24.05.11 15:54

    @노베 공감합니다.

  • 작성자 24.05.11 09:26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이 말씀으로부터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라는 일반적인 규범을 이끌어 내는 것이 마땅하다.
    --------------------------

    마 26:41. 깨어 기도하라.

    제자들은 그들의 주님이 위험에 처해 계시는데도 무심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그들도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생각하셔서, 그들의 문제로 관심을 돌려, 그들이 “깨어 기도하지” 않는다면, 곧 "시험"을 받아 거기에 붙잡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이것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나 다름없다: "너희가 내게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도, 적어도 너희 자신을 위해서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왜냐하면, 이 일에는 너희의 이해관계도 걸려 있어서, 만약 너희가 관심을 갖고 주의하지 않는다면, 곧 시험이 찾아와서 너희를 삼켜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시험에 든다"는 것은 시험에 굴복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 작성자 24.05.11 09:26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시험을 이기는 방법으로 명하시는 것은 그들 자신의 힘과 인내심을 발휘하여 담대하게 시험에 대항하라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정반대로 그들의 연약함을 깨닫고서 하나님께 힘과 병기를 구하라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깨어" 있을지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마 26:41. 마음에는 원이로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낙심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들의 나태함(segnities)을 온유하게 책망하시고, 일정 정도 위로와 소망을 더하신다. 먼저,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옳은 일을 행하고자 간절히 원하고는 있지만, 그럴지라도 여전히 육신의 연약함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기도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신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그들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절망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들이 옳은 일을 행하고자 한다는 것을 먼저 칭찬하신 후에,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충분히 받지 못한 까닭에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며, 기도할 것을 간곡하게 권면하시는 것이다.

  • 작성자 24.05.11 09:27

    그러므로 이 권면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서 옳은 일을 행하고자 하지만 여전히 육신의 연약함 아래에서 힘들어하는 믿는 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혜가 그들에게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육신을 따라서는 약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제자들에 대해서만 그들의 연약함을 지적하셨지만,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이 말씀으로부터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라는 일반적인 규범을 이끌어 내는 것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도우셔서 우리를 붙드시고 일으켜 세워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리 성령의 능력을 덧입는다고 할지라도, 육신의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종종 넘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가 구하면 반드시 얻게 될 확실한 해결책이 주어져 있는 까닭에, 우리가 지나치게 염려하며 두려워 떨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간절히 구하는 자는 누구나 인내로써 육신의 무기력함을 떨쳐버리고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시기 때문이다.

    『칼빈주석: 공관복음』, “마26:36-44; 눅22:3946”

  • 24.05.11 10:43

    @장코뱅 네, 공감합니다.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현대를 사는 우리도 들으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지요.

  • 24.05.11 14:28

    @노베 공감합니다.

  • 작성자 24.05.11 09:36

    눅22:44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천사의 도움을 받아 예수는 더욱 간절하게 기도한다. 이같이 기도하는 상태는 고민과 불안한 상태에 처해 있다고 하겠는데 여기서 말하는 불안한 상태란 죽음을 앞둔 두려움을 뜻할 수 있으나 그보다는 오히려 죽음을 대면하면서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긴장된 노력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 이 구절에 관해서는 다양한 해석들이 있다. ① 땀이피 방울처럼 보였다거나(Zahn, Grundmann), ② 피가 땀구멍으로 스며나온 것으로 보는(Plum-mer) 경우나, ③ 땀에 피가 섞여 떨어졌다는 주장(Meyer, Farrar) 등이 있다. 그렇지만 어떤 것이 더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예수께서 몸이 가루가 될 정도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셨다는 기도의 절박함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예수께서 드리셨던 기도는 곧 단장(斷腸)의 기도였던 것이다.

