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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6장 1-10절. 은혜에 합당한 삶
1. 지난 시간에는 <화목케 하는 직분을 잘 감당합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서는, 우리에게 화목케 하는 복음 전도의 직분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찬송가 508장 가사처럼 ‘천사도 흠모하는 화목케 하라신’ 직분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2.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주셨는데, 받은바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자는 내용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3. 오늘 설교의 제목은 <은혜에 합당한 삶>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도의 자격으로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권면했습니다.
1절.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working together with Him, we also urge you not to receive the grace of God in vain-
Συνεργοῦντες δὲ καὶ παρακαλοῦμεν, μὴ εἰς κενὸν τὴν χάριν τοῦ Θεοῦ δέξασθαι ὑμᾶς·
working together now also we exhort, not in vain the grace of the God to receive you
직역하면 ‘함께 일하면서 우리가 권하노니,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도록 (권면한다)’는 뜻입니다.
‘함께 일하면서’(Συνεργοῦντες)는 현재 분사로서(working together) 현재 함께 일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권면하노니’(παρακαλοῦ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exhort) 현재 권면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헛되이 받지 말도록’에서 동사(δέξασθ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receive) 확실히 받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New International Version: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As God's co-workers we urge you not to receive God's grace in vain.)
New Living Translation: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이 놀라운 하나님의 자비로운 선물을 받고 난 후에 그것을 무시하지 말라. (As God's partners, we beg you not to accept this marvelous gift of God's kindness and then ignore it.)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1. 바울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하나님의 동역자였습니다.
보통 우리는 바울이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 병자도 고쳐주고 귀신도 쫓아내면서, 많은 사람을 전도하고, 많은 교회들을 세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를 하나님의 동역자요 하나님의 조수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이 귀신을 쫓아내셨고, 하나님이 병을 고치셨고,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셨고, 하나님이 교회를 설립하셨다는 것입니다.
2. 정말 바울은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과 달랐습니다.
2. 이번에 부흥회 강사님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즉 부흥회 강사님이 수많은 성도들의 건강 상태와 질병을 하나님이 보게 해주셔서 본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이 부흥 강사님이 제 아내를 눈으로 보고, 머리가 뇌압으로 인해서 말 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병원에 가서 CT 촬영이나 MRI 촬영을 해보아도 그것으로는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뇌압 상승의 원인이 17년 전에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서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가 친정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제 아내가 이튿날 친정 어머니를 뵈러 가기로 했는데, 뇌졸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셔서 제 아내가 큰 충격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현재 사람을 보고 그 병적인 상태를 아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사실인데, 17년 전에 받은 충격으로 인해 그랬다는 것조차 아는 것이 놀랍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가 심장이 크게 안 좋아서 심장 수술을 했는데요, 그 부흥 강사님이 8년 전에 쇼크로 심장이 안 좋아졌다고 했습니다.
사실 8년 전에 저로 인해서 가정에 엄청난 충격이 있어서, 아내가 심장 쇼크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과학적으로도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볼 수 있고, 아시고, 그것을 주의 종에게 알려주시기도 합니다.
제 아내가 건강이 안 좋을 때는 그저 가정 살림이나 하고, 마음대로 전화하고, 차를 타고 다닐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과거에 제 아내가 마음대로 달리고, 등산하고, 줄 넘기를 하고, 큰 소리로 웃으면서 운동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을 회상해 보면서, 하나님께서 다시 완전한 건강 주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뒤로 부흥 강사님(원래 약사이심)의 한방 치료와 영양제로 제 아내가 건강을 회복하게 해주셔서 지금 16년째 일상생활을 하고 있어서 대단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4. 부흥강사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사람의 건강 상태를 보고 알게 하시고 말하게 하셨다면, 바울 사도는 얼마나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종이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자기가 전도해서 세운 교회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고린도 교인들에게 명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권한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회의 빌레몬 장로님에게도 마땅한 일로 명령할 수도 있었으나, 사랑으로 간구한다고 했습니다.
빌레몬서 1:8-9.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그러면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무엇을 권면했습니까?
6. 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신앙적인 권면은 얼마든지 명령할 수도 있겠지요.
즉 헌금하라는 것이나 선교비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말씀은 얼마든지 명령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7. 그러나 이런 신앙적인 권면조차 바울이 명령하지 않고, 권면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네, 그것은 아직 고린도 교인들이 신앙적으로 어리고, 머리에 뿔 달린 염소처럼 받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빌립보교회 같은 교회에서는 얼마든지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말씀을 명령으로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어리고, 뿔 달린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조심스럽게 <권면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목사가 마음 놓고 말하고 책망할 수 있는 사람은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어디 새 신자에게 목사가 함부로 책망하고 명령하겠습니까?
그러나 오랜 신자, 일꾼들과 중직자들에게는 말을 편하게 하고, 야단도 치는 것입니다.
그래도 중직자들은 신앙이 견실해서 잘 소화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중직자들이 목사에게 잘못을 지적해주는 것도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서로 신뢰하는 관계는 참 편한 관계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고, 조심스럽게 권면해야 하는 관계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고린도 교회는 아직 설립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가 52-53년에 1년 6개월 동안이었고(행 18:11), 고린도후서는 에베소에서 3년간 전도할 때(54-56년)였으므로(행 19:8-10),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 연조는 아직 3년밖에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어린 신자 취급을 해서 명령으로 하지 않고 권면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1.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네, 어떤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보답할 줄 모르는 이기주의 신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았으니,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2. 다윗은 시편 116편 12절에서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했습니다.
선지자 미가는 미가서 6장 6-7절에서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죽도록 충성했습니다.
빌립보서 1:20-2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여인도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그 발을 닦고, 값비싼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누가복음 7:44-46.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처럼 주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고, 많은 봉사를 드렸습니다.
3.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서도, 주님께 감사하지 않고, 형제를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자기를 위해서 유대인들에게 목숨의 위협을 당하면서도, 구원의 복음을 전해준(사도행전 18장) 바울 사도를 거짓 사도라고 모함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선교 사역에 헌금으로라도 동참하지 않았고, 도리어 바울을 선교헌금을 도적질해 먹은 도둑놈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 그 은혜에 감사하고, 주님을 위한 봉사도 하고, 선교헌금으로 전도에 동참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무엇으로 보답하고 있습니까?
주님 은혜에 감사해서,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까?
주님 은혜에 감사해서, 몸으로 봉사하고 있습니까?
주님 은혜에 감사해서, 헌금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주님 은혜에 감사해서, 이웃에게 선을 행하고, 전도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혹시 고린도 교인들처럼 주의 일에 방해를 하고, 주의 종들에게 대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무쪼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마시고, 그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여 보답하시고, 교회에서 봉사하며, 이웃에게 선을 행하며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성도님 가정과 자녀들에게 큰 복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2절.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For He says: I heard you in an acceptable time, and I helped you in the day of salvation. Look, now is the acceptable time; now is the day of salvation.
이르시되
λέγει γάρ,
He says for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가 이르시되--라고 했기 때문이다’란 뜻입니다.
‘이르시되’(λέγει)는 현재형으로서(He says)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Καιρῷ δεκτῷ ἐπήκουσά σου
in time acceptable I listened to you
직역하면 ‘수용적인 때에 내가 네 말을 들었다’는 뜻입니다.
‘듣고’(ἐπήκουσά)는 부정과거로서(I listened to) 확실하게 기도를 들어주신 것을 뜻합니다.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καὶ ἐν ἡμέρᾳ σωτηρίας ἐβοήθησά σοι·
and in day of salvation I helped you
‘도왔다’(ἐβοήθησά)도 부정과거로서(I helped) 확실하게 도운 것을 가리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ἰδοὺ, νῦν καιρὸς εὐπρόσδεκτος,
behold, now time of welcome
직역하면 ‘보라 지금은 환영의 때요’란 뜻입니다.
‘보라’(ἰδοὺ)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hold) 확실히 보라는 뜻이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입니다.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ἰδοὺ, νῦν ἡμέρα σωτηρίας
behold, now day of salvation
‘보라’(ἰδοὺ)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hold) 확실히 보라는 뜻이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입니다.
