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환경 - 집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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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0.02. 14:37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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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환경
집토끼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분포하는 집토끼(Oryctolagus cuniculus)는 유럽 중남부와 북부 아프리카에 분포하던 굴토끼를 개량한 품종이다. 집토끼는 고대 시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긴 기간 동안 사람에 의해 아주 느린 속도로 유럽 전체로 퍼져나갔다. 집토끼가 아일랜드를 터전으로 삼기까지 700년이나 걸렸다. 집토끼의 고기와 고급스런 모피에 대한 수요가 집토끼를 지구 전체로 퍼뜨리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가장 눈에 뜨이는 집토끼에 의한 생물 침입은 호주에서 발생하였다. 유럽 사람들은 호주 정착 과정에서 토끼도 이주시키려 했지만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1859년 6만 마리의 토끼를 잃어가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오스틴(Thomas Austin)이 드디어 집토끼 도입에 성공하였다. 그렇지만 10년 남짓한 짧은 시간 안에 집토끼는 호주 전체에서 목축업을 망치는 나쁜 동물이 되어 버렸다.
초원을 넓히고 가축에게 먹일 물을 위해서 연못을 건설하면서 목축업자들은 캥거루, 왈라비, 주머니쥐, 호주들개를 박멸하면서 아울러 이것들을 먹이로 삼던 맹금류도 함께 없애 버렸다. 맹금류가 사라진 초원은 집토끼에게 천적이 사라진 천국이었다. 집토끼들은 아주 복잡하게 얽힌 굴을 만들어 서식하면서 60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1859-1920)에 호주의 초원을 식민지로 장악했다. 양들이 먹을 풀이 남아나지 않았다.
서부 지방에서는 양목장을 토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1902년에서 1907년 사이 무려 2,100km에 달하는 울타리를 설치했다. 그렇지만 집토끼들은 이 토끼울타리(bunny fence)를 무기력하게 만들면서 호주 전체의 초원을 먹잇감으로 삼아버렸다. 1950년 토끼는 약 50만 마리로 늘어나 있었다. 토끼가 식민지를 만들어 버린 초원은 5천만 마리의 양을 기를 수 있는 광대한 면적이었다.
관리들은 토끼에게 치명적인 브라질 토끼병을 들여와서 한때 호주 토끼의 99.8%를 죽이기도 했지만, 내성을 획득한 토끼들이 살아남았고 그 후손들은 번창을 거듭하여 1990년에는 호주 전체에 1억 마리를 웃돌게 되었다.
뉴질랜드와 아르헨티나에서도 집토끼의 대량 번식으로 골치를 썩었다. 뉴질랜드에서는 1864년경에 처음 토끼가 들어왔는데 1940년대까지 풍부한 초지에 천적이라고는 없는 천국의 황홀함을 맛보며 번성하였다. 뉴질랜드에서 극성스런 토끼를 몰아낸 것은 공기전염병 방제 사업이었다. 수백만의 토끼가 이 사업으로 사라져 버렸다.
칠레는 19세기 말엽 적극적으로 토끼를 도입하였다. 토끼는 이후 손쉽게 남미 대륙 전체를 장악해 버렸다. 1945년에서 1950년 사이 안데스 고원을 가로질러 아르헨티나까지 매년 15-20km의 속도로 전진에 전진을 거듭하면서 영역을 넓혔다. 점액종증이라는 토끼병의 피해를 뚫고 이루어 낸 식민지 개척이었다.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남미에서의 성공적인 식민지 개척과는 달리 북미 대륙과 아프리카에서는 토끼의 전진이 쉽지 않았다. 집토끼들은 몇몇 섬에서만 식민지를 건설할 수 있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800개의 섬에서 우점종으로 섬을 장악하고 있다. 토끼는 인간과 같이 사는 공서동물 중에서 쥐를 제외한 가장 강력한 식민지 개척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집토끼 (역사로 보는 환경, 2009. 3. 10., 김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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