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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주문진본당에서 제4대, 제8대 사목회장을 역임하시고 얼마전 입암동본당으로 이사가신 정인수 아우구스티노 형제님의 수필 <2016년, 부활절 풍경> 입니다. 입암동 본당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으며, 정회장님의 희망에 따라 우리 본당 홈페이지에 올리게 된 것입니다. ---필립네 〖수 필〗 2016년, 부활절 풍경 정인수 아우구스티노
2016년 부활절 풍경은 나로서는 정말 의미 있는 특별한 날이다. 3월24일 주님만찬과 25일 주님수난 성금요일, 26일 부활성야 미사에 이어 27일 드디어 부활절을 맞이하여 장엄한 대미사를 통해 예수부활을 축하하는 ‘알렐루야’를 소리 높여 부를 수 있어 부활의 기쁨을 만끽했다. 입암성모성심성당은 대미사 후 부활절과 본당 설립 8주년을 겸한 풍성한 잔치가 열렸다. 때 마침 화창한 전형적인 봄날이었다. 하느님 축복의 햇살이 온통 대지 위에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신자들에게 쇠고기 국이 곁들어진 중식과 돼지 삼겹살을 안주 삼아 소주와 옥수수 막걸리 파티가 열리고 붕어빵 기계에서는 간식거리로 연신 붕어가 구워져 나왔다. 가브리엘 형제의 붕어빵 굽는 기술은 프로를 능가했다. 교우들이 줄을 서 미처 구워지기도 전에 붕어빵 틀에서 붕어가 구워 나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진풍경이었다. 그리고 맛나게 끓여진 오뎅도 등장했다. 풍성한 먹거리 찬치가 벌어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차려진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봉사와 희생 정신없이는 불가능했을 풍성한 먹거리를 준비한 교형자매님들의 노고가 한층 돋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러한 잔치에 교우들뿐만 아니라, 인근 경로당 노인들도 참석하여 예수부활의 의미를 더 했다. 역시 나눔의 실천은 아름다운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한편 성모님 동상 마당에서는 각 구역별로 윷놀이대회가 열렸다. 여러 곳에 벌여진 윷놀이 판에서는 함성과 웃음소리가 뒤 섞여 튀어 나왔고 훈수를 드는 목소리는 애교스럽기까지 했다. 왁자지껄 시끌법적, 마치 흥겨운 시골 장터를 연상하게 한다. 누가 지어낸 말이던가. ‘도긴개긴’이라고 말이다. 도와 개는 비슷하여 도토리 키재기와 같아 오십보백보라는 뜻이란다. 그러나 윷판에서 상황에 따라 도와 개의 역할을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가 개를 잡고, 개가 걸을 잡고, 모가 상대방 말을 앞지르고 그러다가 빠꾸(パツク: 후진) ‘도’가 나와 뒷걸음을 쳐야 하고 말 세 개가 한꺼번에 내 닫다가 되잡히고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윷판에 재미는 그야말로 전입가경이다.
마지막으로 경품 추첨이 열렸다. 오늘 행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경품 뽑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줄 잡아 100명 정도는 되는가 싶었다. 경품 대에 놓여 진 30여점의 경품들은 황금색으로 예쁘게 포장된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일 큰 경품으로 새 자전거 한 대가 전면에 떡 버티고 서있었다. 일부 남자 교우들이 자전거를 만져 본다. 나도 만져 보았다. 그러자 누군가 나에게 조크했다. “만지지마세요. 내가 타 갈 테니까요.” 말하자면 자기가 경품으로 타 가지고 간다는 뜻이다. 나는 얼른 자전거 안장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어이쿠! 그러니까 입도선매라는 뜻이구먼. 알았어요.” 나도 농담으로 화답했다. 입도선매(立稻先賣)란 아직 논에서 자라고 있는 벼를 미리 돈을 받고 판다는 뜻으로 경품 추첨이 시작도 되지 않은데도 미리 자신의 것이라고 찜해 놓은 것을 빗대어 한 말이었다.
그때 옆에 있던 안드레아 형님이 말했다. 자전거를 만지면서 “이 자전거 내가 타 가면 좋겠다.” 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형님은 올해 여든 여섯의 나이다. 일찍이 소시적(小時的)인 19살 꽃 다운 청춘에 해병대에 자원입대하여 6.25 전투를 치른 용감한 해병대 출신의 역전의 용사이기도 했다. 자식들은 서울에 있고 현재는 내외분만 강릉에 이사 와서 살면서 성당에 나오는 것이다. 나는 만 65세 이상 모임인 요셉회원으로 그분을 큰 형님으로 깍듯이 모신다. 우리 요셉회는 최고 아흔 두 살의 왕 형님도 계신다. 그리고 나이 순서에 따라 큰형님, 중형님, 또한 한 살이라도 나이가 위면 무조건 형님이다. 그래서인가 단합이 잘 되고 항상 만나면 화기애애하다. 안드레아 형님은 형수님과 함께 주일미사는 물론 평일미사에 거의 빠지는 적이 없다. 열심이다. 요셉회 차원에서 쉬는 교우와 아픈 교우를 찾아 가정방문을 하는 선교 활동에도 적극 참여한다. 참으로 본받을 만한 모범적인 교우인 것이다.
나는 안드레아 형님에게 말했다. “형님, 내가 이 자전거를 타게 되면 형님 드릴께요.” 그러자 옆에 있던 내자 데레사도 맞장구쳤다. “제가 당첨되어도 드릴게요.” 내가 가지고 있는 번호는 110번, 데레사가 가지고 있는 번호는 101번이었다. 나는 번호표를 데레사에게 주면서 알아서 하라고 했다. 나는 이때 만해도 내 번호를 유심히 살펴보거나 숙지하지 않아 몇 번인지 잘 몰랐다.