New International Version: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은혜 베풀 때 내가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다”고 말씀하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지금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시는 때이고, 지금은 구원의 날이다. (For he says, "In the time of my favor I heard you, and in the day of salvation I helped you." I tell you, now is the time of God's favor, now is the day of salvation.)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1. 이 말씀은 구약 이사야 49장 8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즉 구약에서 이 말씀을 한 것은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통해서 은혜받아야 할 시기를 놓치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이처럼 은혜받을 때를 놓치면, 아무리 울면서 매달려도 기회를 되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에서는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을 기회를 놓치고 나서 울며 간구했으나, 더 이상 축복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히브리서 12:16-17.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그리고 누가복음 10장 25-26절에서 부자는 세상에 있을 때 예수님을 믿을 기회를 놓치고, 지옥에 가서 후회했으나, 다시 예수님을 믿을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을 기회를 놓치지 말고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은혜받을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은혜를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2. 이처럼 바울이 지금이 기회라고 말한 것은 지금이 바로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고, 용서와 은혜를 받을 기회라는 것입니다.
즉 지금이 바로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거짓 사도라고 비방하고, 도둑놈이라고 욕한 것을 회개하고, 용서를 받을 기회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고린도 교인들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비방과 욕을 하면, 바울이 다시 가서 용서하지 않고 처벌하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2.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1. 한없이 은혜의 때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한없이 구원의 날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 때가 있고, 기회가 있는 법입니다.
바울 사도도 이때는 용서해주지만, 다시 가면 처벌하겠다고 했습니다.
2. 이처럼 천하만사에 때가 있습니다.
농사도 봄철에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추수 때도 제 때에 추수를 해야 합니다.
감자는 모심을 때 심어야 하고, 팥은 깨꽃 필 때 심어야 합니다.
깨는 알맹이가 하나 익으면 바로 베야 합니다.
3. 밥 먹는 것도 제때에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을 먹느냐, 얼마나 먹느냐 보다도 제때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식사를 불규칙적으로 하는 사람은 배가 아픕니다.
그러나 군인은 제때 식사를 하므로, 배탈이 나지 않습니다.
4.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하루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생각대로 행동하여, 일을 망치게 됩니다.
5. 물도 새벽에 마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밤에 잘 때는 물을 안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새벽에 일어나서는 물을 두 컵 정도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6. 대장간에서 쇠를 불에 달구어서 망치로 두들길 때도, 쇠가 달았을 때 두들겨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잘못을 시정하려면 세 살 때부터 때려서 고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열 살이 넘어가면, 매를 때려도 효과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성인이 다 된 자녀를 매 때리려고 하면, 도리어 부모가 다칠 수 있습니다.
7. 이처럼 신앙생활도 다 때가 있습니다.
아직 집사직도 받지 못한 성도는 야단쳐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집사직을 맡았을 때부터는 잘못을 지적해서 고쳐야 합니다.
그런데 장로나 권사가 되었을 때는 야단 쳐서는 안 됩니다.
그냥 조심해서 권면해야 합니다.
8.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은혜받을 만한 때가 아닙니다.
과거에 은혜받은 것은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앞으로 은혜받겠다고 미루면 항상 미루게 됩니다.
바로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입니다.
즉 지금 은혜 받기로 결심한 사람만이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9. 아이들 기르느라고 힘들어도 지금이 은혜받을 때입니다.
지금 은혜받고 아이들을 신앙적으로 잘 길러야지, 지금 은혜 생활 않고, 아이들이 불량하게 자라면, 불행해집니다.
지금 은혜 생활을 잘해서 아이들도 선량한 사람으로 잘 길러야 합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자녀들도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도록 지도하면 좋습니다.
저도 학생 시절부터 새벽 기도회를 다녔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한 해라도 어렸을 때, 부모가 새벽기도 해서, 아이들이 부모의 아름다운 신앙의 영향을 받아서, 모범적인 아이들로 자라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아이들이 우상이 되어서 부모가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면, 아이들이 커서 부모 말을 안 듣고, 불량한 사람이 됩니다.
10. 이처럼 지금이 은혜받을 때입니다.
<나중에 나오겠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은 맨날 나중으로 미룹니다.
그러다 보면, 죽을 때까지 못 믿습니다.
제가 병원에 가서 중환자를 보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보라고 전도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며칠이 못 되어서 죽을 사람도 나중에 믿겠다고 말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예수님 믿고 예수님 이름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고 권해도, 도무지 시간이 없다고 거절합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전도하고 또 만나서 전도해도 거절하다가, 바로 이튿날 보니까 죽었다고 합니다.
내일 죽을 사람이 나중으로 미루면서 전도를 받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그렇게 반대했다던 사람도 예수님을 불러보라고 하면 <예수님>이라고 부릅니다.
또 <예수님 믿습니다>라고 해보라고 하면, <예수님 믿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기도하면 <아멘> 합니다.
참 신기합니다.
이렇게 창세 전에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택한 사람은 수월하게 예수님을 믿고,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전도해도 자꾸 뒤로 미루면서 안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받을 때에 은혜를 받읍시다!
지금이 바로 은혜받을 때입니다.
지금 마음 문을 열어놓고, 성령님을 주인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1. 먼저 <구원>이란 지옥에서 영생 천국으로 구원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지금은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고, 예수 믿는 사람은 지옥에서 영생 천국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전도할 기회도 없고, 마귀의 나라가 되어서 전도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전도하기 좋고, 예수님을 믿기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란처럼 이슬람 나라에서는 전도도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도 못합니다.
나라에서 죽이니까요.
이처럼 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의 문이 활짝 열렸을 때, 가족과 가까운 이웃들에게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2. 이처럼 본문에서 구원이란 내세 천국에서 구원을 받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살면서 역경 중에서 구원받는 생활 구원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즉, 이미 예수님 믿고 천국 구원을 받은 성도들도 이 세상에서 생활하는 동안 여러 가지 불행과 역경에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운 역경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구원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어려운 역경에서 구원해주십니다.
예컨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모진 고난을 당하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구원자로 보내주셨습니다.
사사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하다가 이방인의 압제를 받아서, 심한 역경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구원자로 보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과 홍해에서 구원받았지만,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굶주림과 목마름과 불 뱀과 적군으로부터도 구원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와같이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지옥에서 천국으로 구원받았으나, 이 세상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역경에서 구원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주님께서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도록 세상 모든 악한 일들에서 구원하시리라고 말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처럼 성경에는 성도들이 세상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어려움에서 건져주시는 구원 사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도 구원 사건들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활 속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 구원의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부르짖어,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바울 사도의 말대로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천국에 들어가도록 모든 역경에서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이 바로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여 주님이 여러분들을 모든 역경에서 구원해주시고, 또한 가족과 친지들을 구원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3절.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giving no cause for offense in anything, so that the ministry will not be discredited,
우리가--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μηδεμίαν ἐν μηδενὶ διδόντες προσκοπήν,
nothing before no one giving obstacle
직역하면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장애물을 두지 않으면서’란 뜻입니다.
동사(διδό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giving) 현재 장애물을 두지 않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ἵνα μὴ μωμηθῇ ἡ διακονία,
so that not should be blemished the ministry
직역하면 ‘이는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는 뜻입니다.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에서 동사(μωμηθῇ)는 부정과거 가정법 수동태로서(should be blemished) 확실히 비방을 받지 않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English Standard Version: 우리가 어떤 사람의 길에도 장애물을 두지 않는 것은 우리의 사역에서 아무런 결점이 발견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We put no obstacle in anyone’s way, so that no fault may be found with our ministry,)
1. 바울은 복음 전도의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모든 사람에게 거리끼는 일이나 비방 받을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씀한 대로, 지금은 복음 전도를 통해서 구원받을 날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받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모든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값없이 전했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병자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치료해 줄 때도, 아무런 댓가를 받지 않고, 거저 치료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비롯해서 자기가 개척한 교회들로부터 아무런 사례비를 받지 않고,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바울은 손수 천막 제조업을 하여 생계비를 마련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8장 3절에는 바울이 천막 장사를 하면서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물론 빌립보교회 같은 교회로부터는 선교헌금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바울 사도가 불신자들에게 복음 전도를 값없이 감당했고, 개척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값없이 감당한 이유는 아무에게도 거리낌이 없이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 이처럼 바울이 다른 사람에게 거리낌이 없이 복음을 전하려고 애를 썼는데도, 고린도 교회의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은 바울이 헌금을 횡령해 먹은 도둑놈이라는 누명을 씌웠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지 않는 것은 바울이 참 사도가 아니고, 거짓 사도이기 때문이라고 비난을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부터는 사례비를 받지 않고, 다른 교회에서는 선교비와 사례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이 공평치 못한 것을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13.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
그리고 바울이 다른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고, 고린도 교회에서는 사례비를 받지 않은 것은 마치 다른 교회에서 탈취한 것과 같다고도 말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8.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 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지 않은 것은 특히 고린도 교회의 율법주의자들이 바울을 사랑하지 않고, 탈을 잡으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 대해서 조심하고 또 조심하겠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7-9.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3. 정말 교회에서 돈 문제만큼 예민한 부분은 없습니다.
