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속의 두견새/정동윤
전 소쩍새가 아닙니다
물론 뻐꾸기도 아니지요
뻐꾸기보다 몸이 작고
가슴의 여러 가로선이
점점으로 이어져 있지요
아주 먼 옛적 고려 말의
이조년이란 학자는 다정가에서
"일지 춘심에 자규야 알랴마는.."
이라고 저를 자규라 불러 주었지요
조선 초의 불운한 왕 단종은
영월에 유배되면서
"가슴에 타는 심정 두견이 알랴마는.."
두견이라도 알아주길 원하였고요
우리의 서정 시인 김소월은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를
접동새 슬픈 삶에 비유했어요
또 일제 강점기 만해 한용운은
"돌아갈 곳도 없는 나를 보고도
불여귀 불여귀" 중얼대는 두견이를
불편하고 안타까워 했어요
그리고 청록파 시인 조지훈은
낙화라는 시에서
"귀촉도 울음 뒤에 먼 산이 다가서다"
편안하게 우리의 울음을 들었어요
화투 흑싸리 열끗 속의 두견새
탁란의 미안함이 처연한 울음되어
자규 두견이 접동새 불여귀 귀촉도라
불리며 민중의 사랑을 받았지요.
뻐꾸기
소쩍새
첫댓글 감사합니다. 사진도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