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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원본 글과 사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십시요.ㅠㅠ
https://blog.naver.com/ktusjye/221976932617
제주에서 추자도로 가려면
제주항연안여객터미널에서 여객선을 타야한다.
여객선 시간을 확인하니
당일 돌아오기에 무리가 없을듯 하여
왕복으로 예약하고 확인 문자를 전송받는다.
[Web발신]
[씨월드고속훼리]
※WEB 예약문자※
● 가시는편 정보
02/22(토)-am09:30: 출항
02/22(토)-am11:00: 도착
퀸스타2 [제주→상추자]
● 오시는편 정보
02/22(토)-pm16:30: 출항
02/22(토)-pm17:30: 도착
퀸스타2 [상추자→제주]
숙소가 성산읍 신산리에 있어
제주항까지 거리가 멀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한다.
7시 10분 경 마을 앞 신산환승정류장에서
201번 버스를 타고 가는데 문자가 온다.
'[Web발신]
[퀸스타 2호 운항 안내]
2월 22일(토) 09:30 출항 제주-추자-우수영행 퀸스타 2호는 정상출항 예정이며,
우수영-추자-제주행 퀸스타 2호는 오후 해상의 기상악화가 예상되어 출항시간이 변경 되었습니다.
추 자 출항 : 15시 30분
출항 10분전 까지 탑승해주시기 바랍니다.'
제주항에시는 정상출항되지만
기상악화가 예상되어 추자에서 출발하는 시간이
한 시간 당겨진다는 소식이다.
추자항에 최소한 30분 전에는 도착할 예정이라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4시간 이다.
올레 18-1코스 총거리가 18.2킬로미터,
행보가 코스를 온전히 따라가지 않으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제주항에 도착하여 다시 확인하니
추자항 도착시간이 10시 반 이라니
30분 여유는 생기지만
오늘은 코스에 충실하자고 작정한다.
제주항에 도착하니
추자도 탐방을 안내하는 팜플렛이 눈에 띈다.
몇 장 넘기다 보니
'나발론 하늘길'이라는 지명이 마음을 당긴다.
하늘 아래 가장 짜릿한 트레킹 구간
영화 '나발론 요새'에 나오는 절벽과 닮아 붙여진 이름으로
치솟을 듯 하늘을 향하고 있는 오르막길을 걷다보면
그 이름을 실감할 수 있다.
깍아지른 절벽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길을 낸 나발론 하늘길은
걷는 맛이 뛰어날 뿐 아니라
풍광 또한 손을 꼽는 비경이다.
소개가 그럴 듯하다
안내도를 보니 올레코스와 다른 길이다.
시작도 하기 전, 계획이 어긋난다.
우선은 여객선에 오른다.
선실 1층에는 승객이 제법 보이는데
2층으로 올라가니 드문드문 앉아있어 여유롭다.
2층이 전망도 좋을텐데 의아하다,
생각하며 창가에 자리잡고 앉는다.
바깥으로 보이는 바다는 일렁이는데
경험이 많지 않으니
파도가 거센지 가늠 할 수 않는.
심하지 않았지만 멀미기운을 느낀다.
10시 반 지나 상추자항에 도착해
땅을 밟는 느낌이 행복하다.
추자도는 제주에서 45km, 해남에서 35km 거리에 있다.
제주도에 속해 있으나,
언어·문화적으로는 전라남도에 가깝다.
예로부터 육지에서 나주, 해남, 강진을 거쳐
제주로 건너가기 위한 관문 역할을 하였다.
뱃길로 제주와 육지를 오가다
바람이 심하면 바람을 피해가는 섬이라 하여
‘후풍도’라 불렸다.
조선 태조 5년, 추자나무 숲이 무성해
‘추자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는 전라도 나주목 탐라현에 소속되었으며,
조선 시대 세종 때는 나주목 해진군에, 1655년(효종 6) 전라도 영암군에 소속되었다.
1881년 전라도 제주목에,
1914년에는 전라남도 제주군 추자면으로 개편되었다.
1946년 제주도가 전라남도에서 분리되면서
제주도 북제주군에 속하게 되었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북제주군이 없어지면서 제주시에 편입되었다.
작은 섬 항구 앞이니
가장 번화한 곳이 아닐까, 싶다.
'작은작젯길'이라는 거리명이 있다.
먹거리타운으로 짐작되는데
거리에 추자도 옛 사진이 전시되어있다.
섬마을, 항구에는 해녀와 어부가
바다를 향하고 있다.