그러나 실상 무슨 일을 하려면, 우선 돈이 들어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일을 하려면 돈이 필수적인데, 대부분의 교회는 돈에 민감하기 때문에, 목사들이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돈 때문에 선뜻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편 목사가 돈을 마음대로 쓰는 교회는 틀림없이 목사가 재정을 낭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교회 일이란 그것이 딱 교회 일인지 아니면 개인 일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목사가 활동을 하다 보면,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애경사도 많이 참여하게 됩니다.
그런데 활동을 많이 하는 분들은 그 활동비가 어마어마하게 듭니다.
그래서 대형교회에서는 판공비가 일 년이면 수십억이나 든다고 합니다.
지난번 서울 큰 교회의 어떤 목사님도 광주에 와서 많은 목사 장로님들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선물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단 지도자로서 한의사 하다가 목회를 하시는 분도 20년 전에 일 년 판공비로 60억을 썼다고 합니다.
우리 같은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사람은 그럴 경우가 없겠지만, 이런 대형교회에서는 이런 재정 문제가 대체로 결정적인 문제로 대두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목사가 재정 문제를 마음대로 하면 거리끼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돈에 너무나 신경을 쓰면,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없습니다.
4. 그런데 이런 문제는 교회가 어떤 교회냐에 따라서 처신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빌립보교회 같이 호의적인 교회에서는 선교비를 잘 받아 썼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같이 비판적인 교회에서는 마땅히 받을 사례비도 받지 않고, 천막 장사를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는 바울을 거짓 사도라고 책잡고, 헌금을 횡령해 먹는 도둑놈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었었기 때문입니다.
5. 이것은 도시 교회와 바닷가 교회의 차이이기도 했습니다.
즉 빌립보 같이 수준 있는 도시는 교회도 신사적이었고, 고린도같이 바닷가의 항구 도시는 교인들도 거칠고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육지 교회라도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거칠었고,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었습니다.
우리 지방에도 여러 개의 교회가 있지만, 어떤 교회는 점잖다는 평을 받고, 어떤 교회는 거칠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매우 거칠었기 때문에, 바울 사도가 아무에게도 비방을 받지 않도록 조심한다고 했습니다.
6. 그런데 바울이 이처럼 거리낌이 없도록 조심하는 이유는 자기가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복음 전도의 사역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조심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네, 목사 개인이 개인적으로 욕을 먹는 것은 괜찮지만, 목사라는 성직이 비방을 받는다면, 이것은 복음 전도를 막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특히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에 거리낌이 없도록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7.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부터 네 가지 비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① 거짓 사도라는 비난. ② 헌금을 횡령해 먹었다는 비난, ③ 말을 잘 못하고 설교가 형편없다는 비난, ④ 바울의 몸에 고치지 못할 고질병을 앓고 있다는 비난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개인적으로 말을 잘못하고, 설교가 시원치 않다는 비난과 바울이 고치지 못할 고질병을 앓고 있다는 비난은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변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사도직이 거짓 사도라는 비난과 헌금을 횡령해 먹은 도둑놈이라는 비난은 사도직과 직접 연관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바울이 적극적으로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8. 그렇습니다.
목사가 설교를 시원하게 잘못한다거나 개인적으로 건강상 문제가 있다는 것은 그래도 목사직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목사가 돈을 도둑질했다거나, 목사가 학교 졸업장을 위조했다는 것은 목사 신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거짓 사도라는 말과 헌금을 횡령해 먹은 도둑놈이라는 비난에 대해서는 여러 말을 통해서 변명을 했습니다.
저도 앞에서 말씀한 대로, 어떤 사람이 대학교 졸업 문제를 가지고 비방했을 때, 이것은 목사직의 명예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짚고 넘어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까지 돈에 관한 문제로는 시비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제가 일을 많이 해서 돈을 임의로 많이 쓰면, 이 문제도 틀림없이 대두될 것입니다.
9. 어쨌든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복음 전도의 사도 직분이 훼방을 받지 않도록, 모든 사람에 대해서 조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사도도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지 않도록 조심한 것을 볼 때, 우리 같은 작은 일꾼들은 얼마나 조심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직분을 맡으신 여러 직분자들께서도 주의 일을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일하지 않는 성도님들은 앞에서 일하는 일군들을 비방하려고 하지 마시고,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고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서로 믿어주고, 서로 격려해줌으로써, 사랑과 은혜가 풍성한 교회 되기를 축원합니다!
4절.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in everything commending ourselves as servants of God, in much endurance, in afflictions, in hardships, in distresses,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ἀλλ’ ἐν παντὶ, συνιστάνοντες ἑαυτοὺς ὡς Θεοῦ διάκονοι,
but in everything, commending ourselves as of God servants
직역하면 ‘그러나 모든 일에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종들로 추천하여’란 뜻입니다.
동사(συνιστάν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commending) 지금 스스로 추천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ἐν ὑπομονῇ πολλῇ, ἐν θλίψεσιν, ἐν ἀνάγκαις, ἐν στενοχωρίαις,
in endurance great, in afflictions, in hardships, in distresses,
New International Version: 오히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즉 고난과 궁핍과 재난 가운데서도, 많이 견딤으로써 우리 자신을 추천한다. (Rather, as servants of God we commend ourselves in every way: in great endurance; in troubles, hardships and distresses;)
New Living Translation: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일에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사역자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우리는 여러 가지 고난과 궁핍과 재난들을 끊임없이 견디고 있다. (In everything we do, we show that we are true ministers of God. We patiently endure troubles and hardships and calamities of every kind.)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1. 바울은 복음 전도의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매사에 조심한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거짓 사도라고 비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3장 1절에서, 율법주의자 거짓 사도들처럼 스스로를 추천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참 사도로 인정받기 위해서 스스로를 추천하지는 않지만, 4장 2절에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추천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5장 12절에서, 고린도 교인들이 율법주의자 거짓 사도들에게 대답할 거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자신을 추천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늘 6장 4절에서 자신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고난을 참고 충성하며 살아왔다고 자신을 추천했습니다.
2. 바울이 만일 자신을 높이려고 했다면, 이런 고난의 삶을 회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바울이 돈을 벌기 위해서 살아왔다면, 이런 고난들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세상적인 것 때문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복음 전도의 사명에 충성하기 위해서 이런 수 많은 고난들을 회피하지 않고, 감당해왔다는 것입니다.
3. 그렇지 않겠습니까?
만일 바울이 자기 명예나 추구하고, 돈이나 탐했다면, 뭐 하려고 이런 죽을 고생을 했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사도였지만 명예를 드러내지 않고, 비천한 생활도 감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선교헌금을 탐하지 않고 수많은 궁핍과 고난을 당하면서 사명을 감당해 왔습니다.
4. 이처럼 바울은 명예도 탐하지 않았는데, 고린도 교회의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들은 바울이 거짓 사도인데 거짓으로 사도직의 명예를 사칭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아무런 물질도 탐하지 않았는데, 고린도 교회의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은 바울이 선교헌금을 도적질해 먹었다고 비방을 했던 것입니다.
5. 목숨 걸고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바울을 향해서 고린도 교회의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은 얼마나 악질적인 비방을 한 것입니까?
더구나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을 통해서 복음 전도를 받고, 지옥에서 영생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어쩌면 이렇게 악질적으로 바울을 거짓 사도라고 비방하는 것입니까?
뿐만 아니라 바울 사도가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도 복음 전도를 위해서 고생하고 있는데, 고린도 교회의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은 어떻게 바울이 선교헌금을 횡령해 먹었다고 비난을 합니까?
6. 이것을 보면 고린도 교회의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이 너무나 악질적인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고린도 교회의 율법주의자들은 이렇게 악질적인 사람들이었을까요?
그것은 고린도가 항구 도시였고, 또 아프로디테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즉 고린도 사람들은 당시 로마 세계에서 가장 악질적인 사람으로 평가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고린도 사람처럼 행동한다>(κορινθιάζωμαι :고린디아조마이)란 말은 <저질적인 사람이다>라는 뜻으로 통용되었습니다.
