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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추겉절이. 양파와 함께 무쳐내면 밥반찬으로 그만이다. | ⓒ 전갑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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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추부침개. 술 안주로 제격이다. 비오는 날 입이 궁금할 때 먹으면 좋다. | ⓒ 전갑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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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신나는 이야기이라도 있는 걸까? "까르르! 하하하!" 마당 앞 논둑길에서 쑥을 캐는 아낙네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오순도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고개를 맞댄 모습들이 정겨워 보인다. 햇살 좋은 봄날, 농촌 들녘에서의 웃음소리가 평화롭다.
나물 캐는 사람들이 부러운지 아내가 칼을 챙겨든다. '자기도 쑥을 캐려나?' 우리 밭둑에도 쑥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아내를 따라나서며 물었다.
"당신, 뭐하게 칼을 들어?"
"부추 베려고요."
"난 쑥 캘 줄 알았네. 우리 부추는 좀 여리지 않나?"
"안 그래요. 지금 먹어야 최고지요."
"키가 자잘하던데?"
"여들여들한 게 되레 맛있는 거예요."
"그런가?"
"새봄 첫 부추는 사위도 안 주고 먹는다는 말, 못 들어 봤어요?"
새봄에 올라온 첫 부추는 백년손님인 사위도 안 먹이고, 영감한테만 먹인다는 말이 있다며 아내가 웃음을 참지 못한다. 그런 말이 있기나 하는 걸까? 하기야 부추는 양기를 돋워주는 작물로 '기양초(起陽草)'라 한다니까 그런 말이 나올 만도하다. 더욱이 새봄 새 기운을 받아 올라온 생명이니 뭐가 달라도 다를지 않을까?
봄채소 중 영양과 맛에서 으뜸인 부추
우리 텃밭에서 아내의 관심 종목 중 단연 으뜸은 부추이다. 여타 작물을 가꾸는 데는 나 몰라라 하면서도 부추밭은 수시로 드나든다. 부추를 벨 때 거름도 주고, 흙을 일궈주며 김을 매기도 한다.
사실, 부추는 다른 작물에 비해 가꾸기가 아주 쉽다. 한 번 씨를 뿌려놓으면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잘 자란다. 벌레가 끼지 않아 농약을 치는 일도 없다. 한여름에 꽃이 피고, 가을에 씨가 맺히면 떨어져 저절로 퍼진다. 뿌리는 추운 겨울에도 썩지 않아 이듬해 봄, 새 순이 씩씩하게 올라온다.
그래서 저절로 크는 부추를 '게으름뱅이풀'이라고 부르지 않나 싶다. 세상에서 가장 손쉽게 가꿔먹을 수 있는 게 부추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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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추. 봄에 나는 채소로 으뜸이다. 우리 집 소중한 먹을거리 | ⓒ 전갑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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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는 봄부터 가을까지 수시로 베어 먹을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이른 봄에 한 뼘 정도 자라 베어 먹기 시작하면 여남은 번은 잘라먹는다. 부추밭 한쪽 모퉁이를 잘라먹고, 끝자락을 자를 즈음 처음 벤 자리는 또 무성하게 자라있다.
아내는 부추로 다양하게 음식을 만든다. 우리 집 식탁은 부추를 이용한 반찬이 단골손님이다. 가장 쉽게 먹는 방법은 야채 쌈과 함께 날로 먹는다. 날로 먹으면 향긋한 부추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돼지고기 수육을 쌈 싸먹을 때 부추를 곁들이면 찰떡궁합이다. 열무김치를 담글 때나 오이소박이를 할 때도 부추는 약방의 감초처럼 쓰인다. 그리고 비 오는 날 부추부침개는 어떤가? 오징어나 조갯살 같은 해물을 듬뿍 넣고 부침개를 부쳐 먹으면 그 맛은 별미이다. 이때 한 잔의 막걸리 안주로 부침개는 최고이다.
부추겉절이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멸치액젓으로 간을 맞추고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 간단히 만들 수 있다. 뜨거운 밥을 한 그릇 넣어 비비면 그 맛이 더한다.