    22:45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누가는 제자들이 잠든 까닭을 슬픔(sorrow, NIV)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 작성자 24.05.11 09:37

    슬픔이 왜 잠든 이유가 되는지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제자들도 예수의 체포와 고난을 감지하여 걱정하며 슬픔에 가득차기도 하다 지쳐 잠든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마태와 마가의 보도에 따르면 예수가 세 명의 제자들에게 돌아왔을 때 그들이 자고 있자 베드로에게 책망을 가하신다. 따라서 제자들은 예수의 고뇌와 아픔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누가는 역시 제자들의 무지와 나약함보다는 제자들의 긍정적 이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22:46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기도하라.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일어나'라는 말 대신에 '깨어 있어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마태와 마가는 예수께서 그 말씀을 하신 후 세 번씩이나 제자들에게 와서 자는 것을 보시고 돌아가 다시 똑같은 기도를 하셨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돌아와 자고 쉬라는 말을 하신다. 따라서 마태와 마가의 보도에 따르면 제자들은 예수의 체포 순간까지 예수와 연대(帶)하지 못하고 예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모습으로 강조된다. 반면 누가는 이 같은 모습을 언급하고 싶지 않아 세 차례의 기도와 책망을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

  • 작성자 24.05.11 09:38

    어쨌든 제자들은 지난밤의 긴장되고 무거운 만찬과 예수의 고별의 말씀들과 예수께서 배반당하실 것이라는 말씀에 대한 흥분 등으로 매우 긴장된 채 밤을 맞이하여 기도에 들어갔다. 아울러 그들은 기도하며 예수의 죽음에 대해 인식하면서 슬픈 감정과 함께 심신이 피로하였을 것이다. 이런 복합적 요인으로 인해 그들은 기도하면서 쉽게 잠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밤은 그들이 쉽게 잠들 만큼 평온한 밤이 아니었다. 그 밤은 온통 죽음의 권세가 온 세상을 짓누르고 있었으며 예수는 온몸으로 이 세력과 홀로 맞서고 계셨다. 이러한 예수를 두고 제자들은 잠들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예수의 힘이 되어 주어야만 했었다. 혹 그들이 이전에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고기를 잡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이 밤에 단 하룻밤 몇 시간 동안도 기도하지 못하고 잠들고 말았다. 결국 이들의 잠이 그들에게 엄청난 시험과 좌절과 절망으로 나타났으며 걷잡을 수 없는 슬픔 속에 빠지게 하였다.

    『뉴호크마 주석: 신약』, “누가복음22장”

  • 24.05.11 10:50

    @장코뱅 너무 슬퍼도 잠에 듭니다. 우울증에 걸린 환우들이 낮에도 잠을 많이 잔다고 합니다. 슬픔과 우울로 잠에 빠지는 일이 없고 오히려 일어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 24.05.11 14:28

    @노베 아멘!

  • 24.05.13 17:37

    @노베 공감합니다.

  • 작성자 24.05.11 09:42

    잡히시고 재판받으심(22:39∼23:25).

    식사가 끝난 후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감람산 기슭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신다(22:39). 시험이라는 주제는 앞의 단락들에서부터 계속된다. 이야기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권면하시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난다(22:39~46). 예수님은 본보기 역할을 하신다. 예수님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당연히 공포감을 느껴, 하나님 아버지께 잔을 예수님 자신에게서 옮겨 달라고 간청하신다. 잔은 예수님께 부어질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도를 통해 예수님은 시험을 극복하시고, 신실함을 유지하시며, 하나님 아버지 뜻에 대해 준비되신다. 제자들은 이와 대조적으로 예수님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제자들은 시험의 때에 기도하지 않고 잠에 빠져든다. 43~44절은 원문에서는 확실하지 않다. 이것은 원본에 있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오래되고 아마 확실하게 근거있는 전승을 포함한다.

    『베이커 성경주석: 신약』, “누가복음 22장”

  • 24.05.11 10:57

    공포감 앞에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와 실천을 주님이 보여 주셨습니다. 기도를 귀하게 여기고 가능한 많이 해야 하겠습니다.