즉 고린도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저질적이고, 악질적이고, 거짓말쟁이고, 성적으로 방탕한 사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7. 출애굽 한 1세대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처럼 악질적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모세는 그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고, 가나안 복지를 주려고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가 자기들을 광야에서 죽이려고 인도해냈다고 악평을 하면서, 하나님과 모세 편을 든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민수기 14:1-4. 여호와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우리를 인도해내서 칼에 쓰러지게 하려는가. 우리가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러면서 그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 했다고 했습니다.
8. 그런데 바울이 전도한 도시들 중에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7:11-12.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했다.
9. 이렇게 전도 대상자인 사람들도 지역마다 도덕적인 수준의 차이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사람들은 본래부터 도덕적으로 질이 나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생명의 은인인 바울을 거짓 사도라고 비방하고, 궁핍과 고난과 핍박 속에서 전도하는 바울을 선교헌금을 횡령해 먹은 도둑놈이라고 비난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린도 교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바울을 거짓 사도라고 비난할지라도, 자기들만은 바울이 참 사도라고 옹호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바울을 도둑놈이라고 비방할지라도, 고린도 교인들만큼은 바울에게 선교헌금으로 도와드렸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지방은 다른 도시에 비해서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이 바울을 거짓 사도라고 비난했고, 바울을 헌금을 횡령해 먹은 도둑놈이라고 비방했던 것입니다.
물론 고린도 교인들이 이처럼 악한 일을 한 것은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에게 미혹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9.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으로 성화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의 계속적인 은혜와 하나님 말씀으로 오랫동안 성장해서 계속적으로 성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5-7.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베드로후서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어린 신자는 부드러운 음식만 먹지만, 장성한 신자는 단단한 음식도 먹고 지각을 사용하여 분별한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5:13-14.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그러기 때문에 초신자는 교회 중직자로 세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3: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그리고 오랜 신앙생활 가운데서 쌓은 덕으로 외부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3: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그러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신앙 유산을 이어받은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가정의 신앙적인 덕성이 몸에 배어있어서 얼마나 복 되는지 모릅니다.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1. 바울은 여기서 자신이 얼마나 궁핍과 고난과 환난 가운데서도 헌신적으로 전도한 사도인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즉 바울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을 당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2. 그러면 바울이 당한 환난과 궁핍과 고난은 무엇이었습니까?
바울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복음 전도를 다니면서, 수많은 환난과 궁핍과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일꾼이었기 때문에, 이 모든 고난들을 견디었습니다.
그렇지만, 만일 바울이 하나님이 일꾼이 아니었고 자기 개인적인 일을 했다면, 이런 환난과 궁핍과 고난들을 참지 않고 진작 포기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바울이 사도행전 14장의 루스드라 전도 시에 돌에 맞아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이 때 하나님의 일이 아니고, 자기 일이었다면, 바로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6장의 빌립보 전도 시에도 매를 많이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혔다가, 하나님의 기적으로 살아났는데, 이때도 하나님이 일이 아니고, 자기 개인적인 일이었으면, 바로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사도행전 18장의 고린도 전도 시에는 총독의 재판을 받고, 밤낮으로 고생하면서 고린도 교회를 설립했는데, 이처럼 고난 가운데서 설립한 고린도 교회로부터 거짓 사도요, 헌금을 횡령해 먹은 도둑놈이라는 비방을 들었을 때, 바울이 하나님의 일꾼이 아니고, 개인의 일이었다면, 곧바로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하나님의 일이고, 바울은 개인 사업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일꾼이었기 때문에, 이 모든 고난들을 참고, 지금까지 사역을 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하나님의 일꾼이냐 아니냐 하고 시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3. 참으로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의 일꾼인 바울 사도의 복음 전도를 위해서 기도와 헌금으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왜 그렇게도 거짓 사도라고 비방하고, 선교헌금을 횡령해 먹었으니, 선교헌금을 주지 말자고 비방했을까요?
참 안타깝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목사를 위해서 기도하고, 헌금으로 도와주시는 분들은 목사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고, 헌금이나 봉사로 도와주지도 않는 사람들이 목사를 비방하고,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일하는 일꾼들은 목사를 비방하거나 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할 일을 잘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도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은 목사를 비방하고 불만을 터뜨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주의 일하는 일꾼들이 모두 아군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을 비방하고, 욕하고, 힘들게 발목을 잡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서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일꾼들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일꾼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격려해주시고, 봉사와 물질과 전도로 협력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크게 확장되게 하시고, 다 함께 큰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5절.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n beatings, in imprisonments, in tumults, in labors, in sleeplessness, in hunger,
ἐν πληγαῖς, ἐν φυλακαῖς, ἐν ἀκαταστασίαις, ἐν κόποις, ἐν ἀγρυπνίαις, ἐν νηστείαις,
in beatings, in imprisonments, in tumults, in labors, in sleeplessness, in hunger
New American Standard Bible: 매 맞음과 감옥에 갇힘과 난동과 수고함과 잠 못 잠과 배고픔 가운데서 (오래 참음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일군임을 자천한다) (in beatings, in imprisonments, in tumults, in labors, in sleeplessness, in hunger,)
New Living Translation: 우리는 매를 맞은 적이 있고, 감옥에 갇힌 적이 있고, 화가 난 군중들을 만난 적이 있고, 기진맥진하도록 일했고, 잠 못 자는 밤을 견뎠고, 음식을 먹지 못하고 지냈다. (We have been beaten, been put in prison, faced angry mobs, worked to exhaustion, endured sleepless nights, and gone without food.)
1.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당한 6가지 고난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바울 사도는 이런 고난들을 열거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바울 사도가 참 사도임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려고 그런 것입니다.
2. 일반적으로 후처로 들어와서 자기가 낳지 않는 자식을 기를 때는 수 많은 고난들을 당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낳은 자식을 기를 때는 수많은 고난들을 마다하지 않고, 다 참아냅니다.
그래서 자식이 말을 안 듣고 속을 썩일 때면, 어머니는 평상시에 그렇지 않지만, 속이 상하면, 내가 너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난들을 당했는지 아느냐고 합니다.
3. 어떤 어린 아들이 엄마의 심부름을 하고서 돈을 요청했습니다.
그릇 씻은 값 2천 원, 청소한 값 5천 원, 쓰레기 치운 값 3천 원, 심부름한 값 5천 원, 합계 1만 5천 원.
그러자 엄마는 내가 너를 낳을 때 죽을 고생한 값 무료, 너를 젖 먹인 값 무료, 네가 아플 때 밤을 새며 간호한 값 무료, 너를 학교 보내면서 고생한 값 무료, 합계 무료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아들도 다시 계산하기를 <합계 무료> 라고 했다지요.
4.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죽을 고생하면서 복음 전도해서 구원받은 것을 잊어버리고, 바울을 거짓 사도니 헌금을 횡령해 먹은 도둑놈이니, 설교를 잘못하느니, 고질병이 있느니 하고, 비방을 했습니다.
그러자 바울 사도는 다른 변명을 하지 않고, 자신이 복음 전도를 위해서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거짓 사도이고 돈을 탐낸 사람이라면, 이런 죽을 고생을 하면서 복음 전도를 했겠냐는 것입니다.
5. 그렇습니다.
자기 자식이 아니면 죽을 고생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지 않을 것입니다.
돈을 받고 아이를 돌본다면, 누가 밤새 돌보며 죽을 고생을 하겠습니까?
얼른 편한 데로 가버리겠지요.
6.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돈이나 탐내는 거짓 사도였다면, 무엇 때문에 이런 죽을 고생을 했겠습니까?
7.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을 위해서 정성을 다합니다.
그러나 품삯을 받고 일을 하는 일꾼은 시간이 되면, 어서 갈려고 합니다.
8. 양 떼를 기르는 목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양 떼를 치는 목동은 양이 어디가 아픈가, 곁길로 간 양은 없는지, 왜 양이 먹이를 잘 먹지 않는지, 온통 관심을 가지고 돌봅니다.
그러나 자기 양이 아닌 품꾼은 양 떼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품삯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 34장 6절에는 “내 양 떼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 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고 탄식했습니다.
9. 그러나, 양 떼와 소 떼에게 관심을 가지고 잘 돌본 사람은 거기서 모든 필요한 것을 다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잠언 27;23-27.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대저 재물은 영원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어린 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의 음식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
10. 그러면 바울이 여기에 나열한 고난들은 무엇이었습니까?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
이것들은 사람들에게서 당한 외부적인 고난입니다.