항구 왼쪽으로 돌다보니
한동안 올레 리본이 보이질 않는다.
다시 돌아와 리본을 따라가니
추자초등학교 앞으로 코스를 안내한다.
안내 리플렛에 소개된 포토존이다.
1925년 추자 공립 보통학교가 개교하여
2020년 95회 졸업생을 배출한 역사를 간직하였다.
운동장을 굽어보는 원색 건물이 예쁘다.
학교 뒤를 돌아 추자체육관 건물이 보이고
올레는 앞 길을 따라 올라간다.
계단 위가 최영장군 사당이다.
13세기 무신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던 시절
몽고와 항전하던 고려 조정이
왕자를 대신 보내 몽고에 입조하여 화평을 꾀하며 굴복한다.
몽고와 손잡은 조정은 왕권을 회복 하기위해
사병화된 삼별초군 해산 조치를 취하자
이에 삼별초가 반기를 들고 항쟁에 나선다.
해전에 약한 몽고군과 항전하기 위하여
진도로 근거지를 옮겨
전라도, 경상도 및 내륙, 제주도로 세력을 넓힌다.
이를 진압하기 위한 여, 몽연합군의 수차례 공격을 버티지만
탐라로 후퇴하여 환해장성을 쌓는 등 항전하지만
3년에 걸친 항전은 반란으로 최후를 맞는다.
삼별초의 난을 평정하자
원나라는 일본정벌 명목으로 탐라총관부를 설치,
감독을 파견 친정을 하게된다.
또한 목마장을 설치하여 몽고의 관리를 파견하는데
이를 목호라 부른다.
이 후 고려의 요청으로 총관부는 폐쇄하고
관리를 파견하여 고려땅이 되지만
목마장은 그대로 운영되면서 목호는 남게된다.
한 때 1700여명에 이르던 목호는 원나라의 비호아래
수탈, 고려관원 살해, 공납거부 등 횡포를 부린다.
중원에서는 명나라가 건국하여 원이 쇠퇴하자
고려에서는 친명정책을 펴게된다.
명나라의 요구로 제주마 진상을 요구하자
목호가 어명을 받든 관원을 살해하고 난을 일으킨다.
이에 조정에서는최영장군을 도통사로 삼아
난을 진압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최영장군은 3백여척의 선박과
2만 오천여 병력으로 정벌에 나선다.
풍랑을 만난 정벌군이 추자도로 대피하여 머무는 동안
그물짜는 법, 고기잡는 법 등을 가르쳐주어
추자도 주민들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다준다.
이를 기리기 위해 사당을 짓고 제를 지낸다.
최영장군사당을 돌아 언덕을 올라서면
뒤로 바다가 펼쳐지는 능선에 이른다.
추자도는 상추자, 하추자, 추포, 황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군도다.
북쪽으로 섬들이 보인다.
능선을 따라가다 추자체육관 끝,
좌불상을 얹은 돌탑 두 기가 보이고
그 너머 한옥 지붕이 보인다.
한창 건립 불사중인 추자도 첫번째 사찰
'봉두산 쌍룡사'다.
험난하고 고단한 삶을 사는 섬사람들에게
믿고 의지할 절대자는
반드시 필요한 의지처가 아니었을까?
조선 중기 유배당한 불자에 의해 전파된 추자불교,
그 오랜 세월동안 사찰이 없었단다.
왼쪽 암초를 거느린 수령섬과
오른쪽 염섬과 뒤로 추포도, 횡간도가 보인다.
능선을 계속 따라간다.
'나'를 내려놓은 상추자항과 추자면이
발 아래 펼쳐지고
그 너머 하추자도가 보인다.
오른쪽 봉우리에 추자등대도 보인다.
능선을 따라
왼쪽으로 꺽어져
조금 더 오르다 잠깐 오른쪽으로 빠져
해안을 건너본다.
추자도판 '모세의 기적'이라는
무인도 '다무래미'가 보인다.
썰물때 건널수 있도록 연결되어 오갈수 있지만
밀물때에는 불리되어 건널수 없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 오른쪽에
섬처럼 보이는 봉우리가 있다.
용둠범으로 연결된
상추자의 끄트머리 한 곳 이다.
왼쪽 능선이 '나발론 하늘길'이다.
정자 앞 봉우리에 올라서면
돌탑이 서있는 해발 85.5미터 정상이다.
추자군도를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과 달리
오른쪽은 조망되지 않는다.
봉글레산을 내려간다.
