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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4 사관과 신사 (An Officer And A Gentleman, 1982)
지금까지 가장 많이 본 영화는 아마도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 1965)’일 것이다. 내 인생의 최고의 영화이기에 대략 100번은 봤을 것이다. 요즘은 케이블 TV 덕분에 수십번 본 영화들이 상당히 많다. 그렇지만 중간씩 잘라서 보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 영화로는 ‘사운드 오브 뮤직’만큼 많이 본 영화가 없다. 다만 애석하게도 '사운드 오브 뮤직'은 극장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극장에서 가장 여러 번 본 영화는 ‘사관과 신사’다. 당시 내가 기록했던 영화 노트에 따르면 1983년 1월 13일, 1월 15일, 4월 14일 이렇게 세 번을 봤다.
이 영화는 리차드 기어의 초창기 작품으로 우리나라에 ‘리차드 기어’라는 이름을 알린 영화다. 리처드 기어는 훗날 ‘귀여운 여인(Pretty Woman, 1990)’에 출연하면서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멋진 신사 이미지의 대표적인 배우가 되었지만, 초창기 리차드 기어는 마초 그 자체였다.
이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나중에 우리나라에서 개봉하기도 했던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Looking For Mr. Goodbar, 1977)’, 사실상 첫 주연 작품인 ‘천국의 나날들(Days Of Heaven, 1978)’, 날 건달 역할이 잘 어울렸던 ‘브레드레스(Breathless, 1983)’ 등에서 그는 마초 연기의 진수를 보여줬었다.
이 영화에는 리차드 기어 외에도 명연기를 펼친 배우들이 많이 나오지만, 당시 나는 오로지 리차드 기어의 매력에 흠뻑 빠졌었다.
이 영화에 대한 당시의 감상문 중간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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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 주연에는 ‘리차드 기어’다. 이 영화 한편으로 내가 두번째로 좋아하는 남자 배우가 됐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과 폭발하는 듯한 강인한 매력을 갖고 있다. 특히 그의 섹스 어필한 연기는 가히 일품으로 남자인 내가 반할 정도이다. 내가 이 영화를 세 번씩이나 보게 된 것도 다 이 리차드 기어 때문이다. 그는 미국에서 ‘아메리칸 지골로(Ein Mann fur gewisse Stunden, American Gigolo, 1980)’라는 영화로 인정 받아서 이 영화에 기용되었다고 하는데 앞으로 그의 인기는 폭발할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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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내 예상대로 그는 정말 슈퍼스타가 됐다.
영화의 간단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스포일러 주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잭 마요는 부잣집 도련님 출신의 착한 친구 시드를 비롯하여 많은 동기 친구들을 만난다. 한편 교관 폴리(루이스 고셋 주니어)는 냉정하고 혹독한 훈련으로 모두를 힘들게 한다.
4주간의 기본 훈련이 끝나고, 잠시 나간 휴가 파티 때 인근 여공인 폴라(데브라 윙거)와 만나서 사랑을 나눈다.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려는 생도와 해군 장교를 만나서 신데렐라가 되고 싶은 여공의 만남은 대부분 비극으로 끝난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잭은 폴라에게 이별을 선언하고 폴라는 크게 실망한다. 한편 친구 시드 역시 여공인 라이넷과 연애를 했는데, 라이넷은 시드를 붙잡기 위해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착한 시드는 라이넷과의 삶을 위해 해군사관학교를 자퇴하고 라이넷을 찾지만, 그가 장교가 아닌 시드는 싫다며 거짓말이었다고 얘기하자 시드는 자살한다.
친구의 자살에 충격을 받은 잭 역시 자퇴를 하려고 하지만, 그 동안 불량아 같은 잭을 자퇴시키기 위해 괴롭혔던 교관 폴리를 비롯한 동료들이 그를 도와 가까스로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된다. 그리고 졸업식날 공장으로 찾아가 폴라를 다시 만난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인 ‘아메리칸 드림’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 점을 비판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것과 상관 없이 이 영화는 재미 있으면서도 감동적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지만, 테일러 핵포드 감독의 좋은 연출 덕분일 것이다. 테일러 핵포드 감독은 이후 내가 좋아하는 영화 ‘백야(White Nights, 1985)’, ‘라 밤바(La Bamba, 1987; 제작)’, ‘레이(Ray, 2004)’ 등을 연출한 명장이다.
줄거리에서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갔지만, 교관 폴리 역을 한 루이스 고셋 주니어는 일생일대의 명연기를 펼쳐, 제55회 아카데미, 제40회 골든 글로브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잭이 자퇴하겠다며 실제 대련을 요청했을 때 폴리가 가까스로 이긴 뒤에 자퇴하던 말던 네 마음대로 하라며 “It’s up to you!”라고 했던 대사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잭과 폴리의 연기 대결이 남자 대 남자라면, 잭과 폴라의 얘기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신데렐라를 꿈꾸며 잭에게 접근했지만, 점점 그에게 빠져드는 폴라. 그리고 잭에게 버림 받은 뒤에도 잭이 시드를 찾으러다닐 때 진심으로 그를 도와주는 폴라 역의 데브라 윙거는 당시 가장 Hot한 여배우 중의 한 명이었다. 이 영화를 보면 왜 그녀가 당시 인기 있었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한 영화여서 기억나는 장면이 매우 많은데, 그 중에서도 해군 생도들이 구보를 하며 부르는 군가는 지금도 음이 생각 날 정도로 인상 깊었다. 가사는 이런 식이다. ‘해군 날개는 금날개, 공군 날개는 은날개’. 즉 해군이 가장 좋다는 얘기인데, 어려서 이 영화를 본 탓인지, 당시에는 정말로 미군 중에서 해군이 가장 강한 것으로 보였다.
해군인데, 전투기 파일럿 이야기라니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영화 뒤에 나왔던 영화 ‘탑 건(Top Gun, 1986)’도 해군 비행단 이야기다. 그러면 도대체 미공군은 어디에서 뭐 하는 걸까?
한편 이 영화에서 주제가도 빠뜨릴 수 없다. Joe Cocker & Jennifer Warnes가 부른 ‘Up Where We Belong’은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고 빌보드 차트에서도 당당히 1위에 올랐다. 영화 보는 내내 아름다운 듀엣곡인 이 노래가 언제 나오나 기다렸는데,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에야 주제가가 나온다. 지금 들어도 당시 영화 볼 때의 감흥이 되살아나서 기분이 좋아진다.
2012년 카페를 운영할 때 애틱 극장 첫번째 상영작이 바로 이 영화였는데, 당시 같이 봤던 이들은 미생의 실제 주인공이라고 소개된 적도 있는 젊은 바둑 강자를 포함한 세 명이었다. 그들은 영화가 끝나자 언제 영화냐고 묻고, 1982년 작품이라고 하자, 30년 전 영화인데 요즘 영화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영화였다며, 좋은 영화를 보여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갔다.
(이제는 40년도 훌쩍 더 지난 영화가 됐다)
지금까지 수천 편의 영화를 본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 세 번째로 꼽는 영화가 바로 사관과 신사다. 혹시 아직 못 봤다면 앞으로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꼭 보기를 권한다.
https://youtu.be/bjrOcrisGyI?si=kFB1bd_u7TTted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