여기서 <매 맞음>이란 바울이 범죄자 취급을 당해서 다섯 번 채찍질 당하고, 세 번 태장으로 맞은 것을 가리킵니다.
고린도후서 11:23-25.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그리고 <갇힘>이란 빌립보 전도 시에 감옥에 갇힌 것을 가리킵니다.
사도행전 16:23-24.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그 후에도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2년간(58-59년) 갇혔고, 로마 감옥에서 1차로 3년간(61-63년) 갇혔고, 2차로 2년간(67-68년) 갇혔습니다.
또한 <난동>이란 무법한 깡패들에게 공격당한 것과 무질서한 폭도들에게 당한 소요 사태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특히 사도행전 19장의 에베소 전도 시에 약 3만 명이나 되는 에베소 사람들이 연극장에 모여서 두 시간 동안이나 큰 소리를 지르며, 바울을 죽이자고 난동을 부렸습니다.
바울은 이 사건을 회상하면서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8-9.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이것들은 바울 자신이 스스로 당한 고난들입니다.
<수고로움>이란 바울이 천막 장사를 하면서 밤낮으로 수고하고, 손으로 일하면서 복음 전한 것을 가리킵니다.
사도행전 18: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데살로니가전서 2: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에 대해서는 바울이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말랐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여기서 <먹지 못함>이란 스스로 금식한 것과 음식이 없어서 먹지 못한 것을 다 가리킵니다.
12. 이처럼 바울은 6가지 고난을 사도의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 극복해 갔습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께 원수 된 사람이었으나, 주님의 은혜로 용서받고 사도가 되었으므로, 이 은혜에 감격하여, 위와 같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복음을 전파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수많은 고난들을 감수한 것은 그가 명예나 돈을 탐하는 거짓 사도가 아니라, 참 사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맡기신 성도들을 자기가 책임질 양들인 줄 알고, 충성하는 직분자들을 알아주시고, 축복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 함께 우리 주님이 주시는 큰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6절.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n purity, in knowledge, in patience, in kindness, in the Holy Spirit, in genuine love,
ἐν ἁγνότητι, ἐν γνώσει, ἐν μακροθυμίᾳ, ἐν χρηστότητι, 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ἐν ἀγάπῃ ἀνυποκρίτῳ,
in purity, in knowledge, in patience, in kindness, in Spirit Holy, in love genuine,
New International Version: 정결함과, 지식과, 인내와, 친절함 가운데서 그리고 성령 안에서와 신실한 사랑 가운데서 (자신을 추천한다)
in purity, understanding, patience and kindness; in the Holy Spirit and in sincere love;
New Living Translation: 우리는 우리의 순결함과, 우리의 이해력과, 우리의 인내와, 우리의 친절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입증하고, 우리 안에 있는 성령으로써 자신을 입증하고, 우리의 신실한 사랑으로써 자신을 (참된 사도라고) 입증한다. (We prove ourselves by our purity, our understanding, our patience, our kindness, by the Holy Spirit within us, and by our sincere love.)
1. 앞에서 바울은 9가지 고난들 가운데서 복음 전도자로 일하고 있는 자신을 참 사도로 자천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은 앞에서 말씀한 9가지 고난들 가운데서도 내적인 미덕 6가지를 갖추고 복음 전도자로 일하고 있는 자신을 참 사도로서 자천하고 있습니다. (7절까지 합하면 8가지).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이 네 가지의 미덕은 외적인 환난에 대처하는 도덕적인 미덕들입니다.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이 두 가지는 외적인 환난에 대처하는 신앙적인 미덕들입니다.
1. 깨끗함
(1) 바울은 환난과 궁핍과 많은 고난 가운데서도, 도덕적인 성결을 잃지 않고, 깨끗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란 삶이 괴롭고 궁핍하면, 이런 성결한 생활을 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더러운 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괴롭고 궁핍한 환경 가운데서도 도덕적인 성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해야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그리고 야고보서 3장 17절에는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다”고 했습니다.
(2) 바울 사도는 특히 물질생활에 깨끗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2장 16-17절에는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고 했습니다.
(3) 우리 모든 직분자들은 아무리 수고하고 봉사할지라도 이런 깨끗함이 없이는 사람에게 신앙적인 도움과 감화를 주지 못합니다.
즉 직분자의 모든 수고와 봉사는 열정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도덕적인 청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큰일을 감당하고서도, 이 성결함을 잃어버리면, 버림받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처럼 희생적이고 헌신적으로 봉사하시더라도, 항상 하나님 앞에서 성결과 도덕적 거룩함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큰일을 감당하시고서도 버림받지 않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지식(γνώσει)
(1) 이 지식은 일반 창조에 속한 세상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깊이 하는 신앙적인 지식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호세아 4장 6절에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호세아 6장 6절에는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말라기 2장 7절에서는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3절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복음 진리가 너무나 귀중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세상 지식은 무가치한 것처럼 취급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노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교회의 지도자들은 영적 진리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갖추어야 합니다.
물론 교회 지도자가 육신적인 일에도 유익한 지식과 정보를 소유하여 성도들을 도울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그러나 세상적인 지식은 교역자보다 세상적인 전문가가 더욱 유식할 수 있기 때문에, 교회 지도자는 영적인 경험과 지식을 많이 갖추어야 합니다.
(2) 저는 아내의 병을 치료하면서 이것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제 아내가 심장병에 걸려서 대학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병원에서 CT, MRI, 피검사 등 각종 검사를 하고, 매일 피를 세 번이나 뽑아가면서도, 발병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와파린을 먹이고, 혈압약과 갑상선 약을 먹였습니다.
그래도 좋아지지 않고 죽게 생겼으니까, 약만 큰 가방으로 한가득 주면서 퇴원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천만다행하게도, 영적인 은사를 받은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몇 시간을 차 타고 밤중에 제집에 와서, 진맥도 하지 않고 얼굴만 보고 병의 상태와 원인을 말해주었습니다.
즉 제 아내가 지금 심장이 망가졌고, 머리에 뇌압이 매우 높다고 하면서 ‘면역체계가 붕괴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치료하면 절대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치료를 못하고 죽는다고 한 사람이 지금까지 16년을 생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X-RAY나 CT나, MRI 등 최첨단 의료 장비를 가지고도 병의 원인을 알지 못하지만, 영적인 은사를 가진 사람은 병의 상태를 꿰뚫어 보고, 병의 상태와 원인을 훤히 알아냅니다.
(3)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 이런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고, 신약의 사도들도 이런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열왕기상 14장에서 선지자 아히야는 여로보암의 아내가 변장을 하고 들어와도 그녀가 여로보암의 아내인 것을 영적으로 알았고, 그녀가 자기 아들의 병 때문에 온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 사도행전 5장에서 베드로 사도도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재산을 감추고 거짓말하는 것을 꿰뚫어 보고 알았습니다.
바울은 이런 성경적 지식과 영적 지식이 뛰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뛰어난 지혜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성령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지식을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며, 가정과 자녀들이 잘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오래 참음
여기 오래 참음이란 대적자들에 대해 오래 참고, 관용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교회 지도자들은 도발적인 언어와 행동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격한 감정을 나타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므로, 성령님이 화나게 한 사람과 사건에 개입하셔서, 사람과는 불화하지 않고, 사건은 합력하여 선하게 잘 해결되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복음 전도자나 목회자는 불신자가 복음을 믿고 구원받을 대상으로 생각하고, 교회 성도에 대해서는 바울처럼 오래 참아 성도를 개과천선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오래 참음은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는 성령의 열매로, 고린도전서 13장 4절에는 사랑의 첫째 열매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안의 성도들이나 교회 밖의 불신자들에게 대해서 오래 참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잘 해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복음 사역이 잘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4. 자비함
바울 사도는 소극적으로는 대적자들의 불의에 대해서 오래 참고, 적극적으로는 불쌍히 여기는 자비심을 가졌습니다.
이처럼 교회의 지도자는 주변의 대적자나 오해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올바른 말씀을 전하더라도, 먹히지 않고 효과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인들과 불신자들 모든 사람에 대해서 자비함을 갖도록 자신이 상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그 가운데 역사하셔서 모든 일이 선하게 이루어지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이 두 가지는 외적인 환난에 대처하는 신앙적인 미덕들입니다.