  • 24.05.11 15:54

    @노베 네, 공감합니다.

  • 작성자 24.05.11 09:51

    누가만이 천사가 하늘에서 나타나 예수님께 힘을 더하는 모습과 땀이 마치 "떨어지는 핏방울”처럼 되는 모습을 이야기한다.
    ----------------------

    22:40 그곳.

    겟세마네를 가리킨다(막 14:32). “기름 짜는 틀"이란 뜻으로, 예루살렘 동쪽 성벽에서 기드론 골짜기로 가로지르면 나타나는 감람산 숲의 이름이다(요 18:1).

    기도하라.

    마가와 마태의 기록과는 다르게, 누가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예수님이 기도하는 동안 잠들었던 이들)을 언급하지 않는다. 여기서 누가는 제자들의 실패가 아니라, 예수님의 기도에 더 초점을 둔다.

    22:41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대개 서 서기도했다(눅 18:11, 13). 그러나 이 장엄한 순간에 예수님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신다(참고, 엡 3:14)

    22:42 이잔.

    고난과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한다(사 51:17; -겔23:33). 앞서 그날 저녁에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의 잔을 세워 제자들에게 주셨다(20절).

  • 작성자 24.05.11 09:52

    내 원대로 마시옵고.

    스스로 완전한 인성을 취하신 자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공포에서 위축되시는 기분은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이 두려움은예수님이 비록 완전히 의롭고 무고하심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에게서 버림당하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무게를 감당하셔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시면서 더 커졌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기 위해 아버지의뜻을 따르기로 결심하신다(요 6:38, 39: 히 10:5~10).

    22:43, 44

    누가만이 천사가 하늘에서 나타나 예수님께 힘을 더하는 모습과 땀이 마치 "떨어지는 핏방울”처럼 되는 모습을 이야기한다. 이 구절들은 여러 초기 사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가 기록한 내용이 아닐 수도 있다. 여하튼, 문제가 제기되는 성경의 모든 내용이 그렇듯이, 이 구절들을 삽입하거나 생략한다고 해서 기독교 교리에 영향을 끼치것은 결코 아니다.

    『개혁주의 스터디 바이블』, “누가복음 22장"

  • 24.05.11 11:02

    @장코뱅 천사가 기도를 도운 이야기가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것이군요. 이래서 주석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귀한 지식입니다.

  • 24.05.11 15:54

    @노베 저도 잘 참고합니다.

  • 24.05.11 11:06

    시험과 유혹이 많은 것이 이 세상 살이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식과 확신을 가진 성도는 기도할 것입니다. 좋은 묵상의 내용에 매우 공감합니다.

  • 작성자 24.05.11 13:52

    공감이 되는 좋은 댓글입니다.

  • 24.05.11 11:13

    기도하러 갔지만 제자들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잠이 들었다는 정황은 인간의 육체적 특성이 잘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슬퍼하면 보통 잠이 들지요. 감정이 과도해지면 뇌도 휴식이 필요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 정도로 제자들의 슬픔과 상심이 컸을 것 같습니다.
    오늘 묵상의 내용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염려를 떨쳐내고 기도에 힘쓰라는 것인데요. 염려, 걱정을 앞세우면 기도하는 것을 등한히 하고 뒷전으로 밀리면서 어느덧 시험에 빠져버리기 때문에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군요.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슬퍼하고 걱정하고 고통스러워하고 두려워하고 마침내 패닉에 빠져버리게 된다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눈덩이처럼 커지기 전에 미리미리 기도로써 염려를 떨쳐내고 재리의 유혹과 욕심도 자리 잡지 못하게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4.05.11 11:29

    깊고 풍성한 댓글의 내용에 공감합니다.

  • 작성자 24.05.11 13:53

    좋은 댓글에 공감합니다. 잠의 긍정적 기능도 조금 언급하셨네요.

  • 24.05.13 17:37

    묵상을 통해서 기도를 해야하는 중요상을 다시금 상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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