마을 뒤 도로로 내려서
오른쪽으로 잠깐 꺽어졌다가
왼쪽 마을길로 접어드는 올레길을 무시한다.
오른쪽으로 도로를 따라 계속 내려가
해안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꺽어진다.
직진하면 다무래미로 가는 방향이라
여유가 있다면 더 가보겠지만
불투명한 앞 여정을 감안, 욕심을 접는다.
아래 쉼터앞으로 내려가
모양을 갖추지 못했지만 '능소화꽃길' 터널을 지난다.
그 끝에서
상추자에 두 곳 있는 용둠벙 중,
나발론 하늘길 끝 용둠벙이다.
'둠벙'은 '물웅덩이'를 의미한다.
'용이 노니는 웅덩이'를 표현한 것이다.
용둠벙 건너는 돌다리와
두 번째 철다리를 지나 전망대 올라가는 계단이다.
전망대에 올라
건너편 나발론 하늘길을 건너본다.
아찔하고 웅장한 모습,
위험을 쉬이 감내하지 못하는 성격에
제대로 지날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는 한 편,
작은 도전정신이 고개를 든다.
오던 길을 되돌아
길이 2.1킬로미터로 소개된
나발론 하늘길 올라가는 계단앞에 선다.
방금 올랐던 용둠벙전망대 오르는
갈짓자로 꺽인 계단이 길다.
긴 계단을 올라 절벽 능선에 올라선다.
다음 봉우리를 잇는,
깍아지른 절벽을 돌아 오르는 계단이
적군 기습에 대비하여 몸을 숨긴 병사같다.
난간 로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정작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말머리형상을 한 바위가
오르는 계단 정면에 보인다.
또 봉우리 하나를 점령한다.
절벽 능선 안쪽으로 길이 나있다.
다시 절벽 능선으로 올라선다.
발을 딛기도 전,
건너다 보이는 갈 길이 아득하다.
오로지 한가지 믿음,
'이 길이 위험하다면 충분한 설명이 있었을 터...'.
그렇게 분별하며 다음 발을 내딛는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본다.
그 끝에 용둠벙전망대가 있는
섬처럼 보이는 봉우리가 보인다.
아직 하늘길 절벽은 끝나지 않았다.
믿음과 보이는 것 사이,
정신은 보이는 것, 위험에 집중하며 곤두선다.
다시 봉우리를 지나고
절벽 안쪽 깊은 숲길을 잠시 지난다.
계단을 올라
절벽 능선으로 올라선다.
해발 142미터, 큰산 정상에 위치한
군사시설로 보이는 통신탑 뒤,
철조망 바깥으로 난 길을 돌아
다음 봉우리로 이어지는 길
뒤돌아 본 큰산 정상 모습이다.
절벽이 끝나진 않았지만
나무가 우거진 사이로 난 길이 다소 편안해진다.
다음 봉우리에 올라서니
저 멀리 추자등대, 전망대가 눈에 들어온다.
마을길을 돌아 올라온 올레가
등대전망대 가기 전, 이 곳에서 합류한다.
추자등대가는 산길이
여늬 산 능선과 다르지 않다.
제주해협과 부산, 목포 등 내륙을 오가는 선박과
동중국해를 항해하는 선박의 표지로 하기 위해
추자도 어민과 추자도 수협에서 몇 차례에 걸쳐 건의한 끝에
6.7m 높이의 등탑이 설치되어 1980년 2월 27일 점등되었다.
규모가 작고 노후된 기존 등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사무실과 홍보관 등을 갖춘 현재의 등대를 신설하였다.
신설된 추자도 등대에는 회전식 대형 등명기를 설치하여
광달거리를 기존 38㎞에서 48㎞로 증강시켰으며
광도도 3배로 증강시켰다.
<출처 :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전망대에 오르며 돌아본 남쪽,
하추자도와 군도 조망이다.
근거리를 보는 전망과 달리
원거리는 옅은 안개에 멀어질수록 흐려진다.
북동방향 상추자항을 둘러싼
번성한 마을이 보인다.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큰 산 앞 봉우리가 그 너머 바다를 가렸다.
야외전망대에 올랐지만
전망은 바로 밑에서 보던것과 크게 다르지않다.
등대 상부 등탑이 보인다.
지금껏 보던 올레 안내와 달리
다음 지점인 묵리교차로까지 거리와 소요시간을 표시해 놓았다.
상추자와 하추자를 연결하는 연도교,
추자대교를 향해 산길을 내려간다.