1. 성령의 감화
나 개인의 인격적인 감화가 아닌 성령님의 감화를 가리킵니다.
나 개인의 인격적 감화는 복음 자체나 예수님께 대한 관심보다는 전도자 내 개인에게 호감과 관심을 갖게 만듭니다.
이런 인격적 감화도 복음 전도를 위해서 좋은 통로가 되지만, 잘못하면 복음 전도자를 얽어매는 족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 대해서 평소에 늘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 어떤 극적인 상황에서 저 사람이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신앙적인 큰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박윤선 교수는 “주의 일꾼이 인격적 감화만 있고, 성령의 감화가 없으면, 주의 일을 잘못 할 수 있고, 비록 인격적 감화가 부족할지라도, 성령의 감화가 있으면, 주의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2. 거짓이 없는 사랑
(1) 사랑은 성령의 열매 중 첫째가는 성품이며(갈라디아서 5:22), 성령의 은사를 은사 되게 만드는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2절에는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오래 참음과 자비도 궁극적으로는 희생적인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즉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오래 참고 자식을 불쌍히 여깁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장 12절 말씀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사랑을 따로 말씀한 것은 오래 참음은 악에 대한 소극적인 자세인데 반해서, 사랑은 적극적으로 베풀어 주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장 14절에는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성령님이 주시는 사랑은 <거짓이 없는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9절에는 “사랑에는 거짓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거짓이 없고 진실된 사랑이란 단순히 감정적인 사랑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랑을 말합니다.
만일 교회의 직분자들이 자기 교인들이나 이웃 사람을 마음으로만 사랑하고, 행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지도 않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무슨 전도의 열매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요한일서 3장 17-18절에는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2장 15-17절에도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3) 그렇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위험 속에서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었고, 또 천막 장사를 하면서 자비량 전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이처럼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전했고, 자비량 전도한 자신이 참 사도이고, 거짓 사도가 아닌 것을 입증했습니다.
이것은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이 바울을 거짓 사도이고, 헌금을 횡령해 먹은 도둑놈이라고 비난한 데 대한 바울의 해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족과 성도들과 이웃을 위해서 늘 기도함으로써, 성령님이 주시는 거짓이 없는 사랑을 받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을 받고, 사람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7절.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n the word of truth, in the power of God; by the weapons of righteousness for the right hand and the left,
ἐν λόγῳ ἀληθείας, ἐν δυνάμει Θεοῦ· διὰ τῶν ὅπλων τῆς δικαιοσύνης τῶν δεξιῶν καὶ ἀριστερῶν,
in the word of truth, in the power of God; by the weapons of righteousness for the right hand and the left,
직역하면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로써’란 뜻입니다.
동사는 없으나 적절한 번역입니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했고), 왼손과 오른 손에 의의 무기를 가지고 (그리했다). (in the word of truth, in the power of God; by the weapons of righteousness for the right hand and the left,)
New Living Translation: 우리는 진리를 신실하게 전파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 우리는 의의 무기들을 가지고 오른 손으로는 공격하고, 왼손으로는 방어를 한다. (We faithfully preach the truth. God's power is working in us. We use the weapons of righteousness in the right hand for attack and the left hand for defense.)
1. 본 절은 복음 전도자 바울이 갖춘 영적인 무기들을 가리킵니다.
그 첫째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복음 전도사역을 하면서 무엇보다도 진리의 말씀으로써 사역했습니다.
이 진리의 말씀이 없는 복음 전도자는 꿀 없는 꿀 병과 같고, 기름 없는 기름병과 같습니다.
즉 복음 전도자는 진리의 말씀을 갖추는 것이 생명이요 핵심입니다.
구약시대 제사장들에게서는 율법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했습니다.
말라기 2:7.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라.
신약시대 예수님은 마가복음 16장 15절에서 사도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복음 전도자에게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영적 무기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복음 전도자로서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사역했다고 자신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복음 전도자가 진리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율법주의나 신비주의를 전하면 이것은 복음의 잡상인에 불과합니다.
고린도후서 2: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이 말씀을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파는 잡상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파견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진리의 말씀 선포는 사도와 목사 같은 복음 전도자의 특수 은사입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에는 마귀의 간계를 대적하기 위해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늘 풍성히 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올바로 전파하도록 무엇보다도 <성경 본문>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 성경의 의미를 보다 더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이나 적ㄷ용이나 예화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설교자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에 성경적 권위를 갖추기 위해서 성경 구절을 아전인수격으로 인용하면, 그것은 잘못된 설교입니다.
어느 때고 간에 성도들의 신앙이 잘못되는 것을 보면, 그것은 성경 말씀을 자기 생각대로 잘못 이해한 데서 발생한 것입니다.
예컨대, 이사야 58장 6절에 대한 잘못된 성경 해석이 그렇습니다.
이사야 58: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기도원을 운영하는 어떤 교역자는 이 말씀을 오해하여 하나님은 금식을 기뻐하시고, 금식을 하면 하나님께서 흉악의 결박과 압제를 풀어주고 멍에를 풀어주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성도가 금식하면서 다른 사람을 압제하고 억압하고 멍에를 매면, 그런 금식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성도가 이웃을 압제하던 것과 억압하고 멍에 맺던 것을 풀어주고, 자유를 주고 도와주고 일으켜 세워주면서 하는 그런 금식은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성경 말씀을 오해한 그 교역자는 금식 기도원을 세우고 이 성경 구절을 가지고 늘 설교 했습니다.
물론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가련한 성도가 금식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입고, 치료와 물질적인 복을 받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금식 기도원을 선전하고 정당화하기 위해서 이사야 58장 6절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이 금식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금식하면 멍에와 압제가 풀린다고 설교하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파악하지 못한 잘못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사역자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분별하고,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전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바울 당시에 고린도 교회에 율법주의 이단이 침투했고, 에베소 교회와 골로새 교회에 영지주의 이단이 침투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복음 전도자는 올바른 진리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아들 같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디모데후서 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은 성경 말씀을 열심히 공부해서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파악하고 분별해야 하겠습니다.
2. 복음 전도자가 갖출 영적 무기 두 번째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물론 복음의 진리는 그 자체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 복음 진리는 우리 영혼을 거듭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이처럼 복음 진리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지만, 여기서 말씀한 하나님의 능력이란 성령의 능력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많이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여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2:4-5절에는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거듭난 것은 물과 성령으로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복음 전도자와 설교자들은 많이 기도하여 항상 성령 충만하기를 힘써서 성령의 능력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3.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세 번째 복음 전도자가 갖추어야 할 영적 무기는 <의의 무기>입니다.
(1)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진다>는 것은 의의 무기를 오른손에도 가지고, 의의 무기를 왼손에도 가진다는 말씀입니다.
로마 군사들은 오른손에 공격용 칼을 잡고, 왼손에는 방어용 방패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가는 복음 전도자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좌우에 의의 무기를 잡았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 잡았다는 것은 의로운 삶으로써 완전무장 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앞에서 말한 6가지의 고난들을 당했지만, 완전한 의로운 삶을 살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너무나 생활이 궁핍하고 심한 고난을 당하면, 도덕적으로 타락한 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 전도자로서 많은 고난 가운데서도 완전히 의로운 삶을 살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진다>는 이 말씀은 주의 종들의 생활이 어느 면으로 보나 반듯하고 의로운 생활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59장에는 하나님은 의로 호심경을 삼으신다고 했고, 에베소 6장에는 성도들에게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7:17.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에베소서 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
이것은 의가 성도들의 가장 중요한 심장을 보호해주는 결정적인 덕목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복음 전도자가 성공적으로 전도하고, 목회자가 성공적으로 교회를 설립했더라도, 의로 무장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나라를 가장 번영시키는 성공적인 지도자가 되었지만, 이방 여인으로부터 의를 지키지 못해서, 실패한 지도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도 성공적이고 존경 받는 지도자였지만, 자녀를 잘못 지도해서, 결국 지도자의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이나 다니엘은 아무런 흠이 없이 완전히 의로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다니엘 6: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특히 교회에는 여성도들이 많고, 목회자는 주로 남자이기 때문에, 이성 문제에 대해서 완벽하게 의롭고 흠이 없어야 합니다.
(2) 그런데 바울 사도도 의로 좌우하면서 복음 전도자로서 아무런 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성도들에게도 무엇에든지 옳으며 아무 흠이 없는 사람이 되라고 교훈했습니다.
