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너더리통신 71/180304]친구이자 처남의 회갑을 축하하며
엊그제 여수 밤바다를 코 앞에 두고 한 호텔에서 작은 가족모임이 있었다. 이제 거개 60줄, 70줄에 들어선 연안(延安) 김문(金門) 3남 3녀. 처가식구 6남매다. 맨 위가 45년생, 나와 띠동갑 처형이고, 나의 아내로 6번, 막내이다. 그중에 58년 개띠인 처남(45년, 아니 정확히는 47년된 나의 친구이기도 하다)이 회갑을 맞아 형제들을 3박4일 초대한 것이다. 작다면 작은 일이지만, 사실 엄청나게 거창한 일.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이렇게 6남매가 다복하게 가정을 꾸리게 된 것은 모두 당신들의 덕분입니다. 당신들의 사랑의 열매입니다. 생업(치과 진료)를 이틀(금, 토요일) 쉰다는 것도 쉽지 않지만, 무엇보다 6남매 가족이 이렇게 모여 흔쾌하게 세 밤을 지낸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에 틀림없다. 승주 선암사를 가고, 이순신대교를 가로지르는 케이블카를 타고, 밤바다를 1시간도 넘게 순항하는 크루즈 유람선도 탔다. 하이라이트는 ‘하화도’의 꽃섬길 5.7km를 걸은 것이다. 특별한 재미의, 좋은 追憶의 塔을 또 한번 쌓은 것이다.
지난해 나의 회갑생일은 고등학교 동창친구 12쌍과 함께한 동유럽 5개국 투어중 비엔나에서 있었다. 친구들이 따라주는 와인 한 잔이 너무 좋았으나, 60회라고 특별한 감흥은 없었는데, 올해 처남의 생일은 이상하게 남달랐다. 내가 그의 생일을 기억한 것부터 그랬다. 며칠 전 새벽 눈을 뜨는데, 여느 해와 달리 ‘아, 그 친구 환갑생일이구나’ 생각이 들어 축하문자를 보냈었다. 그리고 엊그제 합류하기 전, 고향에서 자려고 누었는데, 그래도 명색이 글을 쓰는 매제인데, 내일 여수 세리머니에서 축시 한 수 정도는 낭송해야 하는 것아닌가 싶었다. 하여 큰 달력 한 장을 찢어 뒤에다 30여분 갈겼다. 하여 어쭙잖게 완성된 글을 다음날 온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낭송을 했다. 그 졸시의 전문이다.
김00 군의 회갑생일에 부쳐
친애하는 처남, 김00
아니, 처남보다 훨씬 먼저인 45년친구, 김00
자네가 일주갑, 60년, 귀빠진 날을 맞았단 말이지.
축하하네.
진심으로 감축을 드리네.
1958, 무술년, 개띠해 베이버부머로 태어나
2018, 무술년, 황금개띠해를 맞았으니
한 甲을 돌아, 돌아올 회(回), 회갑이라니
한 甲을 돌아, 돌아올 환(還), 환갑이라니
축하할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무리 100세시대라해도
평균수명이 80를 넘었다해도
건강수명은 64.8세라는데,
회갑이 어디 보통일인가?
지척으로 흔하다고 어디 쉬운 일인기?
이른바, 귀가 순해진다는 耳順이 아닌가 말이네.
하여, 自祝한다며 형제자매를 불러모아
빛나는 환갑잔치를 벌이고, 잊지 못할 追憶을,
여수 밤바다에서 쌓는단 말이지.
아무렴 좋은 일이고말고,
이렇게 기쁜 일이 어디 흔한가?
하늘에서도 어머니 아버지께서
얼마나 흔연히 기뻐하실까? 생각을 해보시게.
잘 했네. 그깟 돈이야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살 일.
그리고 솔직히 이런 축하마당에
돈 쓰려고 버는 게 아닌가 말이네.
열친척지정화(悅親戚之情話),
형제들이 모여 삶의 정담을 하염없이 나누는 일이야말로
살아가며,
맨 나중에 가장 많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말이네.
저 자유당이 깽판을 치던 50년대의 독재,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어어진
엄혹한 군홧발정치 30년,
4․19 학생혁명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1987 6월항쟁으로,
아, 마침내 타오른 2016 촛불혁명으로
民主의 새 세상이 열리기까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60년,
자네는 결코 외면하거나 비겁하지 않았지.
아니 암울한 현실에 겁 없이 맞서 대들고 싸웠지.
대학 초년생, 탈춤을 추며 지하서클 모임으로,
이념서점을 운영하며 독서운동으로,
10년에 걸친 고난의 늦깎이 대학생으로,
그 이후, 전국민의 건강한 치아(健齒)를 위한 진료활동으로,
자네는 부단히 노력하고 투쟁하고 치열하게 살았지.
사람이 꿈 속에 나비가 되었는지,
본래 나비였는데, 사람이 된 꿈을 꾼 것이지는 모르나
제법 긴 세월, 한바탕 꿈을 꾼 듯 할 것일세.
그 어두운 세월에도
자네는 부단히 노력하는 ‘민주유공자’가 되었고.
하여,
이제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마음으로,
한 여인의 남편, 두 아이의 아버지,
처가의 사위, 본가의 동생, 오빠 등
사랑과 우애의 다복한 가족의 일원이자,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친구로,
우리 사회의 건실한 민주시민으로,
죽는 날까지 공부하는 學生으로
끊임없이 정진(精進)하는
자네를 바라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라네.
아무렴, 어찌 즐겁고 흐뭇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제 눈 앞에 닥친 우리 인생의 제2막,
여전히 높은 꿈을 꾸세나.
여전히 이 험한 세상을 사랑하세나.
당면과제인 민주사회를 꽃피우세나.
우리 민족의 숙원인 統一을 위하여 힘을 보태세나.
다시 한 甲으로 들어가는 진갑(進甲),
우리의 빛나는 60대를 위하여
오늘 이 멋진 밤,
아름다운 麗水에서
온 가족이 한 목소리로 祝杯를 드세나.
건배 구호는
내가 선창할 터이니,
마지막 구절만 따라 부르시게.
“천만 번 더 들어도 기분좋은 말?”
“사랑해”
그렇지! 우리 사랑하세나.
김00, 가즈아(GAZUA)!
3박4일 잔치는 끝났더라. 이제는 모두 헤어져야 할 시간. 여수엑스포역에서 서울팀이 헤어지는데 못내 아쉽다. 이왕 내일 일요일이니 한밤 더 자며 3번이 선물한 조니워커 블루라벨을 따자. 신학기라 준비를 해야 함다. 미안함다. 남은 식구끼리 더 재밌게 노세요. 다음 차례는 누구지요? 아, 이제 6번 한 명 남았다. 3년후, 그때쯤엔 금강산관광 길이 열리리라. 금강산을 갑시다. 좋다. 조아. 아니, 그 사이에 3번이 칠순이군요. 그래, 그렇게, 우리의 잔치는 이어갑시다. 다다익선이라고, 만남은 잦을수록 더 좋은 것(The more, the better). 우리는 그렇게 아름다운 여수의 밤바다를 두고 봄이 오는 길목에서 헤어졌지요. 장범준의 ‘여수 밤바다’라는 노래가 히트를 쳤다구요. 어쩌다 그 노래를 들으면, 엊그제의 알므다운 밤이 떠오르겠지요.
See you later. So long, good 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