부침개에 겉절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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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추밭. 아내가 부추밭에서 나물을 다듬고 있다. | ⓒ 전갑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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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손에 이끌려 밭으로 나왔다. 우리 부추밭의 부추가 몰라보게 자랐다. 가늘고 여린 잎이 여러 가닥으로 쑥쑥 올라왔다. 연둣빛의 새순이 바람에 파르르 떤다. 겨우내 죽지 않고 살아남은 놀라운 생명력이 신비롭다.
며칠 전 깻묵거름을 주고 한 차례 비를 맞더니만 부추가 싱싱하다. 아직 키는 작지만 잘 다듬어놓으면 딱 좋을 듯싶다.
아내가 한 움큼씩 쥐고 부추를 쓱싹 벤다. 그리고 끝을 잡고 탈탈 턴다. 검불이 털려나간다. 다시 밑동을 조금 잘라내고 추리자 깨끗이 다듬어진다. 모양이 좋지 않은 부추 끝은 손으로 뜯어낸다. 부추 다듬는 데도 요령이 있어 보인다.
부추가 워낙 가늘어 다듬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부추가 몸에 좋은 줄 알면서도 손질하는 게 귀찮아 자주 못해먹는지도 모른다.
손질이 끝나자 아내가 내게 묻는다.
"여보, 오늘은 부추로 뭘 해먹을까?"
"그야 당신이 잘하는 거 있잖아! 부침개!"
"그럼 부침개도 하고, 겉절이도 해야겠네."
"부침개는 막걸리 안주, 겉절이는 밥반찬! 그럼 좋겠다!"
부침개에다 겉절이까지!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인다. 요 며칠 몸이 노곤하고, 입맛이 깔깔하던 차에 식욕이 확 살아날 것 같다.
잃은 입맛을 되찾다
아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흐르는 물에 부추를 깨끗이 씻어내며 내게 일을 시킨다.
"당신은 양파나 한 개 손질해주지? 겉절이에 양파가 들어가면 아삭아삭한 맛이 좋잖아요. 부침개에도 좀 넣게요."
음식도 함께 하면 맛이 더 있나? 색다른 음식을 할 때 아내는 내게 꼭 거들도록 한다. 함께 만들면 힘도 덜 들고, 간을 잘 맞출 수 있어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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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추겉절이는 액젓으로 절여 갖은 양념을 하여 버무린다. | ⓒ 전갑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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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추부침개는 계란, 해물과 밀가루로 반죽한다. 밀가루를 많이 넣지 않아야 좋다. | ⓒ 전갑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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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부침개부터 준비한다. 부추 키가 작아 썰 필요가 없다. 부추를 양푼에 넣고 굵은 소금을 술술 뿌린다. 냉동 보관한 오징어를 해동하여 길쭉길쭉 썰어 넣고, 계란에 밀가루를 적당히 풀어 반죽을 하니 부침개 준비가 끝이다.
이젠 겉절이를 할 차례다. 부추에 액젓과 집간장을 약간 넣고, 빨간 고춧가루, 다진 마늘을 넣어 버무린다. 손으로 슬슬 다뤄야 풋내가 나지 않는다. 깨소금과 참기름으로 마무리를 하니 구수한 냄새가 주방 가득하다.
널찍한 부침개가 완성되었다. 아내가 부침개와 겉절이를 접시에 담아낸다. 막걸리 한 잔이 생각난다.
"여보, 옆집 아저씨 부를까?"
"혼자 먹기 아쉬워요. 그런데 옆집 마당에 차가 없던 걸요."
"그럼 당신하고 한 잔 할까?"
"난 술은 별로인데! 당신이나 마시구려."
아내가 텁텁한 막걸리를 따른다. 부침개를 안주 삼으니 막걸리 맛이 끝내준다. 부침개 속의 오징어 씹히는 맛과 부추 향이 입안 가득하다. 밥반찬으로 먹는 겉절이도 식욕을 돋운다. 아내의 손맛까지 느껴진다.
첫물 부추는 인삼, 녹용보다도 좋다는 부추! 그래서 그런가? 피로가 멀리 달아나고, 힘이 불쑥 솟는 느낌이 든다. 부추로 만든 소박한 식탁에서 새봄의 향기가 술술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