빌립보서 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이처럼 바울이 의로써 좌우했다고 말한 것은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일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거짓 사도이고, 헌금을 횡령해 먹는 도둑놈이라고 비난한 데 대해서 변명하는 답변입니다.
즉 바울은 항상 의의 무기로 좌우하면서 생활한 도덕적으로 무흠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거짓 사도도 아니고, 헌금을 횡령해 먹은 도둑놈도 아니고, 온갖 고난을 당하면서도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나 흠이 없는 복음 전도자요, 참된 사도였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시고, 기도 많이 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시고, 의의 무기로 무장하여 모든 일에 옳은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선을 행하며, 성공적인 복음 전도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8절.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y glory and dishonor, by evil report and good report; regarded as deceivers and yet true;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διὰ δόξης καὶ ἀτιμίας, διὰ δυσφημίας καὶ εὐφημίας·
through glory and dishonor, through bad report and good report
동사가 없으나 ‘그러했으니라’는 첨가한 번역입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ὡς πλάνοι καὶ ἀληθεῖς,
as deceivers and (yet) tru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영광으로써 그리고 불명예로써 (사역했으며). 나쁜 평판과 좋은 평판을 받으며 (사역했다). 그리고 속이는 자들 같으나 참된 사람들로서 (사역했다). (by glory and dishonor, by evil report and good report; regarded as deceivers and yet true;)
New Living Translation: 사람들이 우리를 명예롭게 하든지 멸시하든지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며, 그들이 우리를 비방하든지 칭찬하든지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우리는 정직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사기꾼이라고 한다. (We serve God whether people honor us or despise us, whether they slander us or praise us. We are honest, but they call us impostors.)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1. <그러했다>는 것은 <복음 전도사역을 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영광과 욕됨으로>란 복음 사역의 방식과 태도를 가리킵니다.
즉 바울 사도는 영예로운 상황이나 욕된 상황에서, 혹은 세상에서 칭찬을 받든지 욕을 먹든지, 이에 집착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목회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2. 영광과
바울 사도는 자신이 전도하고 설립한 교회들에게서 존경을 받았고, 전도하면서 기적을 행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서도 존경과 영광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12절에서는 바울이 구브로 섬 전도 시에 복음 전도를 방해하는 박수 엘루마의 눈을 멀게 함으로써, 총독이 복음을 믿고 놀랍게 여겼습니다.
사도행전 13: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그리고 사도행전 14장 8-13절에서는 바울이 앉은뱅이를 낫게 함을 보고, 사람들이 바울을 신으로 추앙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4: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그리고 고린도후서 기록 후에 이루어진 일이지만, 사도행전 28장에서는 바울이 밀레도 섬의 추장 보블리오의 아버지를 치료해줌으로써 큰 존경과 대접을 받게 됩니다.
사도행전 28:8-10.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3. 욕됨으로
바울 사도는 복음 사역을 하면서 영광만 받은 것이 아니라, 욕됨과 수치와 묘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사도행전 14장에서 바울이 앉은뱅이를 고친 후에 신적인 대접을 받았지만, 직후에 바울은 돌에 맞아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사도행전 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또한 사도행전 16장에서는 바울이 귀신들린 여종을 치료해주는 선한 일을 해주었는데,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를 많이 매 때리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사도행전 16:22-24.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만물의 찌끼 같은 취급을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12-13.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도다.
이처럼 바울 사도는 복음 사역을 하면서, 신적인 영광을 받기도 했지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죽었다가 살아나기도 하면서, 쓰레기와 배설물 같은 취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불신자들에게서만 영광과 욕을 당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전도하여 설립한 고린도 교회에서도 영광과 모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즉 바울파 사람들에게서는 큰 영광을 받았고, 반바울파 사람들에게서는 큰 모욕을 당했습니다.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악하게 평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좋게 평하기도 했습니다.
1. 악한 이름과
이것은 사람들이 바울에 대해서 악평하고 불명예스런 욕을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런 악평은 불신자들에게서만 들은 것이 아니라, 유대교인들이나 교회 안의 율법주의자들에게서도 들었습니다.
심지어 바울이 전도해서 설립한 고린도 교회로부터 예수님 생전에 예수님을 따라다니지 않는 거짓 사도라고 악평을 받았고, 설교하는 말이 시원치 않고 졸렬하다는 비난도 받았고, 자기 병 하나도 치료 못 하는 무능력한 사역자라는 비방도 받았고, 심지어 헌금을 도적질해 먹은 도둑놈이라는 악평까지도 들었습니다.
이처럼 불명예스러운 비난과 모욕을 당하면, 참으로 참고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설교자인 크리소스톰도 “중상모략과 명예훼손은 칼로 살을 도려내는 고통보다 더 감당하기 어렵다”(It is more difficult, says Chrysostom, to bear such reports than it is pain of body)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반즈(Barnes)도 “모욕과 중상모략을 당하면 인간의 본성상 참으로 참기가 어렵다”(it is consequently more difficult to human nature)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바알세불이란 불명예를 당했으니, 제자들이야 얼마나 모욕을 받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욕을 당하면 하늘에 상이 크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그리고 베드로 사도도 주님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이처럼 욕을 먹으면서도 기뻐해야 할 이유는 하늘에 상급이 크기 때문이고, 욕을 먹고 핍박을 당할 때는 더욱 성령님이 강하게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4:13-16.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1.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바울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할 때, 바울은 속이는 사기꾼이요 정신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니까, 로마 총독이 바울을 미쳤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6: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그런데 바울을 사기꾼으로 비난한 사람은 불신자만이 아니라, 교회 내의 일부 사람도 그랬습니다.
즉 어떤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바울이 교묘히 제자들을 통해서 사기 치고 선교헌금을 횡령해 먹는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내가 누구를 통해서 너희를 속이고 이득을 취하더냐고 대답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16-18.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2. 참되고
불신자들이나 유대교인들이나 일부 교인들은 바울을 속이는 자라고 비난했으나, 바울은 속여 빼앗는 사기꾼이 아니고, 참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고, 자비량 전도를 하면서 선을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 구원과 부활 천국은 속이는 거짓말이 아니라 참된 말이고, 바울은 속이는 말로 재물을 약탈하는 사람이 아니고, 자비량 전도하면서 재물을 주고 목숨까지 주기를 원하는 참된 사도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사기꾼이고 도둑놈이라고 비방하는 일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은 제자들을 통해서 거짓으로 헌금을 도적질해 먹지 않았고, 목숨까지 허비하는 참된 사도라고 말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14-17.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공교한 자가 되어 궤계로 너희를 취하였다 하니,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또한 바울은 자기를 사랑하고 도와주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는 목숨까지 주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도 수많은 고난과 욕을 당하셨지만, 바울 사도도 수많은 고난과 욕을 당했던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 하면서 불신 가족이나 세상 불신자들에게나 일부 교인들에게 비난과 욕을 당하더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더욱 기도하시고, 진실하게 열심히 주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과 자손들을 잘 되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시편 103:1-5.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시편 37:23-28.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어떤 경우는 일반 성도만이 아니라, 목회자들도 이런 고난과 불명예를 당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바울을 생각하시면서, 더욱 많이 기도하시고 성령 충만하여 선을 행함으로 악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 가정과 자녀들에게 큰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9절.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s unknown yet well-known, as dying yet behold, we live; as punished yet not put to death,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ὡς ἀγνοούμενοι καὶ ἐπιγινωσκόμενοι,
as being unknown and (yet) being well known
직역하면 ‘무명한 것 같으나 유명하고’란 뜻입니다.
‘무명한’(ἀγνοούμενοι)은 현재분사로서(being unknown) 현재 무명한 것 같음을 가리키고, ‘유명하고’(ἐπιγινωσκόμενοι)도 현재분사로서(being well known) 현재 유명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ὡς ἀποθνήσκοντες καὶ ἰδοὺ ζῶμεν,
as dying and (yet) behold living
직역하면 ‘죽은 것 같으나 보라 살아있고’란 뜻입니다.
‘죽은’(ἀποθνήσκοντες)은 현재분사로서(dying) 현지 죽은 것 같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보라’(ἰδοὺ)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hold) 확실히 보라는 것이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입니다.
‘살아있고’(ζῶμεν)는 현재분사로서(living) 현재 살아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ὡς παιδευόμενοι καὶ μὴ θανατούμενοι,
as being disciplined and (yet) not being killed
직역하면 ‘징계를 받고 있는 것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않고’란 뜻입니다.
