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춘란 백록의 기품
백록을 바라보는 일은 꽃을 감상하는 일이 아니라 태도를 마주하는 일에 가깝다. 그 난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존재한다. 나는 그 앞에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존재란, 얼마나 말해야 증명되는가. 철학은 늘 화려함을 경계해 왔다. 소크라테스는 무지를 고백함으로써 지혜에 가까워졌고, 노자는 낮아짐을 통해 높아진다고 말했다. 백록의 흰 잎은 이 오래된 사유를 식물의 언어로 번역한 듯하다.
백록의 색은 비움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절제의 선택이다. 모든 색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색을 품고도 드러내지 않겠다는 결단에 가깝다. 인간의 삶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욕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욕망을 다스릴 줄 아는 순간 비로소 기품이 생긴다. 우리는 흔히 더 많이 보여야 살아남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백록은 그 통념을 부정한다. 말하지 않아도, 앞서지 않아도, 조용히 서 있기만 해도 존재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 포기의 난으로 증명한다.
기품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기품은 시간을 견딘 태도다. 백록은 서두르지 않는다. 계절을 앞지르지 않고, 꽃을 약속하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낼 뿐이다. 그 정직한 지속이 곧 철학이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그 자리에 있음”이라고 말했다. 백록은 그 말을 가장 정확하게 실천하는 생명이다. 뿌리를 옮기지 않고, 환경을 탓하지 않으며,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 단순함 속에 인간이 잃어버린 본질이 있다. 백록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삶에서 불필요하게 붙잡고 있던 것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설명하려 애썼던 말들, 인정받고 싶었던 표정들,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되었을 감정들. 철학은 늘 버림을 통해 시작된다.
백록은 나에게 묻는다. 너는 왜 그렇게 많은 말을 하고 있느냐고. 왜 그렇게 서둘러 자신을 증명하려 하느냐고.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침묵한다. 침묵은 패배가 아니라 사유의 자세임을, 백록은 알고 있다. 흰 잎은 빛을 반사하지 않는다. 흡수한다. 그 흡수의 깊이가 백록의 기품을 만든다. 인간 역시 세상의 소음을 모두 반사하려 들 때보다, 조용히 받아들이고 숙성시킬 때 비로소 성숙해진다.
한국춘란 백록은 꽃이 아니라 삶의 형식이다. 더하지 않음으로써 지켜내는 것,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깊어지는 것. 나는 오늘도 그 앞에서 묵묵히 배운다. 기품이란, 결국 존재를 대하는 태도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