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주 기도문 (23)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명화 중에서도 명화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다빈치가 이 그림을 그릴 때 있었던 일화입니다.
다빈치는 구도를 식탁 중앙에 예수님 자리를 잡고 12 제자를 둘로 나누어 6명씩 좌우에 배치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한사람이 나를 팔리라” 말씀하실 때 장면을 연상하며 그 때의 장면을 그렸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놀라서 “아니 우리중에 배신자가 있어? 그게 누구야?”하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어떤 제자는 예수님께 “접니까?” 하고 직접 물어 보는 장면입니다.
베드로는 “뭐? 예수님을 팔아? 그게 어떤 놈이야?”하고 예수님 옆에 앉아 있는 요한에게 물어 봅니다.
그런데 등 뒤의 베드로의 손에는 칼이 들려져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사이에 가룟 유다가 앉아 있습니다. 돈 자루를 쥐고.
다빈치가 가룟 유다의 얼굴을 그릴 때 화상을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겼을가?
그때 자기를 평생 괴롭히던 친구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 바로 그 놈의 얼굴이 가롯 유다 얼굴이야!”
그래서 얼굴이 음침하고 수염이 시커먼 그 친구 얼굴을 모델로 하여 유다를 그렸습니다.
나머지 11 제자의 얼굴도 그들의 특징을 연상하며 다 그렸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그려야 합니다.
그런데 화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몇 달을 두고 기도를 하고 고심을 해도 예수님의 얼굴이 떠오르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도원을 찾아가서 늙은 수도사와 상담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화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하고 고민을 털어 놓습니다.
그 때 그 수도사가 이렇게 충고했다고 합니다.
“가룟 유다같은 친구를 용서하지 않고는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수가 없을 겁니다,”
다빈치는 무릎을 꿇고 그 친구를 용서하는 기도를 하기 시작헸습니다.
얼마동안 기도했을 때 드디어 화상이 떠올라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다빈치처럼 “그 인간만은 도저히 용서 못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용서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용서할 때 “용서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얼굴을 보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
주 기도문에서 우리를 위한 두 번째 기도는 용서입니다.
우리가 용서에 대해서는 수없이 많이 듣는 말씀이지만 과연 나는 다빈치처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는지 나 자신을 살펴보고 만일 있다면 용서하시고 용서의 주님을 만나 그 분의 얼굴을 보며 동행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