‘징계를 받고 있는’(παιδευόμενοι)는 현재분사 수동태로서(being disciplined) 현재 징계를 받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죽임을 당하지 아니 하고’에서 동사(θανατούμενοι)는 현재분사 수동태로서(being killed) 현재 죽임을 당하지 않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우리가 무시를 당하고 있는 것 같으나 우리는 잘 알려져 있다. 우리가 거의 죽음에 이르렀으나 우리는 아직도 살아있다. 우리가 매를 맞고 지내왔지만,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죽임을 당하지 않고 있다. (We are ignored, even though we are well known. We live close to death, but we are still alive. We have been beaten, but we have not been killed.)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1. 무명한 자 같으나
사도들이 각 지방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알아주거나, 환영하거나, 집회를 주선해준 일이 없었습니다.
저들은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으나, 하나님의 사역자라는 고귀한 신분의식을 가지고, 정말 높은 도덕률을 가지고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란 표를 모든 기적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나타내주었습니다.
이처럼 낯선 곳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신실한 하나님의 사역자로 처신하는 것은 고귀한 일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써주신 증거입니다.
그러나 어떤 성도들은 낯선 곳에 가면 자신의 위치를 망각해버리고, 오락과 쾌락을 추구하는 일이 있습니다.
즉 자신들의 신분이 알려진다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는 잘못된 처신을 더러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사도들처럼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은 곳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고 복음 전도사역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2. 유명한 자요,
사도들처럼 출신이 비천한 사람들이 이처럼 세상에 널리 알려진 때가 다시 있겠습니까?
성도들은 산 위에 있는 동네처럼 빛 된 삶으로 인해 유명해진 사람들입니다.
사역자들은 신문에 광고하지 않아도 세상에서 사람들이 주목하여 보고 있는 유명한 자들입니다.
사역자들의 자기 부인의 삶, 헌신과 열심, 사랑과 봉사는 세상에 명성을 드러내게 만듭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잘하면, 영적으로 열린 분들이 잘 알아주고, 많은 성도들에게 존경을 받게 됩니다.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1. 죽은 자 같으나
세상 나라 사람들 눈에 사역자들의 삶은 죽는 것과 같은 삶입니다.
바울 사도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31)
정말 가난에 찌들고, 세상 좋은 것들을 맛보지 못하고, 불쌍하게 사는 존재 같습니다.
결국 가난하게 살다가 병들고 죽게 되는 사람 같습니다.
자녀들도 못 가르치고, 세상에서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기적적인 복을 가정과 자녀들에게 주십니다. (시편 112:2) 할렐루야!
그래서 저에게도 큰 아들은 국가기업체의 간부이고, 둘째 아들은 유명한 법조인이고, 딸은 유명한 대학의 의사 가정의 복을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2.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비록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불신자들의 핍박 속에서 죽게 될지라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소생시켜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23:3)
즉 바울 사도는 날마다 죽은 생활을 했지만, 부활의 능력이 그 안에서 역사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도르가를 살렸고, 바울 사도는 죽었던 유드고를 살리기도 했습니다.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여기서 징계란 하나님께서 고난과 재앙으로써 훈계하심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서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요한계시록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이 말씀은 회당에서 받은 매질 등을 가리키지 않고, 하나님께서 가하신 시련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주의 종들은 이런 시련조차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줄 알고, 불평하지 않고, 감내했습니다.
2.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징계와 연단과 시련을 당해도,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시지 않으시고, 살려서 주의 일을 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9:14. 이와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이처럼 바울 사도는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복음 사역을 충성스럽게 감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바울처럼 세상에서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더라도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주님께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좋으신 주님께서 성도님들과 자녀들에게 영육간에 큰 복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10절.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s sorrowful yet always rejoicing, as poor yet making many rich, as having nothing yet possessing all things.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ὡς λυπούμενοι, ἀεὶ δὲ χαίροντες,
as being sorrowful, always yet rejoicing
직역하면 ‘근심하고 있는 것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란 뜻입니다.
‘근심하는’(λυπούμενοι)은 현재분사로서(being sorrowful) 현재 근심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기뻐하고’(χαίροντες)도 현재분사로서(rejoicing) 현재 기뻐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ὡς πτωχοὶ, πολλοὺς δὲ πλουτίζοντες,
as poor, many yet enriching
‘부요하게 하고’(πλουτίζ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enriching) 현재 다른 사람들을 부요하게 하고 있는 삶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ὡς μηδὲν ἔχοντες, καὶ πάντα κατέχοντες.
as nothing having, and (yet) all things possessing
직역하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앞의 동사(ἔχ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having) 현재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뒤의 동사( κατέχοντες)도 현재분사로서(possessing) 현재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슬퍼하는 자 같지만,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갖지 않은 자 같지만 모든 것을 소유한 자이다. (as sorrowful yet always rejoicing, as poor yet making many rich, as having nothing yet possessing all things.)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1. 근심하는 자 같으나
바울은 고난과 모함과 하나님의 징계까지 있어서, 근심하고 침통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세상 나라 기준으로만 볼 때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재미없고, 항상 침울한 삶같이 보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불행할 이유가 있다고 단정해버립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육적인 쾌락과 유흥에서 즐거움을 찾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 있습니다.
기도하여 성령 충만에서 오는 참된 기쁨, 말씀을 깨달아 은혜를 얻는 기쁨,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서 오는 기쁨,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서 얻는 기쁨, 전도의 열매를 맺는 데서 오는 기쁨 등은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참된 기쁨입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갈 때, 우리의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것을 체험하는 기쁨입니다.
2. 항상 기뻐하고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기뻐한다는 것은 이 기쁨의 원천이 가변적인 세상 일에 근거한 기쁨이 아니고, 세상을 초월한 하나님 나라에서 오는 성령의 기쁨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이 기쁨은 스바냐 3장 17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잠잠히 사랑하시며, 우리를 바라보시고 기뻐 어쩔 줄 몰라 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는 데서 오는 기쁨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이 기쁨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인데, 이것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당하는 시련을 이겨나갑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해서 욕을 먹고 매를 맞으면 복이 있는 자이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1. 가난한 자 같으나
사도들은 세상에서 물질적으로 부자가 아니고,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나에게 금과 은은 없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사도들은 그나마 믿기 전에 가지고 있던 재산마저도 다 내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상황에서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풍성하신 도우심을 체험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가난하지만,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사역에 방해를 받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즉 엘리야에게 까마귀가 먹을 것을 가져다주게 하시고, 사르밧 과부를 통해서 먹을 것을 주시는 것과 똑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십니다.
저는 십일조를 하면서부터는 평생토록 하나님께서 궁핍하게 하시지 않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목회할 때는 물론이고, 신학생일 때도 그랬고, 직장생활 할 때도 그랬습니다.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뮬러(George Müller)는 순전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30년 동안 2,566명의 고아들을 먹이고 입혔다고 했습니다.
2.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사도들 자신은 비록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사도들은 많은 사람들을 부요하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병자들을 고쳐서 스스로 생계를 이루어가게 해주었고, 방탕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성실한 사람이 되게 해서 잘 살게 해주었고, 부유한 이방인 교회에서 헌금을 걷어다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에게 구제헌금으로 가져다주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성도들에게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부요를 주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처럼 가난한 성도들이 예수님의 은혜로 영육간에 부요해지게 하시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넉넉해서 이웃들에게 선을 행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고린도후서 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부요함으로 자신이 지나친 향락을 누리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거저 받았으니 가련한 이웃에게 풍성히 주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1.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사도들은 현실적으로 부자가 아니고, 가난한 서민에 불과했습니다.
몇 달이나 일 년이나 말년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도 전도 여행을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현지에서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 돈을 주어 보내지 않으시고, 전도하는 곳에서 먹고 마시며 전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7-10.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이처럼 바울 사도도 돈을 갖지 않고 전도사역을 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도와주셨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빌립보서 4:18-19.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물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물질적인 도움은 바울 자신의 천막 장사와 빌립보교회 성도들 같은 사람의 손길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2.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바울 사도는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모든 것이 부족함 없이 만족했습니다.
영혼도 만족하고, 육신도 건강하고, 물질적으로도 풍족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한 빌립보서 4장 18절에서도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 사도는 부요할 때나 궁핍할 때나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기를 배워서 만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빌립보서 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신 성도는 모든 것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 잘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충실하게 해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들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좋으신 하나님께서 성도님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날마다 채워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