아래
추자대교가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잇는 추자대교는
길이 156m, 너비 3.4m, 설계하중 13.5t의 규모
1966년 공사를 착공하여 1972년 완공하였다.
이 후 하중을 초과한 차량들이 지속적으로 통행하며
1989년 안전 진단 실시 결과 붕괴위험이 있어
1992년 신교건설공사를 착공하였으나 예산문제로 지지부진 하던 중
1993년 4월 공사차량 통행 중 붕괴사고가 발생하였다.
임시가교를 설치하여 5월 통행을 재개하는 등
신교 건설공사가 급물살을 타며 1995년 4월 완공되어 5월 개통했다.
현 추자대교는 길이 212.35m, 폭 8.6m이며,
설계하중은 18t으로 올렸다.
<출처 : 위키백과>
추자대교 건너 추자교삼거리에 도착한다.
올레코스는 삼거리 중 한 곳이 아닌
산으로 오르는 돌계단으로 묵리고개를 오른다.
산으로 들어간다.
그리 높지않은 산이지만
추자도 최고봉인 돈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있어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고
마을 앞 해변에 작지(자갈밭)이 있어
조선후기에는 묵지로 기록되었다는
묵리를 가로지르는 산길이다.
크게 특징없는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산에서 만나는 시멘트 포장도로,
그 길을 따라 더 올라가니
철조망을 둘러친 보호구역을 만난다.
추자담수정수장에서 식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담수와 빗물을 보관하는 저수지와
관련 시설물을 보호하는 철조망이다.
대부분의 섬생활의 가장 큰 애로 중 하나가 식수다.
추자도 역시 예외는 아니라
예전에는 빗물을 저장하여 활용하거나
보름에 한 번 제한급수를 받는 것이이 일상이었다.
2013년 1월 국내 기업이 설치한
1,500톤 해수 담수시설과와 1,000톤 빗물 정수시설을
2013년 1월 가동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자료를 보면
섬주민과 관광객에게 필요한 수요가 800톤인데
해당 담수 및 정수시설로 최대 2,500톤을 공급할 수 있고
비가 오지 않아도 담수시설 용량이 1,500톤으로
충분한 생활용수 공급이 가능하다고 보다하고있다.
묵리마을로 내려가는 길
간간히 바다가 보이지만
이 곳이 섬인가 싶을 만큼
숲으로 주변이 막혀있다.
제주 올레 18-1코스가 교차하는 묵리교차로다.
올레 정코스 방향을 따라
오른쪽, 묵리마을로 방향을 잡는다.
머지않아
제법 큰 마을이 보인다.
맞은 편 마을 로 대밭 규모가 꽤 넓다.
마을 길을 지나
묵리수퍼 못미쳐 마을 우물 앞에 도착한다.
예전에는 마을 공동 식생활에 사용하던 용수로
귀하게 여겼었겠지만
지금은 오욕을 뒤집어 쓰고
쓸쓸하게 옛 영광을 곱씹으며 부활을 꿈꾸고있다.
묵리수퍼 앞 중간스탬프다.
마을 앞 정자가 있는 갈림길에서
해안으로 도는 도로를 따라간다.
해산물가공공장 지붕 너머 마을을 담는다.
해안도로 바다 저 편,
섬이 보인다.
섬이름이 섬생이다.
고래가 수면위로 머리를 내민 모습이다.
올레가 다시 산허리로 들어간다.
신양 2리 마을 뒤로
억새가 갈빛으로도 살아있는 것처럼
꼿꼿하게 죽음을 위장했다.
숲에 들었다
이리저리 헤치고 나오니
이미 마을은 사라지고 없다.
묵리로 내려서며
맞은편 고개에 건너 보이던 집을 지난다.
집 앞 유채가 노란꽃을 피웠다.
전체거리 18.2킬로미터 중,
지나온 거리가 아닌 남은 거리가 10.5킬로미터다.
이 표시 역시 본섬과 다르다.
다시 산길을 가로지른다.
앞으로 보이는 완만한 봉우리가
추자도 최고봉 돈대산 정상으로 보인다.
올레코스가 지나가는 곳이다.
당연히 나도 거쳐갈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넓은 초기가 보인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지나다
다시 숲으로 들어서
신양항이 있는 신양리 뒤를 지나
숲길은 헤쳐
마을로 들어선다.
신양항 부두앞에서
다시 마을 안 도로로 올레가 이어져
라븐을 찾으며 나아간닫
신양항과 마을, 바다가 훤히 보이는 언덕에
꽤 규모가 큰 건물이 보인다.
