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장로의 ‘어느 여자 사형수 이야기’ 1
박효진 장로가 서울구치소에서 보안계장으로 있을 때 그곳으로 여자 사형수 한 명이 들어왔다.
그녀는 구치소에서 구원을 받고 성령 임재를 경험했으며 성경을 50회 이상 통독했다.
1천여 명의 미결재소자들에게 행함과 진실함으로 전도했다.
그녀는 박 장로와 1년 반 가까이 함께 했다. 박 장로와 함께한 시간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그 이야기를 박 장로의 간증을 통해 전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사도행전 3장 19절)
박효진 장로가 서울구치소에서 교도관 일을 할 때다.
한번은 여자교도관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최근에 성동구치소에서 여자 사형수 한명이 왔다”며 그 사형수를 소개했다.
내용은 이랬다.
그 사형수는 너무나 은혜롭게 보였다.
얼굴만 봐도 감동이 되고 그녀의 삶의 모습, 언행, 표정 하나하나가 예수 믿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줬다.
이들은 “그렇게 은혜로울 수가 없다”며 “박효진 장로님에게 꼭 한번 오셔서 격려해 주시고 기도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박효진 장로는 “알겠다”고 말하고 그 여성 사형수의 인적사항과 그녀의 범죄내용을 파악해봤다.
그런데 그녀는 참 특이한 사람이었다.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약사가 돼 제법 큰 규모의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고, 결혼해 아이들도 있었다. 그렇데 잘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남편과 불화가 시작됐다.
그 불화가 점점 자라 미움으로 바뀌고, 그 미움이 증오로, 그 증오가 결국 그녀를 살인자로 만들었다.
그래서 사람을 고용해서 돈을 많이 주고 남편을 죽이게 되었다.
이 사실을 어렴풋하게 눈치를 챈 시어머니마저 죽이려했다.
사고를 가장해 몇 번의 살인시도를 했지만 그때마다 미수에 그쳤으며, 결국 꼬리가 잡혀 구치소에 수용됐다.
박효진 장로는 성동구치소 생활기록을 들여다봤다.
그녀는 처음에 교도관들을 많이 힘들게 한 것이 보였다.
항상 자해를 하고 혀 바닥을 깨물고 머리를 박고했다.
교도관들은 매순간 그녀를 감시해야 했고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그녀의 신분기록카드는 교도소에서 저지른 범칙들과 사고들로 가득 채워 있었다.
그러던 중에 성동구치소에 있던 한 여성교도관이 그녀에게 성경책을 한권 주었다.
사실 그 교도관은 그 당시 법무부 불교 시무회 총무였다.
불교 시무회 총무가 사형수에게 사람 좀 되라고 성경을 넣어준 것이다.
맨 처음 성경을 받았을 때 그녀는 성경을 방치했지만 심심하고 외롭고 아무것도 할 것이 없으면 악쓰고 난동부리고 축 처져 있다가 한 번씩 성경을 들쳐보더니 성경을 한권 다 읽게 됐다. 그때부터 마음이 조금씩 바뀌게 되었다.
그렇게 두 번 읽고, 세 번 읽고 한 뒤에는 완전히 성경에 사로잡혀 밥을 굶어가면서까지 몰입했다.
1심에서 사형확정판결이 나던 그때 쯤 감당할 수 없는 성령이 그녀에게 임하게 됐다.
그 후로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됐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이 됐다.
방을 옮기게 되면 맨 먼저 방을 청소하고 변기까지 손으로 닦아서 분위기를 바꾸고 동료 중에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밤새 물수건을 얹어주고 약을 구해 먹이는 등 온갖 정성을 다했다.
이런 그녀의 모습에 동료들 또한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문제가 많은 수용자는 모두 그녀의 방으로 지정되었는데 그때마다 그들은 그녀에 의해 온순한 양처럼 변화되었다.
사고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던 그녀의 신분기록카드 후반부는 성경을 읽은 것과 그녀가 행한 선행들로 바뀌게 됐다. 그기에 적힌 그 기록들만 보더라도 ‘오~ 이 사람 구원 받았구나’ 하고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변화되었다.
어느 한 교도관은 그녀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 자신이 부를 찬송을 찾아서 밤에 불이 꺼질 때까지 수백 번씩 그 찬송을 불렀다. 해질녘쯤 되어서 그녀를 찾아가면 그녀의 얼굴만 봐도 감동이 되었다.”
그렇게 감옥에서 하나님을 만나 생활하던 중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강한나’로 계명한 후 오직 새로운 사람으로 일관된 수용생활을 했다.
그러다 그녀는 박효진 장로가 근무하던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다.
원래 사형선고를 받으면 본인이 항소하지 아니해도 법적으로 항소를 하게 돼 있다.
그래서 항소심 덕분에 서울 구치소로 오게 됐다.
박효진 장로는 그녀의 자료들과 기록들을 전부 머리에 담고 때가 외어서 그녀는 찾아갔다.
처음 본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예쁘고 은혜 받은 얼굴이었다.
그녀의 내면에서 풍기는 그 은혜의 향기가 너무 화사할 정도로 예뻤다.
서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박효진 장로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장로님, 참 이상해요. 언어가 안통하고 말이 안통해도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전도가 돼요.”
박효진 장로는 “어떻게 그래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구치소에 외국인들이 많이 붙잡혀 있다. 그분들과 말이 안통하고 대화가 통하지 않아도 제가 만든 율동과 찬양을 하면 하나같이 감동이 되어서 울기도 하고 십자가만 그려줘도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예수 믿자’고 하면 ‘알겠다’고 하고 그런 역사가 계속 생겨난다.”고 했다.
그녀는 박효진 장로에게 자신이 만든 찬양과 율동을 한번 보여줘도 되느냐고 물었다.
박효진 장로는 “여기서요?”라고 되ANE자 여자교도관들이 “해봐요. 한번 해보세요.”라고 했다.
그녀는 열대명의 교도관들이 보는 앞으로 나와 “우리 이제 고스톱을 끊어요~ 카바레도 끊어요~ 마약도 끊어요~”라는 가사에 맞춰 재미있는 율동으로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박효진 장로는 처음에는 너무 재밌고 우스꽝스러워 막 웃었다. 갑자기 그 웃음 끝에 비명 같은 통곡이 튀어나왔다.
비록 사형에 해당하는 사람을 죽인 죄를 지었던 악한 여자였지만 예수님은 그녀를 바꾸셨고, 성령님이 내제하는 성령님의 역사가 그 율동과 찬양을 통해 드러나니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그곳에 있던 직원들도 서글프게 울기 시작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직원들도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때부터 박효진 장로는 시간이 날 때면 그녀를 찾아 기도해 줬고, 상담도 하면서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했던 그날이 왔다.
그녀의 사형집행 명령이 떨어졌다.
박효진 장로는 그 당시 보안계장이었기 때문에 전체적인 사형집행을 통제하고 그 상황을 잘 마무리해야하는 위치에 있었다.
구치소 소장이 중앙에 앉고 검사들과 법무부 과장들, 서울구치소 주요 간부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사형수들의 사망을 체크할 의사 두 명이 와서 앉았고 목사님과 신부님과 스님 등 성직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