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7
美 점증하는 ‘국익우선론’ … 韓, 국제사회 ‘정글의 논리’ 직시해야
미국 중간선거서 대외전략이 국내문제에 포획된 것 확인… 북핵 문제는 美中 전략경쟁의 종속변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제재 위한 국제연대도 약화 추세… 한국, 실질적 국익 증대 전략 세워야
현지에서 본 미국 중간선거의 특징들은 첫째 깊어질 대로 깊어진 정치 양극화 현상, 둘째 국내 문제에 포획된 정치로 요약된다. 이는 국제 질서의 현상변경 행위에 저항하는 미국 주도 국제 연대 역시 약화할 것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실제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에 따른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 동참 호소에도 불구하고 세계 대부분 주요국의 러시아와의 교역량은 늘어났다(미국 뉴욕타임스).
미국의 대외전략은 한국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북핵 문제 해결은 미 대외전략의 최우선순위가 아니다. 미국 입장에서 한반도 이슈는 미·중 전략경쟁의 맥락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국제사회를 지배하는 건 국익 우선의 논리, 정글의 논리다. 중간선거 이후로도 이런 흐름은 유지될 것이다.
◇ 양극화로 가는 미국
지난 8일 실시한 미국 중간선거는 아직 최종 결과가 나온 건 아니지만, 하원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선전이 돋보였다. 최근 들어 최대의 인플레이션으로 공화당이 압승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하원=공화당 다수당, 상원=민주당 주도’로 양분됐다.
미국 현지에서 관찰한 결과,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의존한 선거와 그 반작용, 낙태금지법안의 합법화에 따른 민주당 지지층 결집, 트럼프에 대한 방첩법 기소 등이 미국 정가를 양극화시키고 선거를 과열로 이끌었다.
‘트럼프 현상’이 절정에 달했던 2018년 중간선거를 제외하고는 지난 근 50년간의 중간선거에서 이처럼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사례는 없었다. 트럼프로서는 미국 상·하원 선거를 승리로 이끌어 대선 출마의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에 상당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그가 강력하게 개입했던 격전지, 조지아·펜실베이니아·애리조나 등에서 공화당 상원 후보가 모두 패배했다. 대신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에서 재선한 론 디샌티스 주지사가 공화당의 강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재선 도전에 실패했던 2020년 대선 결과를 부정하는 178명의 공화당 후보 중 적어도 125명이 당선됐다. 이들은 조 바이든 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한다. 중간선거를 치른 미국은 곧바로 2024년 대선 체제로 전환한다. 워싱턴 조야나 현지 언론 매체는 정치 양극화 현상이 더욱 강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 정치는 예전과 같은 리더십을 갖춘 대외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 국내 문제에 포획된 정치
바이든 정부 초기 대외정책의 최대 관심사는 중국의 도전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이었다. 둘 다 기존의 국제 정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이제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적대하고 있다. 미국 정치의 위기, 리더십의 위기다.
이는 국제 정치와 지정학의 대가들인 헨리 키신저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극력 피하고자 했던 구도다. 일반적으로 국제적 위기가 닥치면 ‘국기결집 효과(rally effect)’가 발생해 대통령의 지지도가 크게 상승하게 돼 있지만, 바이든 정부 하에서는 그러한 효과가 미미하다. 미국인들은 국내 문제, 예컨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유가와 물가 급등에 더 강하게 반응했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에 대한 반감 여론에 힘입어 대중국 강경책을 강화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PEW) 조사에 의하면 미 국민의 80% 이상이 중국에 비호의적이다. 최근 정부 보고서들은 중국을 그 역량과 의지의 측면에서 향후 미국의 안보와 동맹들에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심각한 도전을 안겨줄 수 있는 잠재적 적’으로 규정했다.
비록 ‘잠재적’이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최우선 대상이 중국이란 것을 이제 숨기지 않는다. 미국은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 차기 10년을 중국의 도전을 좌절시킬 수 있는 관건적 시기로 묘사했다.