바야흐로 경품추첨 행사가 시작되었다. 사회를 맡은 우람한 체격의 방지거 형제의 유머러스한 입담과 재치는 분위기를 한층 돋웠다. 추첨함에서 경품권이 한 장 씩 뽑아 나오는 순간마다 당첨을 기다리는 선물과 오버랩 되어 과연 주인공이 누구일까 하는 묘한 긴장감마저 흐르기까지 했다. 사회자 손에 들려진 번호를 공개하는 입놀림에 이목이 집중된다. 120… 하고 뜸을 들이자 얼른 교우 한 사람이 뛰쳐나온다. 그러자 사회자는 다시 추첨권 번호를 보면서 127번이거든요.” 뛰어 나온 교우는 아차 싶어 머리를 긁으며 제 자리로 돌아간다. 어떤 교우는 자신의 200번대 번호가 도무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자 추첨 통을 다시 흔들어보라고 애교 섞인 주문한다. 사회자는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좌우상하로 흔들어 준다. 이어지는 경품이 추첨될 때마다 환호작약하는 소리와 함께 아~ 하는 비탄의 소리가 동시에 튀어 나온다.
이러는 사이 해병대를 제대한 안드레아 형님도 경품에 당첨 되었다. 경품이 포장되어 내용물을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자그마한 행운을 거머쥔 것이다. 그러나 형님은 “나는 자전거를 바랬는데” 하면서 못내 아쉬워하는 독백을 앞줄에 앉아 있던 나는 역력히 들을 수가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정말 자전거 당첨이 소원인가보다 하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 형님은 늘 걸어서 성당엘 다녔다. 그분에게 자전거라도 있으면 성당 다니기에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 사이에 경품 대 위에 있던 경품들은 모두 새 주인을 찾아 떠나버리고 급기야 경품 대 위에는 경품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경품에 당첨 된 교우들은 기분이 좋았겠지만 하나도 타지 못한 사람은 서운한 순간이 온 것이다. 경품에 당첨 된 사람들 중 어떤 교우는 여러 개 탈 수 있었다. 그것은 내외와 다른 사람이 주고 간 몫까지 쥐고 있다가 행운(?)을 쥔 것이다. 그러니 하나도 당첨되지 못한 사람은 속이 쓰린 것은 이해할 만했다. 우리 성당에 열심히 교회에 나오는 모녀가 있다. 딸은 과년(瓜年)한 나이지만 정신장애자이다. 다른 사람은 당첨되는데 자신들은 하나도 당첨되지 않았다면서 엄마가 애를 태우는 눈치였다. 나는 그것을 보는 순간 안쓰럽기만 했다. 이를 알아 챈 라파엘 주임 신부님은 자신의 몫으로 당첨된 경품을 그 모녀에게 다가가 건네주니까 모녀의 얼굴 표정이 금시 환하게 밝아졌다.
이제 모든 이목은 마지막 경품으로 하이라이트인 자전거 1대에 쏠렸다. 긴장감마저 넘쳐흘렀다. 사회자는 특유의 억양과 제스처로 시간을 끌더니, 추첨함을 다시 한 번 흔들었다. 그리고 추첨함에 손을 넣어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마침내 운명의 번호표 한 장을 빼 들었다. 그리고 번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장내는 일순 긴장감마저 흘렀다. 과연 몇 번일까.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이제 사회자가 번호를 공개할 순간이 되었다. 그는 좌중을 훑어보고 나서 천천히 그러나 박동감 있게 큰 소리로 “110번!” 하고 외치듯 소리쳤다. 그러자 뒷줄에 다른 교우들과 함께 앉아 있던 데레사가 함성을 지르며 뛰어 나가는 게 아닌가. 그리고 두 팔을 번쩍 쳐들고 환호했다. 나는 순간 영문을 몰랐다. 아까 여러 사람이 뛰쳐나와 분위기를 고조하기 위해 손을 흔들며 해프닝을 벌였기 때문이다. 나는 설마 당첨 되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데레사에게 건네 준 번호를 모르고 있었으며 설마 우리 내외에게 큰 경품이 당첨 될 리 있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나와 내자는 다른 곳에서도 경품추첨 행사에 참여하였지만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어 경품 추첨은 항상 우리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해왔던 터였다.
그렇다면 올해 일흔 한 살의 데레사가 전면에 서서 환호작약 하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데레사는 두 세 바퀴를 춤을 추듯 세리머니를 하고 나서 번호표를 사회자에게 보여 주었다. 사회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부표 번호와 데레사가 제시한 번호표를 확인하고는 당첨이라고 선언했다. 결국 내가 데레사에게 건네주었던 110번 번호표가 오늘의 경품 추첨 최고의 경품이 당첨된 것이었다. 데레사는 얼른 안드레아 형님에게 손짓을 하며 “이리 나오셔서 자전거를 받아 가세요.” 안드레아 형님이 다소 열적은 표정으로 나왔다. 그때 객석에서는 “아름답다”, “보기 좋다”는 찬사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본당 신부님은 손수 자전거를 안드레아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신부님은 안드레아와 데레사와 함께 자전거를 앞에 놓고 기념 촬영을 했다. 해는 어느 사이에 서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가하더니 이내 서서히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는 입암성모성당의 풍경은 아름답기만 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은 직접 하느님께 선을 행하는 일이며 (잠언19, 17),”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하셨다.
나는 생각했다. 하느님은 정말 오묘(奧妙)하시다고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초 나와 내자는 자전거를 탐하지 않았다. 자전거가 우리 수중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다. 간절히 자전거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자전거가 돌아 갈 수 있도록 해준 하느님의 은총에 거듭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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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광경이 그려지는 글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