민석박물관으로 네이버지도에서는 확인되는데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곳은 아닌듯 하다.
마을길로 빠졌던 올레가
신상리윗쪽삼거리 못미쳐 빠져
도로에서 다시 오른쪽,
해안방향으로 내려가다 모진이삼거리에서
숲속으로 방향을 잡아든다.
모진이해수욕장 너머 뿌옇게 보이는 송곳같은 섬이
수덕도로 보인다.
인연이 없이 멀리만 바라보는
모진이몽돌해수욕장이다.
올레길을 따라 숲으로 다시 들어선다.
마주치는 사람을 만날수 없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접근이 불편한 섬, 평일에 더하여
코로나 19로 생활속 거리두기로
여행을 취소하거나 미루도록 권장하는 사회분위기다.
계속 이어지는 숲을 지나
포장 임도로 보이는 길로 올라선다.
포장임도를 벗어나는 갈림길에 닿는다.
왼쪽 계단이 추석산 올라가는
추석산 소원길이다.
오른쪽이 올레를 따라 황경한 묘 가는 길이다.
올레른 따라 임도 바로 위,
나란히 난 산길을 따라간다.
천주교 성지, 황경한의 묘다.
1801년 천주교 탄압사건,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피신하였던 황사영 알렉시오는 이른바 황사영백서를 써서
북경에 있는 주교에게 보내려다 발각되어 처형된다.
그의 어머니는 거제도로,
장약용의 맏형 정약현의 딸로 황사영과 혼인한
아내 정난주 마리아는 제주도로 유배 당한다.
제주로 가던 호송선이 이 곳 예초리에 머물자
평생 죄인으로 살아야 할 것을 걱정하여
이름과 출생일을 적어 저고리에 싸 물새울 황새바위에 두고 떠난다.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은 어부 오씨가 거둬 키워
성장한 뒤 혼인하여 두 아들을 두었고
그 후손이 지금도 하추자도에서 살고있다.
그 뒤 황씨와 오씨는 결혼하지 않는 풍습이 생겼단다.
천주교 111번째 성지로 지정되었고
인근 지역을 성역화하고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성지 앞 정자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앞 쪽 바다로 뻗어나간 끝 바위에
일자로 솟은 모습이 보인다.
올레길을 벗어나지만
반드시 찾아가려고 마음 먹었던 눈물의 십자가다.
정난주마리아가 눈물로 아들을 내려놓았던 장소다.
이어지는 길은 시멘트포장도로다.
먼 곳 위에서 바라본 장소라
제대로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다행히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를 따라 고개를 올라간다.
고개마루에 올라서자 올레는 너머로,
눈물의 십자가는 오른쪽으로 갈라진다.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올라간다.
신대산전망대에 오르니
바다쪽으로 긴 계단이 내려간다.
그 끝에 조사가 두엇 보이고
눈물을 형상화해 넣은 십자가가 보인다.
건너 절벽 끝 바다에 동굴이 보인다.
다시 갈림길로 돌아왔다.
추자도 해안절경을 두 눈에 가득 담고 걸을 수 있는 해안절벽길,
예초리 기정길로 소개한다.
현재 시각이 1시 50분에 다다랐다.
아까 지났던 황경한의 묘에서 본 올레표시가 9킬로미터 지점,
앞 길 상황을 모르니 욕심만 채울수 없다는 결론이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좋은 길을 택하여 절벽, 기정길 너머 포장도로를 따라간다.
그렇게 길을 가로질러
예초리 마을 뒷편에 당도해
마을을 가로질러
올레길과 합류한다.
방파제가 예초항을 안온하게 감싸고있다.
엄바위전설이 있는 엄바위 아래를 지난다.
옛사람들은 엄바위가 마을을 수호한다고 믿었다.
엄바위 밑에서 태어난 억발장사가 있었는데
바닷가에 있던 바위 다섯개로 공기놀이를 즐겨하던 억발장사가
횡간도로 뛰어넘어가다가 미끄러져 바다에 빠져 죽었다.
이때부터 예초리와 횡간도 사람간에 혼인하면
청상과부가 된다고 하여 혼인하지 않는 풍습이 생겼단다.
언제부턴가 마을 누군가가 억발장사를 상징하는 목장승을 깍아세워
예초리에서는 해마다 풍물굿을 할때면
엄바위 앞에 와서 한마당 놀고 소원을 빈다.