앞으로도 미 행정부의 중국과의 대결 정책은 계속될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정서가 이미 그렇게 형성돼 있는 데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강한 ‘국내 정치 지향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 세계는 정글이다
문제는 미국의 대외전략과 국제 정세가 한국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물론 민주당보다 더 고립주의적 경향이 강한 공화당이 집권할 경우 중국에 대한 적대의식은 더 강하게 표출할 개연성이 커진다. 때에 따라 북핵 문제에 대한 강한 개입과 위협이 동원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의 세계 경영에서 북한이나 북핵 문제는 최우선순위가 아니다. 미국이 한반도 문제나 북핵 이슈를 다룬다면 이는 어디까지나 미·중 전략경쟁의 맥락에서만 형성되는 일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국익 앞에서 국가는 냉정하다. 뉴욕타임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 공격과 일부 지역 점령 등과 관련한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 동참 호소에도 불구하고, 세계 대부분의 주요국은 러시아와의 무역량을 늘렸다. 더 나은 입지를 바탕으로 최대한 실질적인 국익을 증대시키겠다는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주요 각국의 대러시아 무역 현황이야말로 국제 정치의 냉혹성과 ‘정글의 논리’를 잘 표현해 준다.
국제 질서의 지도국인 미국에서 바라본 세계는 세 종류의 국가들로 나뉜다. 러시아·중국·이란·북한과 같은 소수의 위험한 ‘현상변경 시도’ 국가들, 미국·영국·스웨덴·한국 등 소수의 ‘반(反)현상변경’ 국가들, 그리고 인도·튀르키예·브라질·네덜란드·벨기에·스페인·독일 등 대부분의 ‘기회주의적’ 국가들. 이는 미·중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불구하고 실리적인 태도로 안보와 경제를 분리해 대응하는 국가가 다수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 尹 정부의 고민
물가·에너지·식량 위기로 집약되는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내년 봄이 된다 해도 중국과 러시아의 현상변경 시도를 겨냥한 국제연대는 약화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마땅한 대안도 없다.
미국 현지에서 느끼는 점 가운데 하나는 정치의 국내 문제 지향성과 회귀 성향이 점점 더 강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중간선거에서 확인된 양극화 정치가 이를 말해준다. 2024년 대선에서 공화당 정부가 집권한다 해도 그 흐름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미 동맹 강화를 모토로 삼고 이에 기반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곧 공개할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과 대외정책 입안자들이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김홍규 /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 · 미국 조지워싱턴대 방문학자
문화일보
■ 용어설명
‘지정학’은 지리적 요인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 브레진스키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우크라이나 등 ‘추축’을 변별해 보호하는 게 미국의 전 지구적 전략에서 중요하다고 강조.
‘트럼프 현상’은 개인적으로 특이하고 정책적으로도 타 정치인들과 차별되는 트럼프 정치 행태와 국정 스타일이 불러온 현상. 고립주의 외교정책, 보호무역주의, 반이민 정책 등으로 나타남.
■ 세줄 요약
양극화로 가는 미국 : 워싱턴 조야나 현지 언론 매체는 중간선거를 통해 미국의 정치 양극화 현상이 강화한 것으로 전망. 미국 정치는 예전과 같은 리더십을 갖춘 대외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음.
국내 문제에 포획된 정치 : 바이든 정부에서는 위기가 발생해도 ‘국기결집 효과’가 미미함. 미국인들은 물가 급등 등 국내 문제에 더 집중. 미국의 대외전략이 강력한 국내 정치 지향성을 갖고 있고 국내 문제에 포획된 것.
세계는 정글이다 : 미국의 대외전략과 국제 정세는 한국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음. 북핵 문제도 미·중 관계의 종속변수일 뿐. 윤석열 정부는 국제 정치의 냉혹성과 ‘정글의 논리’를 잘 인식하고 대외전략을 수립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