엄바위를 지난 올레는
추억이 담긴 학교가는 샛길로 돈대산을 향해 올라간다.
현재 시간이 2시,
앞으로 2시간 내에는 상추자항에 도착해야한다.
머리로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판단이 서는데
마음이 조급하다.
내처 걷기로하고 도로를 걷는다.
뿌연 해무가 낀 바다너머
섬들이 길게 펼쳐진다.
터덜터덜 신작로를 걷는다.
그 나마 따라오는 바다와
그 너머 섬들의 동행이 위안이 된다.
돈대산을 올랐다 내려온 올레와 다시 만난다.
조금 더 지나간 해안도로 안쪽,
추자도에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추자담수정수장이 보인다.
바다 건너 산능선에 지난 자취들이 보인다.
오른쪽에는 최종목적지 상추자항이 바다로 향해있다.
오지박길 도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산쪽 숲길로 접어든다.
길게 이어지는 숲,
때로는 오지박길 도로와 나란히,
때로는 숲속 깊숙히 들어간다.
추자대교 조금 못미쳐 숲길을 나선다.
도로로 내려선 곳에
추자도 특산물 참굴비 조형물이 서있다.
야간에는 조명을 밝힐수 있는 시설이 되어있다.
바다쪽으로 난 돌탑이 보인다.
제주도에서는 방사탑이라하여
꼭대기에 돌하르방이나 석상, 새 모양을 얹어
부정과 악귀를 막는 역할을 했다면
이 곳은 별다른 설명이 없다.
육지에서처럼 소망을 기원하는 탑 정도로 생각된다.
행정구역으로는 제주도에 속하지만
생활은 전라도에 가까운 특성탓에
제주스러운 것은 찾아보기 힘든 여정이었다.
추자대교 건너 오른쪽,
추자도 어민 대일 항쟁 기념비가 서있다.
1926년 일제의 사주를 받은 추자도어업조합이
우뭇가사리를 강제로 싼 가격에 매수, 비싼 가격에 되팔아 폭리를 취하려하자
예초리 어민 700여명이 집단으로 저항한 사건이다.
당시 추자도 전체 인구가 3000여명에 달했던 점에 비춰보면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지 짐작된다.
그로부터 6년 뒤인 1932년 5월,
추자도 거주 중이던 사와다라는 일본인이
삼치 유자망으로 추자도 어민 내수면 어장을 침범해 작업하자
추자어민들이 총궐기에 나섰던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많은 어민이 옥고를 치르거나 실형을 선고받았다.
<출처 : 제주의 소리>
해언도르를 따라
영흥쉼터에 도착한 시간이 2시 46분,
건너보이는 상추자항을 향하는 걸음은 더 빨라진다.
영흥리마을 해안을 지나
대서리로 들어선다.
걸음을 서두른 목적 중 하나가
이 곳 추자공소에 들르기 위해서다.
천주교 성지순례중이라
스탬프를 찍기위함이다.
공소앞으로 올레정방향 화살표가 보인다.
나발론하늘길로 방향을 변경하지 않았다면
이 앞을 지나 순효각, 추자처사각을 지나
추자등대로 올라갔을터이다.
항구를 내려다보는 마을 정자를 지나
순효각 앞에 이른다.
병든 아버지가 꿩고가를 먹고싶다하자
슬피울며 하늘에 빌어 꿩고기를 얻어 드리고
어머니가 병이 들어 위태로워지자
손가락을 찔러 입안으로 흘러 목숨을 연자한
효자 방명래의 행실을 기리는 서각이다.
3시에 다다른다.
30분 가량 시간 여유가 있다.
여유가 있다면 항구 뒷쪽
야트막한 등대산이라도 나녀올까 싶었지만
급하게 지나쳤던 항구를 둘러보기로 한다.
올레 18-1코슨 상추자항으로 회귀하는
18.2킬로미터 길이다.
올레길을 걸으며 정하진 코스를 벗어나는 것이
아쉬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더 의미있는 장소를 둘러보며
틀에 얽매이지 않았던 보람이 컸다.
올레 걷기를 마무리하는 즈음
추자도 코스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해안 기암절벽을 눈에 담을수 있다는 예초기정길,
추자도 최고봉이 있는 돈대산을
뱃시간에 쫓겨 둘러왔다는 아쉬움이다.
혹시 그 아쉬움이
훗날 다시 추자도를 찾는 구실이 될지는
두고 볼 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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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덜 차장님~
폭삭 속앗수다래......^^